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8
주일예배
본문: 느헤미야 10:30-39
제목: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정지훈 목사님
설교 말씀
선교국 담당하고 있는 정지훈 목사입니다.
지난 주 설교에 은혜 많이 받으셨죠? 자기 살 뺐다고 살찐 사람 설교는 들을게 없다는데, 제가 이번 주 설교를 준비하다가 이 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제 설교를 들을게 없는 설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저도 참 적용이 안 되는 사람이라서 너무 죄송하고, 한달만 주시면 저도 적용해 보겠습니다.
올 해 해외 15개국, 국내 45개 교회를 띵크 트립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목장에서 훈련받으신게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가보니까 밥을 기가 막히게 하십니다. 어떤 현지교회 목사님은 식사 후 마음이 열리셨대요. 밥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띵크 트립이 진행되고 있는데 본문이 느헤미야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아요. 이미 지난 주에 성벽은 다 재건이 됐습니다. 할 일이 다 끝났으니 느헤미야서가 끝나도 할 말이 없는데, 느헤미야는 계속해서 성경을 이어갑니다. 6장 이후 내용을 보면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름을 호명합니다. 그리고 학사 에스라를 부르고 회개하고 말씀 듣고 눈물로 적용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본문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제사장들, 선지자들, 레위 인들이 하나님과 견고한 언약을 세우겠다고 서약을 하고 인봉합니다. 앞절 본문을 보면 1-27절까지 87명의 지도자 서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데, 어떻게 살겠다고 적용하는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하나님의 전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반복됩니다. 그러면 어떤 적용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1. 가정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30절.
구체적으로 적용하겠다고 하며 자녀들을 이방인들과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합니다. 악의 총체가 불신결혼인데, 하나님은 왜 불신결혼을 싫어하실까요? 필연적인 신앙의 타락을 데려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처음 불신결혼을 들어봤다고 하시는 성도님들이 많은데, 성경에서 하나님이 계속 불신결혼을 언급하십니다.
솔로몬은 전략적으로 이방국가와 혼인을 맺고 우상을 숭배합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렸고, 앗수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 불신결혼입니다. 결혼의 목적은 거룩이라고 하셨습니다. 거룩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선택한 것이 상대방에게 불행할 수 있습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가는 과정인데, 자신의 반을 비우고 배우자를 채우는 인내가 필요한 일인데,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보암직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에 믿음이 방해가 됩니다.
믿음의 다른 표현은 가치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여인들과 불신결혼 하며 시작한 문제는 하나님과 구원을 최고로 삼았던 정체성이 흔들리게 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존감으로 살았습니까? 그러다 점점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이방 우상들의 가치관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욕할 필요 없이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의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결혼인데,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럼에도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딱 하나라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데 하나님 때문에 결정하겠다고 하는 것이 가정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하겠다는 신앙고백의 시작입니다.
신결혼했다고 해서 모두 거룩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 증인입니다. 저는 11년 전에 거룩을 위해 살겠다고 아내에게 사랑의 언어를 쓰고 아내는 복종의 언어를 쓰겠다고 적용하며 결혼했어요. 그런데 100%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문제를 직면해야 하는 아내, 모든 문제를 회피해야 하는 제가 만나니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주 사소한 갈등도 심각한 문제로 번졌습니다. 부부목장에 가면 늘 아내는 울었습니다. 하루는 목장 나눔을 하다가 제가 안되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부엌에서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못 하는것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아내가 소리를 지르면서 부엌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말이냐는 말을 했고, 집에 오는 내내 싸우고 저는 기도원으로 가출을 했습니다. 그렇게 2-3일 있었는데, 목자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갈등이 없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신결혼 했을 때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서로의 감정보다 거룩이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늘 그렇게 싸워도 주일날 목사님 말씀 듣고, 목장에서 사과하고 화해했습니다. 목장에서 저희 부부에게 맞는 처방을 해 주셨습니다. 늘 싸웠지만 3일이라는 기한이 되어갈 때면 마음이 초조해졌습니다. 그게 점차 줄어 이제는 하루를 넘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가정이 유산의 사건, 두 번의 치리의 사건, 공황장애 재발의 사건들을 겪으며 사랑이라기보단 전우애에 가까운 사랑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위해서 우리는 가정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배우자와 자녀가 말씀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벽의 훼파는 가정이 훼파됐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을 공동체 안에 둬야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너무 중요합니다. 배우자, 자녀들을 말씀의 자리에 데려다 놔야 합니다. 부모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신앙 교육입니다.
가족끼리 가는 해외여행에 비해 띵크트립의 환경은 너무 열악하고 불편합니다. 그렇지만 자녀에게 구원 때문에, 공동체에 붙어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최고의 양육이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 주실 줄을 믿습니다.
적)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가정을 구별하고 신결혼하고 또 시키시기로 맹세하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과 가정을 세상에 놓아두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공동체에 놓아두십니까?
2.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31절.
이 땅 백성과 우리가 계속해서 구분됩니다. 백성들이 70년간 포로생활 하는 동안 유다 땅에서는 이방인들이 기득권을 형성했습니다. 그들이 주축이 되니 안식일에 대한 개념이 없고 장사와 사업을 안식일에 했습니다. 거래처가 이방인임을 생각하면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런 상황이 너무 어려운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쉬워서 하고 어려워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포기하고 결단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삶, 그 은혜 때문에 나누고 돕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욕심으로 가득 찬 나의 가치관이 이타적으로 변하는 것이 안식일의 개념입니다.
그렇다고 주일만 성수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일까요?
모두가 거룩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와서 예배에 힘을 씁니다. 하지만 교회를 벗어나면 세상 방식을 따를 때가 너무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하나님과 신호가 잡힙니다.
저도 순간순간 목사임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운전할 때 그렇게 분이 납니다. 아내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를 합니다.
가치관을 배우면 삶에서 적용해야 합니다. 세상과 다른 원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의 가치관으로 살지 않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삶으로 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올 해 띵크트립이 많아졌고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참여하시는 분, 못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다 받아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들교회가 선교적인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훼파된 성전을 통해 죄를 보고 회개하며 가정과 안식일을 구별하겠다고 결단하며 가는 성도님들이 계시고, 인내해주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빚을 탕감받은 성도님들이 받은 은혜를 전하러 가는데, 이것이 삶으로 전하는 복음 아니겠습니까?
회복되면 이타적으로 적용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신앙고백 위에 드려지기 때문입니다. 31절 말씀은 너무 힘든 말씀입니다. 안식일에 장사도 하지 못하고, 땅도 쉬게 합니다. 그리고 마땅히 받아야 할 빚이 있음에도 탕감하라고 하십니다. 쉽지 않은 적용이지만 세상의 계산, 하나님 나라의 계산이 다르다는 것을 철저히 보여줍니다.
세상의 계산은 내 안의 것을 쌓기 위해 애를 쓰지만 하나님 나라의 계산은 밖을 향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안식, 탕감받은 빚에 대해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적) 여러분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고 계십니까?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내가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좀 들으시나요?
믿지 않는 가족과 지체들에게 내가 살아난 간증으로 복음을 잘 전하고 계신가요?
3.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고 사람들에게 나눌 것이 있어야 합니다.
31-39절을 보면 성전세, 나무 패는 수고, 십일조의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하나님의 전이라는 표현이 9번 반복됩니다.
율법적으로 세금 내듯 헌금하고 인정받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에 나의 신앙고백으로 기쁘게 드린다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훼파되는 것 같은 심판을 당했어도 70년 포로생활 동안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여 드리는 것이 십일조이고 성전세입니다.
요아스가 성전을 재건했고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안의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요아스는 교훈을 받는 동안 정직히 행했지만 교훈을 떠나기 위해 성전을 지었습니다. 산당 제사는 내버려두고 성전 보수를 선택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재건의 시작부터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잘 올려도 마음의 성벽이 회복되지 않으면 다시 무너질 것을 알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재건보다 마음의 성전 재건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요아스는 모든 성전 수리의 과정이 자기 뜻대로 됐지만 느헤미야는 재건의 시작을 사명감으로 시작했지만 밖으로는 산발락, 도비야가 있었고 안으로는 유대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아스는 급한 것을 위해 원칙을 어겼고 느헤미야는 보기 좋은 제안을 거절하고 무너진 원칙을 회복하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내 성전을 위해 열심히 쌓은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내 성전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내 성전을 재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적용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허락하십니다.
많이 받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안 주시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복이 되는 것입니다. 형편없는 내가 하나님의 전을 위해 쓰임받는다는 것 때문에 감격해서 드리고 또 드려도 드리지 못한 것만 생각나게 하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한 신앙고백에서 나오는 복입니다.
39절 마지막에 느헤미야가 그리하여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니이다 라고 합니다. 불신결혼하지 않고 남을 것이 있게만 해달라는 기도와 적용이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않는 적용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축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복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적)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고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이 있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으로 봉사와 섬김, 십일조를 잘 하고 계신가요?
[기도제목]
a
신결혼을 위해 기도하기
지혜의 말 사용할수 있기를
맡은 부서 및 직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하기
b
양육 신청 잊지말고 변치 않기
다양한 경험을 받아들이기
c
주일성수 잘 지키기
진로 계획 잘 짤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해주시기를
생활예배 잘 드릴수 있도록
d
큐페준비끝까지 잘할 수 있기를
남은 자소서 쓰는 것도 잘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