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2025.08.03.(주일) 사사기16:15-31 「다시 시작하는 힘」
김영수목사님 (브리즈번한인장로교회)
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18. 들릴라가 삼손이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을 불러 이르되 삼손이 내게 진심을 알려 주었으니 이제 한 번만 올라오라 하니 블레셋 방백들이 손에 은을 가지고 그 여인에게로 올라오니라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 설교 말씀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말씀 앞에 섰습니다. 이 시간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국 교회의 모델 교회인 우리들교회와 또 김양재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의 성도님들을 주님 안에서 만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또 굉장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소개한 대로 저는 브리즈번 한인 장로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영수 목사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김양재 목사님께서 지난 4월에 저희 교회에 THINK 목회자 세미나에 오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큐티를 해왔는데, 그 큐티 책을 <큐티인>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또 저희 교회의 성도님들이 다 <큐티인>으로 교체를 하게 되었고, 또 큐티를 새벽마다 계속 우리 청년들이 새벽기도회를 큐티 본문으로 하고 있었는데요. 보통 새벽 기도가 끝나면 중보기도하고 흩어졌는데, <큐티인>을 나눈다고 새벽 아침에 2시간을 큐티 나눔을 하는 그런 역사가 있어서 직장의 출근이 늦어지고 있다고 이렇게^^. 그리고 어떤 중고등부 부모님은 아이가 아침에 학교를 빨리 가야 되는데 엄마, 나 큐티 해야 돼! 그러면서 학교를 빨리 안 가겠다고 그렇게 얘기하고 있어서, 상당히 곤란하다 뭐 이런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참 목사님이 오셔서 큰 은혜가 있었는데요. 제가 이 큐티하는 이 교회를 와 보니까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들이 살아나고, 또 가정이 회복되고, 또 저희 교회에도 이혼 위기에 있던 가정이 중수되는 것을 본다면 우리들교회를 통하여 또 김양재 목사님을 통하여 또 한국 교회와 또 이민 교회가 살아나는 그런 사명이 여러분들의 우리들교회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곳에 와 보니까요. 우리 큐티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뷰티해 보이시네요^^. 그래서 우리 옆에 분 보고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큐티하시니 뷰티해 보입니다. 뷰티해 보이는 게 아니라 제가 보니까 부티나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습니다. 큐티 하시니 부티 나 보입니다. 시작!
그래서 저는 이 큐티(QT) 정의를 이렇게 내렸어요.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무대에 큐(cue)! 하실 때 티 없이 사는 것이 큐티다.
아멘이십니까? 하나님 앞에 티 없이 살고,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라고 티 내며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티 없이 살려면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죠. 하나님이 힘을 주셔야 가능합니다. 성령으로 도와주셔야 가능하죠.
오늘 본문을 보면 그 힘을 잃은 삼손의 모습으로 시작하고, 그리고 그 힘을 다시 찾은 삼손의 모습으로 끝나는 본문입니다. 삼손의 반면교사와 삼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진면교사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은 왜 삼손이 힘을 잃고, 왜 삼손이 힘을 다시 얻게 되었는가?라는 겁니다. 왜 삼손은 힘을 잃었습니까? 세상에 밀려 삭발당한 것이 분명하죠. 세상에 떠밀리면 이렇게 밀리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세상에 떠밀리면 밀립니다.
우리 19절 다 같이 한번 한목소리로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삼손은 오랫동안 아기가 없는 마노아의 가정에 천사가 잉태한 소식을 알려줌으로 그 가정에 태어난 그 당시에 수퍼 히어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나실인이죠.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나실인은 민수기 6장에 세 가지 규약을 지켜야 될 사람입니다. 포도주와 독주- 포도의 소산물-을 전혀 먹지 말아야 되고요. 또한 그가 죽은 시체 같은 거를 접촉하면 안 되고, 더구나 머리카락을 잘라서도 안 되는 이런 세 가지의 삶의 구별성과 세상과 분별되는 삶의 모습 속에 외향적 모습 속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삶의 모습을 가졌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에 물들지 않고, 구별되어 살아야 될 존재가 나실인이라는 겁니다. 나실인의 서원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정한 기간을 두고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알려주는데요. 특별하게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 되었다는 거예요. 먹고 싶은 대로 먹지 못하고, 입고 싶은 대로 입지 못하고, 외모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또 이렇게 사는 것이 굉장히 쉬울 것 같지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렵다는 거예요.
한국에 와 보니까요. 먹고 싶은 게 너무 많고요. 그리고 외모와 겉모습을 자꾸 치장을 해야 되고요. 그냥 나가면 안 되고요. 또 와서 보니까 뭐 다 신기한 게 너무 많아요. 모든 게 다 새로워 보여요. 만져보고 싶고, 들어보고 싶고, 보고 싶은 거죠. 삼손도 쉽지 않을 것 같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당시에 뭐 먹을 게 있습니까? 포도주 같은 것들... 포도 얼마나 좋습니까? 근데 이런 것들을 실제 하지 못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나실인이라고 하는 것이 뭐 주변이나 부모님이나 또 가족들에게 알려졌을 게 뻔하니까 뭐 조그마한 장난을 치거나 조금만 벗어나면 너 나실인이야! 그랬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외형적으로 벌써 다른 애들과 좀 달라 보이니까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애어른처럼 행동했을 가능성이 높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의 시선에 의해서 행세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 거죠. 삼손은 나실인의 규약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적응하려고 했던 시간이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때로는 큐티의 적용보다는 적응하고 있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큐티를 열심히 하시지만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적응을 해야 되죠. 삼손이 나실인으로 사는 것에 대한 말씀이 적용이 안 되니,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사는데 그게 삶에 적응이 된 거예요. 삼손에게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눈으로 보았다라고 했어요. 그게 적응이 된 거예요. 나실인인 삼손의 해방구를 찾아주려고 하니까 삼손이 추구했던 삶이 뭡니까? 가사나 딤나나 들릴라 여인과 같은 탐닉과 인간에게 대한 중독으로 자기의 삶이 이렇게 점철되게 되죠.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거예요. 나실인로 사는 게 불편하니까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그 안식처를 이방 여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자꾸 보게 되고, 자꾸 머물게 되고, 자꾸 찾아가게 되는 게 나의 영혼의 현주소라는 거예요.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 때 하나님을 찾으면 너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닌 세상에 다른 것을 찾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내 삶의 우상으로 자리 잡은 게 분명합니다.
★여러분, 바라보는 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남자분들은 보는 것에 약하죠. 보는 것에 따라 살기 쉬운 분들이 남성분인데요. 저도 아내를 보는 순간 아! 저 여인은 내 여인이다! 마음이 심쿵 했어요. 그러나 지금도 여러분들 믿기지 못하시겠지만 지금도 아내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이렇게 막 가슴이 막 뜁니다^^. 왜 웃으십니까? 아내가 여보, 나 좀 봐요 하면 가슴이 더 뜁니다. 이번 주에 큐티 말씀을 나누는데 아내가 저보고 이래요. 나귀 턱 뼈로 천 명을 죽인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대답했어요. 당신 말에 뼈가 있다고 ^^ 이제 이러면서 큐티를 나누는데요. 지금 저기에 앉아서 불꽃 같은 눈동자로 저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오늘 가슴이 더 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남성만 가슴이 뛰지 않아요. 여성분들도 보는 것에 가슴이 뛰더라고요. 호주에서는 백화점에 갈 때는 필요한 것을 사러 가요. 근데 한국에서는 백화점에 그냥 가요. 뭐 살 게 필요 없어요. 그냥 가세요. 그런데 그곳에 가는 순간 우상보다 더 강력한 신상(新商)의 임재 앞에 가슴이 뛰시고 지름신이 임하여 카드를 질러버리는 일들이 일어나더라고요! 충동구매의 영이 굉장히 강력하더라고요, 이 한국에서는. 혹시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그냥 가슴이 뛰시는 분들은 빨리 병원에 가시길 바랍니다.
이렇듯 여러분 누구나 보암직하다라고 했던 아담의 자손들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이 안목의 정욕이 다 존재하고 있어요. 삼손이 여러분 처음부터 안목의 정욕으로 살지는 않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나실인이니까~ 우리 크리스천이잖아요. 여러분 그냥 타락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포도밭에 갔고~ 포도주를 먹게 되었고~ 또 그곳에 가서 죽은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찾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그는 벌써 나실인의 규약 두 가지를 다 어겼어요. 이제 하나 남은 게 머리털 밀지 않은 것 정도였거든요. 벌써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에게 없었던 거예요. 여러분 왜 타락하는 줄 아세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사라지면 타락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헌신짝처럼 버려버렸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보니까 본인이 의지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이게 인간의 마음은 그래요. 뭔가 의지할 대상을 하나 찾는데 하나님이 아니고 자기 주먹이었습니다. 그는 힘을 가졌잖아요. 파워를 가졌잖아요. 돈이든 힘이든 빽이 하나라도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기 어렵습니다. 삼손이 그렇습니다. 이 단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분이 있던데 제가 보니까 여기 한국에 와서 동네 한의원에 갔더니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더라고요. 인생은 한방이다.^^ 이 한 방 이거 굉장히 중요하죠. 여러분 삼손에게 나실인의 힘은 이런 우월감을 줍니다. 여러분 한 방이 있으면 좋잖아요. 그런데 한 방이 없으면 다 열등감 느끼잖아요. 오늘 간증도 그렇지만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으로 충분하다고 그러는데 열등감이 있다는 거예요. 크리스천으로 사는 게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돈, 명예, 권세가 없어 열등감에 우리의 마음에 낙심이 찾아온다는 겁니다. 세 사람 중에 한 분은 열등감이 있는 것 같아요, 교회도 보고 성도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래서 여러분, 내가 아닌 것처럼 이 자리에 앉아 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한 번 요청해 봅니다. 여러분을 중심으로 왼쪽편 계신 분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세요. 열등감 있어 보이십니까? 아닙니까? 그럼 오른쪽 분의 얼굴을 보세요. 열등감 있어 보이십니까? 왼쪽도 오른쪽도 아니라면 가운데 앉아 계신 그분이 열등감이 있으신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다 우리는 열등감이 있다는 거예요. 열등감을 벗어나려고 하나님께서 인생의 한 방을 터뜨려 주시길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날마다 성경 봐야죠, 큐티 해야죠, 기도해야죠, 주일 예배 드리죠, 목장 모임, 큐패 가야 되죠, 선교 가야 되죠, 띵크 트립(아웃리치) 가셔야죠... 혹시 밋밋한 크리스천으로 사는 것을 혹시 답답해 하지 않습니까? 뭔가 대박이 나야 되는데~ 내가 이 정도 헌신하는데 하나님이 뭔가 축복하셔야 되는데~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님의 등쌀에 밀려 교회를 가지만 청년이나 대학교를 가고 나서 적잖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이민 교회에도 말할 것도 없어요. 이걸 일명 조용한 탈출이다. 사일런스 엑소더스라고도 해요. 미주 쪽이나 호주 쪽도 마찬가지죠. 대학교에 가면은 축제와 각종 술과 음란한 문화에 빠져 노출되고, 또 직장에 가면 음주 가무와 돈과 성공에 한 방에 노출되어 우리가 정신없이 우상의 덫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이지 않습니까?
삼손도 덫에 걸린 그날이 찾아왔다는 겁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들릴라가 자기를 팔아넘기게 된 거 아닙니까? 그 힘의 비밀을 캐내려고 세 번이나 들들 볶았다라고 적혀 있죠. 16절에 재촉하며 조르며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까지 만드는... 혹시 이런 분하고 사시는 분 계십니까? 쉽지 않죠. 이런 분이 여러분의 아내가 아닌 것은 남편분들은 다 감사하셔야 돼요.
여러분 이건 어떤 모습과 같습니까? 여러분 사탄에게 배울 게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사탄은 끈기를 가지고 있다. 성도들을 집요하게 넘어뜨리는데 대부분의 간증과 고백을 얘기를 들어보면 넘어지는 게 특별한 것으로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그곳으로 계속 넘어지는 거예요.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회개하고 회복했지만 또 넘어지고.
삼손이 영적인 힘이 밀린 겁니다. 이게 신앙의 힘이 밀린 겁니다. 영적인 힘이 밀리니까 어디가 밀려요? 머리털이 밀리는 일들이 벌어졌죠. 하나님 나라의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삭발 당하는 그의 모습이 20절에 이렇게 표현이 되어 있어요.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삭발을 당한 그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삼손의 힘의 출처의 비밀이 머리털 이었다라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이 이미 떠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실인의 규약 두 가지를 어겼는데 굳이 머리털 밀렸다고 하나님이 떠났다 라고 성경이 설명할 리가 없어요. 그럼 첫 번째는 왜 안 떠나셨습니까? 왜 두 번째도 안 떠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삼손이 가진 착각은 이거였다는 거예요. amp#9312 자신의 힘이 머리털에서 나온다는 것과 amp#9313내가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는 거짓된 안정감이었다는 거예요. 내가 모태 신앙인인데~ 우리 아버지 교회 중직자인데~ 내가 그래도 교회 주일은 출석하는데~~~ 이게 거짓된 안정감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교회는 가장 안전한 곳이지만 가장 위험한 곳이에요. 왜 그런지 아세요? 은혜받지 못하고 다니는 사람은 이곳이 위험한 곳이에요. 구원의 확신이 없고 다니는 사람은 이곳은 위험한 곳이에요. 왜? 교회를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기 때문이죠. 삼손이 믿었던 것은 바로 성령의 은혜로 주시는 그 머리털의 비밀이 아니라 자신이었습니다. 머리털의 화려함을 자랑했던 그것으로 그는 수치를 당하고 머리털 뿐만 아니라 두 눈이 뽑히고, 그리고 맷돌을 돌리는 더이상 자기가 보는 대로 살지 못하는 이런 인생의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그가 맞이하지 않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머리털이 밀림으로 저의 죄를 보고 회개한 적이 있습니다. 22년 전에 하나님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저와 저희 아내에게 그런 부르심을 주셨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영국이라는 땅을 문을 열어주셨어요. 그러나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누구의 후원도, 또 언어도 준비가 되지 않았고, 사역지도... 또 의지할 형편과 처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광야 같은 부르심은 저로 하여금 결단하게 했어요. 그래서 호주도 그렇고 뭐 영국도 그랬지만 그 당시 물가가 한국의 물가 2배 이상이었거든요. 환율로 보면 굉장히 쎘던 시기였기 때문에 바리깡을 들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미용소나 이런 데를 절대 안 가려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마음으로 성경에 보면 바울이 이 머리카락을 깎은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보면서 내가 하나님께 결단하며 내가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아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제 머리털을 혼자 스스로 바리깡으로 밀었습니다. 밀고 나니까 모양이 어땠을 것 같습니까? 엉망진창이죠. 들쑥날쑥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아내를 불렀어요. 여보, 내가 머리털을 밀었는데 제대로 안 된 것 같아. 여보 당신이 좀 밀어줘. 제 아내는 제가 부탁을 하자 제 머리털을 밀린 게 아니라 제 살을 밀기 시작했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 아내는 절대 들릴라가 아니다. 그 머리털이 그렇게 되니까 어떻게 해요? 제 아내가 여보,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당신 여기 미장원에 가라고 그래서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다듬었는데 하루 만에 머리를 세 번 밀리게 되자 제가 이때까지 살면서 그렇게 머리카락이 짧아 본 적이 없었어요. 군대 갈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바울처럼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삼손처럼 제 머리를 미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영국 생활은 새벽기도 대신 새벽 물류 창고 청소부터 시작하고, 오후에 심방과 말씀 연구 대신 오후에 학교 청소로 가정의 생계와 삶을 책임지게 되었어요. 목사로서의 저의 자존감과 소명감은 완전히 바닥을 쳤습니다. 저는 청소 시간마다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어요. 하나님 아버지, 저를 영국 땅까지 불러주시더니 삼손처럼 머리를 미시고, 이제 날마다 청소해야 되는... 맷돌처럼 이걸 돌리게 만드시네요. 쳇바퀴 도는 삶을 살게 만드시네요. 어느덧 그렇게 하나님께 하소연하며 기도하는 동안 제가 청소하는 그 장소는 기도하는 골방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날마다 저의 교만을 밀대로 밀고, 인정중독에 걸려 있던 저의 걸레 같은 마음을 날마다 닦고, 하나님이 깨끗이 치우시는 회개의 시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이런 말씀이 생각났어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하시죠. 베드로야,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때 이 말씀이 저에게 이렇게 들려졌어요. 김 목사야,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을 깨끗케 하는 청소부가 되게 하리라. 아! 제가 깨달았어요. 사람들을 깨끗게 하고 정결케 하는데 그 부르심을 받아 왔다면 하나님은 원하는 게 뭐냐? 내가 먼저 영혼이 청소되기를 원하셨던 것이죠. 더욱 하나님 앞에 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청소 시간이 길어진 만큼 청소하는 동안 제 영혼은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더욱 하나님을 열망하게 되었고, 거룩을 열망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그 뜨거움이 회복되는 것을 제가 경험할 수 있었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저의 학업과 사역의 문을 점점 열어주셨는데 근데 놀랍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제가 다른 은사가 있다는 걸 발견하였어요. 뭐냐면 청소에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어요! 지금도 이제 선교관에 머물고 있는데 선교관을 아주 깔끔하게 청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청소시키고 호주에 이민목회로 부교역자로 거기 갔었는데 제가 놀란 게 있었어요. 호주의 많은 성도들이 생계를 위해서 청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알았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공감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체휼하도록!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앞에 나올 수 있는 똑같은 저도 청소해 봐서 알아요. 여러분 이 말이 굉장히 공감되잖아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사실이죠. 저는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적용 질문드릴게요.
Q. 나는 말씀으로 사는 것에 적응 중입니까? 적용 중입니까?
Q. 내 소견대로 살면서도 나의 머리털은 밀리지 않는다는 거짓된 안정감으로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Q. 머리털처럼 자랑하던 돈, 명예, 자녀, 학벌, 건강의 우상들이 밀림으로 내 죄를 보고 회개한 적이 있으십니까?
머리털이 밀리고 두 눈이 뽑힌 사람. 여러분 다 끝난 것 같죠? 볼 장 다 본 거잖아요. 그런 삼손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이제 삼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까?
사명에 이끌리면 다시 시작합니다.
그것은 사명에 이끌리면 다시 시작합니다. 22절을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아멘! 머리털이 다시 자란다는 것이 이제 와서 무슨 도움이 됩니까? 두 눈 뽑히고, 맷돌 돌리고, 힘은 하나도 없고. 그는 평생 머리털을 자르지 않았습니다. 이제 뭐 몇 개월 정도밖에 안 됐을 것 같아요. 시간의 흐름을 보면요. 화려한 머리카락이 이전처럼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머리털이 자랐다고 하는 것이 완전히 자라려면 그의 인생 살아온 만큼 시간을 기다려야 돼요. 그게 회복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힘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죠. 물론 우리 사회 보신 이성훈 목사님처럼 이 성경 구절이 머리카락 없는 분들에게 소망의 말씀은 분명할 거예요.^^ 저도 요즘 머리카락이 막 빠지기 시작하는데 소망의 말씀이에요.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얼마나 좋은 말씀이에요. 머리털이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사인이죠. 자비가 임하자 삼손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오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28절에 이렇게 고백하죠.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본문을 히브리 원문으로 직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나의 주 여호와여 제발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제발 구하옵나니 그 하나님이여!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원문에 보면요. 이 제발! 제발! 도와주소서!라고 하는 표현이 두 번 이상 나오는 것으로 이 기도는 굉장히 간절한 부르짖음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잖아요. 인생이 밀리면 제발! 하나님! 이번 한 번만 딱 도와주세요! 한 번만 밀어주세요! 아버지, 한 번만 함께해 주세요! 그런 기도의 카드를 염치 불고하고 여러분 내놓지 않으십니까? 원문에 보면요. 이 하나님이라는 단어에 히브리어의 정관사가 붙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에요. 그 하나님이라는 뜻은 뭡니까? 삼손이 지금 전혀 모르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만났던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20년 전 사사기 15장에 보면요. 삼손이 라맛 레히에서 블레셋 사람과 만나 전투를 벌일 때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쳐 죽이죠. 그리고 내가 천 명을 죽였다고 너스레를 떨고 이렇게 폼 잡고 있다가 갑자기 급한 갈증으로 인하여 목말라 죽겠다고 난리 법석을 피웁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한 곳에서 우물의 샘을 터져 나오게 하셔서 그가 목마른 상황을 해소 받고 갈증에서 살아나게 되므로 부르짖는 자의 샘 엔학고레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죠.
그렇게 기도하고 블레셋을 쳐 죽이고 살아나서 15장 20절에 보면요. 이렇게 끝나요. 삿15: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지냈더라 이렇게 되면요. 보통 사사기의 일반적인 사사기 패턴에 의하면 사사기가 여기서 이 삼손의 스토리가 끝나야 돼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세요. 31절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똑같이 반복하고 있어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그 장면에 똑같은 상황이 연출 되죠. 어떤 상황일까요? 기도하고 부르짖는 상황에서 그의 인생을 하나님은 사사로 20년 동안 있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 부르짖고 의지한 것만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삼손의 시간이었다는 거예요. ★사명을 위해 기도하고 수고한 것만 하나님께서 카운트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주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너 뭐 하다 왔니? 이렇게 물어보면 할 말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게 뭡니까? 내가 주를 위하여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게 우리가 할 말이잖아요. 삼손에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는 거예요. 기도하고 부르짖었더니 바로 그곳에서 사사로 20년 동안 있었더라. 사사기 15장에서 간절히 기도했던 그가 20년 지난 인생의 한 변곡점에서 다시 하나님을 찾은 모습. 이것을 우리는 뭐라고 말할까요? 이것을 부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리바이벌! 다시 살아나는 게 뭘까요?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 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되고,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거? 그거 아닙니다. 성경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말씀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회개함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아브라함 때 맡겼던 우물을 블레셋이 덮었던 우물을 이삭이 창세기 26장에 보면 계속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파요.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도 파요. 그걸 뭐라고 표현하느냐? 부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은혜를 사모하고 부르짖는 영적 수맥을 파는 것이 영적 회복의 첫 단추예요. 다른 게 아니에요. 내가 받았던 은혜가 기도였다면 기도의 우물을 파는 겁니다. 광맥을 캐는 겁니다. 말씀이었다면 말씀을 통하여 내 영혼을 살려내는 겁니다. 삼손은 더 이상 개인적 목마름에 부르짖지 않죠. 하나님이 그 영혼을 살리심으로써 그의 눈은 어두워졌으나 그가 비로소 보게 된 게 있어요. 사명의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사명이 있다면 아직 끝나거나 실패한 인생은 아니에요. 머리털이 다시 자라도록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냥 주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왜 많은 사람들이 간증을 듣습니까? 왜 고백을 합니까? 그 간증으로 이때까지 하나님이 도와주셨다. 그걸로 끝나기 위해서가 아니죠! 이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은혜를 주신다면 그것은 사명을 이루기 위한 거예요. 그가 살았을 때보다 죽었을 때 더 많은 사람을 죽였다. 이게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블레셋을 쳐 죽이는 게 그의 사명이었어요.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앞에 그 은혜의 힘에 밀려, 그의 은혜의 힘에 이끌려 삼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믿음으로 살고 비참한 최후처럼 보이지만,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전당에 그 이름이 당당히 올라가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 ★회복의 목적은 평안이나 행복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다시 힘을 주시고 왜 나를 다시 살려주셔야 합니까? ★그것은 나의 목마름을 위해 기도하는 인생이 아니라 이제 교회와, 국가와,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신 거 아시죠? 피와 땀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기도하신 예수님, 당당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던 예수님이 십자가의 상에서 이렇게 외치지 않았습니까? 내가 목마르다. 내가 목마릅니다! 삼손이 부르짖을 때 그렇게 흔쾌히 대답하셨던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죽어가는 순간에 주님, 목마릅니다. 어째서 예수님의 목마름은 갈증을 해소해 주지 않으십니까? 만약 해소해 주지 않으신다면 예수님은 그 갈증을 느끼셨고, 그것은 하나님의 침묵으로 고통받으시며 절규하셨잖아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렇게 절규하며 죽으셨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을 위해서입니다. 이 땅에 계셨을 때보다 자신의 죽음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거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끝나지 않았잖아요. 여러분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선물이 우리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다는 거죠. 예수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 여러분 적용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적용질문입니다.
Q. 지금 나의 상황이 삼손이 부르짖었던 그 하나님의 이름을 찾을 때가 아닙니까?
Q. 나는 나의 목마름 때문에 기도합니까? 아니면 사명을 이루기 위해 기도합니까?
Q. 다시 힘을 주실 때, 내가 진정으로 눈을 떠야 할 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힘을다시 주신다면! 하나님이 오늘 다시 도와주신다면!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면! 다시 한번 일으켜 주신다면! 여러분, 뭐에 눈 떠야 되세요? 사명입니다!
작년에 저는 삼손처럼 22년 전 영국에서 만났던 그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처받고 어려운 이민교회. 여러분 이민교회는 굉장히 한국 목회보다 좀 많이 어렵습니다. 그곳에 담임 목사로 부임하여 8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성장을 하였습니다. 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세워가고자 복음전파 선교에 매진하게 되었는데요. 때마침 이 네팔 현지인 목회자 세미나가 있어서 그 집회를 인도하고자 저희 아내와 같이 방문하였습니다. 작년 3월에. 그곳에서 모든 집회가 끝나고 이제 모든 사역을 마무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는데요. 한 네팔 여성 사역자가 다가와서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어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습니다. 무슨 기도 제목입니까? 목사님, 제가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이 유방암에서 고침 받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저와 저희 아내 또 현지 사역자와 함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치자마자 제 아내가 저에게 대뜸 이런 얘기를 해요. 여보, 나 한국에 가서 유방암 검사를 좀 받아야 되겠어. 당신 전에도 많이 받았는데 아무 이상 없었잖아? 그런데 뭔가 내가 다시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마침 이 선교 일정이 하루가 줄어든 상황이에요. 비행기 표 때문에. 그래서 한국을 경유해서 호주로 가는 것이 또 일정상으로 가능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런 시간을 주셨다고 생각하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월요일에 도착해서 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검사를 받고 목요일 날 결과를 기다리는데 제 속으로는 이렇게 고생하고 제가 (우리 아들도 오늘 같이 왔는데) 아들도 못 보고 부모님도 못 보고 이렇게 고생하는데 하나님 무슨 일 있겠느냐? 이런 마음으로 답변을 기다렸는데 목요일에 의사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유방암입니다. 제 기대와 달리 제 아내는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었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큰 충격과 슬픔이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래도 비행기 표가 금요일 저녁이라 치료든 뭐든 할 수 없어서 호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교회 성도들의 도움과 또 하나님 은혜로 수술을 하게 되었고, 또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났는데 병원의 소견이 저희 아내가 유방암이었지만 또 자궁에도 문제가 있다고 그래서 3개월 뒤에 자궁 척추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하나님께 새벽마다 강단에 엎드려서 기도했습니다. 교회가 부흥함으로 교만했던 제 마음을 주님 회개합니다. 그리고 한 영혼 한 영혼을 돌보지 못했던 저의 완악함을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면서도 상황은 더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점점 나빠졌어요. 교회에서 그렇게 믿고 신뢰하고 동역자라고 생각했던 부교역자와 장로님들이 교회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교회를 떠나버리고, 그리고 갑작스럽게 시골 한 모퉁이에서 영혼들을 살리겠다고 늦은 나이에 교회를 개척했던 제 모친께서 갑작스럽게 8월에 돌아가십니다. 저는 계속되는 고난과 슬픔 속에 22년 전 광야 같은 그곳에서 만나주셨던 하나님을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저의 어머니를 임종도 못 지키는... 이민 목회한다는 핑계로 찾아뵙지도 못하고, 어머니의 마지막도 보지 못한 불효자입니다. 주님, 저는 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결혼해 놓고서 암을 걸리도록 돌봐주지 못했던 나쁜 남편입니다. 하나님, 저는 충성되이 내 생명 다하겠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고백했지만 이제는.. 하나님 저 그렇게 이제는 하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불충성한 주의 종입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회개합니다. 하나님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이젠. 제발 제발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살려주옵소서! 다시 힘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은 제 마음에 이 모든 목회를 다 맡겨라. 교회도, 미래도, 가정도 하나님만 의지해라. 그런 마음을 저에게 주시고 그렇게 모든 인생의 여정을 맡기니 주님이 제 마음의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주시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힘 주시지 않으면 더 이상 못합니다. 다시 시작할 힘을 좀 주세요. 다시 달려갈 힘을 주세요. 때마침 그때 여러분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들교회와 연락이 닿게 되었고, 또 김양재 목사님을 통해서 이렇게 THINK 세미나를 하면서 하나님이 제 마음과 영혼에, 저희 가정에 큰 회복과 위로와 격려를 주시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다시 시작하는 힘!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다시 살아나는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삼손은 하나님 나라의 선발로 선출되었지만 삭발 당하고 밀려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발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은 그를 다시 회복시키셨어요. 목마름에 대한 회복이 아니에요. 내 갈증의 회복이 아니에요. 내 인생의 체험의 회복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명을 위한 회복으로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그분은 동일하신 분입니다.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그 분이 부르짖는 자에게 다시 시작하는 힘을 주십니다! 오늘도 여러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답을 찾지 못하고 어떠한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여러분 도와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그분이 오늘도 은혜를 주신다면 여러분 우리는 살아납니다. 그분이 오늘도 말씀하시면 살아납니다! 하나님 은혜의 힘을 주실 때 나를 향한 사명을 이루어 달라고 한번 부르짖어 보세요. 삼손처럼 머리털이 밀려버린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국가와 이 민족을 위해 여러분 다시 시작할 힘을 하나님이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한국 교회를 오면서 한국 교회가 영적 권위를 잃어버렸잖아요. 많은 세상에 사람들에게 조롱과 어려움을 당하잖아요. 혹시 여러분의 가정도 그렇잖아요. 다른 게 없어요. 우리 힘으로 회복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가능한 거예요. 하나님 바랍니다. 다시 살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흥케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그렇게 부르짖음으로 다시 회복시키는 그 하나님의 은혜의 힘을 갖고 이뤄나가는 승리하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 같이 찬양하며 나가시겠습니다.
*** 적용질문 정리
왜 삼손은 힘을 잃었습니까?
1. 세상에 떠밀리면 밀립니다.
Q. 나는 말씀으로 사는 것에 적응 중입니까? 적용 중입니까?
Q. 내 소견대로 살면서도 나의 머리털은 밀리지 않는다는 거짓된 안정감으로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Q. 머리털처럼 자랑하던 돈, 명예, 자녀, 학벌, 건강의 우상들이 밀림으로 내 죄를 보고 회개한 적이 있으십니까?
삼손이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까?
2. 사명에 이끌리면 다시 시작합니다.
Q. 지금 나의 상황이 삼손이 부르짖었던 그 하나님의 이름을 찾을 때가 아닙니까?
Q. 나는 나의 목마름 때문에 기도합니까? 아니면 사명을 이루기 위해 기도합니까?
Q. 다시 힘을 주실 때, 내가 진정으로 눈을 떠야 할 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 기도 제목
A.
1.생명의 말씀에 집중 하고 큐티 제목 적기
2.생명이 아닌 것 거절 하고 문 닫기
3.양교 시작해보기
B.
1.작은 것도 묻는 적용
2.힘빼기
3.앙교청강
C.
1.직장이 아니라 사명이 무엇인지 묻고 기도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