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8보호하여 구원하리라
열왕기하19:29-37
지난 한 주 큐티 목회하시는 목사님들과 함께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늘 하던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대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근데 우리들교회 성도님들보다 더욱 리얼한 띵크 허브(THINK Hub) 목사님과 사모님들의 구속사 간증에 큐티 목회의 현장이었고요.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아주 실감나는 기도회였습니다. 이 대선 후에 드린 기도가 기복보다는 팔복의 가치관으로 회개하게 하셔서 감사했습니다. 말씀대로 드린 우리의 모든 부르짖는 기도가 100% 응답된 줄 믿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구원하옵소서! 구원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한 것만 생각하면서 구원받지 못한 것 같은 현실 앞에서 실망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보호하여 구원하신다고 하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여 구원하시는지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십니다. (29-31절)
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여호와의 열심(熱心)이 이 일을 이루십니다. 29절이에요.
히스기야가 산헤립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때, 이 산헤립을 갈고리를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끌어 돌이키리라1)고 약속하셨어요. 산헤립을 그렇게 하겠다고. 그리고 하나님은 놀랍게도 말씀만이 아니라 오늘 징조도 주십니다. 말씀은 들려주시는 것이고, 징조는 보여주시는 것이에요. 들은 말씀을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징조를 통해서도 확신을 주십니다. 징조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금년과 내년에는 밭에서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는데요. 농사는 못 지었지만 밭에서 저절로 난 것을 먹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후년에는 다시 농사지어서 얻은 수확물을 먹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런 기다려야 되는 시간이 있는 거죠. 징조는 사인(sign)이고, 표지판이에요. 예.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화살표예요. 그러면 이 징조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지금 예루살렘이 앗수르 군대에게 포위되어 있어요. 성 밖에 나가 농사짓고 수확할 수 없어요. 성안 창고에 저장한 식량이 떨어지면 먹을 게 없어요. 이게 제일 큰 문제인데 하나님은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징조로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밭에 나가지 못하는 현실, 농사도 짓지 못하는 현실 그렇지만 그래도 아직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사실은 암담한 현실 자체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징조라는 거예요. 우리는 앗수르가 물러가서 짠! 하고 펼쳐지는 기적만 징조라고 생각하죠? 그러나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어려운 상황도! 아니 이런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징조라는 것이에요. 성안에 갇혀서 나가지 못하는 현실, 농사 못 짓는 상황이 징조가 되어 가리키는 목적지는 어디겠어요?
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a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
->30절 31절이에요.
피하고 남은 자 겪을 일 다 겪고 겨우겨우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가장 깊은 슬픔과 절망에 놓인 사람이에요. 남은 삶에서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숨만 쉬고 있는 사람이에요. 다 잃어버린 사람, 다 떠나보낸 사람, 내 일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남은 자에게 다시가 있으리라고 하세요. 다시 뿌리를 내리고 다시 열매를 맺을지라고 하십니다. 이런 회복이 어떤 소망도 남지 않았던 예루살렘에서 시작된다고 하세요. 이런 다시의 회복이 징조가 가리키는 목적지입니다. 오늘 피하고 남은 자가 되어 갇혀 있는 현실이 가리키는 목적지는
멸망이 아닌 다시의 회복인 줄 믿습니다. 그만큼 이건 기적이죠. 우리 생각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 기적을 주님이 약속하세요. 거짓이 없으신 주님이 말씀하시는 일이에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어떻게 가능합니까?
31b.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1절이에요.
아멘! 여호와의 열심이 이런 기적을 이루신다고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열심(熱心)은 무엇을 잃지 않으려는 불타는 사랑을 말해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시려는 열심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거예요. 이 열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다시 뿌리를 주시고, 다시 열매를 주십니다. 다시 회복되는 기적은 우리 힘으로 얻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좋아하는 정치인이, 기대하는 정책이, 의지하는 재력이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다시 회복되는 기적은 오직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시는 것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 가려는 모든 악으로부터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유일한 힘은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시기 때문에 오늘 갇혀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뿌리를 잘 내리고 열매를 잘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하나님께서 이 일을 모두 완료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으시리라는 말씀입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한 그 순간부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앗수르로부터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을 살리기 위하여 힘을 다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끝까지 주님을 찾는 주의 백성들을 사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지신 모든 능력을 다하여 끝까지 힘써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니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적용] 내가 보고 싶은 징조는 무엇입니까? 지금 어디에 갇혀 있습니까? 갇혀있음이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징조임을 믿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피하고 남은 자가 되어 다시 거기에 뿌리 내리고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입니까?
제가 갇혀 있었잖아요. 갇혀 있었던 게 징조라고요. 집에 들어가서 문 닫고 벙어리가 되어서 책망자가 되지 말래요. 나를 가둬두는 사람이 너무 나쁜 거 아니에요? 그런데 너는 성령이 임하여서 문 닫고 집에 들어가서 잘 묶여 있으래요. 그리고 절대로 너를 가두는 자를 책망하지 말래요. 오직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할 때만 하래요. 그러니까 그것이 지금 제가 징조가 돼서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됐잖아요! 우리의 모든 가치 있는 환경은 징조가 되는 줄 믿습니다! 고난도 징조가 되는 줄 믿습니다. THINK 새벽기도회의 모든 강사님들이 다 훌륭하셨는데 특히 모든 사모님이 특히 큐티 목회의 진심을 보여주셨는데요. 모두가 첫 번째로 하는 말이 '우리 가정이 살아났어요!' 목사님 가정이 다 살아났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모님만 그런 게 아니고 단 위에 서시는 목사님도 물론 사모님도 그랬지만 고부간에, 부부간에, 자녀간의 갈등을 있는 그대로 나누어 주셨는데 강사님들 중에서는 목사님 자녀가 거의 다예요. 목사님 자녀.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사실 솔직하게 나누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내가 목사 자녀인데... 목사... 이거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목사님 가정의 이런 자녀들과 이렇게 이제 지금은 다 목사님 되셨는데.. 어찌나 솔직하게 하시는지 도리어 우리가 더욱 분발하자고 우리가 지금^^ 우리가 분발해야 될 것 같아요. 너무 놀랐어요. 그죠? 목사님, 사모님들은 그런 얘기하기가 진짜 너무 어렵잖아요, 한국 교회에서.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는 왜 그런 얘기를 오픈해? 그런데 이번에 이거를 보고 그런 얘기가 쑥 들어갔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큐티 목회의 진수를 보여주셨고, 그 사모님들의 간증이 다 기가 막혔지만, 그 솔직함으로, 또 약재료로 아! 이제 성도님들이 살아나시겠구나!라는 한국교회의 소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큐티 목회는 사모님들이 정말 중요하구나! 그래서 얼마나 솔직하신지 조금만 인용을 좀 다시 해드려야 될 것 같아요. 다는 못 하는 거를 양해해 주시고요. 한 분은 우리들교회에 와서 양육 받고 좋은 일이 생기는가 했더니 상으로 유방암이 걸리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유방암 걸렸는데- 그 양육 강사님이 '사모님이 깨어지시면 교회에 부흥이 올 거예요!'라고 해 주셨던 말씀이 치료기간 중 종종 이렇게 생각이 났다는 거예요. 근데 이런 얘기를 또 나와서 해 주셨어요. 또 한 분은 사랑해 주지 않았던 이 남편 때문에 같이 사는 시부모님(목사님 또 사모님)하고 같이 사는데 직설적이고 강한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었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여기에서 하셨어요. 근데 남편과 시어머니를 본인이 속인 자라는 걸 인정하며 용서를 구하게 되셨다고 했어요. 또 한 분은 미국에서 유학할 때 방탕하게 음주가무를 즐기며 저는 제 인생의 주인공이 저인 줄 알고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미국물을 오래 먹은 저에게 한국 사모로 사는 것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분이 치과 의사거든요. 미국에서.) 남편은 착한아이증후군에 연예인병이 중증이라 제 편은 안 들고 맨날 성도 편만 들어서 저는 우울과 분노만 커졌습니다. 저는 시도 때도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자고 졸랐고, 그게 안 되면 팔에다가 문신을 새기겠다고 그래서 예배 안내할 때마다 무시무시한 문신을 들이대며 성도들을 겁주고 싶다고 협박했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상처를 핑계 대며 죄를 짓고 살던 제게 주님처럼 남편도 가족들도 모두 저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이제 또 한 분은 셋째의 낙태를 반대한 남편 목사와의 부부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졌고, 저는 생명을 살리러 간 선교지에서 또다시 생명을 죽인 제 자신에게 절망하여 죽고 싶은 나날을 보내면서 그때부터 5살, 3살 된 아이들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하기 시작하여서 아이들이 온전히 지옥을 살게 했어요. 그런 가운데서도 인정 중독자라 그냥 아이들을 입시 지옥으로까지 내몰았는데 이거를 이제 간증하겠다고 간증을 아이들한테 들려줬더니 딸이 '나는 수년간 얼마나 많이 엄마에게 맞았는데 어떻게 엄마는 그 학대를 단 3초간의 회개로 끝낼 수 있어?!' 이렇게 또 얘기했다네요. 3년 전에(아들을 이제 유학을 보냈어요) 저희 아들이 유일한 친구였던 한 유학생 친구가 같은 방 룸메이트를 칼로 찔러 살해하여 살인자가 되면서 저희 아들은 졸지에 살인자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공부를 잘해서 청년부 회장까지 하던 아들이 지금 이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어요. (유일한 친구는 친구로서 문제가 끝나는 게 아니에요. 모든 것과 연관이 이렇게 되게 되는 거예요.) 그로 인해 PTSD로 심각한 학업 장애, 우울과 공황장애까지 겪으면서도 집이 지옥 같아서 돌아오기가 싫어 계속 버텼다는 것을 휴학하고 집에 온 지 한 달이나 지나서야 제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집에 오기 싫었다는 거예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13회 목세 때는 이혼하고 죽고 싶었던 제가 살아나 저희 부부 관계가 회복되었는데, 이번 20회 목세 때는 우울과 공황으로 죽고 싶었던 저의 아들과 같이 와서 살아나는 복을 누리게 하시니 저희 가정이 목세의 최대 수혜자임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 아들이 미국으로 돌아갈 텐데 목사님 아들로 또 이 얘기를 본교회에서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살인자 뭐 이런 얘기... 그런데 말씀은 너무나 놀라워서 이렇게 이번에 와서 아들이 다 회복이 됐어요. 해석됐어요. 다시 회복되어 뿌리내리기를 바랍니다.
2.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32-34절)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2절 33절입니다.
그러므로라고 하시는데요. 여호와의 열심이 이 기적 같은 회복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에요.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시기 때문에 반드시 결과가 따라옵니다. 어떤 결과입니까? amp#9312 앗수르왕 산헤립이 예루살렘 성에 이르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 성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 32절, 33절에서 반복되고 있어요. 강조하는 거예요. 근데 사실 지금 앗수르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이르지 못한다고 하세요. 포위하고 있지만 도착하지도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세계 최강 앗수르 군대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가서 점령하고 있는데요. amp#9313 그런데 그들이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화살을 쏘지 못합니다. 공격 개시를 못 한다는 거예요. 옛날 전쟁에서는 화살이 공격을 시작하는 무기였잖아요. 누구도 막지 못하던 앗수르의 화살인데 예루살렘으로는 발사조차 할 수 없다는 거예요. amp#9314 세상 어떤 군대의 공격도 다 막아내던 철벽같은 앗수르 군의 방패인데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세우지도 못합니다. amp#9315 세상 유명한 요새들도 다 뛰어넘어 치던 앗수르 군의 토성인데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쌓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에게 앗수르 군사들이 단 한 발짝도 예루살렘 성읍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그들이 쏘는 화살 하나도 성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amp#9316 그게 다가 아니에요. 앗수르 군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오던 길로 돌아갑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의 열심이 일을 이루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따라오는 결과입니다. 끊임없이 사단에게 노출이 되어 있지만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나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게 있어요.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34절이에요.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이게 오늘 설교 제목이죠. 앗수르 왕 산헤립이 가까이 오지 못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자체가 지킬 힘을 갖추는 거예요. 스스로 힘이 없으면 적군이 오지 않아도 스스로 망하는 법이에요. 지금 예루살렘은 히스기야가 아무리 대단한 개혁을 했어도 너무 연약합니다. 예루살렘 온 백성이 산헤립의 신하 랍사게 한 사람 당해내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다 보았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공격하지 않고 그냥 포위만 하고 있어도 저절로 무너질 지경이에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보호하리라고만 하셔도 감사한데, 구원하리라만 하셔도 은혜인데 둘 다 써서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누구를요? 슬픔과 분노와 원망과 절망에 빠진 예루살렘 성을요.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보호하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גָּנַן [ganan,가난]은 성경에 딱 7번 쓰였는데 일곱번 모두 보호하는 대상이 같아요. 바로 예루살렘이에요. 예루살렘이 무엇입니까? 그것 역시 사인(sign)이고, 표지판이고, 화살표예요. 문자적으로 예루살렘 성과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고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을 상징합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보호하다는 말은 날개로 덮듯, 방패로 가리듯, 담으로 둘러막듯, 안전하게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장 그 7개 중에 가장 유명한 구절이 이사야 31장 5절에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신다는 것은 교회를 향한 모든 공격을 하나님께서 대신 맞아주신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겨 지키신다는 거예요. 성도가 하나님의 새끼잖아요. 그죠? 내 새끼잖아요. 내 새끼를 하나님이-창조주 하나님이-어떻게 안 지키겠어요? 이 보호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요. 우리가 받을 징벌과 죽음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다 받으셨어요.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셨습니다. 죄와 사망이 쏘는 모든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셨습니다. 이렇게 자기 몸을 내어주시는 이 보호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어요. 죄와 사망에서 건져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라는 이름의 뜻 아니겠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보호와 구원을 누구를 위해 베푸신다고 했어요?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다고 했나요? 그러지 않았어요.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또 하나님의 종 다윗을 위하여 보호하여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그냥 무조건!! 조건이 없어요. 무조건 보호하여 구원하신다는 뜻이에요. 우리를 위해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잖아요? 우리가 보호받을만하면 보호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릴 수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베푸시기 때문에 절대적인 거예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다윗을 위하여 하신다는 것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그 후손이 어떠하든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모든 성도 대표로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우리를 반드시 보호하여 구원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이든 그보다 더한 누구든 네로든 히틀러든 스탈린이든 모택동이든 김일성이든 그 어떤 독재자도 그 어떤 박해자도 교회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예루살렘-교회-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자기 자녀들을 보호하여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앗수르왕 산헤립 같은 사람과 사건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습니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절망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자요, 성도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절대 보호하여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에 늘 노출돼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단을 결박했는데 우리는 너무 대단한 사자가 묶여 있는데도 맨날 으르렁거릴 때마다 '읔!읔!(놀라요)'. 우리는 너무 자유한데도 이 무서운 사자가 으르렁거릴 때마다 놀라죠? 그딴 짓 하지 말라고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내가 이걸 여러 번 얘기했지만, 또 안 들은 분이 많아서, 목양 역사가 중동에서이제 유럽으로 이렇게 건너갔는데 한 2천 년이라고 해요. 제가 예전에 어떤 목사님한테 들었는데 '우리는 다 양 같아서 미련해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그러잖아요. 그 양 같은 목양 얘기 좀 해보려고 하는데요. 양은 10시쯤에 풀 뜯어 먹고 새김질을 해야 돼요. 우리도 새김질해야 되잖아요. 군대 생활처럼 여러 마리가 같이 다녀요. 양은 누워서 풀을 뜯어 먹지 않아요. 누울 수 없는 양들은 쫓기고 여유가 없고 그래서 겁이 많다고 해요. 몸이 둔하고 뿔이 있어도 소용이 없고, 토끼만 뛰어나와도 놀라고 한 마리만 뛰어도 수백 마리가 같이 뛴답니다. '주를 위하여 살리라' 해도 우리가 겁이 많아요. 그러니까 양은 공포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누울 수가 없대요. 그리고 한 번 뒤집히면 절대로 자기 힘으로 일어나지를 못해요. '어찌하여 낙망하는고' 그 낙망이 양이 뒤집힌 상태래요. Cast down[캐스트 다운]이라고. 그래서 양은 뒤집히면 못 일어나니까 낙망하는 게 전공이에요. 가장 결정적인 위협이 여우인데요. 그런데 이 여우가 양 앞에서 부리는 재주가 하도 희한해서 목자도 여우 쫓다가 구경까지 하게 된다는 거예요. 양들이 새끼를 낳으면 돌담을 통해 따로 수용하는데 그 안에는 아주 좋은 풀들이 자라고 있는데 여우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이른 새벽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 내려온답니다. 차근차근 내려오기에 여우가 양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도록 내려오다가 가속이 붙어서 담장에 딱 올라붙는다는 거예요. 우로~ 좌로~ 여우가 관찰하는데 그러고도 또 가만히 있대요. 내 밥이구나! 하면서 눈초리가 반짝반짝한 모습이 어찌나 여유가 있는지 모른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여우의 존재를 알아보고 어수선해질 때 공격을 합니다. 양들이 어쩔 줄을 몰라 할 때 반대 저편으로 갑니다. 그리고 양을 뺑뺑이를 돌립니다. 그런데 여우가 가만히 있으면 양도 또 가만히 있다는 거예요. 양이 아주 아둔하고, 길도 모르고. 눈으로 보면 우리가 360도를 보는데 양은 자기 코앞만 집중해서 봅니다. 그래서 시선이 산만하고요.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딴 곳에 시선을 두는 거하고 같아요. 진짜 코앞만 보기에 여기 풀이 있구나! 여기 풀이 있구나! 만 하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게 양이래요. 여기 풀이 있구나! 옆을 못 본다는 거예요. 여우가 좌로 몰고~ 우로 몰고~ 북으로 몰고~ 남으로 몰고~ 뺑뺑이를 돌리다가 골릴 대로 골리다가 서 있으면 그 양 중에 약하고 강한 것이 딱 드러난다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가 찍은 양을 딱 죽인다는 거예요. 자기 새끼 먹이려고 물고 간다는데 한 번 그러면 초장지를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쳐야 되는 거예요. 뭐 그런 일이 또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요.) 그래서 한여름에 이 여우 한 마리가 양을 300마리까지 죽이는 걸 보았다는 거예요. 배고파서 죽이는 게 아니라 이제 골리느라 죽인다는 거예요. 악한 세력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럼, 목자가 어디로 갔나요? 새벽에 장총 메고 여우가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여우 잡아야 하니까 여우를 볼 수 있는 곳에 있다가 죽이기도 하고, 도망도 가게하고, 그리곤 죽여서 걸어놓기도 하는데, 근데 양들의 입장에서는 목자가 없는 거예요, 안 보이니까.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주고, 이 한순간에 여우의 존재가 사라지게 하는데 목자가 안 보인다고 안중에도 없고, 평소에는 신뢰하는 것 같아도 얼마나 신뢰가 약한지를 보여준다는 거예요. 우리도 어렵고 무서운 그 여우의 일만 들어오지, 그 여우를 더 노려보고 계시는 목자 하나님을 못 보기 때문에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약한 양, 강한 양의 차이가 거기 있는 거예요. 맨날 그냥 남의 말에 흔들리는... 귀가 얇고 코앞의 밖에 모르고. '여기, 여기 정말 그 푸른 풀이 있구나! 있구나!' 그것밖에 몰라요. 옆에서 그거 하지 말라고 그러잖아요. '요새 그거 사면 안 돼요! 그런 건 다 그만둬야 되요!' 말해줘도. (양은 코 앞만 보고) '여기 오른다잖아! 주식이 오른다잖아!'... 그래서 올랐어요? 여호와의 열심 때문에 사단은 하나님의 성도인 우리에게 이르지 못하고, 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세우지도 못하며, 토성을 쌓지 못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련하여 다 양 같아서 다 각기 제 길로 갔대요. 딱 양이 우리 아니에요?
[적용] 내 것 아닌 것을 차지하려고 앗수르처럼 돌진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처럼 무력하게 당하고 있는 일은 또 무엇입니까? 우리는 여우에 비하면 너무 연약하잖아요. 근데 나는 하나님께서 무조건 보호하여 구원하시는 택자임을 믿습니까?
그러니까 난리를 치면 안 되는 거죠. 하나님이 너무 정확한 말씀을 주신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3. 이 밤에 말씀대로 역전하십니다. (35-37절)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5절이에요.
예루살렘을 보호하여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이 임한 그 밤에 하나님은 즉시 말씀대로 이루십니다. 조금도 지체하지 않으시고 바로 그 밤에 천사 한 명을 보내니까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치셨어요. 세계를 주무르던 18만 5천 명의 군대가 하룻밤 사이에 시체로 변했습니다. 랍사게의 말만 듣고도 무서워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던 예루살렘 백성이에요. 산헤립의 편지 한 통 받고 나라 망했다며 절망하던 백성이에요. 근데 히스기야 한 사람이 산헤립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들으셨어요. 말씀으로 응답하셔요. 그리고 바로 그날 밤에 말씀대로 앗수르 군대를 다 저세상으로 보내버리십니다. 앗수르가 자기 힘을 믿고 교만하게하나님의 백성을 빼앗으려 하니까 하나님이 바로 응징하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이에요! 산헤립 때문에 아파하고 슬퍼하고 낙심하는 밤을 지날 때,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 다 펼쳐서 아뢰면! 내 기도 듣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그리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바로 그 밤에 말씀대로 상황을 바꿔 주십니다! 역전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즉각적인 역전을 앗수르 왕 산헤립도 피하지 못합니다.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36, 37절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미 7절에 말씀하셨어요.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하리라 말씀하셨어요. 이제 이 말씀 그대로 산헤립에게 이루어졌습니다. 하룻밤새 모든 군대를 잃은 산헤립은 말씀대로 앗수르 본국으로 돌아갔어요. 왔던 길로돌아갔어요. 어찌 보면 산헤립은 18만 5천 명이 죽던 그날 밤은 죽지 않았어요.피했어요. 하지만 이 밤은 우리가 원하고 계획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이 밤은하나님의 시간이에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에요. 근데 산헤립에게도이 밤이 오늘 보니까 불현듯 찾아왔어요. 18만 5천 명이 죽은 날은 안 죽었는데돌아가서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의 칼에 죽었어요. 그런데 이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은 놀랍게도 산헤립의 아들이었다는 거예요. 바벨론 역대기에 보면 그렇게 나와요. 온 세상의 주인 행세하던 산헤립. 이 세상에 감히 자기에게 반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했던 이 산헤립이 결국 자기 아들의 손에 죽은 거예요. 역전도이런 역전이 없어요. 하루아침에 인생이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산헤립은 앗수르최고의 신에게 경배에도 이제 신들의 이름을 붙여준 그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한거죠. 그러니까 여러분 세상 세력은 무서워할 것이 없는 거예요.열왕기서에 보면 자식이 모반하는 것으로 징계하는 것을 우리가 종종 보잖아요.믿어도, 안 믿어도 자식이 우상이기 때문에 잘못 살면 자식으로 치시는 것이 가장빠른 길 같습니다. 출애굽할 때도 바로의 장자를 치시니까 금세 내보내 줬죠. 근데 그렇게 자식이 배반을 해도 내 자식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또 그 자리에내 자식을 세웁니다. 에살핫돈을 또 세우는 거예요. 아들 하나 남았다고. 진짜 자식을 객관적으로 못 봐요. 우리 지역감정이 다 내 자식, 내 고향 이거에서 못 벗어나니까. 이건 진짜 교훈 받아야 될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사실 산헤립에게 18만 5천 명의 군대가 순식간에 송장이 된 그 밤의 사건은 산헤립에게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왔던 길로 돌이키는 게 아니라 진짜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마지막 기회였어요. 하지만 산헤립에게는 18만 5천 명이 죽어도 아직 앗수르라는 대제국이 남아 있는 거예요. 돌아가 편안히 거할 니느웨가 있었고, 궁궐이 남아 있었어요. 큰 고난을 당하고도 아직 세상에 기댈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오지 않아요. 문제가 아무리 생겨도 하나님께 나오지 않아요. 죄악에 물든 인생을 스스로 뒤집어서 회개해서 하나님께 나와야-하나님께 돌아와야-살아나는 진정한 역전의 주인공이 되는데, 산헤립은 그저 왔던 길로 돌아가 자기가 살던 대로 편안히 사니까 가장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역전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어요. 여러분, 우리 인생이 한 뼘이라고 그랬어요. 밑동 잘린 나무. 이거를 모르니까 악을 행하기에 담대한 거예요. 이 세상의 시간으로만 자꾸 해석을 하니까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고 우리는 너무 또 분해서 죽는 거예요. 근데 반면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은 어떻게 됩니까? 죽다가 살아나는 거예요. 살아나는 역전의 주인공이 된 것이에요. 세상에서 기댈 곳 하나가 남지 않아서 그저 하나님만 바라봐야만 했는데 오히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부르짖어 기도했기 때문에 살아나는 역전의 주인공이 된 줄 믿습니다. 여러분, 남북이 이렇게 이제 반역을 일으켜서 북이스라엘이 나갔잖아요. 근데 북이스라엘은 끝까지 악만 행해요. 금송아지 섬겨요. 그리고 잘 살아요. 승승장구해요. 남유다는 맨날 지리멸렬해요. 그러나 하나님의 택자이기 때문에 남유다에서는 그래도 개혁이 몇 번 일어나는 거예요, 개혁이. 그 개혁을 할 때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거예요. 이걸 구속사로 해석을 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냥 눈앞의 시간으로 자꾸 해석하니까 다 분해서 못 자고, 너무 좋아서 못 자고... 이 역전이 바로 하나님이 보호하여 구원하시는 인생의 결론인 거예요. 스가랴 12장 8절이에요.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 그 보호하심을 받으면, 약한 자가 다윗처럼 되고 하나님같이 되는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천사같이 되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역전이 있기 때문에 성도는 이렇게 이제 시간 속에서만 생각하며 일희일비하면안 되는 거예요. 오늘 이 순간이 캄캄한 밤 같고, 1초 앞을 볼 수 없는 어둠 가운데 절망하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역전이 있기 때문에! 시간 바깥에서 영원 아래에서 소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밤과 같은 고난이 오면 우리는 즉시 하나님의 방패 아래로 도망해야 합니다! 내 방패 믿지 말고, 세상에 방패 찾아방황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패 아래로 그 날개 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지난 주일에는 성령이 탄식하는 기도를 했고, 그리고 이제 앞날을 내다봤기 때문에 대선 후에 이렇게 기도회를^^ 정말 우리는 이 밤과 같은 고난이 왔을 때 즉시 하나님의 방패 아래로 도망해서 기도한 줄 믿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방패 아래, 하나님의 날개 아래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구원하시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말씀과 기도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방패 아래로, 날개 밑으로 나아가야 하는 그곳이 어디예요?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인 줄 믿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라고 해요. 이 땅에서 교회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생일인거예요. 지금까지 역사에 교회를 향한 무수한 핍박과 방해가 이어졌지만 성령께서그 날개로 덮으시고, 방패로 가리셔서 우리의 교회를 지켜주신 줄 믿습니다. 어떤탄압도 여호와의 열심보다 뜨겁지는 못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눈으로 바라보는사건만 보니까 죽을 것 같지만 구원받은 우리는 누구도 죽일 수가 없는 거예요,구원받은 우리는. 할렐루야! 부활의 몸인 우리는 누구도 죽일 수가 없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어떤 세력도 주의 몸 된 교회를 건드리지 못했어요. 다 없어질 것같은 위기 가운데에서도 교회와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역전하여 항상 교회를 살려 주셨습니다! 지금 북한에도 남아 있는 7천 명이 있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하여 구원하시는 줄 믿어요. 제가 우리들교회에 그렇게 아이들 결혼 얘기할 때 남자고 여자면 해야 된다 이 얘기를 왜 하냐면은 북한에 갔더니 나중에 네 아들 내 딸 결혼시키자 서로 약속을 했는데 20년 후에 만났더니 너무 영양실조가 심하니까 다 불구인 거예요. 한 사람은 눈이 멀었고, 하나는 곱사고, 하나는 곱추고. 그런데 약속했으니까 무조건 결혼하는 거예요. 약속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남자고 여자라면 형편이 아주 좋은 거예요. 남자고 여자. 눈으로 바라보고 하는 거잖아요. 20년 전에 약속한 게 아니고 눈으로 바라보고. 그런데 하나님이 얼마나 급하신지 우리들 청년들이 이혼을 안 하게 하세요. 너무 놀랍지 않아요? 학벌 보고 한 거 아닌데 이혼을 안 하게 하세요. 보호하여 구원하리라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교회는 건드리지 못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교회로 인도되어 들어왔기 때문에 성령께서 보호하여 구원하시는 은혜를 누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청년들이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고 그랬기 때문에 얘네들은... 여러분들은 지금 이 얘기 들어도 '아유~ 무슨 남자고~ 여자야~' 그러고 계시잖아요? 근데 애들은 그 있는 모습 그대로-들은대로-이기 때문에 결혼이 그렇게 잘 되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22년 동안 전부 다 또 이혼하고 그랬으면 열매가 없잖아요. 근데 하나님께서 이 진심을 보시고, 이 나라 생명이 이어져 가야되니까 결혼도 많이 하고 아이도 많이 낳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진짜 보호하여 구원하리라의 그 역사가 지금 일어나는 줄 믿습니다! 믿음만 보면 되는 거예요. 믿음. 아니 믿음이 최고지 더 좋은 게 이 세상에 뭐가 있겠어요? 그죠? 우리는 아무리 머리를 잘 써도 이제 10%밖에 못 쓰는데 90%의 세계로 나가게 되는데. 그래서 이 구원하신 은혜를 누리고 있는데 하지만 우리 가족 가운데, 이웃 가운데 아직 이 보호 속으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어요. 이번 주 정말로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하시면서 초청하시기 바래요. 다음 주 창립 22주년 전도축제가 그분들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방패 안으로! 들어와 보호하여 구원하시는 은혜를 입는 진정한 인생 역전의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적용] 여전히 꿈꾸는 인생역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높음을 자랑하거나 낮음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습니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구원의 역전이 내 삶에 임했습니까? 다음 주일에 누구를 초청하여 모셔 오겠습니까?
진영논리, 지역감정 때문에 난리 치는 사람은 인구의 2%밖에 안 된대요. 나머지는 양 같아서 맨날 쫓아 댕기는 거예요 그냥. 그냥 한 마리가 움직이면 다 (쫓아가요). 관심이 없는 거예요. 전부 다 그래요. 우리들교회에 오기 전에는 그런 거 관심 하나도 없었다고. 그래서 정말 우리는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못 드려요. 아셨어요? 나중에 그 생각하면 뭐에요? 전도하셔야 되는 거예요.
나눔입니다. 저는 원래 굉장히 불편한 사람이었어요. 기준이 뚜렷하고, 게으르거나 열심히 안 사는 사람은 인생의 쓰레기처럼 여겼어요. 그래서 아내와도 관계가 회복되는 줄 알았는데 (아내와 재혼을 했거든요) 그런데 아내의 갑작스러운 자살 시도를 겪으면서 제가 완전히 무너졌어요. 그 사건 앞에서 내가 이렇게 헌신했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싶은 마음이 들었고, 하나님이 저를 완전히 깨뜨리셨는데 (이분 정말 바른생활 사나이니까) 그때 목사님이 죄를 용서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셨는데 그 말이 저를 해석하게 해줬어요. 아, 이게 내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치리구나. 너무 아팠지만 그 고난을 통해 말씀도 들리고 회개가 시작됐어요. 근데 그 사건 이후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이 들면서 동정이 아니라 애통이 생겼어요. 내가 낳은 자녀도 힘든데 남이 낳은 자녀 2명에, 자기가 낳은 자녀 2명... 진짜 힘들었겠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아내에 대해서 애통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저는 아침에 못 일어나고 이런 거 정말 못 보거든요. 저는 너무 쓰레기처럼 봐요. 원래 그랬어요. 집에 들어가면 드라마 정주행하고 있고... 이런 거 너무 못 봐요. 너무 쓰레기처럼 봤어요. 근데 지금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는 게 아내를깨울까 봐 미안해요. 그래서 더 자라고 해요. 드라마 보고 있으면 '음~ 또 막장드라마? 뭔데?' 이러면서 관심을 가져주면서 같이 봐준다는 거예요. 아내도 말씀을통해 요셉이 존재 자체가 형들에게 가해자였겠구나. 내가 새엄마인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상처일 수 있겠구나 하면서 큰아들에게 눈물로 사과를 했더니 아들이 펄쩍펄쩍 뛰며 친구 만나러 가는 걸 보고 그동안 얼마나 눌려 있었는지 깨달았대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그 일이 없었으면 좋았던 게 아니라 꼭 필요했던 사건이었다는 거죠. 우리를 깨어지게 하시고, 애통하게 하셔서 말씀으로 살게 하신 거니까요. (이혼의) 유책 사유가 아내에게 있기 때문에 양육권 이거 모두 아빠가 가져와서 애들을 여기서 너무 잘 키웠는데 25살에 그냥 막 뭐 이렇게 게임 같은 거 너무 밤에 해서 한 번 때렸더니 당장 믿지도 않는 친엄마한테 간 거예요, 아들이. 그러니까 얼마나 우리 교회에서 그냥 전부 다 그냥 알뜰살뜰하게 그냥 유리그릇처럼 그렇게 키웠는데 이게 기가 막힌 거야. 그러니까 웬만하면 이혼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럼에도 재혼할 거면 말씀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의 고백과 공동체가 있어야 그나마 버텨가는 거지. 그렇다고 또 문제가 안 생기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계속 생길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래요. 게임을 하고 나쁜 짓을 하려니까 안 믿는 친엄마를 당장 찾아가잖아요. 그죠. 그리고 하여튼 아무리 잘해줘도 잘해준다는 것 자체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잘 해준다는 언어 자체가 이상한 거예요. 욕하고 때리고 마음대로 하고 살아야 되는데 자고로 새엄마는 때리는 거 안 해요. 항상 '그래?' 교양 있게 나와요. 그런 게 아이들을 이렇게... 어떻게 부모 자녀 간에 이렇게 교양으로 살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오늘도 다시 한 번 말하노니 유책 사유가 아내에게 있건, 남편에게 있건 무조건 결혼을 지켜야 되는 거예요. 나중에 25년 동안 아이를 이렇게 잘 키웠는데도 싹 가버렸어요. 이 장로님은 그냥 너무 바른생활 사나이인데 아내는 자살 기도를 하지 않나~ 아들은 또 그냥 친엄마한테 가지를 않나~ 그러면서 굉장히 불편했던 장로님이 지금 편해지고 있다는 얘기를~~~ 본인이 '나는 굉장히 불편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하나님이 그 중심을 보시고 '반드시 보호하여 구원하리라!'의 약속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말씀 맺어요.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첫째는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신다고 했어요. 하나님께서 내가 택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거예요. 불꽃 같은 눈으로 목자 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쳐다보고 계시고 인도하여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밤에! 그 시간에! 반드시 말씀대로 역전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걸 미리 바라보고 믿으시기를 바래요.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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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큐티, 중보기도 적기
2.선생님께 자세하게 물어보고 어린날의 아픔이 생명 살리는 약재료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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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공기 바람하고 하루만 살도록
2.가족우상과 분리되어 나먼저 보호받고 목장에 붙어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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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큐티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고 부모의 그림자와 분리되어 성장 할 수 있도록
2.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말씀과 목장에 자세하게 묻고 회개하여 부활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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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양같이 일희일비 않고, 보호받아 구원되도록
2.가족구원은 주께 맡기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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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리는 회개의 언어로 보호받아 구원되도록
2.정직한영으로 분별하는 눈과 마음주시도록
3.직장 프로젝트 논문 성령의 인도함 받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