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일 말씀
2025.01.12 주일예배 열왕기하 16:10~20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저는 그제 여수에서 통합측의 교사 수련회를 1박2일 인도하고 오늘 광주로 왔습니다. 참으로 말씀 묵상 운동에서 교사들이 구속사로 학생들을 인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고, 광주가 되고, 호남이 되고 우리나라 전체가 되길 바랍니다.
다윗과 같지 아니한 아하스 이야기가 지난주에 이어서 기록이 됩니다. 아하스는 다윗과 같지 아니했습니다. 영적 질서를 비틀었습니다. 그러니 이기지 못하고 빼앗깁니다. 참으로 해석이 아닌 해결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유다왕들은 정직히는 행하였으나 다 산당을 폐하지 못하였더라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정직히 행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리더쉽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하스는 산당 예배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산당을 폐하지 못하는게 반복적으로 내려오니 무뎌져 악의 평범성으로 이제는 죄라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죄가 무뎌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악을 행하는 아하스의 이야기를 역대하도, 열하기도 자세히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는 악의 평범성을 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8절에 앗수르 왕을 두려워 하는 아하스의 모습을 거울 삼아 세상왕을 두려워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자 합니다.
1.그 제단을 들여옵니다.
10~11절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뇌물을 바치며 부탁을 합니다. 앗수르왕은 이때다 하며 아람을 공격해 멸망 시킵니다. 아하스 왕에서는 골칫덩이가 없어지니 앗수르 왕에게 감사인사하러 다메섹에 갑니다. 다메섹에서 아하스의 눈을 사로 잡은게 있으니 바로 제단입니다. 다메섹의 진영 안에는 앗수르의 우상에게 절하려 사용되는 화려한 제단이 있었고, 이를 보고 아하스의 입이 떡 벌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산당과 제단과는 비교가 안되는 제단이었습니다. 완전히 마음을 빼았깁니다. 너무 그 제단이 탐이 납니다. 아 이래서 앗수르가 가는 곳 마다 이기는 구나 합니다. 아하스는 열등감으로 최고병에 걸린 사람이기에 어딜가나 최고만 보면 사족을 못씁니다. 그렇게 아하스는 그 제단의 장식과 재료, 구조를 다 기록합니다. 그리고 미리 파발을 통해 보내며 진짜 같은 복사품을 당장 만들라고 제사장 우리야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야는 왕의 말대로 제단을 만듭니다. 여호와의 제사장인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명대로 제단을 만든 것입니다. 너무 이상합니다. 왕의 지시를 직접 받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대 제사장이었던 우리야가 이 제단이 우상의 제단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왕이 시키는 대로 모두 행합니다. 이사야 8장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야를 진실한 증인이라고 하시는데, 이 제단 만든 우리야와 동명이인 일까요? 같은 사람일거 같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전 평온할 때, 우리야는 너무나 진실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겪고, 나라가 앗수르에게 굴복하게 될거 같으니, 진실함을 잊고, 자기 목숨을 부지 하는게 인생의 목적이 됩니다. 평온할때는 다 순종 할 수 있습니다.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하는지 보아야 합니다.
12~13절
동사가 연이어 나옵니다. 돌아와 보고 나아가 드리고, 불사르고, 붓고 뿌리고, 합니다. 아하스는 왔노라, 보았노라, 제사를 드렸노라 합니다. 제단이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이것 때문에 이겼다 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방법을 보고 내가 저대로 하면 이기겠다 하면 다른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보다 지혜는 없습니다. 이 말을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서는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아하스는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장을 통해서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정성이 하늘을 찌릅니다. 진실한 증인이라는 별명의 우리야이지만, 제단을 만드는 순간 이미 아하스와 한편이 된 것입니다. 편안할 때와 위기 때, 모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쌓던 것을 보게 됩니다. 아하스는 다윗의 길로 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크고 높고, 좋은것만 사모 합니다. 이것이 북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섬기는 것이고, 산당제사를 폐하지 않고, 어디서나 모두가 산당에서 편하게 예배를 드리게 합니다. 인권이 왕노릇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앗수르의 제단을 가지고, 저런 제사를 드리고 싶다 합니다. 이 마음에는 나도 앗수르 왕처럼 되고 싶다 하는 것입니다. 쌓아온 욕심이 폭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앗수르의 제단을 들여오고, 우상을 들여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앗수르의 제단과 우상을 가져오고 싶어 합니다. 학벌, 돈 등을 가져오고 싶어 합니다. 지금은 우리 집 밖에 있는 제단을 우리집 안 으로 들여오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왕 앗수르를 두려워 하는 모습입니다.
성공적인 입시, 입사, 건강을 위한 명상법등 기도와 묵상의 목표가 세상 성공이라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아야할 진정한 제단은 예수님이 자신을 드리신 제단 바로 십자가 입니다. 우리안에 가득한 세상 두려움과 욕심을 말씀으로 꺾는 것이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가 여전한 방식으로 날마다 보아야 할 제단 입니다. 십자가를 길로 놓을 때, 세상 두려움이 없어질 줄 믿습니다.
-내 삶에, 내 집에 들여오고 싶은 크고 화려한 그 제단은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진실하게 '안돼' 해야 할 요청이나 부탁은 무엇입니까?
-내 욕심을 꺾고 십자가를 길로 놓고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2. 여호와의 앞 자기 자리를 옮깁니다.
14절
예루살렘 성전에는 앗수르 제단의 복제품 새 제단이 생깁니다. 여호와의 앞 곧 성전앞에 있던 놋 제단을 다시 보니 너무 찌질해 보입니다. 만들어진 230년이 지났으니 얼마나 낡았겠습니까? 더구나 옆에 세련된 앗수르 제단이 있으니 더 비교가 됩니다. 그래서 아하사는 놋 제단을 여호와의 앞 자기 자리에서 치워버립니다. 동쪽에 있을 제단을 북쪽에 두었다는 것은 옆으로 치웠다는 것입니다. 버릴 수는 없는 계륵같은 존재가 되버린 것입니다. 거룩한 성물인데, 치운 것입니다. 구속사가 좋긴 하지만 당장 잘 된다고 하니 버리지는 않고, 슬그머니 십자가를 치우는 것입니다.
15~16절
놋 제단을 버리지는 못합니다. 모든 번제물,소제물,전제물을 불사릅니다. 하나님께 한번도 제사를 드리지 않은 아하스인데, 앗수르 제단이 생기니 하루 종일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그동안 예배를 드리지 못한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안드린 것입니다. 이 모든 제사를 누가 드리나요? 제사장 우리야가 드립니다. 놋 제단을 원래 자리에서 옮기고, 세 제단으로 드리라고 하니, 아하스도 드리지만 우리야도 거절을 못하는 것입니다. 안드리는 것 보다는 낫자나 하며 타협을 하고 서로 드립니다. 제사장이 말려야 하는데, 말씀대로 만든 성전이고, 놋제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 말씀을 어기고 질서를 비틀었는데, 아하스 앞에서 우리야는 아무 말도 못하고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많습니다. 아닌 걸 알면서도 말을 못합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없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입니다. 스가랴는 불같은 말을 해서 요아스에게 돌로 쳐 죽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적용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세상 권력을 무서워 하기 때문입니다.
웃시야가 나병에 걸린 것은 지나고 보면 얼마나 축복인지 알게 됩니다. 14년 나병속에서 회개하고 가지 않았을까요? 아하스는 즉시 징계가 없으니 죄를 행하기에 담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계속 심판을 하시지만 본인이 못알아 듣습니다.
아무리 새벽기도, 철야기도를 드려도 십자가를 옮겨놓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과정에서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결론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잘 물어야 잘 듣고, 잘 들어야 잘 물을 수 있습니다.
17절
물두멍의 자리는 성전 양옆입니다. 5개씩 10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받침에서 물두멍만 다른데 두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씻기위해 필요한 것인데, 이를 옮깁니다. 이는 손과 발을 씻을 필요 없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놋 바다는 제사장들의 몸을 씻는 큰 그릇인데, 이를 또 놋소 받침위에서 내려다 바닥에 둔 것입니다. 이 기물들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것이고, 이들을 대표해 몸을 씻으며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 나아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뜻을 담으셔서 거기 두신 것인데, 아하스가 다 옮기고 떼어내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 질서를 비트는 것이 여기서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왜 이럴까요? 제단 하나 바꿨을 뿐인데, 평소 안드리던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200년 넘게 자기 자리에 있던 기물을 다 옮길까? 앗수르 왕에게 잘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이고, 제사장도 한때 진실한 증인이라는 우리야 인데, 방식도 옛날 방식 그대로인데, 아하스는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 왕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고, 앗수르 왕은 아하스가 자신을 신뢰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람의 목적이 성공이면 인본적이고, 인권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도 재벌 총수가 돼지에게 제사지내면 저래서 재벌이 되었구나 하며 따라하는 것입니다. 인본적인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보다 더 위험 합니다. 내 열심이 누구를 위한 열심인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했다면 하나님 앞의 자기 자리를 지켰을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두려운게 많으니 세상을 기준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옮긴다면 세상을 경배 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를 떠나고 싶고, 내가 떠나기 싫으니 그들의 자리를 옮기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남편과 아내라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리입니다. 우리가 옮길 수 없습니다. 이 절대 복음을 한국교회가 다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불러 주신 사명의 자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격이나 조건으로 따지면 우리가 설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안들거나, 내 자신이 부족해 보이거나 하더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모든 사역과 섬김의 자리에 여러분을 불러 세우신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옮기실 때 까지 내가 스스로 옮기면 안됩니다. 옮기실 때 까지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자리를 잘 지키며 사명 잘 감당 하시길 바랍니다.
-올해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사명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옮기려고 하는 자리는 없습니까?
-그 자리를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지키겠습니까?
3.주일 성수를 포기합니다.
18절
아하스가 성전에서 옮김게 또있습니다. 두개의 낭실을 옮깁니다. 이는 사람들과 왕의 통로입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이르는 특별한 통로인데, 이를 떼어낸 것입니다. 왜인가요? 앗수를 왕을 두려워하여 때냈다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앗수르 왕 눈치를 보며 옮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면 자유가 올 것 같지만 하나님을 떠나 멀리가면 세상왕 앗수르의 눈치를 보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목표삼아 결혼하면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잘보여야 하고, 행복이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건강하게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또 목장이라는 싸울 장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가 가정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세상의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주일 날 예배간다고 되는거 있어? 하면서 성전으로 나가는 길을, 주일 성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고 하루 쉬셨기에 우리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루동안 하나님을 생각하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6일동안 열심히 하던, 이세상왕을 두려워하며 살던 삶을 잠깐 멈추고,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지난 6일 동안 두려워하던 앗수르 왕이 누구인지 생각하고, 두려워하던 내 모습을 회개 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일입니다. 성전으로 나아가는 길을 잘 지켜야 합니다. 큐티, 목장예배 공예배가 그렇습니다. 이것이 성전과 이어지게 하는 낭실인 것입니다.
휘문과 판교에서 일어 났던 채움의 역사가 광주와 대구 채플에서도 여전한 방식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주일 성수하시고, 사명 성수 하시고, 구원을 성수 하시길 바랍니다. 휘문과 판교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님들도, 주일 성수 하시고, 가정 성수 하시며 한 영혼 한 가정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시길 축복 합니다.
19~20절
역대하에는 아하스의 묘를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 않고, 이스라엘에 장사 했다고 합니다. 묘실에 들어가지 못한 왕들은 선지자들을 죽인 죄를 짓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하스가 너무나 바쁘게, 그리고 앗수르왕을 섬기며 아들에게는 치워야할 쓰레기를 가득 남기고 간 것입니다. 아하스는 곤고할 때,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아하스는 옆에 있던 모든 나라와 싸우며 삽니다. 암몬, 에돔, 블레셋, 북이스라엘 등 사람만 있으면 싸웁니다. 북 이스라엘을 압도하는 악한 남유다 이지만 이 악한 아하스 왕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 임할 임마누엘 메시아의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 악한 왕을 이어 이스라엘 최고의 성군 히스기야가 왕이 됩니다.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살아 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하스가 정말 악하지만 다윗 왕조는 이어지며 이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열심으로 깨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남유다는 끝까지 하나님의 택자입니다. 어떤 경우도 우리의 행위를 통해 구원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무 악한 왕임에도 다윗왕조는 이어 집니다.
-주일성수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까?
-성전을 향한 낭실 중, 예배, 큐티, 목장,나눔, 양육등 여러 이유로 슬쩍 옮겨 세운 것은 없습니까?
-우리 집안도 너희 집안도 도무지 앞이 안보이지만,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집도 구원해 가실 것을 믿습니까?
2. 목장 참석 인원 & 장소
: 목자, 부목자, 목원(총 3명)/ 파리크라상 삼성역점
3. 기도제목
A.
1. 기복의 화려한 제단을 들여오지 않도록
2. 건강 지켜주시길
3. 신교제와 신결혼
B.
1.공부하는 가운데 체력과 건강 붙들어주시길
2.진정으로 붙회떨감을 고백할 수 있도록
3.아빠를 정죄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