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2025.08.31.(주일) 에베소서 6:10-17 「하나님의 전신 갑주」 이성훈목사님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본문
하나님 아버지, 한순간도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는 저희에게 서라고 하시며, 또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우리가 다 입을 수 있도록 저희를 설득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러분 심리학자들이 아주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학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어요. 그래서 한 그룹은 흰색 의사 가운을 입혔고, 다른 한 그룹은 평상복을 입게 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그 집중력 테스트를 했어요. 그랬는데 이제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의사 가운을 입은 그룹이 다른 그룹보다 집중력과 주의력이 현저히 높았다고 합니다. 오류를 범한 그 비율이 50%나 적었다고 그래요. 굉장한 차이죠. 그래서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착용자 인식이라고 한다고 그럽니다. 착용자 인식. 착용하는 옷이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의사 옷 입으면 내가 뭔가 좀 똑똑해진 것 같아서 실수를 좀 덜하고 더 집중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제 (그러지) 않는다. 이 착용자 인식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바울은 우리에게 옷을 입으라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요. 에베소서에서만 봐도 우리가 4장에서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무엇을 입으라고 그래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또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어디에서 썼을까요? 로마의 가택연금 상태에서-집에 갇혀서- 거기서 이제 에베소서를 써서 보냈는데, 거기서 24시간 붙어 있던 사람이 있었겠죠? 누구예요? 바로 로마 군인입니다. 사람은 바뀌었을 거예요. 교대 시간마다 사람은 새로 왔겠지만은 그들의 옷은 똑같았습니다. 바로 로마의 전신 갑주! 로마 군인의 갑옷을 입은 똑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자기를 24시간 같은 집에서 자기를 지키고 있는 거예요. 그냥 갇혀 있는 자로 바울이 살았다면, 그 로마 갑옷-이 전신 갑주-를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 안에서 갇힌 자라고 고백을 했기 때문에 그 로마의 갑옷을 보면서도 지금 띵크(think)를 하는 거예요. 묵상을 하는 것입니다. 이 바울의 묵상의 결과가 바로 오늘 본문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입어야 하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 첫 번째는요,
끝까지 서게 합니다(10-13절).
10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끝으로라고 하니까 이제 결론 말씀하는 것 같죠? 끝으로 끝나는 것 같아요. 맞아요. 결론이에요.
그런데 안 그런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 어렸을 때 교장 선생님께서 훈화 말씀을 하실 때, 에~ 끝으로 아! 이제 이제 끝나는구나! 좋아했는데, 그 다음에 좀 말씀 한참 하시다가 에~ 마지막으로 이제 이러시더라고요. 끝이 안 나는 훈화 말씀이 기억이 나는데요.
바울이 말하는 이 끝으로를 헬라어로 보면 끝까지라는 뜻이 더 강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이에요? 지금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어떤 구원을 받았는지 다 충분히 얘기했고, 거기에 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다 얘기했잖아요. 말씀을 다 들었어요. 그러니까 그 말씀을 다 들었으니까 지금부터! 지금부터 끝까지! 너희들의 인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어떻게 해라? 강건해져라! 강건해져라! 주 안에서 또 그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라! 이렇게 바울이 지금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강건해져라. 수동태예요. 힘내라 이게 아니라 힘을 받아라., 힘이 나 져라. 수동태로 지금 말씀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잘 듣고 훌륭한 가르침을 잘 들어도요. 우리의 몸과 마음은 머리를 따라가지 않더라고요. 알긴 다 압니다. 우리가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다 알고, 우리가 거기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니, 우리 남편분들이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몰라서 우리 안 사랑하겠어요? 우리 아내분들은 남편에게 복종의 언어를 써야 하는지 몰라서 안 쓰겠냐는 말이죠. 그러나 우리의 입술이 따라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머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말씀을 더 들을수록 더 위축이 되고 부담이 되어서 낙심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세상에 힘내야 한다는 것 몰라서 힘 안 내는 사람 없죠. 너무 힘을 내고 싶은데, 너무 잘하고 싶은데 그냥 힘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마음이 더 어렵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한계예요. 누구나 다 이런 부분들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힘을 끌어올려서 힘을 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힘의 능력으로 주님 안에서 강건해져야 하는 것이에요.
바울은 지금 사실 하나님께 자신과 또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우리를 좀 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금 권면을 하는 것이고, 또 우리에게 이어서 중요한 당부를 하는데요.
11절 13절 같이 읽겠습니다.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우리는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해! 못 하겠어! 나 힘이 없어! 이러는데 바울은 지금 뭐라 그래요? 힘이 없으니까! 힘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라. 아무리 힘이 없어도 우리가 아침에 옷은 입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침에. 하루를 살기 싫지만 일어나서 옷은 입잖아요. 하나님 앞에 아무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럴 때 어떻게 해라? 입으라는 거예요. 무엇을?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뜻과 또 상관없는 슬픈 현실이 한 가지 또 있어요. 그건 뭐냐 하면, 바로 성도의 인생은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눈에 보이는 사람과 싸우는 전쟁이 아니에요. 그런 전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혈과 육을 상대하는 그런 육적인 전쟁이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여러분. 생각해야 될 건 무엇이냐면, 내 앞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육의 전쟁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남편이 미워 죽겠고, 아내가 미워 죽겠고, 자식이 미워 죽겠고, 회사 동료와 상사들이 미워 죽겠잖아요. 그러나 그 육의 전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진짜 큰 전쟁, 진짜 심각한 전쟁인 이 영적인 전쟁의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내가 미워해야 될 사람은 내 앞에서 나를 괴롭히는 그 눈에 보이는 혈과 육을 가진 그 사람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악한 영들, 어둠의 세상의 권세를 잡은 그 사람들. 마귀, 사탄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교회는 이 땅에 있는 동안 유식한 말로 에클레시아 밀리탄스(Ecclesia Militans)라고 합니다. 싸우는 교회예요.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영적인 전쟁이 없는 교회, 영적으로 싸우지 않는 교회, 회개하지 않는 교회, 죄와 늘 갈등하고 죄를 끊어내기 위해서 몸부림치지 않는 교회는 영적으로 죽은 교회인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와 갈등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회개하지 않는다면, 큐티하지 않는다면, 내 안에 영생이 없는 거예요. 성령을 떠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의 간계, 우리의 그 영적 전쟁의 진짜 상대인 이 마귀의 간계는요, 너무도 치밀하고 교묘한 거예요. 누구나 알아보는 특별한 악이 있잖아요. 드러나는 악, 드러나는 악보다 더 무서운 악이 있어요. 이것은 평범해져서-우리 가운데 너무도 평범해져서- 악인 줄도 모르는 악. 이것이 사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악보다 더 무서운 악은 부지 중에 행하게 되는 -내가 의도치 않았는데 행하게 되는- 그 악이 사실은 더 파괴적인 거예요. 습관화된 악, 그리고 우리 사회에 관습화된 악, 그리고 이제 제도화된 악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심지어 법제화된 악도 이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정의를 외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영적으로 보면 불의가 더 가득한 거예요. 바늘 도둑은 심한 벌을 받지만 나라 도둑은 왕이 되는 세상입니다. 게다가 마귀는 지금도 쉬지 않아요. 우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엿보다가 작은 틈 하나 생기면, 거기에 그냥 자기의 무기를 꽉 찔러 넣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날 때, 오늘은 좀 시달리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좀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하며 다 이렇게 일어나시잖아요. 그러지 않으세요? 기도하시면서 일어나시지 않으십니까? 오늘 좀 도와달라고. 주님, 저도 오늘 말씀에 따라서 거룩하게 살겠다고 그러면서 큐티하고 하잖아요. 그런데 점심이 지나서 오후가 되면 어떻습니까? 나도 모르는 순간에 화에 젖어 있고, 분노가 올라오고, 짜증이 올라오고, 불평이 올라오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사탄의 상대가 되질 못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너무너무너무 잘 알아요. 우리보다 더... 이 사람을 어디를 건드리면 넘어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탄을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영적 전쟁이 이렇게 힘들고, 사실 우리 대적은 너무 강하고 우리는 약해서 이거 어떻게 전쟁을 치르나? 이렇게 하지만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어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되는 특징이 있는데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전쟁은 이미 승리한 전쟁이다. 이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부활로 사탄의 세력을 다 멸하시고 승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적 전쟁은요, 뭔가 새롭게 이겨서 그 성을 빼앗아야 되는 공성전(攻城戰)이 아니에요. 공격해서 취해야 되는 공성전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께서 이기고 차지해 주신! 점령해 주신 그 성! 이 구원의 성을 우리는 그저 지키기만 하면 되는 이 수성전(守城戰)이에요. 수성전. ★수성전은 자리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하니까 여러분 와 이거 얼마나 대단한 전쟁을 치르려고 우리에게 지금 이런 무장을 하라고 하시나? 이런 겁이 덜컥 나시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시면, 하나님께서 잔뜩 이렇게 무장을 시키신 다음에 우리에게 하시게 하는 일은 딱 하나예요. 네 자리 지켜라! 그냥 거기 서라! 자꾸만 주저앉고 싶고, 자꾸만 도망가고 싶고, 떠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내가 전신 갑주 입혀줄 테니까 내가 힘을 줄 테니까 그냥 그 자리 지키고 서 있어라! 이것이 우리의 이 수성전의 실체인 거예요. ★내 자리 잘 지키는 것. 버티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적 전쟁입니다. 그래서 잘 생각해 보면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으세요. 말씀이...하나님의 레토릭을 보면, 뭔가 굉장히 무서울 것 같고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우리가 잘 생각해 보기도 전에 겁을 잔뜩 먹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고 묵상해 보고 큐티를 해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감당할 만한 것, 감당할 수 있는 것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 우리 눈높이에 맞춰서 우리 수준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딱 맞는 과제를 우리에게 맡기시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자리 그저 잘 지키고, 버티고, 이 자리에서 주저앉지 않고 서 있으면 되는 겁니다. 서서 버티는 자가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잘 입고요. 힘은 없지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잘 입고, 자기 자리 자기 역할 도망가지 마시고 끝까지 잘 지키시고 또 버팁시다.
적용 질문이에요.
Q. 내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할 부분은 어디입니까?
Q. 요즘 나를 유혹하고 공격하는 마귀의 간계는 무엇입니까?
Q. 내가 끝까지 서서 버텨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첫째로 끝까지 서게 하는 거예요. 전신 갑주를 입혀주셔서 우리 자리를 자리에 끝까지 서게 하신다. 두 번째는요,
내가 맞춰야 합니다(14-15절).
내가 맞춰야 되는 거예요. 14절 15절 같이 읽겠습니다.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군복 입은 군인은요, 우리가 그냥 뭐 바로 알아볼 수 있어요. 아! 저 사람 군인이구나. 그런데 얼굴만 보고서, 머리 모양만 보고서 군인이라는 걸 짐작하기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어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 차를 타고 동두천 지역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 지역에 헌병초소가 많이 있었어요. 대부분은 그냥 무사통과에요. 그런데 이제 헌병이 저희 차를 딱 세우는 겁니다. 그러더니만 제가 앉아 있는 자리에 와서는 창문 좀 내려보라는 거예요. 창문을 내렸어요. 그랬더니 저에게 그 헌병이 휴가증 좀 보여달라는 거예요. 저는 휴가증이란 말을 처음 들어봐 가지고 당황해서 막 긴장되고 당황해 있으니까, 할아버지께서 옆에서 껄껄껄 웃으시더니 아! 얘 중학교 1학년이에요. 그러시더라고요. 얘, 내 손자예요. 그런데 안 믿어요. 안 믿어요.^^ 아 그래서 제가 지갑에 가지고 있던 학생증 꺼내서 보여주고서야 풀려났습니다. 참 이게 말이죠. 군복보다 더 군인 같아 보이게 하는 열세 살짜리 소년의 얼굴이 바로 저의 얼굴이었다 이거에요.^^
진리의 허리 띠
로마 사람들은요, 이렇게 얼굴이나 갑옷 없이도 군인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어요. 바로 이 벨트 때문입니다. 벨트. 그것이 군인이라는 표시였어요. 군인만 찰 수 있는 디자인과 모양으로 벨트를 제작해서 채워놨다 이거죠. 그래서 이 벨트를 빼앗기는 거, 허리띠를 빼앗기는 것은요, 로마 군인에게 굉장한 수치였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이제 로마 군인들이 이제 어디를 가든 벨트를 항상 차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제 벨트를 차서 잠자리에 들 때 이제 벨트를 벗어 놓았다는 거예요. 전신 갑주 중에서 제일 먼저 착용하고, 제일 나중에 푸는 것이 바로 이 허리띠다. 그런데 왜 바울은 이 진리를 허리띠에 비유할까요? 진리의 허리띠. 그것은 성도의 삶에서 모든 일이 진리로 시작해서 진리로 끝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면 어떻게 돼요? 여러분 다 속이고 거짓말하고 왜곡하고 우리에게 나올 게 죄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것을 진리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꼭꼭 묶어야 되는 거예요. 나의 생각도 묶,고 나의 말도 묶고, 나의 행동도 말씀의 그 끈으로 꽉 묶어놔야 말씀의 벨트로 꽉 채워놔야 그나마 나오는 악이 멈춰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의 성령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그랬잖아요. 우리의 삶의 시작과 끝이 이렇게 진리로 딱 포장이 되어 있어야-진리로 딱 묶여 있어야- 성도의 삶을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진리의 허리띠를 띠라는 겁니다. 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는 그 첫 단추인 거예요.
의의 호심경
그런데 이제 로마 갑옷의 본체는 벨트가 이제 상징이기도 하지만, 로마 갑옷의 그 본체는 뭐니 뭐니 해도 이 호심경이었습니다. 여러분 영화에서 한 번씩 다 보셨을 거예요. 반짝반짝하는 금속 조각들을 쫙 이어 붙여서 이 상체 전체를 보호하게 하는 그 금속 갑옷.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르시죠? 바울은 이 의(義, justice[저스티스])를 호심경에 지금 비유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본적인 옳고 그름의 노예잖아요. 태어날 때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린 그냥 저절로 옳고 그름이 판단이 되고, 옳고 그름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마다 주제가가 나는 옳다는 것이잖아요. 겉으로 뭐라고 꾸밀 순 있어도 속 깊은 곳에서는 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가 그냥 꽉 차 있단 말이죠. 그러다가 그러니까 서로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 서로 갈등하고 싸우면서 더 큰 악을 저지르는 것을 개인 가운데서도 보고, 우리 사회에서도 보고, 나라끼리도 이제 본단 말이죠. 이것을 막는 길이 뭘까? 이것은 인간이 정의를 갈고닦고~ 정의가 무엇이냐 막 유명한 학자의 강의를 들어서 정의라는 개념을 잘~~~ 여기에서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건 다 인간적인 의예요. 다 거기서 거기예요. 2천 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이나 요새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이나 차이가 없는 거란 말이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간의 의로는 우리의 이러한 인본적인 옳고 그름의 악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뭐예요?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는데 그 의는 다른 것이 아니라 십자가잖아요. 그리스도의 의(義)는 십자가인 거예요.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내가 당신의 짐을 대신 지겠다. 주님께서 우리의 십자가를 자기 십자가로 지신 거. 그것이 그리스도의 의(義)아니겠습니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늘 내가 옳고, 내가 맞고, 내가 존중받아야 되고, 내가 대접받아야 된다는 게 우리의 의인데, 그렇지 않으면 억울해서 못 사는데... 그것을 그리스도의 의의 이 호심경으로 덮는다는 것은 이제 그 생각을 억누르면서 이런 고백을 하는 거예요.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주님이 저보다 옳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억울해할 게 없고, 제가 원망할 것이 없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나의 남편, 나의 아내, 나의 자식, 나의 부모,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그를 인정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나를 의로 덮어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그가 나보다 더 옳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의로 내 의만 주장하는 이 나의 몸통을 덮는 이 호심경이 되는 것이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발
이어서 로마군의 샌들, 신발. 로마군이 신는 샌들이 있어요. 이것도 영화 장면 여러분 생각해 보시면 기억하실 거예요. 이거는 뭐 지금 보기에는 무슨 가죽끈으로 이렇게 만들어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로서는요, 최고의 그 기능성 신발이었단 말이죠. 발과 발목을 잘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밑창에 쇠구슬 같은 것을 박아서 어느 지형을 가든지 그 지형을 뚫고서 전진할 수 있게 하는 아주 기능성 신발이었습니다. 심지어 위급할 때는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었어요. 이런 샌들에 해당하는 게 바로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 말이 복잡하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 이거 너무 말이 복잡해서 이게 무슨 뜻인가 싶으실 텐데 들어보시면 이해될지 모르겠어요. 평안의 복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루신 그 구원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다가 평안을 찾은 거예요. 그렇죠? 평안 구원의 결과가 평안! 평안을 준 구원이에요. 그런데 이 평안을, 우리가 구원받아서 평안을 얻었으니까 이제 어떻게 됩니까? 아! 내가 이 구원에 합당하게 살아야 되겠다. 이 평안을 누리면서 살아야 되겠다.라는 그 새로운 의지가, 그 마음이 예수 믿는 순간에 우리한테 생긴다는 말이죠. 여러분 다 생기시죠? 생기셨죠? 다만 우리가 그것을 늘 충만하지 못해서 연약하다고 생각하고, 믿음이 없는 것 같고, 시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임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하시기 때문에 그 실체는 다 우리 안에 사실 있는 거예요. 새로운 의지, 새로운 마음이 사실은 다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이제 이것을 나 혼자만 누려서는 안 되겠고, 내 가족에게 내 이웃에게 이 평안을 좀 나눠 줘야 되겠다.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좀 나눠 줘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또 생긴단 말이에요. 우리가 그대로 다 하지는 못할 뿐이지 우리 원함은 다 있단 말이죠. 이렇게 평안의 복음을 통해서 우리 안에 준비된, 우리 안에 새롭게 생긴 이 새로운 의지가 바로 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하신 것!! 이에요. 복음에 따라서 새롭게 생긴 우리의 마음, 거룩한 마음. 그러니까 이제 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거 좋아했고~ 거기서 평안을 찾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제일 편안하다고 느끼면서 이기적으로 살던 삶이었는데 이제 평안의 복음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자 하니까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이제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 내가 가는 것이구나!! 이번 여러분들께서 T.T.를 가시면서 그 경험들을 굉장히 많이 하셨을 거예요. 가기 전에는 사실은 얼마나 귀찮으세요? 준비하시면서 여러 가지로 말들이 많이 나왔다고 그러는데 다 그런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막상 그 순종하면서 힘들지만 그래도 순종하면서, 내 안에 있는 준비된 마음을 그래도 붙잡고서 성령의 부르심을 따라서 가서 보면 어떻습니까? 은혜를 받잖아요. 그 진짜 진정한 평안을 여러분들 다 경험하시지 않습니까? 바로 이것이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의 신을 신는 거예요. ★주님이 보내시는 그 자리, 내가 이제 기쁨으로 가는 겁니다. 거기에서 이제 평안을 찾는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이 사람의 전신 갑주, 로마군의 전신 갑주와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이렇게 지금 이제 바울이 비유를 사용할 정도로 이런 유사점이 있지만 굉장히 중요한 차이가 있어요. 로마군의 갑옷은 군인 몸에 맞춰야 되는 겁니다. 사이즈가 안 맞으면 제대로 갑옷 역할을, 기능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그 반대입니다. ★우리 몸에 하나님의 전신 갑주의 사이즈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우리 몸을, 우리 삶을 맞춰야 되는 거예요. 내가 기준이 되면, 진리는 진리가 아니겠죠. 내가 기준이 되면, 의도 의가 아닌 거예요. 내가 기준이 되면, 평안도 평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내 생각을 맞출 때, 나도 진리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요. 하나님의 의에 나의 판단을 맞출 때, 나도 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안에-그 구원이 주는 평안에-내 삶의 목적을 맞춰야만 나도 진정한 평안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이게 사실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입맛 하나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설교하면서 된장국에 뭐 멸칫국물을 안 넣었다는 얘기를 듣고서 제가 그 목사님을 교회에서 보고서 배부른 줄 알라고 된장국 끓여주는 게 어딘데 멸치 타령하고 있냐고 철 좀 들라고 막 이제 뭐라고 그랬는데^^ 그런데 여러분 그 입맛 하나 못 바꾸는 게 우리의 한계란 말이죠. 그러니 평생 쌓아온 이 고집 꺾는 거... 고집 꺾는 거 이거 사실 가능하겠어요? 고집 하나 꺾는 거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 고정관념들을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맞추는 훈련을 매일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 뭐예요? 바로 큐티인 거예요. 큐티!!! 말씀 앞에서 내 고집! 이게 고집인지도 몰랐는데 말이 말씀의 빛을 비춰주실 때 아, 이게 내 고집이었구나! 우리가 깨닫잖아요? 그걸 발견하고, 그걸 회개하고, 그것을 끊어내는 적용을 하는 이 큐티야말로 나 자신을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맞추는 그 최고의 훈련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매일 아침마다 큐티를 통해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우리의 삶을 맞춰서 우리 몸을 맞춰서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그 마귀의 모든 공격을 날마다 막아내시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Q. 가정에서 내 고집을 꺾고 주님의 진리에 맞춰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Q. 학교나 직장에서 주님의 의에 맞춰야 할 나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Q. 주님만 따르겠다고 결단했지만, 아직 시작하지 못한-내딛지 못한- 발걸음은 무엇입니까?
한 성도님이 힘들 때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욕이었대요. 욕. 그래서 이제 아들이 유년부에 가서 나눔을 하는데 거기서 이제 이렇게 자기는 나눔을 했는데 이제 고발이 된 거죠. 자기가 집에서 제일 엄마한테 제일 많이 듣는 말은 개의 새끼다. 제가 의는 알아서 빼세요. 제가 의까지 빼고 여기서 말씀드리기가 좀 그러니까. 개의 새끼라는 거죠. 엄마가 이것을 이 얘기를 전해 듣고서는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창피하고 민망하고 아주 그냥 살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 나눔을 하셨는데 그랬더니 이 목자님이 아주 명 처방을 내리셨어요. 집사님, 거기서 기억을 니은으로 좀 바꿔보세요. ^^ 어려우신가요? 개의 새끼를 내 새끼, 개의 새끼가 내 새끼, 개의 새끼를 내 새끼, 기역 니은 하나 바꿨을 뿐인데 내 새끼가 되잖아요?
저도 예전에는 고난이라는 것은 제 인생에 없어야 되는 것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고난 안 당하게 해주세요. 문제 안 생기게 해주세요.만 기도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우리들 교회에 와서 양육을 받으면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돼야 되더라고요. 안 당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안 당할 수는 없으니까 이제는 기도가 바뀌어서 안을 잘로 바꿨더니 마음에 평안히 오더라고요. 잘 당하게 해주세요. 고난 잘 당하게 해 주세요.. 욕 안 먹게 해 주세요.가 제 주제가였거든요. 욕 안 먹는 거, 욕 안 먹는 거. 그런데 이제 욕 잘 먹게 해 주세요. 이렇게 바뀐 거예요. 이게 기준이 바뀐 것이죠. 여러분 ★이렇게 기준이 바뀌는 하나님의 전신 각주에 맞추는 적용을 우리가 하나씩 하나씩 할 때 진정한 평안이 올 줄 믿습니다.
자, 하나님의 전신 갑주 첫 번째는 끝까지 서게 하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전신 갑주에 내가 맞춰야 되는 거예요. 내가 맞춰야 되는 거. 세 번째는
내가 가져야 됩니다(16-17절).
내가 가져야 돼요. 16절, 17절 같이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전쟁터에 나간 군인은 허리띠, 그리고 이 호심경, 그다음에 신(샌들)을 절대로 벗을 수 없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있으니까. 그러나 방패와 검과 그다음에 이 투구는 잠시 벗을 수가 있는 거예요. 내려놓을 수가 있는 거예요. 계속 들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믿음의 방패
믿음은 그야말로 우리의 방패와 같습니다. 성도의 모든 것을 지켜줘요. 사탄이 우리에게 쏘아대는 불화살. 정말 다 헤아릴 수도 없어요. 의심, 불안, 불신, 두려움, 미움, 분노, 우울, 낙심, 절망, 쾌락, 중독, 집착, 폭력... 뭐 제가 쓰다가 더 이상 못 쓰겠더라고요. 셀 수도 없는 불화살들을 눈에 보이는 사람을 통해서, 또 사건을 통해서, 때로는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우리의 감정을 통해서, 또 때로는 정말 영적인 우리가 알 수 없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영적인 작용을 통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불화살로 공격을 가합니다.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냐면 이 한 발만 맞아도 우리 삶이 그냥 흔들릴 지경이에요.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서 일주일을 살지 못하고 누워 있을 때가 우리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약한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소멸해서 우리의 삶을 태우지 못하도록 우리가 방어해야 하는데 그것이 뭐예요? 바로 믿음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를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를 보호하시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를 인도해 가신다. 어디까지? 천국까지!! 이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이 사탄이 쏘아대는 그 불화살들을 다 소멸해서 나를 태우지 않게, 따끔할 수는 있지만 아 뜨거워!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나를 태우지 못하도록 소멸할 수가 있는 거예요. 이 믿음의 방패를 우리 손에 쥐여주신 줄 믿습니다.
구원의 투구
다음으로 구원의 투구라고 했는데요. 이게 참 의미심장한 것 같아요. 우리 머릿속 생각, 이 뇌를 지키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는 거예요. 뇌를 지키는 것은 다름 아닌 구원이라는 겁니다. ★늘 구원을 생각해야 되고, 구원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봐야 되고, 모든 일을 이 구속사적으로 분별을 하면서 해석을 하고 적용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입니다. 구원을 생각할 때, 세상의 헛된 생각들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구원을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가 받은 구원, 또 우리가 이루어가야 될 구원을 우리가 하루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 머릿속에는 헛된 생각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우리가 너무도 많이 경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생각해야 되는 것이고, 구원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되는 것이고.... Think를 해야 되는 것이죠. 이게 안 되니까 우리가 자꾸 딴생각하고, 엉덩이 들썩거리고, 떠나려고 하고, 주저앉으려고 하고 이러는 거예요.
성령의 검
마지막으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는데요. 전신 갑주 중에 유일한 공격 무기죠. 유일한 공격 무기.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검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에게 반격할 수 있는 그 무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탄에게 시험 받으시면서 사탄을 무엇으로 물리치셨어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믿음의 방패와 이 말씀의 검과 이 구원의 투구를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가지라 그래요. 가지라!!! 방패를 들어야 되고, 구원의 투구와 이 말씀의 검- 성령의 검-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손으로 잡아야 되는 거예요. 이것은 내 거 아닌 것을 빼앗아서 갖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받는 거예요.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받는 거예요. 주시는 것을 받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이나, 구원이나, 말씀이나 중요한 공통점이 무엇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인 거예요. 믿음도 선물이고, 구원도 선물이고, 말씀도 선물인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이제 그것을 갖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들을 내가 잘 받는 겁니다. 받는 거예요. 내가 받아서 선물로 누리는 것이 갖는다는 뜻이에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완성하는 그 과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지라는 명령은요. 우리가 명령을 할 때 훌륭한 학생이 되세요! 훌륭한 학생이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원칙이에요. 그렇죠? 언젠가 이루어도 상관이 없어요. 네가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6년을 사는데 훌륭한 학생이 돼!! 그동안에만 훌륭한 학생이 돼야지. 어쨌든 졸업할 때는 그냥 훌륭한 학생으로 졸업해! 이렇게 얘기하는 명령이 가능해요. 원칙을 얘기하는 거에요. 지당하신 말씀을 하는 거. 그러나 지금 이 동사는요, 헬라어에는 명령에도 이 시제가 있어요. 부정 과거 시제인데 이 시제를 쓰면 무슨 의미가 붙느냐? 그런 일반적인 지당하신 원칙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믿음의 방패를 가져! 그거 가져야 되는 거니까 언젠가 가져! 말씀의 칼을 가져! 근데 언젠가 가져도 이게 네가 살다가 언젠가 가져! 이게 아니라 지금 당장, 지금 즉시 네가 지금 내려놓고 있는 것, 당장 돌이켜서 손에 움켜쥐어라!! 방패를 들어 올려라!! 검을 손에 들어라!! 투구를 머리에 써라!! 이 즉각적인 실행을 요구하는 강력한 명령이 바로 이 가지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가 전쟁 중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죠. 알면서도 안 보려고 해요. 그럴 때 있죠. 싸움이 너무 힘들면 잊으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뭐 하십니까? 술 마시잖아요. 잊어버리려고. 이게 우리의 본성이라는 말이죠. 잊으려고 하고, 감추려고 하고, 생각 안 하려고 하고... 실제는 지금 막 불화살이 날아오는 전쟁인데 나 괜찮아~ 나 괜찮아~ 나 나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 사건 없어~ 잘 지내~ 그냥~ 이러는 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있어도 펴지 않고, 큐티인을 사두고도 묵상하지 않고, 섬길 자리가 있는데도 거기에 안 가고 그냥 계속해서 쉬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해요? 아휴, 나중에 하지~, 내일 하지~, 나중에 믿지~, 나중에 순종하지~, 내일부터 하지 뭐~ 이러는 겁니다. 때가 되면 다 할 거야. 때가 되면 알아서 할 거야. 내 때가 있다니까 날 좀 내버려 둬. 이것이 우리의 주제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탄이 가장 노리는 기회가 언제인지 아세요? 바로 우리가 나중에라고 말할 때예요. 제 말이 아니라 유명한 C.S. 루이스의 말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노리는 그 기회는 우리가 나중에라고 생각할 때라는 거예요. 사탄의 관점에서 우리의 그 나중에라는 생각이 지옥으로 가는 우리를 지옥으로 이끄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거예요. 뭐가? 나중에 하지~ 내일부터 하지~ 아휴, 오늘은 피곤한데 생각하지 말자. 내일부터~ 나중에~ 우리의 이러한 모습을 딱 맞춰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게 뭐예요? 지금 즉시!! 지금 즉시 방패를 들고!! 지금 즉시 말씀의 칼을 손에 잡고!! 지금 즉시 투구를 써라!! 지금 당장 가지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방패는 들어야 방패인 거예요. 검도 손에 잡아야 검인 것이고요. 투구도 머리에 써야 투구입니다. 그거 그냥 땅에 내려놓은 채 있으면 그냥 고철 덩어리예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잠시 손에서 놓고 계신 분 계십니까? 지금 즉시 다시 손에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구원의 수성전에서-하나님이 다 이겨놓으셨지만 이제 우리가 지키는, 이 지키는 싸움에서-주님이 이루어 놓으신 이 승리를 우리가 다 누리면 좋겠어요. 최후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Q. 요즘 어떤 불화살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까?
Q. 다시 들어올려야 할 믿음의 방패는 무엇인가요?
Q. 내 삶에서 구원이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까?
Q. 말씀의 검을 손에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갑옷 이야기라서 저도 군대 생활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는 공군사관학교 교수 요원으로 입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우리가 이제 예정된 훈련이 4개월이었는데 저는 당연히 공부를 하게 해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제가 총을 들고 싸워봐야 얼마나 보탬이 되겠어요? 저는 이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관생도들을 잘 가르쳐야 되겠다. 이 넉 달의 시간은 굉장한 시간이니까 나는 공부 열심히 해야지! 그리고서 진짜 입대할 때 이만한 책가방을 따로 챙겨서 거기에 온갖 책을 다 넣어서-중요한 책들을 넣어서-딱 당당하게 입대를 했습니다. 교관님이 저를 딱 보더니 야 너 그거 뭐야? 그러시더라고요. 책인데요. 여기 왜 책을 가져왔어? 아주 저를 진짜 저는 그 표정이 아직도 잊혀 지지가 않아요.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나?라는 그런 표정으로 저를 보시더니 압수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창고에 넉 달 동안 이제 처박혀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 훈련이 시작이 되었는데 제가 몸으로 하는 건 진짜 못하거든요. 뭘 할래도 잘 안 돼요. 몸이 잘 안 움직여요. 제 뜻대로 움직이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비 내리는 어느 날, 그때 이제 전투 무슨 이름도 까먹어 각개 전투 훈련 같은 거 비슷한 걸 하고 있었어요. 비 내리는 날에 그 진흙밭에서 동작을 하나하나 알려주고서 이제 그거를 한 사람씩 나와서 이제 시켜보는 거예요. 저는 너무 하기도 싫고, 또 뭐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나가서 어떻게 그냥 때우면 되겠지라고 해서 이제 제 차례가 돼서 나갔더니 정말 생각이 하나도 안 나는 거예요.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이제 어리둥절 어리버리 막 이러고 있으니까 교관님이 딱 저한테 오더니 이러시는 겁니다. 야! 너 바보야? 제가 그때 나이가 스물여섯 살이었거든요. 근데 이십육 년 동안 바보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어봤어요. 아 누가 감히 저한테 바보라고 그러겠어요?^^ 그래 가지고 제가 어떻게 했겠어요? 그럼 죄송합니다. 이랬으면 될 텐데 글쎄 그 교관을 제가 째려본 거 아니에요?^^ 딱 쳐다보며.. (속으로) 네가 감히 나한테 바보라고?! 그러면서 딱 째려 봤더니 이제 난리가 난 거죠. 모든 교관들이 다 저를 둘러싸서는 그때부터 이제 기압이 시작돼서 그 진흙밭에서 아주 그냥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앞으로 굴러~ 뒤로~~~ 아주 그냥 뭐 진짜 죽다 살아났습니다. 저는 이렇게 교관들 사이에 완전 유명 인사가 된 거예요. 완전히 제가 인생에 그런 적이 없는데 완전히 이제 찍혔습니다. 요주의 인물이 되어서 제가 뭐 조금만 틀려도 다른 사람보다 그냥 두 배 세 배를 저를 그냥 혼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 넉 달이 정말 또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나! 빨리 나가야 되겠다! 나갈 날만 기다리는 겁니다. 그때부터 이제 날짜를 세기 시작하는 거예요. 겨우겨우 버티고 이제 마지막! 훈련 마지막! 넉 달이 다 지나서 마지막 주가 되었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이제 나갈 생각하니까 이제 해방이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지났습니다. 마지막 날이 되었어요. 와! 이제 나가는구나!
근데 그 마지막 날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세요? 연평해전이 터진 거예요. 연평해전이. 전군에 비상이 걸리고. 우리의 훈련 종료도 무기한 연기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힌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래서 결국 이제 2주를 거기 더 있었거든요, 제가.
근데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요. 하나님께서 진짜 저 사람 좀 만들어 보시려고 그 넉 달이라는 시간을 저한테 이제 예비해 주신 건데 제가 그때 진짜 이 말씀도 없었고.... 아! 그때도 여전히 여러분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그때도 저는 목사 후보생이었습니다. 저의 꿈은 목사였어요. 목사 되는 게 저희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정말 그렇게 말씀을.... 그때도 이미 이 에베소서를 헬라어로 읽을 줄 알았어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도 없고, 공동체도 없다 보니까 깨닫지를 못한 거죠. 머리로는 다 이해를 했는데 그거를 제가 입어야 된다는 거를 몰랐던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저의 이 갑옷. 제가 만들어낸 갑옷만 겹겹이 입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이제 이 넉 달의 시간을 사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최고의 양육의 시간이었는데 제가 그것을 하나도 살리지 못하고, 그냥 다 허비한 거예요.
근데 진짜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2주를 유예해 주신 거잖아요. 야, 너 그래 넉 달로 안 됐는데 2주 더 줄 테니까 한번 이때라도 한번 좀 깨달아 봐라! 이 시간이거든요. 근데 그때는 이런 게 보이겠어요. 제가 너무 그 2주가 속이 상한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그래서 2주도 겨우겨우 이 원망과 불평과 억울함에 사로잡혀서 저의 두꺼운 갑옷을 진짜 가재 같이... 가재는 매끄럽기라도 하죠. 제가 입었던 갑옷은 그렇게 매끄러운 아름다운 갑옷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주 그냥 무슨 킹크랩이라고 하나요? 막 빼쭉빼쭉한 거 있는 애 있죠? 그런 거 입고 그냥 사람들 다 찌르고 다니고.. 목사 후보생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2주를 겨우겨우 버티고 이제 마지막 날이 되었어요. 마지막 날이 되어서 짐을 이제 정리하는데 새벽에 이제 정리를 하는데, 거기에 넉 달 두 주 동안의 그 훈련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군화가-다 낡아 빠진 군화가- 있더라고요. 그걸 딱 보는 순간 그게 꼭 저 같은 거예요. 여기서 있었던 저. 그전에는 이 빛나는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다 엉망이 된... 너무 꼴 보기가 싫은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 새벽에 그것을 저 운동장 끝에 있는 쓰레기장으로 가져가서 그것을 그냥 확 집어던졌습니다. 그때 정말 해방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너무 속이 시원했어요. 그러더니 신나서 아! 이제 끝이다. 정말 이제 나가는구나! 짐을 잘 싸고, 목욕을 싹 하고, 옷을 딱 입고 있는데 방송이 나옵니다. 신성한 군화를 쓰레기통에 버린 후보생은 사관실 앞으로!^^ 근데 여러분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이 순간 났는지 아세요? 이게 사실 이 생각을 우리가 진리의 띠로 묶어야 된다는 게 그때 순간.. 헬라어로 에베소서 읽는 사람이에요. 목사 후보생이에요. 근데 그 순간에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모르겠지? 그냥 가만히 있어야지! 가만히 있어야지! 근데 제가 아이큐가 조금 높잖아요. 근데 바로 생각이 나더라고요. 아.. 이름 안 지웠다. ^^ 그냥 빼박이 된 거예요. 빼박이 돼서 야 이거 그냥 가만히 있다가 더 망신당할 것 같아 같아서 바로 튀어갔습니다. 바로 튀어갔더니 거기에 누가 기다리고 있느냐? 저의 책가방을 빼앗았던 저를 찍었던 그 교관님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신 거예요. 그러더니 말없이 그 군화를 저에게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마지막 날이니까 그냥 이렇게 넘어가나 보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교관님 하시는 말씀 입에 물어! 그래서 저는 그 지저분한 군화-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온 군화-를 입에 물고서 아주 그냥 그날 마지막 훈련을 기합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책가방 들고 들어갔다가 군화 물고 나온 목사 후보생 여러분 이것이 제 실체예요. 제 생각이 진리였고, 제 판단이 의였고, 또 제가 편한 게 또 제 마음대로 하는 게 평안이었습니다. 믿음의 방패가 아니라 제 자존심의 방패를 들고 있었고요. 말씀의 검이 아니라 제 지식의 검을 잡고 있었어요. 구원의 투구가 아니라 제 명예, 제 칭찬의 투구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이 최고의 양육 시간을 살리지 못하고 저의 갑옷을 입고 저 때문에 수고하시는 그 교관님들 무시하고, 노려보고, 째려보고, 욕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때 제게 말씀이 있고 이 공동체가 있었더라면, 제가 정말 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제 갑옷만 입고 있으니 하나도 깨닫지 못한 거예요. 그리고 그 똑같은 모습- 똑같은 갑옷- 입고 결혼 생활을 시작한 겁니다. 그러니 이 결혼이 어떻게 되었겠어요? 핑크빛을 꿈꿨는데 핏빛이 -그냥 며칠이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서 핏빛이- 되어 버린 것이죠. 진짜 결혼이라는 진짜 인생의 훈련소를 똑같은 모습으로 들어가니까 또 똑같이 이제 군화 무는 것보다 더한 일들을 이제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내가 옳다만 외치다가.. 자기 고집만 부리다가 이제 이혼과 자살 생각을 하기까지 이르게 된 거예요.
이런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같이 말씀을 나누고, 또 큐티인을 만들 수 있게 되고, 이렇게 조금이나마 쓰임을 받게 된 것은 오직 오직 우리들교회를 통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정말로 이 더 홀 크라이스트가 되어서, 한 몸이 되어서, 그리스도가 되어서 한 교회가 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감사하고요. 저한테는 진짜 영광입니다. 여러분들의 고난과 그 회개와 적용에 저는 이렇게 이끌려 가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정말 여러분들 옷자락 붙잡고, 여러분들은 주님 옷자락 붙잡으시고, 저는 여러분들 옷자락 붙잡고 이렇게 끌려가서 그래도 같이 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이번 여름은 제게는 더 덥고 더 긴 여름이었거든요.^^ 근데 저와 함께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잘 나와 주셔서 감사하고요. 여러분께 정말 깊이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꾸벅)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끝까지 서게 하는 것이고요. 그러기 위해서 내가 맞춰야 되는 것이고, 또 내가 가져야 되는 거예요. 즉시!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갑옷을 다 입고 있어요. 어제도 제가 다시 생각하니까 사실 이 군생활 때 입었던 갑옷이 제 안에 여전히 그대로 있더라고요. 정말 너무 그게 너무 슬픈 것 같아요. 그게 여전히 안 없어지고 있더라고요. 그 마음, 그 태도, 그 생각이 저의 뼈에 그냥 사무쳐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너무 슬퍼지더라고요. 이런 갑옷으로 우리가 사탄의 공격을 막을 수 없는데 말이죠. 우리 마음대로 진짜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우리에게 입혀주시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18절에 기도가 바로 나오잖아요. 오늘 우리가 설교에는 다루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정말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이 전신 갑주 잘 입고 인생의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군사로! 십자가 군병으로 살아서 진정한 승리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하십니다.
♬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기 들고 앞서 나가 담대히 싸우라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기 들고 앞서 나가 담대히 싸우라
주께서 승전하고 영광을 얻도록
그 군대 거느리사 이기게 하시네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그 나팔 소리 듣고 곧 나가 싸우라
수 없는 원수 앞에 주 따라갈 때에
주 예수 힘을 주사 강하게 하시네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네 힘이 부족하니 주 권능 믿으라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이 날에 접전하고 곧 개가 부르라
복음의 갑주 입고 늘 기도하면서
너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라
승전한 군사들은 영생을 얻으며
영광의 주와 함께 왕 노릇 하리라
주께서 승전하고 영광을 얻도록
그 군대 거느리사 이기게 하시네 ♬
기도제목 여러분, 오늘도 이 마귀의 간계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하죠. 무서운 불화살들이 끊임없이 날아옵니다. 하지만 또 우리는 너무너무 연약해요. 우리 전쟁은 이미 이긴 전쟁인데 우리 자리 하나 지키는 것도 너무 힘든 우리. 주님, 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이 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혀달라고. 그래서 이 자리에서 끝까지 잘 서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나를 맞춰야 하는 것인데 고집 하나 버리지 못하는 내 모습에 또한 우리가 절망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 십자가의 군병으로 불러주시니 성령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그래서 모든 싸움과 전쟁에서 진정한 승리를 얻게 해 주시기를 함께 기도합시다.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주여 한 번 부르시고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통해서 우리들 공동체를 만나고, 또 그 은혜로 이렇게 사명자로 살아가게 해 주셨습니다. 서로 내가 옳다만 외치면서 고성이 오가고, 또 물건이 날아다니는 그런 지옥이었는데 이제는 매일, 매주 주시는 말씀이 있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저희에게 있습니다. 이제는 저의 이 두껍고 무거운 갑옷을 좀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이 평안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할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저의 생각과 이 마음과 말과 행동을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맞출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정말 고집이 정말 너무도 꺾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좌절이 되고 절망이 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지만은 저의 깊은 갑옷이 깨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자격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주님께 너무 죄송합니다. 주님, 좀 깨뜨려 주시옵소서. 주님, 좀 깨뜨려 주시옵소서. 주님, 이 고집이 좀 꺾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를 이겨주시옵소서. 주님이 저를 이겨주시옵소서. 꺾이지 않는 저를 성령께서 꺾으시고, 이겨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아직도 성령의 전신 갑주가 아니라 자기의 생각, 자기의 상처, 자기의 경험의 갑옷을 입고 힘겹게 살아가는 저희를 주님,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아버지, 저희가 힘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혈과 육을 상대하느라 지쳐 있는 저희에게 믿음의 눈을 열어주셔서 진짜 대적을 보게 하시며,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번 여름 사역을 통해서 주께로 인도된 많은 영혼들에게 구속사의 복음이 뿌리내리게 하시고, 준비 중인 모든 사역도 성령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저희 목사님 지켜주시고, 강에서 바다로 복음 전하러 다니시는 그 모든 여정에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목장마다 부서마다 봉사팀마다 큰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 지켜주시고, 모든 악법을 주님 막아주시며, 생명을 지키는 법들이 제정되게 하시고, 믿음의 지도자가 세워지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시간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혀주신 은혜에 감사하여서 신앙 고백으로 드리는 저희의 헌금을 기쁘게 받아주시고,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줄 것만 있도록 저희의 건강과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공부와 프로젝트 아이디어에 모든 또 관계 위에 섬김 위에 기름을 부어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적용질문 정리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1. 끝까지 서게 합니다(10-13절).
Q. 내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할 부분은 어디입니까?
Q. 요즘 나를 유혹하고 공격하는 마귀의 간계는 무엇입니까?
Q. 내가 끝까지 서서 버텨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2. 내가 맞춰야 합니다(14-15절).
Q. 가정에서 내 고집을 꺾고 주님의 진리에 맞춰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Q. 학교나 직장에서 주님의 의에 맞춰야 할 나의 선택은 무엇입니까?
Q. 주님만 따르겠다고 결단했지만, 아직 시작하지 못한-내딛지 못한- 발걸음은 무엇입니까?
3. 내가 가져야 됩니다(16-17절).
Q. 요즘 어떤 불화살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까?
Q. 다시 들어올려야 할 믿음의 방패는 무엇인가요?
Q. 내 삶에서 구원이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까?
Q. 말씀의 검을 손에 가지고 있습니까?
**** 기도제목
A.
1. 성령의 전신 갑주 +1(간증의 바주카포)를 주셨다는 것을 알고 양교수료하고 별이 되도록
B.
1. 감정의 불화살을 막아내고 말씀의 검 큐티 하기
C.
1. 성령의 전신 갑주로 서고,맞추고, 가지고 보내신 곳에서 하루만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