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4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라
열왕기하 12:4-16
중세 고딕 양식 성당하면, 그 하늘 높이 솟은 십자가 탑이 상징인데요. 가장 대표적인 예배당 건물이 독일의 쾰른 성당이에요. 1248년에 건축이 시작되어서 무려 640년 동안 건축되었는데, 완공 이후에도 여러 사고와 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되고 수리되고 파손되고 수리되어서 이 수리 공사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리라는 말도 있다는 거예요. 이렇게 대단한 예배당에 높이 솟은 십자가 탑을 세웠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천국 가게 해주지는 않죠. 그런데 그냥 유럽에 가면 전부 다 그 첨탑 있자나요, 두오모 성당도 뭐 600년 동안 지었다고 하는데.
화려한 성전을 아무리 높이 짓고 끊임 없이 수리해도 우리의 영혼의 성전이 중수되고 수리되지 못하면 소용이 하나도 없어요. 보이는 성전 건물보다 우리 내적인 성전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은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THINK 해 보겠습니다.
1.교훈을 넘어서려는 마음을 수리해야 합니다.
4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성전에 거룩하게 하여 드리는 모든 은 곧 사람이 통용하는 은이나 각 사람의 몸값으로 드리는 은이나 자원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모든 은을 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여 성전의 어느 곳이든지 파손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라 하였으나
-> 자, 요아스가 여호야다가 교훈하는 동안에는 정직히 행했다고 했어요.지난주 2절 말씀이죠. 그런데 3절에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기억, 이건 나시죠? 이것이 1, 2, 3절이 요아스의 결론이에요. 그러면 제거하지 못한 요아스의 산당은 무엇일까 오늘 진짜 한 절, 한 절 큐티를 좀 해보십시다. 요아스는 40년이나 나라를 다스렸어요. 다윗만큼 오래 다스렸습니다. 그보다 더 오래 다스린 유다 왕은 3명 뿐이에요. 아사, 웃시야, 므낫세. 그런데 다윗이 행한 일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사무엘하 전체보다도 더 많은데요. 똑같이 40년인데 요아스의 행적은 딱 한 개, 바로 성전 수리예요. 성전 수리가 요아스 일생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뜻인데요. 그런데 이 3절에 이어지는 4절에 이 성전 수리를 위해서 누구에게 지시를 내립니까? 요아스가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그래요. 이 때는 여호야다가 아직 살아있어요. 여전히 대제사장이에요. 그러면 성전에 관한 일을 지시하려면 누구에게 하는 게 맞아요? 대제사장 여호야다에게 해야 되는데 요아스가 대제사장은 부르지도 않았어요. 그냥 제사장들 불러서 바로 지시를 내립니다. 사소한 지시라면 또 몰라요. 그런데 사소한 일이 아니예요. 100년이 훨씬 넘는 성전의 파손된 곳을 수리하라는 대단히 중요한 명령이에요. 그런데 그 방법 또한 보통 일이 아닌데요.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는 3종류의 은을 모아서 그 돈으로 수리를 하라고 해요. 이건 인두세예요. 반드시 성전에 드려야 하는 세인데, 그런데 이 헌금을 어떻게 받으라고 합니까? 5절을 다시 보면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행간을 읽어야 되는데, 그때는 아달랴의 박해로 사람들이 성전에 가지도 않아, 그리고 헌금도 안 해. 그러니까 핍절이 되어서 제사장들이 자기 아는 사람 찾아가서 성전세를 받아서 살았나봐요. 물론 제사장도 오랫동안 방치되어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는 목적을 위해 헌금을 걷으러 다닐 수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제사장들의 대장인 여호야다와 상의도 하지 않고 진행하는 거예요. 이게 잘못이에요. 이 성전에서는 제일 질서가 대제사장이자나요. 질서를 깨뜨리는 거자나요.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는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했는데, 이때 이미 그 교훈에서 떠나려고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걸 인본적인 관점에서 갓난쟁이 요아스 같은 약자가 언제나 옳아야 하죠. 피해자는 무조건 선이고 가해자는 무조건 악이에요. 없는 사람이 먼저고 있는 사람은 양보해야 하고, 요즘 이 나라를 이런 관점이 지배하고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요아스는 약자 중에 약자고 피해자 중에 피해자고, 이렇게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은 정말 이 땅에 없어요. 한 마디로 찐고아자나요. 이 찐고아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여호야다를 배제하고 제치려는 게 너무 이해가 됩니까? 갓난 아기 때부터 숨어자랐고 아빠를 대신하고 있지만 결코 아빠일 수 없는 고모부 여호야다, 그것도 나이는 증조할아버지 뻘도 더 되는 90살 차이가 나는 그야말로 꼰대 아니예요? 이 여호야다의 엄한 교훈을 들으면서 자랐으니까, 여호야다가 그냥 너무 어렵고 두렵고 마음이 눌리고, 그랬을 것이 너무 공감이 되지 않으세요? 이게 구속사는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래야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요. 구속사를 그 사람들이 어렵다고 그러는 거는 너무 죄인된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공감과 분별은 다릅니다. 그 마음은 옳은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니예요. 이해되고 공감되니까 '당신은 무조건 옳아. 니 마음대로 해. 우리 요아스 하고 싶은대로 다 해.' 이것이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이에요. 자기결정권이에요. 무조건 '니가 원하는대로 해.' 인간이 그 자체로 선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인본주의의 끝판왕이에요. 불쌍함이 올바름의 바탕일 수는 없는 거예요. 인간은 불쌍할 수도, 또 잘나서 재수 없을 수도 있지만 이렇든 저렇든 다 100% 죄인인 거예요. 이게 바로 성경적이고, 복음적이고 구속사적인 인간 이해의 출발점이에요. 구속사는 구원하기 위한 얘기기 때문에 항상 감동이 있는 거예요, 이게 인위적인 얘기가 아니기 때문에. 불쌍한 요아스지만 그도 전적으로 악하고 음란한 죄인인 거예요. 여호야다를 빼고 제사장들만 불러서 이런 유래없는 지시를 내리는 것도 이런 성경적인 인간론에서 이해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를 정직한 길로 가게 한 것은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 교훈이에요. 여호야다는 당연히 산당을 제거하고자 했겠죠. 그런데 요아스는 왕이 되고 보니까 백성들 눈치를 보는 거예요. 백성들이 산당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예배 조차 편리하고 효율적이게 있는 자리에서 예배 드리라고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어요. 이것이 요아스나 백성들이나 똑같이 기복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으로 딱 연합한 거예요. 믿음보다 정치가 위에 있는 거예요. 요아스가 이 길을 택한 거예요. 그런데 그랬더니 점점 인기가 높아지는 거예요. 자기가 자꾸 높아지는데 높아져도 결국 여호야다의 그늘 아래 있는 거예요. 여호야다가 자기 생명의 은인이고 혁명의 주인공이고 자신에게 왕좌를 되찾아준 영웅이에요. 너무 감사하죠. 그런데 사람이 말이야 그 자리에, 왕의 자리에 있고 보니까, 지난 주일에 말씀이 들리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그랬자나요, 그 자리가. 그러니까 자꾸 내가 아무리 잘나도 여호야다 밑에 있는 것 같은 생각에 고구마 먹은 거 같이 답답합니다. 그러면서 찐고아라는 자기 처지 때문에 그저 자기 연민이 자꾸 커지고, 피해 의식이 올라오고, 이것이 열등감이 되고 시기와 질투로 변해서 야망이 올라가고 자존심이 나오고 이러니까 권위주의에 휩싸이게 되어 결론은 뭡니까? '여호야다를 제껴야겠다.'입니다. 그런데 아직 힘이 부족해요. 그러니 겉으로는 교훈을 받는 척합니다. 묻는 척하고, 듣는 척하고, 순종하는 척해요. 하지만 속은 정반대죠.그래서 칼을 가는 거예요. '두고 보자. 때가 되면 반드시 꺾으리라.' 그래서 아무도 하지 않은 공격을 혼자 다 받고, 혼자 화 내고, 혼자 이를 갈아요. 인간이 이렇게 악하고 어리석습니다. 찐고아라고 여기서 예외가 될 수는 없어요. 한국인들이 민족성이 안 좋다고 그랬자나요. 한국인들의 이 제끼고자 하는 민족성으로 1년에 한국에서 무고죄로 고발되는 건수가 일본에 비해 인구수를 고려하면 무려 500배가 넘는다는 거예요. 보이스 피싱 피해도 아시아에서 가장 많다고요. 잘 속이니까 그렇게 또 잘 속아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똑똑하자나요. 그런데 요아스는 산당 제사를 없애지 않아요. 이것이 요아스의 산당이에요, 지금 이게. 그러니까 그 엄청 믿음 좋아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잇는 성전 수리 카드를 떠내들은 거예요. 여호야다에게 잘 보이자하면서 그러나 여호야다를 배제했어요. 그동안 감춰뒀던 발톱을 드디어 드러낸 사건이에요.
그런데 제사장들이 이걸 다 알아요. 여호야다에게도 보고를 했을테고, 여호야다도 요아스의 이런 모습을 다 압니다. 그러니 이 일을 도와줄 수가 없어요. 망하는 길인 걸 알거든요. 그렇다고 대놓고 반기를 들 수도 없어요, 지금 이 나라의 지존은 요아스고 자기는 성전에 이거인데. 그래서 요아스는 질서를 깨뜨렸지만 여호야다는 질서를 깨뜨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사장들은 왕명을 수행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명분은 있는데 실행할 수가 없는 거예요. 제사장들이 그렇게 성전 수리 헌금을 걷으러 다니는 게 공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예를 들면, 입시가 코 앞인데 고3들 보고 '다 나와서 매 주일 장애부인 사랑부를 도와라.' 그러면 명분이 너무 있자나, 사랑부 도우라. 그런데 실천은 하기 힘든 명령인 거예요. 지금의 명령이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는 거예요. 요아스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 뭐라고 야단치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해요. 때를 기다리는 거예요. 드디어 때가 왔다고 판단합니다.
6 요아스 왕 제이십삼년에 이르도록 제사장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는지라
-> 6절이에요. 완전히 '배 째라.' 아닙니까?
7 요아스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성전의 파손한 데를 수리하지 아니하였느냐 ....
-> 요아스가 왕이 된지 23년이니까 이제 30살이 되었자나요. 그런데 성전 수리 명령은 언제 내렸는지 몰라요, 지금. 하여튼 23년이 되도록 지금 전부 다 요아스의 영도 서지 않고, 그때가 너무나 난세가 되가지고, 그새 역대기에 보면 여호야다의 도움으로 왕비도 2명이나 두었데요. 자녀도 낳았어요. 그러니 이제 왕실도 자기 손에 다 들어왔어요. 여호야다 없이도 국정이 돌아가게 된 거예요. 그러니 이제 제사장들에게 눈을 딱 돌리고 소집해요. 그런데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대제사장 여호야다도 함께 부릅니다. 그리고는 혼을 내요. '왜 왕명대로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제 않았느냐?'고 책망합니다. 그런데 역대하에 보니까 이 말을 여호야다 한 사람에게 했다고 해요. 무슨 말이에요. 제사장 다 불러놓고 그들 앞에서 그들의 대장 여호야다를 꾸중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은 존재였는데 이제 그를 넘어섰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려는 거예요. 여호야다를 넘어서려는 것은 여호야다가 가르친 교훈을 넘어서려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려는 것이에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예요. '나는 왕이다.' 왕답게 살아야 되겠어요. 이것이 '성전 수리, 성전 수리.' 그렇게 외치는 요아스의 속마음이에요. 기가 막힌 일이죠. 눈에 보이는 성전을 아무리 잘 만들고 잘 수리하면 뭐합니까? 하나님이 거하시는 진짜 성전인 자기 마음은 이렇게 하나님을 제끼려고 하는데요.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성전 삼아서 우리 안에 거하시려고 하는데 우리는 자꾸만 떠나려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려 하고, 하나님을 넘어서려 하는 마음이 파손된 성전이에요. 이 내적인 성전이 우리가 수리해야 할 진짜 중요한 성전인 거예요. 파손된 우리 마음을 수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외적으로 화려한 업적을 가지고 육의 성전을 수리해도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요아스처럼 약자나 피해자가 무조건 선하고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어디에 열등감을 느낍니까? 내가 넘어서고 싶고 제끼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속으로 칼을 갈고 있는 일은 없습니까?
구속사는 인간 이해예요. 누구를 욕하는 게 아니예요.
2.뜻대로 되는 게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7 .... 이제부터는 너희가 아는 사람에게서 은을 받지 말고 그들이 성전의 파손한 데를 위하여 드리게 하라 8 제사장들이 다시는 백성에게 은을 받지도 아니하고 성전 파손한 것을 수리하지도 아니하기로 동의하니라
-> 7절, 8절이에요.
제사장들 앞에서 여호야다를 야단친 요아스는 이제 제사장들에게 '성전 수리하는 일에서 손을 떼라. 성전 수리를 위한 비용을 직접 받으러 다니지 말고 백성이 성전에 와서 직접 드리게 하라.' 당연히 성전 수리하는 일도 관여하지 못하게 하죠. 그러니까 성전 수리 명령 언제 했는지 모른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아는 사람에게 돈도 안 받고, 성전 수리도 안 하기로 제사장들도 왕의 명령에 동의를 합니다. 아는 사람에게 성전세를 받았던 그 시대의 제사장들을 보며, 마치 여호야다의 약점을 잡은 것처럼 은을 받지도 말고 수리하지도 말라고 하니까 제사장들은 동의를 한 거죠. 이어서 성전 수리 계획 2탄을 발표해요.
9 제사장 여호야다가 한 궤를 가져다가 그것의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문 어귀 오른쪽 곧 제단 옆에 두매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 오는 모든 은을 다 문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그 궤에 넣더라 10 이에 그 궤 가운데 은이 많은 것을 보면 왕의 서기와 대제사장이 올라와서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대로 그 은을 계산하여 봉하고 11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의 손에 넘기면 그들은 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는 목수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고 12 또 미장이와 석수에게 주고 또 여호와의 성전 파손한 데를 수리할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게 하며 그 성전을 수리할 모든 물건을 위하여 쓰게 하였으되
-> 9절부터 읽습니다.
열왕기 기록은 여호야다가 새로운 수리 계획을 집행한 것처럼 되어 있는데요. 역대기는 이 계획을 주도하고 시지한 사람이 요아스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러니까 요아스가 여호야다를 혼내면서 새로운 계획을 지시했고 여호야다는 요아스의 지시에 순종해서 이행한 거예요. 새로운 계획은 백성이 직접 은을 성전에 둔 궤에 드리게 하는 거예요. 궤가 차면 모인 은이 얼마인지 계산해서 봉하는데요. 지금 그 일도 대제사장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먼저 왕의 서기가 주도하죠. 왕의 서기는 요아스의 부하예요. 대제사장은 명분상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 돈을 받는 사람도 제사장 중 하나가 아닙니다.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자라고 했는데요. 이것도 요아스가 특별히 임명한 왕실 관원이에요. 그러니까 여호야다의 그것이 이제 낮아지고 왕권 강화가 된 거죠. 이들이 돈을 받아서 수리 공사를 할 작업자들에게 직접 주는 거예요. 그럼 작업자들이 알아서 재료를 구해서 수리 공사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계획이 너무 진행이 잘되는 거예요. 역대하에 보면 수리하는 공사가 점점 진척되었다고 해요. 요아스가 계획한대로, 뜻한대로 성전 수리가 척척 진행된 거예요. 그렇게 어려웠던 여호야다인데, 넘을 수 없는 산처럼 크게 여겼던 여호야다인데 이렇게 한 순간에 너무도 쉽게 제압이 되었어요. 오히려 요아스가 놀랐을 거예요. 동시에 너무 좋았겠죠. '이제 드디어 제꼈다.' 명실상부 만인지상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직접 궤에 은을 넣게 하는 것이 더 투명해보이고 멋있어 보이자나요. '나는 여호야다와는 다르다. 저 할아버지와는 다르다. 일꾼에게 직접 비용을 지불한다.'하면서 역시 포퓰리즘의 인본주의적 시각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들은 아까 본문 읽을 때 '야, 요아스 너무 훌륭하다.' 이러고 다 읽으셨죠? '야, 성전 수리했구나. 찐고아 되더니 역시 훌륭해. 예수 씨가 달라.' 이러셨죠? 그런데 이제 믿음은 분량이 각각 다 달라서 이렇게 그 위치에서 또 안 되는 게 있어요. 여러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여호야다의 태도가 이때 갑자기 바뀐 게 아닐 것이죠. 여호야다가 왕좌를 탐냈다면 요아스를 23년이나 왕좌에 있게 내버려뒀겠습니까? 성전에서 제사장들 다 불러놓고 자기를 그렇게 책망하며 깎아내리는데 가만히 듣고 따랐겠습니까? 자, 예후에게도 바른 길 가는 여호나답이 있었자나요. 레갑족속 기억나시죠? 예후가 바알 숭배는 없앴지만 금송아지 숭배는 놔뒀자나요. 이런 예후의 한계를 본 여호나답은 광야로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요. 요아스에 대한 여호야다의 마음은 이것보다 훨씬 더 사랑하는 거예요. 아들같은 요아스자나요. 그러니 아무리 여호와의 말씀으로 교훈한다 해도 이렇게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거예요. 거기까지는 전심이 되지 않는 요아스의 한계를 그냥 인정할 수 밖에 없었겠죠. 그 이상 세게 교훈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에 또한 마음이 아팠을 거예요. 그냥 거기까지였어요. 아달랴에게는 그렇게 반역할 수 있었는데 요아스를 아프게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요아스는 자기가 세운 사람이자나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 진정한 반역을 요아스를 향해서 만큼은 할 수 없었단 말이죠. 그게 이해가 되는 거예요.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진짜 없어요.
이른 빈틈이 요아스의 내적인 성전이 더욱 파손되게 했겠죠, 끝까지 믿어주려고 하는 마음.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고 힘이 생기고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하나님의 교훈을 떠나게 된 거예요. 그리고 바로 그런 마음이 정점에 올랐을 때 여호야다를 제끼고 진행시키려고 한 성전 수리가 자기 뜻대로 너무 잘 진행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만큼 또 하나님의 교훈에서 멀어진 것이고요. 이런 악순환이 통치 23년을 기점으로 여호야다가 죽을 때끄지 계속되어져서 마음이 점점 높아지고 하나님의 교훈에서는 점점 떠났습니다. 따라서 뜻대로 다 이루어지는 형통은 축복이 아닌 거예요. 인간은 100% 죄인인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그 원하는 걸 해준다고 밤중에 일어나서도 사다달라는 거 다 사다주고, 성적 자기결정권 '나는 여자이고 싶어.' 그러면 다 해주고, 그냥 갓난쟁이가 '사탕 먹고 싶어.' 그러면 사탕 사다주고. 그게 자기결정권이 아닌 거예요. 그런데 인권이 왕노릇하는 지금 이 나라는 모두 자기결정권. 어저께 우리 목사님 사랑하는 아이가 엄마 자는데 들어와서 '여기서 자겠다.'고 그래서 '니 방 가서 자.' 초등학교 6학년이 '나도 인권이 있자나, 내 맘대로 해야 되는 거.' 이랬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은 100% 죄인이기 때문에 이런 형통을 선하게 받아 누릴 수가 없는 거예요. 형통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그걸 받을 수 없을 만큼 부패한 우리 자신이 문제인 거예요. 우리 존재의 바탕이 파손된 성전인 거예요. 이거를 이해하셔야 돼요. 자꾸 여러분들이 선한 게 있다고 착각을 해요. 한 청년이 저에게 세례를 받았어요. 청년부에 한 2년 나갔어요. 목장도 나갔어요. 그런데 뭘 하나 차렸어요. 돈이 벌린다는 거예요. 당장 교회를 안 나오고 불신교제하면서 이제 결혼을 하는데 교회에서 절대로 안 한답니다. 돈이 하나님 위에 있어서 하나님 두려운지 모르고 '아이고 세례 받은 게 그게 뭐가 대수라고.' 돈이 하나님 위에 있어요. 저를 마구 무시를 해대요. 이거예요, 바로. 돈이면 최고예요, 아까 간증할 때도 그랬지만. 따라서 바꿔 말하면 뜻대로 되지 않는 고난이 축복이에요. 뜻대로 되지 않는 절망 때문에 내가 아닌 하나님을 찾게 되자나요. 고난 자체가 복이겠어요? 고난을 겪어야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오니 축복이라는 말이죠. 육의 성전이 무너져야 영의 성전이 세워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육이 무너지는 만큼 영이 세워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수리하고 싶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파손되었다고 슬퍼할 게 아니예요. '이 무너진 거 고쳐야 하는데 어쩌나 이걸 고쳐야 내 인생 펴는데.' 이러면서 내 욕심과 탐욕과 정욕을 간과한다면 내 인생 아무리 뜻대로 술술 풀려도 파손된 인생으로 끝날 뿐인 거예요.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기대가 무너져 내리는 사건을 만났다면 오히려 감사한 일인 거예요. 그 고난을 통해 내 뜻 이루어지기만 바라던 내 죄악을 보고 주님께 나오게 되기 때문인 거죠. 그런데 그 집은 아들이 돈을 잘 벌어 아들이 차를 사주니까, 여기까지. 다 돈이 하나님 자리에 있는 거예요.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내 뜻대로 되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뜻대로 술술 풀리게 되었다가 하나님을 멀리멀리 떠났던 적이 있습니까? 뜻대로 되는 게 축복이 아니라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고난이 축복임을 믿습니까?
3.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13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그 은으로 그 성전의 은 대접이나 불집게나 주발이나 나팔이나 아무 금 그릇이나 은 그릇도 만들지 아니하고 14 그 은을 일하는 자에게 주어 그것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으며
-> 은 대접, 불집게, 주발, 나팔, 금 그릇, 은 그릇 등은 모두 성전에서 예배할 때 사용하는 집기예요. 이게 다 불과 물과 피와 제물 등을 다룰 때 쓰는 도구이기 때문에 쉽게 파손되었어요. 그래서 계속 만들어주고 관리해줘야 했죠. 그런데 요아스는 이런 예배 물품들도 만들지 못하게 했어요. '그 돈 있으면 성전 건물 파손한 데를 수리하는 데 쓰라.' 여러분 성전이 중요합니까, 예배가 중요합니까? 물론 둘 다 중요해요. 그런데 둘 중 뭐가 더 우선이 되어야 돼요? 당연히 예배죠. 성전은 예배를 위해 존재하는 수단이자나요, 예배가 목적이고요. 그런데 예배와, 또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중에는 또 뭐가 중요해요? 당연히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비교 불가할 정도인 거죠. 하지만 요아스 눈에는 성전 밖에 안 보여요. 왜죠? 세상에 보여줄 자기 업적이 필요하자나요. 이게 있어야 이전 왕들과도 차별되고 여호야다도 확실히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여호야다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이 성전 수리, 이 성전 부리는 약 130년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처음 있는 기념비적인 업적이에요, 지금 이게. 요아스는 이 공사를 완벽하고도 신속하게 마무리 지어야 했어요. 너무도 급한 일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급한 일이 생기니까 중요한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예배 기구를 만드는 데 쓸 여유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게다가 요아스에게는 뭐가 있습니까? 산당이 있자나요. '예배, 여기 한창 공사중인데 뭘 여기까지 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해. 산당 있자나. 산당 곳곳에 있자나. 예배드릴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산당 가서 마음껏 드리라고 해. 편하고 좋자나.'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우리들교회의 실정과 똑같은 본문이 이렇게 나와서, 편하게 집에서 산당 예배 드리시던지. 우리들교회는 산당 예배를 막 복구해야 될 지경이야. 너무 진짜 기복을 좋아하자나, 여러분들이. 그러니까 요아스의 머리 속에서 성전은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자기를 빛낼 기념비가 되어버렸어요. 예배는 성전에서 드려야 하고 성전은 다른 게 아니라 예배드리는 곳이라는 원칙을 깨뜨렸어요. 누구보다도 앞장 서서 원칙을 지켜야 할 왕이 지금 스스로 원칙을 어겼어요. 그런데 이게 또 다가 아니예요.
15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 15절이에요.
요아스는 성전 수리에 쓰인 은을 회계하지 않았어요. 회개 말고 회계. 이유가 있죠. 은을 쓰는 사람들이, 뭐라고 그랬어요. 성실히 일을 하였기 때문에 회계하지 않았대요. 그러니까 이게 도덕적인 체계 아니자나요. 믿을만하게, 진실되게, 정직하게, 양심껏 예산을 집행했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믿어서 회계하지 않았대요. 이게 얼핏 들으면 너무나 멋진 리더 같자나요. 직원을 믿어주는 사장님 같자나요. 쪼잔하게 굴지 않고 대범하게 일을 맡길 줄 아는 아주 매력적인 상사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나이 많아 꼰대 같은 대제사장은 여호야다와는 비교가 안 된다고 이제 칭송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거예요. 그냥 여호야다만 생각하면 고구마 딱 얹혔어. 너무 멋있는 거예요, 요아스. 그런데 지금 이 은이 어떤 돈입니까? 왕실 예산도 아니예요. 전쟁에서 이기고 받은 보상금도 아니고요. 이 은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바친 헌금이에요. 그냥 돈이 아니예요. 하나님 것으로 구별된 돈이에요. 성물이에요. 아까 우리 자매가 간증하는데 그 고난을 겪고 난리 난리치고 그리고 그냥 처음으로 신앙 고백으로 십일조를 했다고 그러자나요. 신앙 고백이에요, 신앙 고백. 그러면 어떻게 써야 합니까? 우리는 '피 같은 헌금.'이라는 표현을 쓰자나요. 그처럼 귀하고 무겁게 다뤄야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원칙이 생기겠어요? 어떤 용도든 누가 썼든 회계를 확실히 해야지. 하나님께 바친 헌금이니까요. 바친 사람의 신앙 고백이니까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 것이니까요. 그러니 1원짜리 하나도 그냥 두지 않고 철저히 회계를 해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원칙이에요.
16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여호와의 성전에 드리지 아니하고 제사장에게 돌렸더라
-> 또 있어요. 16절입니다.
속건제의 은과 속죄제의 은은 상전 수리에 쓰지 않고 제사장의 생활비로 줬다는 건데요. 제사장이 생활비로 받는 헌금의 종류는 정해져있었어요. 속건제와 속죄제의 경우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들이 성소 안에서 먹는 게 원칙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것을 다 임의로 바꿔서 백성에게 은으로 내게 하고 아예 여호와의 성전에 들이지 아니하고 그 은을 전부 제사장 생활비로 주고 했다는 것이죠.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앞에서는 제사장들에게 채찍을 내렸다면 이제 당근을 준다는 거예요. '왕인 내가 제사장들 생활비를 책임질 것이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이런 뜻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인정 받는 게 율법이 정한 원칙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아무리 성전 수리 빨리 완벽하게 하면 뭐 합니까. 솔로몬이 지은 원상태로 돌려놓는다 한들 어디에 쓰겠어요. 이렇게 원칙을 무시하며 지키지 않는 마음인데요. 건물을 번듯하게 수리했다 해도 진짜 성전인 자기 마음은 세상적인 가치관에 좀이 먹어서 다 파손된 채로 방치됐는데, 방치하고 방치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로 힘써야 할 파손된 성전 수리는 우리 마음을 수리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첫걸음이 바로 원칙을 지키는 거예요. 사소한 원칙이라도 그 질서를 귀하게 여기고 지키는 것이 파손된 내 영혼을 수리하는 첫째 단계인 거예요. '밤낮 역할에 순종하라고 그랬어.' 이게 원칙이에요. 아내의 머리가 남편이고 남편의 머리가 그리스도, 이 원칙을 지켜야 다 잘 돌아가는 거예요. 우리들교회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예배와 양육과 교육과 행정과 재정과 선교 등 모든 면에서 원칙을 지키고자 했어요. 정말 사소한 원칙 하나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처럼 무겁게 여기며 지키려고 애를 썼어요. 정말 쉽지 않았어요.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도 들었어요. 여러분 훗날 우리들교회가 어떻게 원칙을 지켰는지 이제 다 여러분들이 알 날이 오게 될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아무것도 몰라도 그런 시간들과 노력들을 하나님이 다 귀하게 봐주셨어요. '하나님이 다 아신다.'가 여호야다의 뜻이자나요. 하나님이 다 아셔서 여기까지 오게 해주셨어요. 저는 이 정부가 새로운 저출산 정책으로 육아휴직시에는 부부 월 최대 450만원까지 준다고 하니까 반갑기가 그지 없어요.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산모에게 육아휴직을 줘야하는 중소기업들은 여자들을 채용하기가 얼마나 부담이 되겠습니까? 낙태법, 차별금지법, 동성혼 등은 허용해서 아이 낳는 거를 지금 원천 봉쇄하고 있자나요, 이게 원칙인데. 그런데 그러면서 돈을 준다한들 이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거예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도 안 되는 거예요. 원칙은 이를 닦아야지 건강해지는데 밤낮 사탕주고 '괜찮아, 괜찮아.' 이건 거예요. 저는 원칙, 우리들교회 그런 인기 전술을 안 쓰고, 우리들교회가 돈 주지 않아요. 그래도 다 원칙을 지키니까 다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낙태 안 하고 이혼 안 하고의 적용을 하지 않습니까. 다 똑같은 거예요. 동정을 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장 큰 원칙이 하나님의 원칙이고, 하나님의 사람 살리는 원칙이 가장 무서운 거예요. 하나님 두려운지 모르면 이렇게 돈을 많이 벌면 뭐하겠어요, 그렇죠? 굉장히 그거 무섭지 않아요? 그런데 무서운 걸 모르는 거예요, 지금. 하나님보다 내가 돈 버는 게 위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한 가정 한 가정이 회복되니까 낳고 낳고의 가정과 교회가 중수된 줄 믿습니다. 강남 한복판, 판교 한복판에서 이게 지금 열매로 보여지고 있어요. 정말로 처음 오실 때 다 파손된 성전으로 오셨는데 붙어만 계시니까 하나님이 싹 수리해주신 가정이 한, 두 가정이 아니죠. '파손된 성전을 수리하라.' 이 귀한 역사가 계속되기를 축복합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평소 원칙을 지키는 게 편합니까, 내 마음대로 하는 게 편합니까? 사소하게 여기며 잘 어기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가족들에게 내 마음대로 강요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희연
1.엄마 손가락 인대, 속히 회복되도록 (재활 치료)
2.언니, 형부 비행하는데 보호해 주시도록
3.조카들 건강하게 성장하고, 둘째 조카 갑상선 회복되도록
4.오늘 병원 진료 갑니다. 신장 수치 잘 나오고, 이식 신장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정아
1.목장 올 수 있는 영육의 회복 허락 하시고, 병원 가는 적용과, 불안한 마음이 안정되도록
예선
1.약은 비타민처럼 잘 챙겨서 먹기
2.가족, 회사, 마음은 말씀으로 가지치기
3.매니저, 회사, 고객과의 감정 분리하고, 업무 팩트로 보고하고 훈육 X
4.고객 미팅에서는 아는 것만 설명하기
크리스틴
1.마음에 가짜 경보가 울릴 때, 자동으로 돌아가는 과거 회로를 끊고, 지금과 옛날은 다르고 안전하다고, 스스로 얘기해주기
2.행동은 고민으로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고 스스로 그렇구나 하기
아람
1.기존 고장난 관계 연락 정리
2.조카는 주께 드리고 나의 인생 살기
3.이상한 엄마의 존재로 감사하고 회색돌이 되도록
4.오전 시간으로 일하는 시간 변경해보기
5.자격증 준비 잘 하고, 붙회떨감 하기
은우
1.뜻대로 안되고 막히는 것이 보호해 주신것으로 감사하며 원칙 따라 하루만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