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7일 주일설교
신승윤 목사님
남겨둔 너에게
디도서 1장 1절 - 6절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김양재 담임 목사님>
네 시의 적절하게 우리들교회는 인재가 많으십니다.그쵸 우리 장로님은 노무현 탄핵재판때 민주당의 헌법재판관이세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이 장로님 말씀을 백프로 신뢰하셔야 하죠 ? 진짜 질병이 있으시다고 하시는데도 진짜 이게 믿음이고 복음인거죠 여러분들은 이 일에 앞장을 스셔야 합니다. 이 차등법은 좌우가 상관없고 다음세대를 위해 막아야 합니다. 붙회떨감 기도회가 토요일 저녁 6시에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을 초청해서 기도합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중요한 광고를 합니다. 목장보고서 개편을 하려고 하는데 11월 1일 부터 게시판이 개편되는데 목장보고서라는 것을 목장 나눔으로 개편합니다. ㅎㅎ 그동안 쌓여지는 게시물로 서버가 원활하지 않아서 일단 삭제하겠습니다. 실명으로 작성하지 마시고 A B C D 로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목장인증샷 이벤트에 참여 부탁드리고 선킵을 나누어드리는데 우리들교회 성도들인것을 표해주시고 쓰레기가 없도록 부탁드립니다.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신승윤 목사님>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바울이 믿음으로 나가는 현실을 우리에게 주신 은혜인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 다음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전할지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1.너와 내게 맡기신 것이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선교 여행을 이제 바울이 마쳤습니다. 근데 그 여행을 마치고 많은 열매들을 맺고 나서도 그 사람 우리 바울에게 주어진 것은 투옥이었어요. 로마에 또 복음을 전하러 가서 그는 1차로 투옥을 당합니다. 이후 잠시 풀려나거든요. 풀려나고 난 다음에 이 편지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이 디도서를 디도와 그레데 교인들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약 2년 뒤인 주 67년경에 다시 로마로 들어가서 순교를 합니다. 그러니까 이 편지는 바울이 디도에게 전하는 마지막 글이 되겠죠. 바울은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라고 부를 만큼 정말 디도를 아끼고 사랑했어요. 그런데 지금 그 아들이요. 혼자 저 먼 한 섬에 남겨져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길에 배가 파손이 되잖아요. 그래서 한 섬에 들어가는데 그 멜리데 섬에서는 어땠습니까? 바울을 환영하고 따뜻하게 먹을 것도 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그런 섬이 아닙니다. 교회에는요. 그러니까 나의 유일한 동지가 되어주고 동역자가 되어줘야 할 그 교회에는요. 복음을 오히려 훼방하려는 유대인들이 가득해요. 그리고 무역이 엄청 활발했거든요. 그 섬에서 많은 나라에 사람들이 막 모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온갖 다양한 생각과 사상들이 이렇게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섬 특유에는 또 뭐가 있습니까? 토속 신앙이 있잖아요. 그 토속 신앙이 깊이 퍼져 있는 데다가 여기 또 있습니다. 무역을 하니까 어때요? 잘 살잖아요. 잘 사니까 넉넉하니까 부족함이 없으니까 음란 게으름 거기가 젖어가지고 복음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그레데 사람들입니다. 이곳에서 디도는 이제 아버지인 바울이 없습니다. 신앙의 선배예요. 선생이었던 바울이 없어요. 그런데 거기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설교를 준비하는 첫날 이제 이 묵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을 가지고 집에 들어갔는데 문을 여니까 아들이 누워 있더라고요. 처음에는요 정말 제가 이게 기억이 나거든요. 이렇게 앉잖아요. 처음에 나오면 요만했어요. 두 손에 잠기잖아요.
담길 정도로 작았는데 진짜 이 찰나의 시간으로 밖에 생각이 안 드는데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진짜 이렇게 보니까 저보다 큰 거예요. 그래도 키는 이렇게 크고 또 중학생이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찰나의 시간이 얼른 지나간 것처럼 저와 함께 있어야 될 이유보다 이젠 떠나야 할 이유가 더 많아지는 때가 오겠죠. 여러분 우리에게 생각보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노년의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도에게 남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남기며 알려줘야 할지 두 가지를 살펴보면서 함께 적용해 보고자 하는데요. 첫째는 너와 나에게 너와 나에게 남기신 것이 있다는 것, 맡기신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1절과 2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왜 사도인지를 밝혀야 그러면서 독특한 표현 하나를 쓰거든요.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이게 익숙하니까 바울이 그냥 익숙한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아니에요. 대부분 예수의 종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의 노예 이런 것들이 이제 바울이 서두에서 인사하는 일반적인 표현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의 종 이거는 특별히 여기서만 사용합니다. 지금 디도와 함께 이 편지를 읽는 수신자 중에 많은 숫자는요. 유일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만 믿는 그러면서 예수님을 부정하는 유대교 사람들이거든요. 안 그래도 예수님 인정 안 해요. 예수님 인정 안 하는데 예수의 종이라고 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바울의 그 사도권은 무시당하겠죠. 그래서 말하죠. 나는 너희가 믿는 그 하나님의 종이다. 그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예수님이 보낸 사도다 말하는 거예요.
이게 옳고 그름이 아니에요. 오직 복음이 들어가기 위해서 상대의 생각과 그 입장을 먼저 살피는 거죠. 유대인들은 아무리 반대 입장이라고 해도 그리고 좀 그것이 이게 아니다 싶어도 일단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니까 한 발 일단 물러서서 들어보려고 했겠죠. 제가 휴무일이나 가끔 시간이 날 때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를 도울 때가 있어요. 근데 제 기준으로는 아주 독특한 현상 하나가 있습니다. 일단 세네 분의 여성분이 오면 나가지를 않습니다. 근데 더욱 신기한 거는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앉으신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가장 놀라운 건 이거예요. 화장실을 제일 마지막에 갑니다. 누가 한 명이 일어나거든요. 막 말씀을 나누시다가 누가 한 명이 일어나서 내가 다녀올게 나 먼저 다녀올게 이렇게 하시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아마 이게 이제 그만 가자는 신호 같아요. 그렇게 순서대로 이렇게 한 번씩 다녀오시고 퇴장을 해요. 정말 궁금하고 놀랍습니다.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참는 것입니까? 제가 자주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근데 갈 때마다 이렇게 계시면 거의 동일한 현상을 봐요. 사람은 바뀌지만 그래서 너무너무 궁금해요. 너무너무 궁금해서 정말 신뢰인 줄 알지만 나누는 대화를 한번 들어봤어요.
그제야 이해가 좀 됐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누구 한 명이 들었니? 순이 남편 김바람 씨 바람 피웠대라고 하면 그 순간 그곳에 있는 모든 분은 김바람 씨 아내 순위가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 아들 허약이 좀 아팠잖아. 그러면 그 순간 모든 분들이 그 허약이의 엄마가 되었다가 결국은 주치의가 됩니다. 이거 써봐라. 저거 써봐라. 그러다가 지금 내 남편이 바람을 피는 거예요. 바람을 피고 내 아들이 아픈데 화장실을 어떻게 갑니까? 그러다가 뭘로 이어지냐면 아프다가 죽을 먹었는데 먹였는데 맛있더라 뭐를 넣었고 뭐를 넣었고 그런 것 같더라. 그러다 그 옆에 낙지집이 있더라. 그 낙지집에 주차장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시더라고 아 우리 남자분들 혹시 이거 아세요? 우리가 이걸 매일 몰라가지고 그렇게 관심 없다는 소릴 듣는 거거든요. 그냥 알고 들었을 때 아이고 이 천하의 몹쓸 놈이네 이 말 한마디면 돼요.
제가 이걸 지천명이 데려가는 지금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늘 아내가 얘기를 하면은 니가 그걸 왜 상관하냐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하냐 이러니까 더 힘든 거거든요. 반대로 여자분들 아세요? 우리 남자들은 대부분을 우리의 인생과 삶을 전쟁터라고 생각합니다. 막 돌진해야 돼요. 돌진하는데 옆에서 아프다고 하면 아이고 어디가 아파 아이고 약 발라줄까 이러면은 같이 죽어요. 그죠? 차라리 내가 내가 대신 총알을 맞거나 업고 뛰거나 아니면 놔두고 뛰는 거예요. 그래서 참 더러워도 아이고 고맙다 이러면 웃잖아요. 그게 웃어주잖아요. 그걸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녀 배우자 그리고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함을 알아요. 그 필요성을 우리가 말씀을 들면서 알잖아요. 그런데 먼저 그의 마음을 읽거나 상황을 살피는 것은 싫을 때가 많아요. 이유는 한 가지죠. 내 기준으로는 이해가 안 가거든요. 그의 모습과 태도와 행동과 말이요. 자녀가 지금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우리 다음 세대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우리 이 정도는 살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내 한마디라도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들어갈 틈을 얻은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이유를 말해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이며,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의 소망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알리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진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이 있대요. 그것이 제가 그대로 읽어볼게요.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조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그리고 디도에게 말합니다. 아들 디도에게 말해요. 사랑하는 아들인 너도 나와 같은 이 믿음과 이 사명이 있단다.
전도는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거예요. 이것이 구원받아 보내심을 받은 인생의 우리 인생의 뚜렷한 목적입니다. 가서 사명 감당하라고 우리 같은 죄인 먼저 말씀이 들리게 하시고 구원해 주신 거예요. 이것을 놓치면 우리는 인생의 목적을 잊어버립니다. 바울도 디도를 남겨두며 참 많은 걱정되었을 거예요. 헬라인인 디도는 유대인이 보기에는 어때요? 이방인이잖아요. 거기서 무시와 천대를 받으면 안 되는데 나를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내 아들 죽이려고 하면 어쩌나 그렇게 고민 들지 않았을까요? 저라면 참 걱정이 되겠다 싶거든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과 바울의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더에게 보여준 그 삶이 있었습니다. 부끄럽고 후회만 가득한 과거가 바울에게도 있었죠. 구원받은 후에는 그러나 구원받은 후에는 박해자요 비방자였던 지난날 그 나를 약재료로 회개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가는 것을 디도가 그의 전도 여행에 동행하며 분명히 보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마련해 주는 환경이나 혹은 과거의 부끄러운 일 때문에 자녀 앞에서 미안한 마음만 가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있는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가 보여주는 거예요. 넘어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은 말씀대로 결정하고 수치의 간증으로 말씀의 능력을 전하면서 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삶으로 말씀을 전하는 길임을 믿습니다. 바울은 남겨둔 아들에게 방법을 얘기하지 않아요. 지혜를 얘기하지 않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대처법, 대화술, 처신술 사실 이거를 바울만큼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다른 말 안 해요. 떠나온 나에게, 그리고 이제 남겨둔 너에게도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있다는 것 그것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그리고 나이 많아 지치고 병든 몸을 이끌고 이미 한 번 자신을 가두었던 그 로마로 다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합니다. 끝까지 삶으로 보여준 것이죠. 갈수록 혼탁해지고 기댈 곳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다음 세대를 지켜줄 도구는 오로지 말씀입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자녀와 그 한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이 있습니까?
나를 살려주신 말씀을 가지고 살려내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2.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음란과 거짓이 넘쳐나는 글에 대해 교회가 세워졌어요.
이제 누구를 이 교회의 리더로 삼느냐가 너무나도 중요한 사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생각하는 교회 일꾼은 일꾼의 기준이 있잖아요. 그 기준은 뭐 갈라디아 교회에는 이런 사람 고린도, 교회는 이런 사람 또 그런데 교회는 그게 아니에요.
어느 교회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누구를 세우든지 가장 근본이 되고요. 기준이 되는 한 가지를 언제나 우선합니다. 바로 자신의 가정을 그가 어떻게 여기는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지죠. 사회생활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됨됨이를 보라고 합니다.
지도자를 세워야 할 때만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한 바울의 편지에서 늘 신앙과 가정은 하나님과 가정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 바울이 그렇게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 이유를 찾거나 연구할 필요가 없죠. 우리가 알잖아요. 가정의 중요함을 아는 것을 그 가정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사람이 살면서 어떤 관습이나 아니면 어떤 필요성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장 먼저 사람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맺어주신 관계입니다. 나의 선택과 결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이 언제나 감사와 만족만 있다면 우리는 이 가정을 지킨다는 표현을 쓰지 않겠죠. 우리들교회 핵심 가치가 말씀 묵상과 가정 중수입니다. 중수는 뭡니까? 뜯어내는 거예요? 뜯어내서 고쳐내는 겁니다. 완벽하다면 그럴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이 가정을 만들어주신 하나님은 100% 선하세요.
그런데 가정을 꾸려가는 우리가 100% 죄인입니다.
하지만 이 가정에서 실망과 배신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낼 때 결국 뭐가 나타납니까? 나의 교만과 자랑이 꺾여요.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합니다. 어디서요? 바로 이 가정 안에서요. 그래서 모든 가정은 지킬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할 것은 이 애씀과 몸부림을 우리 하나님만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버티는지 저보다 아이들은 더 잘 압니다. 중학교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셨거든요.
생각해 보니까 저도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아버지가 지금 저보다 조금 더 어리거나 저랑 비슷한 나이겠더라고요. 지금 딱 이때 지금도 집 앞에 놓여 있었던 흰 운동화를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다른 분과 나갔다는 걸 알아도요. 늘 그 운동화를 신고 전국의 기도원으로 어머니를 찾아다녔습니다. 왜 나갔는지 뭘 하는지 저는 아무것도 모르죠.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 저는 그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제게 해주셨던 말인데요. 내 인생에 니 엄마는 10 프로도 안 됐다. 일이 40 프로 공부시켜준 부모가 삼십 프로, 너랑 누나가 20 프로, 나머지 엄마가 10 프로였다.
내가 이게 깨달아지니까 미안했던 것이 많이 생각나서 그렇게 찾으러 다녔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비록 구속사의 말씀과 공동체가 없었던 아버지였으나 하나님이 불쌍히 보셔서 그렇게라도 깨닫게 하셔서 가정을 지키게 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여러분 저는 노름 중독과 알코올 중독 폭력배 밀수꾼입니다.제가 바로 이런 사람이였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감히 이 자리에 어떻게 섭니까? 어떻게요? 오직 주님의 은혜인데요. 분명히 그 은혜의 터는 우리 가정입니다. 아버지가 그때 가정을 버리셨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었기 때문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감히 이 자리를 빌어 사연과 상황을 보면 도저히 인내할 수도 지켜야 할 이유도 없는 가정을 끝까지 버텨내시는 우리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 인내가 절대 땅에 떨어져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거룩과 내 뒷모습을 보며 자라나 자녀를 위해 끝까지 가정을 지켜주시기를 감히 우리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이렇게 내적으로는 나와 내 가정을 지켜야 할 목적과 더불어서요. 외적으로도 하나님이 주신 이 가정의 가치를 보존하고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바로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연합 예배로 모입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죠. 다른 이유가 아니에요. 우리는 성경적 가정의 가치관을 자녀에게 이어주기 위해서 그 자리에 나갑니다. 평등과 자유라는 이름으로요. 교묘히 속이는 이 법이 통과되면 정체성의 혼란과 가정 내 질서와 각자의 역할을 깨뜨릴 위험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다음 세대가 꾸려갈 성경적인 가정의 가치관을 보호하고 지켜주고자 부모인 윗세대가 오늘 우리가 그 자리에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적으로는 나의 거룩과 맺어주신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내적으로는 세상 가치관과 미혹에서 우리의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아, 딸아 너를 위해 내가 이렇게 애쓰고 노력했다. 이 한마디를 남겨달라고 남길 수 있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원하며, 또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님이 우리 가정을 지키고 악법과 속임에서 건져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묵상하며 적용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가정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사연이 있었다면 무엇입니까?
그 사건으로 내 죄를 보고 회개하는 감격을 경험하셨습니까?
말씀을 맺겠습니다.
남겨둔 너에게는
너와 내게 맡기신 것이 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시청광장에서 집회 후 목자형이 맛있는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저녁먹으면서 목자형과 부목자 두명이 나눔을 하였습니다.
목자형 사랑합니다 히히 :)
기도제목
오수근
1.1일 1은혜 / 도움받은 것 헤아려보기
김태규
0.여자친구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1.이번 주 회사 마무리 잘 하고 나올 수 있기를(2년 3개월의 시간동안 지켜주심에 감사드립니다.)
2.학폭 가해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주시기를
3.이직 면접 시에 회사 분별을 공동체에 묻고 가기
4.말씀을 붙들고 살 수 있기를
5.허락해주신 물질과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게 이끌어주시기를
6.가정을 중수하고 주일을 성수할 수 있는 저에게 맞는 직장으로 인도해주세요
주예성
1.신교제 신결혼
2.진로에 대한 기도
3.부서섬김에 대한 기도,(중,고,유아,유치,예배, 등)
여로보암처럼 악한 형통함이 내 인생을 지배하고 기복신앙으로 똘똘 뭉쳐있는 내 모습 회개하고, 공동체에 나누기 싫어했던 내 이야기, 평가받기 싫었던 내 모습을 다시 보고 목장에 나눔하도록.
4.사건에 대한 해석을 말씀 따라 적용하도록
5.지혜와 분별의 영을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