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22.(주일) 야고보서4:1-10 「갈등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김태형 목사님(ANC온누리교회)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 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 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 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 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오늘은 이제 너무 또 반가운 LA의 ANC온누리교회를 섬기고 계시는 김태형 목사님께 서 오셨는데 온누리 중에서 가장 큰 교회라고나 할까요? 근데 그보다 중요한 건 큐티 를 쓰시는 교회가 돼서^^ 미주에서 이렇게 큐티인을 쓰시면서 와서 이렇게 설교를 하 시는 분은 (우리 이제 김한요 목사님은 이제 번역을 하셨고) 처음이신 것 같아요. 그래 서 오늘 또 이 방송을 듣고 미주에서 또 곳곳에서 영어권에서 많이 도전받고 이렇게 써주시기를 바라고. 늘 이렇게 사모님하고, 호프(딸)가 같이 왔거든요. 감사합니다. (박 수) 호프가 제가 가서 여기 집회할 때 아멘! 아멘!을 이렇게 해서 아주 그냥 이렇게 분 위기를 그냥 아주 좋게 했던 우리 호프가 이렇게 왔네요. 김태형 목사님 나오시겠습니 다. 찬양합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 저희들이 자랑할 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희 들의 물질도 아니오, 저희들의 지혜도 아니오, 오직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을 자 랑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오늘도 주님께서 말씀하실 줄 믿고 우 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성령님의 음성 듣게 하여 주시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여러분, 우리 김양재 목사님께서 ANC온누리교회의 저를 미주 큐티인 이사로 초청 해 주셔서 지금 함께 섬기고 있는데 큐티인 시작한 우리들교회에서 같이 예배드릴 수 있어서 너무너무 반갑고 기쁩니다. 잠깐 저희도 큐티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한 3 년 전에 제가 존경하는 한 목사님께서 김양재 목사님을 저희 교회에 초청하라고 하셨 는데 그날이 제가 교회에 없을 때이고 또 큐티인을 들어보지도 못해서 거절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또 한 번 그런 제안이 들어왔는데 무슨 이유인지 기억은 안 나 는데 또 한 번 사양했습니다. 그 후 이제 저희 교회에서 1시간 떨어진 오렌지 카운티 얼바인 베델교회에서 하는 목세 세미나를 제가 참석하고 김양재 목사님을 처음 만났습 니다. 제 소개를 'ANC온누리교회 김태형 목사입니다' 했더니 김양재 목사님이 단번에 '저를 두 번 리젝트(거절)하신 목사님이시네요.' 그래서 제가 본의 아니게 너무 죄송했 고, 목사님을 진작 초청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어찌됐든 그렇게 저는 김양재 목 사님이 기억에 남게 됐고, 이제 저희 교회도 큐티인을 하는 교회가 됐습니다. 큐티인을 처음 만난 당시에 코로나를 지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말 씀 앞에! 하나님 말씀 안에! 그리고 하나님 말씀과 함께! 서야 하는데.. 하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도 큐티를 하는 교회인데 새로운 도전과 계기가 필요 했습니다. 그때 마침! 하나님의 타이밍이었던 것 같아요. 김양재 목사님의 구속사 큐티 를 듣게 되었고, 그 관점이 너무 신선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온 교회가 함께 큐티를 하 는 삶을 실천하며, 말씀으로 변화되며, 가정이 살아나는 간증들을 나누는 우리들교회 성도님들의 모습에 제가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리더십들과 상의하 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거의 2년 동안 큐티인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귀한 간 증을 나눠주신 여러분들께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미국 이민교회에서는 이 부모 와 자녀 간에 신앙의 커넥션(연결)에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언어입니다. 1세 부모들은 한국말로 믿음 생활을 하는데 자녀들은 이제 당연히 영어로 하기 때문이죠. 그러기에 이 언어와 문화에서 1세와 2세 사이의 거리감을 피할 수 없는데, 큐티인에서 어린 아 이들부터 청소년들, 오늘 말씀하신 이제 청년들 교재를 만들어주시고, 얼바인 베델교회 번역팀이 영어로 번역을 너무 잘해주시고 계세요. 그래서 온 가족이 영어든, 한국말이 든 똑같은 본문으로 큐티를 하며 신앙의 훈련을 쌓을 수 있게 됐습니다. 수고하시는 이 큐티인 팀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제 미국 전 지역에까지 이 큐티인이 퍼지기 시작했습 니다. 더욱더 많은 귀한 구속사 간증들이 나올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헌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이번 연도부터 기존에 있던 큐티 세미나를 구속사 큐티로 보정해서 도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복음의 가장 아름다운 혜택 중 하나가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이 있기에 회 개가 가능한 것이죠.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아버지가 있기에 죄를 드러내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미 용서를 받았기에. 그런데 솔직히 이민사회가 하나 건너뛰면 다 아는 사이이기에 죄와 수치를 드러낸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근데 큐티인의 이 적 용 질문들이 마음에 있는 죄를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묵상 간증들도 그냥 뭐 죄했다, 죄했다가 아니라 마음속 가장 깊고, 무겁고, 수치스러운 죄. 이 상처와 우상들을 드러내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치유의 과정을 잘 전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 죄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더욱 위대한 것을 볼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들교회의 슬로건인 것 같은 '공동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가 또 저희들 에게 많은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혼자 신앙생활하는 것은 사탄의 먹잇 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와 이슈들이 당연히 있습니다. 또 제가 설교하겠지만. 하지만 제가 큐티인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말하는 것 이 '공동체를 떠나지 맙시다. 함께 고민 합시다. 함께 말씀 봅시다. 함께 어떻게 주님 이 일하시는지 바라봅시다.'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교회에서 이 선교의 차원으로 큐티를 나눈다고 들었는데 이제 한국 을 넘어서 여러 깨진 가정들과 힘들어하는 공동체에 구속사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계속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제 준비한 말씀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갈등입니다. 갈등을 생각하면 무조건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는 먼저 듭니다. 갈등이라는 주제 자체가 갈등이죠. 저도 오늘 여러분을 처음 만나면서 갈 등에 대해 나누는 것에 대해서 갈등했었습니다. ^^ 근데 복음이 우리의 내면과 중심
을 바꾸는 하늘의 영적 능력이라면, 우리가 매일 삶 가운데 부딪히고 무너지고 힘들 어하는 주제- 바로 갈등- 가운데 분명히 역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제대 로 안다면 매일 우리 삶 속에 크고 작은 갈등 가운데 내 중심의 반응이 아니라 복 음이 중심이 되는 반응이 나오는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같이 읽은 야고보서는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에게 보낸 그런 글이죠. 안 믿 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 갈등의 구체적인 원인과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갈등에 대한 복음의 관점을 함께 보기 원합니다.
1. 갈등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삶의 현실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크리스찬이든 아니든 갈등은 우리 피부로 느끼는 실제적인 문제입니 다. 지난주가 한국에서는 추석이었죠. 오랜만에 아마 온 식구들이 모이셨을 것 같습 니다. 시댁, 장인, 장모, 시누이, 친척들, 사촌들 그 모임 가운데 갈등을 겪으신 분 들 손 한번 들어보시죠. 어머, 별로 없네요. 우리들교회는 천국인 것 같아요.^^ 추 석은 그렇게 무사히 넘어갔을 수도 있는데 어제 혹은 오늘 아침에 교회에 오실 준 비를 하시며 갈등을 겪었다? 전혀 없었다고 하시는 분들은 갈등에 너무 익숙해져서 무뎌지신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들은 갈등이 기관총처럼 다!다!다!다! 계속 있어요. 매일이 전쟁터입니다. 하 지만 이 순간에도 갈등의 먹구름이 머리 위를 맴돌며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괴롭 히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놀랍지 않아요. 갈등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에 또 죄가 있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모든 문화권에 모든 나라의 모 든 가정, 모든 부부 사이에 그리고 직장에서 오늘 성경이 보여주듯이 모든 교회와 사역 가운데도 갈등은 충만합니다.
저도 최근에 갈등이 생겼어요. 한 달 전에 우리 둘째 아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집 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들이 집에 오니까 제가 너무 좋아요. 근데 제가 나갔다 집에 다시 들어오면 항상 이렇게 소파에 자빠져서 돌처럼 움직이질 않아요. 그리고 한손 에는 이렇게 딱 뭐 하는 것입니까? 전화기를 보고 있습니다. 다 큰 아들인데 한마 디 해야 하나 마음속으로 갈등하다 참지 못하고 잔소리가 나오면 더욱더 큰 갈등이 일어나요. 그리고 제 아들이 돌아온 후에 에어컨 온도기를 차지하는 갈등이 있습니 다. 제가 가서 끄거나 좀 올리면 제 아들은 가서 너무 덥다고 내려요. 자기 전에 제 가 끄면 (제가 먼저 자니까) 제 아들이 다시 켜요. 그래서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 인간의 문제를 성경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이 갈등의 이야기들이 창세 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 간의 갈등, 다윗 왕과 아들 압살롬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 이 교회 안에서의 갈등, 사역자들 사이의 갈 등. 요즘에 지금 존재하는 우리 교회들이 초대교회를 본받아야 된다고 하는데 초대 교회에 갈등이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놀랍게 하는 것은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첫 번째 선교팀입니다. 선교사의 드림팀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바울과 바나 바는 첫 번째 선교사이고, 교회의 리더십입니다. 사도행전 4장에 바나바가 처음 나 오는데 위로의 아들(the son of encouragement). 자신의 밭을 팔아 나오는 헌신 자였죠. 사도행전 11장에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을 때 예루살렘에서 확인을 위해 보낸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믿을 만한 사람이고, 겸손하고, 배려심있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바울이 있죠. 교회를 박해했 었지만 하나님이 다메섹 가는 길에서 만나주셔서 회개하며 크리스천이 됐습니다. 그 다음에 이방인의 사도로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그를 통해 신약의 절반을 쓰셨습니 다. 그런 대단한 이 두 명의 리더-바나바와 바울-이 드림팀이에요. 첫 번째 선교 여 행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와서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이제 두 번째 선교 여 행도 함께 떠나자고 동의를 했습니다. 여기까지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5장 39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서로 심히 다투어(sharp disagreement) 여기 나오는 헬라어의 강력한 갈등의 표현이에요. 메시지 성경에서 는 언성이 높아지더니 하고 번역했습니다. 여러분 그림이 그려지세요? 어떻게 지 금 갈등이 있는지. 그리고 결국에는 피차 갈라서니 선교 드림팀도 갈등 때문에 깨 진 것입니다.
저희 교회 협동 목사님이 해주신 이야기인데 한국에서 지하철 안에서 어떤 사람들 이 막 싸우는데 너무 시끄러웠다고 합니다. 근데 저 뒤에서 누가 이렇게 말하더래
요. '조용히 좀 해! 여기가 교회인 줄 알아?!' ^^ 아마도 이런 광경을 목격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제가 사는 미국 이민교회 상황에서도 이런 일들이 종종 있기 에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다음 세대들은 이 갈등 때문에 교회가 갈라지고 소송하는 것을 경험해서 그런지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부정 적이고, 다음 세대들이 믿음을 저버리는 이야기들이 너무 자주 있어서 제가 참 마음 이 많이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 갈등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있는 한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갈등을 접근하는 관점을 복음으로 바꿔야 돼요. 그래 서 적용 질문드립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적용 질문 안 하는데 우리 김양재 목사님이 하시니까 저도 여기서 한번 적용 질문을 적어봤습니다.
▪ 적용질문
Q. 갈등이 올 때 놀라고 낙심하십니까?
Q. 혹시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갈등은 우리의 우상을 드러내기에 영적 성장의 기회입니다.
갈등은 우리 안에 있는 죄와 우상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갈등 가운데 우리는 회개할 수 있고 십자가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 는 것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죠. 근데 모든 것이 화목할 때가 아니라 갈등 가운 데 죄들이 드러날 때!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베풀 때!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컵이 있는데 제가 이것을 들고 가다가 여러분에게 부딪혀서 커피를 다 쏟게 됐습니다. 그래서 옷이 다 젖고 더럽혀졌습니다. 근데 여러분, 그 이유는 제가 여러분과 부딪혀서가 아니라 이 컵 안에 커피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갈등과 부딪힐 때 내 안에 있는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갈등은 남의 것이 아니라 내 안 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하게 해주는 거예요.
저도 제 안에 있는 우상들을 발견하며 인정하게 된 것은 결혼하고 나서 아내와의 갈등 때문입니다. 신혼 때 이케아에서 가구들을 샀습니다. 거기서 가구들을 사면 쉽 게 조립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뭐 그런 사람을 똥손이라고 한다죠. 가구 하나를 조립하는데 너무 제 가 끙끙대니까 제 아내가 옆에서 그냥 의견을 낸 거예요. '여보, 형부가 이런 거 잘 하니까 형부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겠죠. 근데 거기서 제가 버럭하고 'No! I can do this! 내가 할 수 있어!' 갑자기 막 분노하니 까 제 아내도 신혼 초에 데이트 할 때는 전혀 이렇게 안 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제 아내가 문제가 아니라 제 안에 있던 아버지와의 굶주림에서 오는 인정의 우상이 거기서 드러난 것입니다. 완벽한 아버지 아래서 자라다 보니까 그 안에 조마조마하 던.. 그리고 제가 저한테 익숙한 사랑의 언어로 표현이 안 되다 보니까 제 안에 숨 겨져 있고 상처로서 계속해서 가지고 있던 그런 상처들이 분노로 그 못난 모습이 쏟아져 나온 거예요.
큐티인에서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는 간증들이 많이 나오는데 너무너무 좋습니다. 그 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갈등 가운데 우리 컵에서 화평을 이루는 것 들이 쏟아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감사가, 분노 가 아니라 온유가, 사나움이 아니라 친절이, 변명이 아니라 회개가,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 야고보서 3장 18절에는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 두느니라 화평을 심는 자들은 의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매일 갈등 가운데 더 풍성한 의의 열매를 거두시는 여러분의 삶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적용 질문입니다.
Q. 여러분은 갈등 가운데 내 마음의 우상을 발견하고 계십니까? 혹시 상대방의 결 점이나 남의 우상들에게만 집중하신 것은 아닙니까?
Q. 내 우상을 발견하셨다면 회개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Q. 갈등 가운데 목표가 무엇입니까? 화평과 화목입니까?
3. 갈등 가운데 우리 내면의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1-3절) 서로의 다름이 있지만 갈등의 주된 원인이 나의 죄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 다. 무엇이 우리를 갈등하게 합니까? 심리학에서, 아니면 세상에서 말하는 것은 서 로의 기대치가 맞지 않아서 라고 합니다. 채워지지 않은 바램.
아까 제가 말씀드린 이 선교 드림팀 바울과 바나바의 상황을 다시 한번 돌아보겠습 니다. 이 갈등의 주된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행전 15장 37절과 38절에 이렇 게 쓰여 있어요.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반빌리아 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마가를 두 번째 선교 여행에 데리고 가냐, 마느냐? 첫 번째 선교 여행 때 마가는 중간에 포기하고 선교팀을 떠나서 돌아가 버렸어요. 이것 때문에 갈등이 시작이 됐 습니다. 마가를 보는 바울과 바나바의 관점이 달랐기에 서로 부딪혔습니다. 바울은 '도중에 포기한 마가를 우리가 믿을 수 있냐?' 근데 바나바는 뭐라고 그러나요? '아니,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줘야지' 또 자신의 사촌이기도 하니 당연히 이 팔 이 안으로 굽는 거죠. 둘 다 이해가 됩니다.
저와 제 아내도 여행할 때마다 갈등을 피할 수 없는데 여행에 대한 이 서로의 기대 치가 정말 맞지 않는 것을 봅니다. 2년 전 안식월 중 거의 한 달 동안 가족과 여행 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제일 첫 번째 한 스탑은 제주도였어요. 제주도 참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그래서 함께 한라산을 올라갔다가 (정상까진 못 갔습니다.) 내 려오는 길에 어떤 신혼부부로 보이는 커플이 올라오더라고요. 남자가 저희들을 지나 쳐서 앞으로 막 하고 있는데 여자가 뒤따라 오니까 멀리서 남자가 소리를 질렀어요. '야! 빨리 와! 아직 멀었어!' 소리치니까 여자가 저희를 지나치면서 저와 제 아내에 게 들리는 혼잣말로 '에이씨! 확 그냥 놔두고 가버리고 싶다.' 그 말을 들은 저와 제 아내는 결혼한지 25년차였습니다. 아주 여유롭게 내려가면서 이 모든 것이 편안 한 것처럼 '쟤네들 아직 갈 길이 멀었네' 라고 했어요. 바로 그날 밤 우리에게 닥 칠 갈등의 폭풍을 전혀 예기치 못했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희 부부는 그래 도 꽤나 사이가 좋은 커플이에요. 그래도 우리가 서로 자라온 배경이 다르고, 성격 도 다르고, 돈을 쓰는 스타일도 다르고, 있는 위치에 관점도 다르고, 철학도 다릅니 다. 그러기에 서로 부딪히는 것이 당연해요. 그렇게 서로 다른 것이 갈등을 가져온 다라는 것이 세상의 관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더 확실한 원인, diagnosis[다이그노시스, 진단]를 줍니다.
오늘 야고보서 1절부터 3절을 한번 여러분 성경에서 같이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 니다. 야고보서 4장 1절부터 3절 시작.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 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여러분, 여기서 두 번 나오는 정욕이라는 단어 영어로 보면 passion[패션]이라고 쓰여 있어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구, 욕심입니다. 그래서 헬라어 원어로는 [헤 도네] 그래서 hedonism[히드니즘] 이제 쾌락주의, 향락주의 여기에서 이 말이 나 오는 거예요. ★나의 욕구, 나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것이 우선이어서 다툼과 싸움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갈등의 원인이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죄성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거예요. 나의 생각, 나의 선택, 나의 안전, 나의 편리, 나 의 컨트롤, 나의 통제! 이것이 여러분 남들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의 뿌리에 는 교만̇ ̇ 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죠. 'We are curved in on ourselves. 인간은 안으로 굽어져 있다.'고 그렇게 얘기했어요. 내가 우선이기 에 나를 위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 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갈등이 있습니다.
타머사워드(?)라는 카톨릭 학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평상시에 사람들은 두 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My life for me [나를 위한 내 삶]이고, 다른 것은 My life for you [당신을 위한 내 삶]. 당신의 필요보다 내 필요가 우선인 삶이던지 vs. 아니면 당신의 필요가 내 필요보다 먼저인 삶. 매 순간 우리가 내려야 하는 선택입 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은 항상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제가 11살 때 1983년도만 해도 미국에서는 한국이라고 그러면 잘 몰랐어요. 참 감 사하게도 이제 K-pop의 영향 때문에 이 K-drama도 많이 유명합니다. 그래서 제 아내는 지금 LA 카운티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이제는 자기 동료들 백 인이든 남미 히스페닉들까지도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최근 에 본 드라마가 눈물의 여왕이에요. 많이 들어보신 것 같아요. 모든 것을 거기 있 는 여주인공 홍혜인을 위해 결정하는 백현우는 (제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현실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은 윤은성과 가깝다. 자기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모든 사 람을 괴롭게 하는 인물. 나중에는 자기 자신까지도 그것 때문에 망가지죠.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의도적으로 갈등을 접근해야 합니다. 복음 안에 우리에게는 화목을 이루는 성령의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갈등을 했던 걸 한번 떠올려보시죠. 그 사람 얼굴이 기억이 나죠. 거기에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제주도에서 저희 부부에게 닥친 긴 갈등의 시작은 아주 작은 것이었어요. 뭐냐하면 저는 주차비를 내기 싫어서 멀리 길가에 차를 대려 고 했고, 제 아내는 걷기 싫다고 돈을 좀 내고 가까이 차를 대자고. 제가 이겼어요. 누가 옳았을까요? 여러분들은 이런 사소한 일로 싸우지 않으시겠지만^^ 다름이에
요. 그런데 나의 관점이 맞다고 남편으로서 우기고, 내가 운전한다고 나의 정욕을 채우는 것을 우선으로 했던 제가.. 저의 목표는 이기는 거였어요. 이기는 거. 네, 죄 였습니다.
갈등 가운데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크게 보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공격형과 회피형이 있어요. 여러분의 그 마지막 갈등을 생각해 보시면서 ⓵공격형은 내가 이 길 때까지 이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한다. 변호사처럼 상대방 을 다그치고 따집니다. '아니 왜 그랬어? 다시 한 번 얘기해 봐.' 끝장을 봐야 해
요. 아니면 ⓶회피형. 갈등은 어떻게 하든 피하자. '아니, 지금 꼭 이 이야기를 해야 돼?' 그래서 싸우지는 않지만 꽁하고 간접적으로 passive-aggressive(수동 공격형) 으로 공격을 하죠. 삐쳐서 말을 하지 않든지, 밥을 먹지 않던지, 그리고 그 갈등의 자리를 피합니다. 공격형 vs. 회피형. 둘 중에 하나 여러분의 성향이 있을 것입니 다. 어떤 사람은 밖에서는 회피형, 집에 와서는 공격형이 된다고도 합니다. 어찌 됐 든 그것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라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공격형, 회피형 둘 다 죄성이에요. ★복음중심적은 의도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자연 스럽게 나오지 않기에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 적용 질문을 이렇게 던지고 싶어요.
Q. 갈등 가운데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공격형입니까, 회피형입니까?
Q. 그 자연적인 성향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교만을 인정하며 회개하십니까? Q. 예수님의 영광이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욕을 채우려고 갈등한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4. 복음이 제시하는 갈등의 해결은 겸손으로 시작합니다.(4-10절) 마지막으로 복음이 제시하는 갈등 해결은 뭐로 시작이 됩니까? 겸손으로 시작합니 다. 겸손으로. 야고보서 4장 6절에 이렇게 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 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겸손한 자에게 뭘 주시죠?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여러분, 복음중심적이라는 것 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온전히 은혜입니다. 그 은혜는 겸손한 자 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세상도 갈등의 해결책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오늘 책방에 가시면 거기에는 아마 많은 책들이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나 테크닉과 아이디어들을 제공할 것입니다. 주로 세상의 해결책은 타협입니다. 협상입니다. 모든 관계자들의 기대 를 인정해주고, 이 둘 다 이기는 방법을 찾는 것. 그런데 이 타협의 원리는 일시적 이에요. 본질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냥 반창고 붙이는 격입니다. 왜냐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의 정욕은 어떤 물질 상황이 좀 맞추어 졌다고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요. 다음에 똑같은 갈등의 상황에서 그렇게 변화돼서 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야고보서에서는 이 본질을 다루고 있어요. 7절부터 10절을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고보서 4장 7절부터 10절. 근데 여러분 읽으시면서 그 갈등했던 사람, 그 사람을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 메시지 로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같이 한번 7절부터 10절 읽겠습니다. 시작. 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9.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 어다
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아멘. 갈등의 원인이 우리의 죄성인 교만이라면 해결은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겸손입 니다.
이 갈등이 그냥 나와 그 상대방만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 속한 자로서 나와 하나님의 이슈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반응이 내가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나타나는 것인 지.
결국에는 그 갈등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기고 상대방 에게 상처를 입힐 것인지. 축복 아니면 저주. 생명 아니면 죽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겸손이 서 있는가입니다. 겸손하다고 해 서 소극적이거나 자신감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진정한 성경적인 겸손은 이런 말이 있죠. '겸손은 자신을 작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덜 생각하는 것이다.
Humility is not thinking less of yourself, but thinking of yourself less.' 나 보다 남을 더 생각할 때, 여러분 나의 정욕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에게 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그 동기를 주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우리의 정체성이 확정되었습 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시는 것 뿐 만이 아니라 그분의 완벽한 의로움 을 우리에게 입혀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내세울 필요가 없어요. 그러기에 겸손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엄청난 채워짐이 있기에 당당하게 우리 자신을 덜 생각할 수 있 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저는 예전에는 이런 갈등들이 있을 때마다 좀 제 안에 이기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 니다. 제 안의 굶주림 때문에 그 인정의 우상이 있다 보니까 무시당한다고 생각하 면 우울하고, 분노하고, 내 연민에 빠져서 거기서 잘 벗어나오질 못했어요. 주로 제 가 회피형이다 보니까 말도 안 하고 꽁하고 얼굴은 온통 못마땅한 표정. 평안이 없 는 것이죠. 그것은 저에게 또 제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제 가족에게 괴로 움이었습니다. 근데 복음 안에서 제가 채워지니 이기지 않아도 돼요. 져도 상관없어 요. 이제는 제가 내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니 갈등 가운데 김양 재 목사님이 자주 쓰시는 '당신이 옳소이다'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요.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겸손으로 갈등을 맞이하니 대화가 됩니다. 나도 틀릴 수 있다 생 각하니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저한테 있게 돼요. 나도 죄인이니까. 나도 틀 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놀라운 것은! 제가 회피형이라고 말씀드렸죠. 제 생각도 잘 전달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까요. 그 결과가 저를 정의 하는 것이 아니니 결과까지도 주님께 맡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우리가 틀렸 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완전하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드 러내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일까요?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 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오늘 본문 4절 5절에 야고보 사도가 크리스천들에게 간음한 여인들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에게 표현을 하셨을까? 그러시면서 5절에는 뭡니 까? 이 간음한 여인들아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다고 말했어요. 지금 예레미야 큐티를 하시는 분들은 이해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 라엘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를 영적 간음으로 표현하셨어요. 하나님이 우리의 신랑, 남편이 되신다는 것이죠. 남편만 있어야 될 그 자리에 다른 남자가 있 다면 당연히 남편이 시기하는 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아니면 자기 배우 자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데 시기를 하지 않는 것이 죄이죠.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곳에 마음을 줄 때 시기하는 것이 당연해요. 우리 안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이 있다면 그것이 물질이든, 일이든, 가족이든 하나님은 질투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만큼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기 아들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그곳이 여러 분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그 사랑은 포기할 줄 모르고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 에서 우리는 갈등 가운데 겸손할 수 있습니다.
▪ 적용 질문 이렇게 하고 싶어요.
Q. 갈등 안에서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Q. 십자가의 사랑 안에 여러분이 필요한 모든 의로움과 인정이 채워졌다는 것을 믿 으십니까?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갈등은 인간과 인간 사이가 아니에요. 우리를 창조하신 거룩하 신 하나님과의 갈등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며 하나님께 등을 돌림으로 영적 간음 을 저지르며 갈등이 찾아왔습니다. 이 갈등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 나님이 하셔야 하는데 어떻게 하십니까? 빌립보서 2장 5절에 보시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 마음은 겸손이에요. 하나님이신 예 수님이 자신을 죽기까지 낮추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갈등 가운 데 분노하시고 모두를 싹 쓸어버리셔도 되는데 그러지 아니하셨습니다. 자신의 임재 를 거두지도 않으시고, 자신의 무한한 힘을 과시하지 않으시고, 오직 희생함으로 우 리 죄를 용서하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오늘 이 아침에 관계로 초청하신 줄 믿습니 다. 하나님과의 화목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깨달은 것은 갈등은 피할 수 없지만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또 겸손하면 우리를 위해 겸손해지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 닫게 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갈등을 도망칠 수 없어요. 피해갈 수 없어요. 그 갈등 가운데 내가 이기려고 공격하지 마시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며 우 리 갈등의 목표가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득이오, 하나님의 영광이 되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우리 같이 한번 찬양하기를 원하는데요. 여러분, 갈등 가운데 우리는 솔직 합시다. 연약해요. 우리는 연약합니다. 힘겨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 님은 완전하신 줄 믿습니다. 같이 찬양하겠습니다.
| ♬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연약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긍훌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 한없는 주님의 은혜 온 세상 위에 넘칩니다 가릴 수 없는 주 영광 온 땅위에 충만합니다 주님만이 길이오니 우린 그 길 따라갑니다 그날에 우릴 이루실 주는 완전합니다 ♬ |
기도제목
여러분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아까 생각났던 그 갈등, 그 상황, 그 사람. 내 정욕 때문은 아닐까요? 내가 깨뜨려야 될 우상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건 아닙니 까?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혹시 내가 주님 앞에서 겸손해야 되는 시간은 아닐까 요? 내가 이기기 위해서 그 갈등을 맞이했다면 같이 한번 회개하시면서 주님! 주님 의 구속사가 깨달아지고 드러나는 시간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나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완전하십니다. 이 갈등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우리 주여! 한번 같이 외치고, 같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안에 우연은 없는데... 지금 우리가 생각했던 그 갈등도 우 연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구속사를 깨달으라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갈등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 주님, 그 가운데 공격했던 것, 그 가운데 도망쳤던 것 주님이 용서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우상과 상처와 나의 교만을 보여주실 때, 회개 하고 주님 앞으로 달려가는 주님의 제자들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그 갈 등 가운데 중요한 것은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요, 그 사람이 주님 만나는 것이고, 주님 안에서 사랑받는 자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길을 열어주시옵 고, 다시 한 번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채워졌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으로 입혀졌으니 이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사람을 배려하며, 진정으로 그 사람에 게 함께 나의 생각을 나누며, 들어주며, 사랑하며, 용서하며, 회복이, 화목이 일어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 화평을 심기를 원합니다. 부부 가운데, 부모 와 자녀 가운데, 또 우리 직장 동료들과의 갈등 가운데, 아니면 이웃들 가운데도.. 오직 하나님의 화평만이 심겨질 수 있도록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님, 여러 제 목을 가지고 또 기도를 했고, 또 주님 앞에 물질을 드립니다. 또 오늘 함께 또 새가족 으로 등록하는 여러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오니 오직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랑하 신다는 것을 많이 많이 경험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담임 목사님-
목사님 영육 간에 멋있죠! 영과 육이 중요하죠.^^ 지금.. 이렇게 그 고정관념이 없으 셔서 금세 이렇게 받아들이시고. 그래서 그게 감사하고. 또 양육까지 받으셨어요. 줌으 로. 그냥 이렇게 이제 쿨하고, 좋은 거는 좋은 거다. 이렇게 해주시는 모든 미주 목회 자님들 되시면 너무 좋겠어요. 또 선교지에서도.. 그러니까 목사님이 이미 띵크를 많이 해서 검증을 거쳐서 우리 이제 미주 큐티엠의 지금 이사가 돼 주셨거든요. 우리 김한요 목사님은 이사장님이시고. 이사가 이렇게 돼 주셨어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말하는 게 우리가 다 이렇게 같은 언어를 지금 쓰잖아요. 너무 감사하고. 그냥 지난번에 왔던 김 완규 목사님도 계속 구속사를 이렇게 부르짖으셨는데 구속사의 큐티 강의를 또 이제 이렇게 마련하셨다고 그래서. 이제 오늘 우리가 이제 갈등에 대해서도 이렇게 들었지만 은 사실은 이렇게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내 생각. 그게 옳다고 그러 는 거잖아요. 다 싸움은. 인간이 하는 생각이 그거밖에 없는데... 내가 옳다는 건 하 나님이 틀렸다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또 겸손은 너무 소극적이고 이제 그런 걸 얘기하 는 건 아니라고 그랬잖아요. 그런 이제 생각이 올바를 때에 우리가 가정 중수가 일어나 고, 이렇게 생명에 대한 존중 사상이 일어나고. 이것 때문인 거지 지금 이제 어떤 한 교회의 부흥 때문에 지금 얘기를 하는 건 아니고. 가정이 살아나야 되잖아요. 그죠? 가 정은 그냥 선교지, 미국 다 힘든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 묵상으로 계속 이런 이제 말씀을 이렇게 들을 때..
제가 어제도 한 우리 집사님을 만나 뵀는데 저를 6년 만에 봤다 그러더라고요. 죄송해
요. 그런데 정말 그냥 그 딸하고 사위가 이혼 이제 확정되기 3일 전에 그냥 딸 보고 '한 번만 와보라.'고 그랬더니 '한 번만.. 한 번만 와보라고 그러고 이혼해라. 아니 한 달도 말고.. 그냥 한 번! 한 번 와보고 이혼해라.' 그랬는데 딸이 왔다는 거예요. 딸이 와가지고 그다음에는 다른 말 필요 없이 그 신랑한테도 '한 번만 와보라.'고. 신랑한테 '한 번만 와보라.'고 그런데 그 한 번만 왔는데 글쎄 이혼을 안 했다잖아요!! 그래가지 고 신랑도 이 삼성에 다녔는데 그래서 우리들교회에서 목자하고, 또 와이프는 부목자까 지 하고. 그리고 이제 베트남에 그렇게 주재원으로 이제 가게 됐는데.. 이렇게 이혼도 안 하고 편안하게 또 가니까 또 흘러 떠내려갔다고 그 얘기를 또 하더라고요. 정말 환 경이 좋으면.. 그래가지고 또 이제 하나님이 선물을 주셔가지고 딸이 지금 유방암 걸려 서 한국에 들어와 있다고. 우리는 맨날 좋은 것만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이제 그다 음에 또 흘러 떠내려가면 이렇게 된다. 이제 정말 우리를 녹이고 연단을 할 수밖에 없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혼을 안 했다는 것 때문에 어머니가 너무너무 감사하여 서 이런 것 때문에 우리가 큐티를 하고, 여러분들의 목장이 너무 큰 역할을 지금 하는 거예요. 한 번 와보고 이렇게 그걸 돌이켰다고 하잖아요. 그죠. 물론 그냥 오래 있어도 안 되는 사람이 있지만 이제 프로테이지가 믿음은 들음에서 나니까 자꾸 이렇게 듣다 보니까 우리는 그냥 사람을 살려야 된다 이런 생각이 이제 가득 차서... 그냥 하나님이 이런 이제 문서 가지고 전 세계의 가정 살리는 이제 운동으로 이렇게 또 쓰임 받게 되 시고, 또 이렇게 미주의 이런 교회가 있어서 너무 이렇게 감사하고, 또 이제 이렇게 목 사님이 또 계속 소개를 해주셔가지고 내가 이번에 미주도 갔잖아요. 그래서 하여튼 여 러분들도 이제 아시는 모든 이렇게 특별히 이제 목회자님들에게 10월 21일부터 하는 목회자 세미나에 다 참석하실 수 있도록 이렇게 이제 많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2024.9.22.(주일) 야고보서4:1-10 「갈등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김태형목사님
오늘 주제는 갈등입니다. 저는 갈등을 생각하면 무조건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듭니다. 그런데 복음이 우리의 내면과 중심을 바꾸는 하늘의 영적 능력이라면, 우리 가 매일 삶 가운데 부딪히고 무너지고 힘들어하는 주제- 바로 갈등- 가운데 분명히 역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제대로 안다면 매일 우리 삶 속에 크고 작은 갈등 가운데 내 중심의 반응이 아니라 복음이 중심이 되는 반응이 나오는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야고보서는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에게 보낸 편지로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사람 들에게 갈등의 구체적인 원인과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갈등에 대한 복음의 관점을 함께 보기 원합니다.
1. 갈등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삶의 현실입니다.
Q. 갈등이 올 때 놀라고 낙심하십니까?
Q. 혹시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 갈등은 우리의 우상을 드러내기에 영적 성장의 기회입니다.
Q. 여러분은 갈등 가운데 내 마음의 우상을 발견하고 계십니까? 혹시 상대방의 결 점이나 남의 우상들에게만 집중하신 것은 아닙니까?
Q. 내 우상을 발견하셨다면 회개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Q. 갈등 가운데 목표가 무엇입니까? 화평과 화목입니까?
3. 갈등 가운데 우리 내면의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Q. 갈등 가운데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공격형입니까, 회피형입니까?
Q. 그 자연적인 성향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교만을 인정하며 회개하십니까? Q. 예수님의 영광이 아니라,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욕을 채우려고 갈등한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4. 복음이 제시하는 갈등의 해결은 겸손으로 시작합니다.
Q. 갈등 안에서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Q. 십자가의 사랑 안에 여러분이 필요한 모든 의로움과 인정이 채워졌다는 것을 믿 으십니까?
'갈등 충만이 성령 충만입니다!'
A
주일성수 잘지킬수 있도록
큐티할수있도록
B
이번주 양육숙제 잘 할 수 있다록
C
매일 큐티 할 수 있기를
D
큐티할수 있기를
하나님관계 회복을 위해
E
양교숙제 잘 할 수 있도록
운동열심히 하기
신교제
F
매일큐티 하기
이번주 일정 잘 마무리 할 수 있기를
G
내안에 인정받으려는 욕심 내려놓기
매일큐티하기
H
양교 무사히 수료하길
일본어자격증, 취업준비 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