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열왕기하 17:19-28)
코로나 시대의 상징이었던 재택근무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다.
일할때의 긴장감을 집에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삶도 그렇다.
코람데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옷깃을 여미게 된다.
재택신앙이라는 것도 없다.
하나님앞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1. 자기 죄를 보는 사람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유다만 남았다.
하지만 남유다도 하나님께서 쫓아내셨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북이스라엘은 악하고 남유다는 착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원은 인과응보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뜻이다.
공의와 사랑이 합쳐진 생명이다.
남유다가 잘한게 없다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주님은 남유다도 이러한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에,
온 족속을 버리시고 하나님앞에서 쫓아내셨다고 하셨다.
사실 그러니까 회개할 유예기간을 147년 가량 주셨다.
그러나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을 반면교사 삼지 않고,
남유다도 망하게 되었다.
남유다가 망한게 누구탓일까? 남유다 자신의 탓이다.
하나님은 솔로몬때 여로보암에게 주신 말씀을 상기하고 있다.
여로보암이 솔로몬의 신하였다.
새옷을 열두조각을 찢어 그중 열조각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하게한 여로보암을 시작시킨 왕이 솔로몬 왕이다.
솔로몬왕의 타락 때문에 이스라엘이 두 나라( 북이스라엘 , 남유다 ) 로 쪼개졌다.
멸망을 가져온 북이스라엘을 욕하고 탓해서는 안된다.
왜냐면 남유다도 악하기 때문이다.
원죄가 솔로몬에 있고 다윗에게 있고 유다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까?
믿음이 좋은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다.
신자중에는 믿음이 1이라도 있는 사람이 잘못 한 것이다.
다른것 다 떠나서 이승만 대통령이 예수님를 믿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우리나라가 잘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찢어 빼앗으셨다.
믿음으로 우리는 회개할거 밖에 없다.
진정한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는 심사숙고 하고 기다리고 기다리셨다.
사마리아 땅에서 유다 땅에서 이주되고, 자기들의 정체성을 잃는것보다 더 슬픈것은
하나님앞에서 제하심을 당하고 쫒김을 당하는 것이다.
사울과 솔로몬의 공통점은 시작은 좋으나 끝은 망했다.
인간은 담쟁이 덩쿨 같아서 뭔가를 의지 해야 한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을 16억명이 보았다.
인간의 악을 건드리면 그렇게 히트를 친다.
돈앞에서는 아무도 믿으면 안된다는것을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결국 사람은 믿으면 안되는 것이다.
사람은 죄인이다.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면 죽든지 죽이던지 다 같이 가던지 한다.
공산주의 전제주의 이론이다.
칼 막스 그런 이론이 다 사도행전 2장에서 나왔다고 한다.
스탈린도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평등을 문자적으로 가져온 공산주의 이론도 성경에서 가져왔다.
사람은 기대하지 않고 사랑해야 하는데 기대할것이 없다 하면 다 죽인다.
김일성 어머니 강반석이 장로교 목사 딸이다.
그리고 그녀는 세 아이를 두고 재혼했다.
재혼한 그녀 이야기 쏙 빼고 , 그 엄마를 항의의 투쟁가로 소개하고 있다.
기독교 선교사인 그 집이 북한이다.
456번 한사람의 권세를 위해 제물을 위해 성경의 위력을 아니까,
북한에서는 성경을 가지고 있어도 총살을 당한다.
그러니 믿었다고 똑같은 예수님이 아니다.
이렇게 악용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죄를 보지 않는다.
그렇게되면 다른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자기죄를 인정하지 않는것과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똑같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말씀을 듣는 사람이고,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떠났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이 아픋고 인정하는 사람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고,
내가 문제라는 걸 아는 사람이 문제가 없는 사람이다.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작품을 쓰면 문화나 예술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하나님쪽에는 사람들이 별로 서지 않는다.
왜그런가? 우리의 구원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받아드려지는 것이 믿음이다.
내 힘으로 살려고 하고 구원 받으려고 하면
내게 죄가 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내가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지하고 죽임당할 수 밖에 없을을 꺠달아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찾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의 거울과 같다.
하나님의 거울에 서면 우리의 실체가 다 드러난다.
그 거울이 싫어서 거울을 떠나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앞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이다.
적용질문1.
'당신 때문에 내게도 피해가 생기게 되었다'며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사건이 올 때 부부 , 자녀 , 회사 , 목장에서 무조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까?
말씀으로 내 죄가 드러날 떄 더 자세히 내 죄를 보려 합니까? 회피합니까?
우리 교회는 내 죄를 보게 하기때문에 성도들이 짜증난다고 한다.
우리 옆에 김일성 정권을 붙여주셨는데 그들은 자신의 죄들을 보지 못한다.
금세 옳고 그름이 드러나는게 아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죄를 행하며 떠나지 아니했다.
한번도 여로보암의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고자 하는 종교적인 개혁을 한 적이 없다.
모세때 레위기에서 주구장창 말씀하셨다.
온갖 사건과 징계를 당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대항하면
그 민족을 하나님께서 흩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무시한다.
그러나 그 경고의 말씀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무시하다가 쫒겨났다.
그들의 고향에서 내 쫒겼다.
가본적 없는 나라 , 앗수르로 가게 되었다.
앗수르왕의 명령으로 , 북이스라엘 영토를 차지한다.
앗수르에서는 발 붙이고 살 수 없는 병자들 하층민들을 모아서 보냈다.
이스라엘도 아니고 사마리아이다.
그 땅의 역사와 정체성이 사라졌다.
나라에서 몇십만원 거져준다고 해도 좋은데, 따블이었다.
사마리아땅의 주인인 그들은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앗수르 사람들이 왔는데 사자가 나타났다.
(LION)
이건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다.
성경에서는 사자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두번 나온다.
선지자의 말을 무시한 사람을 사자가 죽였다.
사자의 공격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있게 한다.
법을 알지 못했지만 , 누구의 법인지 몰랐다.
우상들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몰랐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다가 땅을 빼았겼다.
앗수르 이주민은 땅을 차지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재난을 경험했다.
우리에게는 땅을 차지했냐 , 뺴앗겼느냐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느냐 인 것이다.
영원한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달려갈때 , 두려움과 고통을 겪어도 안전할 수 있다.
하나님앞에 머물때 요동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 달려가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 없으면 안되고 , 하나님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사랑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이 두려워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떠날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고난이 왔을때 하나님을 떠날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다.
내게 재물이 많아질때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날까봐 두려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만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두려움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시킨다.
두려움이 생길때 마다 내가 하나님앞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돌아봐야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멸망이 아닌 구원입니다.
오늘 두려운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과의 거리가 얼마나 멀어졌는지 보세요.
땅을 차지하고 뻇기고가 문제가 아니다.
승진이 됬고 안됬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적용질문.2
잃어버려서 또는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반대로 차지해서 좋아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달려가고 싶습니까, 도망하고 싶습니까?
3.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사자습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앗수르의 조치,
사마리아 포로 제사장이 고향 밷엘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일하던 제사장이다.
다시 벧엘에 살면서 앗수르에서 이주한 사람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가르친다.
급하게 모세오경을 가져와서 그럴듯하게 가르쳤을 수도 있다.
평생 금송아지를 섬겼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알까?->아니다.
그래서 밷엘의 제사장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 없는 것이다.
이때부터 750년이 지난 어느날 우물가에서 여인이 물을 긷고 있다.
서로 상종을 하지 않는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이다.
성경에 나온거니까, 지역 감정 , 전라도 경상도 하나되라고.
사마리아인들을 유대인이 무시했다.
이 여인이 유대인 남자보고 자신에게 물을달라고 하는지 물어봤다.
복잡한 자신의 과거사를 다 아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워했다.
사마리아땅에서 예배해야 진짜 예배라는것을 배우며 살았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아닌 그 땅 신을 섬기고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개인적인 신앙일까? 아니다.
사마리아 인들의 신앙이 그렇게 잘못된 것이다.
그런 잘못된 신앙의 씨앗이 뿌려진 결과.
우리의 죄는 이렇게 오래갈 수 있다.
하나님앞에 드리는 참된 예배는 무엇이냐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이다.
말씀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다 무너진 인생이라도 성경을 교과서 삼아 하나님앞에 나아갈때,
거룩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앞에 나아가길 부끄러워한다면,
아직 그 땅의 신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이 여인을 방문해주셔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자로 세워주셨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와보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주님을 만나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성령이 스승이 되실때 누구나 하나님앞에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저는 도저히 하나님앞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모든 봉사와 섬김에서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고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이다.
힘들때가 성령하나님을 스승삼아 의지해야할 때이다.
성경말씀을 펴보세요 , 거기에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적용질문.3
문제를 당장 해결해 줄 것 같은 쉬운 방법 찾는 일은 없습니까?
내가 예배 때 따지는 조건이나 상황은 무엇입니까?
영과 진리로 더 힘을 내야 할 일과 힘을 빼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면 삶에서 적용해야 합니다.
[기도제목]
a.덜먹고 다치지 않고 운동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매일 큐티&매일 기도 할 수 있도록.
헤어졌던 여자친구를 위해 매일 기도할 수 있도록.
b.큐페 준비 차질없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이번주 대표기도 떨지않고 잘 할수있도록, 신교제 할 수 있도록.
c.조금 더 일찍, 푹 자고 일어날 수 있도록, 몸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이번주 주일에 교회갈 수 있도록.
d.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몸이 피곤하고 짜증이나도 잘 참고 지금 배우는 일에 집중해서 더 노력할 수 있도록.
e.정신과 갈 마음 하나님께서 주시길 기도 부탁합니다.부서 안섬겨도 현장예배 드릴 수 있도록, 목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