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일 주일설교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이태근 목사님
사무엘상 17장 41절 - 54절
41절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42절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절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절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절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절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절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0절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절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절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3절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54절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이태근 목사님>
네 내 고난이 큰것같지만 말씀이 들리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청년들이 다음 세대를 잘 준비할 수 있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집사 헌신 동의서 내용을 읽으신 후 해당 문서를 읽으시고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목자카톡방을 통해 공지해놓았으니 자격을 잘 읽어주시고 헌신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남아공 탄자니아 팅크 목회 세미나 중이십니다. 기름부어주시고 구속사의 말씀으로 돌이키고 살아날 수 있게 담임목사님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아멘
할렐루야 네 담임목사님 출타 중에 광주로 파송 받게 된 이태근 목사입니다. 네 박수로 응원해주셔서 진정됩니다. 우리들교회 처음온것이 2007년인데 17년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였던 아이는 아빠가 되었고 딸은 고3이 됩니다. 모든 성도님들도 추억속에 세월의 흔적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광주로 파송받기 전에 말씀을 전하니 가슴이 울컥해집니다.
잠깐 기도하고 오늘 주신 말씀 듣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자리에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벽을 중수하고 문짝을 달고 문지기를 세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지난 21년 동안 우리들께와 함께하여 주시고 나의 어깨를 내어주며 서로의 등을 기대며 견고한 성벽이 되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 각자 맡은 자리에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큐티인 본문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물매 하나로 제압을 하고 그의 칼로 그의 머리를 베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큐티인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하니 저에게는 조금 살짝 안 맞는 본문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다윗처럼 살아온 인생이 아니기에 그렇다고 골리앗은 되기 싫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버리고 자기의 영광을 추구했던 사울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신 말씀도 다 이유가 있을 텐데 함께 띵크하며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수치와 조롱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여기서 블레셋 사람은 골리앗을 가리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름, 유명한 이름 골리앗이 있는데, 오늘 큐티인 본문은 굳이 그의 이름을 한 번도 불러주지 않고 그저 블레셋 사람이라고만 칭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방패된 사람을 앞세우고 나왔다는 것은 왜 그럴까요? 블레셋 사람 골리앗도 나름 긴장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울과 이스라엘 진영은 그러한 골리앗 때문에 지난 40여 일 동안 수치와 조롱을 당하며 벌벌 떨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다 보면 수치와 조롱은 누구나 다 당할 수 있겠죠. 하지만 수치와 조롱을 어떻게 당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수치와 조롱을 잘 당하려면 내공이 있어야 하는데, 내공이 없는 사람은 말 한마디에 주눅이 들고 벌벌 부들부들 떨며 또 풀이 죽기 마련입니다.
학벌과 얼굴이 이쁘다고 자존감이 또 꼭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목장에서 똑똑하신 분들을 참 많이 만나보았는데, 의외로 똑똑한 분들 중에 열등감에 그렇게 사로잡혀 있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똑똑한 분들은 똑똑한 분들과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때가 많고, 또 목장에 와서는 찌질한 사람들의 나눔을 들으며 무시가 될 수도 있는데, 열등감과 교만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교만한 사람은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도 다윗을 보며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이 말은 다윗의 용모를 칭찬하는 말이 아니에요. 자기가 보기에는 미소녀처럼 가소롭게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UFC 격투기를 보면 하나같이 무섭거나 날세거나 근육질로 다듬어진 몸을 가지고 있는데, 다윗은 여리여리한 미소녀처럼 보였다는 것입니다.
지피직이면 백전불패라는 말도 있는데, 골리앗은 왜 다윗을 우습게 보았을까요?
43절 44절 말씀을 봅니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와 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니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 처음에는 방패된 자를 앞세우고 다윗과의 거리를 조금씩 조금씩 좁히며 긴장하는 마음으로 접근을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골리앗이 무장 해제가 된 상태입니다. 방패든 자가 옆에 서 있고, 또 허리에 칼을 찼지만 막대기를 든 어린 소녀를 보는 순간 그냥 무장해제가 되었어요. 다윗이 너무 가소롭게 보이는 것이죠. 굳이 칼을 빼어 들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메뚜기 한 마리를 잡겠다고 칼을 들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피지기면 백전 백승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다윗은 미리 준비한 물맷돌을 주머니에 숨기고 손에는 막대기를 들었습니다. 골리앗의 교만함을 부추기기 위한 나름 고도의 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막대기로 칼을 든 골리앗과 맞서 싸우겠다고 막대기를 손에 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다윗은 골리앗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모한 사람이 아닙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서 큰소리부터 친 것이 아닙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이 골리앗 때문에 40일 동안 벌벌 떨고 있을 때 다윗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목동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양을 지키는 자인데,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의 새끼를 물어가면 저는 끝까지 쫓아가서 그것을 제압하고 그 입에서 양의 새끼를 건져내었고, 사자와 고민 알을 해하고자 덤벼들 때면 저는 그 수염을 부여잡고 그 짐승을 쳐 죽였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용모가 붉고 아름다운 미소년처럼 자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양을 지키며 또 목동으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며 자랐습니다. 목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누구의 말에는 전적인 신뢰가 따르지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자가 없다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자고 아무리 멋있게 다 아는 것처럼 선포를 할지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기도 하지만, 또 누가 하면 속으로 너나 잘하세요 이런 얘기가 절로 막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목사님을 흉내낸다고 제 말에 힘과 능력이 생기겠습니까? 그래서 처방은 거룩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부끄러운 죄를 먼저 회개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나아가거나 십자가를 진 경험으로 나아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나는 수치와 조롱을 잘 받아내고 있습니까
말 한마디에 부들부들떨거나 풀이 죽어 있지는 않습니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어떤 싸움을 하고 있습니까?
저도 지난 17년간이 자꾸 한 주 동안 많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여러 가지 에피소드 사건들이 생각이 났는데 요즘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사역자가 처음 들어오면 우리들 교회는 평신도 사역자님께 양육을 받습니다.
저도 그때 두 분의 전도사님과 한 분의 집사님께 양육을 받았는데, 저를 양육해 주셨던 한 집사님이 담임 목사님과 함께하는 모임 시간에 이런 얘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목사님에 대한 주위의 평가가 어떠신 줄 아느냐? 첫째 얼굴이 굳어 있고 둘째 인사를 해도 인사를 잘 받지 않고 셋째 뭐라뭐라 했는데 정신이 혼미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담임 목사님 앞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막 얼굴도 화끈거리고 너무 또 부끄럽고 막 쪽이 팔리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그렇게 끝났으면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텐데 그래도 그 이야기를 꽤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하면서 먼저 인사하고 또 얼굴도 한 번씩 체크하고 특별히 이제 그 집사님과 식사를 할 때면 항상 제가 먼저 존경하는 마음으로 물도 떠다 드리면서 훈련과 양육의 때를 제가 그렇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2.칼과 창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은 칼과 창으로 나왔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이처럼 누구의 이름으로 나아가느냐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주의 일을 하면서도 내 이름을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말에 지금 시즌이 이제 목장 개편을 준비하는 시즌인데 항상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것은 서로의 이름을 비교하며 누가 먼저 목자가 되고 마을지기가 되었는지 나의 이름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아서 혹 마음이 불편한 적은 없습니까?
목사인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17년 전 처음 우리들교회에 왔을 때 정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많이 걱정했을 거예요. 주위에 계신 분들이 뭐 그냥 겸손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볼 때 팩트가 그랬습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돌아가는 상황도 모르고 지금처럼 또 목사님들이 좀 많아서 함께 묻어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또 제가 성격이 유들유들 또 원만해서 성도님들과 잘 어울리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해야 할까요?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일도 맡겨주시고 또 직분도 생기다 보니 사울처럼 겸손하게 시작한 것 같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세 여호와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나를 위한 전쟁 기념비를 세우려고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여러 번의 지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자 모임을 인도하다가 첫 번째 치리를 받았고, 다음 세대 컨퍼런스를 준비하다가 두 번째 백부장 심판으로 수요 설교를 한 후에 세 번째 몇 년 전 성탄절 행사를 마치고 나서 네 번째 치리를 받았습니다. 뭔가 대충대충 해서 칠리를 받았다기보다는 칼을 들고 창을 높이 세우며 남들보다 뭔가 다른 조금 색다른 뭔가 새로운 이태근 목사가 아닐까? 뭐가 좀 다르네 그 말 한마디 듣고 싶어서 나름 열심히 준비한 것인데 상급으로 칭찬이 아닌 치리를 받았습니다. 오늘 큐티인 본문은 왜 골리앗이라는 유명한 이름을 놔두고 그를 단지 블레셋 사람이라고 반복해서 말할까요? 주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나의 이름으로 치르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큐테인 본문에는 골리앗의 이름도 또 그들이 따르던 신들의 이름조차도 일부러 불어 익명으로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고 있던 대표적인 신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온 신상인데, 사무엘상 5장 말씀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은 언약궤를 다온 신상 앞에 갖다 놓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떻게 되었죠?
다운 신상의 목과 손이 언약궤 앞에 엎드려진 것처럼 지금 골리앗의 형국도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46절 47절 말씀을 봅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니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의 신앙 고백이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어린 다윗은 어디에서 그런 확신과 담대함이 나오는 걸까요? 허파에 바람이 들어갔을까요? 아니면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그럴까요?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고 하셨는데, 저는 목회자로 살아가는 것이 참 부담스럽고 언제 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우리들교회에 와서도 한참이나 눈이 터지기 전까지 쓸데없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목사의 직분을 경우히 여겼다기보다는 목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에 능력도 있고 지혜와 지식도 있고 머리도 똑똑하고 모든 것을 두루두루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저는 그러지 않는 것 같아서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항상 불편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모습처럼 보이는 저의 이런 모습이 실상은 내 손에 잡히는 칼과 창이 없기에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사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참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손에 잡히는 학벌과 돈이 없어서 불안하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을 이기고 이기기 위해서 나에게 꼭 필요한 칼과 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마태복음 26장에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니 칼을 토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할 것이다.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이르기를 12군단이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할 수 있는 것을 니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내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하신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또 예수님은 무리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뭉치로 나를 잡으러 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앉아 가르칠 때는 너희가 나를 감히 잡지 못하였느니라.
적용 질문입니다.
내가 내려놓아야 할 칼과 창은 무엇입니까
주의 일을 하면서도 내 이름을 앞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때로는 다윗처럼 때로는 주님처럼 내가 걸어가가야할 길은 어디입니까?
3.갈고 닦은 물매돌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는 순간, 거대한 닭온 신상이 땅바닥에 엎어진 것처럼 거인 골리앗도 쿵하고 뿌연 흙먼지를 날리면서 땅에 꼬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온몸을 갑옷으로 칭칭 감고, 머리에는 노토글을 쓰고, 다리에는 각반을 차고, 어깨 사이에는 노 단창을 메고 그 앞에는 방패 든 자도 있었는데, 골리앗은 칼집에서 칼을 한 번도 빼어보지 못한 채 속수무책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운 다윗에게 일격을 당했습니다.담임 목사님 책에 보면 이 부분을 짧게 해석해 주셨는데, 목사님이 살아오신 인생을 우리가 잘 알기에 짧지만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한 번의 승리를 했습니다. 칼이 아니라 물매로 이겼습니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자꾸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저도 칼이 아니라 걸레질로 이겼습니다. 집순이로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설교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자꾸 반복하게 하십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본문을 읽으면서 걸레질을 먼저 떠올리기보다는 할 수 있거든이 무엇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아마 이런 성구를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기적을 기대하며 전쟁터에 나간 것이 아닙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보며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답다고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취급했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을 마음속에 숨긴 것이 아니라 감춘 것이 아니라 정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골리앗처럼 상대방을 얕잡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교만한 자의 최대 약점은 방심이기에 다윗은 보란듯이 막대기를 손에 들고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다윗의 당당함은 골리앗의 방심으로 이어졌고, 골리앗은 다윗이 표적으로 삼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골리앗을 무찔렀다는 것도 은혜가 되지만 다윗이 평소 실력으로 골리앗을 무찔렀다는 것이 더 큰 은혜로 다가오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양궁 실력은 전 세계가 다 알아주잖아요. 그런데 다음 올림픽부터 말을 타며 화를 쌓아야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아마 순위권에서 좀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48절 말씀에 보면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에 주머니를 넣어 돌을 꺼내고 물매를 돌리며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향하여 던짐에 그 돌이 그의 이마에 박혔다고 합니다.
한두 번 해본 손씨가 아닙니다. 수도 없이 반복해서 실전에서 배우고 연습한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골리앗은 덩치가 매우 큰 사람입니다. 움직임이 느리고 둔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평소에 양을 치며 새끼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곰과 사자를 돌멩이 하나로 맞섰던 사람이지만, 날센 들짐승도 다루어 보았는데, 그깟 덩치 큰 오만하기 짝이 없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골리앗을 보면서 다윗이 벌벌 떨었을 리가 없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전쟁터에 나간 것도 사실이지만, 다윗은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안 하던 기도를 갑자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평소 실력대로 적당한 돌멩이를 주우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우리들교회에서 마지막으로 맡은 직분은 판교 채플 주차부 담당 사역자로 지난 1년을 보냈습니다. 주일날 저를 거치지 않으면 판교 채플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요. 진짜예요. 올 연초에는 주차증을 새로 발급해 드리면서 엄격하게 심사하고 자격 조건에 맞는 자격 조건은 이제 미취학 아동을 두었거나 치약은 안 돼요.
미취학이에요. 미취학 아동을 두었거나 70세 이상이거나 장애인이 동승하는 경우만 2차가 가능합니다. 간혹 주차증을 미리 신청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미리 신청하고 일주일 동안 심사를 해야 되는데 그냥 와서 달라는 거예요. 한 분은 80살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한 분이 오셔서 주차증을 받으러 오셨다고 하시길래 미리 신청하셨냐고 물어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눈만 뻐끔뻐끔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안 된다고 미리 신청하시고 안내 문자를 받으시고 한 주 후에 다시 오시라고 설명을 해드렸더니 옆에 계시던 주차구 집사님들이 목사님 왜 그러시냐고 아버님이신데 그냥 해드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우리 집사님들이 저의 아버지인 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아시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일단 집에 가서 며느리에게 물어보시고 신청하시고 한 주 후에 다시 오라고 그냥 돌려보냈어요.
최근에는 어떤 권사님이 2024년 주차증을 2025년 주차증으로 갱신하러 오셨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하도 엄격하게 관리를 하셔서 이 주차증을 받았지만 남편하고 같이 올 때만 사용하느냐고 1년에 몇 번 사용을 하지 못했다 하시길래 제가 웃으면서 그랬습니다.
권사님 왜 교회가 저를 이 자리에 앉혀 놓았겠습니까?
우리들교회 사역자가 많은데 그중에서 제가 가장 윤통성이 없어서 이 자리에 앉혀놓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니까 권사님도 그냥 웃으시면서 할 말이 없는지 그냥 가셨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항상 매번 엄격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을 봐서 정 안 될 것 같으면 함께 나오는 가족들도 없고 또 QR이 뭔지도 모르시는 것 같으면 그 자리에서 제가 바로바로 해드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어떤 분은 주체증을 분실하고 재발급을 받으러 오셨는데 처음부터 저의 기산을 제압하려고 하시는 건지 첫마디가 나오기가 무섭게 언플을 놓으시며 교회가 그러면 안 된다고 교회가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막 난리를 치는 경우도 한두 번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제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그렇게 하시면 재발급을 해드리고 싶어도 해드릴 수가 정말 없다고 먼저 교회의 질서를 따르기로 약속해 주셔야 재발급을 해드릴 수 있다고 골리앗과 다윗처럼 기선 싸움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한 번은 애기 엄마가 주차증을 분실하고 재발급을 받으러 오셨는데 어디에서 분실했는지를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재발급받기가 정말 까다로우니 일단 가셔서 다시 한 번 잘 찾아보시고 오라고 했는데 몇 주 후에 다른 집사님이 주차증을 갱신하러 오셨다가 그 애기 엄마 이야기를 하시면서 주차증을 분실하셔서 지금 교회 밖에 주차를 하고 새 아이를 데리고 오시는데 막내는 이제 겨우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고 제가 너무 이제 미안하고 죄송해서 전화를 드렸어요.
그랬더니 아니라고 주차 중 찾았다고 그래서 제가 정말이냐고 물어보니까 정말이라고 오늘도 교회에 주차했다고 하시길래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 애기 엄마가 정지훈 목사님의 사모인데 정지훈 목사님은 이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려나 모르겠습니다.
요즘에는 주차증을 분실하는 경우 어떻게 구제를 해드릴까 고민하다가 그냥 재발급을 해드릴 수는 없고 본인이나 가족이나 또는 목장 식구들 중에 한 분이 주일날 3회 이상 주차 봉사를 하시면 분실한 주차증을 재발급해드리고 있는데 어떤 분은 그냥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도 있고 또 간혹 어떤 분은 기분 나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지난 1년 동안 주차증을 발급해드린 분은 총 776명이고, 주차증을 가라로 신청했다가 태자를 맞히신 분이 150명이나 됩니다.
주차증은 마구 나누어 드리면 저도 인기 관리를 하고 받는 분도 기분이 당장은 좋겠지만 이미 주차증이 있어도 매주 만차가 되어서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에 앞으로 남고 뒤로 미지는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걸레질의 영성은 걸레질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복잡한 인간관계와 미묘한 감정들 속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다윗도 여덟 형제들 중에 막내로 자랐지만 사랑을 독차지했다기보다는 장남의 아이가 걱정되어서 어린 막내 아들을 정쟁터에 홀로 보낸 것을 보면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자랐는지를 눈에 보듯 선한 듯합니다.
다윗의 영성도 그러한 환경 속에서 차츰차츰 다듬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어서 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서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골리앗은 물맷돌에 맞아 쓰러졌지만 그 목숨줄을 끊은 것은 결국 자신의 칼이라고 합니다.
즉 내가 벌어놓은 돈으로 내가 죽임을 당하는 꼴이 된 것입니다. 돈이 있어서 권세가 있어서 결국은 그 칼로 내가 죽임을 당하는 형국입니다.
돈이 없으면 주식을 하지도 않고 무리한 투자에 욕심을 내지도 않았을 텐데, 나의 이름으로 칼과 창을 마구 사용하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돈과 권세로 망하는 사건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52절 말씀을 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나 가는 길가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어졌더라.
두려움에 떨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달라졌어요.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때려눕히는 장면을 통해서 전쟁은 칼과 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에 다윗과 함께 행동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53절 말씀을 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줄은 자기 장막에 두니라 블레셋 사람들을 끝까지 쫓아가야 하는데 쫓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왜 다시 돌아왔을까요? 블레셋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놓고 간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전쟁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제사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더 많은 것을 봅니다. 하지만 다윗은 따로 전리품을 취하지 않고 골리앗의 머리를 취했습니다. 다윗은 사사로운 전쟁에 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전쟁을 치루었기 때문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원시 복음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사단의 계략과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한 절 안에 다 압축되어 있는데, 그 말씀에 보면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니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장차 오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골리앗과의 전쟁에서 다 끝나지 않은 싸움을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단의 머리에 치명상을 입으시고 창세기부터 이어지는 구원 사역에 우리들 교회도 동참하기 위하여 21년 전에 우리들 교회가 세워졌고, 또 작년 겨울의 송구영신 예배를 기점으로 대구 체플이 세워진 것처럼, 올해는 올해도 송구영신 예배를 기점으로 광주 채플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광주 채플 담당 사역자로 내려가는 저도, 또 광주에서 파송받은 사역자를 기다리는 성도님들도 전리품을 취하기 위하여 거룩한 전쟁을 멈추는 악한 죄를 짓지 말고 담임 목사님이 한 영혼을 위하여 달려오신 것처럼 우리가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 될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내가 갈고 닦아야 할 나의 물매돌은 무엇입니까?
마음이 다급할 때만 능력의 하나님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던 길을 멈추고 마음을 빼앗긴 나의 전리품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는
수치와 조롱을 잘 받아야 합니다.
칼과 창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갈고 닦은 물매돌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제목
A
1.비염 심해짐, 건강관리 철저하게
2. 목장 잘나오기,
B
0.여자친구와 신결혼 잘 준비되어지도록
1.쉼의 시간을 잘 쉬며 누릴 수 있기를
2.학폭 가해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3.이직 면접 시에 회사 분별을 공동체에 묻고 가기
4.말씀을 붙들고 살 수 있기를
5.허락해주신 물질과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게 이끌어주시기를
6.가정을 중수하고 주일을 성수할 수 있는 저에게 맞는 직장으로 인도해주세요
C
1.신교제 신결혼
2.내년계획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하기
3.체력관리
4.잠 잘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