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및 적용질문]
2025.08.17. / 상한 심령 / 시편 51편 10-17 / 이성훈 목사님
유명한 목사님이 오셔서 자기 교회 부목사들이 여러명 있는데 설교를 잘한다고 자랑하는 목사가 있었대요. 보다못해 주일설교를 시켰답니다. 3주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하더니 4주 때에 무릎을 꿇고 더이상은 못하겠습니다. 이랬다는 거다. 설교 잘한다고 까불지 말라고 특강해 주셨다. 저는 사실은 뭐 여러분께 해드릴 이야기는 참 많습니다.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한 주를 힘들게 보냈다. 담까지 걸렸다. 왜냐. 상처가 거의 없는, 상해본 적 거의 없는 목사가 차라리 상한 얼굴이면 할말이 많을텐데 안타깝게도 상한 심령이라 마음이 너무 눌렸다. 이건 히브리어 헬라어로 통하지 않았다. 여러분들께서 상함이 거의 없는 목사가 상한 심령을 말하려니 위로를 전해 주셔야 하는데 이럴 때 큰 소리로 웃으며 응원해주시길 바란다. 아하하하하. 이 웃음의 뜻은 기가 막히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바란다. 오늘도 담대히 말씀을 전할 수 있는데 우리 교회 역사에 성경책을 묵상하잖아요. 큐티를 하는데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니가 다윗이냐? 니가 예레미야냐? 본문을 왜 그렇게 해석하니? 이분들은 신학 교과서의 앞에 두페이지까지 보신거고, 300페이지 넘게 가면 성경 묵상의 교리가 있다. 토트스트리스토투스라고 한다. 더홀크라이스트, 온전한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시잖아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과 머리가 합해서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건데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다 온전한 그리스도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거다. 성경의 여러 화자가 나오는데 개인의 간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자이신 하나님의 이야기 예수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아가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이 본문이 특히 구속사적으로 말씀 묵상하는 우리들교회는 다윗의 분수령적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가. 상처를 많이 받고 상한 심령으로 이 자리에 오신 여러 우리들교회 성도들이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의 삶과 적용에 힘입어서 말씀을 전하고요. 다 상하시다 마신 심령도 있을 거고 안 상한 심령도 있을 거다. 그분도 낙심하지 마시고 위축하지 마시고 저와 더불어서 아직 상함 없는 인생에게도 똑같이 상한 심령 말씀 주시고 상처에서 벗어나서 상한 심령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상한 심령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10-11절. 믿음의 사람 다윗도 백전백승을 거두면서 바로 타락했다. 밧세바 빼앗고 우리아를 죽게 했다. 1년 동안 죄를 덮고 거기에 대해 침묵했다. 그러다 어느날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왔다. 죄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당신이 그 사람이다. 왕권이 가장 강할 때였다. 선지자의 고발에 얼마든지 그건 가짜 뉴스야 하고 발뺌할 수 있었다. 나 모르는 일이야 이렇게 변명을 잔뜩 늘어놓으면서 회피할 수 있었다. 그 일을 뭉개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나단의 직격탄을 받자마자 곧장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고백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공식 범죄자가 되었다. 요즘 같으면 어땠을까. 왕좌에서 내려왔어야 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왕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죄의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책임을 지고 수치와 조롱과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길을 택했다. 그것은 그가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나단의 훈계를 통해서 분수령적인 회개를 했기 때문이다. 1-9절에 집중되어 있다. 다윗이 회개하면서 깨달은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는 다윗이 날 때부터 죄인이란 것이다. 나는 밧세바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에 어쩌다 재수 없어서 죄인이 아니라 나는 원래부터 죄인이었다. 그렇기때문에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소서. 무에서부터 유를. 전혀 새로운 차원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창조나 새롭게 하시는거나 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다윗은 자기 안에는 깨끗하고 정직하게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한 거다. 자신은 그저 더러울 뿐이다. 꼬이고 꼬이고 또 꼬여서 정직한 영을 스스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다윗의 이 기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절망을 담고 있다. 이 절대적 절망이 상한 심령이다. 그냥 상처받은 마음에 불과한 게 아니다. 상심이 아니다. 산산조각난 완전히 부서진 영인 거다. 그릇에 비유해 볼까요. 우리가 상처받은 입은 영혼 표현 많이 쓰는데 이 상처받은 영혼이란 것은 금이 많이 간 그릇이다. 조각조각 깨졌지만 그것을 어렵게 붙여놓은 그래서 그릇 형태는 유지해놓은 상처가고 금이 간. 그러나 상한 심령은 그냥 그렇게 금이가 있는 정도의 그릇이 아니라 완전히 부서져서 조각도 으스러져서 가루가 되 버린 상태다. 그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거다. 이 절대적 절망 상태의 그릇이지만 누군가가 가루들을 모아서 잘 반죽해서 전혀 새로운 그릇으로 빚어가고 있는 아직 완성은 되지 않았지만 다시 형성해 내고 있는 그 상태에 있는 그릇이 바로 상한 심령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해 가시는거다. 그래서 상한 심령은 많은 상처를 받는다고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다. 상한 심령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오늘 크고 작은 상처를 넘어서서 자신의 죄와 연약함 때문에 절망하는 분이 계신가? 아직 죄 자체가 보이지 않고 상처 경험해보지 않아서 이 말씀 읽을 때 깨달아지지 않는 자신에 대해서 다른 모습으로 절망하고 낙심하는 분 있나? 그렇게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의 증거다. 우리가 다 상처가 많고 미천한 수준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죄악에 대해서 맞서싸워야 겠다고 생각하고 죄악에 대해 갈등하고 고민한다면 그것이 그 갈등이 곧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증거다. 이제 우리는 상처와 갈등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이 문제에서 제발 좀 건져주시라고 애원하기보다는 오늘 성령을 거두지 마시길 성령 충만하게 해주시길 기도해야겠다. 그래서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상한 심령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인생 되시기를 바란다.
Q. 요즘 내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절망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Q. 그것이 상처에 머물러 자기연민에 같혀 있습니까?
Q. 상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Q.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정한 마음 / 정직한 영은 무엇입니까?
한 청년은 회심 후에 가장 많이 회개한 게 음란이었다. 낙태까지 한 큰 죄를 저질렀다. 수술하러 들어갔는데 이렇게 생명 생긴 건 엄청난 축복이니깐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본인이 깨어진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장이 될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던 모든 것이 코로나로 막히자 인생이 정말 망한 것 같은 좌절에 빠졌다. 죽지 못해 살고 있던 그떼 예전에 들어두었던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났다. 다시 공동체로 돌아왔다. 다시 양육 받으면서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었는데 낙태가 태중에 점과 같이 오신 예수님을 죽인 죄라는 게 깨달아 졌다는 거다. 통회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예수님을 죽인 죄인이라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공동체를 섬기는 게 가장 큰 기쁨이 되니깐 모든 죄악들이 끊어졌다. 원망 불평 욕이 그치고 오늘 본문처럼 찬양이 나온다. 청년국 목자로 섬긴다고 한다. 이게 바로 상한 심령이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져 가는 과정인 것이다.
2. 즐거운 사명자입니다.
12절. 이 땅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유일하게 영원한 건 구원이다. 구원의 즐거움만이 영원히 이어지는 진정한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을 모두가 누리는 게 아니다. 누리는 것 또한 은혜다. 날마다 새롭게 해주시고 회복시켜주셔야만 이어갈 수 있다. 다윗은 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주시기를 기도할까? 다윗은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깊은 죄에 빠져있으니깐. 구원의 즐거움은 죄 가운데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다. 나의 죄를 회개하고 주께 돌아올 때 구원의 즐거움 회복할 수 있다. 또 다윗은 나를 붙들어주소서 기도한다. 이것은 넘어진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거다.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절망을 다시 한번 고백한다. 어떻게 붙들어주시기를 기도하나. 자원하는 심령. 강요나 계산으로 움직이는 기계적인 심령이 아니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라. 우리가 정말 자유롭게 선택하나. 무서워서 위협을 느껴서 선택하는 것이고 내 이익 때문에 하는 것이란 말이다. 이건 다 자유롭게 생각하지만 실제론 조건적이고 우회적인 선택이다. 오늘 말씀하는 자유로운 심령은 정말로 자유롭게 순종하는 거다. 그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다. 예수를 왜 믿나. 왜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하고 있나. 왜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면서 그래도 큐티책 펴서 한절이라도 말씀 묵상하나. 깊이 들어가 보면 사실은 다른데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실까 그것도 이유가 다른 데 있는게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바깥에 이유가 있는게 아니다. 자원하는 심령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는 존재다. 하지만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시는 줄 믿는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주시고 계신거고, 우리의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삶을 붙들고 계신 줄 믿는다.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나.
13-15절. 다윗은 그리하면 이라고 말한다.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흘러나오는 적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의 삶이다. 복음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결과다. 게다가 다윗은 누구보다 분명히 안다. 자신이 죄인이요 범죄자 중에 가장 흉악한 범죄자라는 걸 가장 잘 안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주시고 새롭게 빚어가 주시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담대히 고백하는 거다. 죄인은 죽어야 된다가 아니라 심판받고 끝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께 돌아와야 한다는 거다. 이 은혜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내 삶에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 즐거워 할만한 아무 것이 없다 할지라도 이 구원의 즐거움 때문에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거다. 감사와 기쁨으로 자유롭게 자원하는 심령으로 나에게 아무 이유 없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찬송하면서 순종할 수 있는거다. 그래서 여러분 역설적이게도 상한 심령 가루가 되어서 내 자신에 대해 절망밖에 할 게 없는 상한 심령은 즐거운 사명자다. 죄사함을 받아 구원받아 즐겁고 상한 심령에서 사명을 맡겨주시니 그또한 즐겁고 불평과 욕밖에 할 수 없는 입술에 말씀을 넣어주시니 즐거운 거다. 천국의 즐거움인 것이다. 여러분들이 말씀 듣고 적용하는 그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누리게 해주시는 즐거움이다. 우리도 각자 자리에서 슬퍼할게 많지만 상처 입은 마음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즐거운 사명자로 굳게 서서 많은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하시기 바란다.
Q. 노예처럼 억지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Q. 내 이익을 위해 계산해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Q. 주님이 내게 맡기신 구원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Q. 그것을 자원하여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한 성도가 티티에 갔다. 솔직하게 나눴다. 다음날 목장 실습에서 만난 성도들이 본인들의 마음도 열기 시작했다. 솔직한 나눔을 다 했다. 목장이 끝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분들과 서로 안고서 펑펑 울면서 서로 위로를 주고받았다는 거다.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끌어안고 위로해주고 안고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고난이야말로 모든 장벽을 허무는 만국 공통어라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구원의 이야기로 하나가 되고 서로 만나본 적 없는 다른 인생들이 오직 말씀으로 하나 되는 것이 천국의 즐거움을 미리 맛보는거 아닌가. 우리가 예배 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즐거움 아니겠나. 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길 바란다.
3. 하나님의 제사입니다.
16절. 제사는 예배다. 하나님이 예배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아니다. 형식적인 예배 거짓 예배다. 진짜 예배는 무엇인가.
17절. 여기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원어로 번역하면 하나님의 제사다. 찾으시고 기대하시는 제사일 뿐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준비해서 드리는 제사. 예배 중에 예배 최고의 예배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무엇이 더 필요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예배를 요구하나.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제사를 바라시겠나. 굳이 굳이 저와 여러분을 이 땅에 만드시고 우리 때문에 근심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그 수고를 감당하겠나.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기 때문에 사랑이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님을 버리고 말았다. 이것을 보시는 하나님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자식을 사랑하는데 몰라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가.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니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나. 엘 6:9 근심하게 했다는 원어를 번역하면 다른 게 아니라 상하게 했다는 거다. 상한 심령과 똑같은 단어다.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무너지셨다.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이 되셨다는 거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비참한 상한 심령이 되셨다는 거다. 이것은 엄청난 사랑인 거다. 우리는 상처 조금만 받아서 싫은 소리 조금만 들어도 가만두지 않을거야. 갚아줄거야. 이런다. 하나님께서 우리 때문에 상함을 겪으셨는데 내리신 결정은 살려야 되겠다. 내가 저것들 살려야 되겠다. 구원해야 되겠다. 결정하셨다. 그래서 점처럼 작아져서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말 그대로 부서지셨다. 그 몸과 영혼이 부서지셨다. 상함을 다 주님이 받아주셨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 안에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상처투성이인 우리 심령을 새롭게 빚어가신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아픔까지도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대신 탄식하시면서 우리를 상한 심령으로 빚어가시는 거다. 끝까지 구원해 가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배는 우리의 존재 자체다. 우리의 삶 자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멀쩡한 사람 아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다. 다윗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한다. 깊이 회개. 원어는 완전히 뭉개져서 가루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제사 중에 제사인 하나님의 제사.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서 드리시는 제사는 다른 게 아니라 부서지고 무너져서 가루처럼 으스러진 우리의 상한 심령이다. 진짜 예배는 주님을 의지하는 거다. 나에게 소망 두려고 하지 말고 내가 뭔가를 극복해 보려는게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다. 두 손을 높이 들고서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붙들어주세요. 이렇게 두 손 들고 나아가는 거다. 우리는 다 폭삭 부서진 인생이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주님께서 다시 가루를 모아서 우리 삶을 모아서 새롭게 창조해주셔야만 즐거운 사명자로 세워주셔야만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셔야만 하루라도 살아갈 수 있다. 주님께 나아갈 때 상한 심령이라고 절대 멸시하지 않으신다. 오늘 깊은 상처 때문에 힘든가. 너무 큰 문제에 눌려서 아픈가. 그건 버림받는 사건이 아니다. 버리신 사건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산 제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섭시다. 상처 때문에 억울하고 분하고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해 절망하나. 그렇게 우리 자신을 더 부서뜨립시다. 자학, 우울이 아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가루로 만들어서 창조 사역에 우리 손을 얹어서 성령과 동역하는 거다. 이렇게 할 때 우리 자신이 상한 심령이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가족과 이웃을 하나님께 인도할 줄 믿는다.
Q. 예배를 어떤 마음으로 드립니까?
Q. 나는 온전한 심령입니까?
Q. 상처 입기만 한 심령입니까?
Q. 상한 심령입니까?
한 성도님은 아주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다. 시댁살이가 더 힘들었다고 한다. 남편이 결혼하고 나니깐 시댁 편에 서서 욕방언을 하는데 친정아버지의 레벨을 훨씬 뛰어넘는 욕을 들었다. 이분은 시댁 고난을 참지 못하고 가출했다. 다른 남자도 만났다. 그때 아들이 교통사고 당해서 머리를 다쳤다는 소식. 남편에게 맞아 죽어도 할말 없다는 심령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맞을 준비하고 들어갔는데 이 남편이 글쎄 이분에게 무릎 꿇고 눈물로 용서를 구하면서 안아줬다. 알고보니 남편이 예수님을 믿게 됐다. 하지만 이분은 남편을 괴롭혔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암사건 돈사건들이 큰 시련이 줄줄이 닥쳤다. 자신이 돈과 남편을 우상으로 삼은 죄인이란 걸 깨달았다고 한다. 가족들이 많은 수고를 하고 나서 깨달았다고 한다. 바람 피고 나밖에 몰랐던 최악의 아내, 남편이 최고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당신이 옳습니다. 고백. 이게 바로 상한 심령의 고백인 거다. 그냥 상처입은 심령으로 남았다면 이렇게 살 수 있겠나. 상처가 상한 심령이 되어서 이제 그것이 약재료되고 별처럼 빛나니깐 내가 당한 고난이 내 죄보다 작다는 걸 깨닫고. 다른 가정 많이 살리는 즐거운 사명자인 줄 믿는다.
오늘 여러분도 상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기를.
[목장 스케치]
목장 식구의 생일파티가 있던날~ 그리고 이날은 특별히 김태현 목사님께서 심방 와주셨어요. 목사님께서 사랑과 권면으로 해주신 말씀들을 듣고 위로도 얻고 도전도 받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도제목]
[믹석이]
1. 여자친구의 말을 잘 이해못할 때가 있는데 찰떡같이 잘 알아듣고 처방안하도록
2. 상한심령, 상한마음 목장 식구들이 목장에서 잘 나누고 치유 되도록
3. 여전한 방식으로 직장에서나 목장에서나 겸손하게 섬기며 살기
4. 가족과 목원들의 건강 지켜주시도록
[이면지]
1.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쓰는 큐티할 수있도록. 상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2. 화요일부터 다시 출근합니다. 긴장되는 마음이 있는데, 막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되는 만큼 하루 성실히 살아가도록
3. 가족구원. 특히 아버지 구원을 위해
4. 신교제의 은혜를 허락해주세요.
[리트리버]
1. 삶의 목적이 거룩이 될 수 있도록
2. 상한 심령가운데 정직한 영을 날마다 사모할 수 있도록
3. 공부하는 가운데, 스트레스 받을때 미디어가 아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4. 회개로 뜨거운 감동을 날마다 느낄 수 있도록.
[공실이]
1. 우리들교회에 잘 스며들수 있도록
2.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구내염이 생겼는데 잘 회복할 수 있도록
3. 양육교사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4. 회사 업무중 정부과제 선정으로 재무관련 인터뷰 있는데 이슈 없이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찬똥이]
1. 불면증 해결해주시도록
2. 신교제 허락하시도록
3. 1대1 양육 잘 받고 훈련 받도록
4. 조울증 재발 없이 약 천천히 잘 끊어 가도록
[해워리]
1. 신교제의 축복을 주시옵소서
2. 바쁜시기에 현명한 판단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해야하는 업무를 잘 해낼 수 있도록
3. 차가 곧 나오는데 잘 인도받고 안전하게 타며, 지금 차는 중고차로 파는데 잘 팔릴 수 있도록~
4. 스포츠클럽 학생들이 저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참여하여 대회에서 승리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5. 내가 조금 더 갈등하고, 힘들고, 눌리고, 삶이 죄악과 싸워 전쟁같은 삶이 되더라도 성령을 거두지 말아 주시길
[홍이]
1. 신결혼 이룰 수 있도록
2.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3. 큐티를 통해 삶에 적용하도록
4. 회사 업무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어떤 일이든 감사하도록
5.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을 얻고 힘을 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