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6여호와만을 경외하라
열왕기하17:29-41
이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에 이중사고(double think)라는 개념이 나오는데요. 완전히 모순된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믿는 거를 말하는데요. 예를 들면은,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속박이다, 무지는 힘이다. 소설 속에서 이중사고는 전체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수단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도록 쇠뇌시켜서 통치하기 쉬운 분열된 정신 상태를 만들어내는 거라는 거예요.우리 신앙에도 이런 이중사고가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세상 가치도 신봉하고, 사망을 따르면서도 야망을 쫓고...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받아들이며 살고 있지는 않으세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랬어요. 앗수르 각지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해 온 사람들인데요. 그들은 자기의 신을 섬기면서 여호와도 경외했어요. 요새 정치적인 올바름의 관점에서 보면 다양성을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고, 아주 포용적인 것처럼 보이죠. 아주 깨어 있는 시민의 태도 같아요. 하지만 주님은 이런 뒤죽박죽 신앙에 대해서 단호하게 'NO!'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이중사고, 이중신앙은 통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여호와만을 경외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왜 여호와만을 경외해야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자기숭배의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29-33절)
이제 17장에 이스라엘이 망했잖아요. 왜 망했는지 그 이유를 길게길게 설명을 해서 지금 몇 번의 설교를 똑같은 말을 지금 계속하고 있지만 똑같이 듣지 마시고, 오늘도 새롭게 들어주시고, 여러분들의 삶에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29절부터 읽습니다.
29 그러나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에 두되 각 민족이 자기들이 거주한 성읍에서 그렇게 하여30 바벨론 사람들은 숙곳브놋을 만들었고 굿 사람들은 네르갈을 만들었고 하맛 사람들은 아시마를 만들었고31아와 사람들은 닙하스와 다르닥을 만들었고 스발와임 사람들은 그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에게 드렸으며
->이제 금송아지 제사를 드리다가 얼떨결에 여호와 경외를 가르치게 된 제사장 기억하시죠? 지난 주일에 했잖아요. 하나님의 하자도 모르는 앗수르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에 대해 아는 척을 잔뜩 했을 텐데요. 아무리 그래도 이 사람은 짝퉁 제사장이에요. 그래서 그 결과는 그러므로가 아니라 그러나입니다. 그 제사장이 너무너무 열심히 가르쳤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어 그것을 섬겼습니다. 바벨론, 굿, 하맛, 아와, 스발와임 등 앗수르 각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각기 자기 우상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 신상 이름도 제각각인데요. 숙곳브놋은 암탉이라는 뜻이고, 네르갈은 수탉, 아시마는 털이 벗겨진 수탉, 닙하스는 개, 다르닥은 당나귀, 아드람멜렉과 아남멜렉은 몰렉 우상 듣기만 해도 머리가 복잡하잖아요.^^ 정확한 뜻도 알 수 없는 온갖 우상들이 사마리아 땅에 이렇게 수입이 되어서 암탉, 수탉, 개, 당나귀 등의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그 동물 형상들을 다 만들어놓고 섬기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이 그렇게 고향 신들을 모셔와서 마음껏 만들어 섬길 수 있는 아주 좋은 환경이 사마리아 땅에 갖춰져 있었던 거예요. 무엇이죠? 여러 산당들이에요. 어떤 산당들입니까? 사마리아 사람이 지은 여러 산당들이요. 이 사마리아 사람은 그 땅 원주민들. 그러니까 원래 그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에요. 이제 이들이 다 앗수르로 잡혀가고 이방인들이 그 땅을 차지했잖아요? 그러니 그렇게 자랑했던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아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마리아 사람으로 기억되고 맙니다. 게다가 이 사마리아 사람이 남긴 최고의 유물이 바로바로 산당이에요. 산당! 솔로몬 때부터 온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된 산당! 기복적인 우상숭배의 센터인 산당이 그들이 남긴 유일한 문화 유적이 되었어요. 여로보암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은 기가 막힌 결론이에요. 제거되지 않은 악은 또 다른 악을 이렇게 불러들이는 거예요. 이게 바로 악의 평범성이라고 그러잖아요, 계속. 그런데 이 나쁜 거는 그렇게 수명이 기네요. 남북에서 산당을 제하지 못했더라 이게 이렇게 이방인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각자 자기 우상 섬기다가 사자의 습격을 당했잖아요.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벧엘에 제사장을 세워서 여호와 경외를 가르치게 했는데요.
32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하여 자기 중에서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택하여 그 산당들에서 자기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니라33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32절, 33절에지난 주일에 얘기를 했는데 또 다시 설명을 하는 거예요.
그들이 또 여호와를 경외했다고 합니다. 각기 자기 우상 섬길 건 그대로 하면서 거기에 더해서 또 여호와를 섬겼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그 땅 신- 사마리아 땅의 신-으로 여겼기 때문이죠. 쉽게 말하면, 어렸을 때부터 들어둔 보험이 있는데 그것으로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보험 하나 추가로 또 들은 거예요. 보험은 많을수록 좋아~ 이러면서 말이에요. 이렇게 여호와도 경외하고~ 자기 고향 신도 섬기니까~ 인생이 너무 든든하고 행복했던 모양이에요.
이 신(新) 사마리아인-원래 거기 살던 구(舊) 사마리아인이 아니고, 그 땅의 새 주인이 된 신(新) 사마리아인들-이 이제 자기 중에서 사람을 택해서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습니다. 자기 중에서 사람을 제사장으로 택했다고 번역했는데요.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자기를 위하여 자기 모두로부터 제사장을 삼았다고 해요. 무슨 말입니까? 무슨 엄격한 시험을 통해서 선발한 게 아니고, 누구든 원하는 사람을 다 데려다가 제사장을 만들었다는 뜻이에요. 그게 북이스라엘이 전수한 거잖아요. 마음대로 그 평민들을 ampndash원하는 사람들을- 다 세웠어요. 누구를 위해서요?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위하여! 이제 보이시죠? ★이 모든 경외와 섬김의 중심은 결국 자기 자신이에요. 이들은 원래부터 각기 자기 자신을 섬겼어요. 그러다 자기 행복이 깨지는 사건이 오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 신으로 불안해요. 그래서 새로운 신, 그 땅 신을 섬겨요. 더 잘 섬기려고 제사장을 많이 둡니다.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처음도 자기! 중간도 자기! 마지막도 자기입니다! 자기가 알파와 오메가예요.
여기서 무엇을 보여줍니까? 결국 우리가 무슨 우상을 만들든, 그 우상을 어떻게 섬기든 결국 우리가 섬기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거예요. 우상숭배의 끝에는 자기숭배가 있는 거예요. 그 목적이 결국 자기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쉽게, 자녀가 건강하면 좋겠고~ 공부 잘하면 좋겠고~ 주식이 올라가면 좋겠고~ 성공하면 좋겠고~ 행복하면 좋겠고~ 그냥 게다가 예수까지 잘 믿으면 금상첨화인 거예요. 이게 여호와도 경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데 이게 결국 누구를 위한 일이에요? 여러분 양심껏 고백해 보세요. 자기를 위한 일이라는 거! 그것 때문에 자녀가 대학에 떨어지면 식음을 전폐하고.. 그죠? 하나님의 영혼으로 보지 않고, 나를 위한 자녀~ 나를 위한 돈~으로 보니까. 이게 자기를 위한 거 부인할 수가 없어요. 이게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타적일 수가 없는 존재예요. 인간은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지을 수도 없어요.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에요. 자기애(自己愛)는 우리의 기본값입니다. 자기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절망하며 우울한 사람은 자기애가 없을까요? 아니에요!★자기애가 과할수록 우울과 좌절에 빠지기가 쉬운 거예요.
★우리 존재의 최종 목적이 자기 자신인 것이 바로 아담에게 물려받은 원죄인 거예요. 이것이 자기숭배예요. 드러난 자기숭배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자기숭배도 많습니다. 교양 있고, 착한 사람은 굉장히 이타적으로 보이잖아요. 그래서 착한 게 악한 거예요. 드러나질 않으니까.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 노력의 중심에도 나라는 우상이 있어요. 그러니까 더 무서워요. 그 속으로는 결국 자기를 위하여 그렇게 착하기 때문이에요. 드러나지 않으니까 모를 뿐이에요.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숭배하고 있다는 걸 몰라요. 몰라서 더 문제예요. 착한 게 제일 예수 믿기 어렵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함정이에요. 빠지는 줄도 모른 채 빠져 있기 때문이에요. 돈이 많고, 착하고 이러면은 함정에 빠져 있다는 걸 몰라요. 이렇게 우리 모두는 자기숭배 함정에 빠져 있어요. 심지어 사역에 헌신을 해도 자기숭배의 그림자를 지울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훌륭한 사역자들이 넘어지는 일을 이렇게 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오늘(QTin) 예수님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버림을 받는다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버림을 받아보지 않으니까 넘어지는 일이 뭔지를 몰라요. 근데 진짜 좁은 길은 버림받는 길이에요. 참으로 우리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렇게 탄식할 수밖에 없는 약하고, 악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만을 경배해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 자신을 숭배해도 우리 안에는 구원이 없어요.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어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숭배의 함정에서 평생 고생하다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마는 겁니다.
이 본문에서 풍속으로 번역된 [미슈파트]는 26절과 37절에서 각각 여호와의 법과 법도로 번역된 단어에요. 그러니까 이들이 자기들의 민족적 관습을 가지고, 그리고 하나님도 섬김으로써 오히려 그 경외함이 우상숭배의 또 다른 형태가 되었음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내가 내 고향 신을 섬기는데 여호와도 섬기니까 그게 얼마나 강력한 ... 그러니까 이게 원어가 같다고 그랬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이 지역감정, 진영논리가 어려운 거예요. 이건 그냥 여호와도 섬기고~ 자기 고향 신도 섬기기 때문에~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에요.
[적용] 나는 어떤 신상을 만들고 있습니까? 내가 인생에서 보험처럼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자기숭배 점수는 몇 점입니까?
엊그제 105세의 김형석 교수님이 강의를 하시는데요. 그분은 실제적으로 25년 동안 일제 치하에서 식민지 시대를 겪었죠. 그러고 나서 해방 이후에 지금 80년을 살고 있는데, 지금처럼 힘든 때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 말에 저도 동의를 합니다. 러시아, 중국, 북한 제외하고는 모두 진보와 보수가 함께 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것도 맞아요. 그동안은 제가 무슨 적용을 해도 누가 뭐라 그러질 않았어요. 우리 진보, 보수가 같이 있었잖아요. 요새는 한마디만 해도 올라가죠? 그러니까 이게 언론이 무서운 거잖아요.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나라 밖에서 모든 것을 가져와야 된다는 거죠.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려면 대화를 해야 되는데 시진핑과, 푸틴과, 김정은은 대화를 안 한다는 거예요.
질서 사회라는 것은 거짓이 없는 사회이고 내로남불이 아닌데, 정의는 인간답게 사는 길이고, 자유는 양심의 자유라고 하시더라고요. 기독교가 역사에 남겨준 교훈은 결국 정치 경제에 인간답게 진실과 정의와 자유가 임하는 것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진영논리를 극복하고자 광주와 대구에 이렇게 교회를 세웠는데 그러니까 교회가 들어가자마자 아니 어저께 광주에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네요! 우리가 기도해서 그런 거 아닐까? 아니 하여튼 그런 사건이 지금까지 없었잖아요. 그죠? 근데 우리가 이렇게 함정에... 그러니까 그 역사적인 뭔가 반대 의견도 이렇게 표시할 수 있는 그런 집회가 열렸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우리 모두 함정에 빠진 줄 모르게 다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자기숭배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제 자기 고향신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건강한 진보와 보수가 가야 되면 무슨 얘기도 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근데 김형석 박사를 뭐라 그러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근데 또 그러는 거예요. 뭐라 그러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2.함정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34-39절)
근데 그 함정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여호와만 경외해야 되는 거죠. 34절이에요.
34 그들이 오늘까지 이전 풍속대로 행하여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라 이름을 주신 야곱의 자손에게 명령하신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는도다
->여기서 오늘은 열왕기하를 기록하고 있는 그 시기를 말하는데요.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사마리아가 된 때로부터 최소 160년이 지난 때예요. 자기 우상도 섬기고, 여호와도 경외하는 잡탕 신앙이 160년 넘게 이어졌어요. 그런데 열왕기 기자는 이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아니, 바로 앞에 33절에는 그들이 여호와도 경외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한 절 만에 말을 바꿀까요? 그런 게 아니고요. ★★여호와도 경외한 것은 사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은 것임을 분명히 하는 거예요. 주님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일관되게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해요. 그러니 하나님도 섬기는 것은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이고, 그건 곧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여호와만을 경외하라는 성경 곳곳에 기록된 명령을 여기에 정리해 주시는데요. 35절부터 좀 쭉 읽어볼게요.
35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경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고36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만 경외하여 그를 예배하며 그에게 제사를 드릴 것이며37 또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기록한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을 지켜 영원히 행하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며38 또 내가 너희와 세운 언약을 잊지 말며 다른 신들을 경외하지 말고39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하셨으나
->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이죠. 말씀대로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경배하고, 섬기고, 예배하면 영원히 살리라는 생명과 구원의 확실한 약속이에요. 그 첫걸음은 다른 신을 경외하지 않는 거예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라는 말씀이 지금 35절부터 39절까지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잖아요. 그게 제일 기본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이 기본도 절대로 못해요! 전혀 못해요! 그 중심이 자기숭배인데 우리가 어떻게 우상을 없앨 수가 있겠어요. 우리 힘으로는 절대 못 해요. 그래서 주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큰 능력과 편 팔로 출애굽 시켜주세요. 우리 인생에 BC와 AD가 나뉘는 출애굽 사건을 주십니다. 그리고 출애굽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지침을 율례와 법도와 율법과 계명으로 주세요. '성경을 교과서로 주셨다.' 이 말이죠. 이것을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해서 기록하셨다고 해요? 37절에 너희를 위하여 기록했대요! 우리는 나를 위하여 살고.. 이 그냥 자기숭배에 빠져 있는데 주님은 우리를 위해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말씀을 기록해 주셨다는 거예요. 우리는 서로 자기만 위해서 사니까 늘 부딪혀요. 늘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사이에 믿음이 있을 수가 없어요. 약속과 언약과 이런 게 우리끼리는 불가능해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관계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님이 관계를 해주시니까. 언약도 마찬가지고 하나님과 우리가 대등한 관계로 맺는 게 아니고요. 38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세우신다고 해요.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39절에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해라 강조하시죠.
그러면 뭐라고 하십니까?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여기서 건져낸다는 것은 꺼낸다, 빼낸다 이런 동사예요. 모든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꺼내시고 빼내시는 하나님 여호와만을 경외해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그러면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원수 중에서 최강의 원수는 누구이겠어요? 바로 죄예요! 죄! 그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죄인 원죄! 자기숭배인 거예요. 이 함정에 우리가 다 빠져 있다고 했잖아요. 자기숭배의 함정에서 누가 우리를 꺼내주시고, 빼내 주실 수가 있겠어요? 오직 여호와만이 가능한 거예요. 내가 누구누구를 섬겨서 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 지역감정에서 여러분들을 구원해 주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만이 우리를 이 애굽 같은 자기중심적 삶의 함정에서 건져내어 하나님 중심적 삶이라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애굽에서 400년 노예 노릇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금세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시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못 참고 힘이 드니까 당장 노예 노릇을 했던 애굽이 잘 살았잖아요. 거기로 가겠다는 거예요. 거기 가면은 고기도 있고~~ 하면서 모세를 비난하고 돌로 치려고 하는 거예요. 이 좋은 거 주려고 하는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거는 정말 날마다 제가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되는가? 나는 주의 종인가, 세상 종인가? 이거 맨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서 이 40년을 인도하는데 백성들은 맨날 돌로 치고~ '고기를 달라!! 네가 왜 우리의 주인이냐?'~ 뭐 이러는 거잖아요. 끊임없이 하나님도 경외하지만 '돈도 달라!! 세상에서 좋은 것도 달라!! 네가 우리에게 주는 게 뭐가 있냐?' 이 뿌리 깊은 노예근성이 출애굽 했음에도 끊임없이 나를 노예 삼고 있는 죄로 이끄는 거예요. 그래서 금세 구원받았다고 우리가 달라지는 게 아니에요. 정말 말씀 묵상하지 않으면은 금세 세상으로 끌려가는 거예요. 죄의 종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날마다 큐티하고, 목장에서 나누고.. 이러지 않으면은 '나는 잠시 쉬고 싶어~' 세상의 종이 되어 끌려가요. 우리는 여호와도 경외할 것이 아니라 여호와만!!!을 경외해야 되는 거예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를 죽음에 이르는 죄악의 함정에서 건져내시는 거예요. 우리 주님만 믿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높이며, 주님만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가 빠져 있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어떻게 주님만 높이겠어요? 적어도 여러분들이 율례와 법도와 이걸 다 지키려면 여기 오셔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우리가 구조가 여기 돼 있잖아요. 우리 집이 어렵고, 힘들어도 집안이 모두 말씀을 보고 교회를 다닌다면 그냥 살아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에요. 그런데 다 따로 놀고, 화목은 전혀 없는데 내 식구가 잘 먹고 잘산다고 좋아할 것이 하나도 없어요. 믿지도 않는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면 또 뭐 하겠어요? 믿지도 않는 남편이 돈을 잘 벌면 뭐 하겠어요? 돈이 우상이 되면 그럴 수는 있겠지만요. 여러분이 그것 때문에 구원을 몰라라 하면 이 함정에 빠져서 못 나오는 거예요. 그냥 좋은 환경, 안락한 환경... 여기에 빠져서, 자기숭배의 함정에서. 자녀는 나니까. 빠져서 점점점점 멸망의 길로 가는 거예요. 그것은 번영의 이 남유다의 웃시야,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시대와 같아요. 잘 살다가 잠시 후에 망하잖아요. 함정에 빠진 줄 모르기 때문에 안 들려요.
[적용]여러분은 여호와만을 경외합니까? 여호와도 경외합니까?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애굽에서 구해주신 출애굽 사건은 무엇입니까?성경이 나를 위해 주님이 기록해 주신 기가 막힌 책이라는 것이 믿어집니까? 그 사랑이 믿어집니까?
성경은 정말 얼마나 나를 위한 사랑과 책임의 책인지 몰라요.
어떤 남편이 오지에 발령받았어요. 3년이면 아이들 교육에 문제가 되니까 혼자만 가라고 했어요. 그런데 갔다가 7년이 되었다는 거죠. 화상 통화할 때는 보고 싶었는데 집에 오면 왠지 어색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제 7년이 되어서 본사로 발령을 신청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아내가 왜 그러냐고~ 거기 좀 더 있으면은 애들이 지금 다 지금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강하게 말렸다는 거예요. 이게 뭡니까? 부인에게 남자가 생겼어요.
어쨌든 자녀보다 부부가 먼저인 거예요. 항상 여러분은 그 원칙을 지켜야 돼요. 이러면 또 제가 싫겠죠. 그죠? 여러분들이 세상으로 가려고 그러는데 뭔가 딴지를 걸면 그게 날 미워하더라고요. 이혼도 하지 말라고 그러면은 그게 또 자기 행복에 걸림이 되니까. 그게 이게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거를 제가 뭔가 딴지를 걸면 그렇게 미워하더라고요. 그러니 돈 벌려고, 학교 잘 가려고 기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 경외하는 것이에요. 거기밖에 길이 없어요. 하나님 없이 번영할수록 망하기 직전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왜 여호와만을 경외해야 되는가? 첫째, 인간은 누구나 자기숭배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게 그게 그냥 본능이에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 누구도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에요. 두 번째는 그래서 그 함정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 여호와도가 아니고 여호와만!!! 경외하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20년을 내가 외쳐도 안 들리는 사람이 있잖아요. 예, 있어요. 저는 근데 안 들리는 사람을 사랑해요. 그래서 맨날 애통하잖아요. 왜냐하면 안 들리면서도 와서 앉아 있는 게 어디예요? 그래서 저는 이편저편 그럴 수가 없어요. 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그래서 그냥 눈물 마를 날이 없어요. 제가 어떻게 제 말 잘 듣는 사람만 기뻐할 수가 있겠어요? 제가 그것 때문에 목회를 하겠어요? 제가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을 위해서 생명을 내놨던 사람인데, 주여...
3.천 대까지 이르는 은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40-41절)
40 그러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전 풍속대로 행하였느니라 41 이 여러 민족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또 그 아로새긴 우상을 섬기니 그들의 자자 손손이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그들도 오늘까지 행하니라
-> 오늘 본문에서 풍속대로라는 말이 세 번째 반복이 되는데요. 그 시대가 옳다고 여기는 판단대로라는 뜻이에요. 시대가 변하면 생각도, 법도, 관습도, 풍속도 다 바뀌는 것 같죠.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변하는 것보다 안 변하는 게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왜죠? 사람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에요. 우리 삶의 방식은 바뀌어도 우리의 존재 자체는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전 풍속대로 행하는 것이 늘 있어요. 조상들이 행하던 대로 오늘까지 행하는 것들이 있어요. 무엇입니까? 욕심내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대립하고, 따지고, 싸우고... 이런 건 그야말로 자자손손 내려오는 거예요. 그 근본 이유가 뭐라고요? 각기 자기의 신상을 만들어 섬기는 거, 즉 자기숭배예요. 저마다 자기를 위해 사니까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는 다툼이 끝이 안 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대대로 이어지는 풍속에 뭐가 들어 있어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도 들어 있대요. 하나님을 여러 신 중 하나인 그 땅 신으로 생각하니까요. 기독교를 여~~러 종교 중 하나로 여기니까요. 나를 위해 우상을 열심히 만들면서도 동시에 하나님도 경외할 수 있는 거예요. 아무 문제 없다고 여기는 거예요. 하나님도 경외하는 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이것이 바로 듣지 않는 모습이에요. 여호와만을 경외하라고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을 듣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 외치고 또 외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예요. 귀에서 머리로 들어오질 않고요.
머리에서 가슴으로 들어오질 않아요. 풍속을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미 우상이 돼 있는 거예요.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 십계명에도 있는 거예요. 제2계명에. 그런데 거기에 약속 조항이 있잖아요. 두 가지인데 ⓵첫째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3, 4대까지 이르게 한다는 거예요. 계명을 어기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면, 그 벌을 3, 4대까지 내리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가족의 행복이 우상이 되었어요. 그래서 우상이 되어서 자기가 옳기 때문에 한 이혼의 상처는 정말 3, 4대를 가는 거 맞아요. '나는 절대로 이혼하지 아니하리라'하던 부모가 이혼하면 자기도 힘들어지면, 이혼을 하는 거예요. 자기도 힘들어지면, 알코올 중독이 되는 거예요. 부모 욕하면서 힘들어지면 거기서 내가 '우리 부모도 그랬는데~~!' 얼마나 면죄부를 쉽게 찾는지 몰라요. 자녀를 위해서... 그러니까 이런 얘기 하면은 제가 이혼하지 말라고 하면 얼마나 욕먹는지 아시죠? '네가 살아봤냐?'
⓶둘째는 그 반대인데요.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하세요. 그런데 이 은혜를 몇 대까지 베푸신다고 약속하실까요? 10대도 아니고~ 100대도 아니고~ 천대까지 베푸신다고 하세요! 천은 완전 수잖아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완벽한 은혜를 자자손손 대대로 주신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여호와만을 경외하는 사람에겐 천대까지 이르는 완전한 은혜를 주신다는 거예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플리머스 호를 타고 가서 아무것도 못 보고 그 조상들이 처참하게 죽었지만, 눈으로 보기에도 그들이 죽어서 미국의 후손들이 일단은 잘 사는 모델을 보여주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예수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죽어져야 하는 거예요. 말씀이 있으면 주변의 악과 전 세계에 대한 심판을 볼 수가 있어요. ★주변의 악을 보면서 그래서 나도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천대의 복을 가져오는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도 자신에게 적용하고 해석을 못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이 고향을 떠나지를 못하는 거예요. 제가 애통 절통해서 대구와 광주에 교회를 세웠는데 이걸 못 알아듣는 거예요. 아담이 타락한 후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역사적 사명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도 경외하는 것도 사실은 너무 어렵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멀리하고, 무시하는 게 세상에선 제일 쉬운 거예요. 반대가 제일 적은 길이고, 인정받기 제일 쉬운 길이에요. 그러니 하나님도도 아니고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기란 정말로 세상에서 미움과 따돌림을 받을 각오를 해야만 따를 수 있는 길이에요.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좁고 험한 길이에요. 그래서 성도의 삶은 어렵고, 힘들어요. 사명의 길은 십자가 길이에요.
예수님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에게 오늘 버림을 받잖아요. 전부 조사해 본 후에... 몰라서가 아니에요. 나하고 복음이 틀리는구나.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잖아요. 끊임없이 그러니까 갈등이 되는 거예요. ★사명 따라가지만, 오해와 배신과 반역을 당하고 박해와 공격을 받으면 사람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사탄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여기까지라고!! 이젠 더 이상 안 된다고!! 지금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제는 멈춰도 된다고!! 이혼을 해도 돼!! 너 죽어도 돼!!' 이러는 거예요. 우리를 자기숭배의 함정으로 자꾸 끌어 내리는 거예요. 다른 거 다 떠나서 이 자살을 방조하는 건 최고의 악이에요. 이제 '이쯤에서 끝내!!'라는 거예요. 그게 다 한 가지가 열가지인 거예요.
요새 우리가 누가복음을 묵상하고 있잖아요. 이제 우리 주님이 갈릴리 사역을 마무리하시고 곧 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시는데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본 것처럼 우리 주님은 그 여정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확실히 아세요. 그 종점이 십자가 고난과 죽음임을 분명히 아세요.
(그래서 내가 우리 사역자들 보고 '다들 앞으로 변하겠는가? 목사님들이 다 변하겠는가?' 그랬더니 '목사님이 승천하면 변할 것 같다.'라고 이렇게^^ 제가 승천해야 될 것 같아요.ㅎㅎ )
그리고 여정을 시작하시자마자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배척받으시고, 제자들 여전히 속 썩이고, 유대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주님을 죽일 듯 미워하잖아요. 그런데도 우리 주님이 그 길을 포기하십니까? 우리 주님은 끝까지 가세요. 왜죠?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끝까지 완주하시는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끝까지 십자가를 지시는 거예요. 죽기까지 복종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있어요. 여호와만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함께 예배드리며 말씀 앞에 있습니다! 주님 한 분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결과 우리가 천 대까지에 이르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엄청난 구원의 권능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서 각자에게 맡겨진 그 자리에서 여호와도 경외하는 게 아니라 여호와만을 경외하는 순종 하나를 한다면 그것이 곧 우리 자자손손 천대까지 이르는 은혜의 시작인 줄 믿습니다! 우리 오늘 구체적으로 말씀대로 하나 한 순종 때문에 하나님은 복을 주세요. 우리의 어떤 손가락 같은 그 정말 미미한 순종도 헛되지 않아요!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적용일지라도 쓸모없지 않아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작은 적용 하나가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자자손손 후손들을 살리는 천대의 은혜의 시작인 줄 믿습니다!
어저께 누가복음 큐티 말씀에는 영접지 않은 이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그게 그 식구들을 끊어버리라는 거예요? 여러분, 내 식구 중에 안 믿으면은 끊습니까? 사랑하니까 눈물로! 사랑의 마음으로! 마음을 굳게 먹고 경고를 할 때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자적으로 성경을 보면 안 되는 거예요. 이번 한 주 날마다 말씀대로 작은 순종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이 엄청난 은혜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아직 끊지 못하는 집안의 풍속은 무엇이에요?가족의 연약한 모습을 보며 그들을 비난합니까, 내 죄악을 보며 회개합니까? 여호와만을 경외하며 이번 주 적용해야 할 한 가지 순종은 무엇입니까?
예전에 남편을 천국에 보내신 한 집사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그분이 강남에 그냥 랄랄랄라~ 하는 거기에 40평 사무실을 사용하라고 주셨다면서 저에게 대신 큐티선교회 사무실로 쓰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집사님은 뭐 먹고 살 거예요?' 했더니 자신을 그 선교회 간사로 써달라고 그러셨어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흥분된다면서 빨리 결정을 해달라고 하셨어요. 선교회를 이제 막 시작하는 입장에 있는 저로서는 그런 제의가 들어왔을 때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을 주신다니 솔깃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의 일은 그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까 기도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나서 이제 말씀을 보니까 출애굽기 8장 26절 27절에 바로가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고 하는데 모세가 '그리함은 불가하나이다'라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고 나서 저는 그 집사님의 제의를 아무래도 받아들일 수 없겠다고 이렇게 전화를 했어요.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은 간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안 해보던 일이라 금세 힘들어질 수 있어요. 우선은 자원봉사로 섬기시면서 은사를 발견하시고, 집사님도 기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이 된다고 생각될 때 감당하시는 것이 좋겠어요. 그리고 조카가 그 집사님의 생계를 위해 사무실을 내어준 것이지 믿음으로 헌신한 것이 아니잖아요. 지금은 그래서 섣불리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씀도 드렸어요. 저는 바로가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고 했을 때 모세가 '그리함은 불가하니다'라고 말한 것을 가지고 위와 같이 그 사무실을 사용하지 못하겠다는 데 적용을 했어요.
여러분, 언제나 문자적으로만 적용하라는 것은 아니에요. 무슨 뜻인지 잘 모를 때는 우선 나에게 손해가 오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적용을 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때가 많아요. 본문 해석은 혹시 처음에 그 뜻을 잘못 안 경우에도 나중에라도 성령님이 꼭 가르쳐 주시니까. 일단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그렇게 내 자신의 유익을 내려놓고. 그래서 이렇게 말씀으로 염려하지 말고... 인도함을 말씀으로 받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사소한 것 같지만 진짜 하나님께 물어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매사를 이렇게 하나님이 잘 가르쳐주시니까 제가 어떻게 말씀을 읽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도 처음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해 봐야 한다고 말하죠. 여기서 기도해 봐야겠다는 것은 말씀 묵상과 함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야겠다는 의미예요. ★모세는 자기는 혀가 둔하다고 했어요. 즉, 할례받지 못한 혀이기 때문에 자기는 영적 실력이 부족하다고 인정을 했어요. 그러니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아론을 붙여주셔서 힘과 능력을 주심으로써 그들이 애굽에서 백성을 인도해낼 수 있었던 것처럼 ... 저는 이렇게 날마다 모르겠어요. 내가 말씀을 가르치면은 제가 신이에요? 그래서 저는 저는 진짜 잘 모르겠어요. 나는 갈 길 모르니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기 같이 모르니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맨날 형편없는 인생임을 고백하니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생생하게 말씀을 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지금까지 이 사역을 감당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그분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소식이 없으셔요.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가 받았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이 생각을 후에 하는 거죠. 후에는 알리라.^^ 근데 사실 그런 일이 많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 이거 옛날에 적용한 것들을 큐티선교회 분들은 기억을 하실 거예요.
★그래서 여호와만 경외하지 않고 여호와도 경외하는 것은 항상 끝에 돈의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걸 내려놔야 되는 거예요. 영혼구원의 일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이거를 그냥 제가 무슨 뭐 경영학을 공부했어요? 뭘 했어요? 근데 이렇게 말씀으로 인도함 받고.. 오늘 말씀과 규례와 법도를 너에게 주겠다! 근데 자꾸 매너리즘에 빠져서.. 여호와도 경외하면서~ 자기 숭배의 함정을 이기지 못하고~ 다 흘러 떠내려가잖아요~~ 그죠? --
[적용] 날마다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여호와만 경외하는 것임을 믿으십니까?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말씀 묵상을 하고, 기도하면서 결정하는 것이 응답임을 믿으십니까?
기도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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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국 백성 자녀의 자존감으로 회복하고 부모님께 작은 감사하다는 표현 하기
2.매일 큐티 제목 적고, 약속의 말씀 읽고 묵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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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큐티를 통해 자기 숭배의 현주소를 날마다 찾기를
2. 나의 행위와 가족구원을 연결짓는 불안과 불신앙에서 하루하루 내 죄 보고 가면서, 당신이 옳다고 인지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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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숭배의 함정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인 큐티 잘 붙들고 한 주 살아갈 수 있도록
2. 회사에 여러 일들이 많이 있는데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도록
3. 주님의 기가 막힌 사랑을 감사하는 한 주 보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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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님만이 (나우상) 함정에서 탈출할 길이라는 것을 알고 하루 큐티로 참 자유 얻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