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사무엘상 17:41-54)
2024.12.01 주일예배 -이태근 목사
41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메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3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목사님 출타중에 광주로 파송받게된 이태근 목사이다.
우리들교회 처음 온 것이 2007년 겨울이었는데 만으로 17년이 되었다. 초1이었던 아들은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갓태어난 딸은 내년에 고3이 된다. 세월의 흔적이 저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닐테고 함께했던 그동안의 목장식구들, 성도님들도 추억 속에 세월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저보다 먼저 오신 분들도, 따라오신 분들도 있을텐데 광주로 파송받기에 앞서 다시 휘문채플에 와서 말씀 전하게 되니 왠지 마음이 뭉클해진다.
보통 집사님들은 처음 오셔서 들었던 말씀을 오래오래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저도 처음 들은 말씀이 문짝 다는 인생이 되어야한다였다. 그땐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다 깨닫지는 못했을텐데 그냥 그 말씀이 왠지 좋았고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것 같다.
오늘 큐티인 본문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물매 하나로 제압하고 그의 칼로 그의 머리를 베었다는 말씀이다. 큐티인 본문으로 말씀전하려하니 살짝 안맞는 본문처럼 느껴졌다. 다윗처럼 살아온 인생이 아니기에. 그렇다고 골리앗이 되기는 싫고.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버리고 자기 영광을 추구했던 사울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 주신 말씀도 다 이유가있을텐데 함께 THINK하며 살펴보길 원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려면
1. 수치와 조롱을 잘 받아야 합니다.
41-42절
여기서 블레셋 사람은 골리앗을 가리킨다. 누구나 다 아는 이름, 유명한 이름 골리앗이 있다. 큐티인 본문은 굳이 그의 이름을 한번도 불러주지 않고 그저 블레셋 사람으로만 칭한다. 블레셋 사람이 방패된 사람을 앞세우고 나왔다는것은 왜그럴까? 골리앗도 나름 긴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사울과 이스라엘진영은 그런 골리앗때문에 지난 사십여일동안 수치와 조롱을 당하며 벌벌 떨고있다. 물론 우리가 살다보면 수치와 조롱을 누구나 다 당할 수 있겠죠. 하지만 어떻게 당하느냐가 중요하다. 수치와 조롱을 잘 당하려면 내공이 있어야하는데 내공없는 사람은 한마디에 주눅들고 벌벌 부들부들 떨며 또 풀이 죽기 마련이다. 학벌과 얼굴이 이쁘다고 자존감이 꼭 있는것은 아니더라. 목장에서 똑똑하신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똑똑한 분들 중에 의외로 열등감에 사로잡힌 분들도 많더라. 똑똑한 분들은 똑똑한 분들과 경쟁해야하기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고, 또 목장에 와서는 찌질한 사람들의 나눔을 들으며 무시가 될 수도 있는데 열등감과 교만은 동전의 양면같아서 교만한사람은 열등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블레셋사람 골리앗도 다윗을 보며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용모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다윗의 미모를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가소롭게 보였다는 말이다. UFC를 보면 무섭거나 날쌔거나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있는데 다윗은 여리여리한 미소녀처럼 보였다는 말이다.
골리앗은 왜 다윗을 우습게 보았을까?
43-44절
블레셋사람 골리앗이 처음엔 방패든 자를 앞세우고 다윗과 거리를 조금씩 좁히며 긴장하는 마음으로 접근한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골리앗이 무장해제된 상태이다. 방패든 자가 옆에 서있고 또 허리에 칼을 찼지만 막대기를 든 어린 소년을 보는순간 가소롭게 보이는 것이다. 굳이 칼을 빼어 들 이유가 사라졌다. 메뚜기 한마리 잡겠다고 칼 드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듯이 다윗은 미리 준비한 물매돌을 숨기고 막대기를 들었다. 골리앗의 교만함을 부추기기 위한 나름 고도의 전술이라 생각한다. 막대기로 칼을 든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손에 든 것이 아니다. 다윗은 골리앗 생각처럼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못한 일이 없느니라,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 큰소리부터 친 것이 아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이 골리앗때문에 40일동안 벌벌 떨고 있을 때 다윗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목동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양을 지키는 자인데 사자나 곰이 와서 양 새끼를 물어가면 저는 끝까지 쫓아가 제압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저내었고 덤벼들때면 그 수염을 부여잡고 그 짐승을 쳐죽였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생각처럼 그 용모가 붉고 아름다운 미소년처럼 자라지 않았다. 아버지의 양을 지키며 목동으로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거치며 지냈다.
목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누구의 말에는 전적인 신뢰가 따르지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자가 없다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자고 아무리 멋있게 다 아는 것처럼 선포할지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기도 하지만 또 누가하면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 하는 말이 절로 입밖으로 나오려고할때가 있다.
제가 목사님을 흉내낸다고 제 말에 힘과 능력이 생기겠는가? 그래서 처방은 어록으로 하는것이 아니고 애통한 마음으로 나아가거나 십자가를 진 경험으로 나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적용
나는 수치와 조롱을 잘 받아내고 있습니까?
말 한마디에 부들부들 떨거나, 풀이 죽어 있지는 않습니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어떤 싸움을 하고 있습니까?
저도 지난 17년이 한주동안 많이 생각났다. 그때도 사역자가 처음 들어오면 우리들교회는 평신도 사역자님께 양육을 받는다. 저도 그때 두분의 전도사님과 한분의 집사님께 양육받았는데, 한 집사님이 목사님과 함께하는 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사님을 향한 주위 평가가 어떤지 아느냐? 첫째, 얼굴이 굳어있고 둘째 인사를 받지 않고 셋째...' 얼굴도 화끈거리고 부끄럽고 쪽이 팔렸다. 그런데 그렇게 끝났으면 오늘 이자리에 없었을텐데 그래도 그 이야기를 꽤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하면서 먼저 인사하고 얼굴도 체크했다. 특별히 그 집사님과 식사할때면 항상 제가 먼저 물도 떠다드리면서 훈련과 양육의 때를 잘 보냈던 것 같다.
2. 칼과 창을 내려놔야 합니다.
45절
골리앗은 칼과 창으로 나왔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 누구의 이름으로 나아가는지가 참 중요한 것 같다. 주의 일을 하면서도 내 이름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연말에 지금 시즌이 목장 개편을 준비하는 시즌인데, 항상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것은 서로의 이름을 비교하며 누가 먼저 목자되고 마을지기 되었는지, 나의 이름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혹 마음이 불편한 적은 없는가?
목사인 저도 그랬다. 17년 전 처음 왔을 때 할줄아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겸손하게 말씀드리는게 아니라 팩트가 그랬다. 아는 사람도 없고 돌아가는 상황도 모르고 지금처럼 목사님들이 많아서 함께 묻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성격이 유들해서 성도님들과 잘 어울리는 편도 아니었다. 세월이 약이라고 해야할까요, 조금씩 일도 맡겨주시고 직분도 생기다보니 사울처럼 겸손하게 시작한 것 같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금세 여호와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려고하니 본의아니게 여러번의 치리를 받았다.
목자모임을 인도하다 첫번째, 다음세대 컨퍼런스 준비하다가 두번째, 백부장 심판으로 수요설교후에 세번째, 몇년 전 성탄절 행사 마치고 나서 네번째치리를 받았다. 뭔가 대충대충해서 치리받았다기 보다는 칼을 들고 창을 높이 세우며 남들보다 색다른, 이태근목사가 하니 뭔가 다르네 소리 듣고싶어서 나름 열심히 준비한것인데 상급으로 칭찬이 아닌 치리를 받았다.
오늘 큐티인은 왜 골리앗을 블레셋사람이라고 반복해서 말할까? 주의 일을 하는데있어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나의 이름으로 치루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오늘 큐티인 본문에는 골리앗의 이름도, 또 그들이 따르던 신들의 이름 조차도 일부러 익명으로 처리하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고있던 대표적 신은 다곤신상인데 삼상5장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은 언약궤를 다곤신상 앞에 내려놓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다곤신상의 목과 손이 언약궤 앞에 엎드러진것처럼, 지금 골리앗의 형국도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46-47절
다윗의 신앙고백이 너무 멋진 것 같다. 어린 다윗은 어디에서 그런 확신과 담대함이 나오는걸까?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을까? 아니면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그럴까?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고 하셨는데 저는 목회자로 살아가는것이 참 부담스럽고 언제 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눈이 터지기 전까지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제가 목사의 직분을 경홀히 여겼다기 보다는 목사는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기에 능력도 있고 지혜 지식도 있고 머리도 똑똑하고 모든 것을 두루두루 갖춰야한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렇지 않는 것 같아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항상 불편하고 힘이들었다. 하지만 겸손한 모습처럼 보이는 저의 이런 모습이 실상은 내 손에 잡히는 칼과 창이었기에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있는 사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참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 같다.
성도님들은 어떠한가? 손에 잡히는 학벌과 힘이 없어 불안하진 않으신가? 이세상을 위하기 위해 나에게 꼭 필요한 칼과 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6:52-54. 또 예수님은 무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55-56.
적용
내가 내려놓아야 할 칼과 창은 무엇입니까?
주의 일을 하면서도 내 이름을 앞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때로는 다윗처럼, 때로는 주님처럼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어디입니까?
3. 갈고 닦은 물매돌이 있어야 합니다.
48-49절
찰나의 순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다윗이 던진 물매돌이 골리앗의 머리에 박히는 순간 거대한 다곤신상이 땅바닥에 엎어진 것처럼 거인 골리앗도 쿵 하고 뿌연 흙먼지를 날리면서 땅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온몸은 갑옷으로 칭칭감고 머리에는 놋투구를 쓰고 다리에는 각반?을 차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고 그 앞에는 방패든 자도 있었는데 골리앗은 칼집에서 칼을 한번도 빼보지 못한채 속수무책 점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운 다윗에게 일격을 당했다.
목사님 저서에는 짧게 설명되어있다. 다윗이 한번의 승리를 했습니다. 칼이 아니라 물매로 이겼습니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자꾸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저도 칼이 아니라 걸레질로 이겼습니다. 집순이로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설교할 때마다 자꾸 이 이야기를 반복하게 하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본문을 읽으면서 걸레질을 떠올리기 보다는 할 수 있거든이 무엇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아마 이런 성구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다윗은 기적을 기대하며 전쟁터에 나간 것이 아니다.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는 어린아이 취급했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려움을 감춘 것이 아니라 정말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골리앗처럼 상대방을 얕잡아보지도 않았다. 교만한 자의 최대 약점은 방심이기에 다윗은 보란듯이 막대기를 손에 들고 섰다. 다윗의 당당함은 골리앗의 방심으로 이어졌고 골리앗은 다윗이 표적으로 삼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 되어있었다.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골리앗을 무찔렀다는 것도 은혜가 되지만, 다윗의 평소 실력으로 골리앗을 무찔렀다는 것이 더 큰 은혜로 다가오지 않는가?
우리나라 양궁실력은 전세계가 다 알아주잖아요. 그런데 다음 올림픽부터 말을 타고 활을 쏴야한다고 한다고하면 어떨까? 48절 말씀에 보면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꺼내고 물매를 돌리며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향해 던지매 그 돌이 이마에 박혔다고 한다.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수도없이 반복해서 실전에서 배우고 연습한, 몸이 기억하고 있다. 반면 골리앗은 덩치가 매우 큰 사람이다. 움직임이 느리고 둔한 사람이다. 다윗은 평소 양을 치며 새끼 양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곰과 사자를 돌맹이 하나로 맞섰던 사람이지만 날쌘 들짐승도 다루어보았는데 그깟 덩치큰, 오만하기 짝이 없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골리앗을 보며 다윗이 벌벌 떨었을리가 없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쟁터 나간 것도 사실이지만 다윗은 기적을 베풀어달라고 안하던 기도를 시작한것이 아니라 평소실력대로 적당한 돌맹이를 주우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제가 우리들교회에서 마지막으로 맡은 직분은 판교채플 주차부 담당사역자였다. 주일날 저를 지나치지 않으면 판교채플로 들어올 수가 없다. 올연초에는 주차증을 새로 발급하며 엄격하게 심사하고 자격조건에 맞는, (미취학아동, 70세 이상, 장애인동승)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 무작정 찾아오는 분들이 계신다. 한번은 80살 넘은 할아버지가 한분 오셔서 주차증 발급하신다길래 미리 심사 신청하셨냐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눈만 뻐끔뻐끔 하셨다. 그래서 제가 안된다고, 미리 신청하시고 안내문자 받으시고 한 주 후에 다시 오시라고 말씀드렸더니 옆에 계시던 주차부 집사님들이 왜그러시냐고, 아버님이신데 그냥 해드리라고 하시더라. 저는 집사님들이 저의 아버지인걸 모를 줄 알았는데 다들 아시더라. 그래도 제가 안된다고 했다. 일단 집에 가서 며느리에게 물어보시고 한 주 후에 다시 오시라고 그냥 돌려보냈다.
최근엔 어떤 권사님이 2022년 주차증을 25년 주차증으로 갱신하러 오셨는데 하도 엄격하게 하셔서 갱신하지만, 일년에 몇번 사용 못했다 하시길래 제가 웃으며 그랬다. 권사님! 왜 교회가 저를 이자리에 앉혀놓았겠습니까. 우리들교회 사역자가 많은데 그중에서 제가 가장 융통성이 없어서 이 자리에 앉혀놓은게 아니겠습니까 하면서 말하니 그냥 가셨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항상 제가 매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것은 아니다. 상황 봐서 안될것같으면 그자리에서 바로 해드린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또 어떤 분은 주차증을 분실하고 재발급 받으러 오셨는데 처음부터 저의 기선제압 하시려듯 교회가 그러면 안된다고 난리를 치는 경우도 한두번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눈하나 깜빡 않고 그렇게하면 재발급 해드릴 수 없다고, 먼저 교회 질서를 따르기로 약속해주셔야 재발급 해드릴 수 있다고 한 적도 있다.
한번은 애기엄마가 재발급 받으러 오셨는데 어디서 분실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재발급받기 까다로우니 일단 가서 잘 찾아보시고 오라고했는데 몇주 후에 다른 집사님이 주차증 갱신하러 오셨다가 그 애기엄마 이야기를 하시면서 주차증 분실하셔서 교회 밖에 주차하고 세 아이를 데리고 오시는데 막내는 이제 겨우 6개월밖에 안됐다고 했다. 너무 죄송해서 전화드렸더니 주차증 찾았다고, 오늘도 교회 주차했다고 하시길래 안심되었다. 그 애기엄마가 정지훈 목사님의 사모인데, 정지훈 목사님은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알라나 모르겠다.
요즘엔 어떻게 재발급 해드릴까 하다가 본인이나 가족이나 목장식구들 중 한분이 주3회이상 주차봉사를 하시면 주차증 재발급을 해드리고 있는데, 어떤 분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어떤 분은 기분나쁘게 생각하신다. 지난 1년동안 주차증 발급해드린 분들은 766명이고 가라로 신청했다가 퇴짜맞으신 분들이 150명이나 된다. 주차증을 마구 발급해드리면 인기관리도 되고 기분도 좋겠지만 이미 만차가 되어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에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걸레질의 영성은 걸레질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복잡한인간관계와 미묘한 감정들 속에서 생기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다윗도 8형제 중 막내로 자랐지만 장남의 안위가 걱정되어 어린 막내아들을 전쟁터에 홀로 보낸것을 보면 다윗은 어려서부터 어떻게 자랐는지 눈에 선하다. 다윗의 영성도 그런 환경 속에서 차츰 다듬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50-51절
골리앗은 물매돌에 맞아 쓰러졌지만 그 목숨줄을 끊은 것은 결국 자신의 칼이라고 한다. 즉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죽임당하는 꼴이 된 것이다. 돈이 있어서, 권세가 있어서 결국 그 칼로 내가 죽임당하는 형국이다. 돈이 없으면 주식투자도, 욕심도 내지 않았을텐데 나의 힘으로 칼과 창을 마구 사용하다보니 돈과 권세로 망하는 사건이 찾아오게 된 것이다.
52절
두려움에 떨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달라졌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눕히는 모습을 보고 전쟁은 칼과 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다윗과 함께 행동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53-54절
블레셋 사람들을 끝까지 쫓아가야하는데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블레셋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놓고간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을 본다. 하지만 다윗은 따로 전리품을 취하지 않고 골리앗의 머리를 취했다. 다윗은 사사로운 전쟁에 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전쟁을 치루었기에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있었다. 창3:15 원시복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사단의 계략과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이 한 절 안에 다 압축되어있다.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다 끝나지 않은 싸움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단의 머리에 치명상을 입히시고 창세기부터 이어지는 구원사역에 우리들교회도 동참하기 위해 21년 전 우리들교회가 세워졌다. 작년 겨울 송구영신예배를 기점으로 대구채플이 세워진 것처럼 올해도 송구영신예배를 기점으로 광주채플이 세워질 예정이다. 광주채플 담당사역자로 내려가는 저도, 광주에서 파송받은 사역자를 기다리는 성도님들도 전리품을 취하기 위하여 거룩한 전쟁을 멈추는 악한 죄를 짓지 말고 담임목사님이 한 영혼을 위해 달려오신 것처럼 우리가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할줄 믿는다.
적용
사명 감당하기 위해서 내가 갈고 닦아야 할 나의 물매돌은 무엇입니까?
마음이 다급할 때만 능력의 하나님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던 길을 멈추고 마음을 빼앗긴 나의 전리품은 무엇입니까?
3주전 쯤 전라도에 사시는 한 마을님의 따님의 결혼식이 있어 전주에 내려갔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로 방문할때마다 계획에 없던 심방요청을 즉석에서 추가로 받을 때가 많다. 그날도 한 여자집사님이 난리나기 일보직전인데 남편과 싸우지 말고 남편을 결혼식장에 데리고 나오라고, 친구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남편에게 복음을 전해야한다고 해서 여집사님이 남편을 모시고 멀리서 결혼식장으로 출발했는데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다 끝날 때까지 도착하지 않아 광주식구들이 따로 음식점을 알아보고 부부가 따로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후에 바로 커피숍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동선을 짜고 집사님과 남편이 도착하니 오랜만에 처음 만난 고향사람들처럼 서로 ]
연기하기 시작하는데 어떤 분은 사전에 잘 조율되지 않아 한쪽에서는 집사라 하고, 한쪽에서는 고향친구처럼 야라고 하고. 사투리로 말씀하셔서 외국어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됐든 통성명을 하고 거기서 작은 연결고리를 찾아 급하게 건설쪽에 일하시는 한 집사님을 호출하고 서로 명함 주고받고 나중에 꼭 한번 뵙기로 했는데 명함 주고받은 한 부목자님이 지지난주 부부를 목장에 초대하기로했다고 연락받았다. 그리고 지난 주 수요일에 광주채플로 내려가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때 일들이 떠오르면서 앞으로 광주식구들과 함께하게 될 구원의 역사가 기대가 되고 마음이 푸근해져서 뭉클해지기도 했다.
특별히 판교 채플 식구들에게 아들 내외와 새 손주를 놓고 내려가게 되었는데 공동체 식구들이 있기에 안심이 된다.
목장나눔
기도제목
N
1.목장에 잘 나눌수 있는 마음과 환경을 허락하여주세요.
2.나의 수치와 조롱이 나를 공격하는것이 아닌 말씀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3.나의 중독들이 끊어질 수 있도록
4.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 삶이 영적 내공을 쌓아 평범이 비범임을 알 수 있도록.
Q
1 수치와 조롱이 나의 이름을 앞세우는 모습 때문임을 회개합니다. 오직 주님이 주시는 말씀과 지혜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도 담대히 나아가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의 적용이 되도록, 우리 모두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기를
3 나를위한 신교제 신결혼이 아닌 먼저 돕는베필이 되려는 적용을 할 수 있기를 기도 부탁합니다.
4 엄마 영육간의 건강 지켜주시고, 엄마와 큐티하는 시간 늘릴 수 있도록
5 언니가정의 회복과 형부 문희탁의 구원을 위해.. 언니가 주님으로부터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T
1. 내 이름으로 행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삶의 전투에서 떨어지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금의 수치와 조롱을 잘 받고, 던질 돌을 갈고 닦는 준비하는 시간 되길 기도 부탁드립니다.
2. 기적을 바라는 기복이 아닌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확신과 담대함이 자라는 큐티가 되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3. 내가 높아지려 인내하고 상대방을 섬겼던 고등교만의 만남을 회개합니다. 서로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교제, 신결혼이 있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