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9 상한 갈대
열왕기하 18:20-27
우리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고 하세요. 상한 갈대는 이제 줄기가 꺾여서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갈대잖아요. 밑동 잘린 나무죠. 우리 인생이 꼭 상한 갈대입니다. 어차피 죽을 거 그냥 그냥 꺾어버리면 그만인데 우리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거름을 파고 이렇게 이제 끝까지 두루 파고 거름을 준다는 거예요. 또'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하잖아요. 그죠? (엊그제 큐티본문에.)건강하게 잘 사는 것보다 구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우리는 나부터 내 식구까지 이렇게 정신이 아프고, 지체가 장애이고.. 이런 것들이 너무 싫어요. 구원이제일 중요하다는 이런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요.
그러니까 악한 아버지 밑에서 여호와만을 경외하고, 하나님만을 의뢰하여 만사형통을경험한 히스기야도 그랬을까요? 그에게 나라가 망하게 된 어마어마한 고난이 찾아왔어요. 근데 이제 성이 포위된 채 엄청난 조롱을 듣게 되는데요. 이제 우리 마음 같아서는 소나무나 참나무처럼 보기 좋게 우뚝 솟은 나무 같은 인생이 되고 싶지만, 우리현실은 참 갈대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건강한 갈대도 아니고, 상한 갈대 같아요. 그러니까 칭찬보다는 조롱받기가 쉽고요. 남에게 들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그렇게 조롱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제 상한 갈대 같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오늘 이 랍사게의 일장 연설을 통해서 함께 생각을 좀해보겠습니다.
1. 의심에 빠질 때, 나아가 예배해야 됩니다. (20-22절)
20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이와 같으니라
->예배해야 돼요. 20절, 21절이에요.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지난주일 본문 19절 마지막이었잖아요. 근데 오늘 27절까지 의지와 의뢰라는 단어가 똑같다고 그랬는데 그냥 절마다 나와서 8번이나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의뢰하는 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이건 지금 랍사게의 말로 이것을 외치는 걸 생각해 봐야되는데, 사람들이 내가 뭘의뢰하는지 상대방이 알아요. 원수가 알아요. 그걸 알아요. 매일 같이 남편이 믿음이 없고, 아내가 믿음이 없는데 그 사람이 내가 뭘 의뢰하는지 알아요. 욕하는상대방- 믿지도 않는 상대방-이 내가 뭘 의뢰하는지 안다니까요. 그래서 랍사게
의 말로 히스기야의 의뢰를 외치는데요. 이건 참 아이러니하죠.아버지 아하스의 악함으로 깨어있게 하시더니, 개혁을 해도 앗수르가 쳐들어오고,쳐들어오니까 계속 의뢰할 수밖에 없죠. 의지할 수밖에 없게 하시는 것이 히스기야로서는 그것이 가장 믿을 만한 환경이 되게 하시는 거예요. 편하면 누가 하나님을 의뢰하겠어요? 그러니까 히스기야가 이사야를 좋아하고, 그의 말씀을 좋아할수밖에 없게 하신 거예요. 여러분들이 말씀이 안 들리는 거는 아직 세상을 의뢰하기 때문에 우리들교회에 와서도 참 또 이러고 저러고 하시는 거죠.그러니까 이 말이 맞으니까 히스기야에게 조롱이 시작되죠. 19절에 '네 의뢰가무엇이냐?'고 앗수르왕 산헤립의 질문을 히스기야에게 랍사게가 대신 전하고, 이제 그 랍사게의 말이 계속 이어집니다.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그러니까 아픈 곳을 딱 꼬집는 거예요. '네가 나를 배반해서 작전도 짜고군사력도 키우면 될 줄 알았지?' 이러는 거예요. 그거는 입에 붙은 말뿐이라는거예요. 우리가 싸울 때 그러잖아요. '입만 살아가지고~' 다들 그러잖아요. 부부간에, 부모 자식간에. 그러면서 이번에는 '누굴 믿고 덤비는 거야?' 묻습니다. 그러더니 히스기야 대신 답까지 해주는데요. '애굽을 믿는군!' 그래요. 사실은 하나님을 믿지만 히스기야는 당시 애굽의 힘을 기대했습니다. 애굽이 반앗수르 동맹의뒷배였거든요. 애굽이 너무 사실 최대 강대국이었잖아요. 이스라엘, 유다, 아람,블레셋 등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 있던 작은 나라들을 앞세워서 앗수르가 애굽까지 공격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어요. 그러나 애굽이 눈치가 9단이거든요. 오래 살아남은 비결이 있지 않겠습니까? 작은 나라들을 뒤에서 그렇게 조정해서 앗수르에 반대하게 만들어 놓고는 정작 앗수르가 침략하자 입을 싹 씻었어요.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대체 언제 했나 할 정도로 애굽에 처박혀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도와주는 게 쉽지 않아요.그러니까 우리가 한미방위조약을 이승만 대통령이 얻어낸 건 70년 동안 전쟁이 없는비결인데, 이제 우크라이나가 트럼프하고 결렬이 됐잖아요. 거기 안전 보장하라는 거잖아요. 안전 보장하라는데, 미국이 우리 안전보장했다가 지금 70년 동안 물렸잖아요. 근데 그 사람들은 그래도 약속을 지켜요. 약속을 지키니까 거기 광물협정은 하고싶은데, 안전보장은 싫은 거야.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니까 그거를 보니까 우리나라는 어떻게 이걸.. 이게 그것도 가장 가난한 나라였을 때 했잖아요. 35불 때. 가장 부자 나라가 가장 가난한 나라를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한 거예요. 여러분, 이거하나만도 우리 그동안에 전쟁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죠? 러일전쟁, 청일전쟁, 무슨 전
쟁 그냥 계속 그냥 임진왜란에~ 병자호란에~ 그냥 그런데 지금 70년 동안 전쟁이 없었어요. 또 욕할라고?^^ 이거 팩트잖아요. 그죠? 요새 그 가 가지고 얼굴이 다... 전세계적인 참사가 일어났어요. 정상회담을 하는데. 미국은 억지로라도 못 도와주겠다는 거야. 그게 얼마나.^^ 근데 그래도 거기가 기독교 국가가 돼서, 그냥 한다고 그러고나서 안 할 수도 있는데, 한 번 약속한 거는 상하원에서 들고 일어나서 미국은 지키니까. 그래도 기독교 국가가 그게 다르잖아요. 그죠?그러니까 이제 그 애굽은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대체 언제 했나 할 정도로 지금애굽에 쳐박혀서 나오질 않아요. 그런데 앗수르 왕 산헤립은 지금 애굽을 뭐라고해요? 상한 갈대 지팡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지팡이는 지팡이인데, 지팡이가 아니라는 거예요. 재료가 참나무가 아니라 갈대고, 갈대인 것도 기가 막힌데 그 갈대가 상했대요. 부러졌다는 거예요. 쓸 수 없는 지팡이라는 거예요. 뒤에서 뒷배가 되어 줄 것처럼 하다가 싹 숨어버린 애굽이 딱 상한 갈대 지팡죠. 그런데사실 이건 애굽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유다의 문제인 거예요. 유다는 애굽을향해 정말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어요. 400년을 노예 노릇을 해도 거기서 살았잖아요. 그죠? 괴롭혀서 겨우 도망나왔지만 몸에 밴 애굽의 습성이 없어지질 않아요. 거기가 잘 살았잖아요. 아무리 노예 노릇을 해도 그 나라가 잘 살았잖아요.그러니까 늘 그리운 곳, 돌아가고 싶은 곳, 기대고 싶은 곳이었어요. 안 되는 줄알면서 왜 그랬을까~ 끊지 못하는 것이 애굽이었어요. 하지만 유다가 이렇게 달라붙으니까-유다가 애굽에 딱 달라붙으니까-유다가 매력이 하나도 없어요. 반면 애굽은 연애 고수예요. 밀당을 기가 막히게 합니다. 잡힐 듯 잡힐 듯 기대하게 하지만 절대 잡히지 않아요. 도와줄 듯 도와줄 듯하면서 절대 안 도와주는 거예요.자, THINK해 보세요. 누가 애굽을 상한 갈대 지팡이로 만드는 거예요? 유다가그렇게 만드는 거죠. 누가 진짜 상한 갈대인가? 물어본다면 애굽이 아니라 유다예요! 유다의 믿음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심지어 상한 갈대처럼 꺾이고 부서져 내리니까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의뢰한다는 거예요. '나를 지탱해 줄 지팡이인 줄알았더니 상한 갈대라니 속았어!!' 이게 아니라! 그런 지팡이를 의뢰했던 내가 상
한 갈대라는 거예요. 허리가 끊겨버려 말라가는 갈대- 바로 밑동 잘린 나무-라는거예요.그런데 유다가 이렇게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고 앗수르 왕 말만 들으면 어때요?내가 그렇게 믿었건만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나? 하고 의심이 생기는 거예요.여러분, 상한 갈대는 멀리서 보면 표가 안나요. 도리어 멋있어 보여요. 여자들이멍하니 4차원의 표정을 하고 있으면 다 도리어 멋있어 보여 가지고.. 막상 가까이가보니까 다 상한 갈대야! 그래도 다 멀리서 보고 좋아하는 거예요. 살아보라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너무 외모를 탐하지 말라고요.정치 천재, 심리 천재 앗수르 왕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다음으로 무슨 말을 합니까? 22절이에요.
22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그들의 산당들과 제단을 제거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령하기를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셨나니
->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했는지 알아요. 대단한 종교 개혁을 했다는 것도 알아요. 유다 전국에서 산당과 제단을 제거한 것을 알아요. 하지만 다 아는데 하나님을 몰라요. 그래서 다신론자인 그는 히스기야가 산당과 제단을 제거했기에 하나님도 히스기야를 더 이상 돕지 않는다고 진짜 그렇게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히스기야의 상황이 어렵지 않다면은 아무리 조롱해도 별로 타격감이 없을 건데요. 근데 지금 히스기야의 상황이 하나님만 경외하고하나님만 의뢰했는데 그래서 만사형통이었는데 갑자기 앗수르가 쳐들어와서 돈뺏기고 이제 다 뺏기고 망하기 직전이잖아요. 하루아침에 유리한 상황에서 불리한상황이 된 거예요. 바로 이런 상황 앞에서 '하나님도 너를 돕지 않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은 어떻겠어요? 눈에 보이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그 애굽도 너무의심이 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얼마나 더욱 의심이 되겠습니까? 갑작스러운 고난의 파괴력이 바로 이런 거예요. 우리 믿음을 막 흔들어요. 가뜩이나약한 믿음을 무너뜨리는 거예요. 그리고는 의심에 빠지게 하는 거예요.그런데 이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놀랍게도 앗수르 왕이 힌트를 주는 거예요. 그의 마지막 말이 무엇이에요? '예루살렘 이 제단 앞에서만 예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여호와만 배라고 예배하라고 했잖아. 그것이 잘못이야! 산당은 많을수록 좋고, 신도 여럿일수록 좋은데 네가 오직 성전에서만 예배하라고 하니까 이런 문제가 생긴 거야!' 이렇게 병 주고 약 주면서 앗수르 왕은 히스기야를 의심에빠뜨리고 있는 거예요. 문제가 생기면 우리도 이런 의심이 생기죠. 주일에 교회안 가고 공부했으면 합격했을 텐데. 주일에 예배드리는 시간에 일을 했으면 안 망했을 텐데. 목장 가는 시간에 투잡을 뛰었으면 빚을 안 졌을 텐데. 그동안 산당에서 예배드리던 사람들이 산당에서 기도해서 병이 낫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는데웬 말씀은 보라고 하는지~ 그리고 그 산당을 다 제거하니까 산당예배를 드리던그 기득권자들이 이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 얼마나 불만 세력이 되었겠어요. 그러니 랍사게가 그쪽 편에 이간(離間)을 붙이는 거예요. '예수 믿고 제사 안 지내서학교 떨어졌다고~ 40일 기도 안 해서 암이 걸렸다고~' 그걸 자신이 깨달으면 좋을 것을.. 지도자가 이렇게 부추기는 것이 사단의 궤계인 거예요. 이런 궤계는 무궁무진합니다. 이것이 고난 앞에서 상한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게 하는 거예요. 의
심에 빠뜨리는 생각이에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히려 여전한 방식으로 예배의 자리를 더욱 굳세게 지켜야 되죠! 그러니까 늘 내가 이렇게 그 산당예배를 드리고 있는 생각을 예배를 통해서 깨달아야 하는데, 내 삶이 성공할 때는깨닫기가 어려워요. 교회가 조금만 커져도 누가 바른 말을 해도 듣기가 이제 힘든면이 있죠. 내가 잘해서 다 부흥했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사단의 궤계는 끝도 없어요. 염려는 자기가 높아서 염려하는 거예요. 교만해서 염려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데 왜 염려하겠어요? 자기가 하나님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으니까 염려를 하는 거죠. 이 의심의 치료제는 믿음밖에 없어요. 근데 혼자서지킬 수가 없으니까 하나님이 불러서 함께 묶어주신 교회로 나아가는 거예요. 지체들과 함께 모여서 뭉쳐서 예배하는 거예요. 날마다 산당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너무 영적으로 맨날 용서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수십 년 하는데 수십 년이 지나도용서를 안 하는 게 특징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영적이어서 예배만 드리는 거예요. 새벽 기도만 하고~ 금식만 하고~ 할 건 아무것도 안 하는 거. 이게 산당예배라는 거죠.
[적용]자꾸 의지하고 싶은 나의 애굽 지팡이는 무엇입니까?의지하는 지팡이가 상한 갈대라서 슬픕니까, 내가 상한 갈대라서 슬픕니까?주일, 수요, 목장 예배에 어떤 마음으로 나아갑니까?
2. 절망에 빠질 때,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23-25절)
23 청하건대 이제 너는 내 주 앗수르 왕과 내기하라 네가 만일 말을 탈 사람을 낼수 있다면 나는 네게 말 이천 마리를 주리라24 네가 어찌 내 주의 신하 중 지극히 작은 지휘관 한 사람인들 물리치며 애굽을 의뢰하고 그 병거와 기병을 얻을 듯하냐
->그러니까 상한 갈대 같은 인생은 맨날 이 절망에 빠지고~ 의심에 빠지고~ 그러는게 전공이에요. 23절 24절이에요.
랍사게는 산헤립 왕의 말로 유다 백성을 의심에 빠뜨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이제는 자기 목소리를 냅니다. 무슨 목소리요? 조롱의 목소리요. '청하건대- 플리즈~' 이렇게 시작하지만 사실 놀리는 거예요. '내기할까? 내기 상품! 말 이천 마리!!' 조건이 뭐예요? 말 탈 사람인 거예요. 무슨 말이에요? '너희들은 말 탈 병사를 한 명도 낼 수 없다!!' 이렇게 조롱하는 거예요. 이게 다가 아니에요. 히스기야가 모든 군대를 보내도 앗수르 군대의 초급 장교 한 사람도 물리칠 수 없다는거예요. 이 물리치다라는 게 직역하면 얼굴을 돌리게 하다인데, 유다 군대를다 동원해도 앗수르 군대의 소위 한 명 고개도 까딱하게 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엄청난 모욕이죠. 완전 무시입니다. 근데 이것도 끝이 아니에요. 25절입니다.
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 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여호와께서 전에 내게 이르시기를 이 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는지라
-> 어휴, 랍사게는 이제 드디어 하나님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들먹여요. 하나님의 뜻으로 자기가 예루살렘을 멸하러 왔다고 하는 거예요. 심지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셨대요. '이땅으로 올라와서 쳐서 멸하라!!' 뭐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에요. 이사야 22장 8절부터 10절까지도 쭉 있지마는 하나님을 의뢰하지도 않고, 사람을 의지하고, 산당 예배만 드리고, 기도도 하지 않는다면 북이스라엘이 망한 것처럼 남유다 너도망한다 이제 이런 얘기가 쓰여 있는데. 랍사게의 이 말은 사실 히스기야나 유다백성에겐 훨씬 더 심각하게 들렸어요. 지금 제가 말한 것처럼. 왜냐하면 아하스왕 때부터 이사야 선지자가 계속 경고했거든요. 앗수르를 보내 심판하시겠다고요.근데 비록 설마 그러시겠어? 여기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는데, 설마~ 하면서 그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회개하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단 말이죠! 여러분,여기서 늘 들어도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은 회개하지는 않았지만 알고는 있었다는 거예요. 그냥 머리로는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설마~ 설마~ 설마~ 설마~ 하는거죠. 근데 진짜로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단 말이죠. 게다가 그 지휘관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니까 -'예루살렘을 쳐서 멸하라!'라고 말씀하셨다니까-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은 경악했을 거예요. 진짜인가 보다. 하나님이진짜 앗수르를 택하고 우리를 버리셨나 봐. 이러면서 깊은 절망에 빠졌을 거예요. 이것이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그야말로 호시탐탐 우리를삼키려고 하죠. 믿음을 흔들어 의심에 빠지게 해요. 근데 의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의심은 Question mark [퀘스쳔 마크]?잖아요. 틀릴 기회도 있지만 맞출기회도 있어요. 그래서 사탄은 항상 의심을 넘어 절망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절
망은 마침표 !이거든요. '하나님이 버리셨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렇게 끝이에요. 더 이상 맞서 싸우려고 하지 않고 일어서려 하지 않아요. 어디로 가든지형통했던 그 유리한 상황도, 준비하고 대비했던 군사력도, 애굽의 도움을 기대하고 바라던 외교도, 세계 최강 앗수르 앞에서는 입에 붙은 말에 불과했어요. 의심을 넘어 좌절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그런데 히스기야가 이 의뢰인 하나님을 최후의 보루처럼 믿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랍사게는 이제 마지막 하나 남은 이 의뢰를 지금 다 부숴버리는거예요. '너희에게 마지막 하나 남은 의뢰인 그 하나님도 이제 너희를 버렸다! 그러니 포기해라!'사탄은 의심과 절망으로 욥을 삼키려 했어요. 욥기 2장 9절에 욥 아내의 입술을통해 나온 말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랬잖아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아내가 그랬어요. 이게 뭐예요? 죽음이에요. 의심에 빠졌다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점점 더 깊은 의심의 늪으로 빠져들다가 결국 절망에 잠깁니다.절망은 끝이죠. 죽음이에요. 죽고 싶다는 생각은 사탄의 유혹이에요. 절대로! 절대로! 들으면 안 돼요!!우리는 자동적으로 기대가 생기고, 욕심이 발동하고, 야망이 나오는 존재입니다.상황이 다르고, 정도가 다를 뿐 있는 건 똑같아요. 문제는 그 대상이에요. 하나님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원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그러나 하나님 아닌 것들을 기대하고, 탐내고, 바라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세상에는 우리 기대와 욕심과 야망을 채워줄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에요. 잠깐만족시켜 주는 것 같죠. 그러나 언제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게 돈과, 쾌락과,권력, 인기, 명예인 거예요. 그러니 하나님을 떠난 기대나 욕심이나 야망은 반드시 절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인생은 실제로 그냥 죽음으로 끝나잖아요. 정말 상한갈대요, 밑동 잘린 나무잖아요. 말라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고달픈 인생인 거예요. 그런데 왜 성도에게도 절망의 사건과 시험이 올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 하는 세상의 조롱을 허락하실까요? 정말 우리를 멸하시려는 뜻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멸하기로 하셨다가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세요.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가 뜻을 바꿔 멸망하게하신 적은 없습니다. 성경에 한 번도 없어요. 사울 왕을 폐하신 것도 구원을 약속하셨다가 멸하신 게 아니에요. 계속 경고하시는데도 사울이 돌이키지 않자 심판을하신 거죠. 하지만 출애굽 때 그렇게 금송아지를 섬겼어도, 또 아합이나 므낫세의경우만 봐도 하나님은 멸하기로 하셨다가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살려주시잖아요. 그죠?지금 이렇게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 군대도 그래요. 이때부터 불과 60년 전에 앗수르 수도 니느웨에 어떤 선지자가 가서 외쳤죠? 그 유명한 요나 선지자예요. 요나 선지자는 거기 너무 가기 싫어서 그냥 대충 외쳤는데 니느웨에 회개운동이 일어난 거예요. 그 이방나라, 이 못된 나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니느웨를 살려주셨어요. 그러니까 앗수르 군대가 사실 하나님의 은혜에 최대 수혜자 중 하나입니다. 근데 단 두 세대 지나서 이렇게 하나님을 모를 뿐만 아니라 대적하고 심지어 모욕하는 악인으로 원위치가 되어서 나타난 거예요.자,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깨닫고 기억해야 될 것은 지금 내가처한 형편이 아니에요! 내 형편이 살 만한 환경인지, 살 수 없는 환경인지는 사실하나도 큰 문제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나를 택하시고,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형편에서도 나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이에요! 나를 부르신 뜻을 절대로후회하지도 바꾸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죠.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절망의 사건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 시선을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잡아 두시려는 사랑인 거예요.절망의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음성이에요. 그래서 절망에 빠질 때, 하나님께 돌아가 매달려야 해요. 그 환경 앞에 엎드릴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통해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예요. 기도를 통해서 내 마음이 정답인 줄 알고 살던 데에서 돌이켜서 말씀을 정답으로 삼고 내 삶을 거기에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늘 말씀을 바탕으로 해야 되는 거예요. 말씀대로 드리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고, 100% 응답받는 기도입니다!절망의 사건이 올 때, 주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바래요! '죽겠
다~'만 외치지 말고 '주여!!' 하고 주님만 부르세요. '나 좀 살려주세요. 주여!'날마다 큐티하면서 '오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자가 나중 된다고 하셨사오니 주님, 저 나중 됐지만 좀 먼저 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한 구절이라도 말씀 붙들고 기도하세요. 그러면 어떤 절망도 왔던 길로떠날 줄 믿습니다!
[적용]조롱과 무시를 받는 사건이 왔어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납니까? 너무 절망합니까?절망의 사건 가운데 환경 앞에 엎드려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습니까?이번 한 주 어떤 기도를 드리겠습니까?
3. 피하고 싶을 때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26-27절)
26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가 랍사게에게 이르되 우리가 알아듣겠사오니 청하건대 아람 말로 당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고 성 위에 있는 백성이 듣는 데서 유다 말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마옵소서
-> 이제 히스기야의 장관 세 사람은 이 의심에 빠뜨리는 산헤립의 교묘한 설득과 절망에 빠뜨리는 랍사게의 치명적 놀림을 들었어요. 근데 그들의 반응이 어때요? 제발 알아들을 수 있는 유다 말로 하지 말래요. 아람 말로 해도 자기들을 알아들으니까 백성은 듣지 못하게 해달래요. 그러니까 '제발 영어로 해주세요~ 영어로~우리 그냥 알아들으니까.' 그러니까 무슨 말이에요? 상한 갈대인데 상한 갈대라는말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이미 죽게 되었는데 왜 굳이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해서살 소망까지 끊어놓느냐? 어차피 죽을 건데 좋은 말만 들려주자!'는 거예요. '잠깐이라도 걱정과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더 좋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는당시 최고 엘리트의 생각이었어요. 엘리트 아니었어요? 이들이야말로 히스기야 개혁의 주역 아니었어요? 히스기야의 오른팔과 왼팔이 되어서 시키는 대로, 시키지않아도 낯빛만 보고도, 눈빛만 보고도 그 마음을 읽어서 그가 원하는 대로 척척일을 처리해 줬을 거잖아요. 최고로 인정받는 능력자들이었을 거예요. 물론 엄청난 수고도 했겠죠. 하지만 히스기야의 개혁이 성공한 개혁이었기 때문에 어디로가든지 형통하는 그 형통의 열매도 가장 많이 받았을 건데, 그야말로 성공의 아이콘, 국민 영웅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눈앞에 닥친 문제를 직면하지못해요. 나라가 곧 망하게 되었어요. 개혁의 열매를 모았던 것도 이미 다 날아갔어요. 허리가 댕강 끊긴 갈대요, 밑동이 싹둑 잘린 나무인데 그 모습을 차마 보지못하는 거예요. 그렇다는 말도 듣기 싫어요. 내가 듣는 건 그나마 나아요. 근데백성이 듣는 건 참을 수가 없어요. 왜죠? 수치스럽기 때문이에요. 자기 명예가 무너지고, 비난받는 일을 당할 수가 없어요.그런데 이 요청을 들은 랍사게가 뭐라고 합니까? 27절이에요.
27 랍사게가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네 주와 네게만 이 말을 하라고 나를 보내신것이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자기의 소변을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고
-> 주님은 사람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게 하시잖아요. 최고 엘리트라는 사람들수준이 이러니까 하나님은 랍사게를 사용하셔서 들어야 할 말씀을 들려주세요.'너희들만 이 사태를 직면하면 되겠냐?!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즉 아람 말을 모르는 평범한 유다 백성도 모두 너희와 함께 자신이 똥을 먹고, 오줌을 마시게 되었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냐?!' 이제 이 대소변 이야기는 예루살렘도 다 그렇게똥오줌까지 먹고, 사실 아이까지 잡아먹는 일이 있었잖아요. 다 굶어 죽을 것이라는 예고예요.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끔찍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는 경고입니다.근데 랍사게는 '이 경고의 메시지를 왜 지도자인 너희들만 듣고 다른 사람들은듣지 못하게 하려느냐?!' 지금 이 얘기를 상대편 적장이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랍사게를 통해서 유대 지도자들의 문제를 정확히 드러내십니다. 의심에 떨어져도,절망에 떨어져도 최고 엘리트들은 끝까지 체면이 중요해요.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자기 수치는 오픈을 못하는 거예요. 죽음의 고통보다 망신의 고통이 훨씬 더 커요. 구원보다 명예가 더 위에 있어요. 그러니 결론이 뭐예요? '냅둬~~ 이대로 살다 죽을래!!' 이거예요. 나중에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지금 부끄럽고 욕먹는 게훨씬 더 두렵습니다. 그래서 그렇게들 자살을 하잖아요. 최고 위정자부터 그 어마어마한 엘리트들이 지금 그냥 자살공화국이 됐어요.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을 해버리잖아요. 이거는 최악이에요. 자살하는 건 최악이에요. 지도자가 자살하면 안 되는 거예요. 다 따라 하잖아요. 엊그제도 BTS의 한복 디자인을 해줬던 그 30대 청년 디자이너가 잘 생겼더만 자살을 했어요. 매주일 나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이 뭐라고 하세요? '성 위에 앉은 사람들도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게하고 자기의 소변을 마시게 하신 것이 아니냐' 물으십니다. 똥오줌처럼 여겨지는 그수치 그 부끄러움을 저기 저 성 위에 앉은 사람들! 너희들 눈에 너무 무시가 되어서 그들에게 잘못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도 싫은 그런 사람들과 함께 나누라는 말씀이에요. '왜 영어로만 하라 그래? 이걸 백성들도 다 알아야지.' 이걸 히스기야와 그 일당이 말하는 게 아니고 랍사게가 처방을 딱 해줍니다. 우리는 돌아버려요. 여러분, 별 인생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이 이 땅에 벌거벗고 왔다가벌거벗고 갑니다. 우리가 자기 모습을 감추려고 쓰는 방패들이 있지요. 지식과 외모와 건강과 돈과 그런 게 많지만요. 나이 들면 다 똑같다고 하잖아요.
40대가 되면 지식이 평등해지고, 아는 놈 모르는 놈 다 똑같다 이거죠.50대가 되면 외모가 평등해지고, 60대가 되면 남녀가 평등해지고,70대가 되면 건강이 평등해지고, 80대가 되면 돈이 있거나 없거나 다 평등해지고,90대가 되면 사나 죽으나 생사가 다 평등해진다잖아요.어차피 우리가 다 상한 갈대라니까요. 밑동 잘린 나무라니까요. 지금은 내가 좀특별한 것 같아서 수치가 드러나는 거 피하고 싶고, 내 약점 감추고 싶고, 내 죄고백하는 것이 너무나 싫지만.. 우리가 치매가 걸려보면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프면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런 거 사실 다 지나가는 거예요. 계속 피하려고만 하다가 천국까지 피하면 되겠습니까? 천국 가야죠! 주님 만나야죠! 천국이 상한 갈대의 유일한 소망인 거예요. 그래서 직면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도망가지 마시고요. 여기 성 위에 예배당 위에 앉아 있는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갈대의 특징 중 하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씩 뜯어보면 너무 가늘고 약하지만 무리로 모여있기 때문에 엄청난 생명력으로 살아남는 거죠. 우리들교회는 구조 자체가 나눌 수 있잖아요. 말씀의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모르면 물어보시고, 힘들고 수치스러운 일은 함께 나누시면서 천국까지 같이 가십시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아무에게나 막 하시면 안 되고요. 그래서 양육을 잘받으셔야 돼요. 큐티로 인도함도 받아보시고, 목자님께 물어보시면서 오직 회개가되도록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상한 갈대임을 인정하기 싫어서 피하고 싶을때 피하지 말고! 공동체에서 함께 나누면, 세상 그 무엇도 주지 못하는 자유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
[적용]너무 듣기 싫은 말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듣기 싫습니까?그래서 피하고 싶은 자리는 어디입니까?공동체에서 믿음으로 나누었더니 자유롭게 된 일이 있습니까?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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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심의 마음으로 매일 큐티 제목이라도 적어 보고 허락하신 것에 감사함으로 하루만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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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들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기 보다, 큐티에 집중할 수 있기를
2. 병원에 가서 잘 묻고 약 잘 타와서 안 까먹고 먹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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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한주 살도록
2. 교만하지 않도록 허락하신 상황을 성령의 파도 타고 잘 통과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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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상한 갈대인 저에게 만물의 주인께 의뢰 할수 있는 말씀 주신 것에 감사하며 하루만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