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큰 은총을 받은 사람아! ( 다니엘 10 : 9 - 14 , 19 - 21 )
오늘은 청소년부 헌신예배입니다. 어제 오늘 본문부터 70년의 기한이 차서 1차 포로 귀환이 이루어진다. 저는 치리가 막 끝나고 감옥에서 귀환한 김성우 목사입니다. 3주전에 제주 빕스 갔는데 휘문의 한 친구가 저를 안다고 하니 어떻게 아냐고 물으니 엄마한테 들었다고 한다. 그 목사님 입살롬이라고 얘기해줬다고 한다. 몇 달전 심방을 갔는데 식탁에 앉아 기다리니 부엌에서 저를 첨 본 여자 집사님이 권찰님께 저분 누구세요? 하니 입살롬이라고 얘기해주셨다. 그랬더니 바로 아시더라구요. 입이 싸서 싼 맛에 세워주신 것 같다.
오늘 9절은 친숙하다. 지금 다니엘은 잠을 자고 있다. 고등부 친구들은 음성을 들으면 잠이 드니 친숙할 것이다. 오늘도 제 음성을 들으며 주무신다면 그 분이 다니엘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얼굴을 땅에 대고 잔다고 한다. 왜 잔다고는 나와있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지만 너무 무섭거나 두렵거나 예수님을 보니 혼미해서 잠이 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 역시 청소년기때 문밖에서 부모님이 심하게 싸우시는 것을 들으며 외면하기 위해 잠들었다. 저 상황과 나는 상관없어 라며.
그런데 하나님은 다니엘을 가만두지 않고 찾아가서 깨우신다. 여기서 잠들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은
1. 하나님이 깨우시고 깨닫게 하시고 일어서게 하십니다.
10절
한 손이 다니엘을 어루만지니 다니엘이 떨며 일으켜 몸을 세운다. 원문에는 깜짝 놀란 부분이 생략된다. 이 손은 누구의 손인가? 가브리엘 천사다, 성육신 전의 예수님이다,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보내신 영적존재일 수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고 잠든 다니엘을 깨우기 위해 보내신 것이다.
떨었더니 표현은 다니엘이 떨었나? 생각할 수 있으나 정확히는 흔들어 깨웠다는 표현이 원문에 나온다. 왜 그랬나? 다니엘이 큰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을 흔들어 깨우신다. 내 옆의 사건을 보내서 깨우신다.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다니엘 스스로 눈을 번쩍 뜬게 아니다. 깨우니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일어날 수 없고 이미 깨어난 상태이다. 우리 몸의 신호에 의해서,누군가에 의해서. 스스로 눈을 뜰 수 없다. 옆에서 우리가 깨어줘야한다. 간혹 스스로 눈을 뜨는 사람도 있다. 제 아내인데요. 스스로 코고는 소리에 놀라서 깨어 저를 때린다. 물론 이것도 스스로 깬 것은 아니다.
한 고딩 아이를 심방했다. 겉으로는 예쁘고 학교생활도 잘하는데 정신과 약을 한번에 다 먹었다고 한다. 잠들고 싶어서, 도저히 감당 안 되는 일들 앞에 잠들고 싶어서 먹었다고 한다.
또 한 아이는 학교에서 따돌림과 성추행으로 자퇴했는데 이 현실이 감당이 안 되서 눈만 뜨면 술 먹고 잠들고 깨서 sns하고 자살시도를 너무 많이 해서 1층으로 이사까지 갔다고 한다.
또 한 아이는 올해 초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닌 것을 알고 도박으로 회피했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잠든 아이들이 너무 많다.
어제도 심방을 갔는데 그 아이가 어머니가 목숨을 끊는 현장을 보고나서 불안이 왔다고 한다. 내가 잠드는게 너무 힘들어서 사회생활이 힘들고 분리불안으로 너무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고 한다.
감당하지 못할 만한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예수님을 보기 어렵다. 이 때 우리가 흔들어 깨어줘야한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찾아온 것이라고 얘기해줘야한다.
10절의 어루어만지다 이 뜻은 닿다, 이어지다 뜻이다. 일어나!!소리친 것이 아니라 나를 잠들게 한 사건때문에 찾아오시고 만지신다. 이 말은 예수님과 내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눈감고 싶은 사건은 나를 찾아오셔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가 나와 닿는 시간이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고 눈을 떠야한다. 우리 친구들을 찾아 가야한다.
어떻게 닿아야 할까? 나도 그래 나도 그래 한 사람의 고난받은 환경 안에 보내심 받은 우리가 찾아가서 나도 그랬다 네 아픔이 내 아픔이다 닿을 때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예수님의 십자가와 닿는다. 우ㄹㅣ 청소년들이 이렇게 닿아야 한다.
11절
내가 네게 이르는 말 나도 그랬다 이 말을 들으니 깨닫고 일어선다. 우리 청소년들을 일어서!!! 하는게 아니라 깨닫고 해석이 되면 일어나니 우리는 깨닫고 닿아야한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이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묵상도 안하고 저 멀리 묻혀놨다. 아빠가 감옥에 갔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아빠의 핍박에도 고딩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는데 고3때 어머니가 떠났다. 훗날 어머니는 몇 날 며칠을 맞고 빌다가 나갔다고 하신다. 그것을 모른 저는 눈을 감고 잠들었고 죽고 싶어서 선택한게 신학교였다. 빨리 죽어서 천국 가려고. 그런데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이 내 고난과 닿았다. 아무도 나를 우니노해주지 않는 상황에 예수님이 오셔서 나를 흔들어 깨어주시고 네 고통이 나의 고통과 닿았다고 해주셨다.
큐페 때 친구들이 앞에 나와 기도한다. 그냥 기도하는게 아니라 앞에 선생님들이 쫙 앉아서 아이들을 깨워준다.아이들이 고난을 나누면 나도 그래 나도 안다 하며 함께 울며 함께 기도한다. 그 때 우리 아이들이 깨어나서 일어서서 강당 앞에서 고백한다. 하나님 앞에 독립된 존재로 두발을 딛고 일어서게 된다.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두발을 딛고 일어서는 시기인 청소년기때 우리들교회에서 깨워야한다. 이 고난은 잠든 나를 깨우기 위한 사건이다, 그 십자가가 내 십자가구나 이 고난을 통해 예수님이 일으키시는 사건이구나 하며 두 발을 딛고 일어난다.
다니엘은 티그리스 강 즉 경계를 상징하는 곳에서 두발을 딛고 사명을 향해 나아간다. 진정한 디사이더가 된 것이다.
적용 나의 청소년기는 어떠했나요? 누가 나를 깨우나요? 나를 깨운 글귀나 사람이 있나요? 잠들어 있던 나를 깨운 사건은? 사건이 깨달아져서 일어났나요? 사건 앞에 다시 넘어졌나요?
2. 스스로 겸비하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깨달으면 일어설 수 밖에 없다.
12절
다니엘은 깨닫기 위해서 이 행동만 한다. 스스로 눈을 뜨고 공부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겸비하기로 결심한다. 이 말은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사건을 깨닫기 위해 한 일은 스스로 겸비한 것이다. 겸비 나를 낮추고 겸손하다 뜻인데 원어로는 나를 괴롭게 하고 학대하고 애통해하는 것이다. 나의 비참함을 인지 즉 내 죄가 보여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 앞에 죄인이구나 이것을 깨닫고 기도하는 것이 겸비하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큐페가서 회개하며 기도한다. 자기죄를 보며 슬퍼하는 것이다.
다니엘이 왜 그렇게 슬퍼했을까? 큰 죄를 지었나요?
심지어 21일 금식을 하며 온 힘을 다해 기도하고 엎드린다.
고레스 3년의 시기를 보면 70년의 기한이 차서 포로가 이미 귀환한 때이다. 그런데 다니엘은 페르시아 땅에 있다. 그런데 귀환된 포로들의 소식들은 집도 먹을 것도 거할 처소도 없고 심지어 예배도 못드린다는 것이다. 스룹바벨이 예배를 드리러 성전을 지으려했는데 주변 대적들에 의해 중단됐다. 그것을 보며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겸비하며 하나님 살려달라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한다. 자신의 옷을 찢고 스스로 겸비하여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기도를 통해 깨달음을 주시고 응답을 해주신다.
저도 이렇게 마음이 가난해지는 소식이 있었다. 1년전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이 있어서 찾아가보니 일상생활도 잘해주시고 괜찮으셨다. 행동이 굼뜰 뿐이지 호박전도 해주셨다. 4주전에 새아버지가 무리하게 투자해서 큰 손실을 얻게 되고 그 빚이자를 감당하지 못해서 어머니 명의로 된 아파트를 팔고 이사갔다고 했고 어머니를 찾아가려고갔는데 뵙자마자 제가 알던 어머니가 아니었다. 머리도 몸도 엉망이고 더운데 긴 팔을 입으시고 어쩔줄 몰라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고 커피숍에 가는데 차안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보니 뒤에 변이 묻어있었다. 저희 어머니가 정말 예쁘고 깔끔하신 분이었는데... 권찰에게 씻겨달라고 부탁하고 어머니 기저귀를 사서 커피숍에 왔는데 그걸 보자마자 어머니는 본인이 입는 기저귀가 아니라고 바지를 내리면서 이 기저귀라고 말하셔서 어서 다시 사오고 같이 큐티하고 대화하는데 어머니가 새아버지가 너무 힘들게해서 죽고싶다고, 내가 연락 안되면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은줄 알라고 하셨다. 많은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쏟아졌지만 아내때문에 울지 못하고 화장실 가서 울었다. 어머니 힘들면 우리집 와라, 저는 데릴사위 12년차인데 담임목사님은 어머님과 장모님같이 모셔라 하시는데...아마 제가 돈이 있으면 기도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셔와서 집을 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스스로 겸비해져서 하나님 책임져달라고,뒤 돌아보지 않고 사명감당하겠으니 책임져달라고 했고 그렇게 기도하니 응답이 왔다.
13절
우리 기도 응답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이 응답 우리의ㄱㅣ도를 방해하는 바사왕국의 군주가 있다. 페르시아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세력 즉 인본주의, 힘을 추구하고 이 시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군주 이다. 이렇게 기도하는데 내 속의 어머니를 내가 모셔야하지 않나? 자식의 도리이기에, 새아버지가 잘못하고 있으니 어머니를 뺏어와야지 이런 생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혼시켰었다. 이 바사와 페르시아의 생각으로 저는 스스로 이혼도장을 만들어 이혼을 시켰다. 결국 내 생각 내 스스로의 결단이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막는다. 내 자녀를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이 시대에 맞게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해 하며 판단한 것들이 우리 자녀에게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어머니와 새아버지에게 임하시는 예수님을 막는 바사 군주였고 그것들이 내 안에 있었고 회개만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애통하면서 울었더니 하나님께선 생각지도 못한 미가엘을 보내셨다. 그 날 마침 주일 마침 5부 예배가 된 날이었다. 저희 아내가 0부를 드리고 어머니를 찾아가서 교회를 갔는데 바로 아파트 앞의 걸어서 5분 거리, 우리들교회 목세를 참석하고 큐티인 쓰는 교회였다. 새아버지가 매주 오겠다고 하셨고 4주동안 빠지지 않고 갔다고 하신다. 미가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이 능력있는 사람이냐? 라는 뜻이다.
적용 나의 기도제목은 무엇입니까?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열심과 내 결정이 내 자녀와 가족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길을 가로막음을 인정하십니까?
3. 먼저 말씀을 보여주십니다.
20절
바사가 가고 헬라군주가 온다고 한다. 넘어가면 로마 등등....계속 새로운 군주가 오는데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21절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 사건과 군주가 오기 전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읽을때 이 거대한 세계관과 가치관에 대항할 수 있다. 먼저 읽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디사이더가 될 수 있다. 그럼 어떤 순간이 와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몇 달전에 아버지가 제게 편지를 줬던 것을 발견했었다.
아버지는 죽으려고 고향바다에 갔다가 편지를 쓰셨다. 이걸 보며 아버지가 최선을 다하셨구나 모든게 다 무너졌을때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내셨구나...그 마음이 깨달아졌다. 이것이 이해가 되니 해석이 되고 깨달아지고 일어설 수 있었고 아버지의 아픔을 깨달을 수 있었다.내 삶이 해석이 되어 먼저 깨닫고 일어서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보석이고 미래이기에 내가 먼저 일어나서 다가가서 닿고 일어날 때 하나님이 우리 아이들을 다니엘처럼 세우실 것이다.
적용 아침에 일어나면 뭘합니까? 말씀을 제일 먼저 펼칩니까? 내가 아직도 이해하고 싶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