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3. 목장보고서
참석: 박영빈, 김정한, 이영찬, 안지환, 김병규
장소: 투썸 대치삼성점
<말씀 요약>
2024년 11월 3일 주일설교 녹취록
열왕기하 15:1-7
여전한 산당 제사
1027 기도회를 은혜 가운데 마쳐서 감사하구요. 우리들교회 청년들 감사들 따따블로 전해요. 붙회떨감 기도회를 했다. 아사랴는 붙으면 감사한 것도 아니고 자랑하기 바쁘다. 자기만 높이고 있다. 아사랴는 역대하에서 보면, 웃시야인데 부국강병의 대명사이다. 열왕기에는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고 산당제거하지 않아서 나병으로 치셨다. 이거밖에 없다. 오늘은 그렇게 싫어하시는 여전한 산당제사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산당을 제거하려면,
1. 겸손한 환경이 축복입니다. (공동 통치하던 때 24년)
여로보암 27년은 아사랴가 단독 통치를 시작한 해이다. 연대가 나오면 우리는 머리가 복잡하지만 제가 말해준 것 구속사적인 의미를 찾기를 바래요. 그니까 52년 중에 공동 통치한 24년 간 무슨 일이 있었나? 아버지 아마샤는 정직했지만 회개하지 않았다. 에돔을 정벌했지만 회개하지 않았다. 북이스라엘에게 점령됐다. 면목없는 죄인이 되어서 어린 아들과 공동 통치를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지막엔 예루살렘에서는 무리가 반역을 일으켜 살해됐다. 아들은 아버지가 잘나갔을 때 모습과 폐인처럼 산 모습도 봤고, 반역자 무리에게 살해되는 것도 봤다. 아버지 아마샤만 생각하면 불쌍하고 억울하다.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북이스라엘도 밉고 유다 지도자들도 밉도 아버지를 죽인 반역자들과는 철천지 원수가 됐다. 유다왕들이 상처와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아버지 인생을 보며 상처와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역시 반역으로 죽은 아마샤 아버지. 이제는 상처와 연민이 아사랴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차례대로 읽어야 이게 알아보는거다. 이렇게 아사랴는 겸손한 환경에 있었어요. 자랑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었어요. 상처와 연민만 가득했고 왕권도 허울 뿐이었다. 요아스도 아마샤도 정직했기에 아사랴도 성품으로 정직함을 물려받은 것 같다. 믿는 집에서 자란 사람이었기 때문에 신결혼해서 아들을 믿음으로 키울 수 있었다. 믿음의 양육은 고난중에 빛을 발한다. 아사랴의 이름을 웃시야라고 했어요. 웃시야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이 있는데 역대기는 죄인적인 관점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그래서 웃시야가 특히 그런데 아주 굉장히 중요한 기록이 거기 있었다. 웃시야가 하나님을 찾았다. 무슨일이든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을 묻고 의지했다. 하나님의 선지자 스가랴가 사는 동안에. 우리가 스가랴서를 통해 아는 스가랴와 다른 사람이다. 웃시야 할아버지 요아스도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교훈을 들었다. 아사랴는 겸손할 수밖에 없는 고난 가운데 다른 우상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은 우시야를 엄청 형통하게 하셨다. 패배 후 15년을 겸손히 지냈는데, 하나님을 찾는것 말고는 길이 없었다. 패배가 변하여 형통이 되었어요. 잘나가서 아니라 하나님을 찾을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와서 큐티하고 공동체에 붙어있었더니 결혼도 하고... 하나님을 찾았더니 형통케 해주신다. 그런 간증이 너무 많다. 웃시야의 형통은 대단했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의 성공과 견줄만했다. 역대하에 보면 블레셋과 암몬을 물리쳤다. 농사도 크게 일으키고 장수도 2600명이 넘었고 군대도 30만이 넘었다. 시내 반도까지 세력을 회복해서 항구도시 엘랏을 건축할 수 있었다. 웃시야의 형통이 얼마나 컸는지 웃시야의 이름이 인근나라에 널리 퍼졌다. 강성해진 결과이다. 형통의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데 있있는 것이.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며 우리 인생의 상급 이십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의 환경이 비천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겸손한 환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남을 탓하며 원망합니까? 하나님의 양육을 잘 받고 있습니까?
형통의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데 있는데, 다 이렇게 이거를 거꾸로 한다.
2. 강성하니 산당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14년의 부국강병 시대)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도 7절로 끝났는데, 아사랴의 52년 인생도 7절로 요약이 됐다. 아사랴가 정직히 행했다는 칭찬. 산당제사 나병걸린거 이거만 기록이 됐다. 산당은 기복신앙과 성공복음의 상징이다. 형통하게 되었는데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 그전에는 대신들 말을 들어야 하니까 제거하지 못하고 그러다가 익숙하게 되어서 악인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남유다의 성군에 속하는 왕들이 아무도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제사를 드렸다. 똑 같은 원인. 왕이 제거하지 않아서 백성들은 여전히. 왕이 제일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200만 성도들이 함께 기도를 했어요. 포괄적차별금지법이 무서운 것이 뭐냐면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더 익숙하고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 악법이라는 것이다. 어떤 산당을 짓고 제사를 드려도 다 옳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물론 우리가 침묵하는 게 더 포용적이고 교양있게 보여요. 그러나 우리 자녀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별 생각없이 내버려두면 우리 자녀들은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살게 되는 것이다. 제가 유언으로 남겨야 된다고 부르짖은 것이다. 한쪽에서는 이런다. 아니 목사들이 훨씬 더 나쁘고 불법을 행하는데 왜 그런 것을 위해서는 불법을 막아달라고는 기도 안하고 동성애자들 소수인권을 위해서는 이러냐. 그런데, 동성애자는 사랑해야 하는데 동성애가 죄인 것은 생명을 낳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영혼구원이 똑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게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이기 때문에 이 얘기는 행위와 믿음의 차원이 다른 얘기다. 그런데 대형교회 목사인 히스기야도 개혁을 했지만 잘못을 했다. 행위로 보면, 우리가 유다하고 며느리는 동침을 했어도 예수님의 조상인데 롯하고 딸은 동침을 했어도 불륜이다. 이것은 알아듣게 설명하기란 너무 어려우니까 내가 이제 애통절통으로 한 것이다. 그러니까 늘 지금 요즘에 중학교 1학년때 친구들가운데 동성결혼에 대해서 토론 배틀이 열렸는데 16명 중에서 15명이 동성결혼을 찬성했다는 거에요. 걔네들이 하고 싶다는 데 그걸 왜 막냐고, 그런데 우리들교회 중학교 1학년 학생이 혼자서 반대를 했는데 동성애는 하나님이 죄라고 했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1년 이상을 왕따를 당했다. 그러니까 그럴듯한 말에 다 포괄적 여기에 넘어가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라고 하니까. 이거는 워딩을 바꿔야 한다. 동성애 금지법. 이게 아주 교모한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알아들었어요? 그러니까 서명해야되죠? 100만명. 그러니까 이제 금세 독일에서 성적결정권이 통과가 됐다. 독일에서 학교 갔더니 자녀 친구가 난 오늘부터 여자할거야 그러면 그걸 차별이라고 말을 못한다는거에요. 알아들어요? 근데 지금 OECD중에서 한국만 남았다. 모든 것을 다 반대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이건 우리가 시의적절하게 잘 모여서 기도를 했다라고 생각한다. 산당은 내 주장으로 내생각으로 잘 되기 위해 비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 잘되는 좋아하고 안되면 싫어하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이 잘못되면 우리가 연장 맷돌 가지고 빠져 죽어야 한다. 너무나 가슴이 애통하죠. 자식도 그렇고 성도도 그렇고 내 거울인 것이다. 이 죄악은 역대기는 여설히 고발한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했다고 한다. 무슨악? 강성해지니까 제사장들을 제치고 성전에서 자기가 직접 향단에 분향을 하려 했다는 것이다. 너무 강성해지니까 마음이 높아지니까 드디어 눈에 뵈는게 없어진 것이다. 눈치볼 사람도 율법도 질서도 다 없어진 거에요. 자기에 하나님이 되었어요. 게다가 웃시야는 제사장들을 향해서 이제 칼을 들었어요. 할아버지 아버지를 괴롭혔고 반역해서 죽였다는 거에요. 가족의 사연을 넘어서기가 객관적으로 보기가 너무 어려워요. 한이 쌓인 웃시야는 최고 제사장들인 제사장들만 보면 이가 갈린다. 단지 힘이 없으니 눈치보면서 네네했는데 강성하니까 복수하려고 한다. 할아버지 요아스도 여호야다 밑에 있을때는 꿈쩍도 못하다가 없어지니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다. 지금 똑 같은 것이다. 그래도 정직한 사람인데 양심의 가책은 있어야 하는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너무 형통하고 강성하니까 잘못인지도 모른다. 지위를 갖추게 되면 그 사람들 만을 다 들어야 한다. 밑에 사람들이. 윗사람 한사람이 잘못해서 산당제사를 드리는데,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는거에요. 형통이 강성함으로 이어져도 양심도 이겨버리는 거에요. 이것이 인간의 본 모습이다. 날 때부터 죄인이다.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보다 못한 제사장 아사랴(왕과 다른 아사랴이다)와 용맹한 제사장. 아사랴와 제사장 80명이 항의를 해요. 용명한 제사장. 향단에 분향하는 것은 제사장만 하는 일인데 왕이하는 것은 범죄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얻지 못할 거라고 말한다. 이 사람들은 용기가 있는 제사장들이에요. 웃시야는 81명이 만류하는데 (진짜 제사장들이 말을 하는데) 듣지 않아요. 화를내요. 웃시야는 집단으로 몰려와 항의하는 것에 대해서 트라우마가 있어요. 무리가 아버지를 반역했자나요. 이것이 산당제사를 평범한 일상으로 드리며 끝내지 않은 인생의결론이다. 인간론을 알게 되면 아무리 부러운 사람도 부러워하지 않고 아무리 이상한 사람도 오직 믿음이 이기네를 인정하게 됩니다. 구속사는 최고의 지혜를 갖게 되는거에요. 웃시야를 부러워할게 아니고 인생 전체를 보면 불쌍한 것이다. 복수는 나의 힘이라고 있는 것이다. 산당 예배를 자기연민으로도 못끊고 강성해지니까 못끊고 죄가 죄인줄 모르고 듣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가난하면 듣고 부유하면 안들어요. 우리 인생은 가난하면 말 들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가난한 사람 전도해야 돼요 이때가 들릴 때니까 부유하면 안 들려요 돈과 지식이 있으면 안 들려요. 산당을 제거해야 여전한 산당 예배가 멈추는데 중요한 게 제거하지 않아요 익숙하고 평범하니까 내버려두는 거에요. 겸손한 환경을 잠을 깨어주기라도 하니까 축복인데, 강성하면 여기가 좋사오니 이러면서 편한거 찾고 더 가지려 하고 더 높아지려고 하고 이것이 산당 제사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산당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 욕심만 채우려는 것. 모두 산당이다. 나쁜 습관 중독 없앨 수 있는데 없애지 않아 누구도 죄라고 하지 않으니까. 동성애를 죄라고 하지 않으니까 내가 옳다는 확신 이것이 산당이다. 연약함에 숨어서 교묘히 내 주장만 하는 것도 산당이다. 산당을 내려버려두면 우리는 산당제사를 끊을 수 없다. 여전한 산당제사를 제거하는 비결은 적용을 해야하는데, 여전한 산당제사는 여전히 여전한 방식의 날마다 큐티. 날마다 말씀으로 오늘부터 하나씩 적용하는 거에요. 날마다 산당을 드리니 날마다 말씀으로 깨야한다.
적용질문: 내 욕심과 교만으로 추구하는 내 산당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하겠습니까?
3. 하나님이 치십니다. (나병의 14년)
형통함과 강성함가운데 교만해진 웃시야를 여호와께서 치셨다고 해요. 치셨다 히브리어는 '나다'인데요. 웃시야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위해서 웃시야를 치신 거에요. 성도는 구별된 사람이에요. 만인 제사장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성도인 나를 치실 수 있다. 고치기 위해 하나님이 손 보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치셨다 손 보셨다고 말씀하신 왕은 웃시야가 유일하다. 손 보심은 특별한데, 어떻게 특별한가 보니까 웃시야 왕이 제사장들에게 화를 버럭 낸 바로 그 자리에서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다 보는 앞에서 바로 나병이 걸려버렸다. 나아만 장군처럼 옷으로 감출 수도 없고 이마에 하나님이 저주의 상징처럼 도장을 찍어 주셨다. 웃시야도 하나님이 치시니까 속히 나갈 수밖에없었다. 죽는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서 별궁에 거했다. 예배 한번 드린거 가지고 뭔 나병을 주셔 나아만보다 게하시보다도 혹독하게 치셨다. 52년간 수많은 치적을 베풀고 왕으로 살았는데 하나도 열왕기에 기록되지 않고 산당에서 제사드리다가 하나님이 쳐서 나병걸렸다 이거밖에 없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아사랴처럼 혹독하게 다루지 않았는데 남유다의 아사랴는 정직하게 살았는데도 나병환자로 살다가 별궁에 거했다. 죽었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39년부터 나병환자가 되어서 52년까지 혹독한 벌을 받았는데 왜 이렇게 아사랴(웃시야)를 쎄게 벌하실까요? 이 세상 교만중에 가장 큰 교만은 영적 교만이다. 근본적으로 다른 왕은 영적 교만이 뭔지도 모른다. 믿음자체가 없으니까. 웃시야는 자기가 봐도 자기가 완전무결해요 그러니까 저절로 하나님 자리에 와있는게 모두를 가르치려고 하는게 하나님 자리에 가 있는 교만이다. 아사랴가 52년간 왕위에 있는데, 하나님이 하신건데 그래서 이제는 제사장까지 되었어요. 이미 스가랴가 죽고나서 아사랴는 제사장을 앉혔어요. 북이스라엘 왕은 엘리야 엘리사를 계속 찾았는데 아사랴는 너무 잘나서 안찼는다. 어느 순간 하나님 자리에 가서 맘대로 해도 된다 싶은거에요. 북이스라엘 여로보암이 제사장을 마음대로 세워서 아에 역사에서 없어졌는데, 웃시야는 그걸 보고도 영적 교만 자리에 올라갔다. 하나님 보다 위에 올라가고자 하는 이 죄를 하나님이 두고 보지 않으신다. 웃시야가 그 역할을 하려고 갔다. 사람이 지위와 권세가 있게 되면 하나님의 영역을 넘보는 거에요. 없으면 아에 넘보지도 않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믿음 없이 영적 영역에 도전하고 싶어해요. 인간은 믿음이 있거나 없거나 가르치고 싶어한다. 사람이 자존심의 동물이고 인정받기를 좋아하다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모이니 교회에서 문제가 생긴다. 다 영적인 영역의 일인데, 그런 육적인 영역에서 보니까 저 사람은 왜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데 왜 저렇게 좋아하지? 잘 가르쳐서 그런가? 그러니까 본인도 가르치고 싶어해요. 세상에서 뭘 갖추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영적인 것을 육적으로 해보려는 마음이 생기는 거에요. 오늘 아사랴가 다 가졌는데, 제사장이 받는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거에요. 구원 때문에 저절로 되는 것인데 인위적으로 하려고 하니까 열매가 없는 것이다. 그 속에 야망이 있으면 사망이 임한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열매가 생기지 않는다. 자기 지위로 강성해지니까 상처를 준 제사장들이 실력이 없다는 거에요. 할아버지 때부터 아사랴 마음속에는 제사장들은 전부 죽일 놈들이야 다 틀렸다는 거에요. 그니까 이제 그 이거를 제대로 해석할 수가 누가 있겠어요.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천 년이가도 해결이 안되는 것이다. 내가 80명의 제사장은 용맹이 있는 사람들인데도 고정관념에 의해서 내가 너네보다 낫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에 질서를 주셨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질서를 강조하니까 우리들교회가 싫다고 하는 살마들이 있어요. 강성해지니까 이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몰고가는 거에요. 예전의 제사장들 때문에 할아버지 아버지가 죽었다. 이제 복수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죽인 자의 아들들인데 왕으로 세워준 것인데, 원수를 어떤 경우에도 내가 갚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산당은 항상 내 입장만 옳기 때문에 내 입장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에요. 그래서 공동체도 내 편 들어주는 사람과만 놀고 그런다. 그 제사장들이 할아버지 죽였지 그 제사장들 죽여, 죽여 이러는 거에요. 그러니 이게 인간론이니 일희일비 하지 않아야 한다. 용서는 최고의 복수인데 복수는 나의 힘 이러고 사는 것이다. 아사랴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나의 도움이시라 인데, 도와주시니까 교만해졌다. 웃시야왕이. 나병이 임해서 별궁에 살게 됐다. 역대하는 이 단절의 핵심을 짚어 알려주는데, 거기서 끊어지면 다른 관계도 다 끊어진다. 나병보다 훨씬더 무서운 것은 성전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아사랴는 왕위도 아들 요담에게 맡겨야 했다. 여전한 방식으로 제사하단 산당도 갈 수가 없게 됐다. 돈과 권세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밑동 잘린 나무가 맞고 믿음이 최고네가 맞는 것이다. 분리의 집인 별궁에서 연명하다가 죽게 되는 것이다. 믿음으로 결혼하는 게 최고다. 지난번 신교제스쿨에서 14커플이 짝이 지어졌다. 이상한 애들이 만났는데 이혼을 안하자나. 제대로 되면 결혼을 안하고 이상하면 결혼을 하네. 믿음은 큐티하고 공동체에서 나누는 것이다. 축복을 주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하도 급하니까 우리들교회를 축복하시는 거에요 청년부를. 일단 이혼 안하잖아. 웃시야처럼 모든 걸 갖추면 뭐해 교만해서 문둥병이 발했는데. 그런데 예수씨 때문에 다른 왕들처럼 유다왕 역대지략에 기록되게 하신다. 조상들과 장사되게 하신다. 아들 요담이 왕위를 이어가게 하시니까. 나병에 걸렸어도 영적 자녀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웃시야를 치신 심판이다. 이것이 그냥 때린게 아니고 손보신 거라고 했다. 고쳐쓰려는 손길이다. 같은 매라도 패는 것과 손보는 것은 다르다. 손보는 것은 살리려는 것. 그런데, 내가 우리 아이 손좀 봐 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가서 패서 죽여버리면 뜻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벨론에게 손 봐달라고 맡겼는데 결국 바벨론도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패는 것이 아니고 손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별궁에 거하게 하신 것이다. 내가 사명자로 살기 위해서 내 안에 비워야 할 것이 많이 남아있다. 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 겸손한 환경에서 하나님을 찾으니까 기이한 도우심을 힘입어서 형통하고 강성했어요. 그런데 형통과 강성함으로 자기를 높이니까 한순간에 저주받은 자리로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망한 인생이 되었다.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다 별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시기마다 별궁에 거하게 하신 것이 인생 최고의 축복이다. 나의 나병 발한 것을 여러분들은 이제 아셔야 돼요. 내가 나병환자라는 것을. 그런데 우리들교회가 또 열매가 있으니 교만해지지 않게 과부로 여자목사로 늘 구조적으로 별궁에 거하게 하신다. 그 가까운데 같이 사는 사람이 이러고 저러고 이것이 구조적으로 별궁에 거하게 하시니까 하늘이 열리면 보이는게 교만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은 구조적으로 교만하다. 이렇게 200만명이 모인 적이 없는데 거기서 설교했다고 여러분들은 내가 교만할까봐 너무 걱정이죠. 말 안해도 알아. 그니까 850명의 바알 아세라 선지자 물리쳤는데 엘리야가 이세벨이 죽이려고 하니까 도망갔잖아요. 어김없이 꼭 제가 그런 꼴인 거에요.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별궁에 나를 가두세요. 참, 희안한 일이에요. 아들이 통치를 해도 뒷방 늙은이가 되어서 나병걸리니 아무도 안찼는데 외로운 이 산장에 그런데 아사랴가 믿음이 있어서 자살하지 않았다. 성경적으로 안락사는 성경적이 아닌 것이다. 자살은 절대로 성경적인게 아닌거에요. 아사랴가 잘한 거에요. 나병걸려서 별궁에서 혼자 살았기 때문에. 인권이 요즘 왕 노릇하니까 자살이 또 아름답게 보인다. 다 따라 죽는다. 그러니까 이런 진리가 맞는데 진리라고 말하지 못하니까. 그동안 우리는 늘 해오던 대로 나가서 기도했지만 그 통곡이 쏟아진 것이다. 자살이 죄다 그러면 또 뭐라 그러고 이러니까. 아사랴가 자살하지 않았어요. 아사랴는 이 땅에서 형벌을 다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빨리, 제가 교만해서 나병걸렸어요. 회개했으면 그랬으면 주님이 빨리 고쳐주셨을 텐데. 우리가 인정이 안된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회개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사랴는 마태복음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는거에요. 아달랴가 못올라갔지만 이세벨의 딸. 아사랴는 14년이 필요했다. 자기 성찰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그 많은 날들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밑동 잘린 나무 같은 인생. 이런 영적 교만가지고 이 땅에서 보여줄게 별궁 나병 이런 거 밖에 도구가 없기 때문에. 뼈저리게 와서 닿는 거에요. 이렇게 기도를 내가 교양있게 통곡할 수는 없는 거에요. 꼭 오늘 내가 죽는다는 마음으로 내가 생명 내놓고 기도해왔잖아요 구원 때문에. 생명을 내놨는데 너무나 진리를 진리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자살이 미화되고 인본주의 결혼안하고 낙태 이런 것들이 그 얘기를 죄라고 말도 못하고. 그런데 예전에는 별 소리 다했다. 아사랴는 역대하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의 웃시야로 불린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도 부르심을 받았어요. 웃시야가 너무 강성하니까. 마지막까지 나병이 걸렸지만 웃시야를 너무 좋아했다고 하잖아요. 별궁 같은 상황에서 웃시야가 완전히 죽어야만 사명이 가능한 것이다. 별궁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여전한 산당 제사 드리는 나를 쳐서 악을 비워 버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너무나 므낫세는 55년 재위. 최고로 악한 왕이다. 나병 걸렸다. 그런데 웃시야와 가장 최고로 악한 므낫세가 마태복음에 올라갔다. 그러니까 행위로는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어려운 얘기를 어떻게 알아들을까. 금세 또 영적교만으로 마지막 14년은 나병에 걸려서 별궁에 거하니까. 가장 강력한 왕인 웃시야의 인생을 보면 별인생에 없어서 슬퍼요. 학벌을 좋아할 것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학벌과 돈 가지고 제사장을 치는데 쓰잖아요. 내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는 거에요. 힘든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오자나요. 결혼을 해봐야 하는데, 어디를 가도 하나님은 절대로 최고로 여러분들에게 형통함을 주실 줄 믿어요.
적용질문: 여호와께서 치신 사건이 있습니까? 어떤 별궁에 갇혀 있습니까? 별궁 같은 상황에서 내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공동체를 통해 채워주시는 은혜를 어떻게 누리고 있습니까?
<목장 나눔>
A: 제가 추구했던 산당이 사람들이랑 관계를 하지 않고 회사에서 일을 잘하며 잘 적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회사에서 적응 못하고 나오게 되었던 것이고 이것이 치시는 사건이었던 것 같다. 말씀 들으면서 내가 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B: 내가 드리는 산당은 음란 중독인 것 같다. 죄인지는 알지만 잘 끊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C: 사실 말씀이 아직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다만, 와닿았던 것은 내가 상대가 미우면 끝까지 복수하는 편이라 아사랴에 대한 말씀을 들으며 많이 찔렸던 것 같다.
D: 첫 번째 적용질문에 대해 답하자면 어릴 적에는 가난한 환경에 대해 많은 불만이 있었고 돈의 우상이 되어 많이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가난한 환경 속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부모님께 감사함이 들고 인정이 되는 것 같다. 요즘에는 가난한 환경이 지금 나에게 별궁인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의 환경이 감사한 환경임이 깨달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