하나님의 전신갑주 / 에베소서 6:10-17 / 이성훈목사님
여러분 심리학자들이 재밌는 실험을 했다.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의사 가운, 다른 한 그룹은 평상복. 똑같이 집중력 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 의사가운을 입은 그룹이 집중력이 높았다. 50퍼센트나 높았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착용자 인식이라고 한다. 착용하는 옷이 우리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다. 바울은 우리에게 옷을 입으라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에베소서만 봐도 새사람을 입으라라고 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한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로마에서 갇혀있는 상태에서 썼다. 로마의 가택연금상태다. 거기서 24시간 붙어있던 사람이 있었겠죠. 로마군인이다. 사람은 바뀌었을거다. 그들의 옷은 똑같았다. 로마의 전신갑주. 자기를 지키고 있는거다. 그냥 갇혀있는 자로 바울이 살았다면 로마 전신갑주를 보기만 해도 짜증났을거다. 그러나 주안에서 갇힌 자라고 고백했기땨문에 띵크를 하는거다. 바울의 묵상결과가 바로 오늘 본문에 담겨있다. 오늘 우리가 입어야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겠다.
1. 끝까지 서게 합니다.
10절. 바울이 말하는 이 끝으로를 헬라어로 보면 끝까지 뜻이 강하다. 우리가 어떤 구원,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거기에 합당한 삶도 다 들었다. 들을 말 다 들었으니까 인생의 끝까지 어떡해야 하느냐 강건해져라. 주안에서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라. 바울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거다. 수동태다. 힘내라가 아니라 힘을 받아라. 힘이 나져라 수동태로 말씀한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잘 들어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머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힘이 나지 않는 우리 존재, 삶 우리는 그런 존재다. 바울이 좀 더 심플하게 쓰면 좋겠는데 그 힘이 뭐고 그 능력이 뭐지? 여러분이 연애편지 쓴다고 생각해봐라 진짜 사랑하면 계속 간절함을 담아 표현한다. 그 힘의 능력으로. 그래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권면하는거다 그래서 18절부터 기도가 나오는거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니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걸 몰라서 안 사랑하겠나.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의 언어를 써야하는 줄 몰라서 안쓰겠나. 오히려 그런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위축이 되고 부담되어서 낙심된다. 세상에 힘내야한다는 것 몰라서 안내는 사람없다. 너무 잘하고 싶은데 그냥 힘이 안나는거다. 그래서 우리 맘이 어렵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 힘을 내는게 아니라 주님의 힘의 능력으로 주님 안에서 강건해져야하는거다. 바울은 사실 하나님께 자신과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있는거다. 우리를 좀 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권면하는 것이고 당부를 한다.
11-13절. 우리는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해이러는데 바울은 뭐라고 하나. 힘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힘이 없다고 누워있지 말고 주저앉지 말고 아무리 힘이 없어도 옷을 입진 않나. 하루를 살긴 싫지만 일어나서 옷은 입지 않나. 그럴 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거다. 슬픈 현실이 있다. 성도의 인생은 전쟁이다. 사람과 싸우는 전쟁이 아니다 육적인 전쟁이 없다는게 아니다. 내 앞에서 벌어지는 내 육의 전쟁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남편 자식이 미워죽겠잖아요. 그러나 그 육의 전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진짜 심각한 전쟁이 영적인 전쟁의 현상에 불과하다는거다. 배후의 악한 영, 마귀 사탄이라는 거다. 교회는 이 땅에 있는 동안 싸우는 교회라고 한다. 전투하는 교회다. 영적으로 싸우지 않는 교회, 죄와 늘 갈등하고 몸부림치지 않는 교회는 영적으로 죽은 교회다. 아무 고민 갈등 없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택하신 성도에게 전투가 없다면 그 사람에겐 영생이 없는 인생이다. 큐티하지 않는다면 내 안에 영생이 없는거다. 성령을 떠나있는거다. 하지만 마귀의 간계는 너무도 치밀하고 교묘하다. 누구나 알아보는 악이 있다. 심각한게 평범해져서 우리 가운데 악인 줄도 모르는 악이 더 심각하다.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악보다 부지중에 행하게 되는 악이 더 파괴적이다. 습관화된 악, 관습화된 악, 그리고 제도화된 악, 법제화된 악도 생기기 시작했다. 세상은 정의를 외치나 영적으로보면 불의가 가득하다. 바늘 도둑은 큰 벌을 받지만 나라 도둑은 왕이 된다. 마귀는 지금도 쉬지 않는다.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말, 사건을 엿보다가 작은 틈이 생기면 자기 무기를 찔러넣는다. 아침에 일어날 때 경건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이렇게 일어나지 않나. 오늘좀 도와달라고 기도하지 않나. 그런데 점심이 지나서 오후가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분노, 짜증, 불평이 올라오는 모습을 발견하다. 그란데 이 영적전쟁에 특징이 있다. 우리는 사탄의 상대가 되질 못한다. 사탄은 우리 약점을 잘 안다. 이사람 어디를 건드리면 넘어지는지 너무 잘 안다. 우리는 약해서 어떻게 전쟁을 치르나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특징은 이 전쟁은 이미 승리한 전쟁이다. 눈앞에 현실과 다르기 때문에 믿기가 쉽지 않다. 이미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로 승리하셨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 전쟁은 뭔가 새롭게 이겨서 성을 빼앗아야하는 공성전이 아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전쟁은 이미 점령해주신 그 구원의 성을 그저 지키기만 하는 수성전이다. 수성전은 잘 지키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니깐 얼마나 대단한 전쟁을 치르라고 겁이 덜컥난다. 하나님께서 무장하게 한 다음에 그냥 그 자리를 잘 지켜라 자꾸만 도망가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힘을 줄테니 그냥 그 자리 지키고 서 있어라. 이게 수성전에 실체다. 버티는 것. 그래서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레터링을 보면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하기도 전에 겁을 먹지만 큐티해 보면 언제나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들 우리 눈높이에 맞춰서 딱 맞는 과제를 맡기신다. 서서 버티는 자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임을 믿는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잘 입고 자기 자리 자기 역할 도망가지 말고 끝까지 잘 지키고 버티자.
내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할 부분은 어디인가?
요즘 나를 유혹하고 공격하는 마귀의 간계는 무엇인가?
내가 끝까지 서서 버텨야할 자리는 어디인가?
2. 내가 맞춰야 합니다.
14-15절. 군복입은 군인은 바로 알아볼 수있다. 그런데 얼굴만 보고선 군인임을 짐작하는 건 사실 쉽지 않다. 로마 군인 사인이 있었는데 로마 벨트. 표시와도 같은 장구였다. 그래서 허리띠를 빼앗기는 것은 로마군인에게 굉장한 수치였다. 그래서 어딜가든 벨트를 항상 차고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차고 잠자리 들 때 벗었다. 전신갑주 중에 젤 먼저 젤 나중에 하는 게 벨트다. 왜 진리를 허리띠에 비유할까. 그건 성도의 삶에서 진리로 시작해서 진리로 끝나야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이나 말과 행동을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면 다 속이고 오류, 왜곡하고 우리에게 나올게 죄 밖에 더 있겠나. 나의 생각도 행동도 말씀의 벨트로 채워놔야 그나마 최대한 거기서부터 나오는 악이 멈춰지는거다. 나의 말 행동을 그 한계안에 가두는 것 넘어서지 않는거다 성령께서 진리로 인도하신다고 했잖아요. 우리의 삶의 시작과 끝이 진리로 묶여있어야 군사로 살 수 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첫단추다.
로마 갑옷의 본체는 뭐니뭐니해도 호심경이었다. 반짝반짝하는 금속조각들을 이어붙여서 상체 전체를 보호하는 금속갑옷. 바울은 이 의를 호심경에 비유한다. 우리는 인본적인 옳고그름의 노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저마다 주제가가 나만 옳다는 것이잖아요. 속 깊은 곳에서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가 꽉 차있다. 그래서 서로 갈등하고 싸우면서 더 큰 악을 저지르는 걸 본다. 이걸 막는 길을 뭘까. 정의가 무엇인가 난리났던 책 아리스토텔레스와 다르지 않다. 인간이 유명한 학자의 강의를 들어서 정의를. 이게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의에서 답을 찾으면 안된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의. 그리스도의 의는 다른게 아니라 십자가다. 십자가가 무엇이냐. 우리질못을 자기 잘못으로 생각하시고 감당하셨다. 내가 당신의 짐을 대신 지겠다. 주님께서 우리의 십자가를 자기의 십자가로 지신다. 우리는 늘 내가 옳고 맞고 존중받고 대접받야하는데 그것을 그리스도의 의의 호심경으로 덮는다는 것은 이제 그 생각을 억누르면서 당신이 나보다 옳으십니다.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인정할수없지만 그리스도께서 나를 의로 덮어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그가 나도다 더 옳습니다. 당신이 저보다 옳습니다. 왜 고백해야하나 인본적 윤리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저보다 옳으십니다. 왜 나에게 이런 회사 학교 이렇게 아프게 하셨고 이해가 안되지만 이 모든 것을 하신 분이 주님이시고 그러나 주님이 저보다 옳으십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팅을 두실 수 밖에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주님이 옳으시기에 당신이 옳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로 호심경을 삼는다.
이어서 로마군의 신발이있다. 샌들이 있다. 이건 지금 보기에는 가죽끈으로 만들어서 별거 아닌것같지만 그 당시에는 최고의 기능성 신발이었다. 발과 발목 보호 밑창에 쇠구슬을 어떤 지형이라도 빠르게 진군 위급할 땐 무기로도 사용할 수있었다. 이 샌들에 해당하는게 평안의 복음이 준비된 것. 편안의 복음이란 건 구원 때문에 평안을 찾은거다. 그런데 이 평안을 우리가 얻었으니깐 아 내가 이 구원에 합당하게 살아야되겠다는 새로운 의지가 마음이 예수 믿는 순간에 우리한테 생긴다는 거다. 다만 우리가 충만하지 못해서 우리가 성령으로 임하셨기 때문에 그 실체는 다 우리안에 있는거다. 새로운 마음이 다있다. 그리고 나아가서 혼자만 누리면 안되고 내 가족에게 이웃에게 평안을 나눠줘야겠다란 마음이 생긴다. 그대로 하지 못할뿐이지 원함은 다 있다. 우리안에 준비된 우리안에 새롭게 생긴 의지가 평안의 복음이 준비하신 것. 복음에 따라 새롭게 생긴 거룩한 마음이다. 그러니깐 복음의 평안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는 것은 지금까지는 내가 하고 싶으대로 해야한다 예수믿는 후에도 그렇다 젤 평안하게 여겼지만 이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하니깐 이젠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내가 가는구나. 이번 여름에 티티에 가면서 그런 경험을 많이 했을거다. 가기 전에는 얼마나 귀찮나. 그런데 막상 순종하면서 힘들지만 그래도 준비된 마음을 붙잡으면서 가면 은혜를 받잖아요. 거기에서 평안을 찾는거다. 여러분 그런데 로마군의 전신갑주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비교할 정도로 유사점이 있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로마 갑옷은 다 몸에 맞는 갑옷을 입어야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사이즈가 딱 하나다. 우리 몸에 하나님의 전신갑주 사이즈를 맞추는게 아니라 우리가 맞추는거다. 내가 기준이 되먼 진리는 진리가 아니게 된다. 하나님의 진리에 내 생각을 맞춰야만 나도 진리의 사람이 되는거고. 하나님의 의에 내 판단을 맞춰야만 그 구원이 주는 평안에 내 삶을 맞춰야만 진정한 평안의 사람이 되는거다. 그러나 우리는 입맛하나 맞추는것도 어렵다. 입맛하나 못바꾸는게 우리의 한계다. 그러니 평생 쌓아온 고집 꺾는거 이거 가능하겠나. 고집 하나 꺾늑네 너무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우리의 생각 말 행동 습관 원하는 것들을 맞춰가는 걸 매일 매일 해어하나는데 가장 좋은게 큐티다.
가정에서 내 고집을 꺾고 주님의 진리에 맞춰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학교나 직장에서 주님의 의에 맞추야 할 선택은 무엇인가?
주미나 다르겠다고 결단했지만 아직 시작하지 못한 발걸음이 있다면 무엇인가?
고난 안 당하게 해주세요 기도했다. 그런데 안 당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고난 잘 당하게 해주세요. 하니깐 맘이 평안해졌다. 욕 잘 먹게 해주세요. 이렇게 바뀌었다. 기준이 바뀌었다.
3. 내가 가져야 합니다.
16-17절. 전쟁터에 나가면 군인은 허리띠 호심경 샌들을 절대 벗을 수 없다. 그러나 방패, 검, 투구는 잠시 벗을 수가 있다. 계속 들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믿음은 우리의 방패와 같다. 성도의 모든 것을 지켜준다. 사탄의 불화살, 의심, 불안, 의심, 우울, 낙심, 절망, 쾌락, 중독, 집착, 폭력 등 셀수도 없는 불화살들을 눈에 보이는 사람 사건 우리의 생각 감정을 통해 때로는 영적인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적 작용을 통해 불화살로 공격을 가한다.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냐면 한발만 맞아도 정신을 못차리고 말한마디에 일주일 우울해 있는게 우리 인생이다 이것을 소멸해서 우리 삶을 태우지 못하도록 방어해야하는데 그것이 믿음의 방패다. 나에게 고난 다가올 때 거기에 불탈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를 구원하셨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가신다는 고백하고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사탄의 불화살 소멸해서 나를 태우지 못하도록 소멸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구원의 투구라고 했다. 머릿속 생각 뇌를 지키는 것이 다른게 아니다. 구원이다. 늘 구원을 생각해야하고 구원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봐야하고 모든 일을 구속사적으로 분뱔해서 잘 적용해야하는 것이 구원의 투구를 쓰는거다. 구원을 생각할 때 세상의 헛된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우리가 받은 구원 이루어가야할 구원을 하루라도 생각하지 못하면. 이게 안되니깐 딴생각하고 떠나려하고 주저앉으려고한다.
마지막 성령의 검, 한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한다. 전신갑주 중 유일한 공격무기다.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검이다. 사탄에게 반격할 수 있는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탄을 무엇으로 물리치셨다. 하나님의 말씀. 방패를 들어야하고 구원의 투구를 가져야한다. 손으로 잡아야한다. 이것은 내것 아닌 것을 빼앗는게 아니다. 이건 받는 거다. 주시는 것을 받는거다. 믿음이나 구원이나 말씀의 중요한 공통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구원, 말씀 선물이다. 이제 그것을 갖는 것은 다른게 아니라 잘 받는거다. 내가 받아서 선물로 누리는게 갖는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가지다의 명령은 지당한 말씀이 아니다 훌륭한 학생이 되세요. 언젠가 이루어도 상관없다. 원칙을 말하는 거다 그러나 이 동사는 명령에도 시제가 있다. 부정과거 이 시제를 쓰면 무슨 의막 붙느냐. 지당하신 말씀이 아니다. 믿음의 방패를 언젠가 가져. 니가 살다가 언젠가 가져가 아니라 지금 당장, 지금 즉시. 즉각적인 시행을 요구하는 강력한 요구다. 우리는 자주 우리가 전쟁중임을 잊어버린다. 싸움이 너무 힘들면 잊으려고 하잖아요. 우리의 본성이다. 잊으려고 하고 감추려고 하고 생각안하려고 하고 실제는 지금 불화살이 날아오는 전쟁인데 나 괜찮아. 아무 사건없어 잘 지내 이러는게 우리 모습이다. 그래서 성경있어도 펴지 않고 큐티 펴지 않고 섬길자리가 있는데도 가지 않고 쉬고 있는. 나중에 믿지, 나중에 순종하지, 내일부터 하지뭐하는거다. 때가 되면 다 할거야. 알아서 할거야. 내 때가 있다니깐 날 좀 내버려둬가 주제가중 하나다. 사탄이 우리를 노리는 그 기회는 우리의 나중에 생각이다. 지옥으로 이끄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거다. 나중에 하지. 내일부터 하지. 오늘은 피곤한데 생각하지 말자. 하나님이 명령하신게 지금즉시 방패를 들고 말씀의 칼을 잡고. 방패는 들어야 방패인거다. 검도 손에 잡아야, 투구도 머리에 써야 투구다. 그냥 고철덩어리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잠시 손에서 놓고 계신분 있나. 즉시 손에 잡기를 바란다. 그래서 구원의 수성전에서 이 지키는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자 다 되시기를 축복한다.
요즘 어떤 불화살의 공격을 받고 있나
다시 들어올려야 할 믿음의 방패는 무엇인가?
내 삶에서 구원이 가장 중요한 기치인가? 말씀의 검을 손에 가지고 있나
저도 군대 생활이 생각나더라 공군사관학교 교수요원으로 입대했다 4개월 훈련받으러가면서 어떤 복장으로 가나 어차피 다 집으로 보낼 거니 때문에. 그런데 저는 큰 가방 들고 갔다 책을 가쟈갔다 공부할 시간을 주겠지 교관이 저를 보더니 뭐야 묻더라 책인데요 했더니 세상에서 이런 한심한 인간이 있나하고 쳐다보더라 책 압수되고 훈련 시작됐는데 몸으로 하는건 잘 안된다. 전투훈련받는데 비가 내렸다 훈련장이 진흙탕 한사람씩 나와서 시켰다. 대충 집중하지 않고 떼우면 되겠지. 차례가 되서 나갔는데 정신없이 하니깐 교관이 너 바보야 이러는데 처음 들어봤다 그러면 아유 잘못했습니다하면 그냥 지나치는데 발작버튼이 눌려서 교관을 째려봤다. 모든 교관이 와서 욕을 퍼부면사 굴리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죽다가 살아났다. 그래서 유명인사가 됐다. 요주의 인물이 되어서 똑같은 잘못을 해도 두배세배 벌을 받았다. 4개월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한달 두달 석달 넉달 마지막 주가 되었다 설레더라 마지막날 새벽이 밝았다. 그날 연평해전이 터졌다. 서해서 전쟁이 난거다. 무기한 연장이 됐다. 훈련소에 책 가져간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나. 너무 이상했다. 제정신이냐. 문제는 너무 당당했다. 이상한 저를 하나님이 쓰시려고 최고의 세팅을 만들어주셨는데 무시. 근데 앞에서 분별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도 이미 꿈이 목사 하나님의 전신갑주 의미 알았다. 그러나 말씀없고 공동체가 없어서 갑옷을 입지 못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2주 더 줄테니 살아남아. 니가 얼마나 이상한 놈인지 봐라 하는데 몰랐다. 더 억울 원망 불평에 사로잡혀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오는 날 새벽 너무 기분이 좋았다. 짐 정리하고 나갈 준비하는데 낡아빠진 저의 군화가 보였다. 너무 화가났다. 이 훈련소에서 굴러먹은 자의 상징같아서 군화를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방송이 나오는거다. 신성한 군화를 버린 사관생 올 것. 제일 먼저 든 생각 가만히 있어야지. 이 생각이 딱 드는거다. 몇 초 안되서 바로 생각났다. 이름 안지웠다. 버티다가 더 혼날 것 같아서 갔더니 제 책가방을 빼앗은 교관이었다. 열배는 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군화를 주더니 받으니깐 입에 물어 더러운 군화를 그날 아침에 입에 물고 저의 4개월 2주의 대미를 장식했다. 제 자신의 실체다. 나는 여기서 얼마나 변화했는가. 내가 이때로 돌아가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건가. 제 명예의 투구 자존심 내가 옳다는 저의 의의 갑옷 입고 있었던 것 알량한 작은 지식. 내 판단으로 허리 두르고 갔었다. 제가 만들어낸 괴물과도 같은 갑옷을 입고 하나님의 전신갑주 다 안다고 까분. 지금 제 안에는 여전히 그 갑옷이 입혀져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연약한 자를 우리들 공동체에 들어오게 해주셨다.
- 목장 기도제목 -
[오레오 쿠키 앤 크림]
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겸손하게 직장에서 일하기
2. 이번주 토요일부터 재정학교 시작하는데 재정훈련 잘 받을 수 있도록
3. 일댈 양육, 양교 듣는 목원들 자기죄 보고 잘 나눔하고 잘 듣는 훈련을 때 보낼 수 있도록 패쓰! 하도록
4. 가족의 건강과 목원들의 건강 지켜주시도록
[31요거트]
1. 내일 나오는 새 차 좋은차 받고 지금차는 중고차로 잘 팔려서 앞으로 안전운전할 수 있도록
2. 신교제, 신결혼을 위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주시도록
3. 학생들 수시상담을 통해 수시접수를 앞두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지혜롭게 상담해주고 감정 상하기보다 서로를 의지할 수 있도록
4. 이번주도 말씀 붙들고 잘 버텨내며, 지친 몸을 잘 회복 할 수 있도록
[아몬드봉봉]
1. 양육교사를 듣는 것이 부담이 아닌 은혜의 시간으로 채워져 가기를
2. 나와 가족 지체들의 건강을 위해
3. 나의 모든 선택이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이 되기를
4. 오늘 오후 예정되어 있는 KDDF과제 사업단과의 미팅이 이슈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1. 양교 받는 동안 사건이 말씀으로 해석되고 내 죄보며 하나님 사랑 많이 누릴 수 있도록
2. 사단이 호시탐탐 노릴 때 좌절하지 않고 그날 주신 말씀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엄마는 외계인]
1. 수치와 조롱을 당하는 것을 잘 당할 수 있도록
2. 망가지는 것이 겸손이 아닌, 낮아지는 겸손이 무엇인지 기도할 수 있도록
3. 공부하는 습관을 잘 들일 수 있게 일일공부계획 목장에 올릴 수 있도록
4. 환경을 탓하지 말고, 나부터가 오픈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레인보우 샤베트]
1. 양교 과제 잘 할수 있도록
2. 하나님 음성에 민감한 자가 되도록.
3. 신교제 허락하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