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2025.03.16 주일예배 누가복음 15:25~32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이상진 목사님)
안녕하세요 1번타자 입니다. 1번타자의 덕목이 빠른 발일텐데, 그럼 체중이 많이 나가면 안되자나요? 그래서 5KG정도 빠진거 같습니다. 이상진 목사입니다.
양육시즌입니다. 담임목사님 돌탕집탕 설교를 다시 들어봤습니다. 오늘 설교말씀은은 집탕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이 상대방과 다르면 거리를 두고 분노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에대해 나눠보겠습니다.
1.거부해도 권하시는 하나님입니다.
25~28절
맏아들이 밭에서 일을 했습니다. 성실하게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집 근처에서 풍악소리가 들립니다. 의아했을 것입니다. 우리집에 좋은 일이 없는데.?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 종을 불러서 무슨 일인지 묻습니다. 그가 당신의 동생이 건강하게 돌아왔고,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으며 잔치를 열고 있다고 합니다. 맏아들은 화가 납니다. 모가 이쁘다고 잔치를 열어주는가? 하루이틀 쉬게 하다가 자신과 함께 밭 일을 하게 하는게 맞는거 같은데? 나만 일했네? 하는 생색과 피해의식으로 분노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 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강하고 나만 옳다 하면 누가 말해도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거절합니다. 맏아들은 동생의 생각, 아버지의 생각을 다 이해 못합니다. 나만 옳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니 자기가 집안에 들어가서 알아보면 될 일을 굳이 집 밖에서 종을 불러다 묻습니다. 남보다 못한 사이입니다. 그런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저희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에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을 많이 생각하십니다. 저는 이것이 불편합니다. 아버지도 답답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희 부자는 귀엽기라도 합니다. 본문의 맏아들은 자기 생각에 갇혀서 꼬일대로 꼬였습니다. 아버지 잔치에 참여하길 거부하고 집 밖에서 분노만 합니다. 우리는 늘 거부 합니다. 내 생각이 강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들리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강하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것이고, 나는 의롭고 성실하다 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 못합니다. 내 생각이 강하면 배우자를 거부하고 자녀를 보며 내 탓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지난 삶을 거부하고 새롭게 리셋하고 싶어 합니다. 조금이라도 내가 손해보는 일이라 생각하면 분노로 거부합니다.
저도 상한 갈대가 되어 억울한 일 앞에 강하게 거부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열심히 사역을 했었고, 주변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 삶을 살다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그런 삶을 유지했습니다. 내가 인정받아야 하는 교회의 일이 우선이었고, 내 명예가 우선이었습니다. 결혼을 했음에도 가정보다 밖에서의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썼습니다. 교회일과 학교 공부가 먼저 였습니다. 상대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것처럼 했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마라 잔소리를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잇몸이 보이게 웃지 마라, 팔랑팔랑 뛰어다니지 마라, 치마는 길게 입어라 하며 전도사의 아내에서의 체통을 요구 했습니다. 아내에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체휼해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큐티 안해서 그런것이라 했습니다. 사업으로 힘들어하시는 장인 어른과 유방암으로 고생하시는 장모님을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 이런 것은 다 사소한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열심히 나아갈 수록 상대방은 지치고 있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아내의 문자메시지를 보고 아내가 외도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노와 절망감, 배신감으로 아내를 코너로 몰았습니다.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일했는데, 충실되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달려갔는데, 억울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제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옳고 그름의 세속 가치관으로만 판단하면서 상대가 나쁜 사람이고 제가 피해자가 맞다고 제편을 들어 주었습니다.
억울한 사람은 말이 많아집니다. 나만 억울하다, 내탓이 아니다 하며 이유를 많이 댑니다. 여기저기 말해서 억울함을 알리고, 내편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엘리트들은 오픈하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제가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지만,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끊고자 했습니다. 저와 8년을 보냈던 여자는 저에게 용서를 구하고 회복을 권했지만 저는 이혼으로 끊었습니다. 이사건을 해석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거부했습니다. 저처럼 분노한 맏아들이 문밖에서 씩씩 대고 있을때 아버지가 나옵니다.
분노하여 집으로 들어오지 않는 맏아들에게 다가가 아버지가 동생으로 인해서 기뻐하자고, 이전의 허물은 용서하고 가족의 관계를 회복하자 권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라고 기쁨을 함께 하자고 권하십니다. 나에게 온 사건이 이해가 되지 않아 하나님을 피하고 거부하지만 하나님은 사건으로 찾아오셔서 함께 하자고 권하십니다.
이 권유가 작은아들을 위함일까요? 아닙니다. 자기 생각에 갇혀서 지옥에 살고 있는 맏아들을 위해 권하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한 일이 발생 했을때, 회피하고 원망하고 분노하며 스스로 지옥을 사는 맏아들에게 아버지가 스스로 찾아오셔서 함께 들어가자, 예배의 자리, 구원의 자리로 들어가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해석이 되지 않아 날마다 분노하며 원망만 했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는데,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어서 마지막 학기를 휴학했습니다. 후에 복학했는데, 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담임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목사님이 자신의 고난을 나누시며 말씀을 놓지 말고 고난을 해석하자고 권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후로 계속 큐티인으로 큐티를 해왔고, 사역하는교회마다 큐티인으로 나눔을 했습니다. 물론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지 않아 제대로 나눔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날 목사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권유였습니다. 고난이 축복인지, 상처가 별이 되는지, 그는 나보다 옳은지 잘 몰랐으나 그래도 큐티인으로 묵상하고 사역하는교회의 청년들과 함께 나눴습니다.
그렇게 분노함으로 억지로 학교를 졸업한 저에게 하나님은 담임목사님을 보내셔서 권하셨고, 책일 읽게 하셨습니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기고, 인정할 수 없는 일이 생겨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분노에 차서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혼자만의 동굴로 회피하고 이혼과 자살로 분노를 표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 오셔서 회개, 큐티, 목장을 권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누리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제가 이렇게 말씀을 전하는것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권하시는 방법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고 분하고 억울한 사건은 무엇입니까? 그 일을 목장에서 잘 나누고 있습니까?
-예배와 목장과 큐티를 통해 하나님께서 권유하고 계심이 느껴지십니까?
2.구원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29~30절
맏 아들이 마음이 상해 빙정댑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니 아버지의 행동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친구들과 즐긴 염소 새끼 하나 못얻었다고 하면서 이는 불공정한 처사라고 합니다.
맏 아들에게는 보상이 둘째에게는 벌이 주어져야 마땅해 보입니다. 맏아들에게는 공로가 있고, 둘째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맏아들의 공로는 가족 경제를 책임지고, 아버지를 섬기며 종처럼 일했고, 그럼에도 염소새끼 하나 달라고 참았던 공로가 있습니다. 자유가 아니라, 종으로 섬기면 다 공로가 됩니다. 아버지는 분명 비효율적이고 경제적이지 않은 일에 낭비를 합니다.
아버지가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낭비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하실까요? 바로 구원 때문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죽은자로 여기고 유산을 달라고 했습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한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작은 아들을 혼내고 죽은 사람 취급하는 벌을 내려도 할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둘째는 이돈을 다 탕진 합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돈을 씁니다. 불효자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입니다. 곁에 두기 싫고, 만나기 싫고, 내 인생에서 없어지면 좋겠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죄인이 돌아옴을 인하여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피해를 입혀도 멀쩡히 돌아온 그것이면 족하다고 합니다. 너때문에 우리집이 망해도 너가 돌아온 그것이면 족하다고 살진 송아지 까지 잡습니다.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그것입니다. 아버지가 싫고 무시해서 떠났어도, 경제적인 피해를 입혔어도 아들이 돌아온 것으로 살진 송아지를 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시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길 바라시는 것입니다. 맏아들 같든 둘째 같든 하나님을 돌아오길 바라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손해도 참으십니다.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시며 시간의 손해를 참으십니다. 자존심의 손해도 참으십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감수하신 손해, 피해, 낭비의 절정은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입니다. 우리를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은혜를 받아도 곧 돌아서는 우리를 위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목숨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숨까지 내어 주실 정도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입니다. 우리도 이마음을 품고 전해야 합니다.
전처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제 자신이 불쌍해서 울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해준것이 얼만데 하며 나에게 이런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하고 해줄 것이 더이상 없다고 여겼습니다. 보상을 받아야 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선택한 것이 이혼 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내어주시면 이뤄주신 가정을 저는 제 자존심과 상처 때문에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목숨까지 내어 주셨는데, 저는 그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손해 보심 처럼 우리 교회와 목사님도 손해를 보셨습니다. 저는 면접을 볼때 제 이혼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혼하면 안 된다가 원칙인 교회인데, 제가 속이고 들어왔으니 목사님이 얼마나 고민이 많으 셨을까? 생각됩니다. 저도 아무 생각없이 이력서를 내고 들어왔는데, 분위기를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큰 부담이 있었습니다. 나가야 하나? 했지만 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말씀 묵상하는 공동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아 그냥 붙어 있었습니다. 대신에 일 열심히 하는 것으로 만회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늘 눌려있었고,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주일에 엘리사가 게하시 때문에 통회하는 기도를 하고, 그로인해 게하시가 눈이 열려 불말 불 병거를 보았다는 목사님 설교를 통해, 제가 눈이 열렸습니다. 나때문에 목사님이 통회하시고, 이타적인 기도를 하셨구나 구원 때문에 이런 손해를 감수하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깨달았습니다.
이후로 저는 구속사가 조금씩 깨달아지고, 비로서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인인 저 때문에 우리 목사님과 선배 사역자들과 교회 공동체가 손해를 감당 하셨습니다.
옳고 그름의 가치관으로만 판단하고 해석을 못하는 저를 한번 꾸짖으시고, 저를 데리고 함께 다른 마을로 굳이 돌아가시면서 손해를 감수하셨습니다. 목사님과 공동체의 은혜 때문에 제가 오늘을 살아냅니다.
-복음 전해야 할 그 한사람을 위해 어떤 손해를 감수하겠습니까?
-내가 예수믿게 하기 위해 수고해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3.아버지의 것을 내것으로 여기는 것이 사명입니다.
31~32절
아버지의 것이 다 내것이라 하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제일 먼저 내것으로 삼고 싶으신가요? 돈? 능력? 일까요? 뼈빠지게 일만 해온 맏아들에게 아버지는 내것이 다 네것이다 라고 하십니다. 염소 새끼든 살진 송아지든, 집안의 종들도 다 맏아들의 것입니다. 맏아들은 늘 아버지와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것은 다 맏 아들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맏 아들에게는 돌아온 동생도 자기 것이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둘째 아들을 사랑했었던, 그 사랑도 맏아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집나간 둘째를 걱정하는 마음도 맏 아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애통하고, 바라고, 신경쓰고 있는 모든 것들이 맏아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땅하다 여기는 것을 마땅하다고 여겨야 합니다,
돌아온 탕자 비유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애통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은 영혼에 대한 애통이 있나요? 나를 힘들게 하고 없어지면 좋겠다고 사람으로 힘든 가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가정의 회복을 원하십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하나님이 이를 기뻐하시고, 이것은 하나님께 마땅한 일입니다. 외도한 배우자 때문에 힘들어도 그가 돌아오기만 하면 마땅한 것입니다. 여기는 내 주장이 없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멀리 떠난 죄인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돌아왔는데, 그 사람에게 무슨 복수를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지어도,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이어도 그가 자기 죄를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우리는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힘든 배우자와 살고 있나요? 그 사람과 이혼하는 것이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그 어떤 이유로라도 이혼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준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혼을 해보니 인생은 리셋이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인생은 리셋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리셋이 있다고 여긴 그 시간이 지옥이었습니다. 내 영혼이 이혼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고, 내 체면 때문에 공동체에 나누지도 못하니 살아 있어도 죽은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다 상한 갈대 이고, 지옥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아무도 편할 수 없습니다. 내게 보내주신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이 없으니 내 사랑에 보답을 원합니다. 이것은 거래 입니다. 사랑에 대한 이런 잘못된 인식이 내 배우자를 자녀를 지치게 합니다. 사랑은 거절당해도 권하는 것이고, 내 손해가 생겨도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인간적으로 하는 사랑이 결혼을 유지해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말씀이 있어야 이혼이 막아지고 가정이 살아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이 내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 가정이 이혼할 것 같은 위기를 겪고 있어도 이 가정이 회복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기에 나도 회복되기를 원하며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의 것으로 삼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사명입니다. 가정은 구원을 위해 거룩을 위해 창조된 하나님의 피조물 입니다. 그렇다면 이혼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악행입니다.
-가정을 지키는 것이 사명임이 인정됩니까?
-그렇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배우자, 자녀, 부모에게 어떤 화해와 용서의 말을 하시겠습니까?
2.목장 장소 및 참석 인원
파리크라상 / 목자, 부목자, 목원 (총3명 참석)
3.기도제목
A.
1.나의 견고한 옳고 그름의 기준들이 깨질 수 있도록
2.지난 날의 시간들이 그는 나보다 옳고 나를 위해 수고해준 사람임을 고백할 수 있도록
3.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며 가는 임용 준비기간이 되도록
B.
1. 모든 빚 청산되도록
2. 신교제, 신결혼
3. 프로젝트에 기름부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