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7.(주일) 사사기11:29-40 「돌이키지 못할 일」
손윤상목사님 고별설교
29.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사랑하는 하나님, 우리가 그렇게 은혜를 받고도 돌이키지 못할 많은 일들을 저지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고 다시 돌이켜 살아나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원주의 남자 손윤상 목사입니다. 제가 이제 개척 준비로 오늘 사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별 설교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전히 되었다 함이 없지만 우리들교회를 통해서 사람을 만들어 주시고, 목회자로 양육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담임 목사님과 여러 성도님들의 사랑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계속 이렇게 원주에 개척되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지난 주일에 언어의 연금술사 목사님의 설교를 우리가 다 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이렇게 수준이 너무나 처참해요. 오늘 주일 본문이 이제 사사 입다인데 아, 개척하는데 나는 헐벗지는 않겠구나.^^ 뭐 이 정도로만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수준이 이제 처참합니다.
입다 이름의 뜻이 그가 여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개척을 열어주셨습니다. 개척 1호입니다. 주님이 여시면 이제 닫을 자가 없다라고 하시는데, 강원도에 영혼 구원하는 도피성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이 사사기를 묵상하면서 당혹스러움을 느끼신 적 없으십니까? 뭐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시는가? 이런 생각을 아마 하셨을 것 같습니다. 별 인생이 없다고 우리가 그렇게 양육을 받아도 지독한 고정관념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도자가 되려면 뭔가를 좀 갖춰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저는 이제 교역자 중에 깡패는 아니지 않는가? 하면서 사실 이렇게 무시하는 마음이 제 마음 가운데 있었어요. 어느 분들은 이제 학벌은 있어야지 하면서 공고는 아니지 않는가 이런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담임 목사 면접을 보는데, 이제 학벌도 학벌이지만 아버지 어머니 둘 다 신앙이 있어야 되고, 아버지는 장로님 이상이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홀어머니 밑에서 가정 교육이 제대로 되었겠는가? 이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지독한 고정관념과 차별이 있어서 사사들을 볼 때 당혹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지만 우리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모습이 딱 이 사사와 흡사하게 닮아 있어요. 한 주간 저는 입다를 묵상해 보았는데, 입다가 딱 나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주변에 보면 에훗 집사님도 계시고, 삼갈 장로님도 계시고, 드보라 목자님도 계시고, 기드온, 입다, 삼손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연약한 인생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담으셔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우리 가운데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이 연약한 인생이 생명 되신 하나님을 의뢰해야 함을 사사기는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써주시는 것만 해도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왜 내게는 이런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가? 이렇게 말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자기 주제를 알아야죠. 가시나무만 이제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해 가지고 '내 그늘에 쉬어라.' 그늘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내 그늘에 쉬어라.' 진짜 그늘이 있는 백향목을 불로 사르는 것을 우리가 다 봤지 않습니까? 자기 주제를 알아서 허락되는 만큼, 안 되는 만큼 회개하면서,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오늘 입다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기름 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해서 제목처럼 돌이키지 못할 큰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가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돌이키지 못할 일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돌이키지 못할 일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첫째로
야망이 아니라 사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9-31절)
29.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라고 말씀합니다. 어제 말씀에 이제 입다는 암몬과 전쟁하지 않고 이제 설득해서 전쟁을 멈추려고 했지않습니까? '이건 너희 땅이 아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쫓아내시면서 우리 가운데 준 땅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왜 너희가 빼앗으려고 하느냐?' 라고 입다가 이렇게 설득함으로 전쟁을 피하려고 했어요. 그럼 이렇게 친절하게 설득을 하면 암몬이 이제 전쟁을 거두어 주면 좋겠잖아요. 그런데 완악하게 반응했습니다. 끝까지 전쟁을 하려고 했어요. 물러서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이제 미디안과 싸우기 전에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완악한 암몬과 싸울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주셨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암몬이 완악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암몬을 감내할 만한 힘을 주시기 때문이에요. 성령을 부으셔서, 능히 감당할 만한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원주에 개척하러 가는데 원주에는 신천지에 제일 큰 지파가 있습니다. 빌립 지파가. 그런데 저희 교회 앞에 있어요. 개척 환경이 척박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제 어려운 일이 있을까 '목사님 개척하면 힘드시겠어요.' 이렇게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가 않습니다. 감내할 수 있는 그날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성령을 이제 그만큼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척박한 환경이 이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힘든 환경일수록 하나님께서 비밀한 말씀을 열어 보여주시고, 감내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그냥 갑절로 주시는 거죠. 힘든 만큼. 그래서 힘든 배우자, 힘든 자녀, 완악한 직장 상사를 만나는 것.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사람을 주셨습니까?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주눅 들 게 없어요. 왜냐하면 이제 능히 감내할 만한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제 암몬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가? 이게 이제 문제인데 이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이런 상황 앞에 내 안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하나님을 외면하는 완악함이! 그런 야망이! 진짜 문제라는 것이에요. 진짜 적은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암몬과의 전쟁은 짧게 말씀에서 다룹니다. 그냥 쑥 하고 지나갈 만큼 짧게 다루십니다. 그런데 입다가 서원한 것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공하고 전쟁에서 승리하기보다 하나님은 입다 안에 끊임없는 악을 다루셔서 거룩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에 더 관심을 갖고 계신 것이죠. 우리 30절에서 31절 말씀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입다가 전쟁하기 전에 갑자기 뜬금없이 서원을 해요.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입다가 하나님 앞에 감사와 복종을 다짐하는 소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거래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거래하는 것 자체도 불신앙입니다. 기복적인 신앙이죠. 그런데 인신 제사를 드리겠다라고 서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제 영접한다라는 단어는 이제 사람에게만 쓰는 말입니다. 가축이 오면 가축을 잡으려고 했다는 말이 있지만 이 영접하다라는 말은 사람에게만 쓰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인신 제사를 드리려고 했다는 거죠. 인신 제사는 이 가나안 사람들, 암몬 사람들이 하는 제사인데 레위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하고 있고, 그런 자는 돌로 치라고-죽이라고- 할 만큼 하나님이 경멸하시는 일인데 입다가 이상하게 이걸로 이제 서원을 한 겁니다. 거래를 한 것이죠. 왜 이런 서원을 입다가 갑자기 했을까? 하나님의 영이 임하셨는데도 불구하고요. 이 서원을 한 때를 이제 생각을 해보면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났습니다. 이때는 이제 므낫세에서 전쟁할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입다가 우리 함께 암몬을 치러 갈 사람을 모았어요. 근데 므낫세 사람들은 이제 순종함으로 기쁨으로 전쟁에 참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길르앗 미스베로 이제 가서 오늘 말씀 말고 내일 말씀을 보면 12장 3절의 말씀을 보면 에브라임 지파의 군사들을 모았던 것 같아요. 군사들을 모으려고 했는데 에브라임 지파에서 그걸 거부한 것입니다. 전쟁하러 가지 않겠다고 한 것이에요. 사실 이제 므낫세 지파보다 에브라임 지파가 가지고 있는 군사의 수가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더 큰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이 에브라임 지파가 거절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이제 걱정이 되는 거죠. 이 사람들이 나와 함께하지 않는 것 자체가 큰 위기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까 그전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던 암몬의 군사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입다가. 암몬의 군사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군사의 숫자는 너무나 초라하게 보이면서 그가 이끄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불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전쟁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이 전쟁에서 내가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불안이 찾아오면 어떻습니까? 미래에 대한 불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찾아오면 어떨까요? 그러면 확실히 해소할 것을 얻기 위해서 그가 무언가를 두리번거렸을 거예요. 그중에 이제 가장 생각했던 것이 확실한 무언가를 얻어야 되겠다라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이상한 서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인신 제사를 드리겠다고 한 것이죠. 담임 목사님께서 평안할 때의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어려운 일 앞에 진짜 믿음이 나온다라고 하셨듯이 내가 예측했던 것과 다른 일이 일어날 때는 우리가 어떻습니까? 내가 예측했던 것과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일들이 일어나게 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전쟁에 나아가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기대함으로 선포하면서 나아가야 돼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죠.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실 것만 같고 책임져 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에요. 입다는 이제 불안 앞에 자신의 마음이 변질돼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이 싸움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싸움이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싸움이라고 이렇게 고백을 했는데 그런데 이게 불안이 찾아오게 되니까 변질이 돼 버린 거예요. 내가 이끌어야 되는 싸움이 돼 버린 것이고, 내가 책임져야 되는 싸움이 돼 버린 것이고, 어떻게든 보여야만 되는 싸움이 되어 버렸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자신의 싸움인 것처럼 하나님을 조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거래하면서, 딜하면서, 하나님 앞에 베팅하면서 하나님 나를 도와주셔야 된다고, 이 싸움은 마치 나의 싸움입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입다가 서원을 한 것이죠.
야망이라는 것이 이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야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큼, 하나님이 주신 만큼 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야망입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기준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 그것이 야망인 것이죠. 하나님은 소 모는 막대기로 600명을 죽이시고 3만 2천 명이 아니라 300명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 분이신데 입다가 그것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서 자신의 싸움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불안하면 이상하게 이제 옛 습관이 툭하고 튀어나와 버립니다. 입다의 어머니가 가나안 기생이었고, 입다가 또 이방 돕 땅에서 이렇게 지내면서 가나안 가치관이 이렇게 그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불안하다 보니까 툭 하고 이제 가나안 습성이 그대로 이렇게 나와버리게 된 것입니다. 불안하면 이상하게 이제 우리에게 옛 상처와 옛 습관이 나오면서 하나님이 언제 나와 함께하셨냐는 모습들을 우리가 보일 때가 있다라는 거죠. 갑자기 내 삶의 급여가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들이 이제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나님 너를 책임져 줄 것이라고, 내가 가는 길에 너와 함께 할 거라고, 자족하는 것이 은혜라고 말씀을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주식신이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고, 노후보장신을 이제 찾게 되는 겁니다. 직장 상사가 갑자기 인정이 아니라 쓴소리를 하면 불안해 가지고 이제 견디지를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지금까지 지켜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집에만 딱 돌아가면 이제 혈기와 신경질이 이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집에서 춤추고 있는 딸이 이제 고생을 하는 겁니다.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내 뜻과 예상이 빗나가는 일이 있으면 우리가 중독의 신을 찾아서 위로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불안을 잘 다루어야 돼요. 불안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불안을 잘 다루어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렇게 임해도 불안 하나 때문에 사명을 잃어버리고 야망으로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안할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불안이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과거를 이제 기억을 해야 합니다. 과거를 기억을 해야 돼요. 사람의 환경과 사람의 관계는 연약합니다. 늘 영원할 수가 없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연약합니다. 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환경과 사람과의 관계죠. 예측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셔서 지금까지 우리를 도우시지 않습니까? 내가 어떠한 모습을 갖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밖에 할 것이 없는데 지금까지 하나님이 도우신 걸 생각하면 우리가 담대하게 믿음으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우리가 우리들교회에서 이제 외부 강사님들이 오실 때 우리가 자주 듣지만 목회자는 이제 얼마나 사람이 모일까라고 하는 수에 대한 불안도가 있는 것 같아요. 수에 대한 불안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더하시더라, 그 수를 더하시더라 뭐 이런 말씀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제 개척을 준비하면서 내가 원하는 생각대로 이렇게 수가 착착 하고 이렇게 와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근데 그렇지가 않다는 거죠. 늘 이제 수에 대한 염려와 불안을 갖고 있습니다. 늘 이제 물어보는 말이 '몇 명이 모입니까?'라고 하는 말들이 있기 때문에 불안도가 있어요. 제가 하나님 앞에 이제 개척을 이제 명받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많은 수가 모일 것이라고 하는 약속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한테 주셨던 마음이 무엇이냐 하면 한 영혼에 대한 마음이었어요.
제가 기도를 하는데 작년에 이제 제가 원주에 한 성도님의 부탁으로 자신의 아들이 간경화에 걸렸는데 아들이 집에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들을 좀 만나보고 싶은데 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목사님 좀 같이 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라고 이렇게 요청하셨어요. 제가 이제 그 말씀을 듣고 같이 이제 그 집사님과 그 형제의 집으로 이제 찾아갔는데 막 문을 두드렸습니다. 근데 문을 두드렸는데 인기척이 있는데 이제 어머니가 이제 오셨다는 이제 말을 들으니까 문을 열어주지를 않는 겁니다. 그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리면서 문을 좀 열어달라고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말씀을 드렸는데 결국은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냥 돌아갔던 일이 있어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그때 그 사건이 이제 제 마음 가운데 떠오르면서 개척할 때 첫 번째로 그 사람이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제 마음 가운데 주셨어요. 이것이 맞는 마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근데 그 어머니께서 이제 개척 기도 모임에 같이 오셨습니다. 그 오신 것을 보면서 이게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제 개척을 준비하면서 이분 집에 이제 연락처를 받고 이분 집을 늘 찾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 인기척이 있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문자 보내고 '저는 이제 손윤상 목사인데 한 번만 만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는데 답이 없는 거예요. 그걸 제가 이제 세 번을 이제 찾아가서 문을 드렸는데 답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맞나? 왜 이렇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가? 우리 교회 이제 시작할 때 교회를 개척할 때 이 영혼을 놓고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네 번째 갈 때는 아내랑 같이 갔는데 아내가 갈 때 음료수를 하나 사 들고 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문도 안 열어주는데 무슨 음료수를 사 들고 가냐?' 내가 그랬더니 아내가 문 앞에 놓고 가면 되지 이렇게 얘기를 해서 '아, 맞네' 해 가지고 음료수를 사고 문을 두드렸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문 앞에 음료수를 두고 사진을 찍어서 왔다 간다고 이렇게 얘기를 했더니 문자가 저한테 온 겁니다. 자기가 지금 입원했는데 그 음료수를 먹지 못하니까 들고 가라고. 이렇게 문자가 온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 그러시냐고 그 병원이 어딘지 제가 좀 알고 싶다고 좀 알려주시면 좋겠다'고 했는데 알려주지를 않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문자를 통해서 대화가 열린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이제 여덟 번째 기도 모임 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연락이 오도록 우리가 기도하자고. 이 형제가 연락이 오도록. 몸이 어떤지 우리가 알지 못하니까 연락이 오도록 우리가 기도하자고 이렇게 기도했는데 화요일 날 바로 연락이 오는 겁니다. 화요일에 연락이 와서 뭐라고 하냐면 '지금 자기가 응급실에 있는데 보호자가 돼 줄 수 없겠느냐'고 저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이제 원주에 있는 그 큰 병원에 이제 달려가서 응급실로 이제 달려가서 그 형제를 보니깐 그 형제가 그냥 처음 본 느낌이 아닌 겁니다. 기도하다 보니까. 마치 익숙한 사람처럼 이제 손을 잡고 '제가 형제를 위해서 우리 교회가 기도하고, 어머니 기도하고 있는 거 알지요?' 라고 하니까 어린아이와 같이 우는 거예요. 어린아이와 같이. 그러면서 제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자고. 간경화가 일어나서 복수가 이만큼 찼는데 아직 그래도 얼굴에는 이제 황달 증상이 없어서 이 복수만 빼내면 퇴원을 할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소망을 두자라고 얘기하면서 예수님 영접하고 교회 나와야 된다라고. 내가 이제 우리들교회 개척을 하는데 원주에 1호 성도가 좀 됐으면 좋겠다고 제가 그 얘기를 하니까 어디 교회가 어디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 저기에 있다고 얘기를 하니까 '버스 타고 갈 수 있네요.' 딱 이렇게 하면서 '내가 그 교회에 가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이제 퇴원하고 저랑 밥도 먹고, 이제 가정으로 이제 돌아가서 어머니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건강을 회복하도록 이제 기도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사실 이제 내 눈앞에 보이는 야망으로 생각하면, 숫자나 상황과 환경에 내가 주인 되어서 그 모든 것들을 끌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을 따라 믿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놀라운 일을 발견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불안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셔야 돼요!! 불안할 때 나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불안할 때 내게 나오는 옛 습관은 무엇인가요?
Q. 세상 앞에서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 묵상하며 살아가나요?
Q. 세상을 두려워하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Q.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마음을 찢고 회개해야 합니다. (32-35절)
32절에서 33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여러분,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는데 대승을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것과 매우 크게 무찌르는 것은 시간 간격이 있지만 같은 말씀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매우 크게 무찌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시간을 이제 인내함으로 손발이 가는 순종을 하면서 지내야 하나님께서 정말 약속대로 이루셨다는 것을 이제 보게 되는 거죠. 수고가 따라야만 되는 일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런 승리가 입다가 이제 믿음이 좋아서~ 입다가 전쟁을 잘해서~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입다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방법을 붙드는데도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 것은 입다 개인의 일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한 것이라는 거죠.
제가 이제 설교할 때 아내랑 싸우는 때가 있고, 아이에게 혈기를 부릴 때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이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들어요. 내일 설교 어떻게 해야 되나? 이렇지 싶은데 이상하게 설교 강단에 올라가면 그날 더 은혜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가 있어요. 아 그럼 매일 싸워야 되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께서 모여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설교자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믿음 좋고 잘나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입다는 이 승리를 보면서 바로 회개를 해야 됐습니다. 아! 하나님이 작은 수로도 승리를 주시하는구나! 사람에게 이 전쟁이 달려 있지 않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구나! 내 야망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이구나! 이렇게 회개하면서 나가야 되는데 이런 깨달음이 없어서 입다에게 비극이 찾아오게 됩니다. 34절의 말씀 보면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입다가 이제 고향에서 이제 쫓겨났는데 돕 땅으로 쫓겨났잖아요. 그런데 전쟁에 나가게 되면서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그의 기업이 이제 회복이 되었어요. 미스바의 이제 아버지의 집으로 정말 가게 된 것입니다. 기업을 이제 회복한 것이죠. 그가 이제 전쟁을 마치고 집에 이를 때 그가 서원했던 것들이 이제 생각이 났을 겁니다. 그가 이제 그 서원이 생각나면서 문 앞에 먼저 만나기를 원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가 누구를 만나기를 원했을까요? 이것을 이제 강조하기 위해서 '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보라'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제 나타낼 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예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낼 때 보라라고 하는 단어를 씁니다. 이렇게 이제 입다가 그 문 앞에서 이제 누구를 만날까?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나와야 하나? 그러면 이제 새 장가를 이제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 ^^ 아니면 이제 내가 이제 사랑하지만 이제 종들이 이제 나와서 그 종이 이제 희생을 치러야 되나? 이렇게 생각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입다가 이제 너무나 완악하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서원을 회개하려면 그것으로는 안 됐던 것 같아요. 아내 가지고는 안 됐던 것 같아요. 종 가지고는 안 됐던 것 같아요. 그가 제일 사랑하는 딸! 무남독녀라고 합니다. 무남독녀 그 딸을 하나님께서 먼저 나오게 하신 겁니다. 소고를 들고 춤을 추며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하나밖에 없는 딸을 이제 번제로 드려야 했다는 거죠. 근데 생각해 보면 이제 입다에게는 유일한 핏줄이었다는 거예요. 기업을 다시 회복했는데! 기업을 잇도록 고향 땅으로 보내주셨는데! 이제 그 자녀를 잃으면서 기업을 다 다시 잃도록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입니다.
35절의 말씀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라고 말씀합니다. 딸이 이제 출애굽 할 때 미리암처럼 큰 승리를 거두어서 소고를 치면서 기쁨으로 아버지를 기다렸다가 승리를 거두고 오는 아버지를 보면서 춤을 추며 기뻐하는데 대조적으로 입다는 옷을 찢고 원문에 보면 무너지고 무너지게 하는 자라고 하면서 절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지만 입다가 이제 사명이 아니라 이제 두려움과 야망을 갖고 전쟁을 했기 때문에 '너의 소견에 옳은 대로 전쟁을 하면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 이 자리를 내게 옮겨주십시오.'라고 할 만큼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어주는 십자가가 괴롭고 힘든 일이었지만 앞에 놓여 있는 기쁨, 하나님께서 그 소중한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하는 그 기쁨을 보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되찾게 되는 이 구원의 영광을 주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너의 체면, 너의 자랑, 너의 야망을 위해서 사는 것으로 살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소중한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입다는 옷을 찢고 울면서 괴로워했지만 진정 이렇게 회개는 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로서 내가 이제 말한 바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라는 체면을 유지하려고 이렇게 그가 했던 것이죠. 그렇게 되면 이제 모든 것들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되고, 딸의 무고한 생명을 잃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런데 체면을 내려놓고 공동체에 물으면서 말씀을 따르면 어떻습니까?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 말씀을 따르면 회복이 일어납니다. 기업을 얻게 되고, 딸을 얻게 되고, 하나님 말씀의 자리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비극이 비극을 낳는 일이 없을 텐데...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시는데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 우리들교회에 와서 깨닫게 되는 것이 별 인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저는 이제 별 인생이 그래도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했습니다. 학벌이 좋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를 축적하고, 사람들에게 명예를 얻으면 그래도 뭔가 우월한 것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속에는 복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좀 우월한 삶이라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제 마음 가운데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들교회에 와서 깨닫게 되는 것이 별 인생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삶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은폐하고 있을 뿐이지, 가리고 있을 뿐이지,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지 모두가 그러한 삶은 소중한 것을 잃고 산다는 것을 제가 우리들교회에 와서 깨닫게 됐어요. 성도님들의 있는 그대로의 간증을, 체면을 내려놓고 내 삶에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나누면서 회개하는 간증을 통해서 정말 예수 믿는 것 외에는 소망이 없구나!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 안에는 정말로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채 가슴을 치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 외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체면을 버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외식과 자랑과 인정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 자신을 직면하면 기업도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중한 것들을 얻게 되는데 그것들을 사람들이 누리지를 못하는 거죠.
저도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저도 체면을 내려놓고 내 인생에 사람들에게 받을 수 있는 자랑과 인정을 내려놓고 나를 깨뜨려서 정말 기업을 회복하고, 하나님만이 나의 가장 소중한 대상이라고 고백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묵상해 보게 되었어요.
저는 이제 공고를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1년간 공장에서 일을 했어요. 1년간 공장에서 일을 하면 공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을 마치면 이제 노래방에 가자고 하는데, 노래방에 여자가 나오는 줄은 제가 처음 알았습니다. 여성분들이 나오시는 거예요. 여성분들이 나와서 같이 이제 노래를 불러주시는데 제 허리를 막 안는 거예요. 제가 무서워서 막 요셉처럼 그 여자를 이제 팽개치고 도망을 나왔습니다.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때 제가 볼 때는 아주머니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가씨였겠죠? 팽개치고 도망을 갔습니다. 제 마음 가운데 그래도 성령께서 저를 만나주시고 주님 주신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그 팽개치고 도망을 갈 정도로 그런 요셉과 같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이제 처음으로 연애하게 됐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제가 처음으로 연애를 하니까 제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사역자들은. 재정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빈털터리입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의 아내가 사실 이제 제 모든 것들을 이제 다 밥도 사주고 택시도 태워주고 막 그랬는데 이제 그때 아내에게 차가 있었어요. 차 안에만 들어가면 요셉이 아니라 유다가 되는 겁니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과도한 스킨십이 일어나게 되면서 유다가 돼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 앞에 이건 아니라고 하나님 제가 바르게 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이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면서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제가 저지르게 되었어요. 그날 이제 제가 하나님께 멀어지게 될 것 같아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지금의 아내한테 전화가 온 겁니다. 그때 당시는 오빠였습니다. '오빠, 임신했어.'라고 하는 말을 저한테 하는 거예요. 제가 그 소리를 듣는데 제 가슴이 다 무너져 내려앉는 겁니다. 이거를 어떻게 해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어요. 병원으로 이제 검사를 받으러 보내면서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목회를 못 할 것 같아서 어떡하죠? 이 사건이 나면 저는 사역을 못 할 것 같고, 저는 반드시 성공하는 목회자가 돼야 되는데 저는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제 마음 가운데 아이를 지우고 싶은 마음이 제 마음 가운데 드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때 저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어요. '네가 아이를 지우고 목회하면 그래 목회가 성공하도록 내가 하겠다. 그래 성공하도록 내가 해주겠다. 그런데 아이를 지우면 내가 너와 함께할 수 없다.' 내가 너와 함께할 수 없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제 마음 가운데 사역이 아무리 성공하면 뭐 하나? 사역이 성공했다고 박수받으면 뭐 하나?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인데...라는 마음이 들어서 결단하고 교회로 찾아가 가지고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렸어요. 목사님한테 말씀을 드리면 제가 막 혼도 나면서 앞으로 사역하지 마라고 막 이렇게 얘기할 줄 알았는데 목사님 저를 꼭 안아주시면서 저를 위로해 주셨어요. 그리고 저에게 이제 주례를 서주시고. 저는 3년간 사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결혼을 하고 지금 이렇게 가정을 이루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때 일을 하나님이 저를 계속해서 찾으시는 것 같아요. '난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붙들어주시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하는 그 고백을 하나님이 늘 듣기를 원하신다는 마음이 제 마음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척을 하고 첫 시작을 하는데 성공한 목사가 아니라, 체면을 차리는 목사가 아니라, 회개하는 목사. 하나님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고백하는 목사가 되라고 다시 나눔을 하라고 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 가운데 이 하나님을 다 만났지 않습니까? 내 연약함과 내 실수와 내 추함에도 주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회개케 하시고 주님을 붙들도록 우리를 찾아왔지 않습니까? 우리가 다시 그 주님을 붙드는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주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해 주셔야 됩니다!'라는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적용 질문드립니다.
Q. 야망 따라 사십니까, 사명 따라 사십니까?
Q. 소중한 것을 잃어서 애통하며 회개하게 된 사건은 무엇인가요?
Q. 체면보다 회개하고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까?
Q.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체면은 무엇입니까?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셋째로
죄에 대해 애통하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36-40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딸들이 정말 이런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 어떨까요? 요즘의 딸들이라면 막 길길이 날뛰겠죠? '야, 너 이제 내가 기도했는데 신학교 가야 될 것 같아' 이러면 난리가 날 것 같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저희 딸 이제 핸드폰을 빼앗아 보니까 차라리 나를 죽여라라고 입다 딸이 되더라고요.^^ 입다의 딸은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아버지의 서원을 내게 행하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서원했기 때문에 그 말을 거두어 드릴 수 없어서 이 딸의 생명을 드리는 아버지의 모습보다 자신이 목숨을 잃더라도 아버지의 유익을 위해서, 아버지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기꺼이 그것을 이행하는 딸의 모습이 더 놀랍지 않습니까? 마치 예수님에 가까운 모습을 입다의 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입다는 불리해진 상황에서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하고 서원을 했다면, vs. 입다의 딸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불리한 상황에서 말씀대로 행하소서라고 고백을 합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불합리한 것 같아도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말할 것이 없고... 하나님께 속한 일임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소견을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순종을 한 것입니다. 우리들교회에도 이런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100번 이혼하고도 남은 상황이고,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해야 되는 것이 맞지만, 바람 핀 배우자에 대해서 이제 시시비비를 가리자면 머리털을 뽑고 그림자도 보기 싫을 만큼 미워도... 무능력한 남편을 볼 때마다 정죄하는 마음이 들고 무시가 되어도 그 속에 이제 하나님이 하시는 구속사의 말씀을 우리가 듣기 때문에 자기 소견을 내려놓고 우리가 순종을 하게 됩니다. 손과 발이 가는 섬김을 하게 되는 거죠. 이런 순종을 통해서 수치를 덮어주고 나를 위해 수고한 수많은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37절부터 40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그러면서 이제 아버지 앞에 허락을 구합니다. 두 달만 나를 버려두라고. 그러면 이제 남자랑 도망가서 결혼하고 살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이제 결혼도 못하고 가정도 이루지 못하고 죽어야 되는 이제 현실 앞에서 2개월간 애곡하고 이제 돌아오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이제 제일 이제 억울한 것이 뭘까? 오늘 말씀 보면 우리가 그걸 찾을 수가 있어요. 결혼 못하는 슬픔이 이렇게 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혼 못하고 죽는 것이 참 이게 이 땅에서 이제 가장 억울하게 이제 생각이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이 돼요. 그래서 이제 적극적으로 위드 청년들이 신교제, 신결혼 하도록 우리가 기도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기도만 할 게 아니라 이제 눈을 들어 가지고 이제 사람을 좀 찾아주고 또 맺어주고 하는 이제 적극성을 우리가 보여줘야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두 달을 이제 애통할 때 입다도 이제 두 달 동안 어떻게 보냈을까요? 무남독녀 외동딸을 산에 보내놓고 애통하는 그 딸을 바라보면서 입다는 어떻게 했을까요? 생각해 보면 이제 딸이 두 달간 애통하는 시간을 통해서 함께 자신의 헛된 서원을 이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돌이키는 시간을 얻게 되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야망으로 사는 것이 결국은 소중한 것을 잃는구나! 하나님의 사명 따라 살아야 되는구나! 회개하는 것이 복이구나! 하면서 그가 그렇게 생각을 했다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이제 믿음 장에 보면 입다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돌이킬 시간을 딸을 통해 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애통이 전염되어서 어떻습니까?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애통하게 되고,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딸들이 애곡하면서 기억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기가 되어서 기억하도록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념일을 만들어 가지고 다시는 이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 모두에게 허황된 서원을 하지 않도록! 야망이 아니라 사명으로 살아가도록! 마음을 찢고 회개하도록! 애곡하는 일들을 계속해서 애곡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제 죄의 결과에 대해서 회개하고 애통하는 것에는 이 공동체를 정결케 하고 살리는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애곡하는 공동체를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애통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아파하는 그것이 참 큰 복인데 우리들교회에 와서 그것을 우리가 다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아파하시는 우리 담임 목사님과 공동체가 목장에서 모일 때마다 자신의 죄를 오픈하고 그 일로 함께 애통해 주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고 끊임없이 내 안에 두려움과 안 되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서 내 주제를 넘어서 잘못된 서원을 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있어야 할 사명의 자리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것이죠. 우리들 공동체에서 애곡하는 이 공동체로 인해서 야망이 아니라 사명으로 살아가게 되고 인생을 거룩에 두고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 같아요. 원주 우리들교회 개척을 위해서 기도 모임을 하면서 놀랍게도 원주에서 소문을 듣고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서, 나의 문제와 아픔을 어떻게 해석 받고 싶어서 기도하는 곳에 나아오는 성도님들이 있다는 거예요. 담임 목사님이 한 영혼을 위해서 말씀으로 이게 살아내신 그것을 보면서 벌써 원주에도 그 소문이 있기 때문에 전도하러 다니지를 않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와서 함께 기도하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 기대만큼 원주 우리들교회. 이 개척하는 곳에서도 죄에 대해서 토설하고, 애통하는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이제 한 편지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한 분은 이제 기도 모임에 오신 분이신데요. 이 집사님이 이제 자신의 아들이 원주 교도소의 보이스피싱 사건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자 교회에 오시고, 원주 기도 모임에 나오게 되셨어요. 그분이 신천지에 계시다가 이제 다시 이제 주님을 고난 때문에 만나게 되신 겁니다. 그래서 이분이 이제 아들에게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와 <큐티인>을 이제 아들에게 넣어주었는데 아들이 이제 곤고한 마음이 있으니까 그곳에서 책을 읽고 큐티인을 보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어요. 21살짜리 아이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어요. 걔가 이제 예수님을 믿게 되니까 같이 감옥에 있는 한 사람- 원주에서 이 족발집을 운영하던 한 분-이 그 친구가 읽고 있는 책과 큐티인을 보면서 그분도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서 이렇게 집사님에게 편지를 보내셨어요. 편지를 10장이나 이렇게 쓰셔가지고 보냈는데 그 내용을 제가 좀 요약해서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요셉이 어머니 저는 요셉이와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땡땡땡 형제입니다. 재판장에서 어머님께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할 수 있게 하신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저는 어머님을 뵌 적도 없지만 항상 제 은인이라고 생각드리고 감사합니다. 어머님께서 요셉이에게 주신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김양재 목사님의 책을 다섯 번도 넘게 읽고, 저를 교도소에 보낸 아내에게 그 책과 큐티인 5-6월호를 보내주었더니 아내가 용서의 편지 내용에 당신은 정말 너무하다. 우리 침대에 항상 있던 책이 큐티인 책이었고, 내가 한 번만 설교 말씀을 들어보라고 했던 분이 김양재목사님이었는데 왜 그 말을 안 들었어! 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수감되기 전 아내가 여자 목사님의 말씀을 한 번만 같이 듣자고 몇 번이나 부탁했지만 아내의 말을 개똥으로 듣고 그 다니는 목사님의 존함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중략) 사건 당일 저는 매일 원주-태백을 4시간씩 운전해 가면서 두 군데 족발집을 관리하고, 원주 가게에 아내와 친형처럼 생각하는 친형님을 맡겨 두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카톡에 그 형님에게 온 카톡으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사고가 났습니다. 결혼 후 처음 본 아내의 카톡에는 그 형님이 매일 밤늦게까지 신앙, 믿음을 미끼로 아내를 유혹했고, 아내는 매일 답장해 주었고, 아내와 그 형님의 불륜이 떠올랐고, 뚜껑이 열려 아내의 뒤통수와 주방에 있던 식칼을 들고 다 죽자고 내가 죽이고 집을 나가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 형과 그리고 아내를 폭행하고. 가방, 지갑, 옷들을 칼로 난도질 했습니다. 유튜브 또는 네이버에 바람 나서 폐업한 족발집이라고 치면 이것이 다 나옵니다. 그런데 그날 유치장에서 요셉이를 만났고, 김양재 목사님의 책을 읽고 너무 은혜를 받아 아내를 용서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출판사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중략) 제 꿈은 우리들교회 부부 목장에서 공동체 활동을 하고, 아내의 고난과 회복을 간증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양육받고 말씀을 꼭꼭 씹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부부가 되고 싶습니다. 아내를 사랑한다고 했던 그 형님을 용서하고, 처벌불원서를 제출하고, 아내에게 용서를 하자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두 분이 이제 출소해서 나오시면 원주 우리들교회로 오시겠다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미 구속사의 말씀과 이 공동체의 소문이 퍼져서 하나님이 준비한 영혼들을 보내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죄에 대해 애통해 하는 공동체로, 세상의 야망과 헛된 욕심을 내려놓고 영혼 구원을 위해 수고하는 공동체로 세워져 있으면 빚지고 환난 당하고 원통한 수많은 영혼들이 원주에 세워진 도피성 교회로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Q. 억울하고 힘들지만 구원을 위해 가정에서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Q. 죄를 애통하며 목장에서 나누고 가십니까?
Q. 지켜야 할 나의 서원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쉽게 사명의 자리에서 이탈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돌이키지 못할 일들을 하기도 하고, 많이 넘어집니다. 그런데 함께 아파하고 자기 죄를 내어주며 애통해하는 공동체로 인해서 주님이 생명 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을 다시 의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부르신 자리에서 주시는 말씀을 따라 살라고 하십니다. 이 귀한 공동체를 세우시고 곳곳에 이제 강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우리들교회와 같은 교회를 세우고 계신데, 돌이키지 못할 일을 하는 이 수많은 세상의 풍조 속에 돌이키고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정말 기도합니다. 우리 찬양하고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 주 부르심 따라 예수 이름 부르며
나의 인생을 드렸네
사람들 이해못하고
결과 어떠하든지
주만 따라 가길 원했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저 부끄러울 뿐
모두 다 주의 은혜라
벼랑 끝에선 나를
주의 손이 이끌어
여기 까지 인도하셨네
하나님 사랑 나 떠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기에
오직 예수와 십자가만 바라보면서
나의 생명도 아낌없이 드리길 원했네
내 노래가 상한 영혼 일으켜
다시 살게 하는 노래가 되길
주 뵈올 때 착한 일꾼이라
칭찬 받기 나 원하네
눈물로 복음의 씨뿌려
기쁨의 단 거두리
한알의 밀알처럼 죽어
다시 살리라
내 노래가 상한 영혼 일으켜
다시 살게 하는 노래가 되길
주 뵈올 때 착한 일꾼이라
칭찬 받기 나 원하네
칭찬 받기 나 원하네
칭찬 받기 나 원하네 ♬
기도제목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어떤 사건을 만나든지 능히 감당할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그날 주신 말씀으로 살아내게 하십니다. 주님, 내 안에 불안과 염려 앞에 믿음을 저버리고 옛 습관대로 행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늘 날마다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체면이나 나의 성공, 내 인생의 야망을 쫓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과 십자가만 바라보면서 주님 부르신 자리에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만이 나의 참된 기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다 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지만 여전히 내가 기대했던 것이 무너지고, 사람들로 인해, 환경들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면 불안해하고 염려하면서 내 옛 습관이 하나님의 위로가 아닌 중독으로 달려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체면이나 성공, 야망을 쫓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주님, 전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허비하면서 살았습니다. 주님, 이 시간 내 심령에 회개가 터져 나오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면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주님을 의뢰하고, 주님이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 순종하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죄를 꺼내놓고 함께 애통해 주는 공동체를 통해 야망이 아니라 사명의 자리를 찾게 되었고, 하루하루 주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여전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원주 개척교회 가운데도 그런 교회가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빚지고 환난 당하고 원통한 수많은 영혼들이 나아오는 복된 은혜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시는 담임 목사님의 영육을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말레이시아 사역의 기름을 부ㅕ어주시어서 살아나는 그 한 사람 한 교회가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 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하나님보다 앞서가는 야망을 회개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이 부르신 그 자리를 굳게 지켜 영원한 소망이 무엇인지 전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의 생명을 살리는 법이 제정되게 하여 주시고, 인권을 가장한 모든 악법이 폐하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주님이 내 전부가 되십니다. 야망이 아닌 사명으로 살겠습니다. 다짐하며 드린 헌금 위에 기름을 부어주시어서 건강과 학업, 사업과 모든 일에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들을 것만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적용질문 정리
돌이키지 못할 일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1. 야망이 아니라 사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9-31절)
Q. 불안할 때 내게 나오는 옛 습관은 무엇인가요?
Q. 세상 앞에서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 묵상하며 살아가나요, 세상을 두려워하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Q.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2. 마음을 찢고 회개해야 합니다. (32-35절)
Q. 야망 따라 사십니까, 사명 따라 사십니까?
Q. 소중한 것을 잃어서 애통하며 회개하게 된 사건은 무엇인가요?
Q. 체면보다 회개하고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까?
Q.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체면은 무엇입니까?
3. 죄에 대해 애통하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36-40절)
Q. 억울하고 힘들지만 구원을 위해 가정에서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Q. 죄를 애통하며 목장에서 나누고 가십니까?
Q. 지켜야 할 나의 서원은 무엇입니까?
'돌이켜 살아납시다!'
*** 기도제목
A
1.피해자/가해자 프래임의 거짓 생각에서 벗어나 참자유 진리를 볼 수 있도록
2.매일 큐티제목 적기
3.지켜온 인생인 것 기억하고, 두려울 때 아빠 엄마->고마워, 사랑해 말로 표현하고 손글씨로 적기
B
1.의롭고 좋은일이라고 스스로 결정 하여 행동하지 않고 목장에 묻고 영육 보호 받도록
2.불안 할때 생명의 말씀 큐티 붙잡도록
3.듣지 못하는 매미 울음을 멈추고 현재를 살도록
C
1.허락한 일들이 야망 아니라 사명으로 전환 되어 약속이 성취 되도록
2.퇴사 가운데도 정리 하지 못한 일들이 9월까지 밀려 있는데 영육 보호 받고 돕는 손길 주시도록
3.깨어기도 하고 예스 노 땡큐 잘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