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5년 7월 20일
본문: 사사기 9:1~6
제목: 아비, 멜렉
설교자: 이성훈 목사님
참된 지도자가 없는 이 시대를 살면서 사사기를 말씀해주시니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왕으로 오시기를 바라고 결단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9년동안 자기 이름을 쓰지 못한 소녀가 있다고 합니다. 달룰라 더스더 훌라 프롬 하와이입니다. 달룰라가 하와이의 훌라춤을 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이렇게 유쾌한 춤을 추라고 지었는데, 아이는 참다참다 이름을 변경을 하였다한다. 판사는 유쾌함이 아닌 정서적 학대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의 이름엔 부모의 마음이 들어있지만 우린 다 왜곡되어 있다. 말씀에 근거하여 축복해주며 구속사적으로 이름 짓는 것이 최고다. 우리가 기드온 큐티를 계속 했는데 오늘은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에 대한 것이다. 왕 되기를 거절한 기드온이 미련이 남아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요. 아비(나의 아버지가 왕이시다이라는 히브리어)는 기드온의 아들이다. 아비는 이름처럼 왕이 된다. 그런데 왕국이 3년 천하로 끝난다. 왕이 되어도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비참한 자기 삶의 결론이다. 아비멜렉의 기가 막힌 인생 통해 어떤 왕을 섬겨야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아비,멜렉의 방패는 무겁습니다.
여룹바알은 아들만 70명을 낳았다. 왕 되어달란 요구 뿌리쳤지만, 실제로 왕처럼 살았다. 심지어 세겜 가서 첩까지 두었다. 세겜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만나고, 요셉이 묻히고, 여호수아가 성도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한 곳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만남이 있고 언약이 있는 곳에서 여룻바알이 첩을 두며 다른 살림까지 차렸다. 아비멜렉의 뜻은 내 아버지는 왕이시 다.이다. 멜렉은 진짜 왕을 부르는 호칭이다. 대통령같은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속일 때 자신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였는지 기억하시나요? 아비멜렉이라 하였다. 대단한 표현이다. 첩이 나은 아들에게 이 엄청난 이름을 지어주었다. 왜? 기죽지 말라고. 낳았지만 서자라서 키워주지 못한 아비의 마지막 마음이었다. 내 아버지는 왕이라고 당당히 외치고 살아가라고 방패를 인생에 쥐어주듯 아비멜렉이라 이름을 지었다. 아비멜렉은 그 삶이 낮과 밤이 너무 달랐을 것이다. 친구들이 낮에 아버지 어디 갔냐 놀릴 때마다 내 이름은 아비멜렉이다, 나의 아버지 왕이라고 하였지만 밤에 집에 가면 아비는 없고 엄마만 있다. 그러니 밤이 되면 낮의 이름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버지의 존재가 더 서럽고 억울하고 분했을 것이다. 그렇게 아비멜렉에게 아버지의 존재가 한이 되었을 것이다. 아비멜렉에게 아버지는 왕이지만, 자기 인생을 망친 배신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복형제들이 70명이다. 그 형제들 만나면서 아비멜렉을 대놓고 그림자 취급하며 네가 여길 어딜와? 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비멜렉은 세겜으로 돌아왔다. 아비멜렉은 자기를 지켜줄 새로운 방패를 찾았다. 그것은 외가 식구들이다. 골육이라면서 아비멜렌의 70명 형제 말고 나 1사람의 지도를 받는 게 더 좋지 않냐고 말한다. 그런데 이 70명 이복형제는 출마한 적도 없고, 세겜 사람들이 대선을 요청한 적도 없이 대선판 깔아놓고 자기 뽑아달라는 것이다. 선동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외가들이 아비멜렉 편을 들어준다. 왜? 내 가족이니까. 온 동네 다니면서 아비멜렉을 선전해준다. 그런데 아비멜렉? 그 여룹바알 서자아냐? 무슨 서자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는가? 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촌들은 아비를 아비라 못 불러서 철이 잘 들고 세겜 잘해줄거야 하고 찍자하고 설득했을 것이다. 유세는 대성공해서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 지지했다. 세겜의 딸이 된 것이다. 이렇게 열렬히 지지받는 아비멜렉은 무슨 말을 해도 내 편인 방패같은 고향 사람들 보고 너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능 좋은 방패일수록 무겁기 마련이다. 아비멜렉은 이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딱 3년 걸렸다. 왕이 된 지 3년만에 서로 배신하고 치고박고 싸우다가 같이 다 죽게 된다. 이 든든했던 무거운 아비멜렉 방패에 아비멜렉이 깔려 죽은 것이다. 우리는 상처와 잘못을 가려줄 방패를 늘 찾는다. 태어나서 처음은 아버지 어머니 집안을 찾는다. 그래서 좋으면 든든하고 아니면 낙심한다. 그런데 그 후에 학벌, 직장, 배우자, 자녀, 재산 찾는다. 하지만 아비멜렉 방패는 너무 무겁다. 언젠가 그 값을 청구하는 날이 온다. 왜? 모든 것을 끝없이 찾아서 사는 것이 우리의 하루하루다. 그 방패 지려고 수고하고 산다. 잠깐 지켜 주는 것 같지만, 너무 힘들다. 방패의 비싼 사용료 지불하는 날이 온다. 왜? 이 방패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내 것이 아니기에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다. 하나님이 사명 때문에 모든 것을 잠깐 허락할 뿐 다 떠나가는 하나님의 것이다. 한 성도님은 사회공포증 무대공포증이 있다하셨다. 이것을 평생 가리느라 힘들었다한다. 내가 공포증있다고 말하는 것이 공포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 목장에서도 그냥 불안이 있다 하였다고 한다. 막을 방패는 무엇이 있을까하다가 경찰 제복이 방패로 좋아보여서 경찰대를 들어갔다한다. 그런데 그 곳에 가니 경찰 되려는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인데 그들의 용감, 당당함에 비해 나는 왜 불안할까하면서 인생이 더 비참하게 되었다한다. 우리들교회 와서 그 오픈의 능력을 몰랐던 자기 결과라 한다. 경찰 제복으로 가리려고 하는 것이 자기의 악함이다 했다고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우리는 내 방패가 크네작네 두껍네얇네하며 즐거웠다 슬펐다하지만, 그 무거운 아비멜렉 방패를 들어야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실수, 교만, 죄악인 것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방패에 목을 매는가? 그렇게 만드는 내 안의 죄악이 무엇인가?를 해석하고 해결해야하는 것이다.
[적용질문] 나를 낳아주신 부모에 대한 마음이 어떻습니까? 너무 무겁지만 더 꼭 붙잡게 되는 나의 아비, 멜렉 방패는 무엇인가요? 무엇을 가리고 보호하려고 그렇게 꼭 쥐고 계신가요?
2. 아니, 멜렉의 칼은 무섭습니다.
아니는 히브리어로 나라는 뜻이다. 그래서 아니멜렉은 나는 왕이다라는 뜻이다. 아니 멜렉의 칼은 무섭습니다. 이번 주 음절을 맞추느라 히브리어를 찾아보았습니다. 아비멜렉의 든든한 방패가 된 세겜사람들이 은 70개를 아비멜렉에게 준다. 요즘 시세로 130만원 되는 것이다. 이 은은 바알교 신전에 있던 것이다. 여기서 놓치면 안되는 것이 있는데요. 2,3,6절에 세겜 모든 사람들이라는 구절이 반복되는데, 이 이 세겜 사람들을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세겜 모든 바알들이라고 해석된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굳이 바알이란 단어를 쓰셨을까? 9장에는 기드온이라는 이름이 한번도 안 나온다. 기드온은 9장에 안 나오고 다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으로 쓰이며 바알에 대적한 사람으로 나온다. 하나님이 바알에 형광펜으로 쳐 놓으셨다. 바알믿는 신전에서 바알들이 바알을 숭배하는 소굴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세겜이요, 보통장소가 아니다. 중요한 영적 중심지 중 하나다. 어쩌다 이 유서깊은 세겜이 바알 소굴이 되었을까? 사실 우리 자신을 생각해보면, 하나님 떠나는 것은 한 순간이더라. 여호수아가 죽고 믿음이 한 세대 이어졌는데, 기드온 죽고나서 즉시, 바로, 뒤도 안 돌아보고 바알 숭배로 갔다. 그러니 옆에서 애통해하며 잔소리하는 사람, 양육해주는 그 한 사람 없으면 우린 다 떠내려간다.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더 잘 모시고 딱 달라 붙으시길 바랍니다. 바알들이 준 은 70개로 아비멜렉은 방탕한 깡패들, 자기 말 듣는 직속들을 만드는 것에 썼다. 방패는 있으니 칼을 구한다. 지금까지 방패를 만들었는데, 이제 내가 힘이 생겼으니 은 70개가 생겼으니 내 칼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쓰러뜨리리라 하면서 양아치 부대를 만들었다. 무슨 마음으로 이런 짓을 저지르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제는 아니, 멜렉이라는 것이다. 내 아버지가 아닌 내가 왕이라는 것이다. 아니멜렉의 칼을 뽑아 들고 휘두르려는 것이다. 이 칼을 휘두르는데요. 아비멜렉의 칼은 복수의 칼이다. 이복형제들이 자기 무시했던 그 한을 70명 형들에게 아주 잔인하게 죽이며 풀어버리는 것이다. 바위 하나 위에 형제들을 1명씩 차례대로 올라서 처형했을 수도, 아니면 바위 하나에 70명을 다 올려놓고 세겜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처형했을 수도 있다. 모든 재물 바치듯 자기 세상 표시를 하는 것이다. 결국에 저지르는 것은 잔인한 복수다. 무서운 칼이고 복수다. 하지만 칼이 무슨 잘못이 있나? 깡패가 양아치가 문제인가? 그것을 쓰는 아비멜렉이 문제인 것이다. 칼을 쓰는 우리 자신이 문제다. 방패가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쓰는 우리 자신이 문제인것처럼. 내가 가진 칼 약하고 쟤가 가진 칼은 약하고. 칼을 휘두르고 싶은 잔인함, 폭력, 사나움, 죄악을 깨닫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폭력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환경이 안되어서 못 쓸 뿐이다. 어떤 성도님이 회사에서 최고 매출을 올렸다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못 봐서 소극적으로 일했는데도 회사 분위기가 안 좋아져서 직원들에게 훈계하듯 장문의 문자들을 했다한다. 근무시간에도 근무시간 외에도 했다한다. 그러니 다음날에 출근하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힘들어졌다 한다. 그리고 그 아침에 큐티를 하니 드보라가 하나님 찬양하는 노래를 보면서 내가 회사 다니면서 공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입사의 은혜가 있는데, 조금 잘 나간다고 다른 직원 괴롭히고 있구나 했다한다. 정중히 사과문자 했다고 한다. 이 분이 잘하신 게 있다. 이 분은 마음 힘들 때 큐티하고 적용하니 잘했다. 우리는 누구나 공을 세우고 조금 인정받으면 저절로 권위적이고 폭력적이 된다. 우리 안의 잔인한 본성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나? 오늘 하루 연약한 우리를 말씀에 가까이하고 띵크하고 적용해야 한다. 그 말씀이 우리를 어보해서 가야한다. 아니멜렉이 되려는 내 자신의 욕심, 야망을 보고 무서운 칼로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의지로 우린 이것들을 제어할 수 없고, 오직 주님의 도우심만으로만 가능하다. 내 자신이 가장 악한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심은 문제인 나를 고치시고 견인해가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적용질문]나는 왕이다 주장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어떤 칼을 손에 쥐려고 합니까? 나도 사납고 폭력적인 악인일 뿐임을 인정합니까?
3. 야훼,멜렉의 신앙만이 답입니다.
세겜과 밀로라는 요새가 있는데 그 모든 족속들이 세겜의 나무, 상수리 나무 옆에 기둥 곁에 세웠다한다. 상수리 나무도 우상 섬기는 장소로 만들어놓은 것인데, 이것은 신앙의 역사가 남긴 굉장한 유적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만나주셨고, 요셉이 묻히고, 여호수아가 마지막 설교하고 언약의 돌을 이 세겜 상수리 나무 아래 두었다. 정상적인 이스라엘 사람은 이 자리에 우상숭배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곳에 바알 숭상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6절 한절에 왕이란 단어가 3번 나온다. 처음에는 아비멜렉이고 왕이 되도록 왕을 삼았다. 이것은 왕이 2번 나오면서 경제성의 논리에서 문법적으로 맞지 않으나 고발하는 것처럼 던지며 강조하는 의미가 담긴 문장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처음에 바알 강조하고 그리고 멜렉을 강조하신다. 왜 하나님이 멜렉을 강조하실까? 사사기는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없어서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하는 시대다. 오늘 9장 1절에서 9절은 작은 바알들이 하나가 되어서 바알 신전 밑에서 아비멜렉 걸맞게 자기들의 멜렉으로 세우신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이거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작은 바알들이 만든 범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왕을 괜히 안 주신 게 아니다. 이미 하나님이 왕이기에 인간 왕을 안 주셨다. 그러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것을 반복적으로 거부한다. 고난오면 잠깐 정신차리고 한다. 그러다 좀 괜찮아지면 우상 삼아서 돌아간다. 문제는 왕이 없는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왕이신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연약함이다. 이렇게 제멋대로 내가 왕이다 왕이다 한 결론은 세겜 다 무너지고, 아비멜렉도 아무 이름없는 여인에게 돌 맞아 죽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묵상하나? 방패를 멈추고 칼을 휘두르는 수고를 멈추고 여호와께서 왕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으로 살아가야한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다 안다.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한다고 알지만 잘 안된다. 한 성도님의 간증이다. 장사 타이틀도 되셨던 선수였던 분이 코치가 되셨다. 코치가 되니 본인이 칼을 세웠다. 장사는 아무나 되나. 장사는 1%로 될까말까인데. 그런데 선수들이 이 장사 출신 코치를 따라가지 못했다. 코치의 지도가 힘드니 선수들이 운동량을 속이고 발뺌하고 대들기까지 한다고 한다. 이런 경우 주장이 질서를 잡아야는데, 이 주장이 선수 편 들면서 코치에게 대들었다 한다. 그래서 다들 모아놓고 따끔하게 타일렀다한다. 그리고 선수 중 하나가 녹음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녹음을 들었다한다. 왜 이럴까 생각을 해보니, 하나님이 이렇게 연약한 선수들과 함께 있도록 하게 하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 곳이 아닌 나를 코치해가고 있구나 하는 고백이 나왔다한다. 야훼멜렉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우리가 끝까지 할 수 없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 같다. 주님 저는 안됩니다 설 수 없습니다 해야한다. 그래서 한 마디로 야훼멜렉의 신앙은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코치를 잘 받는 것이다. 순종하고 코치를 잘 받는 것이다.
[적용질문] '여호와는 왕이시다'를 고백하기 제일 어려운 자리는 어디인가요? 거기서 내가 잘 받아야 할 하나님의 코칭은 무엇인가요?
모임 장소: 카페 롤링삐삐
모임 인원: 목자1, 부목자3, 목원1
기도제목
A
1. 일하는 관계들 가운데 지혜 주시기를
2. 아웃리치 일정 가운데 함께 해주시고 예배 사모, 무탈히 잘 다녀올 수 있기를
3. 신교제 때를 잘 누리고 공동체에 잘 묻고가길
4. 금주 실천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말씀과 예배로 제자리 돌아가기
5. 아빠를 비롯한 가정의 구원
B
1. 아니멜렉이 아닌 주님과 함께 아니면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2. 목장 식구들 한 주 하나님이 함께 동행해 주시기를
3. 사랑부 큐페 일정 때 연차 잘 받아내고 큐페 일정 기름 부어 주시기를
4. 회사 생활 무탈히 잘 보낼 수 있기를
C
1. 회사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같이 가기로 얘기가 되긴 했으나, 여전히 불안한 가운데 기도하고 하나님과 공동체에 물으며 회사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2. 상담 이번 주도 잘 받고 나에 대해서 집중하고 나를 잘 알아가는 시간 갖을 수 있도록
3. 목장 식구들 영육간의 강건함 주실 수 있도록
D
1. 자녀, 직장의 자리를 지혜롭게 순종하며 지킬 수 있도록
2. 매일 세수하듯 큐티로 내 모습을 잘 씻을 수 있도록
3. 목장에 건강하게 잘 나누기를
4. 영육간 강건
5. 부모님 구원
6. 목장 식구들 한 주 말씀으로 잘 살아내기를
E
1. 일주일 방학 잘 쉬고 재충전 하길
2. 시간 관리 잘하고 낭비하지 않길
3. 신교제 신결혼
F
1. 나를 돌아보는 한 주(타인을 정죄하지 않도록)
2. 나의 만족을 위한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근거한 열심을 생각하는 한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