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8일 주일설교
이영재 목사님
광야에서 길을 잃다
사무엘상 21장 1절 - 15절
1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3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하니
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7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8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9 제사장이 이르되 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싸여 에봇 뒤에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이영재 목사님>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상황에서 목장이 친구가 되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이번에 청년들을 위한 큐티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아들을 위한 위한 샛별 큐티인이 나왔습니다. 너무 감사하죠. 이제 우리 어린이들은 6세부터 9세는 샛별 큐티인 9세부터 12세까지는 어린이 큐티를 쓰시면 됩니다.
우리 4종이 아니고 6종이에요. 6종 큐티를 가지고 전도에 많이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온라인 사역 지원서 안내입니다. 각 사역 부서의 봉사자와 교육 부서의 교사로 섬기시기 원하는 분들은 22일까지 온라인 지원서를 작성하시면 됩니다.
온라인 지원서 양식은 목장 카톡방을 통해서 전달될 예정이고요. 교회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서도 받으실 수 있으십니다.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서명에 대한 안내입니다. 저희가 1027 연합예배 때 동성결혼 합법화 및 성전환 수술 없는 성별 정정 반대 서명 시간을 가졌는데요.
서명이 적어도 몇십만 명은 돼야 저희가 대통령실 대법원에 제출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미 서명하신 분들은요. 주위분들에게 많이 독려해 주시고요.
온라인은 서면으로 링크가 있습니다. 일부 예배 후에 목장을 통해 배포될 예정인데요.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면으로도 오프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예배 이후에 본당 밖으로 나가시면요. 테이블에서 서명을 하실 수 있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사역 일정 안내입니다. 우리 목사님께서는요 중남부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한인교회 설교와 또 탄자니아 THINK 목회 세미나를 인도하십니다. 중남부 아프리카의 모든 진행되는 사역 가운데 하나님이 기름 부어주시고 우리 목사님 강건하게 지켜주시고 말씀을 통해서 살아나는 역사가 있도록 은혜 주시고 기도해 주시기를 같이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위로받아야 될 분들입니다. 휘문에서 먼저 우리 한혜리 집사님 모친상이 있으셨습니다. 전희경 집사님 남편 장례가 있으셨습니다. 송미경 집사님 부친상이 있으셨습니다. 양명숙 집사님 모친상이 있으셨습니다. 김원자 집사님 모친상이 있으셨습니다.
권영미 집사님, 권경민 집사님 모친상이 있으셨습니다. 안혜영 집사님 모친상이 있으셨습니다. 고란주 집사님 부친상이 있으셨습니다.
김구현 집사님 부친상이 있으셨습니다. 한규태 집사님 모친상이 있으셨습니다. 유가족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함께 일어나시면 우리 주보를 들고 하나님 나라의 위로를 전하겠습니다.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고 영적 수사를 위해 살아가시는 우리 유가족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사랑하는 하나님 오늘도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 듣기를 소망합니다.오늘 주의 말씀 듣기 나온 모든 자들에게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듣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녕하세요.
5년 동안 우리들 교회에서 진짜 많이 사랑을 받고 잊지 못할 귀한 양육을 받고 이제 영국 맨체스터로 가게 된 이영재 목사입니다.반갑습니다. 제가 5년 전에 첫 출근을 했어요. 바로 이곳이었던 것 같아요. 이곳에 이제 첫 출근 수요일날 했는데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데 수요 예배 대신 세미나를 한다는 거예요.세미나를 한다고 하는데 주제가 아주 특별했습니다. 주제는 바로 ADHD였어요. 범상치 않죠. 저희 첫 주부터 우리들 교회 사역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강의를 했어요. ADHD 강의를 했는데 강의가 끝나고 보통 이제 세미나가 마치는데 세미나가 끝이 아닌 거예요.강의 후에 ADHD 집사님들이 직접 나오셨습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너무 재밌더라고요. 너무 재밌고 신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가족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 ADHD 집사님들 가족들이 나오시더니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아냐 내가 남편 때문에 얼마나 힘든 줄 알면 바로 옆에 있거든요. 바로 옆에 있는데 너무 재미있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전혀 예상하지 않은 전개였습니다. 마음이 좀 놀랐는데 더 신기한 거는 제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고 있더라고요.눈물을 닦고 있더라고요. 왜 그랬냐면요. 저도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제 마음들이 있었는데 이 땅에 살면서 제가 제게 잘 잊어먹어요.잘 잊어버리고 실수가 참 많은데 그런 삶이 돌아봐지면서 제 모습을 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는 첫날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저는 그렇게 실수가 많고 좌충우돌하는 사람인데 저에게는 그래도 좀 재주가 있습니다. 재주가 있는데요. 분명히 어제 왔던 길인데 다음 날 다른 방향으로 그 길에 들어오면 그 길이 전혀 새로운 장소로 보이는 거예요.저는 그 확신을 합니다. 저는 심각한 길치예요. 이런 제가 군대에 있을 때 큰 사건을 하나 치렀는데 제가 눈이 초롱초롱하다고 저희 중대장님이 저를 예쁘게 보시고 일 잘할 것 같다 속으셔서 저와 둘이서 탐방을 가셨어요.탐방을 가셨는데 저를 믿으신 거예요 저를 믿으시고 전혀 안 걷은 산에 가서 진지를 보고 왔습니다. 마음이 되게 뿌듯했어요. 중대장님이 나를 인정해 주는구나. 그렇게 이제 잠을 자고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라 소식을 들었어요.
중대장님이 저에게 부대원 전체를 데리고 산에 가라는 거예요. 시겁했어요. 시겁했습니다. 어떡하겠어요? 제가 부대원 전체를 데리고 산으로 갔습니다.
그때 제가 아직 후임보다 고참이 더 많은 시절이었어요. 고참이 한 300명 정도 되었는데 데리고 산에 올라갔어요. 산 중턱까지 잘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산 중턱에서 또 길이 새로워 보이는 거예요. 분명히 어제 왔던 길인데 전혀 새로워 보이는 거죠. 저는 300명을 데리고 산 중턱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 300명이 저를 다 바라보는데 그 고참들의 얼굴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진짜 어이없다고 보는 표정, 한심하다고 보는 표정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공포스러웠습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더라고요. 근데 여러분 저에게 또 나쁜 버릇이 하나 있는데 저는 길을 잊어버리면 무조건 뜁니다.
앞뒤 안 가리고 뛰어요. 그날도 무조건 뛰었습니다. 제 눈빛이 흔들리잖아요. 그죠? 고참들이 저를 보고서 영재야 너 혹시 길 잊어버렸니? 이렇게 물어봤는데 아닙니다 하고 제가 막 또 뛰었어요. 미친 듯이 정말 이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뛰었습니다. 그렇게 뛰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뛰었던 이유가 제가 사실은 길을 너무 잘 잊어버리니깐요. 너무 수치스러운 거예요.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이게 좀 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의미 없는 두려움으로 뛰는 뜀박질을 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길게 드린 이유는요. 오늘 본문에 이렇게 두려움 가운데 광야 가운데 뛰는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광야에서 길을 잊어버렸어요. 두려움에 사로잡혔어요. 뛰기 시작합니다. 실수를 연발해요. 안 하던 거짓말을 해요. 배고픔을 경험해요. 그리고 미친 척을 합니다. 인생의 흑역사를 끊임없이 만들어요.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들을 끊임없이 만드는 것이죠.
여러분 이 사람 누구신지 아시죠? 우리가 이름만 대면 아는 사람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 우리가 위로로 보는 사람 성경의 위대한 이인 물맷돌의 영웅 다윗이에요.
다윗에게는 이런 흑역사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저희가 존경하는 사람이 있으면요. 그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허물을 저희가 깊게 알고 싶어 하지 않아요.알고 싶어도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하죠?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집요하게 파고들어요. 생방송을 중계하듯이 하나씩 하나씩 다윗의 민낯을 보여줘요.왜 그럴까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될까요? 여러분 하나님 우리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거예요. 광야 가운데 우리가 있을 때 하나님 우리에게 찾아오고 싶으신데요. 우리가 어떻죠? 광야 가운데 있으면요.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잖아요. 아무 얘기도 듣고 싶지 않잖아요. 누가 얘기해도 듣고 싶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아시죠? 다윗의 이야기를 들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거예요.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시는 거예요. 내가 광야에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주님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늘 광야 가운데 있는 집사님들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1.생명이 떡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다윗이 제사장 아이멜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이를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내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말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정곡을 찌르는 말에 다윗이 어떻게 하죠? 거짓말합니다. 거짓말로 이 시간들을 지나와요. 다윗이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죠? 다윗이 무너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의 경고함들이 깨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광야는 이런 곳입니다. 광야는 이런 곳이에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나의 민낯들을 보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말씀을 보면서 저는 이제 어떤 생각을 했냐면 왜 굳이 이렇게 자세하게 써놓으셨을까 다윗의 민낯을 왜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써놓으셨을까 그런 생각을 먼저 묵상하면서 제일 먼저 했어요.
그런데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 어떠신지 모르겠는데 저는 하나님이 다윗의 흑역사를 드러내시긴 하는데 혼내지는 않으시는 것 같은 거예요.
여러분 그런 거 있잖아요. 그 말하는 사람의 진짜 의도는 그 사람의 통과 뉘앙스를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정말 무서운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고 웃으면서 얘기하면 그 이야기는 혼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저는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이 꼭 그런 것 같은 거예요.
하나님이 다윗의 흑역사를 계속해서 얘기하기는 하시는데 혼내지는 않으시는 것 같은 거예요. 오히려 다윗의 넘어짐을 광야에서의 실수를 그대로 안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내 생각일 수 있잖아요. 그래서 계속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때 6절 말씀이 들어왔어요. 6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는데요. 이 말씀은 함께 읽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낸 떡밖에 없었으니라.이 떡은 더운 떡을 들이는 날에 물려낸 것이니라. 다윗이 너무 배가 고프다고 하니깐 줄 수 없는 떡이에요.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을 다윗에게 줍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 말씀을 읽었는데요. 그때마다 저는 죄송하지만 어떤 생각을 했냐면 다윗이 진상이다 먹지 말아야 떡을 먹는구나 이 생각을 했어요.그런데 이번에는 이제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너무 배가 고파요.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을 먹이시는구나 이 생각이 너무 드는 거예요. 너무너무 미치도록 뛰고 있는데 굶주린 다윗에게 찾아오셔서 배고픈 다윗의 입에 떡을 먹이시는구나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여러분 세상은 광야에서 넘어지면은 너 왜 그렇게 했어? 야 너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하면서 그 사람의 배고픔을 돌아보지 않아요.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넘어졌을 때 비록 그가 실수했을 때라도 그의 배고픔에 그의 허기짐에 집중하십니다. 세상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대조가 돼서 저는 정말 은혜가 됐습니다. 여러분 근데 더 은혜가 되는 게 있어요.
생명의 떡 진설병은 어떤 의미냐면요. 예수님 그 자신을 의미하는 거예요. 우리가 쓰러진 그 자리에서 광야에서 넘어진 그 자리에서 우리가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느낀 그때에 예수님 그 자신이 생명의 떡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거예요.그런 경험해보신 적 있으시죠?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시죠? 오늘 그거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여러분 저희 안에 옳고 그름을 참 벗어나기가 어려워요.광야에서 넘어졌는데 그 넘어짐이 너무 크고 너무 정제가 되면 하나님 그래도요. 그건 좀 아니죠 이런 마음이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옳고 그름의 마음을 정죄의 마음을 거둬가라고 하시면서 이 말씀을 주십니다.마태복음 12장 말씀인데요. 12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비슷한 상황입니다. 배가 고픈 제자들이 배가 고픈 나머지 기억나시죠?밀밭에서 이삭을 잘라 먹어요. 그날이 어떤 날이죠? 안식일이에요 바리새인들이 그걸 봤습니다. 핏대를 세우면서 얘기해요.예수님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여러분 누가 봐도 명백하게 잘못한 일이에요. 근데 여러분 바로 이때 예수님이 비장의 카드 하나의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에요.마태복음 12장 3절 4절, 7절 말씀인데요. 제가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우리 함께 읽읍시다.무제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님 뭐라고 하시죠? 무제한 자를 정제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면서 말씀하세요.
이게 나의 뜻이라고 말씀하세요. 여러분 이게 애매한 톤으로 들리시나요? 아니에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옳고 그름으로 물러서지 않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그것이 어떠한 넘어짐일지라도 그것이 어떠한 실수일지라도 그것이 어떠한 연약함일지라도 나는 정제하지 않는다라고 얘기하세요.그리고 그것이 나의 뜻이라고 얘기하세요.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 맞서실 건가요? 나의 옳고 그름이 너무너무 강해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을 때 이 하나님의 뜻에 맞서실 건가요? 저는 12년 전에 저희 아내와 함께 선교사 준비를 하기 위해 북아일랜드로 갔어요. 영국에 있는 북아일랜드로 갔는데 많이 물어보시더라고요. 북아일랜드가 어디냐고 오늘 말씀드릴게요. 북아일랜드가요? 영국은 웨일즈,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북아일랜드 네 곳으로 나뉘어 있어요.그 한 곳이 북아일랜드인데요. 저는 북아일랜드로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한인교회에서 예기치 않게 사역을 요청받았어요. 저는 교회를 참 좋아합니다. 교회에서 제 삶이 변했고요.
교회는 제 삶의 기쁨이고 또 교회에서 저의 피난처를 찾고 제 삶의 이유를 찾았어요. 저는 교회가 너무 즐거워요. 그래서 교회에서 사역을 하다 힘들 때가 있지만 사역하는 게 그렇게 고되지 않고 늘 기쁨이었습니다.그래서 한인 교회에서 저에게 사역을 요청하였을 때도 너무 설렜어요. 너무 기쁘고 그런데 여러분 전혀 예상하지 않게 저는 이민교회에서 광야를 만났습니다. 저는 길을 잃었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참 교회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요. 첫 번째 일은 뭐였냐면은 교회 안에 갈등이 있었어요. 참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우리 집사님들도 참 너무 많이 고생을 하셨어요.
그 집사님들의 그 갈등 가운데 저희 아내가 함께 했습니다. 아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갈등에 휘말리면서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였냐면요. 제가 그 꼴을 못 보는 거예요. 제가 아내를 정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를 끊임없이 정제하기 시작했고 교회만 힘든 게 아니라 저희 부부 관계에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제일 힘들 때가 언제였냐면요. 주일 아침에 교회 갈 때였어요. 여러분 오늘 교회 올 때 싸우지 않으셨나요? 너무 힘들죠. 주일날 아침에 교회 오실 때 싸우시면 너무 힘들죠.
저는 아내와 둘이 이렇게 교회를 걸어갔는데요. 아침에 싸우면요. 평소보다 감정적인 소모가 한 3~4배 큰 것 같아요.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속이 상해서 그날은 진짜 소리를 지르고 집에 가고 싶더라고요.그럴 때가 너무 많았어요. 그러면서 점점 관계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요. 아내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아내가 여러 가지 한계 상황에 도달하면서 침대에서 누워 있고 우는 시간들이 많아졌어요.그러면서 이제 주일날에도 아내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가 있었고요.
제가 혼자 교회 갈 때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안 좋겠죠 마음이 안 좋겠죠 더 두려운 건 뭐냐면요. 교회에 가면요. 성도님들이 다 물어보세요. 왜 혼자 왔냐고 오늘 본문 말씀처럼 다윗에게 물어보는 것처럼 물어보는 거예요. 왜 혼자 왔어? 물어봐요. 그러면 이제 아내가 아픕니다라고 얘기하는데 설교를 하면서 마음이 너무 참담한 거죠.
너무 자괴감이 들었어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 아내는 집에서 누워 있는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웃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7년을 보냈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는 상황 때문에 이제 저에게 우울과 자책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침대에 진짜 오래 누워 있었어요. 3박 4일도 누워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그 시간들이 너무 괴로워서 누워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도 회개하고 가슴 아픈 거는 그 누워 있는 시간 동안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한 거예요.수많은 시간들을 낭비했습니다. 수많은 죄를 지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제가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이 광야에서 넘어진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할 수 없었어요. 너무 우울했고요. 너무 자책했고요. 아내를 미워했고요. 분노했고요. 절망했고요. 수많은 감정들이 있었는데 제가 이야기할 수 없었어요.왜 그랬을까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 저를 낙오자로 실패자로 이야기할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광야에서 넘어지면 하나님이 저를 싫어하실 것 같은 거예요.야 너 사역자가 됐더니 아직도 그 모양이냐고 하나님이 싫어하실 것 같은 거예요.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진설병으로 생명의 떡으로 내가 너를 정제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안 믿어지는 거예요.저는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의 감정을 하나도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정확히 이야기하면 광야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광야에서 길을 잃어버린 광야에 계신가요? 두려움에 사로잡혀 여러분 혹시 지금 어느 광야에 시작합니까? 실수를 연발해요. 길을 안 하고 거짓말을 해요. 미친 듯이 뛰고 계지 않으세요?길 잊어버린 거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너무 수치스럽고 두려워서 저처럼 뛰고 계시지 않으세요?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죠? 우리가 뛰고 있을 때 우리를 경배하지 않는 분이 아니세요?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의 입을 벌려서 떡을 건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바로 명령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예요. 여러분 그분이 저를 찾아오십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원하세요.오늘 이 이야기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 이제 우리 아리가 목장 안에 있잖아요. 우리 아까 세영 자매가 한 것 처럼 가족 없어 구도 없어도 우리 목장 있잖아요.목장에서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움에 반대는 우리가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용기 내 힘내 이런 얘기 많이 하는데 두려움의 반대는 꿋꿋하고 의연한 용기가 아니고 사랑이라고 이야기했어요.용기는 두려움을 억누를 수는 있지만 정복하지는 못한다라고 얘기했죠. 여러분 우리에게 광야에서 필요한 거는 의지가 아닙니다. 열심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품이 아니에요 뭐가 필요한 것이죠?우리의 실패 가운데 우리를 찾아오시는 생명의 떡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예요. 그 완전한 사랑이 우리를 두려움에서 이기게 합니다. 그 광야를 지나게 하는 것은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에요.
적용 질문입니다.
광야에서 넘어진 지체들을 혹시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나요?
피눈물 나는 광야의 시간에 넘어진 나의 연약함을 공동체에 잘 고백하고 있나요?
광야에서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을 경험하셨나요?
2.내 안의 사울을 죽여야 합니다.
배고픔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때요? 두려움이 끝이 없습니다. 광야에서는 두려움이 끝이 없어요. 사울이 또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8절입니다. 다윗이 아이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함으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다윗이 지금 무슨 방법을 찾죠?
배고픔이 해결되었는데 이제 창과 칼을 찾습니다. 또 거짓말을 해요. 거짓말을 하면서 창과 칼을 구합니다. 그러자 제사장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9절이에요. 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 보자기에 쌓여 에보트에 있으니 내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 여기는 그것밖에 다른 것이 없느니라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 같은 것이 없이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하더라. 보자기에 칼이 하나 있는데 가져가 보겠니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다윗이 얘기합니다. 그 같은 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그거 갖고 싶어요라고 얘기해요. 여러분 근데 중요한 건 뭐냐면요. 이 칼이 무슨 칼이죠? 블레셋의 칼이에요. 그것도 죽은 블레셋의 칼이에요.
바로 얼마 전까지 우리가 지난주에 말씀을 들었어요. 다윗이 뭘로 이겼죠? 물맷돌로 이겼어요. 블레셋의 칼로 이긴 것이 아니에요 너희가 창과 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외치면서 다윗이 블레셋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꼭 지금 기억 상식증에 걸린 것처럼 창을 달라고 해요. 왜 그럴까요? 이 창으로 브레셋의 창으로 광야를 벗어나고 싶은 거예요.
이 지긋지긋한 광야를 칼로 벗어나고 싶은 거예요.
야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이렇게 잘 까먹을 수 있어 은혜를 이렇게 말할 수 있죠. 그런데 저는 할 말이 없는 게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이민교회에 있을 때 이민교회가 너무너무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정확히 이야기하면 광야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광야가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광야가 힘이 들면 힘이 들수록 저는 이 광야가 벗어나고 싶어서 어떻게 했을까요?창과 칼을 들었습니다. 물맷돌 생각도 안 났어요. 물맷돌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광야에 있으면 빨리 벗어나고 싶으니까 창과 칼을 들게 되었습니다.
제가 첫 번째 했던 일은 뭘까요? 내가 창과 칼로 죽여야 될 죽여야 된다고 생각 얘기하니까 좀. 그런데 죽여야 될 사울은 누구인가? 제가 첫 번째 찾았던 사람은 저희 아내였습니다. 저희 아내가 갈등에 휘말려서 그 갈등 때문에 제가 사역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광야가 고통스러울수록 비참할수록 저는 저의 창을 아내에게 들고 아내를 원망하고 저주했습니다.제 안에 아내가 사울 왕이라고 믿는 굳은 믿음이 있었어요. 저는 창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창은 여러분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창은 뭐세요? 저의 창은 잔소리입니다.
저의 잔소리는요. 좀 질이 안 좋은 게 설교와 잔소리가 섞여 있어요. 그래서 뭐라고 하기도 참 어렵고 듣는 사람도 두 배로 기분이 나쁜 치명상이 되는 그런 지독한 칼과 창입니다.
저는 그 칼과 창을 들어서 1시간이 되고 2시간이 되고 저희 아내가 피를 흘릴 때까지 제가 창을 던졌습니다.
분명히 은혜로 분명히 은혜로 물맷돌도 승리해서 사역자가 되었는데 제가 모든 것을 잃고 광야가 너무너무 벗어나고 싶어서 창과 칼을 통해서 아내에게 던지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요. 여전히 창을 든 상태에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양육을 받았어요. 같이 받으시는 양육 받으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제가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 때문에 너무 힘들다. 창을 던지고 싶은데 창을 던지지 않고 있다. 참고 있다. 기특하지 않냐 이런 나눔을 했습니다. 신나게 나눔을 했어요.그런데 집사님들의 얼굴이 시큰둥한 거예요. 이상하다. 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눔을 하면 할수록 제 나눔이 제가 듣기에도 이상한 거예요. 뭐 앞뒤가 좀 안 맞는 거예요. 왜 그러냐면 제 악과 음란함이 있잖아요. 나눔을 하면 할수록 알게 되잖아요. 그런데 제 악과 음란함에는 창을 들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거죠. 에이 그럴 수도 있지 뭐 얼마나 힘들었겠어 이렇게 하는데 아내가 실수한 것에 대해서는 죽자고 달려드는 거죠. 창을 들고 반드시 이것을 해결하겠다고 처음 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찌질하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 안에 아까 뭐라고 했죠?
아내가 확실히 사울 왕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조금씩 조금씩 제 안에 제 생각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제 안에 이 형제 안에 있는 사울왕을 보게 되었어요.
진짜 사울왕은 저의 마음과 뿌리 깊은 곳에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저처럼 이 지긋지긋한 광야를 벗어나고 싶어서 칼 들고 있는 분 지금 혹시 계신가요? 오늘 주일 예배 오시면서도 한 손에는 성경책 한손에 칼을 들고 오신 분 혹시 계신가요? 아무리 분하고 억울해도 우리가 그 칼을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죽은 골리앗의 칼이라고 했어요. 그 칼 내려놓았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요. 광야는 칼을 들고 벗어나야 되는 시간이 아니라 광야는 말씀의 검으로 우리 안에 사울을 죽여야 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들여야 할 칼은 죽은 골리앗의 칼이 아니고 말씀의 검이에요.
여러분 이 말씀의 검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제가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것보다도 예리하며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판단하느니라 여러분 이런 칼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의 칼이 있어요. 이제 죽은 골리앗의 칼을 내려놓고 말씀의 칼을 들고 우리 안에 사울 왕을 죽이는 광야의 은혜를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은혜를 잊고 누구에게 옳고 그름의 창을 던지고 있나요?
말씀의 칼로 죽여야 할 내 안에 사울은 무엇입니까?
3.공동체를 만나게 됩니다.
제가 부정당하는 것 같고 제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너무나 비참하고 괴로운 시간이었어요. 정말 광야의 마지막은 자기 자신이 무너지는 시간이에요. 그렇게 제가 무너지는 시간을 경험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7년의 시간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교회가 사랑하는 교회가 광야가 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어요.그 깊은 고민이 있을 때에 담임 목사님이 하시는 세미나에 가게 되었고요. 목사님이 너무 신기한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담임 목사님께서 아직도 기억하는데 광풍 목장, 정신병자 목장, 부도 목장 이런 얘기를 하시는데 그런 분들이 더 놀라운 건 차별받지 않고 환영받으시면서 오시고 그분들이 살아나신다는 거예요. 그 얘기가 너무 마음에 와닿습니다. 제가 교회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에요.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귀한 공동체에 작은 역할이라도 좋으니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지원했는데 우리들 교회 오게 됐습니다. 저는 진짜 오늘 말씀처럼 광야의 시간 뒤에 아둘람 공동체에 오게 되었어요.이제 아둘람 공동체에 왔어요. 그럼 뭘 해야 될까요? 저는 이제 아둘랑 공동체에서 지난 광야의 시간을 다 덮어버리고 아무도 모르게 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양육을 받는데 계속 기억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계속 말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하나씩 하나씩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무슨 얘기를 먼저 했냐면요. 제가 이민교회에서 얼마나 수고했는지 얼마나 헌신했는지 제가 얼마나 인내했는지 이야기했어요.
저 고생했죠 이런 얘기한 거예요. 제가 그거를 설교와 나눔을 통해서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 번은 담임 목사님께서 제 나눔을 들으시더니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교회가 너 때문에 참 수고했겠다. 제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제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제가 항상 그 고생의 아이콘이거든요. 고생의 아이콘이어서 그런 말 들어본 적이 아는데 그 말 듣고서 그 말이 머리에 떠나지 않는 거예요. 저는 저의 열심과 성실과 헌신의 물음표를 달아본 적이 없습니다.
근데 우리 교회 양옥의 시간은 잘 아시는 것처럼 질문의 시간이에요.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내 생각처럼 내 주장처럼 나의 헌신과 열심과 성품이 지구지순한 순도 100%였다면 사역을 하면서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나는 왜 그렇게 분노했나 나는 왜 그렇게 괴로워했나 앞뒤가 안 맞잖아요.
그러면서 저는 처음으로 저의 성품과 열심 뒤에 있는 사울의 야망을 보기 시작했어요. 너무 억울한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수고했는데 사울의 야망이라니 너무 억울한 거예요. 처음에는 괴로워서 발버둥을 쳤습니다. 처음에는 인정이 되지 않아서 참 눈물도 많이 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안에 그런 모습이 인정이 되기 시작하자 처음 생각난 것은 사실 이민교회 성도들이었어요. 인민교회 성도들이 담임 목사님 말씀처럼 제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야망의 사울을 도려내기 위해서 수고하셨구나. 이민교회를 위해 내가 수고한 것이 아니라 이민교회가 나를 위해 수고했구나 너무 죄송했어요.
계속 기억이 났습니다. 이렇게 저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고 목회자로서의 저의 주제를 알기 시작했고, 그리고 이제 제가 매주마다 성도님들 삶을 보잖아요. 이제 변하시는 삶을 보면서 많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이민사회에 있는 집사님들이 좋은 분들이 많이 있는데 환경이 참 어려우세요 환경이 어려우셔서 괴로워하시는 건데 그곳에도 이곳처럼 광야에서 숨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둘람 공동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었으면 좋겠다. 도피성 같은 공동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한테 되게 신기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실 돌아왔거든요. 그렇게 저의 마음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올 때는 이민교회 목회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영국은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5년의 시간이 지나고요. 이맘때가 되었을 때 저는 다시 이곳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게 된 거예요. 다시 영국 맨체스터로 돌아가게 됐다고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아서 내년 1월부터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감사해서 우는 게 아니고요. 청빙이 결정되고 나서 너무 죄송한 거예요.
하나님 앞에 너무 고개가 숙여지는 거예요. 제가 얼마나 많은 말을 했어요. 제가 얼마나 많이 많이 망했겠어요. 그런데 제가 제가 어떤 생각 생각이 들었냐 하면 내가 내 인생을 너무 모르 모른다나 내가 내 인생을 다 모르 모르나 그냥 그냥 논 게 아니고 진짜 하나도 하나도 모른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아셔서 광야에서 신실하게 이끄셨는데 내가 짧은 생각으로 정말 미친 듯이 원망과 불평을 했구나 그 생각이 들면서 참 많이 회개했습니다.여러분 이민교회 광야의 시간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 귀한 아들랑구노세에 오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그 이민교회의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이 놀라운 목장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거예요. 여러분 이민교회의 시간은 저에게 축복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우리들 교회 양육이 아니었으면 말씀으로 저의 지난 시간들을 해석받지 못했다면 전 여전히 이민교회의 아픔들에 대해서 집중하면서 내가 제일 피해자야 내가 제일 수고했어라고 하면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겠죠.뒤도 안 돌아봤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들 교회를 만나서 말씀으로 광야의 시간을 해적하고 이렇게 제 발로 걸어갑니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고요. 하나도 제가 생각한 게 아니고요. 제가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광야의 시간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가 어디 있겠어요?
목회자가 특별히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 저의 이 광야의 아픔들을 솔직하게 나누고 또 해석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 귀한 공동체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을 매주 전해주시고 또 우리 성도님들의 귀한 나눔을 들으면서 저는 평생 감추고 살아야 될 저의 광야의 시간들을 나누게 되었고 해석받게 되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있지만 힘들 때가 있어요.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어떠한 광야를 지나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내가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내 평생에 하나님, 내가 광야를 지날지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나와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면 광야가 두려우지 않을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광야의 시간을 통해 어떤 무너지는 사건을 경험했나요?
광야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어떤 사명의 자리로 이끌고 계시나요?
광야에서 길을 잃다는 것은
생명이 떡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내 안의 사울을 죽여야 합니다.
공동체를 만나게 됩니다.

기도제목
A
0.여자친구와 신결혼 준비 진행 잘 하도록
1.첫 출근 잘 할 수 있도록
2.학폭 가해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3.연말 마무리 잘 하도록
4.말씀을 붙들고 살 수 있기를
5.허락해주신 물질과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게 이끌어주시기를
6.가정을 중수하고 주일을 성수할 수 있는 저에게 맞는 직장으로 인도해주세요
B
1.비염 심해짐, 건강관리 철저하게
2. 기말고사 시즌 잘 보내고 연말 마무리 잘하도록
3. 내년 사역과 봉사, 직업적 부분에서 느긋하게 하도록
C
1.회사 본사로 출근하는데 거리가 멀어지는데 출퇴근 할때 체력을 주시도록
2.프로젝트 진행할 때 좋은 사람들 만날 수 있도록
3.목장모임 참여하고 말씀 잘 듣기
4.부정적인 생각 줄어들도록, 낙천적인 마음 세워가기
5.감사할 것들이 많은 삶을 감사하기
D
1.연말 업무 마무리 잘하고 내년에 있을 프로젝트 시작 잘할 수 있도록
2.신교제 ,신결혼
3.부모님 집안 일 잘 도와드리기
4.부모님과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