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年 10月 06日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느냐
열왕기하 14:1~11
[1] 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제이년에 유다의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니
[2] 그가 왕이 된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3]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는 같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행한 대로 다 행하였어도
[4] 오직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5] 나라가 그의 손에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6]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7] 아마샤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하고 이름을 욕드엘이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러하니라
[8] 아마샤가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이르되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9]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유다의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0]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왕궁에나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11]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그와 유다의 왕 아마샤가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1, 회개 없는 정직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 말씀을 듣고 날마다 큐티를 해야합니다. 오늘은 성전 수리했던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샤는 여호와가 보시기에 정직하게 자라 보일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왕은 기준자체가 여로보암입니다. 즉 믿음이 없고 사람을 상대로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아마샤는 정직하기는 했지만 다윗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기대는 우리를 양육하게 하십니다. 산당은 토속신앙의 우상입니다. 이스라엘도 성전이 생기기 이전에 산당이 존재하였습니다. 가장 부유했던 솔로몬은 산당을 세웠습니다. 유다의 왕의 평범 속에 저지르는 악이 존재합니다. 죄와 타협하는 것이 화를 자취하게 하는 시작점이 됩니다. 인구절벽에서도 이런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결혼은 뒤로 하였기에 인간보다 반려동물들이 더 많아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악의 평범성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정직과 다윗간의 차이가 있는데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하였다는 말은 남북 이스라엘 어디에도 없습니다. 회개하는 모습이 가장 정직합니다. 회개 없이 산당예배를 드리는 것은 화를 자취하는 길이 됩니다. 하나님이 산당을 제거하시라고 명령을 하였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댑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아도 그것이 화를 자취하는 길이 됩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산당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속사의 증인입니다.
적용 질문) 나는 정직합니까? 정직하다면 남을 힘들게 하는 정직입니까, 남을 살리는 정직입니까?
2, 복수심보다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아마샤가 왕이 된 이후 아버지인 요아스 편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행동만 하는 것도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아마샤는 복수심으로 자기 아버지에게 심복한 자들을 심복하였습니다. 아마샤도 아버지의 길을 밟았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말씀을 따르기 위해 힘든 적용을 하였습니다. 문제의 자녀는 없고 문제의 부모는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며 복수심을 참고 율법적으로 순종하였어도 나 혼자 정직하다고 외치는 것은 정직의 한계입니다. 아마샤는 반역이라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에돔 같은 자였습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용병들을 보냈습니다. 아마샤는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를 얻었습니다. 아마샤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주셨으며 순종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복수심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지만 이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복수하려는 마음은 화를 자취하는 길입니다.
적용 질문) '반드시 갚아 주겠다'며 이를 갈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감정이나 계산보다 말씀대로 해서 수지맞은 경험이 있습니까? 이번 주 꾹 참고 인내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3, '네가 감히'하는 교만을 그쳐야 합니다.
아마샤의 가장 큰 문제는 듣지 않습니다. 아마샤가 요아스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 에돔 같은 사람들에 대한 심판이 되었습니다. 산당을 제거 하지 않았기에 각종 우상으로 채워질 수 밖에 없어 결국 악이라는 생각 조차 하지않게 됩니다. 오로지 자랑을 위해 집에 여러가지 트로피들을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처럼 산당제사들도 익숙해지게 됩니다. 요즘 대한민국 국민들도 죄에 대해 무뎌졌습니다. 특히 자살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해질수록 다른 지체들의 말을 다 무시하게 되고 오로지 내 영광만을 위해 채워지게 됩니다. 이것은 태생적인 교만도 포함됩니다. 눈 앞의 사람들의 말도 듣지 않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듣는가? 그것에 있어서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고난도 고난이지만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습관적으로 말씀을 들어야 교만이 그쳐집니다. 그러므로 주일 설교 청취와 성경 읽기 그리고 큐티를 해야합니다. 술과 담배도 맛을 보게 된다면 그런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술과 담배를 안하지만 나는 건전하게 산다고 자랑을 하는 것도 역시 교만이 됩니다. 부부간의 갈등도 싸울 수는 있어도 이혼은 하지 않은게 기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그렇습니다.
적용 질문) 옳고 그름을 따지며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습니까? 그런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까? '네가 감히!'라는 말을 내가 합니까, 내가 듣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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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나는 오늘 설교 말씀 들으면서 찔림을 많이 받았다. 사실 나는 학교폭력 피해자였으며 몇 달전까지만 해도 복수심이 있었다. 그러나 설교 후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요약하자면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도 가해자를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가해자도 가해자지만 피해자인 나도 이제는 갇혀있던 피해의식으로부터 빠져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반면 내가 교회를 안다녔다면 지금도 복수심이 들을 수 있었다.
(B)
- 이번 주는 특별한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오늘은 맞교대 덕에 쉴 수 있었다. 주 6일동안 일했다. 사건이 있기는 했었는데 우리 매장 직원 5명이 있었다.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들은 사회성이 떨어지고 교만해 보였다. 직원들과의 갈등 때문에 해고 당할까봐 걱정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정죄했었다. 오늘 설교 말씀 듣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다른 직원들을 정죄했었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반성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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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목자)
1. 체력 관리와 이직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2. 우리 목장 신교제 할 수 있도록.
한태일(부목자)
1. 자기 자리 잘 지킬 수 있도록.
2. 누나네 가정에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3.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를 하고 현재에 잘 집중할 수 있도록.
4. 목원들이 공동체 붙어갈 수 있도록.
5. 이제 4분기 시작했는데 이 때에도 주어진 자리에 만족할 수 있도록.
임주혁(부목자)
1. 이번 한 주에도 주변의 잡음이 아닌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큐티 할 수 있도록.
2. 피해 의식으로 인해 가족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 관계에서 훼손이 일어나지 않도록.
3. 꾸준한 운동과 식단 관리 할 수 있도록.
4. 나의 진로에 맞는 자리를 허락해 주실 수 있도록.
김우용(형제)
1. 새로운 직장 내 열심으로만 너무 부리지 않도록.
2. 나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3. 새로운 직장 동료들이랑 관계 잘 할 수 있도록.
4. 남은 시간에 진로 능력 키울 수 있는 체력을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