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3 여전한 산당 제사
열왕기하 15:1-7
1027 기도회를 은혜 가운데 마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와 주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정말 천국에서 만나는 것처럼 기쁘더라고요. '어유, 저기도 분홍 모자가 있네.' 아주 신의 한 수였어요. 특히 청년들에게 너무 감사에 감사를 전합니다. 또 어제는 붙회떨감 기도회가 있었는데요. 수능 전에 한 번 더 모였어요, 이른비 기도회. 나중에는 늦은비 기도회.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하라는 뜻인데요. 이것이 구속사적 의미인데 우리는 여전히 세속사적 감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수능을 앞두고 떨어진다의 떨자만 들어도 우리는 싫은 거예요.
그런데 오늘 아사랴는 거꾸로 해서 붙으면 감사한 것도아니고 자랑하기 바쁜 거예요. 그래서 아사랴는 역대하에 보면 부국강병의 대명사인데 열왕기에서는 산당 제거하고 나병, 2개 밖에 없어요, 언급이. 그래서 이제 오늘은 그 얼마나 이 산당 제거하지 않은 게 큰 죄인지 산당 제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1.겸손한 환경이 축복입니다. (공동 통치하던 때 24년)
1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이십칠년에 유다 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육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이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골리야라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 자, 1절 여로보암 제 27년은 주전 767년으로 아사랴가 단독 통치를 시작한 해예요. 2절은 그가 왕이 될 때 16살이라는 것은 24년 전인 BC 791년에 아버지 아마샤와 공동 통치를 시작한 해를 말합니다. 여러분들 연대가 나오면 머리가 다 살짝 복잡해지죠? 그렇구나 하고 그냥 들으세요. 52년 중에 공동 통치한 24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버지 아마샤는 정직했지만 회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에돔을 정벌하고 나니까 금세 교만해졌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왕 여호아하스에게 '네가 감히.'하면서 도전장을 던졌어요. 그런데 완전히 패배해가지고 예루살렘까지 점령되는 초유의 일을 겪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면목 없는 죄인이 되어서 어린 아들과 공동 통치를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어요. 그러다 마지막엔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반역을 일으켜 살해되었습니다. 아사랴는 이 모든 일을 다 보고 겪으면서 성장을 했어요. 아버지가 제일 잘나갈 때의 모습도 봤어요. 인생 최악의 패배를 당해서 폐인처럼 산 것도 다 보았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 자기 편 반역자 무리에게 살해되는 고통도 다 겪었습니다. 아버지 아마샤만 생각하면 너무 불쌍하고 억울합니다. 아버지를 이렇게 만든 북이스라엘도 너무 싫고, 밉고. 아버지를 압박하고 계속 잔소리한 유다 지도자들은 더 밉습니다. 게다가 아버지를 죽인 반역자들은 이제 철천지 원수였어요. 여러분, 특히 요아스 이후 유다 왕들이 이렇게 상처와 연민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할아버지는 대제사장 고모부 밑에 평생을 눌려 살다가 마지막에 신복의 반역으로 죽은 그 요아스가 있자나요. 그런 아버지 인생을 보며 상처와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도 같은 길을 가다가 역시 반역으로 죽은 아버지 아마샤가 있죠. 그런데 그 상처와 연민이 아사랴에게까지 지금 이어지고 있어요. 다윗 왕가에 이러한 연약함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누구도 몰랐을 거예요. 우리가 사무엘상부터, 룻기부터, 아니 창세기부터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차례대로 읽어야 알 수 있는 거죠. 이렇게 아사랴는 겸손한 환경에 있었어요. 자신을 높이고, 믿고, 자랑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었어요. 그저 마음에 상처와 연민만 가득했어요. 왕권도 또한 허울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요아스도 아마샤도 정직했기 때문에 아사랴도 성품으로 정직함을 물려받았습니다. 게다가 아사랴 엄마가 예루살렘 사람 여골리아였어요. 여호와는 능하시다는 뜻인데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아마샤가 신결혼해서 그래도 아들을 그래도 믿음으로 키울 수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양육은 고난 중에 빛을 발해요. 역대하 26장에 그 아사랴의 다른 이름이 웃시야로 나와요. 웃시야는 우리들교회 다 알죠? 이 아주 자세한 기록이 있는데요. 같은 역사를 열왕기는 공동체 관점에서 기록했고, 역대기는 구속사적인 개인적 관점에서 기록했기 때문에 더 자세히 기록이 됩니다. 웃시야가 특히 그런데 아주 굉장히 거기 중요한 기록이 있더라고요. 26장 5절에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웃시야가 누구를 찾았어요? 하나님을 찾았다고 해요. 무슨 일이든 스가랴를 통해서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는 거예요. 우리가 스가랴서를 통해 아는 그 스가랴와는 다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웃시야 할아버지 요아스도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 교훈을 들었자나요, 그렇죠? 웃시야는 왜 하나님을 찾았을까요? 엄마를 통해 믿음으로 양육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고난 가운데 절망하거나 다른 우상을 찾지않고 하나님을 찾았을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웃시야를 형통케 하셨어요. 패배 후 15년을 숨죽이며 지냈는데 그때가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자나요. 하나님 아니면 기댈 존재가 없어요. 하나님을 찾는 것 말고는 길이 없는데 하나님을 찾았더니 패배가 변하여 형통이 되었어요. 웃시야의 형통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성공과 견줄만 했어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요. 역대하에 보면 블레셋과 암몬을 굴복시켰어요. 무너진 예루살렘성을 중수했어요. 농사도 크게 일으켰고, 군대를 재건했습니다. 장수만도 2600명이 넘고, 군대는 무려 30만 7500명이었어요. 그러니 남쪽 시내 반도까지 세력을 회복해서 항구도시 엘랏을 건축할 수 있었다고 14장에서 말씀드렸어요. 웃시야에게 주신 형통이 얼마나 컸는지 인근 나라에까지 이름이 널리 퍼졌다고 해요. 26장 15절에 보니까 또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화살과 큰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그것이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해진 결과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형통의 비결은 오직 하나님을 찾는데 있는 거예요.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며 우리 인생의 상급이신 줄을 믿습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여러분의 환경이 비천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겸손한 환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남을 탓하며 원망합니까? 하나님의 양육을 잘 받고 있습니까?
2.강성하니 산당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14년의 부국강병 시대)
4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고
-> 이 관용어가 똑같이 나오는 거예요. 왕이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이 여전히 산당 제사를 드린데요. 그러니까 제일 죄인이 누구예요. 왕이자나요, 그렇죠? 왕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으니까 백성이 다 따라서 한다는 거예요. 유다에서 산당 제거한 왕이 둘이 있는데 히스기야하고 요시야예요. 그 사람도 죄가 없는 게 아니라 죄가 많은데, 아유 이거 알아들을란가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도 7절로 그 인생을 정리했는데 이 아사랴의 52년 인생도 이 열왕기에는 7절에 요약이 됐어요. 3절에 이 아사랴가 정직히 행했다고 했는데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라 이런 뜻이에요. 그 한 절에 치적을 그냥 다 언급한 거예요. '정직히 행하셨다.' 요거 한마디 칭찬해줬어요. 그리고 4절, 5절, 6절이 실정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사랴의 인생은 산당하고 나병, 이거 2개 밖에 없어요. 진짜 이 산당은 기복 신앙과 성공 복음의 상징이에요. 그러니까 공동 통치할 때는 자기 연민에서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어요, 남들이 다 산당 예배 드리니까. 이 형통하게 되니까 또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 전에 아버지 때문에 숨 죽이고 대신들 말을 들어야 하니까 자기 연민이 하늘을 찌르자나요. 그러다가 이 산당이 너무 익숙해서 평범하게 되어서 악인지도 모르게 되었어요. 그 여호사밧왕, 아사왕 성군들이 다 왕마다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태여 제거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예요. 우리가 지난 주일에 200만 성도들이 함께 기도했어요. 포괄적차별금지법이 무서운 게 뭐냐면 죄를 죄라고 말하지고 못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래서 죄를 더 익숙하고 평범하게 만드는 것이 그야말로 악법인데요. 어떤 산당을 짓고, 어떤 산당 제사를 드려도 다 옳다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물론 지금 우리가 침묵하는 게 더 포용적이고 지적이고 교양 있게 보여요. 그래요, 우리 체면 생각하면 그렇게 다 용납하고 내버려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을 생각해야 돼요.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내버려두면 우리 자녀들은 죄가 죄인줄도 모르고 살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유언으로 남겨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목사들이 더 나쁘다. 더 불법을 행하는데 왜 그런 거를 위해서는 불법을 막아달라고 기도 안 하고 이 동성애자들의 소수 인권만 막아야 된다 그러냐. 그건 보호 받아야 된다.' 이러면 이거 맞아보이자나요. 이게 회개 없는 정직을 말하니까. 여기서 큰 차이는 동성애자들을 미워하는 게 아니고, 동성애는 성경에서 죄라고 하는데 왜 죄냐하면 생명을 낳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생명과 영혼 구원이 제일 중요, 육적인 생명이 중요하고 영혼 구원이 중요한데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이기 때문에 이게 행위와 믿음의 차원이 아주 다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목사님들도 목사님들도 죄 있는 거 알아요. 히스기야도 죄 있어요. 그런데 이게 구원이냐, 행위냐. 그러니까 이거 우리들교회 중학교 1학년 애가 동성 결혼에 대해서 토론 배틀이 열렸는데 16명 중에서 15명이 동성 결혼을 지지했다는 거예요. '소수 인권은 보호 받아야 된다.' 그러니까 얘만 '아니다. 하면 안 된다.' 왜? '성경에서 하나님이 죄라고 했기 때문에 안 된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가 지금 1년을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알아듣겠어요. 그런데 이게 딸 사위, 아들 며느리를 보게 되니까 지금 이번에 그냥 그래도 전국 각지에서 모였어요. 그러니까 산당이란 결국 내 생각으로, 내 주장으로 잘 되기 위해서 비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생각으로 잘 되면 교만하고 안 되면 절망하는 거예요. 내가 그 기복을 제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 자녀, 내 백성이 산당을 제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잘못되면 우리가 다 연자뱃돌 가지고 빠져야 되는 거예요. 너무 가슴이 애통해서요. 그러니까 결국 자녀도, 성도도 다 내 거울인 거예요. 이 죄악을 역대기는 여실히 고발하는데 웃시야가 이렇게 강성해지니까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했다고 합니다. 무슨 악을 행했을까요. 역대기를 읽어 보면 제사장들을 제치고 성전에서 자기가 직접 향단에 분향을 하려 했어요. 너무너무 강성해지니까, 마음이 너무너무 높아지니까 드디어 눈에 뵈는 게 없어진 거예요. 거치는 게 없어졌어요. 눈치 볼 사람도, 율법도, 질서도 없어졌어요. 자기가 하나님이 되었어요. 게다가 지금 웃시야는 그 제사장들을 향해서 이 속에 그냥 눌러두고 있던 분풀이 하는 거예요. 제사장, 귀족, 지도자 이 사람들이 결국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그렇게 괴롭혔고, 결국 반역해서 다 죽였자나요. 가족의 사연을 넘어서기가 이렇게 어려워요.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너무 어려워요. 이렇게 상처와 연민으로 한이 쌓인 웃시야, 아사랴는 최고 지도자 격인 제사장들만 보면 저절로 이가 갈리는 게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동안 단지 힘이 없으니까 눈치 보면서 '네네네네.'하고 있었는데 이제 형통하고 강성해서 두 손에 큰 힘이 생기니까 복수하는 거예요. '내가 너희들을 제꼈다. 제쳤다.' 이걸 확실히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할아버지 요아스하고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여호야다 아들 스가랴를 성전에서 본보기로 돌로 쳐 죽였자나요. 눌렸던 분이 강성해지면 다 똑같아요. 그래도 정직한 사람인데 양심의 가책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형통하고 강성하면 양심도 다 이겨버려요. 잘못인지도 모르게 되어있어요. 본인 보기에는 당연한 일 아니었겠어요. 내가 성공했는데, 이 백성들에게 물질을 줬는데, 굶지 않게 해줬는데, 이 얼마나 유명한 왕인데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게 우리 모두의 본 모습이에요. 날 때부터 죄인 맞아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한결 같이 그래서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는 거예요. 보다 못한 제사장 아사랴와 용맹한 제사장 80명이 항의를 하는 거예요. '향단에 분향하는 일은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왕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이렇게 질서를 깨뜨리는 것은 범죄예요. 왕이 범죄했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웃시야는 81명의 제사장, 그것도 용맹한 제사장이 만류하는데도 듣지 않아요. 오히려 화를 냅니다. 그냥 화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버럭, 아주 폭발적인 분노를 쏟아냈어요. 이 아사랴께서는 집단으로 몰려와 항의하면 트라우마가 하늘을 찔러요. 아버지가 무리가 와서 죽였자나요. 이것이 산당 제사를 평범한 일상으로 여기며 끊지 않고 여전히 드린 인생의 결론이에요. 죄가 죄인 줄 모르고 반복하는 악의 끝은 귀가 막히는 거예요. 듣지 못하는 거예요. 듣기 싫어요. 왜요? 내가 제일 옳기 때문이에요. 내가 옳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것 하지 말라고 하면 화를 내는 거예요. 그래서 한 마디로 가난하면 듣고 부요하면 안 들어요. 가난하면 그냥 듣는 척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으니까. 산당을 제거해야 여전한 산당 제사가 멈추는데 산당을 제거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중요한 건 제거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제거하지 않는 거예요. 왜? 익숙하고 평범하고 편하니까 내버려둬요. 아주 영적으로 잠이 들어있는 상태인 거예요. 겸손한 환경은 이런 잠을 깨워주기라도 하니까 이미 축복이라 그랬자나요. 그런데 형통하고 강성하면 그냥 여기가 좋고 이대로가 좋사오니 할 수 있는 게 많아져요. 그래서 계속해서 여전히 편한 거 찾고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높아지려 하고 그래서 산당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게 지금 우리 사회 모습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레데 같아요. 정말 1027을 통하여서 제 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믿는 자, 사람이 진리를 수호할 수 있기를 소원하는데요. 우리는 정말로 이 산당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 욕심만 채우려는 수고, 높아지려는 노력, 내가 다 가지려고 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다 제치려고 하는 일들이 모두 산당이에요. 나쁜 습관, 중독, 내가 옳다는 확신, 이거 다 산당이에요. 연약함과 아픔 뒤에 숨어서 교묘히 내 주장만 하는 것도 산당이에요. 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고 내버려두니까 백성들이 여전한 산당 제사를 끊을 수가 없어요. 집에서는 가장이 끊어야 되고, 목사야 끊어야 되고, 지도자가, 위정자가 끊어야 하는데 이 한 사람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몰라요. 여전한 산당 제사를 제거하는 적용은 또 여전히 여전한 방식의 날마다의 큐티와 적용이에요. 여전히 산당 제사를 지내지만 여전히 큐티하면 이걸 막을 수가 있는 것을 믿습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내 욕심과 교만으로 추구하는 내 산당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하겠습니까?
3.하나님이 치십니다. (나병의 14년)
5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 6 아사랴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7 아사랴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다윗 성에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5절에서 7절입니다.
형통함과 강성함 가운데 교만해진 웃시야를 여호와께서 치셨다고 하지요. 그러니까내 자신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위해서 아사랴를 치는 거예요. 치셨다 히브리어는 나가인데 만지다, 닿다 이건 단순히 매로 때렸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고치기 위해 이리저리 만지고 보살폈다는 거예요. 손 보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이 많았어요. 40명이 넘죠. 그런데 그 많은 왕 중에 '하나님이 치셨다, 손보셨다.'고 말씀하신 왕은 이 아사랴가 유일합니다. 웃시야가 유일해요. 그만큼 이 손보심은 특별한 거예요. 얼마나 특별한가 하면 웃시야왕이 제사장들에게 화를 내던 그 자리에서,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다 보는 앞에서 바로 나병이 걸려버렸어요. 어디에, 이마에. 그러니까 나아만 장군처럼 옷으로 감출 수 있는 곳에 생긴 게 아니예요. 저주의 상징이 떡하니 도장처럼 찍혔어요.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치셨다는 걸 다 알아. 그래서 웃시야 자신도 거기서 속히 나갈 수 밖에 없었어요. 죽는 날까지 나병 환자가 되어서 별궁에 거했습니다. 이 아사랴는 북이스라엘의 므나헴, 베가, 살룸, 오므리 뭐 이런 사람들과 비교하면 '그냥 예배 한 번 드린건데 그게 왜 이렇게 나빠?'이렇게 되는 거죠. 구속사는 구원을 받지 않으면 이 설교가 참안 들릴 거 같아요. 뭐 이렇게 나병까지. 이거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은 거 아냐? 그럴 정도로 나아만보다도, 시종 게하시보다도 혹독하게 치셨어요. 그렇게 52년 간 수 많은 치적을 베풀고 왕으로 살았는데 그 많은 업적을 하나도 기록되지 않았어요, 열왕기에서. 그냥 '산당에서 제사드리다 죽는 날까지 나병으로 살다 갔다.' 이거 밖에 없어요.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는 7절에 인생이 기록되면서 전쟁만 하고 갔어요. 그런데 남유다의 아사랴도 똑같이 유명한 왕인데, 부국한 왕이자나요. 그런데 '나병 환자로 살다가 별궁에 갔다.' 이게 훨씬 두렵고 떨리지 않아요? 여로보암에게는 하나님이 그렇게 손 보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아사랴는 그냥 죽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인데 39년부터 나병 환자가 되어서 52년까지 별궁에서 살고 죽지도 못하는 혹독한 벌을 받았는데 왜 이렇게 하나님이 아사랴를 세게 대하실까요? 이 세상의 교만 중 교만은 영적 교만이거든요. 북이스라엘왕들은 그냥 정권이 탐이 나서 반역은 했지만 근본적으로 영적 교만이 뭔지는 이 남유다보다는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말이야 그냥 대통령이나 하고 싶어하는 속물들이야.' 이러면서 맨날 정권 탈취가 됐자나요. 그런데 웃시야는 거기에 비하면 자기가 너무 완전무결한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영적 교만이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아사랴가 52년 동안 왕위에 있는데 북이스라엘은 이제 다음주부터 나오겠지만 스가랴, 살룸, 므나헴 등 한 달, 여섯 달, 10년 이렇게 짧게 통치하고 계속 엎치락 뒤치락 하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이 아사랴는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어요. 나는 너무 대단한 사람이라서 자기가 왕이었지만 제사장까지 된 거예요. 그리고 너무 잘나서 안 찾아요. 스가랴가 죽은 후에는 안 찾아요. 스가랴 만한 사람도 없다고 안 찾아. 여러분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여호람, 요아스 등은 전쟁이 날 때마다 엘리사를 찾았죠. 자, 예를 들어, 저 옆에 교회는 목사가 한 달 만에, 6달 만에, 10년 만에 계속 바뀌어대는데 이 목사는 52년을 장기 집권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우리 교회 좋은 교회.' 이랬겠어요. '얼마나 하나님이 인정을 하면 그렇게 오랫동안 권좌에 있겠나.' 이러다보니 그냥 저절로 어느 순간 하나님 자리에 딱 갔어요. '내가 이렇게 맘대로 해도 된다.' 북이스라엘 여로보람이 제사장을 맘대로 세워서 아예 역사에서 없어졌는데 웃시야가 그 영적 교만의 자리에 올라간 거예요.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더 위에 가고자하는 이 죄를 가장 견딜 수 없어하세요. 그래서 믿음과 행위의 죄는 견줄 수가 없는 거예요. 행위와 이 믿음의 죄는, 행위와 구원의 죄, 비교할 수 없는 거예요. 구원을 여러분들이 방해하면 안 되는 거예요. 성령을 여러분들이 방해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적 교만은 하나님께서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걸 아셔야 해요. 그래서 그것이 무서워서 우리는 목회자라 그러면 벌벌벌 떠는 게 있어요, 기복이 또 하늘을 찌르니까. 그렇다고 떨지 않고 '목사가 별 거야?' 이러면 더 무섭죠. 그런데 사람이 그 손톱만큼 지위와 권세가 있게 되면 하나님의 영역을 넘보는 거예요. 없으면 감 놔라 배 놔라 하지도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영적 영역에 도전하고 싶어해요. 교회를 나오면 인간은 가르침 받는 것보다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 믿음이 있거나 없거나 교회 나오기 시작하면 가르치고 상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본능이 발동을 해요. 사람이 자존심의 동물이고 인정 받기 좋아하다보니까 그러다 보니까 교회에서 갖은 문제가 생기죠. 처음에는 '안 해, 안 해.'하다가 지나보면 '왜 안 시켜주지?' 섭섭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다 영적인 영역의 일인데 이거를 육적인 영역에서 보니까 '저 사람은 왜 아무것도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데 왜 좋아하지? 잘 가르쳐서 그런가? 그래서 가르치는 일에 나도 가르쳐봐야 되겠다.' 그래서 이거를 세상에서 받는 존경과 똑같이 생각하고, 그 영적인 것을 육적이게 생각하니 문제가 시작되는 거죠. 오늘 아사랴가 제사장이 받는 그 인정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니까 인위적으로 뭔가 해서 인정받으려고 하면 똑같이 행동하는데 열매가 없어요. 아무리 흉내를 내도, 제 이야기를 달달 외워서 앵무새처럼 해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열매가 생기지 않아요. 그런데 자기 지위로 강성해지니까 상처를 준 제사장들이, 지금 제사장들은 실력이 있는데 무조건 도매급으로 자기 아버지 때, 할아버지 때 이 제사장들 생각하고 실력이 없다는 거예요. 꼴보기 싫다는 거예요. 다 틀렸다는 거예요. '내가 예배드리는 게 너희들보다 훨씬 낫다.' 그럴 수 있었겠죠. 이 땅에는 때가 될 때까지 질서가 있다고 했자나요. 그런데 이 질서를 강조하면 우리들교회를 싫어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이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구원의 문제인데 아사랴가 강성해지니까 금세 구원 같았는데 선악의 문제로 몰고 가는 거예요. '예전에 제사장들 때문에 내 아버지, 할아버지 죽었다. 원수 갚을 때가 되었다.' 여러분, 그렇게 보면, 자신도 그쪽에서 보면 죽인 자의 아들 아니예요? 그런데도 왕으로 세움을 받았자나요. 그런데 산당은 항상 내 입장만 옳기 때문에 내 입장을 위해서 기도하고, 내 교만, 내 연민, 내 절망을 편들어 달라고 기도하는 게 산당 제사인 거예요. 언제나 위로 안 해주면 화를 내고, 웃시야처럼. '내가 주인공이야. 나를 위해서 다 기도해줘. 목장도 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줘. 왜 뭐라고 나한테 처방질을 하는 거야.' 이렇게 이제 되는 거죠.
아사랴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나의 도움이시라거든요. 그렇게 도와주시다 보니까 일순간에 교만해졌다고요. 그래서 이제 웃시야 왕이 26장 21절에서 보면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었고 나병환자가 되매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백성을 다스렸더라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 살았다고 해요. 역대하는 이 단절의 핵심을 짚어 알려줘요.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 성전은 모든 생활 네트워크의 중심이에요. 거기서 끊어지면 다른 관계도 다 끊어지는 거예요. 나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성전에서 끊어진 거예요. 스스로 네트워크의 중심이고자 했던 웃시야인데 오히려 거기서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어요. 잠시 전까지 자신이 주인이었던 왕궁은 아들 요담에게 맡겨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한 방식으로 그렇게 예배중독자처럼 제사하던 산당을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어요. 이 아사랴에게 돈과 권세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밑동 잘린 나무인데. 이 분리의 집인 별궁에서 완전히 분리 단절되어서 연명하다가 거기서 죽고 마는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 씨 때문에 다윗의 후손에게서 등불을 빼앗지 않으셨어요. 다 단절된 웃시야라도 다른 왕들처럼 그의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을 유다왕 역대 지략에 기록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윗 성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아들 요담이 왕위를 이어가게 하시는 거예요. 영적 후손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뜻인 거죠. 이것이 하나님께서 웃시야를 치신 심판이에요. 그런데 이게 그냥 때린 게 뭐라고 그랬어요? 손 보신 거라고 했어요. 부숴버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고쳐 쓰시려고 만지고 보살피시는 손길인 거예요. 같은 매라도 그냥 패는 것과 손 보는 것은 천지 차이인 거예요. 패는 건 죽이려는 거고 손 보는 건 살리려고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수준이 높으면 아사랴처럼 별궁에서 나병이 걸리는 거예요, 수준이 높으면. 그러나 이 별궁은 우연히 생긴 게 아니예요. 내가 별궁에 거하게 된 일이 누구 실수로 생긴 게 아니예요. 하나님이 나를 별궁에 거하게 하신 겁니다. 왜죠? 내 안에 비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욕심을 비우고, 확신을 비우고, 자랑을 비우라고 별궁에 거하게 하셨어요.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라고 하는 거죠. 웃시야 인생이 정말 롤러코스터 같지 않으세요? 겸손한 환경에서 하나님을 찾으니까 기이한 도우심을 힘 입어서 형통하고 강성해서 10층 빌딩 꼭대기로 쑥 올랐어요. 그런데 형통과 강성함으로 자기를 높이니까 한 순간에 가장 저주 받은 자리로, 지하 1층도 아니고 10층 바닥으로 확 떨어졌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망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별궁이 있습니다.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어요. 심지어 여러 관계 속에서 살면서도 단절감을 느낄 때가 많죠.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고, 고부간에, 장서간에, 형제간에 다 많아요. 그러나 이 시기마다 별궁에 거하게 하시는 것이 참으로 축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나의 나병 발한 것을 여러분들은 좀 이제 보셔야 되는데요. 저도 그 과정을 지났죠. 시집살이 5년의 이 별궁에 거하면서 그 때는 맨날 부글부글 끌어서 '내가 여기서 걸레 빨 사람이 아닌데, 빨리 유학 갔다와서 뭘 해야 되는데.' 그런데 이제 지금 그 생각은 간 곳이 없어요. 거듭나고 주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그 기가 막힌 피아노를 내려놨다고요. 그 다음에 가다보니까 자식도 단계적으로 좀 내려놓게 됐고요. 그러니까 뭔가 내려놨다고, 또 열매가 있다고 하게 되니까 이게 바로 영적 교만이 생기는 지름길이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과부로, 여자목사로 늘 구조적으로 그냥 별궁에 거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늘 나의 교만을 저절로 늘 보게 하시는데요. 제가 이게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지만, 또 어쨋든 이제는 200만 기도회에서 또 설교를 했어요. 자,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까요. 850명의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 물리친 엘리야가 이세벨 한 사람이 죽이고자 하니까 도망갔다고 그랬죠. 어김 없이 제가 꼭 그런 꼴입니다. 그런 줄 아세요.
아들이 통치를 해도 뒷방 늙은이가 되어 이제 나병까지 걸렸으니까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곳에 있으니 죽는 게 나을텐데 그래도 믿음이 있어서 자살을 안 했어요. 자살을 하면 안돼요, 어떤 경우에도. 나병이 걸려도 자살을 하면 안돼요. 동성애도 안 되지만 자살을 하면 안되요, 생명을 만홀이 여기는 거자나요. 저는 아사랴가 이 땅에서 형벌을 다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여기 다 기록되지 않았어도 이거 자체가 하나님이 손 보신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 아사랴는 마태복음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갔자나요. 이 땅에서 악한 형통이 좋은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로보암의 악한 형통보다는 이 아사랴의 나병의 별궁이 훨씬 형통하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14년간 얼마나 자기 성찰을 얼마나 했겠어요, 죽지도 못하고 살아서. 그러니까 이런 아사랴 같은 영적 교만이 있을까 너무 두려운 거예요.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이 그냥 날마다 무슨 말인지 뼈져리게 이렇게 닿고 있어요.
아사랴는 역대하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인 웃시야로 불린다고 그랬어요. 우리에게 웃시야가 특별히 유명한 이유가 뭐죠?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았자나요. 웃시야의 배경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제 이해가 좀 싹 되시죠? 그러니까 이사야도 웃시야를 너무 대단하게 봤어요. 그러니까 웃시야가 죽기 전에는 사명을 못 받아, 웃시야가 너무 대단해서. 그러니까 이사야도 웃시야가 죽어야 돼요. 이게 구속사예요. 별궁 같은 상황에서 웃시야 같은 내 옛 자아가 완전히 죽어야 성전에 가득한 영광을 보는 이사야의 사명이 내 삶에도 이어지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지금 나를 단절되고 갇힌 별궁에 거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전히 산당 제사드리는 나를 쳐서 그 악을 비워버리시는 하나님의 손보심이에요.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인 거예요. 그러니까 생각해보세요. 52년 동안 두번째로 장기 집권 했어요. 55년의 장기 집권은 므낫세인데 제일 악한 왕이에요. 그러니까 장기 집권은 다 악한 사람들이나 장수하는 거예요. 몰라. 그래서 52년의 장기 집권 같지만 24년은 아버지를 죽인 반역자들의 지시를 따르면서 이를 갈고 '네네네네.' 그 다음에는 그냥 스가랴의 묵시를 받을 동안 14년 정도 형통했어요. 그런데 그 14년 동안 교만이 생겨서 마지막 14년은 나병에 걸려서 별궁에 거하니까 가장 강력한 왕이었던 웃시야 인생을 보면 별 인생이 없어서 너무 슬프지 않아요? 여러분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게 구속사적으로 인생을 이렇게 보는 게 구속사고 인간론인 거예요. 그러면 사람에 대해서 이해가 되자나요. 참고 기다릴 수가 있게 되자나요. 뭘 봐도 '우와, 부럽다.'가 아니고, 또 너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가 아니고 다 기다리면 하나님이 상급이 최고의 상급인 거, 이거를 알게 되니까 차별하지도 않고, 너무 부러워하지도 않고 이렇게 되는 거죠.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여호와께서 치신 사건이 있었습니까? 어떤 별궁에 갇혀 있습니까? 별궁 같은 상황에서 내가 비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공동체를 통해 채워주시는 은혜를 어떻게 누리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희연
1.하나님의 말씀 잘 묵상하며 은혜 나눌수 있도록
2.11/4일 이식신장 검진 하는데 신장수치랑 bk바이러스 검사 잘 나와서 유지 잘 되게 해주시고 이식신장뿐 아니라 몸 건강도 잘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3.많이 지쳐있는 저희 엄마의 건강을 돌봐주셔서 회복되고 지켜주시고 조카들 돌보는데 힘듬이 없게 해주소서
4.언니와 형부의 비행하는데 동행하여 어려움이 없게 지켜주소서
5.언니 가정에 평안과 은혜와 건강을 지킬수 있게 하옵시고 조카들도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지켜주소서
6.형부 미국 취직 인터뷰 아무탈없이 무사히 잘 하여 통과되길 기도합니다
7.우리 목장 식구들 목자 언니 포함하여 주님안에서 늘 승리하며 원하는 기도들이 응답받고 은혜받고 늘 건강하길
8.주님의 먈씀으로 순종하며 회개하며 현장예배와 목장 섬기게 하옵소서
예선
1.체한 것 같이 느낌이 며칠 동안 낫지 않고 있는데 최근 회사의 변화된 상황에 놀라고 화가 난 것 같습니다.여전히 드리는내 생각대로 되어야 한다는 산당 제사,사람 의지하려는 산당 제사를 매일 주시는말씀 붙들고 날마다 회개하며 가도록.
2.아버지 인지 장애가 온 거 같은데 골든 타임 놓치지 않고 적절한 검사와 치료 받으실 수 있도록. 엄마가 회피하지 않고 적용하여 같이 검사 받을수 있는 힘 주시길.
은우
1.나의 눈에 보이는 이유가 그와 같음을 알고 별궁에서 머무는 15년의 기간이 짧아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