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본문: 느헤미야 10:30-39
설교: 정지훈 목사님
여름 띵크트립이 진행되고 있는 이때에 큐티 본문이 느헤미야라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이미 지난 주일 본문 느헤미야 6장에서 성벽은 다 재건이 됐다. 그럼 이제 사명 끝났습니다 짝짝짝 하고 끝나도 될 것 같은데 성벽이 재건되고 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6장 이후의 내용들을 보면 돌아온 사람들의 명수와 이름을 기록한다. 우리로 치면 교회 등록하는 것. 학사 에스라를 초청해서 말씀을 듣는다. 우리로 치면 큐티 페스티벌 하는 것. 그 다음에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간증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견고한 언약을 다시 세우겠다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지도자들이 인봉을 한다. 오늘 본문 앞절인 10:1-27) 그 언약에 동참한 84명의 지도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적용하며 살겠습니다 한 본문이 오늘 본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바로 우리 하나님의 전.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우리가 어떤 결단을 하며 적용을 하며 살아야 할지 함께 묵상해보길 원한다.
1.가정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30절) 가장 먼저 적용하겠다고 한 것이 자녀들을 이방인과 불신결혼 시키지 않겠다고 한 것. 불신결혼을 우리들교회 와서 처음 들었다고 한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우리들교회만의 교리가 아니다. 성경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타락을 지적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불신결혼이다.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왕도 정략적으로 결혼을 한다고 하면서 이방왕들의 딸들을 데려다가 결혼을 했다. 무려 1000명이 넘는 여인들과 결혼을 했다. 각각 자기가 섬기던 이방 우상들을 가지고 와서 음란하게 섬겼다. 결국 우상 숭배의 결론으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불신결혼.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을 한 다음에 돌아와서 보니 불신결혼이 정말 죄악이었구나를 깨달은 것 같다. 30절) 우리의 딸과 우리의 아들 이 땅 백성으로 철저하게 구분한다. 그들에게 주지도 않고 데리고 오지도 않겠다고 이야기 한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고 하셨다.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결혼의 문제점은 그 행복을 원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라는 것. 거룩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지만 행복의 기준은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선택을 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불행을 안겨주는 것일수도 있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뤄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한 몸이 되는 것은 자신의 반을 비우고 상대방의 반을 채우는 정말 피를 흘리기까지 고통과 인내 희생이 필요한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런 처절한 대가가 따르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고 당장 눈앞에 보암직해 보이는 사람만 생각하고 싶은 것. 그래서 겉으로 보기 좋고 속으로 만족할만한 사람을 택하고 싶은 것. 거기에 믿음이라는 선택지가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모른다. 한 청년이 왜 모든 것을 갖추고 성격도 좋고 외모도 좋고 괜찮은 사람들은 왜 다 교회 밖에 있을까요? 질문을 했다. 믿음의 다른 표현은 가치관이다. 믿음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신앙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가치관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문제는 하나님과 구원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가치관이 흔들렸다는 것.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나? 그런데 불신 결혼을 하면서 세상과 점점 타협을 하고 그런 모습을 합리화하며 하나님을 따르는 삶의 가치관을 버리고 이방 우상들의 가치관을 따르기 시작했다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을 욕할 것이 없다.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환경에는 장사가 없다. (질문했던 청년과 남자친구 이야기). 청년의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결혼인데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런데 정작 그런 사람을 만났더라도 그 사람을 선택해야될 이유는 수십가지가 넘는다. 그런데 선택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오로지 믿음이 없다는 것 하나 때문이라면 그게 얼마나 고통이겠는가? 그런데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해서 내 가정을 거룩하게 구별하겠다는 신앙고백의 시작이 되는 것. 그렇다고 신결혼했다고 해서 거룩한 것만 있는것도 아니다. (목사님과 사모님 이야기). 날마다 갈등충만 그래서 성령충만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신결혼 했을 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서로의 감정과 기분보다 곧 행복보다 더 중요한 가치관인 거룩이 있다는 것. 그게 대단히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늘 그렇게 싸워도 저와 아내는 늘 주일 말씀 듣고 난 다음에 화해했다. 그리고 목장 가서 사과했다.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우리는 가정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한다. 늘 우리의 배우자와 자녀 우리의 가정이 말씀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적용해야 한다. 성벽이 훼파된 것은 이미 가정부터 훼파되었기 때문. 그것을 회복하려면 늘 우리 자신을 말씀과 공동체 속에 두어야 한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 놓아 두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참 중요하다. 우리 배우자와 자녀들을 늘 말씀이 있는 목장과 큐페에 보내셔야 한다. 부모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신앙교육이다. (가족 해외여행 대신 띵크트립 신청한 집사님 이야기). 자녀의 구원 때문에 공동체에 붙어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불편한 선택을 하시는 것이 최고의 양육이라는 것.
적용>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가정을 구별하여 신결혼하고, 또 시키시기로 맹세하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세상에 놓아두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공동체에 놓아두십니까?
2.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31절) 계속 이 땅 백성과 우리가 구분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를 70년동안 지내면서 유다 본 땅에는 이방인들이 많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땅에 들어와서 기득권을 형성했다. 이방인들은 많고 유대인들은 적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결혼하기 너무 쉽지 않았겠는가? 경제생활도 이방인들이 주축이 되었을 것. 안식일에도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는 것.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거래처와 고객들이 다 이방 사람들일텐데 주일에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사는게 힘들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불신결혼 안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현실이었냐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쉬우니까 하고 어려우니까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명령을 따르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하나님 때문에 포기하고 하나님 때문에 결단해야 하는 것.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책임져주시고 보호해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안식일은 우리를 복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날이다. 그리고 그 복의 개념이 거룩이다. 결국 구별된 가치관으로 사는 것이 안식이다. 육신의 복이 아니라 거룩을 이루기 위해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 안식이라는 이야기. 거룩이 목적이 되는 삶을 살면 행복한 삶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무조건 복 많이 받는다가 아니다. 내 삶의 기준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떠한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우리의 태도가 된다는 것. 주일 성수를 통해서 그동안은 나밖에 몰랐던 이기적인 마음에서 그 누군가를 위한 하나님을 위한 이타적인 마음을 배우게 된다. 내 죄를 깨닫고 하나님 은혜를 더 절감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안식일과 안식년의 법칙은 하나님을 기억하자는 것. 내 힘으로 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신앙고백이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주일 하루만 거룩하게 산다고 또 구별된 가치관을 가진걸까? 교회 오면 모두가 다 거룩한 표정으로 앉아계신다. 헌금도 하고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하고 뜨겁게 예배한다. 그런데 교회를 벗어나면 세상 관행과 방식을 따라 살아가는 분이 많다. 우리가 주일 예배를 통해 성경적인 가치관을 배웠다면 그 가치관을 실천해야 하는 곳은 바로 내 삶의 현장이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 속에서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의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세상 사람들은 복음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는다. 복음을 믿는다는 우리가 그 복음을 가지고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더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삶으로 전하는 복음이 가장 효과적인 복음이다. (온양의 한 교회를 섬기고 온 집사님 간증). 우리들교회가 상당히 선교적인 교회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각자의 훼파된 성전이 있지만 그 훼파된 것 가운데 내 죄를 보고 회개하며 가정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며 살기로 노력하며 애쓰는 성도님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나를 살려주신 말씀이 있고 또 되어진 것이 하나도 없어도 함께 걸어가주는 목장 공동체가 있다. 하나님께 탕감받은 성도님들이 은혜를 전하러 가시는데 삶으로 전하는 복음이 바로 이런게 아닌가 싶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겉으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정작 구원에는 관심이 하나도 없고 마음속에 욕심과 이기적인 우상이 가득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전은 무너질수밖에 없었고 무너졌어야만 했다. 거룩이 목적이 되는 안식일이 회복되면 우리의 삶은 구원을 위한 이타적인 섬김을 하게 되어있다. 그것에 생색이 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은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하셨다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는 섬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섬김을 취하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다. 반드시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세워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믿음 때문에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지키겠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 안식일에 장사도 못하고 일곱째 해에는 땅도 쉬게 하고 받아야 할 빚이 있는데도 탕감하겠다는 적용을 한다. 세상의 계산과 하나님의 계산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은 계산은 모든 것이 다 내 안으로 향한다. 내것을 어떻게든 쌓아놓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관계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산은 다 밖을 향한다. 내가 받은 안식, 내가 탕감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신앙고백으로 다른 사람을 이타적으로 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전을 섬기는 것이다.
적용>
-여러분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고 계십니까?
-이기적인 사람이었던 내가 이타적인 사람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좀 들으시나요?
-믿지 않는 가족과 지체들에게 내가 살아난 간증으로 복음을 잘 전하고 계신가요?
3.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고 사람들에게 나눌 것이 있어야 합니다.
32-39절) 성전세와 함께 나무를 패는 수고 그리고 십일조를 드리는 적용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만 우리 하나님의 전이라는 단어가 9번이 나온다.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그날의 핵심단어라고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율법적으로 세금 내듯이 헌금하고 내가 인정받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이 우리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에 신앙고백으로 기쁨으로 드리겠다는 것.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의 성벽과 성전이 훼파되는 심판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포로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주셨다. 우리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드리는 것이 헌신과 예물인 것. 요아스가 성전을 수리했다. 느헤미야도 성벽을 재건했다. 겉으로 보면 똑같이 대단한 영적인 사역을 이루어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내용이 다르다. 목사님께서 말씀해주셨듯이 교훈을 받는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했다. 근데 그 교훈을 떠나기 위해서 선택했던 것이 성전 수리였다. 없애야할 산당 제사를 내버려두고 엄청 믿음 좋아보이는 성전수리라는 카드를 내민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하는 순간부터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외적으로 성전을 잘 수리해도 파손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마음의 성전이 회복되지 않으면 또 다시 무너질 일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성벽 재건에 들어갔던 분량보다 더 많은 분량을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회복의 분량으로 더 할애하고 있다. 요아스는 모든 수리 과정이 자기 뜻대로 됐다고 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사명으로 시작했지만 밖으로는 산발랏과 도비야가 있고 안으로는 유다 지도자들의 배신과 반대가 있었다. 그러니까 성벽이 재건되었을 때 자신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의 역사다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느헤미야가 했던 성벽 재건이었다. 중요한 일보다 급한 일을 선택하기 위해서 원칙을 어겨버렸던 요아스다. 느헤미야는 당장의 좋아보이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모든 제안을 뿌리치고 무너진 원칙을 회복하면서 성벽을 재건했다. 하나님의 성전이 수리됐지만 결국 내 열심과 욕심으로 쌓아올린 요아스의 성전이었고 결국 그 성전은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않으려면 내 열심으로 쌓아올린 나의 성전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내 성전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무너진 내 마음의 성벽을 재건하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전을 위해 하는 일이다. 그 결단이 오늘 헌신과 수고와 헌금이라는 구체적인 적용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조건 우리가 하나님 위해서 드린다고 복 받는게 아니다. 복 받기 위해서 하는게 아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고백으로 하게 되면 적게 주셔도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기 때문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안주셔도 하나님께서 안주시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옳으시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진정 복 받는 사람이다.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저절로 드리는 것. 형편없는 내가 하나님의 전을 위해 쓰임받는다는 것이 감사해서 드려도 드려도 부족한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복이다. (호주 띵크트립 갔던 자매 이야기).
적용>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고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이 있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으로 봉사와 섬김, 그리고 십일조를 잘 하고 계신가요?
기도제목
하나
-진로 고민 중인데 방향 인도해주시길
지혜
-다종교 집안인데 가족의 구원을 위해
수진
-아웃리치 2주 남았는데 열심이 아닌 전심으로 하면서 사건을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기를
혜림
-디자인 작업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 주시길
-출시된 테마 잘 팔릴 수 있기를
공통
-예배와 목장 사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