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
(열왕기하 18:20-27)
참석 : 손유진, 한보람, 이한나, 송민섭, 최선우
상한 갈대같은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1. 의심에 빠질 때 나아가 예배해야 합니다.
오늘은 의지와 의뢰라는 단어가 8번이나 등장하는데, 우리가 의뢰하는 게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랍사게의 말로 외칩니다. 내가 뭘 의뢰하는지 상대방, 원수가 알고 있는 겁니다.
악한 아버지 아하스를 통해 깨어있게 하시더니, 앗수르가 쳐들어오게 하셔서 깨어있게 하시는데, 편하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믿을만한 환경이 되게 하시는 겁니다.
랍사게는 아픈 곳을 딱 꼬집으며, 니가 작전하고 군사력 키우면 될 줄 알았지? 라고 하지만, 이건 싸우면서 입만 살아있는 거고요. 이어서 누굴 믿고 덤비냐고 물어봅니다. 그래고는 애굽을 믿는구나라며, 대신 대답합니다. 사실 하나님을 믿지만 히스기야는 애굽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애굽은 앗수르가 침략하니까 입을 씻고 돕지 않습니다. 앗수르왕 산헤립은 애굽을 상한 갈대 지팡이라 하고, 애굽은 필요한 순간에 싹 숨는데, 이건 애굽의 문제가 아니라 유다의 문제입니다. 유다에게는 몸에 밴 애굽 노예의 습성이 있어서 끊지 못했던 거고, 이렇게 달라붙으니까 유다에게 매력이 없습니다.
유다가 애굽을 상한 갈대 지팡이로 만들며, 진짜 상한 갈대는 유다입니다. 유다의 믿음이 상한 갈대와 같아서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상한 갈대는 멀리서 보면 도리어 멋져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상해있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보고 좋아하지만 외모를 탐하지 말라고 합니다.
앗수르왕은 히스기야가 얼마나 하나님의 의지하고 경외하며 대단한 종교개혁을 했는지 알고 있지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히스기야가 산당 제거했으므로 더는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돕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만 경외하며 만사형통하다가 다 뺏기고 망하기 직전이 되니까 히스기야도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갑작스런 고난의 파괴력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근데 이때 앗수르왕이 힌트를 줍니다. 네가 여호와만을 예배하라고 했잖아, 그게 잘못이라고 하는 겁니다. 네가 여호와 앞에서만 예배하라고 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며 히스기야를 의심에 빠뜨립니다.
예수 믿고 제사 안 지냈더니 불합격하고 암에 걸렸다며 부추기는 것이 사단의 괴계입니다. 고난 앞에서 상한 지팡이를 의지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럴 때 우리는 여전한 방식으로 예배의 자리를 지켜야 하며, 예배를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염려는 자기가 높고 교만해서 생기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으면 염려할 일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니 염려하게 되는 것이며, 이 의심의 치료제는 믿음 뿐입니다. 교회로 나가서 지체들과 뭉쳐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자꾸 의지하고 싶은 나의 애굽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의지하는 지팡이가 상한 갈대라서 슬픕니까. 내가 상한 갈대라서 슬픕니까?
주일, 수요, 목장 예배에 어떤 마음으로 나아갑니까?
2. 절망에 빠질 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랍사게는 유다를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청한다고 하지만 너희는 말탈 사람을 한 명도 낼 수 없다며, 모든 군대가 나와도 앗수르 군인 한 명도 까딱할 수 없다고 합니다. 완전 무시에 엄청난 모욕인데요. 여기에 더해서 랍사게는 하나님까지 조롱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뜻으로 예루살렘을 멸하러 왔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북이스라엘처럼 남유다도 망한다고 하신 말씀이 있어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유다 백성에게는 훨씬 더 심각하게 들립니다. 들었어도 설마 설마했던 건데, 진짜로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겁니다. 그리고 지휘관이 자기한테 하나님이 말했다고 하니까 히스기야와 유다백성은 경악하며 깊은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
이건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호시탐탐 삼키려 하고, 믿음을 흔들려고 합니다. 사탄은 항상 의심을 넘어 절망에 빠뜨리려고 하는데, 절망은 하나님이 버리셨다, 희망없는 마침표입니다. 맞서 싸우거나 일어서려 하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든 형통했고, 준비하던 군사 외교도 앗수르 앞에서는 입에 붙은 말에 불과하니 의심을 넘어 좌절과 절망에 빠집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최후의 보루처럼 믿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랍사게는 이 의뢰마저 다 부숴버립니다. 그 마지막 남은 하나님도 너희를 버렸으니 포기하라고요. 욥기에서도 욥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의심에 빠졌을 때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점점 더 깊은 의심에 빠지다가 절망에 빠져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이건 사탄이 준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대하고 원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하나님 아닌 것을 기대하고 탐내고 바라니까 문제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기대와 마음을 만족시켜주지 않고, 돈과 쾌락, 인기 같은 것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반드시 절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도에게 왜 절망의 사건과 시험이 올까, 왜 세상의 조롱을 허락하실까? 정말 우리를 멸하시려는 걸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멸망하기로 하셨다가도 뜻을 돌이키는 분이십니다.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가 뜻을 바꿔 멸망하신 적은 없습니다. 사울에게도 계속 경고하다가 심판하신 거고요, 출애굽 때 금송아지를 섬겨도 멸하기로 했다가 불쌍히 여겨 살려주십니다.
앗수르에도 수도 니느웨에 요나 선지자를 보내서 회개 운동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근데 2세대가 지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욕하는 악인으로 원위치가 돼서 나타납니다.
우리가 깨닫고 기억해야 할 것은 내 형편이 아니라,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 어떤 형편에서도 나를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부르신 것을 후회하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면 일희일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절망의 사건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의 시선을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잡아드려는 사랑입니다. 절망의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는 음성이고, 우린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돌아가 매달려야 합니다. 환경에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통해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정답으로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바탕으로 한 기도는 100퍼센트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조롱과 무시를 받는 사건이 왔습니까? 그래서 너무 화가 납니까? 너무 절망합니까?
절망의 사건 가운데 환경 앞에 엎드려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습니까?
이번 한 주 어떤 기도를 드리겠습니까?
3. 피하고 싶을 땐 함께 나눠야 합니다
히스기야의 장관 셋은 랍사게의 치명적인 논리를 듣고나서 백성은 못 듣게 해달라고 합니다. 상한 갈대면서 상한 갈대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죽게 됐지만 죽을 거란 말을 하지 말라며, 잠깐이라도 걱정과 두려움을 덜어내려 합니다.
이들의 최고의 능력자들로 형통했을텐데, 그런 이들이 눈앞의 문제를 직면하지 못합니다. 내가 듣는 건 괜찮은데 백성이 듣는 건 수치스러워서 참을 수 없다며 영어로 말해달라고 하는 겁니다.
주님은 사람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치게 하시듯, 랍사게를 통해 들을 말을 듣게 하십니다. 너희만 이런 상황을 들어서야 되겠냐, 백성 모두 자신이 똥과 오줌 먹게 될 것을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겁니다. 비참하게 죽을 경고인데, 랍사게는 이 경고를 왜 너희만 들으려 하냐는 겁니다. 하나님은 랍사게를 통해서 유대 지도자들의 문제를 드러내시는 건데요, 의심과 절망에 떨어져도 엘리트에게는 체면이 중요합니다. 구원보다 명예가 위에 있어서 절대로 자기 수치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이대로 살다 죽겠다며, 지옥보다 지금 욕 먹는 게 훨씬 두려운 겁니다.
하지만 주님은 백성에게 수치와 부끄러움을 보이는 게 죽기보다 싫어도, 그걸 그들과 함께 나누라고 합니다. 백성 모두 알아야 한다면서요.
별 인생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벌거벗고 왔다가 벌거벗고 가는 인생이고요, 나이 들면 지식, 외모, 건강, 돈이 다 같다고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상한 갈대, 밑동 잘린 나무고요, 수치가 드러나는 걸 감추고 싶고, 내 죄 고백이 너무 싫지만 이걸 피하려다 천국까지 피하면 되나요. 주님 만나야죠.
천국이 상한 갈대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러니 직면하기 싫고 피하고 싶어도 도망하지 말고 믿음의 지체들과 나눠야 합니다. 갈대의 특징 중 하나는 군락을 이룬다는 겁니다. 하나는 너무 가늘고 약하지만 무리를 이루기 때문에 엄청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거죠. 그러니 모르면 물어보고 양육받고 수치는 함께 나누면서 천국까지 함께 합시다. 양육과 큐티로 나누며 오직 회개를 해야 하고, 피하지 않고 나눌 때 세상 무엇도 주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너무 듣기 싫은 말은 무엇입니까? 왜 그렇게 듣기 싫습니까?
피하고 싶은 자리는 어디입니까?
공동체에서 믿음으로 나누었더니 자유롭게 된 일이 있습니까?
기도제목
A
- 내 힘이 아닌 하나님께 의뢰하며 말씀과 함께 매일 감사로 시작할 수 있도록
- 직장에서 새로운 환경의 적응이 쉽지 않은데. 업무가 다른것은 아니지만 규칙과 규범, 틀에 박힌 형식에 치이네요.. 몸이 성하지 않은데 체력관리 잘하기
- 상근직 근무로 전환되기를 기도( 주일 성수를 위해..)
- 공동체 지체들 기도제목 놓고 기도하기
- 신교제. 신결혼의 준비되어지길
B
-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나를 붙들고 계신 주님 바라보며 가도록
- 엄마 내일(화) 오전 9시 위루관 교체 잘 받으시길
- 상한 갈대 같은 내 모습 먼저 보고 서로를 품어주는 우리들 되도록
C
- 엄마(신순기), 아빠(한상복) 구원해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회사, 가정, 교회에서 매 순간 주님만 의지하게 해주시고 감사함으로 예배, 기도, 나눌 수 있게 도와주세요
- 결혼의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살펴주시고 가장 선한 선택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 동생이 외국에서 안전하게 지내며 4.26 결혼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발걸음 인도해주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