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삶도 성경이야.
주님이 쓰고계심을 믿어,
아직 낙심하지 말아 '
-금일 설교 말씀-
240714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라' 열왕기하 12 4-16
김양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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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른대성당은 고딕양식의 대표적 성당임.
사고와 전쟁으로 파손되고 수리됨이 반복됨.
앞으로도 수리가 계속 될 것이라는 말도 있음.
화려한 성전이라도 영혼의 성전과 같지 않으며 수리되어야 하는 것은 내면이 중요함.
내면의 파손된 성전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 말씀을 통해 알아봄.
1. 교훈을 넘어서려는 마음을 수리해야 합니다.
요하스는 여호나다가 교훈하는 동안은 정직했음.
그러나 산당을 제거하지 못함. 이것이 요하스의 결론임.
요하스의 산당은 무엇인가. 요하스가 왕으로 통치를 40년을 오래 다스림.
40년동안 요하스는 성전수리가 그의 업적 하나임.
요하스가 성전수리를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였음.
대제사장 여호야다에게는 의논하지않고 바로 제사장들에게 바로 지시함.
성전을 수리하라는 것은 단순하지않은 명령임.
백성의 헌금이 있었는데 제사장들이 아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받아오라고함.
오래방치되어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기 위한 헌금을 받으라오라고 했음.
이런일을 대제사장에게 상의하지 않은 일은 잘못된 것임.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이기때문임.
고아였던 요하스가 여호나다를 제외시키려 했던 것이 이해되는가
아버지 같은 엄한 교육을 받아며 살았을 요하스임.
구속사는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것임.
인간이 선하고 가능성이있다고 보는것은 인본주의임.
인간의 불쌍함이 선함의 기준이 되지는 못함.
인간은 잘났을 수도 못날 수도 있음 이렇듯 사람의 기준은 다르나 하나님 눈에는 둘 모두 죄인임.
그를 정직한 길로 가게 하는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임.
요하스는 백성들의 여론과 기복의 마음으로 믿음보다는 정치로서 산당을 패하지 못함.
말씀의 언약궤보다 기복적 산당이 인기가 더 믾았음
여호야다의 그늘 아래 있던 요하스.
여호야다가 고맙지만 왕으로서 자존심과 답답함이 올라옴.
고아라는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이 올라오고 그러다보니 권위주의에 휩싸여버림
그래서 결론은 여호야다에게서 독립해야겠다고 하고 때가되면 반드시 그를 꺽으려한 것임.
한국인의 근성은 호전적이고 남을 꺽으려하는 기질이 많음.
통계적으로 사법적으로 무고 고발건이 일본에비해 10배나 많음.
한탕주의와 요행이 넘쳐나니 모두 속임수에 속아 넘어감.
요하스는 인기몰이 였던 산당예배를 패하지 못함.
여호야다에게 잘보이려하년서 정작 여호야다에게 상의하지 않으려함.
여호야다는 요하스의 결정이 망하는 길인줄 알지만 함부로 왕의 질서를 깨드릴수가 없었음.
요하스의 헌금 명령은 실천되기 싑지 않은 것임.
요하스도 알고있지만 제사장들을 야단치기에는 힘이 모자랐음.
하지만 때가 이르자 요하스는 제사장들을 책망하기 시작함.
요하스 30살때 일이었음.
이제는 여호야다 없이도 국정이 돌아가는 상황이었음.
이번에는 여호나다도 같이 불러 책망함.
요하스에게 산과같던 여호야다를 야단함
하나님의 교훈을 넘어서려하는것은 바로 자기 마음대로 하려하려 함임.
이것이 성전수리를 위한 요하스의 숨은 진실이었음.
하나님은 마음을 성전삼아 거하려하는데 우리는 마음을 자꾸 떠나려 함.
내마음을 수리하는 것이 중요함.
육식의 성전을 수리하는 것보다도 영혼 내면의 성전 수리가 중요하고 우선되어야함..
Q.요아스처럼 약자나 피해자가 무조건 선하고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은지
Q. 어디에 열등감을 느끼는지. 속으로칼을 갈고 있는 일은 없는지.
2. 뜻대로 되는게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요하스는 성전수리에서 헌금을 수리 하는것을 다시 백성이 직접내라고 다시 명령함.
아는 사람에게 성전세를 받은 것을 마치 제사장들의 약점인냥 지적하고 못하게함.
요하스가 여호야다를 혼내며 새로운계획을 주었고 여호나다는 이를 수행함.
새로운 수금은 대제사장이 하는게 아니라 왕의서기가 임명한 완실 관원이 관장하게 함
여호야다를 통하지 않고 왕권이 강화된 상황임.
수리하는 공사도 수리전문으로 하는 사람에게 맡김.
그러자 요한스는 성전수라을 잘 진행되었고 여호야닷의 그늘에서 벗러났다고 생각하게됨.
왕의로서 자존심을 지컸다고 판단한 요하스였음.
포퓰리즘의 인본주의의 시각이 그에게서 보임
이세벨에딸 아달리아에게는 반역할수있었지만 요하스를 반역하지 못한 여호나다였음.
성전을 성공적으로 재건했지만 내적 성전이 무너지고 있던 요하스임.
자기 뜻대로 진행이 잘되면 넘어가게되고 하나님의교훈에서 멀어지게됨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즉 형통이 진정으로 복된것이 아님.
우리는 파손된 성전인대 자꾸 자신에게 선한것이 있다고 착각하게됨.
뜻대로되지 않는 고난이 축복임. 하나님을 찾게되고 하나님 안으로 들어오게 됨.
눈에 보이는 성전이 파손되었다고 슬퍼할 일이 아님,
기대가 무너져내리는 사건이 내 죄악을 보고 주님께 나오게함.
여호나다 그까짓것이라고 생각하는것이 죄악임.
간증내용임.
폭력적인 아빠와 살았던 아이와 대화도중 위선적인 자신과 산것보다 낫다고 고백하게됨.
믿음과 성품의 차이임. 믿음이 있으면 더욱 더 교회를 비난하지않고 더 사랑하려함
Q.내뜻대로 되게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일이 무엇인지
Q.뜻대로술술풀리게 되었다가 하나님을 멀리멀리 떠났던 적이 있는지
3.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큐티는 행간을 읽는것임.
성전보다 예배가 중요함. 성전은 예배를 위한 수단이고 예배는 바로 그 목적이 되심.
예배보다는 그 하나님이 더 중심임.
요하스에게는 성전재건 만이 자신의 업적이라고 집착하게됨.
완벽하고 신속하여함
급한일이 생기니 중요한일을 놓치게 됨,
요하스에게는 성전이 아닌 산당에서 예배드리라고 함.
정작 성전은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기념비가 됨
예배의 원칙을 스스로 어기게 됨.
회계를하지 않은 요하스였음. 그 이유는 수금하는 사람이 성실히 일했기때문이라고 주장함.
겉모습으로는 멋진 리더쉽 이였지만 헌금으로 걷은 은 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주님의 것이기에 무겁게 다루었어야함.
그래서 헌금 회계는 확실히 이루어져야함. 자기만대로 하년 안되는 것이 원칙임.
속건제로 한 헌금을 임의로 제사장의 생활비로 주었음.
그러나 제사장에게 주는 헌금은 이미 정해져 있었음,
그 원칙을 임의적으로 바꾸어버림.
제사장에게 채찍꽈 당근을 주면서 그들을 지배하려함.
솔로몬의 성전을 원상태로 돌린다고한들 의미가 무색함.
자신의 마음이 주님앞에 사소한 원칙이라도 질서를 지키는 것이 성전을 재건하는 것임.
질서를 지키는게 십자가의 고난보다 더 힘든 적용이 될 수있음.
그노력들을 하나님이 귀하게 여겨주심. 여호야다는 하나님이다 아심을 의미함,
여호와의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원칙이 가장 중요한 원칙임.
예배도 사소한것 도 주님의 이름아래 모이는 것이 원칙임,
그리스도인의 인생의 목적은 이타적인 삶과 사명임
파손된 성전인 우리 자신을 존재자체로서 잘 수리해 나가야함.
Q.평소 원칙을 지키는 편인지. 내맘대로 하는게 편한지.
Q.사소하게 여기며 잘 어기는 원칙이 무엇인지.
Fin
교훈을 넘어서려는 마음부터 수리하기
원하는게 되는것에 도취되는것이 진짜 문제임을 알기
원칙으로서 삶을 구속사에 머무르게 하기
-목장 나눔-
참석 지체들: 이건 형제, 이재훈 형제, 이정훈 형제
정성 지체들: 양재신 형제, 조형규 형제, 김진영 형제, 김종엽 형제
목장나눔:
A: 근황이 어떠했는지? 다음달에 있을 무역관련된 자격증시험 준비중임. C: 적용질문중 어디에 열등감을 있는지? 비교의식이 있음. 현재 다시 취업준비중인데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보며 마음이 평온하지 못한것 같음.
B: 근황은 어떠했는지? 평탄했음. C:적용질문중 고난이 축복임이 믿어지는지 또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은 쉽게 적용할수 있는말 같진 않음. 그러나 지금 내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나중에 돌아보면 좋은일이 었다고 고백할수 있는 경우도 종종 있는것 같음. 현재 이해되지 않아도 내생각을 주님앞에 내려놓는 겸손함이 소중하다고봄.
C: 근황은 어떠했는지? 바쁘게 지낸것 같음. 투잡을 한지 2달째인데 체력적으로 적응 중이지만 나만의 시간이 없는것 같음. 나이, 성격, 경제력 등에 대한 열등감이 조급함이 자기연민이 자꾸 올라옴. 오늘 적용질문 중 약자가 무조건 선하고 옳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나눔을 해보고 싶음. 어떻게 의견있는지? A: 사람은 선한사람이 없음. 약자라는 기준도 상대적임. 약자중에서도 강한자와 약한자로 또 나누어지고 스스로 약자라고 하면서도 상황에따라 겸손함이 없는 경우도 많음. 그래서 무조건 약자라고 선하다고 할순 없음. B: 약자가 무조건 선하다고 생각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여러 경우가 있겠고 주님은 강자도 쓰시지만 약자를 통하여 더 많은 일을 하시는 것이라 믿음. 그래서 약자라고 판단되어도 그 뒤에 계실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존중해하는 것도 믿음이라고 생각함. 가장 작은 자를 대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하는 것이라고는 말씀을 적용해 봄. 그래서 강자보다 약자에게 체휼함이 있다보니 약자가 선이라는 인식도 습관적으로 있었는데 목원들의 다른 해석이 궁금하였음:)
나눔기도 모음:
이건 형제 :
1. 목자로서 직분, 역할을 감당할 지혜주시고 집안의 아픔도 주님안에서 해결되는 은혜주시기를.
2. 신교제 속에서 말씀 적용 잘 해나갈수 있도록.
이정훈 형제 :
1. 요하스 바라볼때 여호나다가 기억나게 해주시고 기복적인 산당예배에 마음이 현혹됨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다시 돌이키어 내적 성전재건에 소망가질수 있는 상황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2. 직장에서 착하려고 애쓰다가 오히려 상대방 마음을 아프게 한 일에 대하여 내안의 사악함을 보고 주님앞에 죄고백 하오니 그 상황속 에서 저를 보호해주시고 나의 선함이 주님의 선함안에서 머무를수 있도록 지혜주시기를
3. 믿음의 계보 이어갈 거주할 처소 준비함에 지혜주시고 사랑하는 그한사람 위해 주님의 손과발이 되는 은혜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