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참 안 변합니다. 그걸 인정해야 아름다운거에요. 여기 한번 영접했다고 바뀌는게 아닙니다. 그래서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건지신다고 약속하시는데요 우리는 왜 다른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반드시 건지실까요? 오늘 랍사게의 두 번째 연설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아야 할까요?
1. 우리는 세상의 외침에 쉽게 속기 때문입니다.(28-32a절)
예루살렘은 지금 앗수르군에게 포위되어 있습니다. 앗수르 왕은 사네립이 보낸 랍사게가 예루살렘 성안을 향해 한 차례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하나님만 의뢰하는 히스기야에게 네 의뢰가 무엇이냐 물으면서 조롱했고요, 힘을 합쳐 맞서려는 애굽이 상한 갈대의 지팡이라고 놀립니다. 히스기야가 보낸 세명의 장관은 이런 말을 백성이 듣는게 너무 두려워서 제발 유다 말로 하지 말고 아랍말로 해달라 이 얘기는 제발 우리나라말로 하지 말고 영어로 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랍사게난 단칼에 거절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연설을 시작합니다.
유다 말로 하지 말라고 했는데 더더욱 큰 소리로 유다 말로 외칩니다. 역대하 32장에 보면 랍사게는 유다백성을 놀라게 하고 괴롭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다고 합니다. 랍사게는 심리전의 달인이고 똑똑한 분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 사람의 제1의무가 들으라 이스라엘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이게 주제 입니다. 그런데 랍사게가 유다인에게 큰소리로 외치는 명령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앗수르 왕 사네립이 지금 무슨 말씀을 했다고 들으라고 하지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말하지만 그게 속임수니 속지말고 그 거짓된 말을 듣지 말라고 하는 거에요. 세상을 다스리는 사네립 왕이 군대로 성을 포위한체 이 말을 전해요. 이 말을 유다 백성은 지금 성안에 포위된체 듣고 있어요. 히스기야 왕은 궁궐에서 나오지도 못했을 거에요. 장군도 군대도 앗수르 군대에게 맞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형편인데 가뜩이나 쩌렁쩌렁 울리는 랍사게의 외침이 백성들에게는 더욱 크게 울리지 않았겠습니까?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녹아내리는 듯 했을 거에요. 그러니까 히스기야가했다는 말은 기억도 잘 안나는데 큰소리로 들리는 앗수르 왕의 말은 너무 맞는 것처럼 들렸을 거에요. 그런데 앗수르 왕의 외침은 위협으로 끝이 아니었어요.
앗수르 왕의 말씀이 빨리 항복하고 성문을 열라 였다.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 무장했던 상황을 빨리 해체해라. 그러니까 위기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남유다 군인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기에 충분 했습니다. 그렇게 항복하게 나오면 무화과와 우물물을 보장해주고 새로운 동네로 이사까지 해준다고 하는데 거기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하고 똑같이 곡식과 포도주가 있어요. 곡식과 포도주가 있으니까 그걸로 만드는 떡과 포도원이 있고 그 다음에는 특식인 기름에 꿀이 있다고 하면서 점층적으로 지상낙원인 것처럼 소개를 하니까 이 사람이 심리전에 달인이에요. 내 말만 들으면 죽지 않고 살것이라고 설득력있게 설득해서 살 것을 약속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는 것은 아주 잔인한 앗수르 이주 정책을 말하는 거에요. 앗수르는 그 동안 피정복민의 여자들을 욕보이게 하고 모두 옷을 벗겨서 포박해서 서로 뒤섞어서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시켜서 누가 어떤 백성인지 모르는 거에요. 반란을 방지하기 위한 아주 잔인한 이주정책을 썼어요. 그러니까 오늘 랍사게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에요. 유다 백성은 불과 21년 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한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지금 당장이라도 앗수르 군대가 성을 부수고 들어와 다 죽을 것처럼 느낍니다. 그런데 지금 항복하면 새로운 곳에 이사해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다니까 게다가 세계 최고의 강대국의 수장께서 자기들에게 직접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친히 약속을 해주니까 황공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를 두렵게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게 하는게 세상의 외침이고 세상의 큰 외침입니다. 세상의 외침은 우리를 우리 자리에서 떠나게 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리에 두려움을 심어서 떠나고 싶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감사히 누리는 자리에 부러움을 잔뜩 넣어서 하나님을 떠나고 싶게 만듭니다. 외침이 크면 클수록 떠나고 싶은 마음도 커집니다. 그런데 두려워지고 부러워지는게 속는 거에요. 진리는 하나님 안에 있잖아요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믿어야 진리 위에 서서 속지 않는 거에요. 하나님께 속한 자는 진리의 말씀을 듣는 거에요 그런데 말씀보다는 앗수르 왕처럼 보암직한 믿음직한 세상의 힘과 진위와 능력이 지금 당장 더 옳은 것처럼 보이는게 우리의 문제입니다. 속기 싫지만 너무 쉽게 속는게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아무리 안속으려고 애를 써도 앗수르 왕처럼 대단한 누군가가 내게 오면 다 속아 넘어 가는 것이 우리의 한계에요. 왜죠? 우리가 앗수르 왕처럼 되고 싶은 욕심이 너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처지와 형편이 가난하든 부하든 다른 존재가 아닌 하나님께 건지심을 받아야 합니다. 왜죠? 여호와께서 우리를 반드시 건지실지라.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바라바의 세상방법이 아닌 로마를 총칼로 물리치는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반드시 건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쉽게 속는 우리의 악함과 약함으로부터 아무리 다짐을 해도 또 속임을 당하게 되는 우리의 욕심으로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건지실 겁니다. 반드시 건지시리라. 오늘 본문에 건지다가 7번 이상 나와요. 나는 너무 잘 속으니 건짐 받을 자격이 없어.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잘 속을수록 건짐 받을 자격이 없을수록 다른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건지실 것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확실히 건짐을 받을 소망의 근거가 오직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뉴스에서 나오는 말, 주변 사람들의 말,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여러 인본적인 소리 등 나를 향해 크게 외쳐서 두렵게하고 부럽게 하는 모든 세상의 외침을 들으면서 지금 갈등하고 계세요? 이런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어리석게 여겨지십니까? 너무 쉽게 잘 속아서 스스로에게 좌절하고 절망합니까? 오히려 그런 연약함과 죄악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을 확실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Q. 나를 두렵게 하고, 부럽게 하는 세상의 외침은 무엇입니까?
Q. 그 외침에 속아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자리를 떠나려 하는 내 연약함을 고백합니까?
Q. 또 그 외침을 듣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떠나고 싶은 것이 속임 당하는 것임을 인정합니까?
2. 우리는 자꾸 높아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32b-35절)
아무리 히스기야가 우리를 건지시리라 설득해도 앗수르 왕은 듣지 말라고 합니다. 그건 속임수고 거짓말이라는 거에요. 얼핏보면 히스기야를 욕하는 것 같지만 앗수르의 본심은 더 큰데에 있습니다. 앗수르는 당시 중동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초강대국이었어요. 사네립은 앗수르 왕 중에서도 많은 전쟁을 치루며 큰 승리를 얻었습니다. 아주 큰 반란을 여러차례 진압했습니다. 지금 유다를 쳐들어온 것도 히스기야가 앗수르로부터 독립선언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러고 유다 모든 견고한 성들을 점령 했습니다. 랍사게가 말한 것처럼 사네립은 대왕이 맞습니다. 그런데 사네립이 많은 승리를 통해 얻은 것은 포로, 인질, 돈, 땅 많은 것을 얻었지만 영적으로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그는 이기고 또 이기는 경험을 하면서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신들도 자기 적수가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어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쎈 존재이고 세상의 중심이라고 자신 했어요. 예루살렘 백성이 이 사실을 더 확실히 인식하도록 전 세계에서 지금 사마리아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여러 민족을 거론합니다. 사네립에게는 여호와 하나님도 자신에게 굴복한 여러 신들 중 하나였습니다. 교만의 끝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무시하는 거에요. 우리도 언제든 환경만 갖춰지면 교만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인거에요. 교만한 환경은 사람마다 달라요. 상대적인거에요. 그러나 교만한 마음 자체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져 있어요. 인간의 특징은 교만이에요. 교만은 절대적이고 본성적인 것입니다. 이게 환경에 따라서 커지는 거지요. 그런데 교만을 부리고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의 문제점은 그들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거에요. 교만의 증거는 칭찬을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좋든 싫든 칭찬에 목이 말라요. 자타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몸부림처럼 구해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저절로 구하게 되어있습니다. 칭찬이 자기 행동에 면죄부를 주게 됩니다.(도덕적 면죄부) 날마다 칭찬을 받으면 나중에 비난에 직면을 못하는 거에요. 날마다 호호불어가며 키우는게 좋지 않은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QT하며 하나님께 날마다 꾸지람을 받아야 하는거에요. 꾸지람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자꾸 자기 행동에 면죄부를 줍니다. 칭찬도 결국은 채워지면 그만인 욕구입니다. 채워지면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되는 욕심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칭찬받지 못하면 못견디고 조그만 비난도 참지 못하고 나아가 하나님께도 인정만 받으려 하고 심지어 하나님도 자기가 판단하려고 합니다. 모든걸 다 갖추게 되면 앗수르왕 같은 존재가 되는 거에요. 앗수르 왕도 하나님께서 건져 주셔야 하는 죄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눈이 멀어서 자신이 건짐 받아야 될 존재라는 것을 모르지만 사실은 그도 구원 받아야 할 죄인인 거에요. 앗수르 왕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일까요? 아니에요. 우리는 내 옆에 앗수르 왕 같은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앗수르 왕 같은 환경에 있지 않을 뿐 마음은 똑같아요. 기회만 되면 자꾸 칭찬받으려 하고 높아지려고 해요. 하나님도 내 머릿속에 두고 싶어 하는 거에요. 절망과 교만은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다른 존재가 아닌 하나님께 건져짐을 받아야 한다.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이 곤고한 형편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겠어요? 하나님만이 우리를 건져주실 수 있는거에요. 그래서 오늘 말씀으로 약속하세요.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시리라.
Q. '이것만은 내 것'이라며 내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Q. 여러분은 어떤 칭찬 받기를 좋아합니까? 제일 듣기 싫은 비판은 무엇입니까?
▪ 이 시대의 랍사게, 웬디 덩 이야기
3. 우리는 전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36-37절)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 이 세사람은 온 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앗수르 국가 대표 랍사게에게 완전히 KO패 당했습니다. 랍사게가 혼자 떠들고 있는 동안 세 사람은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어요. 그렇게 일방적으로 얻어 맞고 나서 한 일이 자기 옷 찢은거에요. 적극적인 슬픔과 분노의 표현이라기 보다 대응도 못하고 모욕당한 초라한 상태로 수치와 부끄러운 모습 그대로 왕 앞에 나아간거에요. 외교술에 능한 랍사게를 무능력한 남유다 관리들과 대조시키면서 남유다가 최후의 협상에서도 실패한 것을 보여줍니다. 나가서 들은 말만 전한게 아니고 히스기야에게는 그래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찢은 옷을 그대로 입고 엉엉 울면서 당한 일을 다 고했어요. 우리는 죄악의 큰 외침과 높은 교만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적인 무력함 때문에 절망해요. 이 무력함에서 해야 할 것은 옷을 찢는 회개입니다. 찢은 옷을 그대로 입고 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모두 고하는 것이 예배에요. 찢긴 마음, 깨진 자존심, 실패한 열심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빈손, 이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예배에요. 지금 전적인 무력함 때문에 너무 힘드세요?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떠나고 싶습니까? 우리는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지만 달라지지 않는 환경 때문에 너무 위축이 됩니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위축이 되는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너무 무력해요. 그런데 인생의 바닥이 하나님 찾을 시간인 거에요. 다 잘난 사람이 하나님을 왜 찾겠어요? 그니까 그렇게 내가 맨날 위축되는 그 마음을 하나님께 고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년데 왜 세상 사라들을 보면 이렇게 위축이 되지요? 여기는 내가 올 자리가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지요? 여러분 예수님을 죽인 사람이 로타리 클럽 회원들이에요. 그사람들이 다 모여서 예수님을 죽여라 죽여라 했어요. 그런데 백성들은 거기에 다 붙었어요. 그래서 다 같이 지도자들이 옳아 보여서 주님은 빌라도 전도도 실패했고 마지막에 두 강도하고 같이 갔어요. 두 강도 중에서도 한 강도만 인정을 했어요. 그런데 그 강도하고 주님은 말을 섞었어요. 우리가 마지막까지 이렇게 힘든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날마다 위축이 되고 세상을 보고 위축이 되고 절망이 되고 세상과 비교를 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살았던 내 모습을 회개하고 날마다 예배를 왜 오냐면 이번주도 위축됐던 내 모습을 하나님께 고해야 하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 건지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무력함은 멸망할 이유가 아닌거에요.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은 세상의 큰 외침이 아니에요.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세상의 교만함이 아니에요. 우리가 나아가야할 곳은 세상이 약속하는 헛된 행복이 아니에요.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나와 같은 지체들이 모인 예배의 자리에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두팔벌려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의 품인 거에요. 그런데 이 세상에 살면서 이걸 어떻게 겪겠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전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에 건지시는거에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지실 인생인줄 믿습니다. 주님의 건지심을 받아서 오늘 시편 말씀처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찬송을 외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보면서 나를 직면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백성은 침묵 했고 이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성도의 전적인 무력함을 상징합니다. 날마다 생기는 죄의 유혹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백점 줘야 할 판입니다.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고 뵐 면목이 없는 것입니다. 무력함에서 우리가 할것은 회개입니다.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앗수르 왕의 외침에 무너지면 안됩니다. 세상의 소리에 넘어가지 말고 전적인 무력함을 느낄때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입니다. 모든 때가 아름답다고 하셨다 비교하며 위축되지 말자.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지 말자. 시간안에서 내모습을 보는 것은 작은병 안에서 비교하는 것이고 힘든 것입니다.. 인생의 바닥에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을 시간입니다. 전적인 무력함은 멸망할 이유가 아닌 하나님께 건지심을 받을 이유입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은 세상의 큰소리나 세상의 교만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은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고 예배의 자리고 하나님의 품입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에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건지심을 받아서 여호와는 위대하다 외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Q. 내 무능함을 인정합니까, 숨기려 합니까?
Q. 무력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려 하지는 않습니까?
Q. 전적인 무력함이 오히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이유임이 믿어집니까?
▪ 도박 중독에서 목자까지 되었지만 되었다 함이 없기에 서로의 연약함과 무력함으로 목장에서 싸우시는 목자님 부부의 나눔
아무리 다짐을 해도 또 속게 되는 우리의 욕심
[기도제목]

1. 남동생 하나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길
2. 말씀 붙들고 하루의 삶을 감사하며 잘 살아내기를
3.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목장식구들 믿음의 배우자를 허락하주시길
4. 사랑부 섬김이 나의 열심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감당하고 은혜 받기를
5. 엄마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상처가 회복되기를
6. 이비인후과 병원 옮겨야 하는데 나에게 맞는 병원 찾을 수 있길
7. 수요일에 어린이날 행사로 떡볶이 파티를 하는데 사고 없이 아이들 안전 지켜주시길
처음으로 많은 양을 만들어보는데 맛있게 만들어서 아이들하고 좋은시간 보낼수 있기를

1. 평범한 나날이 오히려 신앙의 위기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악착같이 예배와 큐티를 사모하도록.
2. 어머니 당뇨라 합병증 조심하시고, 건강하실 수 있게.
3. 동생내외가 교회를 안가고 있는데(재수씨는 천주교), 동생집에 구원이 임할 수 있도록.
4. 내 십자가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도하며 마땅히 감내할 수 있게 해주세요.
5. 요새 많이 피곤한데 체력관리 할 수 있도록
6. 지금 휴무가 일, 월인데 교회 편히 올 수 있는 토, 일로 옮겨질 수 있게 해주세요.
7. 지금까지 내 의로 정하고 행했던 것들을 회개합니다. 이제부터는 주님께 의지하고 주님이 이끄시길 기도합니다.
1. 아버지께서 6월에 검사를 받으십니다.
그 동안 관리 잘 해서 건강 되찾으시고 부모님 모두 영육으로 세워지시는 시간 되시길
2. 친한 동생이 혈관 속 균들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ㅠㅜ 재발 되지 않고 온전히 회복하고 살아난 삶을 전하는 인생 되도록
3. 준비하는 컨텐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인도해 주세요.
4. 모든 때가 주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때임을 믿고, 누리며, 매일 말씀과 기도로 깨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게 하시고, 시간을 귀히 여기며 쓰게 해주세요.
5. 목장 식구들의 직면의 시기에 있는데 절대 포기하지 않게 해주시고, 때에 맞게 이르시되의 구속사로 응답받게 해주세요.
6. 어제 셋째 형부가 목세 등록하셨는데 꼭 와서 양육까지 받게 하시고, 구속사의 가치관이 들어갈 수 있도록 (군에 있는 조카가 예수 믿는다고 구타와 핍박 가운데 있는데 ㅠㅜ 멈춰지고 조카와 그들도 교회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남은 세 명의 동생들도 영육으로 붙들어주시길)
7. 스승님 혈액암 투병중이신데 자신을 내려놓게 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말씀의 권능이 임해 그 가정에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부부와 자녀에게 각자 찾아가주세요.)
8. 각자의 배우자를 서로 알아볼 수 있는 눈을 열어 꼭 속히 만나게 해주세요.(우리 목장 식구들과 저 모두 신교제, 신결혼을 허락해주세요.)
9. 구원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물질을 채워주시길 (배우와 가르치는 일 자리를 허락해주시도록) - 구별된 자로 보내주실 수 있길
1. 꼬이고 엉킨 실타래의 제 모습이지만, 말씀으로 해석받고 직면하여 잘 풀어내는 은혜 허락해주시길.
2. 지체들의 기도제목을 날마다 중보할 수 있길.
3. 겸손한 자되어 알맞은 진로를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4. 양육자로서 동반자의 나눔을 경청하고 제 삶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길.
5. 내 길을 여호와께 다 맡기길.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얼만큼 사랑하는지
알고 깨닫게 해주시길
내 고난을 약재료로 쓸수있게되도록
양육시켜주시고 순종할수있도록
성령님 인도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