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7 교훈하는 동안에는
열왕기하 12:1-3
온 성이 평온하게 되면 다 이루었다 하며 영원히 평안하게 살 수 있을까요? 이런 노후를 꿈꾸시죠? 왕창 벌어서 일찍 은퇴하고 여생을 룰루랄라하면서 편하게 사는 꿈 말이에요.
오늘은 모두 대구로 도배를 합니다. 나눔도 그래요. 저번주 옛날 일했던 동료를 만났는데 그 동료는 첫 눈에 반해서 결혼을 해서 다 이룬 것 같았는데 지금 별거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부부 관계가 무미 건조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크면 행복을 찾아서 떠나겠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크게 싸웠어도 목장이 있고 여기에 속해 있는 걸 얘기하니 풀리는 게 있었는데 세상적인 기준과는 다른 저를 느꼈습니다. 첫 눈에 반한 사람도 그것 밖에 안 된다는 게 무서웠어요. 여러분, 교훈을 끝까지 받지 않으면 어떤 곳도, 어떤 것도 이 세상에서 천국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 살면서 교훈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은 교훈을 하고 받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보시겠습니다.
1.믿음의 어머니가 중요합니다.
1 예후의 제칠년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간 통치하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 요아스는 자기 아버지 아하시야, 또 이제 그 외증조할머니 이세벨을 죽였던 예후가 그 열심의 아이콘으로 지금 이제 북쪽이스라엘에서 7년째 통치를 하고 있어요. 그 가운데 남유다에서 일곱살 요아스가 왕이 되었으니까 얼마나 생각만해도 무섭겠습니까. 깨어 있지 않으면 안되겠죠. 그럼에도 그 요아스가 40년간 통치를 했다고 해요. 그 똑똑한 예후는 28년 통치를 했는데, 북이스라엘에서는 장기 집권한 것이지만 또 요아스하고는 비교가 안돼요. 그래요, 요아스는 고아입니다. 아버지 아하시야도, 어머니 시비아도 좋은 추억은 커녕 그 품에 제대로 안겨본 적도 없어요. 지금처럼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던 것도 아니고,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엄마, 아빠의 얼굴. 요아스는 고아 중에서도 부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찐 고아였어요. 외가쪽 뿐만 아니고 이 친가쪽은 또 어떻습니까? 소위 믿음의 나라 유다에서는 여왕 할머니 손에 죽을 뻔 했어요. 그래서 할머니를 피해 성전 골방에 숨어서 자랐습니다. 그러니까 친가, 외가가 모두 이렇게 죽이려고 하고 모두 너무너무 콩가루고, 최고의 불우한 환경이에요. 다윗의 후손이면 뭐하겠습니까? 왕자면 뭐합니까? 그래도 왕가에 태어나서 부럽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 불우한 환경 때문에 요아스가 가장 인생에서 중요한 선물을 받을 수 있었어요. 욕심으로 갖고 싶은 맛단 같은 선물 말고 진짜 선물이요. 저도 생각하면 갓난 아기 때부터 환영받지 못한 출생으로 이 땅에 왔어요. 또 결혼 생활에서 핍박을 하던 그런 남편이 천국 갔기 때문에 '나는 다 끝났다.'가 아니고 이렇게 말씀 사역으로 등극을 했자나요. 아버지가 죽었어도, 할머니가 죽이려해도 그 사건에서 예수 씨를 보면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좀 해요. 대구 사람들은 아멘을 안 해요. 원정 온 사람들만 하는 거야,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딱 맞는 환경을 알맞게 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자고로 전 세계 영웅은 결손 가정에서 나왔다고 그러자나요. 육신의 부모가 살았던 죽었던 육신의 부모를 주 안에서 해석해야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이 되는 줄 믿습니다.
자, 그런데 1절에서 중요한 깨어 있었던 그 중요한 이유인 어머니 이름이 나오네요. 남유다는 요람과 아하스만 제외하고 어머니 이름이 모두 기록돼 있어요. 시비아는 순한 영양, 사슴이라는 뜻으로 맹세의 우물 브엘세바와 잘 어울리는 믿음의 이름으로 보여요. 이곳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던 유서 깊은 곳이었어요. 그런데 요아스 기억에 그런 어머니가 있었을까요? 갓난 아이 때 성전 침실에 감금되다시피 유모와 같이 갇혀 살았자나요. 그런 요아스의 친모 시비아는 아달랴가 손자들을 진멸할 때 같이 죽었거나, 아니면 추방 당했을 거예요. 그러나 시비아가 죽었더나 추방 당했거나 믿음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같이 살아서, 도와줘서가 꼭 믿음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믿음의 엄마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비아는 아주 갓난아기 때 생이별을 했자나요. 여호야다의 이름이 하나님이 다 아신다는 뜻이라고 했자나요.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의 사정을 다 아세요. 동기가 중요해요. 시청 앞 교통 사고도 지금 운전자 미숙인지 급발진인지에 따라 전국의 여론이 달라지자나요. 요아스가 악을 행했는지, 당했는지 하나님은 그것을 잘 아세요.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때 성폭력을 당한 이런 지체들을 하나님이 아주 후대하시는 것을 볼 때가 많아요. 또, 기가 막힌 입에 담기도 싫은 상처를 받은 분들이 우리들교회 와서 말씀이 들리면 그런 분들도 하나님이 후대하시는 것을 또 많이 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다 아세요. 믿음이 최고예요. 저희 엄마도 저를 고아처럼 버려두셨지만 믿음으로 사셨기 때문에 제가 그때 그거 알았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저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거나 안 믿거나 부모들의 수고로 믿게 되었다면 그 부모가 어떤 사람이던 최고의 어머니, 부모인 줄 믿습니다. 그러면 그 여러분들의 믿음은 여러분들의 자녀를 영적 후사로, 또 다른 믿음의 계보로 이어지게 할 줄 믿습니다. 왜 여기 어머니가 중요한가 하면, 어머니들이 흙이 아니고 뼈자나요. 재질이 좋자나요. '영향을 크게 미친다.' 이거예요. '남자들이 아무것도 아니.'라 이거예요. '여자들이 중요하다.' 이거예요. 알았어요? 자,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여러분의 어머니가 세상적으로 좋은 분입니까, 나쁜 분입니까? 여러분은 어머니가 잘해주셔서 주님 만났습니까, 어머니의 방치로 주님 만났습니까? 잘잘못을 떠나 내 어머니로 만나게 하셔서 감사합니까? 예배드리고 큐티하고 목장 나가면 최고의 어머니인 것이 믿어지세요?
2.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를 교훈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 얼마나 유명한 여호야다인지 예레미야 29장 26절에 보면 제사장의 대표 아론보다도 제사장의 대표로 여호야다를 언급하고, 왕이 아닌데도 나중에는 열왕의 묘실에도 묻힌다고 그랬어요. 26 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심은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 나 한 사람 때문에, 여호야다 한 사람 때문에 제사장직이 중요해지는 거예요.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교훈을 잘 받았기에 제사장직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문자적으로 우리 모든 목사님들이 이 구속사의 교훈을 잘 받아서 이런 목사직이 중요하게 되면 좋겠어요. 목사님들 좀 아멘 하세요. 저 때문에 묵상과 가정 중수를 부르짖는 저 같은 사역자가 중요해지는 일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본이되고 잘 살아야 영향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기도해주셔야겠죠.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살렸을 뿐 아니라, 왕이 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 보니까 교훈했어요. 여기서 교훈했다는 것은 율법을 뜻하는 토라와 어근이 같아요. 인간의 경험과 지식이 아니라 율법으로,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쳤다는 거예요. 열왕기에 많은 왕들이 나오죠. 다윗과 솔로몬을 빼고도 남유다 20명, 북이스라엘에 19명의 왕들이 등장해요. 그런데 그 많은 왕 중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았다고 기록된 왕은 요아스 한 사람이에요. 어떤 부모에게 양육받았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는 것이 최고의 선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축복을 요아스가 받은 거예요. 우리는 이제 그 출애굽 후에 양육을 받으면서 가나안 땅에 이제 들어가고, 그리고 이제 사무엘이 왕을 구하지 말라고 이랬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보니까 딴 나라들이 다 왕이 있어. 그러니까 내가 '살려만 주시면 내가 주의 일을 하겠어요.' 이랬는데 살려주시니까 '우리 자식이 공부를 잘 해야 되겠어요.' 공부를 잘 하니까 '취직이 잘 돼야 되겠어요.' 계속 끝이 없이 왕을 구하는 거예요. 하도 떼부리는 왕을 구하니까 11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고 호세아 13장 11절에 있어요. 이 말은 우리들이 그렇게 세상적인 왕을 구하는데 그 왕은 우리 백성의 대표자나요. 그 위치에서 말씀으로 교훈을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말이에요. 요아스 정도의 고난쯤 돼야 말씀이 이제 들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자녀들 이렇게 왕 만들려고 그러시면 안 되는 거예요. 이 달서구는 자녀들을 와 만들려는 교육의 도시 아니겠어요. 여기 온 것이 우연이 아니예요.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있어야 인간 관계가 온전해지는 거예요. 우리 자녀를 이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으면, 이 하나님의 교훈을 받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자식과 진정한 말이 통할 수 없다는 걸 아셔야 돼요. 배우자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예수 안 믿어도 내 자식과 말이 통한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는 유교 나라라서 예수 안 믿어도 효도하면 통한다고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효가 축복받는 근원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요. 효와 믿음은 성품과 믿음의 차이예요. 비교할 수가 없죠. 효도 한다고 예수 안 믿는데 거기 무슨 선한 게 있겠어요. 이슬람 국가에서는 코란에 대한 순종이 축복의 근본이기 때문에 미국과의 전쟁이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그래서 자살 테러를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불교에서는 욕심을 버리는 것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것을 합리화하는 거예요. 이렇게 다 내가복음으로 마음대로 '우리는 통한다.' 이래요. 또 어떤 사람은 모태신앙임에도 남편이 못 나가게 하니까 '시어머니 돌아가신 다음에 교회 나온다.'고 그러는데 그거는 모태신앙일 때 하나님의 교훈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가족의 구원에 대해 깊이 교훈을 받지 못한 거죠.
그러면 교훈을 받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물론 다윗의 등불을 살려 예수 씨를 이어 가시려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이지만, 우리가 인간론의 관점에서 구속사적으로 생각을 해보자고요. 요아스가 찐 고아라고 했는데 다윗, 솔로몬왕까지 41명의 왕 중에 부모 기억조차 없는 고아가 또 누가 있을까 살펴보면 아무도 없어요. 잉런 찐 고아는 한 명도 없어요, 41명 중에. 게다가 요아스는 가장 든든한 백인 왕실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성전 골방에 숨어서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고모부 여호야다밖에 없는데, 그러니까 그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처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환경이 최고의 축복이겠죠. 요아스가 말씀으로 교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니까 좋은 환경도 아니고, 좋은 성품도 아니고, 좋은 머리도 아니예요. 찐 고아라는 비참한 상황이 이 숨어 지내야 했던 불우한 처지가 요아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통로가 된 거예요. 거기서 최고의 스승인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게 하셨네요. 그러니까 이 찐 고아처럼 축복이 없는 거죠. 정말 고난이 축복이죠. 그래서 고난 속에서 자랐지만 말씀으로 교훈을 받으니 요아스는 그 모든 날 동안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구부러지지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바른 길로 행했다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았답니다. '네 마음도 진실하냐?' 기억하시죠. 똑같은 말이에요.
하지만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는 달라졌어요. 이제 다음에 보겠어요. 엄청난 은혜를 경험한 요아스도 후에 여호야다의 교훈을 안 받으니까 스스로 정직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사람이 깊어지는 것은 이제 묵상하는 것 밖에 없는데, 왜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만큼 교훈받고 깊어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자립 신앙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깊어지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죄성을 그만큼 보게 된다는 거예요. 자기 자신의 죄성을 보는 사람이 어떻게 누구하고 싸우겠어요.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 '나는 이것 때문에 어쩔 수 없어.'라고 탓하고 원망하는 환경은 무엇입니까? 그 약함을 통해 말씀의 교훈을 받았습니까? 지금이라도 누군가 살아있는 동안 교훈을 받고자 결단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실제적으로 각종 양육, 훈련을 받으시겠습니까?
3.여전히 산당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3 다만 산당들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있네요.
40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으면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자나요. 그런데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가 요아스의 결론이고 유다 모든 왕들의 결론이에요. 예후는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요아스는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니까 누가 옳은 거예요. 백성들이 산당 예배를 드리네요. 참,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가 어려운데요. 이게 이제 우리 모습이에요. 우리가 죄 공장 공장장이고 우상 공장 공장장이기 때문에.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 예후처럼 능력자가 되었든, 불우한 환경에서 겨우 살아남아 요아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되었든 절대로, 전심으로 충성하기가 이렇게 어렵네요. 따라서 우리가 여전히 하는 일은 그냥 기복적으로 산당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자기 행복만을 위해서 사는 거예요. 교회나가면 서도 행복, 그러니까 내가 싫으면 이혼, 여기하면 뭐 하고, 내 마음대로 사는 거예요. 성경의 저자가 이렇게 쓰는 건, 아무리 그 사람이 정치를 잘 하고 대단한 치적이 있어도 그냥 인간의 힘으로 한 것은 기록을 안 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한 것만 기록이 됩니다. 요아스도 40년 통치의 한 줄 기록이 산당 예배를 폐하지 못해요. 그리고 이제 성전 수리한 거 다음 주일에 나오는데요. 우리도 마찬가지인데요. 내가 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아무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해도 내가제거하지 못하는 산당 때문에 백성들이 다 따라하는 거예요. 내가 산당을 제거하지 못하니까 성도들이 다 따라하고, 입으로 아무리 정직히 행하면 뭐하겠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부모들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고 날마다 아이들 보고 '정직히 행해라.' 그래도, 큐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집에서는 다 아이들이 따라서 산당 예배를 드리는 거예요.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따라하고, 집에서는 아이들이 따라하고, 나라에서는 백성들이 따라하고. 한 나라의 지도자, 한 교회의 지도자, 한 가정의 세대주 너무너무 중요한 거예요. 누구 탓이 아닌 거예요. 입으로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 따라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하나님은 유다에게는 다윗의 등불을 허락해주셔서 약하게 해주셨어요. 그러므로 지금 이제 그 요아스의 그 선대, 여호람이 8년 통치했고, 아하시야가 1년 통치했고, 아달랴가 6년을 통치한 그 악정이 굉장히 오래된 거 같자나, 성경의 지면을 많이 할애해 가지고. 그런데 이제 유다의 선왕들 여호사밧이나 아사 등의 재임 기간과 이 요아스의 40년에 비하면 이 세 왕의 15년이라는 건 굉장히 짧은 세월이죠. 사단이 나를 괴롭히는 건 아주 짧아요, 오랜 건 같아도. 그런데 성경에 할애한 페이지가 많으니까, 사단과의 싸움을 많이 한 사람은 간증할 게 많은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러자나요. '내가 예수 믿고 나는 평생 매 맞고 살았어요.' 그런데 하루에 1초씩 맞는 거죠. 평생을 맞아도 하루가 안 되죠. 그런데 우리의 주제가는 '평생 매 맞고 살았어.', '평생 무시 받고 살았어.' 그렇게 과장되게 하는 거예요. 사탄과의 전쟁을 아주 길게 길게, 우리가 인생이 사탄과의 싸움이자나요.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 같아도 북이스라엘의 그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섬기는 죄와 남유다의 산당의 죄는 다른 거예요. 악하고 연약하고의 차이예요. 우리가 예수 믿고 은혜 받아도, 날마다 받아요. 기도하고 간증하고 성경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못 떠나는 죄가 있어요. 연약해서 우리가 분별이 잘 안돼요. 그럼에도 제거하지 못한 산당 예배를 드린 유다의 왕들은 그래도 다는 아니더라도 거의 다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갔더라고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요아스가 왕위에 올라서 40년 치리를 했자나요. 그런데 이제 바알신을 섬기는 금송아지를 가져와서 남북에 퍼뜨린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 있다고 했자나요. 그런데 거슬러 올라가면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했어요. 하나님을 반역하고 떠났자나요. 그 북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떠나서 반역을 한 지파자나요. 그런데 반역하고 떠났더니 가인이 필요한 게 그렇게 많아요. 그래서 그의 후예에게서 육축의 조상, 풍악의 조상, 그 '뮤직 큐.'하는 게 다 가인의 조상. 기계, 문명의 조상, 이게 인공지능과 이거 모두 있자나요. 조상이 다 나왔어요. 그런데 결론이 그 많은 것을 가지고 좋은데 쓰는 게 아니라 살인하고 여자 얻어들이는데 쓴다고 이미 창세기 4장에 그게 나왔어요. 그런데 그에 비해 창세기 5장에 아담의 아들 셋의 계보에서는 연약해도 예수님이 오시는데요.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이 있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거기 이제 그 아벨의 후손으로 셋의 후손이 나오는데 이 셋의 후손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고, 예를 들어 계보에 '969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죽었더라.' 밖에 없어요. 아주 심플 라이프예요. 여러분들 예수 믿는 사람은 정말 단순하게 살아요. 정말 지나고보면 참 단순해졌어요, 저도. 그런데 단순해지는 것만큼 지경이 더 넓어졌어요. 여러분들의 삶을 자꾸 심플하게 가지치기를 해가면 하나님이 그걸 참 기뻐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산당을 다 제거하지는 못해요. 그런데 말씀을 보는 것만큼 제거하려고 하다보니까 지경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주셨어요. 그러니까 믿음의 사람들도 그렇고, 유다의 왕들도 그렇고, 이렇게 선한 믿음의 사람들이 다 심플하게 살다보니까 어느 날 가인의 후예들이 에덴 동편 놋 땅에서 '우리는 믿음이 최고야.' 이러고 사는데 쫓겨나간 놋 땅에서 풍악을 울리고, 기계 문명에, 송아지 스테이크를 썰고 먹고 이런 걸 보니까 갑자기 너무 새롭고 부러운 거예요. '믿음의 4대손까지 가면 조상의 기도로 먹고 산다.' 이런 말은 하지만 그딴 게 하나도 안 보이고 그냥 부러워. 아이들이 서울 대학 갔다고 그러면 그냥 부러워. '우리 애들은 왜 못 가나.' '자식은 배반 당하기 위해서 키운다고 그러는데 그런 거는 목사님이나 배반 당하시오.'이러고 올렸더라고 누가 나눔을. '아니, 목사님은 아들, 딸은 다, 며느리, 사위 다 얻었자나요.' 뭐 이러면서, 전혀 믿음으로 하는 나눔은 아니라고 이러면서, 그러니까 부러운 거야. 뭔가 자꾸 비교해. '나도 애들 결혼 얘기만 나오면 위축이 된다.' 뭐 이렇게 초원님도 했는데. 부러워, 그렇죠? 세상을 보면 자꾸 부러워. 이런 게 산당 예배예요. 다윗 할아버지가 고난을 통해서 유다 왕국인데, 자기가 고난을 통해 쟁취한 게 아니기 때문에. 유다는 솔로몬부터 25년간은 성전 열심히 짓다가 15년은 열심히 타락합니다. 르호보암은 17년간 타락했어요. 그래도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이 다른 것은 이스라엘은 아예 처음부터 타락했어요, 북이스라엘 왕들은. 그러니까 내가 제하지 못하는 것이 여로보암의 길인지 산당인지, 그래도 제하지 못한 산당은 예수님의 계보로 갔는데 여로보암의 길은 영원히 망했자나요, 그렇죠?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예수 씨를 떠나 반역해서 세운 나라기 때문에 거기는 믿음이 아니고 능력대로 되는 나라예요. 그러니까 능력대로 되니까 오죽하면 정변이 9번이나 더 일어났어요. 여러분들이 그 능력대로 살면 이혼도 몇 번이나 하는 거야. 능력대로 사는 게 아니라고요. 이 세상의 지옥은 능력을 인정하는 집이고, 사회고, 능력대로 일꾼을 뽑는 교회인 거예요. 왜냐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반역하고 나간 요셉의 후손이 상아궁 짓고 너무 잘 사는 거예요. 지금도 개혁의 아이콘 예후와 7살 요아스는 비교가 안 되자나요. 그런데 인간의 세속사는 능력 있는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죽이는 거예요. 여러분 같으면 7살 요아스 교회에 가겠어요, 멋있는 예후 교회에 가겠어요. 요아스 목사님을 따르겠어요, 예후 목사님을 따르겠어요. 그러니까 예후가 너무 좋으니까, 이스라엘이 너무 좋으니까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의 아합에게 줄 서서 결혼 동맹을 맺었자나요. 우리는 산수갑산을 가도 재벌하고 한 번 결혼을 하고 싶어. 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죠? 부부간에도 부인이 돈을 더 잘 벌고 능력이 있어서 '내가 돈 많이 버니까 당신은 밥이나 해라.' 물론 밥 할 수 있지만 이 능력으로 서열이 바뀌면 그게 지옥인 거예요. 남편의 질서를 안 세워주는 집은 그게 지옥인 거예요. 아이들한테 최악의 가정을 보여주는 거예요. 능력이 있어서 학원 보내고 그딴 짓 백 번해도 남편을 우습게 여기는 집은 이제 아이들에 나중에 통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고난을 겪어야 이 질서가 세워지더라고요. 정말 그걸 잘 지키는 집, 또 십자가를 통과 해야지 그게 되는 거지. 직장에서도 상사보다 훨씬 똑똑한 부하가 상사를 우습게 보고 날마다 반역하고 그러면 그곳이 지옥이에요. 북이스라엘이 지옥이고 결국 망했자나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니까 우리가 할 말이 없는 거예요. 이 구속사, 이거예요.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영원히 지구상에서 엎어진 나라가 되었어요. 여러분, 연약해도 남유다 나라는 한 번도 정권이 안 바뀌었어요. 이것이 예수 씨예요. 이게 능력이 있는 거예요. 아무리 요아스가 7살이라도, 여호야다는 90살이 넘었어도 고목 나무에 싹이 난다고 이 할아버지가 예수 씨를 보았고, 그가 세운 요아스는 너무 연약했지만 그를 알아봤어요. 그래서 그의 교훈을 들었어요.우리의 자녀, 배우자를 고를 때에도, 그래서 예수 씨를 봐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외모와 능력과 스펙만 보았다가는 이제 우리나라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 거예요. 능력대로 완전히 지역 감정, 진영 논리 최고봉인 나라가 됐어요. 그런데 능력 있는 아내가 이제 역할에 순종하면 그 남편에게 질서를 지키면 그 집에서는 영적 후사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의 결혼을 해야 되는 게 앞으로 밑지는 거 같아도 뒤로 갈 수록 남는 게 있는 줄 믿습니다. 대화를 하고 돈 잘 벌고 그런 남편 지금은 존경하기 쉽죠. 능력을 보여주기 쉽죠. 그런데 그렇지 못할 때 십자가를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후손을 얻는 비결이에요. 아무 것도 없고 병들고 힘들어도 믿는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귀하게 여김 받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학벌, 지위, 재산, 능력으로 서열을 매기기 시작하면 그게 이미 지옥이에요. 그러므로 유다는 은혜라는 말을 쓸 수 있는 나라이고 북이스라엘은 자기가 확신 있게 죄 짓는 나라인 거예요. 그러면서 지금 다 너무나 잘나서 죄 가운데 있으니까 자꾸 '왜 자꾸 우리들교회는 죄 얘기를 하는 거야. 이단 아냐?' 이러면서 다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못했다고 나오는 거예요. 자, 무슨 차이예요? 우리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끌고 가시고, 우리가 아무리 선해 보여도, 행위가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하나님 앞에 간절하지 않으면 그걸 하나님이 다 아시는 거예요.
산당은 높은 산에 세운 제단인데요. 대놓고 우상 숭배를 했던 곳이 아니예요. 기브온 산당 기억하시죠. 솔로몬이 1천 번제를 드렸던 곳이에요. 그런데 그때는 언약궤가 없었기 때문에 잠시 허용했는데 언약궤를 가져오고 성전이 세워지고 그러면 산당 예배를 폐해야 하는데 그동안의 전통 때문에 폐하지를 못한 거예요. 이것이 지도자의 문제인데요. 다윗도 그것을 폐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의 교훈에 따르지 않은 거죠. 그러니까 지금 금송아지 섬겨 놓고 예루살렘이라고 그러는 거나, 지금 여기서 남유다에서도 에루살렘을 안 가고 그저 편하게 예배하려고, 내가 원하는 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때에 하나님께 구하려고 편의 시설이 산당인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아무리 그래도 현장 예배 와서 드려야 되는 거예요. 고생이죠. 그걸 고생이라고 생각하니까 여러분들의 고난이 아직 양에 못 차는 거죠. 그런데 그 바탕은 우상에게 '비나이다, 비나이다.'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유다에서는 산당을 훼파하려고 했던 사람이 그래도 두, 세 사람 있는데 이스라엘은 한 명도 없는 거예요. 그래도 우리 조상 중에 살아보려고 애 쓰는 사람이 몇 명 있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믿음의 자손으로 이끌어 주시는 게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산당 예배는 뿌리 깊은 기복신앙인데요.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도 맨날 기도하면서 이게 기복의 기도인지 팔복의 기도인지 우리도 헷갈려요, 그렇죠? 좀 웃어요. 그러므로 오늘도 성령님께 의지하여 주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공감을 해야 되자나요. 남이 말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기분이 확 나쁘자나요. 죄인된 우리 삶을 계속해서 구원해가시는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을 해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요? 큐티하면서, 말씀 묵상하고 적용하면서 내가 제하지 못하는 산당도 자꾸 묵상해가다보면 조금씩 깨달아지고 깊이 내 죄를 보면서 제거해야 되니까 하나님 자체가 소망이 돼야 되는 거예요. 인생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 뿐이에요.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구원인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예배의 은혜를 받음에도 끊임없이 바라는 기복의 산당 예배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요? 입시, 입사, 건강, 물질 등에서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시나요?
기도제목
희연
1.엄마 손가락 인대, 속히 회복되도록(재활치료)
2.언니, 형부 비행하는데 보호해 주시도록
3.조카들 건강하게 성장하고, 둘째 조카 갑상선 회복되도록
4.오늘 병원 진료 갑니다. 신장 수치 잘 나오고, 이식받은 신장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5.언니랑 베트남 여행 조심히 잘 다녀오도록
정아
1.목장 올 수 있는 영육의 회복 허락 하시고, 병원 가는 적용과, 불안한 마음이 안정되도록
아람
1.나의 영육의 성전 돌보기 0 순위 사수 (엄마, 조카, 동생 묵상 X, 예배 목장 큐티 O)
2.조카에게 교회, 학교 참석 못하면 같이 지낼 수 없다고 확실하게 전하는 냉철한 사랑과 생명 살리는 적용하도록)
3.엄마와 일할 때 (예스, 노, 땡큐)만 반응만 하고, 공기+바람 되는 연습하기
크리스틴
1.Resume/CV 잘 준비 하고, 다윗의 등불따라 어디로 가던지 주님이 나와 동행하는 것 경험하기
예선
1.동생 병원 가는데, 알맞은 치료 받고 사역지가 우리들 교회로 옮겨지도록
2.8월에 새 직원 오는데, 뭘 하던지 두고 지켜 보도록
3.울산 출장 영육 보호해주시고, 소풍같이 느껴지도록, 안식 누리도록
4.해외 프로젝트 및 회사를 향한 열심을 빼고, 하루만 살고, 처소를 지키도록
은우
1.영육회복 위해 경계를 잘 세우도록
2.성공우상의 산당을 뽑고 말씀으로 채워지는 (하루살이) 적용 잘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