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설교
2025.08.17 주일예배 시편 51:10~17 상한 심령 (이성훈 목사님)
1.새로운 피조물입니다.
10~11절
믿음의 사람 다윗도 마음이 편해지니 갑자기 타락을 하고 맙니다. 밧세바를 빼앗고, 우리야를 죽게 합니다. 그리고 침묵합니다. 그러자 나단 선지자가 찾아 옵니다. 그리고 그 죄를 고발합니다. 다윗이 너무나 강한 시기였기에,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변명하고, 회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나단의 직격탄이 떨어지자 마자 곧장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라는 한마디로 다윗의 죄가 공식화 됩니다.
요즘 같으면 왕좌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기름부은 자리를 지킵니다. 책임을 지고, 죄값을 치르겠다고 결심하며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가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가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분수령 적인 회개를 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회개하면서 깨달은 것 제일 중요한 한가지가 무엇일까요?
자기가 태어날 때 부터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밧세바 사건으로 재수 없어서 걸린게 아니라, 날때 부터 죄인이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 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고백합니다. 창조와 새롭게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입니다. 이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즉 다윗은 자기 안에서 깨끗하고, 정직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더럽고, 추악하고, 꼬여있다고, 그러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지만 그 실체를 볼때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상한 심령입니다.
상한 심령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처받은 영혼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상처가 있다고 그 자체로 상한 심령이 아닙니다. 완전히 부서진 영이라는 뜻입니다.
그릇에 비교를 하면 상처 입은 영혼은 깨져서 금이 잔뜩 간 그릇입니다. 조각난 그릇을 접착제로 겨우 붙인 그릇입니다. 하지만 상한 심령은 조각을 넘어서 완전히 가루로 빻아서 부서진 것입니다. 그릇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절망만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그 가루를 누군가 잘 반죽해서 완전히 새로운 그릇으로 빚고 있는, 다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그릇으로 빚고 있는 제작 과정중에 있는 그릇입니다. 이것이 상한 심령입니다. 이 제작자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절대적인 절망이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빚으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절대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상한 심령입니다. 그렇기에 상한 심령은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한 심령은 하나님께서 비참한 상태에 있는 우리를 다시 부르셔서 새롭게 빚어가시는 상태입니다.
자기 자신의 연약과 상처에 절망하신 분이 계신가요? 그런 힘든 것, 절망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증거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끔직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앉아계신 여러분 안에 이미 성령님이 계신줄 믿습니다. 그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는 비참한 연약함과 싸울 수 있게 도우십니다.
우리는 상처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하기 보다는 성령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내가 조금더 갈등하고, 힘들고, 눌리고, 삶이 죄악과 싸워 전쟁같은 삶이 되더라도 성령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좋겠습니다.성령과 함께 계속 절망하고, 상처가 올 때, 잘 받고 해서 새롭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요즘 내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절망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상처에 머물러 자기 연민에 갇혀있습니까? 상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은 무엇입니까?
2.즐거운 사명자 입니다.
12절
이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중 영원한 것은 구원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즐거움 만이 영원히 이어지는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이를 모두가 누릴 수는 없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도 이 덕분에 즐거워하는 것도 구원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만 누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왜 이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할까요? 다윗은 이미 택자이고 구원을 받았는데, 범죄하니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죄는 아무리 무거운 죄라도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빼앗지 못합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있으면 구원의 즐거움은 빼앗기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회개 할 때,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됩니다.
또 다윗은 나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자신은 이미 넘어진 존재임을 절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를 어떻게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나요?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라고 합니다.
자원하는 심령은 무엇일까? 강요나 계산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하는 것 같지만 그안에는 무서움과 내 유익 때문에 선택을 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전적인 자유로 하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자유처럼 자원해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자유가 아닙니다. 기계적인, 노예적인 선택입니다. 하지만 자원하는 심령은 자유하게 선택하는 심령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왜 다니고, 큐티를 왜 하시나요? 이런저런 이유를 대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더 생각해보면 예수 믿는 다는 것처럼 아무 이유가 없는게 없습니다. 주일에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 이익에 의한 것인가? 강요에 의한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가 안됩니다. 이것이야 말로 자유로운 순종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가지고 계신 심령이고, 자원하는 삼령은 다른 말로 사랑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랑을 지을수도 만들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가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두지 않고 남겨주신 줄 믿습니다.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나요?
13~15절
다윗은 그리하면 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붙들어 주시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적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의 삶입니다. 복음을 전하는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고 결과 입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하셨기에 나는 그 구원을 전파하지 않을 수 없는것입니다.
게다가 다윗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 가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다윗은 담대히 죄인은 죽어야된다가 아니라, 주께 돌아와야 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확신 때문에 우리는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는데, 즐겁게 감당할 수 있는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척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자원하는 심정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상한 심령은 슬픔과 절망이 있지만 그 안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상한 심령은 즐거운 사명자 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즐거움 입니다. 영혼을 섬기는 사명의 현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의 자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서 상한 심령이지만 눌리고, 두렵고, 절망스럽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고 즐거운 사명자로 굳게 서서, 많은 상처받은 영혼들을 돌아오게 하길 소망합니다.
-노예처럼 억지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 이익을 위해 계산해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이 내게 맡기신 구원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자원하여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3.하나님의 제사입니다.
16절
제사는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거짓된 예배 형식적인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무엇일까요?
17절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하나님의 제사입니다. 즉 하나님이 받으실 뿐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제사요 하나님께서 준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드리시는 제사입니다. 그렇기에 제사 중의 제사고 예배중의 예배 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이 예배를 받으려고 하실까요? 완전하신 하나님이 왜 굳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을까?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싶으셔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모르고 주님을 멀리 떠나 죄가운데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떠나면 그 마음이 너무 무너집니다. 에스겔에서는 우리가 우상을 섬겨서 주님을 근심하게 했다. 라고 하는데, 원어로 보면 하나님을 상하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상하시고, 부서지시고, 무너져 내립십니다. 하나님도 상한 심령이 되신 것입니다. 아무 부족함이 없는 저와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이 되셨습니다. 엄청난 사랑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조금만 상해도 발작을 하면서 부셔버릴거라고 이를 갑니다. 복수하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말도 안되는 상함을 받고 받고 또 받으신 끝에 내리신 결론이 우리를 살리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그래서 점처럼 작아지셔서 이땅에 오십니다. 그리고 그 육체가 부셔지십니다. 철저히 무너지십니다. 지금은 성령으로 우리안에 거하시면서 상처 투성이, 연약함 투성이인 우리 인생을 상한 심령으로 새롭게 빚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상한 심령이 되셔서, 우리를 상한 심령으로 빚어 가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것은 멀쩡한 심령이 아닌, 상한 심령입니다. 가루처럼 으스러진 심령입니다.
제사중의 제사인 하나님의 제사는 바로 이렇게 완전히 가루로 으깨진 우리의 상한 심령인 것입니다. 진짜 예배는 이렇게 부서지고 으깨진 상한 심령으로 주님께 도와달라고 붙을어 달라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너진 인생이기에 주님께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붙잡아 주셔야지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마음의 상한 심령때문에 힘드신가요? 이는 여러분은 최고의 산 재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재 창조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완전히 가루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빚어가시는 재 창조 사역에 우리 손을 올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이 상한 심령으로 빚어지고, 가족과 주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게 될 줄 소망합니다.
-예배를 어떤 마음으로 드립니까?
-나는 온전한 심령입니까? 상처 입기만 한 심령입니까? 상한 심령입니까?
2.목장모임 장소 및 참석인원
: 커피빈 삼성역글라스타워뒷점 / 참석인원 총 4명(목자, 부목자, 목원1,목원2)
3.기도제목
A.
1.가족과 목장식구들 영혼 구원을 위해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
2.신교제와 신결혼 허락해주시도록
3.커리어에 기름부어 주시도록
4.온라인새벽기도회 꾸준히 참여할 수 있도록
5.운동 꾸준히 할 수 있도록
6.작업실 출근 성실히 할 수 있도록
B.
1.건강을 지혜롭게 관리할 수 있도록
2.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지혜와 분별력을 주시도록
3.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받은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
C.
1.큐티하며 감사할 것들이 더 생기도록
2.1차 시험날까지 체력과 건강 붙들어주시길
3.흔들리지 않고 오늘 하루에 잘 집중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