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5년 8월 31일
본문: 에베소서 6장 10~17절
제목: 하나님의 전신갑주
설교자: 이성훈 목사님
심리학자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의사가운, 한 그룹은 평상복 입었다. 의사 가운 입은 그룹이 현저히 집중력이 높아 오류를 범한 것이 50퍼센트 낮았다고 한다. 이것이 착용자 인식 효과라 한다. 바울은 우리에게 옷을 입으라 많이 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한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의 가택 감금 상태에서 쓴 것이다. 군인들이 교대근무하며 자신을 24시간 지키고 있다. 그냥 갇혀있는 자로 살았다면 전신갑주를 보기만해도 짜증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주 안에 갇힌 자라고 했는데, 바울의 묵상의 결과가 담겨있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생각해보자.
1. 끝까지 서게 합니다.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끝으로 라고 하니 결론인 것 같다. 맞아요. 결론 맞다. 그런데 안 그런 경우도 있다. 옛날 교장 선생님이 에~끝으로~라고 했는데 에~ 마지막으로~ 끝이 안 나는 훈화 말씀이 기억난다. 바울의 끝으로를 헬라어로 보면 더 강한 의미로 끝까지라는 뜻에 가깝다. 말씀을 다 들었으니 지금부터 인생의 끝까지 강건해져라 주 안에서 강건해지라고 응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잘 보세요. 강건해져라는 수동태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 잘 들어도 우리 몸과 마음은 머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말씀은 선물로 주신 것이다. 이 선물 받고 어떻게 합당하게 살아가야하는지 우리는 머리로 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거 알고, 아내가 남편 복종해야하는 거 안다. 오히려 머리로만 알아서 더 위축되고 부담될 때 많다. 세상에 힘 내야하는 거 몰라서 안 내는 사람 없다. 하지만 힘이 안 나는 것이다. 힘이 나지 않는 우리의 존재, 삶인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더 어렵다. 이게 우리 한계다. 우리는 힘이 없으니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 우리 힘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강건해져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사실 하나님 앞에 자신과 우리를 위해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바울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권면하고 당부한다.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우리는 힘이 없어서 아무 것도 못해라고 하지만, 바울은 힘이 없으니 하나님의 전신갑주 입으라 한다. 아무리 힘이 없어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는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 힘이 없지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이다.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슬픈 것이 있다. 성도의 인생은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사람과 싸우는 혈과 육을 상대하는 전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전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남편, 아내, 자식, 회사 동료가 미워 죽겠는데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배후의 영적, 마귀, 사탄을 봐야한다. 그래서 교회는 유식한 말로 에클레시아 밀리탕스, 영적으로 싸우는 곳이라 한다. 우리 한 사람이 고민과 갈등이 없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가 전투가 없다면 영생이 없는 인생이다. 내가 영적으로 큐티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떨어진다. 마귀의 간계는 치밀하다. 드러나는 악보다 너무 평범해져서 저지르는 악이다. 의도적으로 악 저지르는 것보다 부지 중, 습관화, 제도화, 관습과, 법제화 된 악도 생기기 시작한다. 세상은 정의를 외치나 사실은 그 이면을 보면 불의가 더 가득하다. 게다가 마귀는 지금도 쉬지 않는다. 우리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작은 틈만 생기면 그 틈으로 자기의 무기를 찔러 넣는다. 우리 상처를 놓치지 않고 자기 화살로 훅 찌른다. 매일 아침, 오늘 아침에 시달리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기도하며 일어나지 않으세요? 그러면서 큐티한다. 그러나 점심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화에 젖어있고 불평이 올라오는 저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사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사탄은 우리 약점을 너무 잘안다. 어디를 건들면 넘어지는지 너무 잘 안다. 그 영적 전쟁이 너무 힘들고 어떻게 전쟁 치르나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 전쟁은 이미 주님이 승리한 전쟁이다. 우리는 공성전이 아니다. 이미 주님이 이기고 차지하고 구원해주신 성을 그저 지키기만하면 되는 수성전이다. 하나님이 생각해보면 다 이기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단 하나다. 자꾸만 떠나고 도망가고 싶지만 그냥 그 자리 지키고 서 있어라. 그게 우리의 수성전의 실체이다. 이게 우리의 영적 전쟁이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으신다. 말씀이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가만히 묵상해보면 우리 수준 다 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딱 맞는 것을 주신다. 서서 버티는 자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잘 입고 자기 자리, 역할 도망가지 말고 버팁시다.
[적용질문] 내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할 부분은 어디입니까? 요즘 나를 유혹하고 공격하는 마귀의 간계는 무엇입니까? 내가 끝까지 서서 버텨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2. 내가 맞춰야 합니다.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의복 입은 군인은 우리가 다 알 수 있다. 머리만 보고 군인이라고 알기는 힘들다. 물론 예외는 있다. 어릴 때 할아버지와 동두천 지나가는데, 저보고 휴가증을 보여달라 했다. 긴장되고 할아버지가 얘 네 손자에요. 중1이에요. 그래도 안 믿어서 학생증 보여주니 믿었다. 13살짜리 얼굴이 저의 얼굴이다. 로마 사람은 얼굴이나 갑옷 없이도 벨트로 보여줄 수 있었다. 군인만 찰 수 있는 모양으로 제작해서 찼다. 그래서 벨트를 빼앗기는 것은 굉장한 수치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허리띠를 찼다. 전신 갑주 중에서 가장 먼저 차고 가장 나중에 푸는 것이 허리띠였다. 왜 바울은 진리를 허리띠에 비유했을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처음과 끝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꽁꽁 묶어놔야 그나마 나오는 악이 멈춰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성령이 모든 진리로 인도하신다 하신다. 우리의 삶이 진리로 묶여 있어야 진리의 허리띠를 띠우라는 것이다. 첫 단추다. 로마 갑옷의 상징은 호심경이다. 반짝반짝한 것을 붙여서 금속으로 된 갑옷이다. 바울은 의를 호심경에 비유합니다. 우리는 인공적인 옳고 그름에 판단된다. 그 옳고 그름의 노예가 되어 산다. 저마다 주제가가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의 노예에서 멈출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의로 나를 바꿀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바꿀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십자가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내가 당신의 짐을 대신 지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십자가를 대신 지셨다. 우리는 내가 옳고 존중받고 대접 받아야 하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의로 호심경으로 두른다는 것은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라고 해야한다. 나의 자식 부모,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그를 인정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의로 덮어주셔서 그리스도의 의로 내 몸통을 덮게 되는 것이다. 로마군의 샌들이 있다. 이건 지금 보기엔 가죽 끈으로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대에는 발과 발목을 잘 보호하고 밑창에 쇠구슬이 있어서 어떤 지형이든 통과할 수 있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어렵게 들릴 수 있겠지만 주님의 구원은 주셨다.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평안하게 하시는 마음을 주시는것이다. 평안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으로 주신 것이다. 구원 받아 평안 받았으니 합당하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예수 믿는 순간에 우리 앞에 생긴다. 다만 그걸 우리가 늘 충만하지 못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하셔서 그 실체는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나 혼자만 누려서는 안되겠고 내 가족, 이웃에게 평안을 나눠줘야 겠다하는 마음이 생긴다. 다 행동하지 못할 뿐이지 그 마음이 다 있다. 새로운 의지가 평안의 복음을 준비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 평안의 복음을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가고 싶은 곳으로 갔었는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에 내가 가는 것이다. 이번에 티티 가시면서 가기 전에 얼마나 귀찮은가. 준비하면서 여러 말들이 많이 나오고 다 그런 마음들이 있다. 막상 힘들지만 순종하면서 내 안의 준비된 마음을 보면서 진정한 마음들을 경험한다. 주님 보내시는 그 자리, 거기에서 평안을 찾는 것이다. 여러분 그런데 사람의 전신갑주가 바울의 비유로 사용될 정도로 로마의 갑옷은 군인 몸에 맞춰야 하는 것이다. 사이즈가 안 맞으면 기능이 안된다. 그러나 하나님 전신갑주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맞춰야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사이즈가 딱 하나다. 내가 기준이 되면 의도 의가 아니다. 평안도 평안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나를 맞춰야한다. 구원에 내 삶의 목적을 맞춰야만 나도 진정한 평안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된장국에 멸치국물 따지며 입맛하나 못 바꾸는 게 우리다. 우리는 고집이 많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우리의 말과 정신과 행동을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맞추는 훈련을 매일 해야하는데, 가장 좋은 것이 그게 큐티인 것이다. 그것을 끊어내는 적용을 하는 큐티를 하는 훈련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맞추는 훈련이 최고의 적용임을 믿습니다.
[적용질문] 가정에서 내 고집을 꺾고 주님의 진리에 맞춰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학교나 직장에서 주님의 의에 맞춰야 할 선택은 무엇입니까? 주님만 따르겠다고 결단했지만, 아직 시작하지 못한 발걸음은 무엇입니까?
3. 내가 가져야 합니다.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전쟁터에 나간 군인은 허리띠, 호심경, 샌들 모두 벗을 수 없다. 그러나 방패와 검과 투구는 잠시 놓을 수 있다. 사단이 우리에게 쏘아대는 불화살은 의심, 불안, 우울, 낙심, 절망, 쾌락, 중독, 집착, 폭력 등등 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영적인 것으로 끊임없이 불화살을 당한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냐면 한 발만 받아도 일주일을 우울해서 앓아 눕는다. 이것이 소멸해서 삶을 불 태우지 못하게 해야한다. 그것이 믿음이다. 다음으로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했는데, 우리 머리를 지키는 것은 다름아닌 구원이라는 것이다. 잠시만 정신줄 놓으면 머릿 속에 헛된 걱정과 욕심이 들어온다. 늘 구원을 생각해야는데 바로 우리가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이다. 구원의 투구를 쓰지 않을 때 세상의 헛된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검이 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생각해봐야하고, 이게 안되니 떠나려하고 주저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한다. 전신갑주 중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일한 공격 표현이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말씀을 가지라고 명령한다. 그 의미는 내 것이 아닌 것을 빼앗아서 갖는 게 아닌, 주신 것을 받는 것이다. 믿음, 구원, 말씀 모두 선물이다. 이제 그것을 갖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선물들을 잘 받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지라는 것은 명령할 때 훌륭한 학생 되세요, 되어야만 합니다. 하는 원칙은 가능하다. 헬라어는 동사의 명령에도 시제가 있다. 부정 과거 시제인데 일반적인 지당하신 원칙이 아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져 이게 아니라 지금 당장, 지금 즉시라는 즉각적인 명령이다. 우리는 전쟁 중인 것을 모르고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그게 우리의 본성이다. 잊으려고 감추려고 생각 안하려고, 실제는 불화살이 날아오는 전쟁인데 나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잘 지내 하는 게 우리 모습이다. 성경 있어도 보지 않고, 큐티 안하고, 섬길 자리가 있어도 안 간다. 내일부터 하지 라고 한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할 거야 라고 한다. 날 좀 내버려 둬 라고 한다. 그것이 우리의 주제가다. 사단의 밥이 되는 생각이 나중에라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생각이 아닌 C.S. Lewis(루이스)의 책에 기록된 내용이다. 그는 사단의 입장에서 우리를 지옥으로 이끄는 가장 안전한 길이 나중에 라는 것이다. 우리의 이런 모습을 딱 맞추는 것이 지금 즉시 투구를 쓰라는 것이다. 방패는 들어야 방패고 검도 들어야 검이고 투구도 써야 투구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다 입고 최후의 승리자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적용질문] 요즘 어떤 불화살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까? 다시 들어올려야 할 믿음의 방패는 무엇입니까? 내 삶에서 구원이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까? 말씀의 검을 손에 가지고 있습니까?
모임 인원: 목자1, 부목자2, 목원1
기도제목
A
1. 매일 큐티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맞춰갈 수 있도록
2.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 잘 지킬 수 있도록
3. 회사 잘 알아보고 선하게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4. 목장 식구들 영육간 강건함 주실 수 있도록
B
1. 눈에 보이는 상황에 몰두하지 않고, 그 배후의 악한 세력을 보며 애통해 할 수 있기를
2. 나의 고집을 버리고 말씀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맞추기를
3. 사회 생활을 내가 이겨야할 전쟁이 아닌 이미 이기신 전쟁으로 그 자리를 잘 지킬 수 있기를
4. 가족 영육간 강건
5. 목장 식구들 영육간 강건
6. 관습화, 법제화 된 악법들을 막아주시고 악의 평범성을 경계할 수 있기를
C
1. 시간관리 잘하기
2. 신교제 신결혼
D
1. 믿음의 방패를 들고 모든 일을 구속사적으로 분별해서 생각할 수 있기를
2. 겸손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때까지 잘 기다리고 변화될 수 있기를
3. 붙여주신 직장 잘 견디고 일할 힘 주시기를
4. 목장 식구들 기도제목들 이루어 주시기를
5. 어머니 동생 영육간 강건하기를
E
1. 새벽 감사기도와 묵상으로 하루 시작
2. 취침 전 하루 성찰과 반성 기도하기
3. 자의적 생각과 판단 최대한 알아차리고 주님께 순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