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6.30. <온 성이 평온하더라>
본문 왕하 11:13-21
- 김양재 담임 목사님
지난 주 태국 사역을 다녀왔습니다. 태국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인데, 돈이 많으니 왕권도 강합니다. 그러나 강한만큼 질서가 잡혀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모계사회가 가정의 질서가 바로 잡혀있지 않고 성 정체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온 성이 평안해서 구원의 즐거움을 누려야겠습니다.
1. 진정한 반역을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13절) 하나 남은 왕의 씨 요아스는 6년간 숨어있다 왕위에 올랐습니다. 일이 되게 하기 위해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입니다. 그래서 나의 혈기로 그르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만세 소리를 들으니 아달랴가 놀랐습니다. 그런데 만세 소리가 나는 곳이 여호와의 성전이었습니다. 바알 숭배자인 아달랴가 무시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싫어도 성전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자기가 없는 곳에서 만세를 외치니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들어가서 보니 아달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이 왕이었습니다. 어린 왕 곁에 나팔수가 둘러 서있고 백성들이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속이 뒤집혀 옷을 찢고 반역이로다 소리를 외칩니다. 다들 즐거워하는데 아달랴는 반역이라는 말만 외칩니다. 온 국민이 즐거워하는 반역입니다. 그런데 나만 반역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나만 좀 틀리지 않았나 생각해봐야 합니다.
(14-16절) 여호야다는 하나님의 법을 끝까지 지킵니다. 성전에서는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급하게 내 혈기로 사람을 난도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달랴 보다 아달랴를 따르는 자부터 먼저 죽이라 합니다. 항상 예수 믿는 사람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합니다.
군사들이 아달랴를 잡고 끌고 갑니다. 그리고 말이 다니는 곳에서 처형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달랴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지 못하다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달랴는 반역의 소리를 듣고 서야 성전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성전의 즐거움에 녹아들지 못하고 반역이라 외칩니다.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 온 성이 평안해도 혼자 속이 시끄럽습니다.
아달랴는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되는데 7살 요아스 왕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것이 진짜인데도 모릅니다. 이것이 슬픔이고 비극입니다. 이런 아달랴를 처형해햐 하는데 이게 잔인하다고 여기면 안됩니다.
6년을 순종했어도 7년째에는 반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큐티하는 사람의 맹점이 교양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교양이 남들을 찌르는 칼이 되고 모든 것을 순종으로 이끌어가며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없어집니다.
# 여러분은 순종 자체가 우상입니까?
# 때가 차매 구원을 위해 반역도 할 수 있나요?
# 여러분은 예배의 자리가 즐겁고 목장이 기다려집니까? 아니면 늘 목장에서 즐거움에 녹아들지 못하고 반역이로다를 외치고 있습니까?
2. 언약을 세워야 합니다.
(17절) 부부 싸움은 둘이서 할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나와서 산을 보고 하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장이 있기에 목장에 가서 싸워야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주례없이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증인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 바람 피우는 남편vs 쪼잔한 남편
아달랴처럼 완벽한 사람은 성전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스펙좋고 돈 많으면 사단의 괴수일 확률이 너무나 높습니다. 특별한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돈이 우상이 됩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나면 어떤 사람이던 하나님의 훈련으로 받아야 합니다. 아끼는 훈련, 안쓰는 훈련 다 필요합니다.
언약을 세워야 집안과 교회와 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언약의 중재자 하나님을 재끼고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보는 환상적인 결혼을 하더라도 언약을 세우지 않았기에 의미가 없습니다.
(18절) 언약을 세우면 온 국민이 바알의 신당을 부십니다. 자발적으로 부십니다. 자립신앙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아달랴가 없어진 것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아달랴의 죽음 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섬기던 우상을 철저히 부수고 가야 합니다. 내가 구원보다 위에 두는 모든 것이 내가 섬긴 우상입니다. 또 맛단을 죽여야 하는데, 맛단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맛단도 사랑받았을 것입니다. 우상은 철저히 죽이는 것은 결국 보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우리 안의 욕심을 죽이는 것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더디더라도 말씀을 넣어줘야 합니다.
우리는 우상공장공장장이기에 우리 안의 욕심을 계속해서 죽이고 가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인식을 해야 인간이 만든 우상을 없앨 수 있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구속사적인 큐티가 창조를 이루고 가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 어떤 선물이 제일 좋습니까? 어떤 선물에 마음을 쉽게 빼앗깁니까?
# 하나님이 맺어주신 구원의 언약이 그 선물보다 좋습니까? 못합니까?
# 내가 깨뜨리기 너무 어려운 우상은 무엇입니까?
3. 내 역할에 충성해야 합니다.
(18~21절) 다윗의 후손이 왕의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가정마다 왕좌에 앉아있는 아달랴가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그들을 끌어내지 못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허수아비에 불구합니다. 그를 미워하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와 사단에 의해 움직이는 비참한 노예일 뿐입니다. 휘두르는 사람이나 그 밑에서 미워하는 사람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지옥같은 집구석을 회복시킬 길은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것말고는 없습니다. 나 혼자 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수고해야 합니다. 그러니 성중이 평안해 집니다.
한 사람 여호야다 때문에 온 성중이 평안해집니다. 말씀듣는 여러분 한 사람으로 인해 온 가정이 평안해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일곱살 요아스와 아흔살 여호야다의 연약한 자로 온 성을 평온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요아스가 왕이 된 것은 다윗이 씨 예수의 씨가 회복된 일입니다. 예수님이 오지 못하실뻔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가 회복된 결과를 말합니다. 평온하다는 말이 한번만 나오는데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시아버지와 동침한 며느리를 옳다고 했던 유다가 요셉보다 평온한 것입니다. 요아스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가 왕의 씨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일이 회복된 것이었습니다.
# 우리 가정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 가정과 교회에서 주님이 내게 맡기신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 역할에 얼마나 충성하고 있습니까?
# 7살 요아스를예수씨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 부도, 음란, 숱한 중독에서 돌아온 자가 믿음을 고백하면
아멘으로 영접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