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설교
2025.03.02 주일예배 열왕기하 18:9~19 네 의뢰가 무엇이냐
1919년 3월 1일에 일본에 항거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킨지 106주년을 맞습니다. 5천년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시 크리스찬이 1.6%에 지나지 않는 소수였지만 민족 대표에서 크리스찬이 16명이나 되었고, 만세운동이 교횔르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광복은 45년에 이루어 지는데, 사람들은 그 해 만세 운동이 실패한 운동이었다합니다. 눈 앞의 결과로 성공,실패로 보면 안됩니다. 그 운동은 성공한 운동입니다. 말씀으로 해석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주신 고난도 말씀으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갑자기 자유민주주의를 감당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하나님이 일제의 압제를 허락하셔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기독교 관점에서 모든 인류의 역사는 영적전쟁입니다. 성경에는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의뢰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내게 유리한 상황이 아닙니다.
9~11절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 침략을 받은 사건이 다시 기록됩니다. 그 기준 시점이 남유다 히스기야의 4년입니다. 이 사건을 히스기야 관점에서 기록한다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어떤 상황인가요? 아버지 아하스와 함께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너무 악하고 이상입니다. 하나님 성전에 앗수르 제단을 세우고 앗수르 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에게 너무나 굽신 거리지만 정작 자기의 아들들을 우상에게 불살라 바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런 모든 악의 모델인 북이스라엘은 정성껏 조공을 마치던 앗수르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잔인한 최후를 맞이 합니다. 성이 함락되고, 사람들은 사로잡혀 먼땅으로 사로잡혀 갑니다. 세상에 정성껏 종노릇하다가 사장 심기 잘 못건들려서 먼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히스기야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무엇이 하나님의 백성을 망하게 하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답이 12절 입니다.
12절
이를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에게 알려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알려줍니다.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주면 답 대로 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기다리가다 아하스가 죽자마자 통치자가 되어 강력한 계회을 진행 합니다. 이 계혁에 나라의 모든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반대세력이 많지만 오직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하니 하나님도 히스기야와 함께 하십니다. 이런 상황에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말씀 잘 보고 하니 주변 환경이 여러분에게 다 맞춰집니다. 우주의 중심이 여러분이 된거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그동안 겪어온 일이 참 축복입니다.
히스기야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합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다윗이, 가장 유명한 간통범이 될 때가 언제일까요? 역사상 가장 이길 때, 어디로가든지 승리할 때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싸우러 나갈 필요도 없다고 여깁니다. 내 이름만 나가도 적들이 다 쓰러지니 이제는 내가 나갈 필요도 없때 라고 장담하던 때, 성공의 정점에 있을 때 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다윗이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런 범죄를 저지릅니다.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에 놓이면 그 누구도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장담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구속사입니다. 인간이 교만한 존재 이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 합니다. 모두 악하거나 선하거나 인본적인 사상입니다. 이는 누구나 노력해서 인간적인 이상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문제의 탓을 항상 상황에서 찾습니다. 인간은 선한데, 상황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본주의의 끝판왕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런 사상에 매료가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태어날 때 부터 교만하기에 상황이 조금만 자신에게 유리하면 금방 하나님을 잊고, 상황을 의지하고 믿습니다. 히스기야도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니 마음이 높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너무너무 사랑하신 것 같습니다.
13절
히스기야 단독 통치 14년입니다. 히스기야의 축복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입니다. 그런데 그 때, 앗수르가 딱 쳐들어 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약해 졌을 때, 독립할 때라 여기며 반 앗수르 동맹을 맺습니다. 하지만 앗수르가 유다를 쳐들어 옵니다. 히스기야가 여호와와 함께 하느라고, 14년동안 산당을 패하고 우상을 찍어내고, 앗수르로 부터 독립도 하며 적용도 했는데, 앗수르기 감히 나를 배신해 하면서 쳐들어 온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말씀을 들으며 적용하며 가는데, 집안 어른들이 쳐들어 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형통의 때가 끝납니다. 인본적으로 생각하면 너무 억울 합니다. 예수믿어 축복받았다 했는데, 하나님 나에게 어떻게 이럴수가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구속사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라는 말은 유리한 이 상황이 내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내게 유리한 상황을 하나님이 뺏어 간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리한 상황을 하나님보다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본 주의 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시기에 하나님은 갑작스런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멈춰세우시는 것입니다. 유리한 상황이 어려운 상황으로 바뀌는 고난을 통해 반역의 길에서 멈추시는 것입니다.
내 남편, 아내, 자식, 환경이 내게 유리하다가 의뢰할 대상이라고 부르짖는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혀 예상못한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고 낙심할 때가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특별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내게 유리합니까, 불리합니까?
-그래서 너무 우쭐합니까, 너무 낙심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교만의 낭떨어지 앞에서 멈춰 세우신 사건은 무엇입니까?
어떤 집사님이 중국의 종교 탄압으로 엄마와 한국으로 왔습니다. 결혼해서 딸 낳고 딸도 신결혼 시킨 후에 우리 교회에서 사위와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는데, 하나님만 바라보고 왔는데, 한국에서 돈이 생기니 남편이 배신했다 합니다. 그런데도 아내가 하나님의 의뢰했기에 가정을 지켜내신 것 같습니다.
2.내 힘도 아닙니다.
14절
병행본문인 역대하에 보면 히스기야가 최선을 다해 대비합니다. 전에 사마리아가 포위 공격했을때, 대비를 잘했기에 3년을 함락을 못시킨 것을 기억하며 대비를 잘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앗수르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서 준비해도 군사적인 힘은 그가 의뢰할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히스기야를 비웃기라도 하듯 앗수르 군은 순식간에 예루살렘 버금가는 요새 도시 라기스를 함락 시킵니다. 핵심 기지가 앗수르에게 넘어갑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순식간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힘이 빠져 항복 문서를 보냅니다. 자기가 범죄했다고 보내는 것입니다. 이사야에 보면 하나님만 신뢰하라 했는데, 그말 안듣고 앗수르에게 비굴하게 살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의 의미도 모릅니다.
형통한 시절을 보내며 모아둔 돈의 힘으로 막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1500억이 넘는 금액인데, 당시 온 나라를 드리는 금액인데, 앗수르 왕이 이 금액을 요구 하고, 히스기야는 이를 보내기위해 애씁니다.
15~16절
히스기야가 잠시라도 의뢰했던 돈의 힘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성전, 왕궁, 곳간까지 다 털어서 마련합니다. 그래도 부족합니다. 성전 문과 기둥에 붙인 금까지 모두 벗깁니다. 단독통치 첫달에 한것이 성전 문 수리입니다. 어디로 가든지 형통한 경험과 하나님이 함께하신 경험이 담긴 문입니다. 그런데 이를 쓰잘데기 없는 것으로 여기고 바뀌는 것입니다. 나의 귀한 오픈을 쓰잘 데기 없는 것으로 바꾸는 사람이 바로 자신입니다.
그 모든 의미와 기억과 상징이 돈이라는 가치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명을 내려 놓고, 항상 돈 때문에 불신결혼하고, 돈 때문에 이 회사로 가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나 없으나 끝에는 돈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진 것 다 주었으면 앗수르 군대가 돌아가야 하는데, 기대는 깨지라고 있는 것처럼 돈을 다 받았으면서도 쳐들어 옵니다.
돈 때문에 움직이면 돈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17절
앗수르 왕은 최고의 장관을 3이나 세워서 총 공격 명령을 내립니다. 왕이 가장 신임하는 3사람을 보낸 다는 것은 예루살렘을 만드시 점령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엄청난 군대를 보고 히스기야는 어떻게 되었을 까요? 기대가 산산 조각 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대가 무너졌을 것입니다. 사람의 힘도, 돈의 힘도 아무것도 안됩니다. 히스기야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이 앗수르 앞에서 전적으로 무너집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자신있던 힘이 철저히 무능해 집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입니다. 내가 너무나 갈곳 없어 자살해야 하는것이 아닙니다. 속담에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해결할 길이 있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사상의 끝은 죽음이고 허무입니다. 진짜 역사는 구속사 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역사는 구속사 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속사 세속사가 따로 있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생각이 망가졌기에 우리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속사 입니다. 구원이 최고의 가치고 그로 생각하는 것이 구속사 입니다. 구속사로 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자신이 구속을 받아야 하는 사람임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심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목자모임에서 목사님이 구속사를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속사는 이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며 구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건도 내게 주심을 믿고 그 목적이 멸망이 아닌 구원에 있음을 믿는 사람은 구속사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내게 모든 사건을 나를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하는 것이 구속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뢰하던 힘이 하나도 안통하는 사건이 생기셨나요? 여러분을 구속해 가시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인줄 믿습니까? 여러분이 마음대로 하다가 지옥가면 안되니 돌이키라고 주신 사건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힘은 명예, 재산, 권력, 인기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루어진 모든 고난은 구속사 적인 신앙 고백을 받아 내려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인 줄 믿습니다.
- 내가 아직도 의뢰하고 있는 나의 힘은 무엇입니까?
- 반드시 가지고 싶은 힘은 무엇입니까?
- 그 힘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못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유명한 기업 대표로 있다가 회장의 자살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으시면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원래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수많은 죄를 감추고 승승 장구 하다보니 자연히 교회를 떠나 있다가 이 사건으로 교회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배의 투고로 교회를 오게 된 것이 은혜라고 합니다. 이것이 구속사 적인 해석입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할 수 있는데, 구속사가 깨달아지니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 있기에 사명을 계속 피했는데, 4살 조카가 아프니까 이제는 다 필요 없게 되었다고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시니까 하나님이 고난을 주십니다.
어떤 목자님도 이런 나눔을 하십니다. 불륜과 두집살림으로 교회에 오게 되었다고 간증을 했는데, 사실은 갚아지지 않는 3억의 빚이 해결이 되니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돈이 있으면 돌아오지 못했을 거라고, 나를 아시고, 빚으로 퇴를 막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합니다.
3.오직 이 의뢰. 즉 하나님 뿐입니다.
17~19절
예루살렘에 도착한 앗수르의 대군은 히스기야 왕을 부릅니다. 정중하게 불렀을까요? 아닙니다. 야 히스기야! 당장 나와서 꿀어 하며 했을 것입니다. 이 히스기야는 3명의 앗수르 지휘관을 상대로 3명의 신하를 보냅니다.
앗수를 대표해 랍사게가 말합니다. 랍사게는 앗수르 왕이 대왕임을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와 상대가 안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리한 상황과 힘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세상관점입니다. 그리고 니가 의뢰하는 그 의뢰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즉 몰 믿고 이렇게 까부냐? 하는 것입니다. 앗수르 왕은 식민지가 되길 바라는데, 왜 버티냐고 랍사게가 그게 대체 모냐고 묻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도 쎄고 돈도 많은데 왜 버티냐고 묻는 것입니다.
의뢰하다 는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 3번 나오는데, 2번이 히스기야에게 쓰입니다. 내 원수가 내가 무언가 의지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의뢰하고 있는 이 의뢰는 무엇일까요? 그에게 유리하던 상황도, 믿던 힘도 다 사라졌는데, 무엇을 의지하고 있을까요? 지난 주 설교 5절에 답이 있습니다. 완전한 사람이 없고 별인생이 없지만 그 중심에 무엇보다 하나님의 의지하고 의뢰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잠깐은 자기의 힘과 돈이 의지가 되었지만 그것들이 다 없어지니 이제 하나님밖에 안남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잠깐은 의지가 될 수 있지만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의지이고, 의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으십니다. 지금 당한 환란은 진정한 의뢰가 오직 하나님 뿐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구원의 사건이고 사랑의 사건입니다.
네 의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일제시대때, 우리가 말한 독립선언문에는 민족의 자주적 독립 뿐 아니라, 신국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 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의뢰하니 조국의 독립 뿐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 했다는 말입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며 모두 예수 믿기를 서원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몽둥이 역할을 한 일본도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이 구속사 입니다.
-내 의뢰 목록 다섯가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몇 번째 입니까?
-지금 일어난 사건을 통해 '네 의뢰가 무엇이냐?'는 주님의 질문에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나를 힘들게 한 사람과 사건으로 인해 여러분이 홀로서기 하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가 임해서 그 원수를 위해 기도합니까?
2.목장 장소 및 참여인원
: 카페로쥬 / 목자, 부목자 참석(총 2명)
3.기도제목
A.
1. 오직 하나님께만 의뢰하도록
2. 올해 모든 빚 청산하도록
3. 신교제와 신결혼
B.
1.말씀으로 잘 나누며 갈 수 있도록
2.공부하는 가운데 지혜와 명철을 부어주시길
3.이번주 해야할 공부양 다 해낼 수 있도록
4.아빠의 오랜 언어폭력으로 지쳐가는 엄마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