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보셨고
2024년 10월 20일 주일 열왕기하 14:23-29
김양재 담임 목사님
요즘 동네마다 무인 판매점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임금이 많이 올라서 생긴 일이라고 하지만, 지키는 사람이 없어 도둑질이 많다고 한다. 이렇게 감시만으로는 인간을 통제할 수 없다. 피할 수 있는 구석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은 피할 수가 없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보신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시선이 부담스러우신가? 아니면 든든하신가? 하나님의 택자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선은 가장 안전한 장치이다. 오늘 말씀의 여로보암 2세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기에 이스라엘의 고난을 보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시는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길 원한다.
1. 나의 악한 형통을 보십니다.
요아스가 아마샤를 크게 이기고 죽었다고 한다. 반면 아마샤는 15년을 그냥 살아만 있었다고 한다. 장수가 꼭 축복은 아닌거 같다. 이어서 북이스라엘에 요아스가 죽고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다. 여로보암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이 모두 큰 업적을 이루웠기에 이 날 때부터 대단한 가문을 잘 이어갈 책임이 있었다. 그래서 가문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요아스도 엘리사를 아버지라 불러 놓고도 그의 아들 이름은 번성하길 바란다는 여로보암으로 지었다. 백성이 많아 큰 나라를 다스리길 바랬던 것이다. 성경에서는 여로보암을 악이라고 말하는데, 말씀을 듣고 엘리사의 지시를 들으면서도 여로보암의 화려한 모습만 보며 부러워 하는 것이다. 여로보암이 그 가문의 기대를 받아 정말 위대한 왕이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파티를 열고 오일 마사지를 받을 만큼 걱정거리가 없었다. 한마디로 이때가 북이스라엘에 전성기였다. 조상들의 기대를 다 이룬 것이다. 그러니 여로보암이 얼마나 이것을 자랑하고 싶었겠는가? 이렇게 41년간 엄청난 재위를 한 여로보암을 성경에서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한다. 여로보암 1세에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하며, 이 악인의 형통을 내가 보고 있다고 하신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지켜보는 것 보다 무서운 게 없다. 그런데, 이 악하고 모든 것이 다 갖추고도 못된 여로보암이 더더 잘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앨 영토가 더 넓어졌가고 한다. 이 일은 북이스라엘이 강해서만이 아니라, 아람을 앗수르 제국이 밟아주고 있었기에 이 틈을 타 북이스라엘이 아람 땅으로 진출해 이스라엘의 북쪽 땅을 되찾은 것이다. 아노바바다는 사해인데, 서쪽으로는 남유다 동쪽으로는 에돔이었다. 그러니 여로보암은 남쪽으로도 세력을 넓혀 3나라의 역량을 행사한 것이다. 즉, 솔로몬 시대에 영광을 회복하여 영광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번영은 우연이 아니라고 하신다. 요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된 일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악한 여로보암의 손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번영이 올 것이라는 이 예언을 요나 선지자가 한 것이다. 그런데 요나는 이스라엘만 잘되어야 하는데, 앞으로 이스라엘을 초토화 시킬 앗수르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앗수르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한데 이것을 전하라고 하니 요나가 얼마나 싫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이 여로보암의 겉모습이 너무 멋있으니, 그 안에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여로보암 만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속지 않으신다. 여로보암의 욕심과 교만이 감추어진 성공의 가치관을 여로보암은 회개했어야 했는데,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신 것이다. 그래서 그 대단한 통치를 그냥 한마디로 악행이라고 하신다. 우리도 같다 회개하지 않은 성경적인 가치관을 갖지 못한 우리의 모든 행동도 악행이다.
적용) 나의 번영이 악한 형통이라고 의식합니까? 요즘 나의 관심 대상 1호는 무엇입니까?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여로보암의 41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눈을 사람의 눈만큼 의식하며 삽니까?
2. 나의 심한 고난도 보십니다.
번영의 이유가 나온다. 여로보암이 이뻐서, 잘나서가 아니다. 그 이유는 여로보암에게 있지 않고, 이스라엘에게 이 당하는 심한 고난을 하나님께서 보셨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금송아지 섬긴 여로보암, 에사라 목상, 바알 우상을 섬긴 예후를 보고, 하나님께서 분노하셔서 매인자, 놓인자까지 다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똑같은 구절을 북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이유로 쓰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심으로 끝내지 않으신다. 회복을 위한 준비의 단계로 만드시는 것이다. 백성의 고난이 얼마나 강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형통하게 된 것이다, 왜일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악한 형통을 보시듯 우리의 심한 고난도 보셨기 때문에 역전이 되고, 반전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악한 형통과 고난을 함께 쓰시는 것이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고난을 받고 있었다. 우리도 늘 인생역전의 기회를 노린다. 인생은 한방이야 하면서 주식과 투자를 한다. 내 인생의 전성기를 가져 오는 힘은 나와 내 가족이나 나의 환경이 아니다. 내 인생의 역전은 오직 하나님께서 나의 심한 고난을 보실 때 가능한 것이다. 즉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도 못하여 전쟁이라도 난 것 같은 인생애 가장 쓴 맛을 보는 고난일 때 그 때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에서 예후 때부터 통치를 잘 하고 있는데, 무슨 고난인가? 북이스라엘에는 예후때부터 요아스까지 끊이지 않는 아람의 학대가 표면적으론 고난이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북쪽이 더 고난인데도 그들이 침략할까봐 불안한 것이다. 남쪽은 북이스라엘에 비하면 왕권도 안정적이였기에 북쪽이 침략한다고 하여도 죽을만큼의 고난은 아니였을 것이다. 하지만, 힘없는 백성은 이러나 저러나 고난이였을 것이다. 전쟁통에 끌려가 죽는 것도 백성이고, 작취받는 것도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드러나는 이 고난 보다 더 큰 고난은 여로보암의 죄를 떠나지 않았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병걸리고, 사업이 망하는 것만 심한 고통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더 심한 고난인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것을 보시는 것이다. 이게 더 큰 고난인 이유는 이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고난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겉으로 보이는 고난을 왜 모르시겠는가? 하나님께선 우리의 신음소리와 탄식소리도 근심까지도 다 들으신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나의 심한 고통을 보시고 선지자를 통해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는 것이다. 말씀대로 반드시 회복시켜 주신다고 하신다. 그렇기에 이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소망인 것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고난의 자리에서도 잘 살아내어야 한다.
적용) 어떤 인생 역전을 꿈꿉니까? 현재 겪고 있는 심한 고난은 무엇입니까? 누가 얼아주길 바랍니까? 하나님이 보시고 회복시켜 주시길 바랍니까?
3. 나도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일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나 북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지 즉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 하지 않았으며 안 도와준다고 한적은 없다고 하신다. 북이스라엘은 천하에서 없애버려도 할 말 없는 인생이라고 임에도, 마지막까지 우리를 도울 이유를 찾고 찾으시는 것이다. 하나, 둘, 둘반 둘 반에반 하며 기다리시는 것이다. 남유다에선 다윗의 등불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데, 북이스라엘은 반역해서 나간 족속이니 그 전 시대에 아브라함과 요샙을 가져오시더니 이제는 천하를 가져오시는 것이다. 즉, 구원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들과 목장에서 우리도 기다리길 바란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여로보암의 손을 통해 다시 기회를 주신다고 하시는 것이다. 즉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으로 쓰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업적을 어떤 왕보다도 많은 수식어를 써 여로보암의 통치를 요약하신다. 대왕에 맞는 대우를 해주신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대단한 41년의 통치를 열왕기하는 단 일곱절 중 단 한절에 끝낸다. 남유다에 요아스의 성전 건축은 한장을 할애 하셨다. 즉 구원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어떤 일도 그저 한절에 지나가는 것이다. 여로보암은 성경에 기록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왕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여로보암은 대단한 왕이 될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손을 구원의 도구로 쓰셨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누구의 손으로 백성을 구원했다는 말은 단 세명인데 삼손과 다윗이다. 그다음이 여로보암이다. 그러니 이것 자체가 여로보암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삼손과 다윗과 같은 반열이였음에도 구속사 적으로 그들에게 미치지 못했다. 왜일까? 왜 단 일곱절로 끝났을까? 삼손과 다윗은 믿음장에 올라온 사람들인데도 여로보암은 올라오지도 못했다. 삼손과 다윗은 많은 죄를 저질렀지만 회개하였다. 회개로 하나님께 돌아왔기에 삼손과 다윗은 하나님이 쓰시는 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구속사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다 갖춘것에서 시작했다. 나라의 구원을 가져왔지만 정작 자신의 죄를 보지 못했다. 막히는 일도 무너지는 일도 없으니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저 우상숭배에서 떠나지 않은 왕으로 끝난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받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렇게 버려질 수 밖에 없다. 호세아 선지자가 지적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예후처럼 자기 열심으로 뭔가를 막 했지만,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이내가 없었다. 풍요 속에 파묻혀 그저 영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과 연합한 것이다. 여로보암의 번영은 얼마가지 못한다 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에 오른지 6개월만에 반역이 일어난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죽은지 31년만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초토화가 된다. 우리 인생에 된 것도 이룬 것도 그 어떤 것도 선한 것이 없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우리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도 보아야 한다. 여로보암은 자기 손을 쓰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했는데, 그저 10층에 올라가서 자신이 한 업적만 보느라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삼손과 다윗처럼 자기손에 볼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깨달아져야 하나님을 볼 수 있었는데, 이 보다 더 올라갈 수 는 없다며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환경이 문제고, 사람이 문제라서가 아니다. 어떤 삶을 살고 있던지 주님을 찾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주님의 뜻을 구하면, 그것이 곧 주님을 보는 것이고 주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시작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는 것은 우리를 쓰고 버리려는 것이 아니다. 쓰시는 그 과정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성장 시키시려고 하심이다.
적용) 내삶은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쓰시는 손이 되고 있습니까? 가정과 교회를 무엇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일로 합니까, 사명으로 합니까? 생색이 납니까, 회개가 나옵니까?
나눔
한주동안 어떻게 지냈나?
A: 불신교제 이슈가 생김(이별의 길로 가는 중(?)), 공연 스텝하기도 하고, 회사에 갑작스럽게 퇴사한 사람의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B: 일이 엄청 바빴다. 출장을 엄청 다녔다. 이직제의가 와서 포폴을 내기 위해 오늘 또 밤을 새야한다.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의 제의라 걱정이 된다. 꼭 됐으면 좋겠다.
C: 정신과를 다니면서 약 먹고 있다. 약 먹으니까 남자친구랑 한번도 안싸워서 내 문제임이 깨달아졌다. 갑자기 가족들이 다 아파서 입원하게 되는 사건, 사건들이 계속 휘몰아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약 때문인지 엄청 힘들게 느껴지거나 하진 않는다.
적용질문) 내삶은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쓰시는 손이 되고 있습니까?
A: 주변 친구들이 내가 교회다니는 걸 잘 모른다. 교만해서 큐티도 안하고 목장에도 말 안하고... 쓰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 안 쓰셔~~ 나의 연약함을 들어 쓰신다~~
B: 인생역전 인센티브 대박, 불로소득, 노력하지 않아도 가족들에게 믿음이 생기는 꿈을 꾸고있음. 쓰임받는 손인가는 잘 모르겠다. 예전에 쓰임받고 싶단 생각은 많이 했었는데...나이가 들고나서? 구원을 위해 쓰임받고 있는 삶인가 싶긴함. 너무 바빠서 구원이랑은 동떨어진 삶을 사는 느낌.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정체성을 회복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시즌임.
기도제목
A
-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화에 입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도록.
- 될대로 되라지의 마음이 없어지고 하나님께 의지하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B
- 하나님이 쓰시는 손이 되기 위해 세상에서도 구별된 삶을 살기...예를 들면 회식 때 술 안 마시기......
- 생활예배 회복
C
- 약 잘 먹고 정신과 잘 다닐 수 있도록
- 큐티가 잘 안되는데, 큐티할수 있도록
- 남자친구와의 관계 하나님께 잘 물으면서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