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7
주일예배
본문: 열왕기하 12:1-3
제목: 교훈하는 동안에는
설교 말씀
3부 예배에 한 명만 있을까봐 걱정했는데, 와서 채워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온 성이 평안하게 되었다면 영원히 평안하게 살 수 있을까요? 이런 노후를 꿈꾸시죠? 여생을 편안하게 사는 꿈 말이에요.
저번 주 목장 나눔에서 한 집사님이 에전 동료를 만났는데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세상 기준과 다르다는 나눔을 해주셨습니다.
교훈을 끝까지 받지 않으면 세상에서 천국은 없습니다. 그러니 교훈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교훈하고 받는 것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 믿음의 어머니가 중요합니다.
1절.
요아스가 아버지 아하시야를 죽이고 이세벨을 죽인 예후, 열심의 아이콘이 북쪽에서 7년째 통치하는데 요아스가 왕이 됐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깨어 있어야되겠죠? 그런데 40년을 통치했다고 합니다. 예후는 28년, 그것도 북에서는 아주 긴 집권이라고 합니다.
요아스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 품에 제대로 안겨본 적도 없어요. 사진이나 영상이 있던 것도 아니고,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부모님의 얼굴을 몰랐습니다. 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고아였습니다.
외가 뿐만 아니라 친가에서는 여왕할머니 손에 죽을 뻔 해서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최고 불우한 환경입니다. 왕자면 뭐 합니까? 그런데 이 불우한 환경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
저도 생각해보면 환영받지 못한 출생으로 이 땅에 왔습니다. 그런데 결혼생활에서 핍박받다가 남편이 천국 갔기에, 다 끝났다가 아니고 말씀 사역으로 등극했습니다.
사건에서 예수 씨를 보면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딱 맞는 환경을 주십니다. 육신의 부모가 살았던 죽었던, 육신의 부모를 주 안에서 해석해야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는 거에요. 하나가 해석되지 않으면 피해의식으로 괴롭습니다.
깨어있었던 중요한 이유인 어머니 이름이 나오잖아요? 남유다는 요람, 아하스만 제외하고 어머니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요. 시비아는 사슴, 순한 영양이라는, 맹세의 우물 브엘세바와 어울리는 이름으로 보여요. 그런데 요아스 기억에 어머니가 있겠습니까? 요아스의 친모는 아달랴가 손자들을 진멸할 때 죽었거나 추방당했을거에요. 그러나 믿음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믿음을 줬다는 것이 중요해요. 여호야다의 뜻이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뜻입니다.
요아스가 악을 행했는지 아닌지 잘 아세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분은 잘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어떤 부모님이든 최고의 부모님이 되시는 줄 믿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수고로 이 땅에 왔는데,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또 다른 믿음의 계보로 이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왜 믿음의 어머니일까요?
여자들은 재질이 좋잖아요?
적) 여러분의 어머니가 세상적으로 좋은 분입니까, 나쁜 분입니까?
어머니가 잘 해줘서 주님 만났습니까, 어머니의 방치로 주님을 만났습니까?
잘잘못을 떠나 내 어머니로, 또 내 부모님으로 이 땅에서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예배드리고 큐티하고 목장 나가면 최고의 어머니인 것이 믿어지세요?
2.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2절.
여호야다가 얼마나 유명한지 예레미야를 보면 여호야다를 언급하고, 왕들도 못 들어가는 열왕의 묘실에 묻히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제사장 직이 중요해집니다.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교훈을 잘 받았기에 제사장이 중요해졌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살리고 왕이 되게 했으며 교훈했습니다. 교훈했다는 말은 율법을 뜻하는 어근이 같습니다. 인간의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쳤다는 뜻입니다. 열왕기에 많은 왕들이 나오는데, 그 많은 왕 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받았다고 기록된 왕이 요아스 하나입니다.
어떤 부모에게 양육받아도 말씀으로 받는 것이 최고의 선물 아니겠습니까? 이런 축복을 요아스가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0년 노예생활 하다가 광야 생활 40년 하고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그 나라들에 왕이 있으니 왕을 달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끊임없이 왕을 구합니다. 그러니 분노함으로 왕을 주고 진노함으로 폐하셨다는거에요.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왕인데, 우리는 왕이 우리를 구해줄 것 같아서 그렇게들 싸우잖아요? 왕들이 그 위치에서 말씀으로 교훈받기가 그렇게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워놓고 자기만족을 느낍니다. 요아스 정도는 고난이 있어야 말씀이 들리는거에요.
교훈을 받아야 인간관계도 나아집니다. 교훈을 받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자식과도, 배우자와도 말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유교나라라서 예수 안 믿어도 효도하면 통한다고 생각하세요. 효가 축복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지만, 효와 믿음은 성품과 믿음의 차이입니다. 효 한다고 해서 착한가요?
이슬람 국가에서는 코란에 대한 순종이 축복이기에 미국과의 전쟁이 두렵지 않아요. 불교는 욕심을 버리는 것에 목적을 두기에 가난하게 사는 것을 합리화 합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받지 못해 가족 구원에 대해 깊이 교훈받지 못합니다.
교훈을 잘 받으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구속사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요아스처럼 부모를 기억조차 못 하는 왕이 누가 있을까요?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성전 골방에 숨어 고모부밖에 없는거에요. 할 수 없이 성전에서 말씀 들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몰리는 것이 축복입니다.
요아스가 교훈 받을 수 있던 것은 찐 고아라는 비천한 상황, 숨어 지내야 했던 불우한 처지가 말씀으로 교훈받을 수 밖에 없던 통로였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스승인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게 하셨어요. 그러니까 찐 고아의 축복 아니겠어요?
고난 속에 자랐지만 말씀으로 교훈 받으니 요아스는 모든 날 동안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았다는 거에요. 네 마음도 진실하냐 기억하시죠? 하지만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은혜를 경험한 요아스도 후에 교훈을 안 받으니, 자립신앙이 되지 않아 스스로 정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깊어지는 것은 말씀 묵상밖에 없습니다. 묵상하는 만큼 죄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보는 것이 축복이에요.
적) 나는 이것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라고 탓 하고 원망하는 환경은 무엇입니까?
그 약함을 통해 말씀의 교훈을 받았습니까?
지금이라도 누군가 살아있는 동안 교훈을 받고자 결단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실제적으로 각종 양육훈련을 받으시겠습니까?
3. 그럼에도 여전히 산당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3절.
40년을 왕위에 있으며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 요아스, 유다 모든 왕들의 결론입니다.
예후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하고 요아스는 산당을 폐하지 못하니 산당을 떠나지 못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서 개혁한 예후처럼 능력자가 되거나 요아스처럼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되었든 절대적으로 충성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기복적으로 산당 예배를 드립니다.
성경은 아무리 정치를 잘 하는 사람이어도 인간의 힘으로 한 것은 기록하지 않습니다. 요아스도 성전 수리한 것만 길게 기록하고 다른 것은 기록하지 않았어요. 우리도 내가 산당을 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아무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해도 제거하지 못하는 산당 때문에 백성들이 다 따라합니다.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집에서는 아이들이, 나라에서는 백성들이 따라합니다. 입은 그럴 듯 하게 정직히 말하는데,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을 백성을, 성도를 보면 압니다.
여러분들이 기복적인 이유에는 제 책임이 있지 않겠어요? 여러분이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고 하는데 여러분 삶의 결론입니다. 기복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말만 안 해도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다윗의 등불을 허락하셔서 약하게 해주셨어요.
여호람 8년, 아버지 아하시야 1년, 할머니 아달랴 6년의 악정이 오래된 것 같아도 합치고 보면 15년, 3대입니다. 그런데 성군 여호사밧, 아사 왕, 요아스의 재임 기간에 비하면 15년은 너무 짧은 세월입니다. 사단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해도 이 땅의 날 수를 생각하면 너무 짧습니다.
인생이 짧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화려한 페이지가 굉장히 많지만 짧은 시간입니다. 내가 예수 믿고, 평생 두드러 맞고 살아도 평생을 합치면 하루가 안되는데, 평생 맞고 살았다고 난리치지말아요.
내 고난에 대해 과장하면 안돼요. 인생에 살면서 고난이 시간적으로 짧아요. 전인생으로 고난 당해도 하나님의 시간에 비하면 숨실 시간도 안됩니다. 죄에서 떠나지 않은 것 같아도 북이스라엘, 남유다의 죄가 다릅니다. 악하고 연약함의 차이입니다.
날마다 은혜 받잖아요. 기도하고 간증하고 눈물 흘리며 떠나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연약해서 분별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게 헷갈립니다. 그래도 제거하지 못하는 산당 예배를 드리는 남유다 왕들은 마태복음 1장 예수님 계보에 올라갑니다. 이것이 은혜 아니에요?
하나님을 떠났던 가인에게는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은데, 그의 후예에서 여러 조상들이 나왔습니다. 그런 것 없어도 우린 살아왔어요. 그 결론이 좋은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살인하고 여자 얻는데 쓴단 말이죠. 그래가지고 창세기 4장에 이미 첩을 얻고 살인하는 모습이 나오고 5장의 셋의 계보에서 예수님이 오시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셋의 후손이 나오는데, 계보에 969세를 향수하고 죽었다는 말만 나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단순하게 살아집니다. 단순하게 가지치기를 해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제거하지 못 하는 산당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니 하나님이 지경을 넓혀주시는 것 같아요.
유다 왕들, 히스기야, 셋의 후손들도 심플하게 살다 보니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비교하니 악이 나오잖아요?
잘 살다가 에덴 동편에서 기계 문명이 판을 치니 새롭고 부러워지는거에요. 믿음의 4대손까지 가면 조상의 기도로 먹고 산다고 하지만 부럽습니다.
주님을 진짜 만났으면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거에요. 이 세상이 열리지 못해서 내가 아는 것으로 자꾸 말하는 거에요. 다윗 할아버지는 고난을 통해 유다 왕국을 얻었어요. 그런데 후손들은 자기가 고난을 통해 쟁취한 것이 아니다보니 솔로몬 뒤부터는 25년간 성을 열심히 짓다가 타락하고 르호보암은 17년 타락했어요. 그래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다른 것은 처음부터 타락한 북이스라엘, 성전 짓다가 타락한 남유다가 다릅니다.
내가 제하지 못하는 산당은 예수님의 계보로 갔는데, 여로보암의 길은 영원히 망했거든요. 북이스라엘은 반역으로 세운 나라입니다. 믿음으로 세우지 않았기에 능력이 우상인 나라가 됐습니다. 이 세상의 지옥은 능력대로 인정하는 가정, 사회에요. 능력대로 일꾼을 뽑는 교회에요.
겉으로 보기에는 요셉의 후손으로 반역했음에도 망하지 않고 너무 잘 사는거에요. 지금도 개혁의 아이콘 예후와 요아스가 비교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인간의 세속사는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이는거에요. 북이스라엘이 예수 이름만 걸고 인간의 세속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떤 교회에 가시겠어요?
그러니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에 줄서서 결혼 동맹을 맺은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여호사밧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거에요. 이게 연약한거에요. 부부간에도 부인이 돈 더 잘 벌고 능력있어서 능력 없는 남편을 무시할 수 있지만, 질서를 인정하지 않으면 지옥이 열립니다. 그런데 고난을 겪어야 질서가 세워지고 집안이 화목해집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이 지옥이고 결국 망했어요. 솔로몬을 두고도 열 지파가 합세해서 반역했잖아요. 그러니까 유다는 행이 완벽한 나라가 아니에요. 이것을 세상이 어떻게 알아듣겠습니까?
북이스라엘이 지옥이고 망해서 지구상에서 없어진 나라가 됐지만 남유다는 정권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예수씨이고 능력입니다. 이혼 안 하는 것만 해도 능력이에요. 이혼할 이유는 천 가지가 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바꾸고 있으면 능력이 됩니다. 아무리 요아스가 7살이라도 고목나무에 싹 나듯, 자녀, 배우자를 고를 때 예수 씨를 봐야 합니다.
능력 있는 아내가 믿음으로 질서를 지키면 영적 후사가 나옵니다. 항상 자기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하고, 구원의 언어를 써야 합니다. 십자가를 보여주는 것이 후손을 얻는 비결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귀하게 여김 받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직분에 충성해야 하고, 질서를 지켜야 하지만, 윗 자리에서 질서 몰라요?! 이러면 안됩니다. 윗자리, 아랫자리를 구원 때문에 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은혜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나라이고 북이스라엘은 죄 짓는 사람이에요. 너무 잘났기 때문입니다. 예후, 아합, 이세벨만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끌고 가시고, 행위가 멋있어 보여도 하나님 앞에 간절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알아보시는거에요.
산당은 높은 산에 세운 제단인데, 대놓고 우상숭배를 했던 곳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다윗이 언약궤를 가져오고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으면 산당을 폐해야 하는데, 산당 예배가 드려졌으니, 기득권이 얽혀있어서 폐하지 못한 것입니다. 말씀의 교훈에 따르지 않은 것이지요. 내가 원하는 방식, 원하는 때에 이용하려고 만든 편의시설이 산당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유다에서는 산당을 폐한 사람이 몇 있지만 이스라엘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도 하나님이 믿음의 자손으로 이끌어주시는 것이 감사합니다. 산당 예배는 뿌리 깊은 기복 신앙입니다. 우리도 날마다 큐티하면서 기도하는데, 기복의 기도를 하는지 팔복의 기도를 하는지 헷갈리죠? 그래서 오늘도 성령님께 의지하여 주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아야 하는거에요.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기 위해 큐티해야 합니다.
내가 제하지 못하는 산당도 자꾸 묵상해 가다보면 깨달아지고 조금씩 제거되어 갈텐데, 그러려면 하나님이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구원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이 기도를 하는 데에도 한 쪽은 그런 것 필요 없다하고, 금송아지를 섬기잖아요? 그러니까 지질한 것 무시합니다. 산당 예배는 그것과 조금 다릅니다. 죄 지으면 안된다고 알면서 눈물 흘리지만 다시 죄를 짓기에 반복합니다. 죄인 줄 깨닫게 해주시는 분이 예수님인줄 알잖아요.
이런 설명할 길 없는 세상에 입문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말씀 듣다 보면, 듣는 가운데 하늘이 열릴 줄 믿습니다.
적) 예배에 은혜를 받음에도 끊임없이 바라는 기복의 산당 예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요?
여러분은 입시, 입사, 건강, 물질 등에서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시나요?
안그러면, 왜 맨날 '하나님이 계시면 왜 이러냐?' 소리를 하시나요?
기도제목
A
- 내 안에 음란을 꾸준히 공동체에 고백하며 여자친구에게 분별과 선을 잘 지킬수 있기를
- 생활예배 잘 지키기
- 신결혼을 위한 적용 해 나가기
B
- 주중에 큐티 할 수 있기를
- 생활예배 잘 드릴수 있도록
- 주일성수 잘 지키고 부서 잘 섬길 수 있도록
- 주일성수 지킬 수 있고 내게 필요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직장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C
- 내 상단 예배를 무너트리고 매일 큐티로 죄설 보고 가길
- 적용으로 취준에 임하기 (이번주 지원 3곳, 7월 내에 MOS 따기)
- 신교제를 위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지기
D
- 사역할때나 모든일 가운데에서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만 집중하기
- 내 죄 먼저 보기
E
- 이번주일날 가는 해외여행에서 할머니한테 짜증내지 않기를
- 소년부 큐페 끝까지 준비잘할 수 있기를
- 진로방향에 대한 고민 끝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