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설교
2025.08.03 주일예배 사사기 16:15~31 다시 시작하는 힘 (김영수 목사님)
19절
삼손은 오랫동안 아기가 없는 가정에 태어난 당시 슈퍼히어로 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나실인 입니다. 나실인은 포도주와 독주를 먹자 말아야 하고, 죽은 시체를 만지면 안되고, 머리카락을 잘라서도 안되는 3가지 삶의 구별성을 가졌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에 물들지 않고, 구별되어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나실인의 서원을 일반적으로는 삶의 특별한 기간을 두고 하는데, 삼손은 태어날 때 부터 나실인이 었던 것입니다. 나실인의 삶으로 사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한국에 와보니 먹고 싶은게 너무 많습니다. 외모와 겉 모습을 치장해야 하고, 모든게 참 새로웠습니다. 삼손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실인이라는 것이 주변에 알려졌을 것이 분명하니, 조금만 잘못하면 너 나실인이야 했을 것 입니다. 애 어른 처럼 행동하고, 어느 순간 부터는 사람의 시선에 눈치를 많이 봤을 것 같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의 규약을 적용 한 것이 아니라, 적응 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큐티에 적용보다는 적응할 때가 있는것 같습니다. 삼손인 나실인의 행동에 적용이 안되니, 적응이 된 것입니다. 나실인의 삶에서, 해방하려하니 자꾸 인간적인 중독으로, 현실 도피를 하게 됩니다. 그 안식처를 이방여인으로 삼은 것입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자꾸 보고 찾아가게 되는것이 내 신앙이 현주소 인 것입니다. 그것이 내 사람의 우상입니다.
바라 보는 것을 가볍게 여기면 안됩니다. 남자분들은 보는 것에 약합니다. 저도 아내를 보는 순간 저 여인은 내 여인이다 하며 마음이 심쿵했습니다. 지금도 아내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막 뜁니다. 아내가 여보 나좀 봐요 하면 가슴이 더 뜁니다.
남성뿐 아니라, 여성분도 보는 것이 가슴이 뜁니다. 호주는 백화점에 필요한것을 사러 가지만 한국에서는 그냥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는 순간 우상보다 더 강력한 심상의 임재 앞에 충동구매를 하는걸 봅니다.
누구나 보암직하다 라는 아담의 후손들이기에 안목의 정욕이 다 존재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처음부터 안목의 정욕으로 살진 않았을 것입니다. 포도밭에 가서, 포도주를 먹고, 죽은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먹은 것을 보면 이미 나실인의 규례중 2가지를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헌신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으니, 본인이 의지할 것을 찾습니다. 삼손은 힘이었습니다. 돈이든 힘이든 백이든 하나라도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기 어렵습니다.
삼손에게 나실인의 힘은 이런 우월감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으로 충분하다고 하지만 열등감이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찬으로 감사하지만 돈 명예 힘이 없어, 우리안에 열등감으로 찾아 오는 것입니다.
열등감을 벗어 나려고 하나님께서 인생의 한방을 터트려주시길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 밋밋한 크리스찬으로 사는 것이 답답하지 않으십니까?
많은 분들이 어릴때는 부모님을 따라 교회에 다니지만,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 교회를 떠납니다. 정신없이 우상의 덫에 걸려 넘어집니다.
삼손에게도 덫에 걸린 그날이 찾아옵니다. 자신을 사랑한 들릴라가 자신을 팔아 넘기는 것입니다.
들릴라가 참 끈질깁니다. 사단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끈질기다는 것입니다. 이에 삼손이 신앙의 힘 영적인 힘이 밀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표로 선발되지만, 삭발당하는 그의 모습이 이렇게 표현 됩니다.
20절
삭발을 당한 그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삼손의 힘의 비밀이 머리털이었다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떠나신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삼손이 가진 착각은 자신의 힘이 머리털에서 나온다는 것과 내가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거짓된 안정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가장 안전하지만 가장 위험한 곳입니다. 구원받은 은혜없이 다니는 사람에게는 위험한 곳입니다. 거짓된 안정감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머리털이 밀림으로 제 죄를 보고 회개한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국이라는 땅에 문을 열어주셨고,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의지할 것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이 환경은 제가 하나님께 결단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의 마음에 혼자 머리를 밀었습니다. 머리가 엉망이었습니다. 아내를 불러서 머리를 밀어달라고 했고, 아내는 머리가 아닌 살을 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이제는 안되겠다고 하며 미장원에 가라고 했습니다. 미장원까지 3번 머리를 미니 제 삶에서 가장 짧은 머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일을 하면서 삶을 살게 되었고, 목사로서의 저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삼손처럼 머리를 미시고, 날마다 청소하는 챗바퀴 도는 사람을 살게 되었고, 하나님께 하소연 하며 기도했습니다.
제가 청소하는 곳은 기도하는 공간이 되고, 교만을 밀대로 밀며 하나님이 치우시는 회개의 시간으로 바꿔주셨습니다. 그리고 문득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 났습니다. 김목사야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을 깨끗게 하는 청소부가 되게 하리라 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 영혼이 먼저 청소되길 원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청소를 하는 동안 제 영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저의 학업과 사역의 문을 열어주셨고, 놀랍게도 제가 청소의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청소를 시키고, 호주에 이민목회를 하러 부교역자로 가게 되었는데, 놀아운 사실은 호주의 많은 성도들이 생계를 위해 청소를 한다는 것이었고, 제가 그분들은 체훌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게 됩니다.
-나는 말씀으로 사는것이 적응 중입니까? 적용중입니까?
-내 소견대로 살면서도 나의 머리털은 밀리지 않는다는 거짓된 안정감으로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머리털처럼 자랑하던 돈, 명예, 자녀, 학벌, 건강의 우상들이 밀림으로 내 죄를 보고 회개한 적이 있으십니까?
2.사명에 이끌리면 다시 시작합니다.
22절
머리카락이 자랐다고, 화려한 머리카락이 이전처럼 회복되지 않습니다.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싸인 입니다. 그리고 삼손이 이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28절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나의 주 여호와여 나를 생각하옵소서, 제발 구하옵나니 하나님이 이며 한번만 나를 강하게 하옵소서 합니다. 원문에 보면 제발 나의 하나님이여 라는 구절이 2번이상 나옵니다. 그만큼 간절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사건이 오면 제발 한번만 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원문에 보면 하나님이 이라는 단어에 정관사가 붙습니다. 이는 그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삼손이 이전에 만났던 하나님을 부르짖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이 나귀 턱뼈로 천명을 쳐 죽입니다. 그리고 너스레를 떨고 폼잡고 있다가 갈증으로 난리를 치자 하나님이 물이 터져나오게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블레셋을 쳐죽이고, 살아나서 15장 20절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년 동안 지냈더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삼손의 스토리가 끝나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31절에 똑같이 반복합니다.
기도하고 부르짖는 상황이 반복되는데,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하나님앞에서 수고하고 부르짖은 순간만 하나님이 카운트 하셨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삼손의 인생에서 변곡점이 된 이 순간을 우리는 부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부흥입니다. 다시 은혜를 사모하고, 부르짖은 영적 수맥을 파는것 이것이 영적 회복의 시작입니다.
삼손은 더이상 개인적 목마름에 부르짖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삼손애게 이 사건을 통해 사명에 눈을 뜨게 하십니다. 머리털이 다시 자라도록 하는 은혜는 하나님이 그냥 주시는것이 아닙니다. 삼손의 최후가 비참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이끌려 산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다시 힘을 주시고, 다시 살려 주셔야 하나요? 이는 나를 위해가 아니라, 민족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고 사명을 위해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말하십니다. 삼손에게는 흔쾌히 답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의 목마름에는 해소해 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침묵에 예수님은 절규하며 죽으십니다. 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을까요? 우리의 구원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되는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 나의 상황이 삼손이 부르짖었던 그 하나님의 이름을 찾을 때가 아닙니까?
-나는 나의 목마름 때문에 기도합니까? 아니면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합니까?
-다시 힘을 주실 때 내가 진정으로 눈을 떠야 할 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작년에 저는 영국에서 만났던 그 하나님을 다시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민교회에 부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했습니다. 그러다 네팔 현지 목회자 세미나가 있어서 방문하게 되었고, 모든 사역을 마무리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한 네팔 여성 목회자가 오셔서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유방암에 걸렸고, 고침받도록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아내가 한국에 가서 유방암 검사를 받아야 겠다고 합니다. 때 마침 선교 일정이 하루가 줄었기에 한국을 경유해서 호주에 가기로 하고 한국에 들려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고생하는데 무슨일이 있겠나 했는데, 목요일에 의사선생님을 만나자 유방암이라고 합니다. 제 기대와 달리 아내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큰 슬픔이 저를 짖눌렀습니다. 비행기표 때문에 치료를 못하고 호주로 돌아갔고, 성도님들의 기도를 통해 수술을 받았고, 자궁에도 문제가 있어서 자궁적출 수술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부르짖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상황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부교역자님과 장로님들이 교회를 떠나시고, 제 모친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십니다. 계속되는 고난과 슬픔속에 22년전 영국에서 만난 하나님을 다시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저는 불효자입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결혼하고선 암에 걸리게 한 나쁜 남편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겠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말하는 불순종된 종입니다. 제발 이번만 살려주시고, 다시 강하게 해주십시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마음을 주시고, 모든 인생의 여정을 맡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저안에 기쁨과 평안이 왔습니다. 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다시 달려갈 힘을 주세요 그때 놀랍게도 우리들교회와 연락이 닿게 되었고, 김양재 목사님과 띵크 세미나를 하면서 제 안에 하나님이 은혜와 격려 힘을 주셨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힘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삼손은 하나님 나라의 선발로 선출 되었지만 삭발당하고 밀려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시 그를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한 회복으로 소생 시키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동일한 분이십니다. 우리안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답을 찾지 못한다면 도와주실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그분이 오늘도 은혜를 주시면 우리는 살아 납니다.
이번에 한국교회를 오면서 한국교회가 영적 권위를 잃어버렸다 생각하는데, 다른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는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목장모임장소 및 참석인원
:파리바게뜨 삼성카페점 / 목자, 부목자, 목원1,2 (총 4명 참석)
3.기도제목
A.
1. 가족과 목장식구들 영혼 구원을 위해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
2. 신교제와 신결혼 허락해주시도록
3. 커리어에 기름부어 주시도록
4. 온라인 새벽기도회 꾸준히 참여할 수 있도록
5. 매일 말씀으로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6. 운동 꾸준히 할 수 있도록
7. 작업실 출근 성실히 할 수 있도록
B.
1.이번 주 공부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2.큐티하며 말씀으로 하루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도록
3. 1차 시험날까지 체력과 건강 붙들어주시길
C.
내 이익과 욕심이 아닌 하나님 뜻에 맞게 맡겨주신 자리와 사명을 감당해 나갈수 있도록.
D.
1. 건강을 지혜롭게 관리할수 있도록
2.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지혜와 분별력을 주시도록
3.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받은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