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2 주일말씀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열왕기하 16:10-20
김양재 목사님
1.그 제단을 들여옵니다
아하스는 열등감으로 최고병에 걸린 사람이라 그 제단의 모양과 구조를 자세히 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도면을 보냈습니다. 자기가 도착하기 전 당장 만들라고 하니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제단을 만듭니다. 우리야는 여호와는 빛이시다라는 의미이고,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에 제사장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야는 이 제단이 우상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진실한 제사장이 이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자기 맡은 일을 다 진실하게 합니다. 돈이 있을 때에도 부부간에 진실하게 행합니다. 그런데 앗수르에게 굴복해야 할 때가 되니, 아하스의 악이 계속 쌓여가니 진실함도 사명도 잃고 자기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됩니다. 인간적인 진실함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진실한 관계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사람이 진실로 이타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환경앞에 장사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진실한 관계는 없습니다. 우리는 변명할 거리가 없습니다.
산당제사만 부르짖습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가져옵니다. ㅣ
적용질문
내 삶에, 내 집에 들여오고 싶은 크고 화려한 그 제단은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진실하게 ' 안돼' 해야 할 요청이나 부탁은 무엇입니까?
내 욕심을 꺾고 십자가를 길로 놓고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2.2. 여호와의 앞 자기 자리를 옮깁니다.
(14절) 새로운 제단이 생겨 제사를 드리고 나니 아하스 왕은 만족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니 여호와 앞의 놋제단이 낡아보이는 것입니다. 아하스는 놋제단을 옮겨버렸습니다. 옆으로 슬쩍 치워두었다는 것입니다.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교회는 가는 것입니다. 큐티를 하기는 싫고 큐티를 남주자니 벌 받을 것 같고 그런 것입니다.
아람이 쳐들어왔다면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저 어떻게 하면 이길까만 생각합니다. 말로는 십자가 이야기를 하면서도 슬쩍 치워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앗수르의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15-16절)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의 말을 그대로 따릅니다. 앗수르식 제단이 생기니 하루종일 제사를 드립니다. 즉 하나님께 제사를 못드렸던 것이 아니라 안드렸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우리야가 이 제사를 모두 드립니다. 놋제단을 옮기고 그 자리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해도 거절을 못하고 그대로 합니다. 타협을 합니다. 산당을 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폐하지 않는 것입니다. 괜찮아 하며 인본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17절) 물두멍의 자리는 성전 양 옆입니다. 이 받침에서 물두멍을 떼어 다른 곳에 두었다고 합니다. 제사장은 성전에 들어가기 전 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어야(회개) 했는데, 그것을 옮겼습니다. 열두개 놋 소는 열두지파를 뜻하는 것이고, 거룩한 마음으로 대표하여 나아가는 것인데, 놋 소에서 놋바다를 떼어내고 바닥에 두는 것입니다. 아하스는 영적 질서를 열심히 비틀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앗수르 왕에게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더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든 많이든 자리를 옮깁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주시는 언약의 관계입니다. 결혼 전에는 이 사람이다 했던 사람이어도 결혼 후에는 이 사람이 아닌가봐 하며 자리를 옮기는 것입니다. 내가 있는 자리를 떠나고 싶고, 반대로 내 남편과 아내의 자리를 옮겨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싫어도 정해진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자리를 우리가 옮길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불러주신 사명의 자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모든 것을 가장 정확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서 지금 그 자리에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모든 사역과 섬김의 자리에 우리를 불러 세우신 분은 앗수르 왕이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있는 그 자리에 잘 서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 올해 하나님이 나를 세우신 사명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 옮기려고 하는 자리는 없습니까?
# 그 자리를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지키겠습니까?
3. 주일성수를 포기합니다.
(18절) 모든 일이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하스가 두개의 낭실을 성전에서 떼어 옮깁니다. 안식일에 쓰기 위한 낭실, 왕 전용 통로의 낭실 이 두가지를 옮겼다고 합니다. 성전으로부터 떼어냈다고 합니다. 앗수르 왕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을 무시하는데, 멀리 가고자 했지만 세상 왕 앗수르 눈치만 보게 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쉬셨기 때문에 우리도 일주일에 하루 쉬면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또 애굽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감사함을 기억하며 증인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6일동안 마음대로 살다가 내려놓고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함께 모여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내가 두려워하던 앗수르 왕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며 나누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는 날이 바로 주일인 것입니다.
주일은 성도에게 생명유지장치와 같기에 말씀 큐티 나눔 목장 모두가 우리를 성전과 연결하는 낭실인 것입니다.
휘문과 판교에서 이루어진 은혜의 역사가 대구와 광주 채플에도 임하길, 구원을 성수하시길 기도합니다.
(19-20절) 유대의 악한 왕들은 모두 선지자들을 죽이거나 한 자였습니다. 아하스는 16년 왕으로 살다 죽었습니다. 아들인 히스기야에게 치워야 할 엄청난 것들을 두고 갔습니다. 아하스는 곤고할 때 더욱 범죄하고 우상을 섬겼다고 합니다. 북이스라엘은 다음주에 망하지만 마지막에 유다를 도와주고 끝이 납니다. 도리어 남유다의 아하스는 모든 나라와 싸우며 살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압도하는 악한 아하스, 이 악한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시고 그 아들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행동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남유다에 예수님이 오셔야 하기에, 지금 아하스와 같이 나쁜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셔도 내가 오늘 예수 믿었다면 능히 이기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택자라면 하나님은 신실하게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행위로 따지고 분별하지 말고, 아하스 아래에 히스기야가 오는 것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희망을 갖길 바랍니다.
# 주일 성수를 얼마나 철저하게 하고 있습니까?
# 성전을 향한 낭실 중 예배, 큐티, 목장, 나눔, 양육 등 여러 이유로 슬쩍 옮겨 세운 것은 없습니까?
# 우리 집안도 너희 집안도 도무지 앞이 안보이지만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집도 구원해 가실 것을 믿습니까?
기도제목
A - 고등부 큐페를 참석할지 일본 교회 친구를 만날지 기도하기, 재정의 훈련을 잘 받도록, 어머니 건강 , 다이어트 할 수 있도록, 알바의 자리 잘 지키고 갈 수 있도록, 편입 잘 준비 할 수 있도록
B - 하루하루 성실히 살기, 시험준비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C - 이번주에 제조사랑 있는 미팅 때, 좋을 결과가 되며, 저랑 부회장님의 관계가 오히려 좋아지고 올해에도 제조사랑 좋은 동역일을 맺고 일할수 있도록, 제가 걱정 하는것 보다 주님께서 제일 좋을 길로 인도하시며, 그 근심 걱정 보다 큰 하나님의 섭리가 임하고 주님의 사랑은 경험 할수 있도록 이번주 토요일에 부산에 있는 학회가 잘 되며 통해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며 좋은 결과
D -취업준비 기간 동안 공동체와 부서에 잘 붙어갈수 있도록,아르바이트 하면서 잘 붙어갈수 있도록,생활큐티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