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한 후 15년
열왕기하 14:12-22
김양재 목사님
1. 패배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입니다.
아마샤가 화를 자취하여 북이스라엘을 치러 간 결과 패배했다. 그런데 유다가 이스라엘에게 패했다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앞에서 패했다고 한다. 12절/ 유다를 패배시킨 존재가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유다가 패배 당하는 걸 보고 있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신적 수동태이다. 유다가 하나님에 의해 패배를 당한 것이다. 하나님이 에돔의 우상을 섬긴 죄에 대해 유다를 치시는 징계였다. 요아스 왕은 아마샤를 사로잡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벽을 허물어뜨리는데 특히 에브라임 문을 먼저 부순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중심 지파였다. 북이스라엘 군대가 이 문을 부순 것은 유다를 향한 확실한 메시지였다. 너희들은 우리에게 안 된다. 유다 백성에게 있어 엄청난 수치. 남유다는 껍데기만 남았다. 북이스라엘의 요아스가 마음만 먹었다면 아마샤도 죽었을 것이다. 이 패배를 단순히 북이스라엘에게 당한 것으로만 본다면 원망과 증오만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패배는 하나님에 의한 사건이었다. 사람에게 당한 억울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합당한 징계이다. 사랑으로 주신 징계이다. 사실 우상숭배의 기준으로 보면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보다 훨씬 더하다.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최고의 선지자들이 사역해도 꿈쩍을 안하는 것이 북이스라엘이다. 남유다는 산당을 제하진 못했지만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도 드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북이스라엘보다 남유다를 훨씬 엄하게 다루신다. 예수의 씨가 북이스라엘이 아닌 남유다에 있기 때문이다. 구속사의 계보가 에브라임, 즉 요셉이 아니라 유다에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과 기대가 북이스라엘보다 남유다에 있다. 같은 죄라 할 지라도 남유다 다윗의 후손들이 짓는 죄를 더 심각하게 보고 다루신다. 죄에서 돌이켜 구원 받으라고 채찍으로 징계하신다. 이것이 진짜 사랑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진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패배를 생각도 하기 싫어한다. 패배는 한 번만 해도 질리는데 승리는 100번을 해도 질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승리하며 죄 가운데 술술 풀리는 것이 더 망하는 삶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다 밑동 잘린 나무인데 잎만 무성하면 그걸 모르고 지내다가 다 말라 죽는다. 패배는 우리가 밑동 잘린 인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우리의 실체를 알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신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사랑의 징계를 하신다. 패배를 당할 때 너무 힘들고 슬프고 절망되지만 그게 끝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의 결정이 무너져야 하나님의 결정을 하게 되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축복이다.
- 인정하기 힘든 패배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패배해서 미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려고 징계하시는 나의 죄악은 무엇입니까?
2. 15년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요아스에게는 업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구절을 두 번이나 반복한다. 이것은 아마샤의 생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요아스와 아마샤의 싸움에서 요아스가 이기고 아마샤가 졌음에도 업적이 많은 요아스가 먼저 죽어버렸고 아무런 업적이 없었던 아마샤는 그 뒤로도 15년을 더 살았다. 이 15년의 생존을 돋보이게 위해서 요아스의 죽음이 다시 기록됐다.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양육 받았다는 걸 강조했다.-> 죽일 수 있었던 아마샤를 살려둠. 업적보다 양육이 더 위대한 일이다.패배자가 된 아마샤는 15년을 어떻게 보냈을까? 성경은 특별한 일 없이,숨만 쉬며 살았다고 한다.회개 없이 정직하고 교만한 모습으로 살았을 것이다.왜 하나님은 아마샤에게 15년을 허락하셨을까? 이15년은 하나님이 은혜로 허락하신 시간을 상징한다. 우리가 고난에 눌리면서도 이렇게 살게 하신 것이 우연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 시간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신다. 아무리 큰 승리를 해도 그것이 구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헛된 것이다. 아무리 큰 패배를 해도 그것이 구원으로 이어지면 패배가 아니다.인생 최고의 승리이다. 최후의 승리가 구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다.
- 내가 쌓고 싶고 쌓고 있는 업적은 무엇입니까? 그만한 열심으로 양육을 받고 있습니까? 밑동 잘린 나무 같은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쓰겠습니까?
3.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마샤에게 패배의 사건으로 징계하시고 15년을 회개할 수 있는 시간으로 주셨다. 그러나 아마샤는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코 회개하지 않았다. 그 완악함에 대한 심판으로 반란이 일어난다. 이 세상에 100% 억울한 일은 없다. 어떤 사건도 내 책임이 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만큼 내 잘못을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깨닫는 만큼 인생의 소망을 나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둬야 한다. 아마샤가 무리의 반역에 의해 죽고 아들 아사랴가 왕이 되었는데 나이가 16살이었다. 스스로 정권을 장악하기에 역부족이었다.반역한 무리가 언제든지 새 왕조를 세울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기에 다윗 왕조를 이어가신다. 예수님이 오셔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신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 땅에 기댈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을수록 더욱 하나님만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축복이다. 잠깐 있다가 사라질 이 세상을 의지하는 것보다 영원하신 하나님을의지하는 것이 축복이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겠다는 소망 외엔 이 땅에 순결한 것이 없다.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공이구나 훅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 아마샤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버린 일은 없습니까? 해석이 안 되는 반역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만 소망을 둡니까, 다른 것을 찾아다닙니까?
기도제목
A
- 변리사 시험 붙회떨감
- 미래에 대한 불안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을 누리길
B
- 교회 잘 붙어있을 수 있도록
C
- 아빠 교회 잘 정착할 수 있도록
- 일상의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D
- 아빠의 영혼구원, 부모님 건강
- 삶의 활력 주시길
- 다음 주 실기시험 함께 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