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23낙심하지 않는 기도
누가복음 18:1-8
송민창목사님
할렐루야! 저는 2번 타자입니다. 2번 타자는 앞 타자와 이제 뒤 타선의 연결 타선이잖아요. 그죠? 득점이 날 수 있도록 연결고리 역할을 잘하면 되는 것이 2번 타자의 역할인데 그래서 제가 이제 병살1)만 당하지 않겠다고 그러면서 돌아다녔더니 저희 전도사님께서 '목사님,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이렇게 저를 위로해 주셨어요.그래서 오실 그분이 누구실지? 3번일지? 4번일지? 우리 담임 목사님이실지? 그 준비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QTM 단행본 편집부에서 사역을 하고 있어요. 목사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준비하고, 이번에 나온 신간 제목 알고 계시죠? 「결혼합시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여러비슷한 책들을 찾아봤어요. 경쟁이 될 만한 결혼과 사랑에 관한 책들을 뒤적거리다가한 책에서 메모가 이렇게 뚝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메모는 아마도 결혼과사랑을 준비하는 한 청년의 어떤 메모였던 것 같습니다. 어떤 메모였냐 하면은 이런메모였어요. 헌신이 너무 힘들다. 헌신이란 말이 나오면 그 말 자체에서 눌려서 벌써 가슴이 답답하다. 이런 메모가 그 메모에 적혀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헌신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죠? 저도 헌신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요즘사람들이 뭐라고 하냐면 헌신하면 뭐가 된다? 헌신짝 된다. 이런 농담을 할 정도로 참 헌신이 어려운 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이 너무 부정적인 것같아서 우리들교회가 목욕탕 교회라는 별명이 있잖아요. 서로의 죄를-때를- 밀어주는 교회 그래서 우리들의 헌신은 영적 세신2)이다. 어거지죠? 어거지 같은 말을생각했어요. 왜냐하면 헌신이 헌신짝이 아니라 우리의 헌신은 정말로 우리 죄를 보게 하는 놀라운 헌신이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던 로버트 스턴버그 박사님이라는 분은 사랑에 관한 책을 쓰셨는데 거기에서 사랑의 삼각 이론이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친밀감, 열정, 헌신 이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어요. 사랑 이 시작되려면은 친밀감으로 시작하지만 열정을 넘어서 헌신으로 나아가야지 연인 관계도 시작될 수있고,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헌신이라고 하는 단어를 영어로 commitment(헌신, 전념, 약속, 책무) 라고 하는 단어를 썼는데단순히 그 헌신이 헌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유지하려고 하는 의지,어떠한 결정들. 이것들을 포함하고 있고, 감정을 넘어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선택과 책임까지도 동반하는 것이 헌신이다. 그래서 헌신을 결정과 같은 단어로 이렇게 사용하더라고요. 결혼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헌신이 필요합니다. 자녀를 낳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까지 나아가려면 더 큰 헌신들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지금 세대를 생각해 보면 결혼도 너무 힘들고, 양육도 힘들고, 아이 낳는 것도 두렵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저와 여러분-기성세대가- 헌신의 본을 보여야 되는역할인데 우리가 어쩌면 이런 사랑의 헌신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회개의제목들이 생각나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 QTin 본문을 기억하시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하시는 그 예수님의 말씀, 그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억울한 과부의 비유입니다. 이비유를 보면은 아까 영상에서도 목사님께서 뜨겁게 기도하셨지만, 목사님께서 사부님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막 이렇게 목숨을 내놓고 기도하신 그 기도들이 제가 생각나더라고요. 우리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정말 목숨을 내놓고 울부짖으시는 그런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헌신을 배우는 것 같아요. 그런 헌신을 보일 수 있는 저희가되어야 돼요. 담임 목사님도 그렇게 기도하셨고, 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그런 기도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공통점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내놓을 수 있는 그런 헌신의 기도를 드리는 공통점이 있고, 그것이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오늘 어떻게 해야 지치지 않고 낙심하지않는 헌신된 기도를 드릴 수 있을 것인가?
1. 기도의 대상이 누군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1-2절)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알아야 우리가 낙심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대상이 누군지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1절 2절입니다.
낙심이라고 하는 이 단어의 원문은 뭐냐 하면은 앵카케오(ἐampkappaampkappaampalphaampkappaέampomega)라고 하는헬라어예요. 그런데 에크(ἐampkappa)라고 하는 전치사와 카코스(ampkappaampalphaampkappaόampsigmaf,악함)라고 하는 단어가 결합된 말인데, 악함에 사로잡혀서 피곤해지고 연약해지다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악에 사로잡히게 되니 당연히 피곤해지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소망이없어지는 마음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말로도 생각해 보면 낙심은 어떤우리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마음이 상한 상태를 낙심(落心)이라고 합니다. 한자로도 마음이 무너지다, 마음이 떨어지다, 마음이 풀어지다 이런 의미가 거기에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이 말씀하시면서 알고 계셨던 거죠. 예수님이 떠나신 이후에 제자들-저와 여러분-이 낙심할 수밖에 없다는 것들을 이미 알고 계셨어요. 그럼에도 불구
하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라고! 오늘 이 비유로 항상 기도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 항상이라는 단어에 쉬지 않고 장시간이라고 하는 의미보다는 너희의ampndash제자들의-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기도 제목들이 선하게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의 기도제목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예수님의 비유의 시작, 항상 기도하라는 말은 끊임없이 끈질기게 기도하고 포기하지 말라라고하는 문장으로 대체될 수 있고, 이것이 대구처럼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들을보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면서 저와 여러분이 제자들이 낙심할 것을 예수님이 아셨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보다 당장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너무나 낙심이 될 때가 많죠. 어제 저희 아들의 수학 성적이 떨어지는것을 보면서, 수학 성적도 떨어지고 제 마음도 저희 아내의 마음도 낙심하고 있더라고요. 건강의 문제, 결혼의 문제, 당장 진로와 직장의 문제, 내 앞에 있는 문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예수님은 오늘하나님을 불의한 재판장. 우리가 하나님에게 간구하지 아니할 때 우리의 모습이마치 불의한 재판장에게 간구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비유를 하신 게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에게 끝까지
간구해서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 아닐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오늘 나오는 재판장은 유대 지도자나 랍비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고, 주로 성경해석자들이 말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재판장을 가리키는 말이 뭡니까? 하나님을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이런 말들만 추론해 봐도 이것이 유대의 지도자들이나 랍비가 아니라 로마에 의해 세워진 로마 행정재판관일 것이라고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재판을 하였냐면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사람을 무시했기 때문에 로마에 기생하면서 소송에서 돈을 받고 재판을 했어요. 자기의 이익을 취하려고 재판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무리 앞에서이 비유로 말씀하실 때, 이 불의한 재판장을 이야기하실 때, 이미 대중들은 눈치를 채고 있었을 것이에요. 아! 그 로마의 파렴치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더러운돈을 탐하는 그 재판장을 이야기하시는 거구나!라는 것을 대중들이 이미 눈치를채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비유를 잘 알려면 사실은 과부라고 하는 인물, 이 강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과부에게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 처음부터 나오고, 중간에도 나오고, 끝까지 나오는 이 불의한 재판장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어떻게 그 불의한 재판장과는 다른 분인지를 우리가 명확히 알아야지 오늘 말씀을더 이해하기 쉽다는 것입니다.해석자에 따라서는 오늘 본문을 17장 20절3), 어제 본문부터 시작해서 오늘 본문을 한 덩어리로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왜냐하면 어제 20절을 생각해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뭐라고 물었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하는것입니까? 라고 이렇게 바리새인들이 물었어요. 그 질문에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냐면, '하나님 나라가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고, 바로 너희 안에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셨어요. 너희 안에라고 하는 말은 너희 가운데, 너희 무리 가운데,너희 무리 앞에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까지 보냐 하면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이 있어요.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통하여서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였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하나님 나라를 찾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다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바리새인들이 원하는 하나님 나라는 무엇이었냐면 정치적 메시아를 원하는 것이었어요. 그들이 원하는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그들의 대적들을 벌하여 주시고,심판하여 주시고, 어쩌면 그들이 당하였던 것보다 더 훨씬 더 큰 방법으로 그 복수를 이루어 주실... 폭력적인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원하는 것이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못 박는 것이 너무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부끄럽지만 친일을 하신 분입니다. 제가 몇 번 수요예배나 주일예배 때도 나눔을 한 적이 있어요. 대한민국 정부 초기에 그 반민족 행위자들의기준을 어떻게 삼았냐면 군수급 이상, 군대에서 소위급 이상의 어떤 관직자들을반민족 행위자라고 봤었습니다. 일본에 의해서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만주라고 하는 땅이 일부 조선인들에게는.. 기회주의자들에게는 기회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높은 관직을 지내신 할아버지를 생각해 보면 그 기준으로 볼 때 충분히...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닌 애굽-상한 갈대-를 의지했던 것처럼 나라를 등지시고배반했던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저희 외가는 독립운동을 또 하셨어요. 어릴 때 제가 이게해석이 되지 않는 거예요. 대구 지역에 선교활동을 하시던 북장로교회 선교사들.유명한 분들입니다. 베어드 선교사, 아담스, 조지 윈. 경상도에 선교 활동하셨던이런 유명한 선교사님들에 의해서 복음을 받아들이시고,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셨습니다. 우리 외증조부님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많은 고초를 당하신 분이라고 또 어머니께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어요.저는 이 두 집안이 사실은 저의 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떠나서예수를 믿게 해 주시고, (아까 찬양을 드리는데 너무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를 목사 만들어주신 이 조상들이 저에게는 저를 위해 수고해 주신 최고의 부모라는 생
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그런데 제 안에 구속사를 깨닫기 전에 가장 큰 고통과 슬픔이 무엇이었냐 하면은오늘 본문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장과는 너무나 다른 신실한 재판장이신 우리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 아버지...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불신자 아버지가- 저에게너무 큰 고통이었고, 슬픔이었습니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만주에서 태어나셨지만 떠돌이처럼 이렇게 내려와서 내려와서 남으로 내려와서 고아처럼 살아오신 그아버지는 피해의식이 있으셨고,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 피해의식이 스스로를불의한 재판장으로 만들어 가고 계신다는 거를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고3 때 가족들을 정말 이렇게 힘들게 하는 아버지라면 내가 이 원수를, 이 원한을 내 스스로 갚아버리겠다! 이런 무서운 생각을 끊임없이 했던 것같아요.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현관에 이만한 공구함이 있었는데 제가자꾸 이렇게 그 공구함을 열어서 그 공구함에 있는 가장 무서운 게 뭘까? 망치를들어서 자꾸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어 졌습니다. 모든 거를다 때려 부수고 나도 그냥... 그런 마음이 제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한 번은 매번 이렇게 현관문 앞에 서서 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이런게 저의 어떤 두려움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막 격렬한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그날 이제 현관문을 열고 공구함에서 망치를 들고 멍하니 현관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랫집에서 싸우는 소리를 듣고 올라오신 아주머니께서 제가 멍하니 이제 현관 앞에서 망치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셨어요. 그 아주머니께서 저를 보시면서 정말 눈물로 호소하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그때 예수님께서 기도할 수 없는 저를 위해서 그 시간에 찾아오셔서 저를 말려주신 것이 아닌가? 이런생각들을 참 그 이후에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제가 처음부터 그렇게 원한을 스스로 갚으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어릴 때 정말골방에서 이 이 싸움이 멈추게 해달라고.. 이제 이 싸움이 끝나게 해달라고 수 없이 제가 기도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마치 오늘 본문에 불의한 재판장인 것처럼 제가 오해하고 그렇게생각했던 나날들이 있었어요.이번 주에 이제 우리들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다니고, 어릴 때부터 양육받고 이제청년이 된 청년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청년의 현실이 어쩌면 저의 20대 초반까지의 그 고통, 슬픔. 그것과 다르지 않더라고요. 가정환경이 변한 것이 없는데 이청년이 그런데 말씀으로 해석 받고 왔기 때문에 너무나 다른 응답을 받고 있는거예요. 제가 그때 하나님의 응답이 속히 오기를 바랐던 저의 모습과는 다르게 이미 말씀으로 응답받고 있는 인생을 살고 있는 그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정말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기도했구나 이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셨습니다.엊그제도 이제 집에서 작은 싸움이 있었어요. 저희 아들과 저희 아내가. (자기들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니, 저는 할 생각이 없었는데ㅎㅎㅎ ) '도서관을가라!' (아까 영상에서 '집을 나가 빨리!' 이렇게 하는 부모처럼) '도서관을 가라!왜 도서관을 가야 되냐?! 뭐 집에서 하겠다!' 이렇게 하면서 말의 꼬리에 꼬리를물고 계속 이렇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아니 저것... 아니 저들이^^ 왜 나의
설교거리를 주려고 저렇게 싸우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지켜봤어요. 이전같으면 아! 설교 준비해야 되는데.. 이러면서 이제 원수를 또 이렇게 품는 마음이 있었겠죠. 그런데 이제 저에게 그런 마음이 없더라고요.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해서쓸데없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나의 기도를 들어줄 것 같은 그 누군가를 찾아서허비하는- 그 헛된 수고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와는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아버지셨겠지만 할아버지를 닮고 있고, 또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닮아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불의한 재판장과는 비교할 수 없이 얼마나 신실하신 분인지를 모르고 갈 때 나의 모습은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었구나.라는것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거예요.청소년 큐페에서 아이들이 그 무지막지한 부모에 대한 그 원통함들을 막 쏟아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그 불의한 재판장 같은 부모. 하지만 그 부모를 통하여서 내가 진정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다고 그렇게 고백하는 아이들의간증을 기억하실 거예요.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신실하신! 신실하신 아버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려고 우리와 항상 함께 우리에게 오시는 그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들을 오늘 기억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지치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으십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내가 구하는 기도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가 아니라 낙심할 수 밖에없는 세상을 향한 기도가 아닌지?
2. 원수갚음이 아닌 구속사로 응답받아야 합니다.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3절입니다.
이 기도의 주체로 나오는 이 과부는 당시 약자 중에서도 약자였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과부가 어떤 원한이 있었는지는 오늘 본문에 구체적으로 나오지않지만, 당시 이 과부는 너무 보호받기 힘든 그런 대상이었어요. 그래서 종종 과부에 대해서 그 과부의 가산을 탐하는 자가 있었다고, 서기관들이 과부의 재산을탐했다고 이제 곧 보게 될 누가복음 20장 47절에도 서기관들이 과부의 가산을 탐했다고 그런 구절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경건의 탈을 쓴 저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과부를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그들이 조롱했던 불의한 재판장처럼 과
부를 돌보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으로 여기며 그들의 재산을 탐하는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이렇게 성경이 기록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시 재판을하러 나오는 사람들은 주로 남자였어요. 여자의 송사 문제도 남자가 대신해서 이렇게 재판받으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과부는 이 과부를 대신해서 나올 남자가 한 명 없을 정도로 외로운 싸움을, 이 외로운 싸움을 길게 지속하는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부는 그 모든 것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또 사람을 무시한 이 불의한 재판장에게 자주 그에게 갔다고 오늘 3절에 이야
기하고 있는 것입니다.1, 2절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우리 기도의 대상은 불의한 재판장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신 기도는 바로 신실하신 하
나님 앞에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끊임없이 나아가길 바라는 예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과부의 이 원한은 단순히 복수를 위한 그런 제목들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복수를 부탁하려면 불의한 재판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그렇죠. 복수를 대신해 줄 사람에게-부탁하는 게 나았겠죠.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우리의기도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개인의 원한을 갚아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땅에 다시 오실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바리새인을 통해서 말씀하셨잖아
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 하나님의 뜻이 선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진짜기도의 응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신들의 대적을 벌하여 달라고 말하는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대적자들을 위해서 복수해 달라는 것이 하나님 제자들의 기도 제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메시아로여기고 그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들이 진정한 예수님이 원하시는 기도를 드릴 수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장년부 예목이 시작되었어요. 모든 양육이 시작되면서 저도 예목 강사로 들어갔는데, 청년부 사역할 때 청년이었던 우리 집사님들이 목자가 돼서 이렇게 앉아 계시더라고요. 너무너무 좋았어요. 너무 기쁘더라고요. 그중에 한 분이 이제잘 몰랐는데 아버지에 대한 원한이 저처럼 깊으셨어요. 그래서 청년 때부터 신혼때까지 주구장창 아버지의 원한을 정말로 끊임없이 나누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그렇게 고백하시더라고요. G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들어보셨죠? 그죠? 이게 지식사전에도 등록이 되어 있더라고요. G랄도 총량이 필요한데 이분이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분노와 고난과 원망도 풀어내려면 총량이 필요하다. 충분한 나눔과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나눔을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목자님께서 숙제에 이렇게써놓으신 한 문장이 제 눈에 확 들어왔어요. 뭐였냐면은 '구속사를 깨달을수록...구속사가 깨달아지면 깨달아질수록.. 아버지를 더욱더 사랑하게 된다.' 구속사를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내가 그렇게 미워했던.. 내가 힘들어하고 원망했던 아버지를점점 더 사랑하게 된다. 다 큰 어른이 하기에는 너무나 닭살 돋는 표현일 수도 있잖아요.그런데 제가 우리들교회에서 해석을 받으면서 그 아버지에 대한 참 수많은 처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목자가 돼라. 아버지를 안아드려라!' 제가 안아드리기까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설날 세배하면서 '아버지 사랑해요.' 이러면서 (안아드렸습니다). '아버지 얼굴에 입 맞춰 드려라!' 아내 얼굴에도 입 맞추기가 힘든데...^^ 아니 아버지 얼굴에 어떻게 입을 맞출까. 그만큼 아버지를 더 사랑하라고. 그러면서 제가 이전에는 얼마나 그 원한에 사로잡혔던 자인지, 저도 저 역시도 그렇게 아버지처럼 불의한 재판장이 되어 가던 사람인지를 다시 또 생각나게해 주셨어요.저에게는 처남이 한 명 있습니다. 저희 처남은 10대 때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막 들어갈 때 두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평생 얼굴을 본기억도 별로 없고. 그 10대를 호적이 다른.. 다른 호적을 쓰는 그 누나들과 그 10대를 오롯이 보내야 되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필요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에 리니지라고 하는 게임에 빠져서 (저희 때 리니지 폐인이 많았거든요.) 너무 힘들어했고, 고등학교도 원하는 고등학교로 가지 못해서 적응에 실패하고 결국에는 졸업하지 못했어요. PC방비를 막 뜯어내려고 자주 누나들을 괴롭히고 막 폭력을 행사하는 그 처남을 보면서 제가 막 타이르다가 사실은 참지 못하고 처남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 정도 처남을 때렸던 것 같아요.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고 그러다가 이렇게 보는데 처남의 머리가 이렇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이렇게 발견하게 됐습니다. 너무 놀라서 급하게 병원에 데려갔는데 피부에 핏줄이 터지면서 피가 고여서 머리가 이렇게 붓는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경찰에 신고해야 될 것 같다고 그렇게 의사 선생님이 이야기하시는데 그때 서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아버지가 필요한 그 아이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한것인가? 그런 생각을 그제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제가 한참을 무엇이잘못되었나? 나는 과연 그렇게 아버지를 미워했으면서도 왜 나는 이런저런 사람밖에 되지 못하는가? 너무나 큰 자책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저희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어요. 아들을 키우면서도 제가 수없이 생각했어요. 저희 아들과 또 저희 아내랑 닮고, 이제 외가 식구들하고 닮은 저희 아들의모습이 있는데 자꾸 처남의 얼굴과 이렇게 오버랩이 되는 그런 때가 있습니다.과연 나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제 스스로 많은 질문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만약에 목장 같은 공동체가 있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땅에 과부처럼 의지할 곳이 없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그 아이에게 공의의 하나님을 소개해 줘야 되는데, 우리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불의의 재판장 같은 그런 모습으로 내가 예수님이 가는 통로를 막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그러면서 제가 구원을 위해 주신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했던 그 저의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큰 죄악인지에 대해서 다시 이렇게 회개하게 하셨어요. 그것이 바로 저의 구속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우리들교회에 우리 목장에 가서 우리가 끊임없이 원한을 풀어놓는 일들을 합니다.그런데 그것은 불의한 재판장에게 가서 원한을 풀어놓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때로는 너무나 원한이 많은 분이 있잖아요. 목장에서 쉬지 않고 원망을 나눠야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라도 그 원한을 풀어드려야 될것 같은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일지라도 말씀이 들리면 하나님께서 구속사로 응답해 주시는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목장에 가서 우리의 원한을 풀어내는 그 총량을 채우는 과정을 통해서 말씀 앞에 이 문제를 내려놓는 그런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불의한 재판장은 그냥 자기중심성 때문에 더 이상 번거롭고 싶지 않아서 한 번그냥 들어준 것뿐이에요. 그 이후에는 사실 더 이상 이 과부 같은 그 원망을 가진사람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신실한 하나님을 닮아서 그런 하나님을 전하는 구원의 통로가 되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구속사는 한 번 깨달아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를 깨닫는 자들에게 매일 새롭게 새로운 은혜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은혜가 있어서 말씀 앞으로 가지고 나오기만 하면은 하나님께서 그 기도 제목에응답하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지 않는 이상 내 구원을 위해서 이것이 있어야 될 일임을 끊임없이 가르쳐주시는 하나님 구속사의 은혜가 거기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원망하고, 원한을 품고, 원수갚는 것에 그쳐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로, 구속사로 응답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그런 기도가 되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원수와 원한을 어디에 가져다 놓고 계십니까?내 감정으로 되갚으려 하고, 성공해서 복수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계시지 않습니까?목장에서 내 슬픔과 고통을 잘 드러내놓고 가고 가십니까?원한을 풀어내는 우리의 총량이 지금 얼마나 찼습니까?
3. 구원의 애통함으로 끈질긴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6-8절입니다.
17장 20절부터 시작된 이 사실은 이 비유의 맥락은 17장 22절에 인자의 날이라고 하는 단어로 시작해서 오늘 18장 8절에 인자가 올 때로 마무리가 되고 있습니다.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는 이 구절은 인자가 다시올 때 끈질긴 믿음을 이 땅에서 얼마나 찾을 수 있겠느냐? 이러한 번역으로도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끈질긴 믿음을 볼 수 있겠느냐고 부정적인 답이 나올 수밖에없는 그런 질문들이 오늘 마지막 비유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제자들이 신실한 믿음으로, 끈질긴 믿음으로 낙심치
않는 그런 기도와 믿음을 보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 끈질긴, 포기하지 않고 낙심치 않는 그 기도의 근거는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거예요.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다는 거예요. 가장 선하신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 그것이속히 이루어질 때까지. 이 속히라는 말은 빨리가 아니에요. 앞 절에서 나왔던항상과 또 짝처럼 이루어져 있어서 빨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장 선하신 하나님의 구속 시간에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될 것이라고 하는 그 말이 바로 이 속히의 의미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우리에게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그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하나님께 달린 것이라는 것입니다.7절에 택하신 자들은 누구일까요? 일차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씀하고계십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또 택하신 자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대로 이 택하신 자들에게 오늘 이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이제 내일 큐티하게 되겠지만 내일 본문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이 택하신 자들을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의 죄 때문에 자기 십자가 때문에, 내 죄 때문에 죽으신 십자가 때문에 애통한 사람들! 죄인임을 고백하고 애통한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그죄인들이 바로 이 택하신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처남은 결혼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어요, 사실은. 그런데 우리들교회 부목사님의 주례로 결혼했습니다. 우리 처남댁이 은혜를 갚아야 된다고 처남 손을 잡고우리들교회에 와서 이렇게 등록하고 사진을 찍었었어요. 그런데 이제 뭐 주일날일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사실은 그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근데 몇해 전 처남댁이 다시 이제 우리들교회 판교채플에 두 딸을 데리고 다니기 시작한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그 일도 사실은 오래 가지는 못했어요. 저도 채플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렇게 얼굴 한 번 사실 주일날 보기 힘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
런데 몇 해 전부터 이제 우리 처남과 처남댁이 별거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직장이 멀어서 그 집을 따로 구했다.' 이렇게 저희에게 이야기했기때문에 긴가민가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굉장히 그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목장에서도 나눴고, 기도하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명절에 처남이 결국이제 갈라서게 됐다고 하면서 저에게 연락하고 그 이후로 연락을 끊어버렸어요.처남댁이 이제 다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그 시간이 어쩌면 우리에게 마지막SOS 같은 걸 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가지고 제 마음이 무척 괴
로웠습니다. 그 연락을 받고 연락이 되지 않는 처남의 가정을 생각하면서 저희 아내가 (요즘 몸이 별로 좋지도 않은데, 자기 건강을 위해서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던 사람이) 처남 가정을 위해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들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예수님이 우리 가정을 정말 불쌍히 여기시는구나. 예수님이 우리 가정 때문에 눈물 흘리고 계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오늘 기도처럼 낙심치 말라고 말씀하시는 그 예수님의 당부처럼 아내가또 적용을 하기 위해서 둘째 조카가 입학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입학 선물을 보내고, 이렇게 돈을 이렇게 보내고, 그리고 계속 이제 처남 가정에 연락을 한 거죠.그랬더니 드디어 연락이 닿았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금융 치료가 가끔씩 필요한...분별해서 해야겠지만 지혜를 주신 것이죠. 그렇죠. 때와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단은 제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되돌릴 수 없는 그런 불리한 상황이라고! 네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라고! 저한테 계속 이렇게 꾸짖는 것처럼 느꼈습니다.그때 담임 목사님께서 '네 의뢰가 무엇이냐고? 네 의뢰가 무엇이냐고? 유리한 상황이 아닐지라도 낙심해야 될 일이 아니라고! 네가 우리들 공동체로 인도함 받았을 때도 너의 가정 가운데 구원의 일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그때에도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그 불리한 상황 가운데 내가 너에게 찾아가지 않았냐고!'끊임없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책 「프로포즈」 예목을 하면서 이 책을 다시 읽었는데 프로포즈의 마지막에 이런 간증이 나와요.저희 아버지는 세결남입니다. 세 번 결혼한 남자입니다. 제가 청년부 사역할 때
이 집사님께서 간증하셨는데 술과 폭력과 도박으로 사시다가 이혼하시고 별거하시고 이혼하신 아버지. 두 번 결혼도 모자라서 세 번 결혼하시고, 7년 동안 연을끊었던 그 아버지. 그런데 결혼 때문에 결혼할 사람들과 우리들교회에서 양육을받으면서 아, 내 결혼의 적용이 아버지의 구원의 문제가 있구나. 아버지의 손을잡고 결혼식 입장해야겠다! 이런 결단을 하시고 적용을 하신 집사님의 간증이 있어요. 결혼 당일날 목사님이 여기 서셔서 아버님에게 우리들교회 오시라고, 교회나오시라고 끝없이 권면을 하셨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이 아버님께서 끝까지 이
렇게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이렇게 대답하시는 아버님을 보면서 저 아버지가 교회 오는 것이 참 쉽지 않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평초원 모임에서 이 아버님이 중국에서사업이 망하시고 들어오셔서 지하방에서 혼자 지내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따님이 여전한 방식으로 낙심하지 않고 그 방의 문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그 방 문고리에 김밥을 갖다 놓고 아버지에게 교회로 오자는 그런 초청을 드리셨다는 거예요. 그 아버님이 어쩌면 1부인지 2부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지금 예배를 드리고 계실 거예요.저는 이미 구속사의 말씀을 함께 듣고 가시는 그 아버님이 최고의 부모님이 되셨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주 휘문에서 그 집사님을 우연히 마주해서 '아버님 교회 나오신다면서요?' 이렇게 물었더니 집사님께서 '이번에 양육도 받으세요!'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우리들 공동체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 집사님이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이런 적용을 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아버지를 감히 용서하고, 아버지를 안아드리는 적용을 할 수 있고, 목장과 말씀이 아니면 구속사를 알면 알수록아버지를 더욱더 사랑하게 된다는 그런 고백을 우리가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목사님, 제발 열정이 있는 사람들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할 수 있는 거지! 목사님들이나 할 수 있는 거지!' 이렇게 말하고 싶은 분도여기 계실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미 그런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을 하고있지 않다면, 우리는 다른 곳에 헌신을 하고 있는 거예요. 불의한 재판장 같은 세상에 헌신하고 있고, 나의 안위를 위해서 낙심할 수밖에 없는 그 무언가에 목숨을걸고 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낙심할 수 있다고 경고하시고, 비유로 말씀하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적용]영혼구원을 위한 애통함으로 끈질기게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나의 헌신지수는 얼마입니까?목장과 예배에 얼마나 헌신하고 계십니까?끈질기고 낙심치 않는 기도와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께 있음을 믿습니까? 아니면 다른 곳에 헌신하고 계십니까?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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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매일 큐티 제목 적기
2.과거의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해주고, 감사의 끝말잇기 해주기
3.성령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지켜온 인생이며) 영원히 동행 하신다는 것들기억하며, 숨 깊이 쉬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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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린날의 상처로 부터 위로 받고 진짜 평강 위해 집에서는 공기 바람이 되는 연습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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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현재가 결론 나지 않아도 감사 할 것이 주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 기억하도록
2.부모님 병원 모시고 가는 것에 지혜 주시고, 알맞은 치료 받고, 우리들 교회로 인도함 받도록
3.말씀과 목장에 묻고 가는 것에 지혜 주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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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신 것 처럼 불의한 재판장같은 회사 상황에 낙심하지 않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주께 의뢰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