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 : 1-18
낙심하지 않는 기도
큐티엠에서 목사님은 단행본 편집을 담당하신다.
결혼에 관한 책을 많이 보셨다.
결혼과 사랑의 책에 메모가 적혀있었다.
헌신은 너무 힘들다. 헌신이라는 말이 나오기만 해도 너무 답답하다.
헌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한 청년들이 있다.
현 시대에는 헌신하기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많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다.
헌신하면 헌신 짝이 된다.
헌신이 값싸게 여겨지는 시대에 진짜 헌신이 무엇일까?
로버트가 사랑을 삼각이론으로 설명한다.
사랑은 친밀감 열정 헌신으로 이뤄진다.
사랑을 하려면 친밀감으로 시작하는것 같지만 열정이 필요하고,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헌신이 필요하다.
사랑을 유지하려면 의지적인 결정이 필요하다.
사랑을 유지하려면 선택과 책임까지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사랑하려면 헌신이 무조건 필요하다.
결혼을 하려면 헌신이 필요하다.
왜 이런것들이 우리들 세대사람들이 힘들어 할까?
목사님은 우리 기성세대가 젊은 청년들 (우리 세대)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지 못해서 그렇던 같다고 하심.
담임 목사님에게도 , 제자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낙심하지 않고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 수 있을까?
1. 기도의 대상이 누군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낙심이라고 하는 원문의 언어는 엑카케오라는 헬라어이다.
악한것으로 부터 , 악함으로 사로잡혀서 피곤해지고 연약해지고 포기하게되고 실망하게 되는게 낙심이라는 단어이다.
당연히 악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소망을 잃어버리고 , 결국 포기 하게 된다.
우리가 원하던것을 받지 못해서 생기는 마음이 낙심이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낙심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항상 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뜻이다.
목사님의 아들의 수학성적이 쭉쭉 떨어지는 것을 보고 목사님께서 낙심하셨다.
불의한 재판관에 대비해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랍비나 유대 지도자들이 하는 재판이 아니다.
로마에 의해서 세워진 재판장에 의해서 집행되는 재판이다.
오늘 본문에서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을 무시한다.
로마에 기생하여서 재판할때 뒷돈을 받고 악을 행하는 것을 백성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말씀의 중심은 과부만이 아니고, 불의한 재판장도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뭐라고 말하냐->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세워지나요? 나는 언제 결혼하나요? 등등
예수님은 우리안에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미 우리 바로 앞에 계신 예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때 ,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대적들을 대신 벌해주시는 하나님나라가 이뤄지길 원했다. 정치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일이 이상한일이 아니었다.
목사님의 할아버지 이야기.
목사님의 할아버지는 친일파였다.
군대에서 소위급 이상의 군일들을 친일로 여겼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의지했다.
이런게 할아버지 인생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목사님의 외가쪽은 독립운동을 하셨다.
목사님의 외가쪽은 경상도 지방쪽에 거주하신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드리고 그리스도인을 받았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고문과 고초를 겪으셨다.
그 두 집안이 만나서 목사님이 태어나셨다.
지금은 목사님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수고하게 하신 목사님의 중요한 조상님들이라고 생각하심.
그것을 깨닫기 전에는 , 구속사를 꺠닫기 전에는, 목사님의 아버지를 보면서 큰 고통을 겪었다.
아버지꼐서 주변사람들과 안싸운적이 없었기 떄문.
아버지는 고아처럼 자라셨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 , 분노가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
목사님이 수능보기 한달전쯤 ,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풀으려고 했음.
집에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현관물을 열어 들어가기 싫어했고.
집에 가기 싫어했다.
집 밖에서 망치를 들었다가 놨다가 하셨다.
언제는 여느때처럼 집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아랫집 아주머니꼐서 그 소리를 듣고 올라오셨다.
그 아주머니께서 목사님을 보시고 한없이 우셨다.
목사님꼐서 스스로 원함을 풀고자 했던 사람이 아니다.
어릴때부터 목사님은 열심히 주일학교 다녔기 떄문에 , 부모님이 싸우실때마다 골방에서
부모님이 싸우지 말게 해달라고 , 엄마가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수없이 기도하셨다.
그렇짐나 목사님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고 오해하셨다.
목사님의 기도를 하나님꼐서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다.
목사님께서 어떤 청년을 보았는데, 목사님꼐서 겪으신 과거와 비슷한 삶을 사는 청년을 본 것이다.
목사님께서 그 청년을 보고 감동을 하셨다.
목사님의 아들은 고2이다. 그런 소망이 생기는 것이다. 아들이 4살때부터 교회에 왔었기 때문에
아들도 이곳에서 말씀 잘 듣고 신결혼 할것이라는 소망이 생겼다.
엊그저께 목사님아들과 아내가 싸웠다.
아들은 집돌이라 집에서 쉬는걸 좋아하고 , 아내는 밖에 나가서 공부하라고 아들을 떠밀고
이 둘이 싸우고 있던 것이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대상이 어떤분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아버지도 할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닮아갔고,
목사님도 아버지와 닮고 싶지 않지만 , 아버지와 닮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2. 원수갚음이 아닌 구속사로 응답받아야 합니다.
기도의 주체가 처음에 한 과부라고 말씀하심.
당시에는 더더욱 과부는 보호받기 힘들었다.
과부의 재산을 탐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다고 성경이 기록한다.
경건의 탈을쓰니 , 과부를 돌보기보다는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이 있던 것이다.
과부를 대신해서 나올 남자가 없어서 스스로 재판장앞에 과부는 나오는 것이다.
복수를 하려면 재판장에게 가는것 보다 , 복수를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가는게 훨씬 낫지 않은가?
과부는 재판장앞에 나갔던 이유는 공의가 발휘되어 정직한 재판을 받고 싶은 것이었다.
아버지에대한 원함을 부구장창 풀었다.
지랄총량의 법칙이 있다. 한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해야할 지랄의 양이 있다는 것이다.
구속사를 깨달을수록 아버지를 더욱더 사랑하게 된다.
목사님도 우리들교회에 와서 아버지를 대할때 사랑으로 대할 수 있었다.
어느순간부터 공동체의 권면으로 인해 아버지에게 목자처럼 대해드렸다.
그래서 목사님은 아버지를 안아드렸다.
그리고나서 아버지얼굴에 입맞춤을 하라는 권면을 들으셨다.
진짜 입맞춤을 이야기하는게 아니고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목사님에게는 그런 사랑이 없었다.
아버지를 미워하는것 만큼 다른사람들을 미워하게 되는 목사님.
목사님에게는 10살어린 처남이 있다
처남은 어릴적에 부모님을 여위었다.
아버지 얼굴을 평소 볼일이 없는 처남이었다.
처남은 성이 다른 누나들과 살아갔다.
처남에게는 그런 아버지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이 아이가 중고등학교때 리니지 라는 게임에 빠졌다.
피시방에 가기 위해 누나들에게 폭력을 가하여 돈을 뺏어 피시방에 갔다.
어느날 보니 아내의 얼굴에 멍이 들어있었고,
알고보니 처남이 아내를 떄린 것이다.
목사님은 처남을 1시간정도 때렸다.
처남은 얼굴의 핏줄이 터졌다.
고아같은 아이(처남)에게 공의의 하나님을 소개해줘도 모자를 판에
처남을 패서 처남이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셨다.
목사님의 기도가 목사님의 의로 이뤄져야 한다는 착각을 하셨다.
우리들 교회에서 우리의 원함을 끊임없이 하소연 하는 것은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에게 원함을 풀으려는것과 다르다.
목사님께서 그 청년에게 감동한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라는
믿는 믿음을 보아서이다.
3. 구원의 애통함으로 끈질긴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인자가 올떄를 이야기 하신다.
인자가 다시 올때 그처럼 끈질긴 믿음을 이땅에서 얼마나 찾을 수 있겠느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택하신자들은 우리들이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온다.
세리의 기도를 보면 누가 택함 받은지 알 수 있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택하심을 받은자라고 내일 큐티에 나올 것이다.
처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처남은 10년전에 우리들교회목사님의 주례로 결혼했다.
그런데 여러가지 핑계를 댔다. 처남은 일한다는 핑계로 교회로 오지 않았다가,
한달전에 휘문채플에 양손에 조카손을 붙잡고 교회에 갔다.
처남댁이 몇달 되지 않아서 더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처남과 처남의 아내는 별거를 하게 된 것이다 알고보니.
결국 처남은 이혼했고, 목사님과도 연락을 끊었다.
목사님의 아내가 그 소식을 듣고 건강이 나빠졌다.
거실에서 대성통곡하고 목사님의 아내는 울었다.
목사님도 처남에게 너무 무심했던게 아닌가 하면서 마음이 아파하셨다.
아내가 낙심하지 않고 , 둘째 조카가 초등학교 입학기념으로 둘째 조카에게 용돈을 보내주었다.
금융치료를 했다. 이럴때는 금융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처남과 처남댁에게 연락이 왔다.
목사님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셨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불의한 재판장 같은 세상을 우리가 의지하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은 젊은이들,
결혼도 못하고 , 내 인생이 너무나 지치고 , 사람때문에 지치십니까.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우리가 목을 매는 그 무언가에 예수님께서 계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헌신을 해서 우리의 다음세대가 따라오도록 해야 합니다.
낙심치 않는 기도와 헌신으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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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a : 생활예배 잘 드릴수있도록, 신교제, 신결혼 할 수 있도록.
b :직장 잘 적응할수있도록, 마음의 평안을 누릴수있도록, 신교제, 신결혼 할 수 있도록
c :목원들이 해주는 권면을 잘 듣고 나의 잘못돤 점들을 고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