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29. 주일설교 <하나님의 사람>
본문 열왕기하 13:19-25
- 김양재 담임 목사님
여러분에게 내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부모님, 친구, 남편, 아내가 그런 사람인가요? 요즘 참 정치 뉴스만 봐도 내 사람을 찾을게 못됩니다. 믿는 도끼는 발등 찍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여러번 나오지만 처음으로 표현된 사람이 모세였고, 제일 마지막에 하나님을 믿는 모두까지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호칭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장 많이 불린 사람이 엘리사입니다. 29번이나 쓰였습니다. 갑절의 영감을 구한 엘리사의 마지막 사역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1. 마지막까지 거룩한 분노로 양육합니다.
(19절) 엘리사가 지난 번 14절에서 죽을 병에 들었다고 합니다. 문병 온 요아스 왕은 자기 설움에 슬퍼 눈물을 흘립니다. 그에게 처방을 하지만 끝까지 순종하지 않고 3번만에 그치는 그를 보며 분노합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한 요아스를 보며 애통하다 못해 화가 나는 것입니다. 왜 마음대로 그치냐는 것입니다. 요아스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닌 죄를 향한 거룩한 분노입니다. 거의 합격이 없기에 요아스에게 3번 참으면 되냐 끝까지 참아야 하는거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끝까지 믿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도 믿으라고 하며 분노하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렵습니다. 예수 믿으라 유언하고 가시라고 했는데 못하셨습니다. 남편 집사님은 간암 말기, 아내 집사님은 췌장암 말기로 현재 호스피스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싸웠지만 아무리 싸워도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가족들과 임종 예배를 드리고 지난 주 장례 예배를 치뤘습니다. 마지막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요아스는 하나님이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좋으니 남북이 다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원이시라는 뜻의 엘리사가 한 조언을 요아스는 3번만 치고 그쳤습니다. 우리는 화가 납니다. 그러나 본질은 내 피해입니다. 나에게 피해가 생길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분노하게 됩니다. 이 분노는 거룩한 분노와 다릅니다. 거룩한 분노는 대상이 죄입니다. 즉, 구원에 대한 애통함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양육할 때 가장 양육이 되는 사람이 양육자입니다. 그만큼 내가 자라가기 때문에 주님께서 메세지도 키우시고 나도 키워가시는 것입니다.
# 요즘 무슨 일로, 누구에 대해 화를 냅니까? 죄악에 대한 거룩한 분노입니까? 내 손해에 대한 감정적인 분노입니까?
# 어떤 양육을 받고 있습니까? 그만두려 하지는 않습니까? 거룩한 분노로 끝까지 마치겠습니까?
2. 죽어서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20절) 화를 내다가 엘리사가 죽었습니다. 엘리사가 죽을 병에 들어 분노하고 양육하다가 죽었습니다. 그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나타나 승천하는 결말이 나옵니다. 엘리사는 부유한 농장주이자 기적도 베풀고, 열심히 양육하지만 그들이 다 악을 행합니다. 또 마지막엔 병에 걸렸습니다.
엘리야는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엘리사는 아이들에게 대머리라 놀림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둘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의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또 누구처럼 죽고 싶으신가요?
엘리사는 참 한결같이 이상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는 한결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양육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엘리사의 슬픔으로 보이지만 죽을 때 모습이 아름답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보기에 엘리사가 위대해보여도 예수님의 예표는 엘리야보다 엘리사였습니다.
(21절) 엘리사가 죽은 것은 이스라엘에게 불행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죽자마자 모압이 도적떼로 다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빈자리가 이렇게 큽니다. 늘 이상한 것만 시킨다고 생각하고 무시했겠지만, 그 이상한 사람이 나라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생전 많은 기적을 보였습니다. 그는 죽은 뒤 유골이 되어서도 죽은 사람을 회생시켰습니다.
# 엘리야처럼 카리스마가 있고 싶으세요? 엘리사처럼 편한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 죽을병에 걸렸다면 낫는 것이 소원이겠습니까? 가족이 예수 믿는 것이 소원이겠습니까?
3. 언약 때문에 영원한 회복을 누립니다.
(22-23절) 13장 초반에 나왔던 여호아하스 왕이 나오는데 여호아하스 왕이나 요아스 왕이나 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기에 학대를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대 당하는게 억을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경주를 잘 마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24-25절) 아람 왕은 대를 이어 이스라엘을 학대합니다. 요아스에 의해 벤하닷을 3번 쳐서 무찌르고 잃어버린 땅을 회복합니다. 언약 때문에 성읍을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복이라는 말을 듣는게 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회복은 또 잃어버리기 마련입니다.회복하다는 슈브인데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회개하나 회복하다 돌아오는 것이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읍을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것이 회복인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회복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돌이키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회복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잃었다가 회복해도 또 잃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회복은 절대적입니다. 회개는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최고의 상급입니다.
요아스가 3번만 회복합니다. 이는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회복을 해야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늘부터 천국가는 그날까지 말씀보는 순종으로 회개를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회개가 너무 잘 안되기에 질문하는 큐티 훈련을 잘 해야 합니다. 큐티를 할 때 성경을 가져다두고 안수를 합니다. 그리고 주여 아무것도 모르겠사오니 가르쳐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시고 깨닫게 해주세요 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깨달아지지 않더라도 큐티한 것을 자랑하면 됩니다.
# 나는 일시적 회복을 바랍니까? 영원한 회복을 바랍니까?
# 영원한 회복은 회개고 회개의 실체는 날마다 큐티하는 것이란 것이 인정되세요?
A
매일큐티하기
잘붙어가기
B
양육숙제 미루지 말기
C
매일큐티로 내 죄보고 가기
세운 계획대로 취준을 성실히 임하기
D
큐티 주 1회하기
한주를 말씀을 통해서 겸손하게 살수있도록
E
양교자리에 잘 붙어갈수 있도록
매일큐티하기
신교제
F
결혼준비과정에서 세상적인 지식이 아닌 하나님께 묻고 겸손히 준비할수 있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맡은 직분과 사역을 잘 감당할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