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2 갈등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야고보서 4:1-10
ANC온누리교회 김태형 목사
저는 11살 때 미국에 이민 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수 십년이 지나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한국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우리 김양재 목사님께서 저희 교회와 저를 큐티인의 이사로 초청해주셔서 그동안 이렇게 말로만 듣던 우리들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릴 수 있어서 너무너무 기쁘고 반갑고, 무엇보다 진정으로 하나님 말씀을 세계에 전하는 그런 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잠깐 큐티인 소식을 제 나름대로 말씀을 드리면, 한 3년 전에 제가 아는, 또 제가 존경하는 강주민 목사님이 김양재 목사님을 저희 교회에 초청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그날 교회 없을 때이고, 또 큐티인을 들어보지 못해서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또 한 번 그런 제안이 들어왔는데, 무슨 이유인지 기억은 안 났는데 또 한 번 사양을 했습니다. 그 후에 저희 교회에서 한 시간 떨어진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얼바인 벧엘교회에서 하는 목세 세미나를 제가 참석하고 김양재 목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제 소개를 제가 하면서 'ANC온누리교회 김태형 목사입니다.'했더니 김양재 목사님이 단번에 '저를 두 번 Reject하신 목사님이시군요.' 저를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목사님을 진작 초청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어찌됐든 목사님께서 이렇게 또 기억해주시고 이제는 저희 교회도 큐티인을 하는 교회가 됐습니다. 큐티인을 처음 만난 당시에 코로나를 저희들이 지나고 있을 때자나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제가 담임 목사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하나님 말씀 안에, 하나님 말씀과 함께 살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있었는데, 저희 교회도 큐티를 하는 교회지만 새로운 도전과 계기를 큐티인을 통해서 만나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이었던 것 같아요. 김양재 목사님의 구속사 큐티를 듣게 되었고 그 관점이 너무 신선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 와닿았던 것은 큐티인을 강의만 하는 것은 어느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온 교회가 함께 큐티를 실천하며 말씀으로 변화되며가정이 살아나는 간증들을 나누는 그런 우리들교회 성도님들의 모습에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리더십들과 상의하고 또 설득했습니다. 거의 2년 전에 큐티인을 시작해서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귀한 간증을 나눠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별히 이민 교회는 부모와 자녀간에 신앙의 커넥션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언어입니다. 1세 부모님들은 한국말로 믿음 생활하는데 자녀들은 영어로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상당한 갭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언어와 문화의 갭 가운데 1세, 2세 사이에 거리감을 피할 수 없는데 큐티인에서 어린 아이부터 청소년, 이제는 청년까지 교제를 만들어주시고, 얼바인 벧엘교회 번역팀이 영어를 번역을 잘 해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온 가족이 똑같은 본문으로 큐티를 하며 신앙의 훈련을 쌓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수고하시는 큐티인 팀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미국 전 지역에까지 큐티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더 많은 구속사 간증들이 나올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헌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이번 년도부터 기존에 있던 큐티 세미나를 구속사 큐티를 보정해서 도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기존에 있던 큐티 세미나는 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포커스했다면, 이제 구속사 큐티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죄를 계속 들여다보는 훈련을 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복음의 가장 아름다운 혜택 중 하나가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있기에 회개가 가능한 것이죠.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는 아버지가 있기에 죄를 드러내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미 죄를 용서 받았기에. 솔직히 이민 사회 하나 건너뛰면 다 아는 사이이기에 죄와 수치를 드러내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큐티인의 적용질문들이 마음에 있는 죄를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또 여러분의 묵상간증들에서 마음 속 가장 깊고 무겁고 수치스러운 죄, 상처와 우상들을 드러내고, 또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치유의 과정을 잘 전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죄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 더욱 위대한 것을 보게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우리들교회 슬로건처럼 '공동체에 붙어 있어야 된다.' 그런 말을 제가 많이 하고 있어요. 이 마지막 때에 홀로 신앙 생활하는 것은 사탄의 먹잇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와 이슈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 설교도 거기에 대한 주제인데 하지만 제가 계속해서 얘기하큰 것처럼 '공동체를 떠나지 맙시다. 함께 고민합시다. 함께 말씀 봅시다. 함께 어떻게 주님이 일하시는지 바라봅시다.'라고 저희 교회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교회가 선교의 차원으로 큐티인을 나눠주신다고 들었는데 이 은혜가 여기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만이 아니라 한국을 넘어서서 전 세계에 퍼지기를 함께 축복해주시며 기도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준비한 말씀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갈등입니다. 갈등을 생각하면 무조건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듭니다. 갈등이라는 주제 자체가 갈등이죠. 저도 오늘 여러분을 처음 만나면서 갈등에 대해 나누는 것에 대해 갈등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우리의 내면과 중심을 바꾸는 하늘의 영적 능력이라면 우리가 매일 삶 가운데 부딪히고 무너지고 힘들어하는 주제, 바로 갈등에 대해서 분명히 역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안다면 매일 우리 삶 속에 크고 작은 갈등 가운데 내가 중심인 반응이 아니라 복음이 중심이 되는 반응이 나오는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야고보서는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에게 보낸 글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 갈등의 구체적인 원인과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갈등에 대한 복음의 관점을 함께 보기 원합니다.
1. 갈등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삶의 현실입니다. (Conflict is the reality of life.)
모든 사람에게,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갈등은 우리 피부로 느끼는 가장 실제적인 문제예요.
지난주가 추석이었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추석 가운데 아마 식구들이 모이셨을 거 같아요. 시댁, 장인, 장모, 시누이, 친척들, 사촌들. 그런 모임 가운데 갈등을 겪어보신 분들 손 한 번 들어보시죠. 별로 없으시네요, 아주 천국같은 가족인 것 같은데. 아니면 추석은 무사히 넘어갔는데 어제, 혹은 오늘 아침에 교회에 오실 준비를 하시며 갈등을 했다. 진짜 천국이네, 목사님. 전혀 없었다고 하시는 분들은 갈등에 너무 익숙해져서 무뎌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들은 갈등이 기관총처럼 다다다다 그러면서 계속 있어요. '매일이 전쟁터입니다, 목사님.'하시며 이 순간에도 갈등의 먹구름이 우리 머리 위를 맴돌며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괴롭히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놀랍지 않아요. 갈등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에, 또 죄가 있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모든 문화권에, 모든 나라에, 모든 가정, 모든 부부 사이에 그리고 직장에서, 오늘 성경이 보여주듯이 모든 교회와 사역 가운데도 갈등은 충만합니다. 저도 최근에 새로운 갈등이 생겼습니다. 한 달 전에 둘째 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으로 들어왔어요. 아들이 집에 있으니까 너무너무 좋아요. 제가 나갔다 오면 항상 이렇게 소파에 자빠져서 돌처럼 움직이질 않아요. 한 손에는 뭘 쥐고 있습니까? 전화기 보는 포지션이에요. 그래서 아빠한테 '아빠, 하이.' 인사는 하지만. 그런데 여러분 이 아들이 다 큰 아들 한 마디 해야 하나 마음 속으로 갈등하다 참지 못하고 잔소리가 나오면 더욱 더 큰 갈등이 생겨요. 그리고 이 둘째 아들이 들어온 후부터는 저희 집에 온도기 전쟁의 갈등이 있습니다. 저는 에어컨을 어떻게 하든 끄면서 이렇게 온도를 올리는데 제 아들은 항상 너무 덥다고 계속해서 내리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 전에 저는 끄고 제가 먼저 자면 그 아들은 다시 켜서 아주 춥게 만들고, 그래서 끊이지 않는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 인간의 문제를 성경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갈등의 이야기들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간의 갈등. 다윗왕과 아들 압살롬,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 교회 안에서의 갈등. 사역자들 사이의 갈등. 뭐 가끔씩 이런 얘기 많이 듣죠. '우리가 초대교회를 본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여러분 초대교회 갈등이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놀랍게 하는 것은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첫번째 선교팀입니다. 이 선교사의 선교사의 드림팀이라고 할 수 있죠. 바울과 바나바는 첫번째 선교사이고 교회 리더십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이 바나바에 대해서 처음 나오는데 '위로의 아들'이라고 그렇게 별명이 붙여졌어요. 자신의 밭을 팔아 헌신한 제자이고, 사도행전 11장에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을 때는 예루살렘에서 확인을 위해 이렇게 보낸 그런 리더였습니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믿을 만한 사람, 겸손하고 배려심 있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었죠.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바울이 있죠. 바울하면 그가 교회를 핍박했다고 하지만 다메섹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시고, 또 회개하며 크리스천이 됐고, 그 다음에 이방인의 사도로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신약성경의 절반을 그가 썼습니다. 이런 대단한 리더 두 사람이 한 팀이 됐습니다. 드림팀이에요. 첫번째 선교 여행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돌아와서 이제 두번째 선교 여행도 함께 가자고 동의를 했어요. 여기까지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이렇게 나오고 있어요. 서로 심히 다투어 .... 여기에 나오는 헬라어는 강력한 갈등의 표현입니다. 메세지 성경에서는 '언성이 높아지더니' 여러분 그림이 그려지시죠. 그리고 결국에는 .... 피차 갈라서니 .... 선교 드림팀도 갈등 때문에 깨진 것입니다. 저희 교회 협동 목사님이 해주신 이야기인데 한국에서 어떤 사람들이 막 싸우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뒤에서 이렇게 말하더래요. '거기 조용히 좀 하세요. 여기가 교회인 줄 알아요?' 아마도 이런 광경을 직접 목격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미국 이민 교회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종종 있기에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특별히 다음 세대들은 갈등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고 소송하는 것들을 경험해서 그런지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이에요. 특별히 믿음을 저버리는 이야기들이 너무 자주 있어서 참 목사로서 제가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여러분, 갈등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이것을 폭발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공동체가 깨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있는 한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갈등을 접근하는 방법을 복음으로 바꿔야합니다. 그래서 적용질문 이렇게 드리고 싶어요.
[적용] 갈등이 올 때 놀라고 낙심하십니까? 혹시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갈등은 우리의 우상을 드러내기에 영적 성장의 기회입니다. (Conflict is an opportunity for spiritual growth because it reveals our heart idols.)
갈등은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우상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갈등 가운데 우리는 회개할 수 있고 십자가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인데 모든 것이 다 잘 될 때, 모든 것이 화목할 때가 아니라 갈등 가운데 죄들이 드러날 때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베풀 때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이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컵이 있는데 제가 들고 가다가 여러분에게 부딪혀서 커피를 다 쏟았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옷이 젖고 더러워졌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제가 여러분과 부딪혀서가 아니라 이 컵 안에 커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등과 부딪힐 때 내 안에 있는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갈등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하게 하는 거예요. 저도 제 안에 있는 우상들을 발견하며 인정하게 된 것은 결혼하고 나서 아내와의 갈등 가운데입니다. 신혼 때, 한국에서는 이케아라고 하더라고요. 가구들을 샀습니다. 그래서 쉽게 조립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항상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한국에서는 저같은 사람을 똥손이라고 한다고 하죠. 가구 하나를 조립하다가 한 번은 제가 너무 끙끙대니까 같이 신혼 생활하는 제 아내가 옆에서 그냥 의견을 낸 거예요. '여보, 형부가 엔지니어이니까, 이런 거 잘 하니까 형부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저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겠죠. 그런데 거기서 제가 버럭하고 'No, I can do this.'하고 막 분노하니까 결혼한 아내가 깜짝 놀랐어요. 제 아내가 문제가 아니라 제 안에 있던 아버지의 굶주림에서 오는 인정의 우상이 드러난 것입니다. 완벽한 아버지 아래서 자라다 보니까 조그만 것도, 그리고 제가 원하는 그 사랑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다가 보니까 그런 분노가, 그런 상처가 제 안에 자리잡고 있었던 거예요. 큐티인에서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는 간증들이 많이 나오죠. 그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갈등 가운에 우리 컵에서 화평을 이루는 것들이 쏟아지길 원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가, 분노가 온유가, 사나움이 아니라 친절이, 변명이 아니라 회개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야고보서 3장 18절에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화평을 심는 자들은 의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우리들교회 성도님들은 갈등 가운데 더욱 더 풍성한 의의 열매를 거두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적용질문 이렇게 드립니다.
[적용] 여러분은 갈등 가운데 마음의 우상을 발견하십니까? 혹시 상대방의 결점이나 남의 우상들에게만 집중하신 것이 아닙니까? 내 우상을 발견하셨다면 회개로 이어졌습니까? 갈등 가운데 목표가 무엇입니까? 화평과 화목입니까?
3. 갈등 가운데 우리 내면의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We need to acknowledge our inner sins n the midst of conflict.)
서로의 다름이있지만 갈등의 주된 원인이 나의 죄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갈등하게 합니까? 심리학에서는 '서로의 기대치가 맞지 않아서.'라고 말을 합니다. 즉, 채워지 않는 바램. 아까 말씀드린 이 선교 드림팀, 바울과 바나바도 갈등의 주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요? 사도행전 15장 37절과 38절에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그래서 '마가를 두번째 선교 여행에 데리고 가냐, 마느냐?' 첫번째 선교 여행 때 마가는 중간에 포기하고 선교팀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버렸어요. 이것 때문에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마가를 보는 바울과 바나바의 관점이 달랐기에 서로 부딪혔습니다. 바울은 '도중에 포기한 마가를 믿을 수 있냐? 이건 아니다.' 바나바는 '아니,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줘야지.' 또, 자신의 사촌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겠죠. 둘 다 이해가 됩니다. 저와 제 아내도 여행할 때마다 갈등을 피할 수 없는데 여행에 대한 서로의 기대치가 정말 맞지 않는 것을 봅니다. 2년 전 안식월 중 거의 한 달 동안 온 가족과 함께 여행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첫번째 온 곳이 제주도였어요. 그래서 함께 한라산을 올라갔다가 정상에까지 못 올라갔어요.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어떤 신혼 부부로 보이는 커플이 막 올라오더라고요. 남자가 저희를 지나치면서 먼저 앞으로 올라가면서 뒤에 따라오는 여자에게 소리쳤습니다. '야, 빨리와. 아직 멀었어.'하고 소리치니까 저희들이 내려가면서 그 여자가 우리를 지나치면서 혼잣로 하는 얘기를 저와 제 아내가 들었어요. '에이씨, 확 그냥 놔두고 갈까보다.' 그 모습을 목격하고 들은 저희 25년차 된 저와 제 아내는 아주 여유롭게 우리는 모든 것이 편안한 듯 '야, 쟤네들 아직도 갈 길이 멀었네.' 했습니다.바로 그날 밤 우리에게 닥칠 갈등의 폭풍을 전혀 예기치 못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 부부는 그래도 꽤나 사이가 좋은 커플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서로 자라 온 배경이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있는 위치에 따라 관점도 다르고, 철학도 다릅니다. 그러기에 서로 부딪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것이 갈등을 가져온다는 것이 세상의 관점이죠. 자,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더 확실한 원인을 줍니다.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 자, 야고보서 4장 1절부터 3절을 같이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두 번 나오는 단어 '정욕'이라는 단어, 영어로 Passion이라고 써 있어요. 그래서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욕구, 욕심입니다. 그런데 원어로 보니까 '헤도네'라고 써 있습니다. 영어의 '쾌락주의, 향락주의'를 말하는 거예요. 나의 욕구, 나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것이 우선이어서 다툼과 싸움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갈등의 원인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죄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생각, 나의 선택, 나의 안전, 나의 편리, 나의 통제, 이것이 남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에요. 이것의 뿌리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인간은 안으로 우리 내면이 굽어져 있다고 얘기를 했어요. 내가 우선이기에 나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갈등이 있는 것이에요. 한 카톨릭 학자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평상시에 사람은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My life for me, 나른 위한 내 삶, 다른 것은 My life for you, 당신을 위한 나의 삶. 당신의 필요보다 내 필요가 우선의 삶이던지, 아니면 당신의 필요가 내 필요보다 먼저인 삶, 매 순간 우리가 내려야 하는 선택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은 항상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K-pop의 영향력 때문에 K-Drama를 참 많이 봅니다. 제 아내는 LA 카운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데 이제는 백인들, 히스패닉, 필리피노 한국 드라마를 너무너무 많이 보고 있어요. 제가 최근에 본 드라마가 '눈물의 여왕' 많이 들어보셨죠. '모든 것을 거기 여주인공, 홍혜인을 위해 결정하는 백현우는 현실이 아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의 현실은 윤은성과 가깝습니다. 자기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모든 사람을 괴롭게 하는 인물, 나중에는 자기 자신까지도 그것 때문에 망가지죠.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더 의도적으로 갈등을 접근해야 합니다. 복음 안에 우리에게는 화목을 이루는 성령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지막에 있었던 갈등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머릿속에 있으시죠, 그 사람의 얼굴이 생각이 나죠? 원인이 무엇입니까? 제주도에서 저희 부부에게 닥친 긴 갈등의 시작은 아주 작은 것이었어요. 저는 주차비를 내기 싫어서 멀리 길가에 차를 대려 했고, 제 아내는 걷기 싫다고 돈을 좀 내고 가까이 차를 좀 대자. 누가 옳았을까요? 여러분들은 이런 사소한 일로 싸우지 않으시겠죠? 둘 다 틀리지 않았죠. 다름입니다. 그런데 나의 관점이 맞다고 우기고 나의 정욕을 채우는 것을 저는 우선으로 했습니다. 상대방이 그것에 맞추는 것을 요구했고요. 물론 목표는, 결론은 제가 이겼어요. 갈등 가운데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크게 보면 두 가지일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공격형, 아니면 다른 사람은 회피형들이 있을 것 같아요. 공격형은 '내가 이길 때까지 이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 변호사처럼 상대방을 다그치고 따집니다. 끝장을 봐야 해요. 아니면 여러분이 생각하셨던 그 갈등 가운데 회피형 있었을 수도 있었을 거 같아요. '갈등은 어떻게 하든 피하자. 아니, 지금 이 얘기를 해야 돼, 내일하면 안 돼?' 그래서 싸우지는 않지만 꽁하고 간접적으로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래서 삐져서 말을 하지 않거나 밥을 주지를 않거나 갈등의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자, 공격형, 회피형, 제일 최근에 있었던 갈등을 생각하시며 여러분의 성향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밖에서는 회피형, 그런데 집에 와서는 공격형이 된다고 합니다. 어찌됐든 이것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라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공격형, 회피형 둘 다 죄성입니다. 복음중심적은 의도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기에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적용] 갈등 가운데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공격형입니까? 회피형입니까? 그 자연적인 성향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교만을 인정하여 회개하십니까? 예수님의 영광이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욕을 채우려고 갈등한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4. 복음이 제시하는 갈등의 해결은 겸손으로 시작합니다. (The gaspel solution to conflict start with humility.)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 여러분, 복음 중심이라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온전히 은혜입니다. 그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세상도 갈등의 해결책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오늘 책방에 가시면 여기에 대한 테크닉과 아이디어들이 많이 담긴 책들이 여러군데에 있을 거예요. 주로 이런 책들을 읽으면 세상의 해결책은 타협입니다. 협상이죠. 그래서 모든 관계자들의 기대를 인정해주고 '아, 우리 둘 다 이기는 방법을 찾자.' 그런데 이 타협의 원리는 일시적인 거예요. 본질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냥 반창고 붙이는 것입니다.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의 정욕은 어떤 물질, 상황이 조금 맞추어졌다고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요. 다음에 똑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변화되어서 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야고보서에서는 본질을 다루고 있습니다.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 7절에서 10절을 같이 읽어보겠는데요. 그런데 여러분이 갈등했던 그 사람을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메세지로 받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갈등의 원인이 우리의 죄성인 교만이라면 해결은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겸손입니다. 이 갈등이 그냥 나와 그 상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예수님 안에 속한 자로서 그 갈등 가운데 나와 하나님과의 이슈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반응이 내가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나타나는 것인지. 결국에는 그 갈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기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 것인지. 축복 아니면 저주, 생명 아니면 죽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 있는가.'입니다. 겸손이라고 그래서 소극적이거나 자신감이 없는 게 아니예요. 진정한 성경적인 겸손은, 이런 말이 있어요. '겸손은 자신을 작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할 때 나의 정욕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그 동기를 주는 거예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확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신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완벽한 의로움을 우리에게 입혀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내세울 필요가 없어요. 그러기에 겸손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엄청난 채워짐이 있기에 당당하게 우리 자신을 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의 복음의 능력입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겨야 된다고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제 안에 있는 굶주림 때문에, 인정의 우상이 있으니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면 우울하고, 분노하고, 어쩔 수 없으면 자기 연민으로 빠지고. 주로 어떤 면에서는 회피형이다 보니까말도 안하고 꽁하고, 얼굴은 온통 못마땅한 표정. 평안이 없는 것이죠. 그것은 저에게, 또 제 주위의 모든 사람들, 특별히 제 가족에게 괴로움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 안에서 채워지니 이기지 않아도 돼요. 져도 상관없어요. 이제는 내가 내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갈등 가운데 김양재 목사님이 자주 쓰시는 '당신이 옳소이다.'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도 틀릴 수 있다.'라는 겸손으로 갈등을 맞이하니 대화가 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나도 틀릴 수 있다 생각하니 놀라운 것은 제가 회피형이지만 제 생각도 이제는 잘 전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까요. 그 결과가 저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니 제가 얘기하고 난 후에 결과까지도 주님께 맡겨버리고 나는 평안할 수 있어요. 복음이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완전하시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저는 이제 당당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요. 그리고 똥손이라는 것도 제가 인정합니다. 제 아내가 우리 형부를 전화 걸고 싶으면 '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 여러분 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지 아세요? 오늘 본문 4절, 5절에 야고보 사도가 크리스천들에게 간음한 여인들이라고 말을 했어요. 왜 이런 표현을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쓸까. 그러면서 오늘 5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를 시기하시기까지 사모한다고 하십니다. 지금 예레미야 큐티를 함께 하시고 계시자나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와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를 영적 간음으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신랑, 남편이 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완벽한 남편이세요. 그런데 남편만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다른 남자가 있다면 시기하는 것이 당연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딴 남자를 바라보는데 시기를 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곳에 마음을 줄 때 시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물질이든, 어떤 사람이든, 일이든, 가족이든, 사역까지도 하나님은 질투하세요. 그것은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 사랑은 포기할 줄 모르고 완벽하세요.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갈등 가운데 안전하게, 또 겸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적용질문 이렇게 드립니다.
[적용] 갈등 안에서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십자가의 사랑 안에 여러분이 필요한 모든 의로움과 인정이 채워졌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갈등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 아닙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갈등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며 하나님께 등을 돌리므로 영적 간음을 저지르며 이 갈등이 찾아왔어요. 이 갈등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데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빌립보서 2장 5절에 보시면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 마음은 겸손함이에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기를 죽기가지 낮추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갈등 가운데 분노하시고 우리 모두를 싹 쓸어버리셔도 되는데 그러지 아니하셨습니다. 자신의 임재를 거두지도 않으시고, 자신의 무한한 힘을 과시하지도 않으시고, 오직 희색함으로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오늘 관계로 초청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2년 전 안식월 여행이 끝날 때 쯤 저와 제 아내가 많은 갈등 가운데 제 아내가 2가지 결론을 내렸어요. 첫번째는 이제 저와 같이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그 다짐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결론은 우리 부부는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전에는 우리가 목사 부부이고,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또 나름대로 성숙하다고 생각해서 예수님 없이도 우리 부부는 괜찮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라산에서 마주쳤던 부부를 보며 '아, 우리는 저렇지 않아.'했는데 갈등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를 위한 것임을, 저같은 죄인을 위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 깨달은 것은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또 겸손하면 우리를 위해 겸손해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게 될 줄 믿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게 되면 남을 위할 수 있게 돼요. 여러분, 갈등에 부딪힐 때 여러분에게서 화평의 열매가 쏟아지는, 매일매일 복음의 능력을 누리시는 우리들교회 성도님 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크리스천들의 갈등의 목표는 내가 이기는 것도 아니고, 타협도 아니고, 상대방의 이득이고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기도제목
희연
1.신장이식 받은지 2년이 넘어가 9월달에 하는 신장수치 검사 및 다른 검사들 잘 하고 잘 나오길 바라며
이식 신장 뿐 아니라 몸 컨디션도 잘 회복되고 유지될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2. bk바이러스랑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했다 합니다.검사 받아야 하는데 아무 일 없이 해주시길
3. 현장예배 드릴수 있고 목장에도 나갈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4. 엄마의 구원과 지치지 않고 건강 지킬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5. 언니와 형부의 비행하는데 동행하여 어려움이 없게 해주소서
6. 우리 조카들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할수 있도록 돌봐주시고 지켜봐주시길
7.목장 식구들 목자 언니 포함하여 주님안에서 늘 승리하여 원하는 기도들이 응답받고 모두들 건강 지켜주시는 은혜를 주옵소서
8. 주님의 말씀으로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아가게 해주시고 갈등안에서도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잘 이끌어주시고 평안과 은혜를 내려주셔서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게 하소서
예선
1.갈등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알고 놀라겠지만 기도하며 돌아나오도록
2.가정과 직장에서 경계를 잘 긋도록
3.이번주 마감 기간인데 교육하면서 진행하여 해서 부담이 있습니다. 잘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고 지나갈 수 있도록
은우
1.그는 나보다 옳도다는 은혜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특권인 것을 알고 욕하고 싶은 상황들도 축복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