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2025.08.17.(주일) 시편51:10-17 「상한 심령」 이성훈목사님
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 설교 내용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가 저희의 상한 심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상한 심령이 무엇인지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굉장히 유명한 목사님이 계세요. 원로신데 저희 교회에도 강사로 오셨었습니다. 이분이 이제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특강 강사로 오셨어요. 그런데 이제 본인 목회에서 부목사들 양육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나눠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런 얘기를 하신 거예요. 부목사 중에 설교를 굉장히 잘했고, 또 스스로도 잘한다고 막 이제 자랑하고 다니는 부목사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하도 보다 못해서 야, 그러면 니가 한 달 동안 맡아서 설교를 해봐라 이러셨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 부목사는 아싸! 기회를 얻었다. 내가 이제 인정을 받아가지고 잘 돼야지! 이런 야망을 가지고 이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첫 주 홈런을 쳤어요. 둘째 주도 잘했습니다. 근데 이제 셋째 주부터 맛이 가기 시작했어요. 네 번을 하고 나니까 이 부목사가 목사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더랍니다. 목사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저는 더 이상 나올 게 없습니다. 살려주세요! ^^
사실 저는 말씀드릴 게 많이 있어요.^^ 말씀드릴 게 많이 있고^^ 저는 아직까지 밑천이 동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번 주엔 너무 힘들더라고요. 제가 보통 아무리 원고가 늦어도 금요일 저녁 아니면 토요일 정오까지는 제가 원고를 다 완성이 되거든요. 원고가 완성이 되면 저는 잠시 자기도취에 빠집니다. 너무 원고가 훌륭한 거예요. 어떻게 이 본문에서 이런 설교를 쓸 수 있는지^^ 잠깐이지만 그 자기도취에 빠졌다가 이제 단에 설 생각을 하면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이제 우울이 몰려오는데요. 이번에는 제가 오후 6시까지 원고와 씨름을 했는데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보내야 돼서 이제 겨우겨우 억지로 마무리하고 원고를 처음부터 봤는데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제목이 상한 얼굴이었다면 제가 드릴 말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영상을 잘 못 보거든요. 요새 그렇게 저한테 탈모에 관한 말씀을 해주시는 분들이 부쩍 늘어서, 감사하지만 참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근데 제목이 상한 심령이란 말이죠. 상한 심령. 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상처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 상처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 상처를 넘어서 이제 상한 심령을 얘기해야만 하는 이 자리가 참 저에게는 상할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 우리들교회 성도님들께서는 저보다 영적 수준이 훨씬 높으시고, 여러 상처들을 겪으시면서 여기까지 오시면서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으로 빚어주셨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제 제가 그래도 이 자리를 도망치지 않고, (오늘 아침에는 진짜 도망치고 싶더라고요.) 도망치지 않고 또 이렇게 제가 설교에 서서 이런 설교에 대해서 제가 이런 스스로 되돌아보는 이런 얘기하는 건 참 자존심이 상하거든요. 그러나 이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저의 심령이 있고요. 우리 성도님들의 수준을 믿고 제가 그래도 하나님께서 준비하게 하신 말씀을 최선을 다해서 전할 테니까 은혜는 알아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제가 정말 위로를 삼는 것은요. 우리가 시편 51편은 뭐 성경 전체로 보나 신학적으로 보나 교회사 전체로 보나 굉장히 중요한 본문이고 특히 구속사적인 묵상을 하는 우리들교회에 있어서는 시편 51편이 가진 이 중요성을 제가 알기 때문에 더 눌리는 것 같아요. 정말 많이 중요한 본문이고, 귀한 본문이고, 많은 분들이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살아난 본문인데, 저는 참 이 다윗의 이 상한 심령, 그리고 다윗을 통해서 고백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그 상한 심령.
저는 참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상처 하나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 그러나 제가 이 말씀을 왜 여러분과 같이 나눌 수 있느냐? 그리고 이 중에는 분명히 또 저 같은 분들이 계시지 않겠어요? 상처에 대해서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텐데요. 우리 동지들 너무 자고하지도 마시고, 낙심하지도 마시고. 이 본문을 왜 우리가 다 같이 읽을 수 있느냐? 또 이건 큐티에 관해서도 우리가 이제 늘 듣는 질문이에요. 네가 다윗이냐? 이런 질문을 우리 듣잖아요. 네가 예레미야냐? 이런 질문을 우리 듣는단 말이죠. 그러나 여러분 그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은 신학 공부를 앞쪽 한 1~2 페이지만 하신 거예요. 우리 교회 전통에 보면 토투스 크리스투스(Totus Christus, 라틴어)라는 교리가 있어요. 어려운 말인데 (제가 얼마나 눌리면 이런 것까지 말씀을 드리겠어요.) 이게 뭐냐? 전 그리스도(전체적으로 그리스도다) 이 말이에요. 전체적으로 그리스도다 무슨 말이냐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교회의 머리시잖아요. 그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에요. 자, 그러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우리가 합하면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게 합해서 토투스 크리스투스(Totus Christus, 라틴어)=더 홀 크라이스트(The Whole Christ) 전체적으로 그리스도가 된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도 그리스도의 일부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여러 화자들이 나와요. 필자들이 나옵니다. 그렇죠. 오늘 같은 경우에는 다윗이 자기의 가장 심각한 범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분수령적인 회개를 하면서 고백한 귀한 참회시에요. 저 같은 사람은 참 이게... 이게 어떻게 이해가 잘 안 된단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말씀을 같이 묵상하고, 같이 나누고, 같이 이렇게 설교하고, 저런 상처와 관련 없는 인간이 설교하는 것을 들어주실 수 있는 이유는 이 고백이 다윗의 고백일 뿐만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고백이고, 또한 나아가서 몸인 우리 전체의 고백이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그래도 힘을 내서 준비한 말씀을 전할 테니까 아무튼 제가 얼마나 겁이 나면 이런 말씀을 자꾸 드리겠어요. 은혜를 알아서 받으세요. ^^
상한 심령. 우리 상처의 시대, 또 치유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데 사실 그 상처만 호소하고 상처를 위로받기만 바란다면, 우리의 상처는 그냥 상처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될 것은 상처라는 게 과연 치유될 수가 있는 것인가? 사람들이 그렇게 치유, 치료, 힐링을 찾아서 다니지만 과연 우리 인생에서 치유라는 것이 있겠는가? 진정한 치유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단 말이죠. 우리는 상처 입은 영혼, 상처받은 마음 이런 말 많이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어요. 상처를 넘어서 이제 상한 심령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오늘 말씀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에요. 오늘 다윗의 유명한 참회시인 시편 51편을 통해서 이 상한 심령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상한 심령은 첫 번째로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10-11절).
10절 11절 같이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믿음의 사람 다윗도 백전백승을 하면서 마음이 편해지니까 이제 그냥 갑자기 타락을 하고 마는 거예요. 충성된 장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고,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만듭니다. 그 후 1년 동안 다윗은 그 죄를 덮어두고 침묵했어요. 성경에 아무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옵니다. 그리고서는 다윗의 죄를 정면으로 지적해요. 당신이 그 사람이라! 당시 다윗은 여전히 강력한 왕이었죠. 정권의 힘이 가장 강력할 때였어요. 연전연승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선지자의 고발에 언제든 얼마든지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건 가짜 뉴스다! 이렇게 발뺌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내 의도가 아니었어. 내가 유혹을 당한 거야. 내 부하들이 알아서 과잉 충성한 거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이런 변명을 잔뜩 늘어놓으면서 회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언론도 조작하고 뻔뻔하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수가 있었어요. 1년을 그렇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 나단의 직격탄이 떨어지자마자 곧장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이 한마디로 그는 전국적으로 이제 공식 범죄자가 되었어요. 전국에 소문이 다 나서 온 나라가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요즘 같으면 어땠겠어요? 왕좌에서 내려와야 되는 거예요. 그 땅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왕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죄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 책임을 지고 죗값을 치르겠다는 각오를 하고 수치와 조롱과 징벌을 받는 길을 택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가 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믿음이 특별히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이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분수령적인 회개를 했기 때문이에요. 이 회개의 기도가 시편 51편이고요. 특별히 1절부터 9절. 오늘 본문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 다 큐티인 묵상하셨죠? 1절부터 9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본문이 이제 10절부터 19절까지예요. 다윗이 회개하면서 깨달은 것, 그 중요한 것, 제일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무엇일까요? ★자기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밧세바 사건이 나한테 일어나서 어쩌다 보니 재수가 없어서 내가 걸린 게 아니라 ★나는 밧세바 사건에 따라오는 책임조차 내 죄와 비교하면 너무도 가벼울 만큼 난 날 때부터 죄인이다. 내 어머니가 잉태하는 순간부터 나는 죄인이었다. 죄 중에 나를 잉태했다라고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주님,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창조하시고, 새롭게 하소서 이거예요. 창조는 그냥 만드는 게 아니라 무에서 유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고요. 새롭게 하는 것도 단순히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없던 것을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나 새롭게 하는 것이나 다 하나님만이-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거예요! 무슨 뜻입니까? ★다윗은 자기 안에서는 깨끗하고 정직하게 될 가능성이 0.000000000001%도 없다는 것을 지금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는 더러울 뿐이고, 추악할 뿐이고, 그저 자기는 베베 꼬여 있고. 정직하지 못하고, 꼬이고 꼬이고 또 꼬여 있는 그러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이런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다윗은 왕이지만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자기의 실체를 볼 때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상한 심령인 거예요.
여러분, 상한 심령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상처받은 마음, 상처받은 영혼과는 다릅니다. 상처가 쌓여서 상한 심령으로 가는 것은 맞아요. 그러나 내가 상처받았다고 그래서 내 마음에 상처가 있다고 그래서 그것 자체로 상한 심령인 것은 아니에요. 상한 심령은 상심(傷心)이 아닙니다. ★상한 심령은 산산조각 난, 완전히 무너지고 부서진 영이라는 뜻이에요.
이걸 그릇에 한번 비교해 볼까요? (상처입은 영혼(상심) vs. 상한 심령)
amp#9312상처입은 영혼은 깨져서 금이 잔뜩 간 그런 그릇이에요. 조각조각 깨진 것을 다시 접착제로 겨우겨우 붙여놓은 그릇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흠이 있고 상처가 많이 나 있어요. 그게 이제 상처 입은 영혼, 상처받은 마음이에요.
amp#9313그러나 상한 심령은요. 조각을 넘어서서 완전히 가루로 빻아서 으깨진 것입니다. 완전히 부서진 것,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는 그릇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는 절대적인 절망만 남은 것이에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냥 그 뭉개진 상태로 있다고 해서 또 상한 심령이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 뭉개진 가루를 다시 누군가가 잘 반죽해서 완전히 새로운 그릇으로 빚고 있는... 다 완성된 것은 아닌데 그 가루들을 다시 새로운 그릇으로 빚고 있는-그 재형성 재제작 과정 중에 있는- 그릇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지금 완성을 향해서 열심히 열심히 빚어지고 있는 중이에요. 이 제작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신 거예요. 가루로 부서졌다가 하나님에 의해서 다시 빚어지고 있는 상태의 그릇. 절대적인 절망이 있지만 동시에 그것을 빚으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절대적인 소망을 또한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상한 심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한 심령은 우리가 이 땅에서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저절로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상한 심령은 상처 많은 우리 인생에 그 비참한 최종 결과물이 아니에요. ★상한 심령은 하나님께서 그 비참한 상태에 있는 우리들을 다시 부르셔서 새롭게 빚어가시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오늘 크고 작은 상처를 넘어서 자기 자신의 그 죄와 연약함 때문에 절망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아니면 너무 많은 상처에 눌려서 인생 자체가 너무 힘든 분들이 여기 계십니까? 그러한 힘든 것,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그 절망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여러분이 이미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증거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 거예요. 우리는 부족하고, 다윗처럼 실수하고 넘어지고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그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이 상한 심령의 마음! 내 자신에 대한 절망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이 예배의 자리 앞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은 이미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신 줄 믿습니다! 이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에 내 죄에 대해서 아파하고, 죄가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절망하고, 이렇게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이 이 상한 심령을 여러분과 나눠야되는 이 비참함(^^ 참 여러분들은 이렇게 웃으시지만 저는 참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이 안에 있는 이 연약함과 악함과 이 교만함과 이 비참함에 대해서 우리가 갈등하며 싸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갈등 충만이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상처와 갈등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절망에서 좀 벗어나게 해달라고,
이 우울함에서 좀 헤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오늘 말씀처럼
★성령을 거두지 마시기를, 내 안에 성령을 거두지 마시기를!
내가 조금 더 갈등하고, 내가 조금 더 힘들고, 내가 조금 더 눌리고,
내 삶이 정말 죄악과 싸워서 이 전쟁과 같은 삶이 된다고 할지라도
성령을 거두지 마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어요.
성령 충만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성령과 함께 내 자신에 대해서 계속해서 절망하고...
상처가 올 때 상처 잘 받아내고,
그만큼 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상한 심령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질문드리겠습니다.
Q. 요즘 내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절망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Q. 그것이 상처에 머물러 자기 연민에 갇혀 있습니까, 상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Q.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은 무엇입니까?
한 청년은요. 회심 후에 가장 회개를 많이 한 죄가 음란이었답니다.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낙태까지 하는 큰 죄를 저질렀대요. 수술 전에 오히려 의사 선생님이 생명이 생긴 거 축복이니까 다시 한 번 좀 생각해 봐라 이렇게 말했지만 이 청년이 완전히 깨어진 완전히 무너진 가정에서 자랐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가장의 역할을 할 용기가 안 났던 거예요. 그래서 이제 낙태를 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자기의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준비했던 그 모든 일들이 코로나 때문에 막히자 큰 좌절과 무력감에 빠졌어요. 그래서 유서까지 써놓고... 그러나 죽지 못해서 살아가고 있던 그때에 예전에 들었던 우리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났답니다. 그래서 설교를 다시 찾아 듣고, 그렇게 우리 공동체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어요. 말씀을 들으면서, 양육을 받으면서 이 청년이 충격적인 것을 깨달았다고 해요. 바로 자기가 저질렀던 그 낙태가 태중에 오신 예수님을 죽인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을 죽인 사람이구나 이런 회개가 되었대요. 그때부터 수개월 동안 이 청년에겐 통회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절망 속에서! 이 절대적인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재창조 역사가 시작된 거예요. 이 청년은 자기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기쁨이고, 또 이렇게 세상적인 쾌락을 지키는 것이 기쁨이었는데, 이제 이 기쁨이 바뀌어서 공동체를 섬기는 것이 이 청년의 기쁨이 되니까 술, 담배, 음란 이 모든 죄악이 저절로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입에 달고 살던 이 원망과 불평의 말이 이제 그치고 그 입에서 찬양, 감사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이 청년이 청년부 목자로 잘 섬기면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상한 심령이 새로운 피조물! 상처 많았던 우리의 영혼이 상한 심령으로 새롭게 재창조되는 그 모습인 거예요. 계속해서 잘 지어져 가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상한 심령은 첫 번째로 새로운 피조물이고요. 두 번째는요.
즐거운 사명자입니다(12-15절).
12절 같이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이 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영원한 것은요, 당연히 구원밖에 없어요. 그래서 구원 때문에 즐거워하는 이 구원의 즐거움만이 영원히 이어지는 진정한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이 즐거움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죠. 구원을 받는 것도 은혜고, 우리가 받은 이 구원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거예요. 구원의 즐거움도 하나님께서 날마다 새롭게 해주시고 지켜주셔야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왜 이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할까요? 다윗은 이미 택자잖아요. 다윗은 이미 구원받았잖아요. 그런데 범죄하니까- 죄 가운데 있으니까- 구원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이죠. 죄는 아무리 무거운 죄라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 자체를 빼앗지는 못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죄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언제든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시면 되는 거예요. 이게 뻔뻔함의 근거가 되면 안 되겠지만 죄 때문에 떠난다.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한다. 이런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있으면 그 구원의 즐거움은 빼앗기게 돼요. 구원의 즐거움은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할 때 이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는 것이죠.
또 다윗은 나를 붙드소서! 나를 붙들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것은 자신은 넘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고, 이미 넘어진 존재라는 것을 하나님께 지금 인정하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자신에 대한 이 절대적인 절망, 왕인데 혼자 설 수가 없는 존재라니요. 이런 자기의 실체를 보고 다시 한번 절대적으로 절망을 하는 그런 고백입니다. 그런데 나를 어떻게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나요? 바로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붙들어 달라고 그래요. 자원하는 심령이 또 무엇일까 생각해 보시면, 강요나 계산에 의해서 움직이는 그런 기계적인 심령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 같죠?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선택하는 것들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자유롭게 하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무서워하는 게 깔려 있고요... 절반은 무서워서 선택하는 것이고, 또 절반은 내가 받을 이익 때문에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전적인 자유로 하는 것은 사실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결혼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남편과 아내를 향해서 아무 이유 없이 그대의 존재 자체가 좋아~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는단 말이죠. 무서워서 그 고백을 하는 경우도 있고^^ 뭔가를 얻어내려고 그런 고백을 하는 경우가 또 많은 거예요. 이것이 우리 모습입니다. 절망밖에 할 수 없는 거예요. 이런 것들은 아무리 자유처럼 자원해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자유가 아니에요. 기계적인 선택이고, 다 조건적인 선택이고, 따라서 노예적인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 자원하는 심령은요, 진짜로 자유롭게 순종하는 심령입니다. 순종의 이유가 자기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를 왜 믿으십니까? 여러분 교회를 왜 나오십니까?
예배를 왜 드리십니까? 큐티를 왜 하십니까?
한번 물어보세요. 뭐 이런저런 이유를 다 대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시면 예수 믿는다는 것처럼 아무 이유가 없는 게 사실은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처럼, 이 주일에 세상 사람들에게 휴일에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이 불편한.. 빽빽하게 찬 자리에 나와서 앉아 있는 것, 아무리 강요에 의한 것인가, 이익에 의한 것인가 생각해도 그걸로는 답이 안 돼요.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계신 것,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으시는 것, 여러분들이 말씀 앞에 서시는 것, 큐티 하시는 것, 특히 봉사로 섬기시는 것. 이것은요, 그야말로 자유로운 순종입니다. 이유 없이 그냥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계신 마음이고, 따라서 자원하는 심령을 한마디로 하면 그건 다른 게 아니라 사랑이에요. 사랑!!! 물론 우리는 사랑을 만들 수도, 할 수도, 지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서는 사랑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그러나 로마서 5장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또 그 사랑이 잘 느껴지지는 않지만 내가 하나님 사랑해야 되는데... 내가 내 가족을 사랑해야 되는데... 내가 내 지체를,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데... 그러한 부담이라도 조금 남아 있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성령을 하나님의 사랑을 거두지 않고 우리에게 남겨두신 증거인 줄 믿으시길 바라요.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 겁니다. 이렇게 주님이 붙들어 주시는 사람. 넘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게 됩니까? 13절부터 15절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다윗은 그리하면이라고 말해요.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사랑을 부어주셔서~ 이렇게 붙들어 주시면! 그러면(그리하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적용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뭐예요?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의 삶이에요. 복음을 전하는 것은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그 결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복음 전하는 사람 없어요.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기쁨과 감격과 감사함을 가지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 구원을 전파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게다가 다윗은 누구보다도 분명히 알아요. 무엇을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자기가 모든 범죄자보다 더 끔찍한 범죄자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용서해 주시고, 선지자를 보내서 책망해 주시고, 자기의 회개를 받아주시고, 그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가신다는 것을 또한 압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담대하게 고백하는 거예요.
죄인은 죽어야 된다가 아니라 죄인은 주께 돌아와야 된다!
죄인은 죽어야 된다가 아니라 죄인은 주께 돌아와야 된다. 죄인은 돌이켜서 살아나야 된다! 이 고백을 담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확신 때문에 우리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데 그냥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하나님께서 주신 회복시켜 주신 그 즐거움, 구원의 즐거움을 가지고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전적인 자유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사랑으로 자원하는 심령으로 찬송하면서 노래하면서 그렇게 순종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역설적으로 이 상한 심령은요. 물론 슬픔이 있고 절망이 있지만 그 한편에는 또한 즐거움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상한 심령은 즐거운 사명자입니다.
죄사함 받아서 구원받으니 즐겁고, 또한 나 같은 죄인에게 사명을 주시니 또한 즐겁고, 입술에서 불평과 욕만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인생인데 내 입을 열어서 찬송하게 해 주시니, 또 복음을 전파할 능력을 주시니 즐거운 거예요. 이것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이건 천국의 즐거움이에요. 영혼을 섬기는 이 사명의 현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우리에게 각자 맡겨주신 그 사명의 자리가 있잖아요. 가정에서, 또 교회에서, 또 일터에서, 학교에서, 그 각자의 자리에서 상한 심령이지만 눌리고 두렵고 떨리고 절망스럽고 정말 이 저주받은 인생 같고 우울한 그러한 상한 심령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고 즐거운 사명자로 굳게 서서 많은 사람을 주께로, 특히 많은 죄인을 무너진 영혼들을 상처받은 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Q. 노예처럼 억지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Q. 내 이익을 위해 계산해서 하는 일은 또한 무엇입니까?
Q. 주님이 내게 맡기신 구원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자원하여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성도님이 이번에 T.T.를 가셨어요. 간증 시간에 자신의 그 병을 솔직하게 나누셨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그 목장 실습에서 만난 성도님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각자 아픈 자녀, 또 일찍 떠난 가족들의 그런 이야기들 여러 사연을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목장이 끝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만난 지 불과 몇 시간 안 된 이분들과 서로 얼싸안고 펑펑 울면서 서로 위로를 주고받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세상에서 이런 일이 가능하겠어요?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이 성도님은 이렇게 고백하세요. 고난이 모든 장벽을 허무는 만국 공통어임을 확인했다.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이렇게 구원의 이야기로 하나가 되는 것이 천국의 즐거움을 미리 맛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목장에서 맛보는 즐거움이고, 우리가 예배마다 느끼는 누리는 그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이분의 그 건강을 잘 붙들어 주셔서 주신 사명 끝까지 즐겁게 감당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상한 심령은 첫 번째로 새로운 피조물이고요.
두 번째로 즐거운 사명자이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제사입니다(16-17절).
16절 같이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여러분 제사는 예배예요. 그렇다면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은 거짓된 예배, 형식적인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예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무엇일까요? 17절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 이것을 원어 그대로 번역하면 그냥 하나님의 제사예요. 하나님의 제사.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께서 받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제사요, 심지어 하나님께서 준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드리시는 제사. 그러니까 제사 중의 제사, 예배 중의 예배고, 최고의 예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솔직히 무엇이 부족해서 이 예배를 구하시겠어요? 이 예배를 받으시려고 하겠어요? 이 예배를 본인이 드리시기까지 하시면서 하시겠냐 이 말이에요.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하셔서? 완전하신 분이신데. 이게 신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2천 년 동안 논의하는 주제이기도 하거든요.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왜 굳이 이 우주를 창조하셨는가?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왜 굳이 인격적인 인간들을 당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을 창조하셨는가? 아무것도 필요 없으신 분인데... 그건 천국 가서 여러분 물어보세요. 하나님께. 왜 창조하셨어요? 왜 창조하셔서 우리를 이렇게 상한 심령으로 몰아가시나요? 한번 물어보시길 바라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는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에요. 사랑이에요.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냥 함께하시길 원하셔서. 우리를 사랑하고 싶으셔서 그래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랑을 알지 못하고 주님을 떠나서 멀리멀리 죄 가운데 빠져버렸어요. 하나님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우리가 사람끼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서 버리면 너무 슬프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귀한 마음으로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버리고 떠나면 하나님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에스겔 6장 9절에 보니까 우리가 우상을 섬겨서 주님을 근심하게 했다 이렇게 하는데 이것도 원어로 보잖아요? 그러면 이 근심하게 했다라는 말이 바로 하나님을 상하게 했다입니다. 상한 심령과 똑같은 단어예요. 하나님께서 상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부서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너져 내리셨어요. 그래서 하나님도 상한 심령이 되신 거예요. 하나님도 상한 심령이 되신 것입니다. 아무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이 되셨어요. 누구 때문에요? 바로 저 때문에.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 한 분 한 분 때문에.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이 되셨습니다. 엄청난 사랑인 거예요.
우리는 마음이 조금만 상해도, 상처를 조금만 받아도, 마음이 조금 무너지는 것만 같아도 어떻게 합니까? 발작하면서 부숴버릴 거야!! 이를 갈잖아요. 이 상처 내가 10배로 되갚아줄 거야! 이게 우리 전공 아닙니까? 가족 간에 제일 심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말도 안 되는 상함. 받으실 필요가 전혀 없는 이 상함을 받고, 받고, 또 받으신 끝에 내리신 결론이 뭐예요? 우리를 부숴버리고 없애버리실 수도 있지만! 그걸 결정한 게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기로 결정하셨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점처럼 작아지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어요. 십자가에서 문자 그대로 부서지셨습니다. 무너지셨어요. 그 육체가 무너지셨고, 그 영혼이 무너지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모든 벌을 본인 몸에, 생명에 다 떠안으시고 철저하게 무너지셨어요. 지금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상처투성이인 이 우리 인생, 연약함 투성이인 이 인생, 깨진 그릇 같은 우리 인생을 상한 심령으로 새롭게 빚어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상한 심령이 되셔서 우리를 상한 심령으로 세워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2장 1절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예배, 최고의 예배가 무엇인가? 바로 우리의 몸, 바로 우리 존재 자체입니다. 우리 삶 자체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요. 멀쩡한 심령이 아니에요. 건강한 심령, 온전한 심령이 아닙니다. 자신감 넘치는 그런 당당한 심령이 아니에요. 잘난 심령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 무너진 심령, 부서진 심령입니다. 다윗은 이 상한 심령을 다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것은 가루처럼 으스러진 마음이라는 거예요. 이걸 우리가 회개하는 심령, 통회한다 이렇게 번역했지만, 이 문자적인 뜻 자체는요. 부서지다 못해 가루처럼 으깨진 완전히 뭉개진 그러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제사 중의 제사인 하나님의 제사는 바로 이렇게 부서지고 무너지고 완전히 가루처럼 으깨진 우리의 상한 심령인 거예요. 진짜 예배는 이처럼 부서지고 으스러진 상한 심령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두 손 들고서 두 손을 높이 들고서 주님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저를 좀 붙들어 주세요. 이렇게 주님께 나아가는 거예요. 우리는 다 폭삭 무너진 인생이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혼자 설 수 없어요. 주님이 창조해 주셔야만 사명자로 또 세워주셔야만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셔야만 하루도 살아갈 수 있는 인생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의지하는 것을 멸시하지 않고 받아주십니다. 마음의 깊은 상처 때문에 힘드십니까? 아프십니까? 그것은 여러분, 버림받은 사건이 아니에요. 그것은 오히려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최고의 거룩한 산 제물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재창조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십시다. 상처 때문에 억울하고 분하고, 또 그러면서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하고, 원망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상처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이 완악한 심령에 대해서 절망하십시다. 그렇게 우리 자신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으스러뜨리십시다. 이것은 자학이 아니에요. 이걸 자꾸 뭐 우울하게 만든다, 부정적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계시던데 이것은요 진짜 자학이 아닙니다. 이것은요, 성령의 재창조 사역에 우리가 함께 우리의 손을 올려놓는 거예요. 상처투성이인 우리를 완전히 가루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그릇으로 빚어가시는 그 재창조 사역에 우리가 우리 손을 올려놓는 것입니다. 거룩한 일인 거예요. 그럴 때 우리 자신이 상한 심령으로 빚어져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가족과 이웃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예배를 어떤 마음으로 드리시나요?
Q. 나는 온전한 심령입니까, 상처 입기만 한 심령입니까, 상한 심령입니까?
한 성도님은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셨어요. 결혼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는데 시댁살이가 그야말로 더 힘들었습니다. 시댁의 욕 방언은 친정아버지 레벨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대요. 창자로 줄넘기 한다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결국 이분은 참지 못하고 가출하셨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가출해서 다른 남자도 또 이제 만나셨대요. 그런데 아들이 교통사고 나서 이 머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이제 남편에게 맞아 죽어도 할 말 없다. 이런 마음으로 이런 심정으로 이제 집에 가셨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자기를 이제 때려죽일 줄 알았던 이 남편이 무릎을 꿇고 눈물로 용서를 구하면서 안아줬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남편이 자기가 집을 나간 그 사이에 전도를 받아서 예수를 믿게 된 거예요. 하지만 이분은 그 은혜를 금세 잊고 그동안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이 남편에게 복수하듯이 괴롭혔답니다. 그러던 중에 가족들에게 이 암 사건, 돈 사건 등 이 큰 시련들이 줄줄이 일어나는 거예요. 이 사건을 이 큰 상처들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이 돈과 남편을 우상으로 섬겼던 죄인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상처 투성이가 돼서야 깨달았다는 거예요. 이렇게 많은 사건으로 심령이 무너지고 부서지자 이런 고백이 나왔답니다. 바람피우고 나밖에 몰랐던 이 최악의 아내와 이혼하지 않고 함께 살아준, 그래서 가정을 지켜준 최고의 남편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당신은 나보다 옳습니다. 이런 고백이 나왔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상한 심령의 고백인 줄 믿습니다. 내가 당하는 고난이 내 죄보다 작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죠. 이런 상한 심령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이자,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이고 또 다른 가정 살리는 사명 감당하는 즐거운 사명자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이런 상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 맺겠습니다.
상한 심령은 새로운 피조물이고요. 즐거운 사명자이고, 또 하나님의 제사예요. 주님은 건강한 자가 아니라 아프고 상처받고 찢기고 눌린 인생을 찾으십니다. 병든 인생 찾으시는 거예요. 상처 입은 영혼을 찾아서 상한 심령으로 빚기를 우리 주님이 기뻐하세요. 그러니 오늘 상처 입고, 다치고, 억눌리고, 찢기고, 매맞고...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그 모습 그대로, 그 무너진 마음 그대로 그 심령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다. 두 손 들고 상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줄 믿습니다. 찬양하겠습니다.
♬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주 여호와께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 영혼 드리리다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
다시 오실 왕 여호와께
오직 주만이 나를 다스리네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 영혼 드리리다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 영혼 드리리다 ♬
기도제목 우리가 많은 상처 때문에 또 자기연민에 갇혀 있는 이 모습조차 이 시간 주님께 올려드리기를 원합니다. 내 모습 그대로 받으시는 우리 하나님께 우리 마음속 깊은 두려움과 상처를 고백하며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이 이제는 주님 앞에서 상한 심령으로 새롭게 창조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십시다.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은 성령 충만밖에 없어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셨기에 오늘 말씀처럼 성령을 거두지 마시고, 성령 충만하게 해주시기를 함께 기도하십시다. 성령의 불을 내려주시옵소서. 성령의 세례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방언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다 함께 주여 한 번 부르시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보이는 것이 없지만 하나님 이런 저의 모습을 보니 정말로 제가 죄인입니다. 하나님, 모태에서부터 정말로 죄인입니다. 모태 목사가 아니라 모태 죄인입니다. 이렇게 설교를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정말 죄밖에 없고. 이렇게 말씀을 전했지만 되돌아보면은 제가 남긴 것이라고는 죄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게다가 죄인 줄도 알지 못하고, 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죄인 중에 죄인인 것을 아버지 하나님,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하지만 여전히 또 제 성품 뒤에 숨어서 이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아 그래도 나는 100% 죄인은 아니지. 10% 20%의 여지는 있지 않나?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려고 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너무도 끔찍하고 가증스럽고.. 아버지 저는 이렇게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상한 심령은 커녕 상처 하나 받기 싫어하는 저의 완악함과 교만함, 이 죄악을 이 시간 주님의 자녀들의 적용에 힘입어서 그들의 옷자락이라도 붙들고서 저도 같이 따라가기를 원하오니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저희를 구하시려고 점처럼 작아지셔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 지셨는데 그 모든 생명을 다 부서뜨려 주셨는데, 저는 제 앞에 있는 작은 시험 하나 견디지 못하고 마땅히 있어야 될 일이라는 것도 받아내지 못하고 있음을 또한 회개합니다. 아버지,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제 오늘 말씀에 순종하여서 멀쩡한 심정으로 안일하게 살기를 거절하고, 사명을 위해서 상한 심령 되기를 소원하오니 주여! 새로운 피조물로 지어주시고! 즐거운 사명자로 세워주시며! 하나님의 제사로 받아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 함께 기도하는 주의 자녀들 모두에게 같은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상처가 너무도 많습니다. 너무도 아픕니다. 아버지, 원망과 슬픔만 나오는 인생입니다. 너무도 힘듭니다. 주여,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살려주시옵소서. 주의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셔서 저희의 마음이 상처 입은 마음을 넘어서 상한 심령으로 빚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의 기쁨이 되는 복된 인생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국내외로 복음 전하러 다니는 우리 모든 T.T. 팀들 아버지, 한 팀 한 팀, 우리 또 한 지체마다 주님 복을 내려주셔서 즐거운 사명자가 되어서 복음의 씨앗을 잘 뿌리고 열매를 거두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다음 주 광주 목세를 통해서 또 그 지역에 또 구속사의 복음이 흘러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목사님 늘 강건하게 지켜주시고, 말씀 전하시는 일, 결정하시는 일, 또 양육하시는 이 모든 일에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붙들어 주시옵소서. 군림하는 권세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상한 심령이 된 참된 지도자를 세워 주시옵소서. 아버지 모든 악법을 막아주시고 생명을 지키는 법들이 제정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 저희를 상한 심령으로 빚어 기쁘게 받아주시는 주님 은혜에 감사하여서 신앙 고백으로 드린 저희의 예물을 열납하여 주시고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줄 것만 있도록 저희의 건강과 가정과 공부와 직장과 또 사업과 프로젝트와 아이디어 위에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적용질문 정리
1. 새로운 피조물입니다(10-11절).
Q. 요즘 내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절망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Q. 그것이 상처에 머물러 자기 연민에 갇혀 있습니까, 상한 심령이 되어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Q.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은 무엇입니까?
2. 즐거운 사명자입니다(12-15절).
Q. 여러분 예수를 왜 믿으십니까? 교회를 왜 나오십니까? 예배를 왜 드리십니까? 큐티를 왜 하십니까?
Q. 노예처럼 억지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Q. 내 이익을 위해 계산해서 하는 일은 또한 무엇입니까?
Q. 주님이 내게 맡기신 구원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자원하여 즐겁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3. 하나님의 제사입니다(16-17절).
Q. 예배를 어떤 마음으로 드리시나요?
Q. 나는 온전한 심령입니까, 상처 입기만 한 심령입니까, 상한 심령입니까?
**** 기도제목
A.
1. 살아난 얘기가 약재료 될 수 있도록 매일 큐티 제목 적기
2. 외부의 것이 더욱 목마르게 한다는 것을 알고 온전한 말씀에만 집중하여 현재를 살도록
B.
1. 인생의 주인이 Totus Christus의 것임을 알고 처소를 지키고 하루만 살도록
C.
1. 가장 큰 죄인이 나인 것을 알고 자세하게 보여 주신 것으로 중보하고 즐겁게 사명 감당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