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1 하나님의 이루심
느헤미야 6:15-7:4
최대규 목사님
청년국을 섬기는 최대규 목사라고 합니다. 담임 목사님 4주 동안 미국에서 사역을 하시니까 아마 네 분의 다른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1번 타자예요. 1번 타자는 홈런 타자 아닌 거 아시죠? 오늘 저는 안타만 칠 예정이니까 여러분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참, 사람이 조금만 잘 생기고 조금만 예뻐도 금세 교만해져요, 맞죠? 우리 옆 분에게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이 제일 교만하십니다.' 시작.
하나님의 이루심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나눌텐데요. 청년의 시절은 어떠셨나요? 치열하게 산 다고 너무 바쁘셨나요? 아니면 허랑방탕하게 허송세월하셨습니까? 아니면 그때 못 다 이룬 꿈 때문에 지금도 그 시절이 너무 그리우십니까? 우리가 청년의 시절을 다 보내왔습니다. 오늘 우리 청년 헌신 예배인데요. 요즘 청년들을 7포 세대라고 부른답니다. 7가지를 포기한 세대. 연애, 결혼, 내 집 마련, 출산, 인간 관계, 꿈, 희망, 이 7가지를 포기했다고 7포 세대라고 청년들을 부른답니다. 마치 성벽에 7개의 구멍이 뻥뻥 뚤린 것 같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역사로 성벽이 재건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청년들은 7개가 포기된 청년들이 아니라 7가지를 이룬 7성 세대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이루시는지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1.믿는 우리와 대적하는 그들로 인해 이루어집니다.
15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 15절 말씀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5절 시작.
드디어 성벽 건축이 52일만에 끝났습니다. 여러분, 사진을 한 번 볼까요? 이게 그 당시 성벽이라고 해요. 가운데 성전이 있죠. 북쪽에 보면 양문도 있고, 이렇게 여러 모양인데 사람 발처럼 생긴 것도 같습니다. 이게 성벽이에요, 느헤미야가 지은. 시작도 어려웠지만 중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하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이 끝내신다는 겁니다. 훼파된 가정, 훼파된 직장, 훼파된 내 몸과 마음도 내 힘으로 지으려다가는 더 망할 뿐이라는 거예요. 140년 동안 손도 못 댄 그 성벽이었는데 하나님이 작정하시니까 느헤미야를 일으키셔서 그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끝내셨어요.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게 내 공이 아니다. 그리고 힘들게 일한 백성의 업적도 아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성벽 공사가 엘룰월 25일에 끝났다고 해요. 엘룰월은 지금으로 따지면 아주 더운 8월과 9월 정도 됩니다. 이스라엘은 8월, 9월이 건기라서 40도 이상이 되는 굉장히 더운 날씨가 지속되는 그런 때예요. 밖에 나가면 걷기도 힘들고 숨쉬기도 힘든 그런 때입니다. 그럴 때 성벽 근처에 널부러져 있는 돌들을 힘겹게 나르고 제자리에 갖다 놓고 다듬고 쌓는 그 일은 단순한 그냥 노동이 아니라 목숨을 걸 만한 너무 힘든 일이었다는 겁니다. 성벽의 길이가 약 3km 정도 됐다고 해요. 정말 그것은 너무 힘겨운 적용들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널부러져 있는 가족들, 그리고 뭔가 무너진 질서들, 그걸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게 참 너무 힘들자나요. 너무 힘들어서 하늘만 바라보면서 '언제쯤 이게 이루어질까.'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그뿐 아니라 '내가 괜히 했나? 내가 이 일을 괜히 시작했나? 내가 괜히 했나?' 이런 허탈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쯤이면 '성벽 재건 그냥 그만두고 싶다.'라는 마음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도 보듯이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냥 하나 하나 벽돌 힘들지만 옮기다 보면 하나님이 끝내시는 날이 온다는 겁니다. 아멘이시죠. 제 아들이 중요한 입학 시험을 볼 때가 있었습니다. 아빠된 마음으로 당연히 시험 잘 보고 합격되기를 바라죠. 그날 따라 큐티하자고 했습니다.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아들, 큐티 하자.' 시험 보러 가는 날. 아들도 별로 뭐 그렇게 응하지 않았을 텐데 자신도 불안한지 큐티 하자는 거예요. 자, 그날 말씀을 이렇게 딱 펴면서 붙자가 좀 들어 있으면 좋겠다. 붙어, 붙으니라, 붙은 뭐 이런 거 없나? 여러분, 성경에 붙은, 붙이라, 붙어 이런 게 2백 번 이상 있어요, 몰랐죠? 의외로 많더라고요. '또, 붙자 뭐 없나?' 이러면서 딱 펼쳤는데 없더라고요. 그날 말씀이 '너희를 파수꾼 세우겠다.' 이 말씀이었어요. 그 말씀에 제가 꽂혔습니다. '어, 내가 학교에 가서 파수꾼 되겠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아들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시험 잘 봐서 합격하기를 제가 바라는데요. 하나님이 파수꾼을 세워주신다고 하니까 떨어지던지 붙던지 파수꾼 되게 해주세요. 파수꾼만 되면 그것이 주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를 끝내니까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붙었을까요, 떨어졌을까요? 안 가르쳐 줄 거예요. 궁금하세요? 안 가르쳐 줄 거예요. 궁금하세요? 붙었어요. 역시 큐티는 무조건 하고 봐야 돼요. 큐티는 무조건 해야 됩니다, 아시겠죠? 우리가 세우고 싶은 가시적인 성벽이 지어질 수도, 지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말씀대로 내 인생의 성벽은 지어질 거라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의 성별의 성벽은 완성될 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40년 동안 손대지 못했던 성벽이 어떻게 52일만에 지어질 수 있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관점으로 보겠습니다.
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 16절 말씀 우리 한 번 읽어볼게요.
우리의 모든 대적,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 아시겠어요? 대적을 상대하는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우리가 있었기 때문에 이 성벽이 건축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반드시 믿음의 우리가 있다는 겁니다. 담임 목사님의 느헤미야 저서 '가정아 살아나라'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부부간에도 우리가 되지 못하는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한 언어를 쓰지 못해 정작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되지 못한 사랑은 초점이 빗나가고 집착하고 의심하고 서로를 망칠 뿐입니다. 부부가 하나 되려면 같은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온 가족이 큐티를 하면 말씀으로 서로 물어보고 나누면서 말이 통하는 우리가 됩니다.' 제가 우리들교회를 처음 왔을 때 부부 목장에 가는 것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경상도 남자여서 제 이야기 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제가 설교 때 제일 많이 말합니다. 제 아내가 혹시라도 제 치부를 드러내는 고발을 할까 싶어서 부부 목장에 가는 게 그렇게 달갑지가 않았는데 우리 처음 목자님이 나눔을 듣다가 저한테 이렇게 질문하시는 거예요. '아내를 사랑하시죠?' 제가 대답했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당황한 목자님이 '아내 예쁘시죠? 아내 예쁘시자나요.' 제가 그 대답에 Yes 하기 싫어서 '우리 아내가 손은 좀 예쁩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당황하신 목자님이 서둘러 목장을 막 마치셨어요. 제가 아내 덕을 보고 싶어서 6살 연상 아내랑 결혼했는데 제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니 10년 동안 냉랭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의 그런 싸늘한 눈빛과 행동 때문에 안내는 마음을 닫고 나이로 저를 누르려고 틈만 나면 '대규야, 이리 와 봐.', '대규야, 설거지 했어?' 저한테 이런 복종의 언어를 요구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되지 못한 우리 부부의 실상이었어요. 그렇게 믿음의 우리인 목장을 통하여서 우리는 점점 자신의 죄를 깨달아 가는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딸리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지내면서 깊은 우울증, 또 강박,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 부부가 서로 삿대질하는 손이 아닌 서로 부둥켜 안고 기도하는 손으로 주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부부 목장의 목자와 권찰로 한 방향을 보고 걸어가는 믿음의 동지로 주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 번도 상상할 수 없었던 그런 멘트를 케잌에 적어서 아내에게 선물했습니다. 염장 사진.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우리들교회 정말 만만세입니다. 제가 뭐 얼마나 잘하면 잘 하겠어요.
하나님의 이루심에는 믿음의 우리 뿐 아니라 대적하는 그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성벽 공사가 끝나자마자 느헤미야는 시선을 돌려서 대적에게 향했습니다. 기세등등했던 대적들이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 떨고 낙심했다고 해요. 그런데 대적들이 '두려워하다.'의 어원을 보면 '보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적들이 느헤미야를 일거수 일투족 늘 보았습니다. 트집 하나 잡으려고 감시했습니다. 그렇게 샅샅이 살펴보았는데 그들이 진짜 본 것은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였어요. 실수를 찾으려고 보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원수는 항상 이런 방식이에요. 우리의 약점과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죄를 찾으려고, 비난하려고 우리를 살펴봅니다. 하지만 뭐요? 우리 가운데 보여줄 것은 하나님의 은혜예요. 우리가 그렇다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내가 연약하다고 고백하는 그것을 통하여서 오히려 대적들은, 원수들은 놀란다는 것입니다. 원수는 늘 우리 가운데 그렇게 와요. 약점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혈안이 되어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어 있게 하시려고 원수를 우리 앞에 두시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52일 동안 이 원수들 덕분에 파수꾼을 세우고 밤낮으로 성을 지켰습니다. 가시적인 성벽이 지어지는 것 만큼 느헤미야 본인의 성벽도 재건되어져 갔을 거예요. 자신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조롱받으면 안되니까 느헤미야가 늘 스스로를 돌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를 보면 성벽 재건이 된 만큼 느헤미야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기도의 분량만큼 성벽이 재건됩니다. 큐티의 분량만큼 성벽이 재건됩니다. 우리도 나 때문에 하나님이 조롱받으면 안되니까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믿는 우리한테는 반드시 대적이 있어요. 심지어 믿는 가족 안에도 대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불신자들한테 상처를 받는 것보다 기독교인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가 종종 있어요. 더 아파요. 힘든 일은 요리조리 빠져 나가면서 이득되는 일에는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크리스천인 거예요.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은혜라는 명분으로 정당화하려는 그 사람들을 살펴보면 크리스천들인 거예요. 차라리 비기독교인이라면 '아, 그러려니.'할텐데 교회 다니는 사람이, 성도가 그러니까 우리는 더 큰 상처를 받게 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믿는 우리인데도 서로에게 대적이 될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안의 대적, 내가 누군가의 대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여러분 100% 죄인한테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누구 때문에가 아니예요. 늘 말씀으로 나를 돌아보는 것이 대적 가운데서도 우리가 성벽을 재건할 수 있는 비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열심히 운동한 지 이제 한 달 정도가 좀 지났습니다. 티가 나나요? 저를 처음보신 분은 '도대체 무슨 운동을 하신다는 거지?' 막 이렇게 하실 수 있지만 저를 예전부터 조금 알고 계신 분들은 격하게 공감하고 계실 겁니다. 제가 열심히 운동을 한 달 째 하고 있습니다. 왜 하냐면 말씀으로 해석되서예요. 제가 아내랑 밥 먹다가 아내가 들은 얘기라고 하면서 이런 얘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우리들교회 성도님은 아닌데 우리들교회 설교를 모두 듣는 어떤 권사님이라는 거예요. 새벽도 주일도 다 들으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6월 어느 날 새벽 예배를 인도한 날 유튜브를 틀자마자 제가 나오니까 '아유, 목사가 왜 이렇게 뚱뚱해.'라고 하면서 껐다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제 이름이 딱 있는 거예요, 최대규 목사. '아, 나 옛날에 이 분 설교 들어봤었는데. 어, 나쁘지 않았는데.'라고 하면서 다시 들었대요. 억지로 들었대요. 눈 감고 들었대요. 그러면서 이 분이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왜 TV 껐냐면 '뚱뚱한 목사한테는 들을 게 없다.' 이 분이 이렇게 생각하신 거예요. 그런데 설교를 듣고 난 다음에 '아, 그래도 기도도 열심히 하시고. 아유, 우리들교회를 다니시는데 왜 적용을 안 하시지?' 이런 얘기도 하셨다는 거예요. 처음 그 얘기를 해 준 우리 아내가 얄미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녁 두 그릇 그 얘기를 해줬거든요. 그 권사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우교를 다니시는 어떤 집사님에게 들렸고, 그 집사님이 우리 아내에게 전달해줬고, 아내가 저에게 얘기해줬습니다. 정말 복음이 이렇게 빠른 거예요. 제가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큐티책을 폈어요. 에스더 말씀인데 그 날이 하만이 달린 날입니다. 제가 하만처럼 자아도취가 심하고 제가 거울을 봐도 뚱뚱하다 생각 안 하거든요, 스스로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니까 '내가 하만이구나. 내 수치를 나무에 달고 내가 오늘을 부림절로 삼아야되겠다. 내가 이렇게 못 알아들으니까 하나님이 진짜 직접적으로 얘기하시는구나.' 제 귓가에 막 들리는 거예요. '뚱뚱한 목사한테는 들을 게 없다. 뚱뚱한 목사한테는 들을 게 없다.' 제가 이 얘기를 청년들한테 했습니다. 청년들이 들고 일어났어요. '목사님, 어떻게 그 권사님 그렇게 말씀하실 수가 있어. 목사님 상처 받으셨겠다.', '목사님 사실 날씬해요.', '목사님 뚱뚱해도 은혜가 있으면 되죠.' 온갖 말로 저를 위로해줬지만 사실 저는 그 위로가 그렇게 필요 없던 것은 제가 상처는 받지 않았어요. 제가 충격은 받았지만 상처는 받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말씀으로 진짜 해석을 받았거든요. '이게 진짜 주님이 나한테 하시는 말씀이구나.' 제가 큐티를 이렇게 쭉 적고 맨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어요. '권사님을 놀래켜줘야지.', 권사님, 놀라셨죠. 우리 성도님들이 이렇게 목사 하나 살려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상처 받을 일이 참 많아요. 여러분 상처 받지 말고 해석을 받으세요. 이것이 그리스도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어야 될 성벽이라는 것이죠. 적용질문 드릴게요.
[적용] 믿는 우리가 좋은가? 세상의 우리가 더 좋은가? 재건되기를 바라며 성벽 쌓는 일은 무엇인가? 나를 무시하고 짓밟는 대적으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일이 있나? 상처 받나요? 해석 받나요?
2.끊어 내야 할 동맹이 있습니다
17 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 자, 이 내용은 성벽 재건 중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왜 구지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이 끝난 다음에 이 이야기를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성벽 재건을 넘어서 너희들이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려면 반드시 끊어내야 될 동맹이 있다.'라는 것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걸 적용 못하면 아무리 성벽을 잘 지어놓아도 더 큰 위기를 내부에서 맞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결론부터 얘기하면 도비야가 끊어내지 못하니까 나중에는 도비야가 성전 방에 살게 됩니다. 성전까지 침투해서 성전을 더럽히는 일까지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벽은 성 안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지어지죠. 그런데 예루살렘 성벽은 성전의 확장판으로 성전의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서 지어진 거예요. 성벽 짓는 게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일에 적극적으로 자기 몫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반면에는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지만 관심 없는 사람이 있어요. 또 한 편에는 은근히 못마땅해하면서 반대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하고 있으면 편하십니까?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적당히 원하면 핑계를 대지만 간절히 원하면 방법을 찾는다.' 제가 이걸 보고 무릎을 쳤어요. 그런데 이게 성경에 나와있는 건 아니고, 제가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붙어져 있더라고요. 유다 귀족들이 자기 몫을 감당하기 싫어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 대면서 머뭇거리다가 은근 슬쩍 도비야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계속 보내는 거예요. 열심히 하려는 사람은 말이 별로 없습니다. 일하기 싫으니까 말이 많아지는 거예요. 희생하고, 이타적으로 살고, 십자가 지는 적용이 점점 싫어지니 느헤미야 편에 서기가 싫은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얘기해요. '느헤미야 너무하다. 이 더운 여름날, 사람이 중요하지 성벽이 중요해?' 너무하다고 얘기합니다. 십자가 지기 싫으면 목사님도 너무하고, 목자님도 너무하고, 심지어 자녀도 너무하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앞에 서게 되는데요. 이 십자가를 벗어 버리고 우리는 다른 편에 서고 싶어한다는 것이에요. 십자가를 지기 싫으니 다 너무하다고만 하게 된다는 거예요. 바벨론에 끌려갔던 세월은 다 잊어버리고, 돌아와서 황폐해진 땅을 보면서 통곡했던 때를 잊어버리고 이제 조금 살해지니까 '나 좀 내버려 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느헤미야에게서 점점 멀어지더니 이제는 도비야와 동맹까지 맺었습니다. 성경에 동맹이 7번 나오는데 그 모든 때가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믿는 사람들을 대적하기 위해서 똘똘 뭉칠 때를 의미할 때 쓰는 말입니다. 시편 83편 5절에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우리도 그렇지 않아요? 목장하자고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목장 방학하자고 하면 다 동맹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우리는 언약 관계예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는 그 언약 관계입니다. 약속을 지키려면 손해를 봐야 돼요. 우리가 자녀한테 한 약속도 지키려면 손해보고 해줘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화목제물 삼으셨어요. 그리고 지금도 손해를 보고, 또 손해를 봐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약속을 지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동맹 관계가 아니라 언약 관계로 살아가기를 원하세요. 부모인 우리는 결혼도 서로 좋자고 동맹 관계로 한 경우가 많자나요. 그런데 우리 믿음의 청년들은 이곳에서 나의 반과 상대방의 반을 버리는 진짜 언약의 결혼이 될 수 있기를 여러분 사모하며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또 말씀 보세요. 중요한 말씀이에요. 유다에서 그와, 도비야와 동맹한 자가 점점 많아지는 거예요. 점점점. 그러면 도비야가 누굴까요, 도비야? 도비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선하시다라는 뜻입니다. 이름부터 유다인들이 좋아할만한 이름입니다. 우리도 그 사람이 진짜 신앙이 어떤지 살펴 보기 전에 '교회 다녀.'라는 것에 속을 때가 있습니다. '그 집 사람들 다 교회 다녀.'라는 것에 속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전에 한 전도사님이 중고차 한 대 사려고 벼룩 신문을 보는데 '아, 여기다.'라고 하면서 곧장 가서 중고차를 한 대를 사오신 거예요. 타고 다니다보니 침수차인 걸 알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제가 얘기했어요. '아, 전도사님 이거 어디서 사셨어요? 혹시 아시는 데서 사셨어요?', '아니, 나 신문 보고 바로 샀어.', '잘 확인해보고 사시지 왜 사셨어요?', '아니, 그 신문에 그 중고차 이름이 있는데, 그 중고차 회사 이름이 솔로몬 중고차인 거야. 아니, 믿는 사람이 하는 거니까 당연히 믿고 샀지.' 여러분, 이름에 속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도비야가 이름이 그렇지 사실 도비야는 암몬 사람이에요. 이방인입니다. 어떻게 이방 사람이 이런 이름을 가질 수 있는가? 혹자는 예루살렘 함락 후에 암몬으로 피한 유다 사람일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확실한 건 몰라요. 이 말은 도비야도 말 못할 사정이 뭐가 있다라는 겁니다. 사연이 있다는 거예요. 인간은 사연에 약합니다. '아무 고난 없이 잘 살았어요.' 이거에 감동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힘든 고난 가운데 힘겹게 살았어요.' 이런 사연에 박수 치고 감동 받습니다. 도비야도 아마 그랬을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무슨 신원 등록을 이렇게 하게 될 게 있었는데 제가 장인 어른의 아들로 등록이 된 거예요. 제가 최씨고, 저희 장인 어른께서는 문씨거든요. 그분이 서류를 보다가 가만히 보니까 아버지 성이 다른 거예요. 저한테 물었습니다. '아버지 맞으세요? 성이 다른데요?' 그런데 제가 '아, 제가 실수로 잘못 입력했습니다. 이런 이런 것 때문에 오류가 난 거예요.'라고 하면 되는데 제가 또 그런 말 하기 귀찮고 그래서 약간 슬픈 표정으로 '저희 집이 좀....' 그랬더니 그 분이 좀 안됐다는 표정으로 '아, 그러세요.' 더 이상 안 물어보더라고요. 도비야가 그러지 않았을까요? 사연을 막 얘기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막 움직이는 거예요. 그렇게 도비야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을 겁니다. 도비야가 성벽 재건을 가장 반대했던 산발랏의 종이었어요. 그런데 암몬 지역에서는 지도층 인사였습니다. 암몬 지역은 이방인들이 사는 곳이었자나요. 아무래도 이방인들을 위한 정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벽이 만들어지면 이방인들에게 제약이 있으니까 도비야는 철저히 그들 편에 서서 성벽이 재건 안 되도록 막은 거예요. 이쯤 되니까 도비야가 너무 좋은 사람으로 소문이 나는 거예요. 우리도 우리 집 앞에 도로가 나고, 우리 도시에 기업이 들어오고 이런 소식이 들리면 신앙유무 다 상관 없이 좋은 정치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 유익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고 다 합리화를 해요. 아닌 줄을 알지만 내 이익이 걸려 있으면 끊어내지 못하고 그냥 끌려가는 도비야가 우리 가운데 있다라는 것입니다. '도비야가 이름이 선하자나. 도비야가 나름 열심히 해.' 다 이런 걸로 합리와 하면서 우리도 동맹을 다 맺고 있다라는 겁니다. 도비야가 요즘 세대에 태어났으면 굉장한 인플루언서입니다. 도비야가 유튜브 하면 구독자가 엄청났을 거예요. 어제도 도비야가 느헤미야한테 편지를 몇 통씩 보내자나요. 옛날이니까 편지를 보내지 요즘 시대 같으면 영상을 올렸을 거예요. 이런 영상 아마 올리지 않았을까요? 1편 느헤미야가 유다에 온 진짜 이유, 2편 느헤미야의 검은 돈, 3편 이랬을 거예요. 느헤미야는 밤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 가긴요, 기도하러 가죠. 악마의 편집을 하면서 막 음해하는 영상을 올리면 사람들은 그거만 보고 싫어요 누르고 악플 달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 너희 동네로 가라.', '느헤미야, 느 애미야.' 이러면서 가족 욕까지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짜 악한 사람들은 그냥 딱 싫고 분별하는 게 있어요.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누가 봐도 힘든 사람은 그냥 이렇게 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 진짜 나에게 휴머니즘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은 우리가 분별이 안 됩니다.
18절에 보면 도비야가 아라의 아들 스기야의 사위가 됐다고 그래요. 이 아라라는 사람은 스룹바벨과 함께 1차 귀환했던 사람인데요. 유다에 잘 정착을 해서 자손들이 엄청 번성한 유다 족장 가문입니다. 그 도비야가 이 가문과 결혼을 한 거죠. 또, 무슬람과 도비야가 사돈 지간이 됩니다. 무슬람은 이스라엘의 영향력 있는 제사장이고 성벽 재건도 했는데 이 도비야 편에 금세 서 버린 거예요. 아니, 불신자라고 한다면 아무것도 모르니까, 말씀도 모르고 분별이 없으니까 그렇다 쳐도, 이렇게 제사장까지 하고 유다의 그렇게 오랫동안 지냈던 사람이 왜 도비야와 동맹을 맺었을까, 왜? 왜 분별을 못했을까? 두려워서요, 두려워서. 그런데 여러분 고생을 해보신 분들은 아마 알 거예요. 내가 정말 고생을 해 본 분은 내 자녀에게 고생을 안 시키고 싶어요. 저도 어릴 때 20년 동안 제가 아프면서 너무 힘들었는데 제가 그것 때문에 주님을 만나긴 했지만 제 자녀가 저처럼 이렇게 많이 있었었거든요. '주님, 제 딸한테는 안 돼요. 제 딸이 저같은 고생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마음이 막 올라오더라고요. 당연히 부모된 마음이 그런 마음이라 당연하겠죠. 그런데 우리가 그런 마음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면, 그런 두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을 상급으로 더욱 더 삼아야 하는데 해결사를 찾기 시작합니다. 내가 믿음 생활 오래했다고 해도, 교회 직분을 가졌다고 해도 그런 마음이 찾아오면 금세 도비야를 찾는 거예요. '나같이 살지 말라고 내 결핍, 내 못다 이룬 꿈, 내 한숨을 너는 알지 않니. 그러니까 너는 도비야 같은 사람을 만나.' 이렇게 우리가 말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청ㄴ연 자녀들에게, 여러분 우리 청년 자녀 계신 분 있죠? 아니면 장차 청년 자녀가 될 분들이 계시죠?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믿음으로만 살라고 얘기해주세요. 여러분의 눈에 차든 눈에 차지 않든 믿음으로 살고 있다면 그걸로 박수를 쳐 주세요. 내가 당한 고생을 내 자녀가 안 했으면 좋겠지만, 아까도 얘기했자나요. 예수님 앞에 서려면 결국 자기 십자가가 있어야 돼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우리 자녀도 자기 십자가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거예요. '그래, 엄마는 가슴이 아프지만, 아빠는 마음이 좀 내키지 않지만 너가 그렇다면 너 십자가를 통해 너도 주님을 만나라.' 이것이 부모된 우리가 지어야 될 성벽인 줄 믿습니다.
[적용] 교회, 목장, 직장, 공부 적극적으로합니까, 관심이 없습니가, 은근히 반대합니까? 아닌 줄 알면서 끊어내지 못하고 동맹 맺는 도비야는 무엇인가?내 자녀가 내 사위가 도비야가 아니라서 불만인가, 감사한가요?
3.세워진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1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 1절 말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성벽이 다 건축되었지만 아직 성 안에 살기에는 불안전하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문짝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때에 맞기 문을 열고 닫으면서 함부로 아무나 드나들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우리는 내 인생의 문을 열고 닫아줄 문지기가 없어서 사실 너무나도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내 인생이라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때나 마음이 열리고 아무때나 지갑이 열렸어요. 경계와 질서 없이 살다가 우리의 성벽이 훼파되어졌습니다. 자녀에게도 수용할 때와 거절할 때를 알지 못해서 다 거절하다가 관계가 깨어지거나 다 깨어지다가 교육을 못했습니다. 이제 훼파된 성벽이 세워졌다면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서 문을 열고 닫는 인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큐티를 하루를 열고 기도로 하루를 닫고, 여러분, 담배로 열고 술로 닫지 마세요, 제발. 우리나라가 유튜브 세계 시청 1위라는 거 아세요? 우리나라 사람 1인당 한 달에 유튜브 시청 시간이 43시간이래요. 2위인 미국이 이십 몇 시간이에요. 역시 우리나라는 뭘 해도 무조건 1등입니다. 우리가 불필요한 영상 끊는 것도 도비야 끊어내는 거예요. 구지 안 봐도 되는 거 구독 취소하는 것, 그것도 우리가 해야 될 적용입니다. 여러분 큐티엠 구독하고, 우리들교회 구독하고, 전파하고,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내가 선 곳에서 누가 쳐다 보든 말든 상관없이 열고 닫는 자를 하나님이 문지기로 삼아주십니다. 문지기로 사명을 감당하는 청년의 나눔을 하나 읽어드릴게요. '저는 중학생 조카와 지내고 있어요. 남동생의 딸인데 동생이 이혼을 하고 또 재혼을 했는데 전처의 아이입니다. 이 남동생 부부가 거의 방치하듯 하여서 아이의 아이큐도 70대 정도라고 해요. 조카의 엄마는 술만 마시고, 아이 밥도 안 챙기고, 옷도 잘 안 빨아줬다고 하는데, 조카를 제가 교회에 데리고 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어요. 심하게 쌍욕을 하고 집을 나가기도 했어요. 그런데 여차여차 해서 지난 주일에 처음 청소년부에 왔어요. 조카가 마음을 열고 교회에 정착하기를 간절히 기도해주세요.' 청년이에요. 고모예요. 그런데 조카의 문지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를 많이 해주세요.
느헤미야가 문지기 이후에 노래하는 사람들과 레위인을 세웠다고 해요. 성벽 재건했다고 지금 마을잔치 하겠다는 겁니까? 아니예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을 세운 것입니다. 느헤미야 7장에 보면 이 노래하는 남녀가 245명이었다고 합니다. 3부에는 목자들이 특송을 할 거예요. 여러분 245명이 말씀대로 하나 안 하나 유튜브로 한 번 살펴보십시오. '너희들이 찬양을 멈추고 우상을 섬기니 바벨론에게 훼파된 것이 아니냐. 이제 다시는 너희 입에서 찬양을 멈추게 하지 마라. 든든한 성벽이 너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그 간절한 예배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이 너를 지켜주시는 것이라.' 이것을 알라고 지금 이제 막 성벽을 지었어요. 이제, 그 안에는 사람이 살만하지도 않은 곳입니다. 그런데 예배자를 그렇게 세운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의 가정과 삶이 든든하게 세워질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누구와의 그런 좋은 관계들이 아니라 여러분의 예배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제가 예배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청년의 나눔을 읽어드릴게요. '엄마가 우리들교회를 처음 오시고 이어서 온 가족이 우리들교회를 오게 되는 은혜를 입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몇 월 몇 일 예수님이 오신다는 얘기를 막 하면서 이단으로 떠나신 게 벌써 7년이 되었습니다. 한 달 전 아빠는 모든 돈과 퇴직금까지 투자를 잘못해서 다 날리시고, 엄마는 대출까지 받아 투자하셔서 빚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어요. 마음이 정말 많이 무너지고 힘들었지만 그 주 예배 때 하나님이 우리 가족 굶기시지는 않으실 거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죽으면 천국이지의 확신과 위로로 무너진 제 마음을 수습해주시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고난이 있어도 여호와의 이름을 찾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시는데, 또 벌써 익숙해져 안일한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열심히 기도했는데 지금은 또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놓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가족이 한 말씀을 듣는 공동체로 다시 모일 수 있도록 여호와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내일 중보기도의 시간에 누워서 기도문만 읽지 않고 앉아서 하나 하나 생각하며 간절히 기보할게요.' 여러분 부모의 성벽이 참 중요하자나요. 그런데 부모의 성벽이 사라져도 나의 예배의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청년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청년을 하나님이 친히 성벽이 되셔서 책임져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2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
-> 2절 말씀을 볼게요.
지도자를 뽑았대요. 말 잘하고 똑똑하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충성된 사람 믿을 만한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누가 믿을 만한 사람일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뽑은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올무에 걸리지 않고 사람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가 지도자인지 청년의 나눔을 읽어드릴게요. '제가 너무 고통스러운 건 3수 째인 자격증 시험입니다. 작년에 1차를 겨우 붙었지만 2차를 또 떨어져서 3년 째 붙잡고 있습니다. 옛날 자격증도 5수 째 붙고 매번 불합격이라는 선물로 찾아오심이 다행이면서도 이번 시험을 떨어지면 다시 또 봐야 하는 상황이라 무의식 깊숙한 곳에 엄청난 압박감과 불안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충성된 사람이에요? 떨어지져, 또 떨어져도 공동체에 붙어있는 사람, 원칙을 지키는 사람. 이 청년이 목자예요. 이 청년의 나눔 계속 읽어드릴게요. '아, 회개를 해야 붙나, 그냥 붙여달라고 해야 붙나. 머리만 굴리고 있는 제 수준을 보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2년 전 쯤 제가 술을 너무 좋아하는데 목장에서 제게 마실 거면 혼자 마시라는 처방을 했습니다.' 여러분 누가 지도자예요. 술을 마셔도 처방대로 마시는 사람. 또 읽어드릴게요. '돌이켜 보면 정신 차린지 얼마 안 됐는데 다른 지인들은 신기할 정도로 전도가 잘 되고 대부분 너가 믿는 예수님은 뭔데 너를 그렇게 바꾸어놨냐 여기며 궁금증으로 교회를 등록합니다만 진짜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제 악함과 연약함은 아직이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의 지혜를 얻어서 너무 친한 귀한 친구들, 사촌 동생 꼭 교회로 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요. 떨어지고 떨어지고 끊지 못하는 술이 있고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도 영혼 구원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자예요. 영혼 구원에 대해서 한마디의 기도를 하고 애타는 마음이 드는 사람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지도자예요. 저는 우리들교회 청년들이 우리들교회의 문지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한국의 영적 문지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조금만 힘들면 문 열고 나갑니다.조금만 힘들면 문 닫고 들어와 있어요. 그런데 말씀과 처방으로 질서 순종하며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청년들이 어디에 있어요. 요즘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청년들이 어디에 있어요.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청년들이 어디에 있어요. 요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대로 적용하려고 하는 청년들이 어디에 있어요. 제가 한 면접관을 만났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진짜 이기적이래요. 이타적인 청년들을 찾아볼 수가 없대요. 그런데 우리들교회 청년들, 힘든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들어요. 눈물도 흘려요. 같이 울어주기도 해요. 기도하자고도 해요. 이런 청년이 어디 있어요. 우리들교회 청년이죠. 저는 청년의 시절이 참 짧았습니다. 저는 스무 살 때 신학교에 가고 신학 공부를 2년 하고 군대를 하고요. 그리고 2년 군대 생활을 하고 1년 선교지 갔다가 바로 돌아와서 결혼을 했어요. 저는 청년의 때가 없었습니다. 제가 아내한테 늘 농담조로 이런 얘기를 해요. '아니, 누나가 어린 동생을 만났으면 내가 아무리 결혼하자고 해도 바르게 지도해줘야지 왜 어린 동생이랑 결혼을 하냐?'고 제가 이런 농담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 고민들을 사실 했었습니다. '나는 왜 청년의 때가 그렇게 없었을까?' 제가 왜인지 보니까 제가 청년의 때를 살아갈 믿음이 없었더라고요. 여러분의 청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시대의 청년은 정말 아까 서두에 얘기한 것처럼 7가지의 구멍이 난 채로 살아가고 있어요. 만신창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밝고 명랑한 것 같고 하하호호 하는 거 같아도 안에는 7개의 구멍들이 나 있는 거예요. 늘 어떻게 포기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늘 근심 걱정으로 살아요. 어쩌면 그냥 포기해서 방에서 나오기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어요. 저는 사실 그런 청년의 믿음이 없었더라고요. 그래서 청년의 때가 저한테는 없었던 것 같다 이게 해석이 됐어요. 청년들이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믿음인 것 같아요. '제가 이렇게 청년의 때를 안 보냈는데 왜 청년을 섬길까? 왜 청년부 담당 사역자가 됐을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청년의 믿음을 보라.'고 '저게 진짜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그게 믿음인 거야. 니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제가 청년들의 삶을 보면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걸 보면서 '아, 살아있는 게 정말 믿음이구나. 살아주는 게 믿음이구나.' 부모된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기대할 것이 참 많고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라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것을 채워줄 때도 있고 채워주지 못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들었다면 여러분이 진짜 보수해야 될 성벽은 우리의 청년의 자녀들이 살아서 그냥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서 이렇게 주님 앞에 나온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박수를 쳐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보수해야 될 성벽인 줄 믿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에 내 자녀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들도 계실 거예요. 그렇다고 한다면 소망을 가지세요. '하나님 우리도 오늘 말씀처럼 성벽 재건이 끝나는 날이 올 줄로 믿어요. 내 자녀가 그렇게 두 발로 이 성전에 들어올 그 날을, 그 때를, 끝남의 날을 주님 주실 줄로 믿어요. 그날까지 제가 제 성전을 잘 쌓고 있을게요.' 이렇게 기도한다면 반드시 우리들교회 장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청년의 세대들이 우리 한국 교회에 정말로 대안이 되는 성벽이 될 줄로 믿습니다. 적용질문 드릴게요.
[적용] 여러분의 청년의 때는 어땠나요? 여러분의 삶을 지켜주는 문지기는 누구인가? 경계를 가지고 열고 닫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여러분에게 세워주신 리더를 인정하고, 질서에 순종하십니까?
기도제목
희연
1.엄마 손가락 인대, 속히 회복되도록(재활치료)
2.언니, 형부 비행하는데 보호해 주시도록
3.조카들 건강게 성장하고, 둘째 조카 갑상선 회복되도록
4.신장수치 잘 나오고, 이식신장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정아
1.목장 올 수 있는 영육의 회복 허락 하시고, 병원가는 적용과, 불안한 마음이 안정되도록
아람
1.직장에서 공기바람
2.안된 것 묵상 X생각의 감사 0
예선
1.회사 집에서 공기 바람하기
2.약은 비타민 같이 먹기
크리스틴
1.Resume 나의 힘을 빼고 주께 올려, 그냥 보내기
2.9월에 캐나다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던지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 알고 말씀으로 준비하도록
은우
1.천국은 용서 받은 죄인들이 가는 곳임을 알고, 제 마음에 감동을 주사, 보내주신 곳에서 하루만 사는 겸손과 분별하는 진리의 말씀으로 채워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