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30 온 성이 평온하더라
열왕기하 11:13-21
지난주 태국 사역을 다녀왔습니다. 태국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인데요. 태국 왕이 세계 최고 부자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그 왕권이 그만큼 아주 강하겠죠. 그러나 강한 만큼 질서가 딱 잡혀 있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사회적으로는 또 모계 사회여서 가정의 질서가 잘 서 있지를 않더라고요. 성 정체성도 가장 혼란한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도 구속사의 복음의 씨앗이 많이 많이 뿌려져야 하겠습니다. 왕의 씨를 알아보고 잘 숨어서 지키다가, 왕의 만세를 부르다가 신난다고 그냥 오버해가지고 기복으로 멀리 멀리 떠나면 안되겠죠. 오늘 말씀처럼 온 성이 평온해서 구원의 즐거움을 누려야겠습니다. 그래서 온 성이 평온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좀 THINK를 해보겠습니다.
1.진정한 반역을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13 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백성에게 이르러 14 보매 왕이 규례대로 단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셔 섰으며 온 백성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 13절, 14절입니다.
자, 하나 남은 왕의 씨 요아스는 6년 동안 숨어 있다가 왕위에 올랐어요. 여호야다는 제사장으로서 아달랴가 다윗 왕가의 자손들을 다 죽이고 왕이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그때 바로 반기를 들고 싸웠을 수도 있자나요. 그랬다면 살기등등했던 아달랴에 의해서 요아스도 죽었을 거고 여호야다와 여호세바도 모두 죽임을 당했을 것이에요. 그래서 십자가는 지혜고, 지혜는 타이밍인 거예요. 나의 혈기로 일을 그르치면 안됩니다. 우리 수요 예배에 설교하셨던 초원님은 항상 웃었기에 그게 성품이었어도 손해본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여러분, 제발 좀 웃으세요. 아주 여러분들 화내서 무서워 죽겠네. 좀 정말 웃으세요. 드디어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쳤어요. '만세, 만세. 요아스 왕 만세.' 박수를 치며 외쳤습니다. 이 만세 소리가 아달랴에게 들렸습니다. 아달랴가 깜짝 놀라서 '만세? 만세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당장 달려나갔습니다. 그런데 만세 소리가 나는 곳이 여호와의 성전인 거예요. 바알 숭배자 아달랴가 가기도, 보기도 싫어하고 무시하는 장소인 거예요. 아달랴에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바알의 집이 있자나요. 그러니 여호와의 집에는 평소 들어갈 일도, 들어갈 필요도, 들어갈 마음도 없었어요. 우리들교회를 유난히 싫어하는 사람 중에도 이런 바알 숭배자들이 있을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 성전에 들어가야만 했어요. 지금 이 나라의 왕은 자기자나요. 그런데 자기 없이 성전에서 왕의 만세를 시끄럽게 외치니까 무시하고 자니칠 수가 없었던 거예요. 들어갔더니 기가 막힌 장면이 펼쳐집니다. 예상대로 사람들이 성전 한 가득 모여 있어요. 그런데 아달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이 누구입니까. 왕이에요. 그것도 7살짜리 꼬마인 거예요. 머리보다도 한참 큰 왕관을 쓰고 있어요. 그런데 이 할머니가 손자를 보고 '저게 도대체 누구지?' 이런 거죠, 지금. 그 꼬마 곁을 장관들과 나팔수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그리고 온 백성이 그 앞에 있는데요. 백성들이 박수치고 만세부르고 아주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한 단어로 '즐거워한다'고 말해요. 아달랴는 이렇게 멀리서 듣던 소리를 현장에 와서 눈으로 직접 봅니다. 그러자 속이 뒤집혔어요.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올라와서 옷을 박박 찢었습니다. 체면 같은 것은 지금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는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소리를 지릅니다. 전도 대회 와서 다들 즐거워하는데 혼자만 반역이로다를 외친 분이 혹시 계세요? 아달랴가 반역을 외치는데 온 국민은 그 반역을 즐거워해요. 그러니까 서로가 반역이라고 하는데 반역이 일어날 때는 대부분은 깨어지고 갈라지고 하는데 이 반역은 온 국민이 즐거워하는 반역이라고 하세요. 그런데 아달랴 혼자만 괴롭고 분이 나는 거예요. 그러면 모두 다 즐거워하는데 나만 반역이라고 생각하는 게 없을까요? 나만 부들부들 떨고 있다면 그건 내가 좀 틀린 게 아닌가 생각을 좀 해볼 수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이 아달랴를 여호야다가 그대로 놔두지 않아요.
15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대열 밖으로 몰아내라 그를 따르는 자는 모두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그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16 이에 그의 길을 열어 주매 그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 15절, 16절입니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다가 이제 지금 여호야다가 분연히 일어날 때인데, 그래도 이 반역의 개혁을 하면서 하나님의 법을 끝까지 지킵니다. 성전에서는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거예요. 아달랴는 이 성전에서 죽을 자격도 없어요. 급하게 내 혈기로 사람을 난도질하면 안되고 아달랴보다는 그를 따르는 자를 먼저 죽이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괴수부터, 어떤 때는 졸개부터 죽여야 할 때가 달라요. 항상 예수 믿는 사람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데요. 16절에 그의 길을 열어 주매라고 했는데요. 원어를 그대로 옮기면 '그를 손으로 잡고'예요. 군사들이 아달랴를 체포해서 끌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에서 처형을 합니다. 왕실 마굿간 길 앞에서 죽었다는 거예요. 아니, 왕궁의 말이라고 해도 말은 말이죠. 냄새나고 지저분한 우리입니다. 사실 수치스러운 처형을 당했지만, 어쨋든 그 당시 교통수단이 말이자나요, 그렇죠? 아달랴도 성전은 걸어서 들어가야 됐는데, 뭐 끌고 가기도 했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벤츠 타고 성전에서 못 죽고 마문에서 죽었네요. 뭔 말인지 하나도 몰라요? 들어두세요, 그냥. 아달랴는 자신이 유다 땅의 주인이요, 솔로몬 왕궁의 임자라고 여겼어요. 하지만 그 자리는 그의 것이 아니었어요. 그는 왕의 씨가 아니었어요.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말이 다니는 길이었어요. 칼이 번쩍이는 처형장이 아합의 집의 마지막 남은 한 명인 아달랴가 있어야 할 자리였어요. 아합 가문이 이제 싹쓸이해서 아달랴만 죽으면 이제 끝나는 거예요, 이 사단의 괴수가 이제 마지막 유다까지 와서 유다를 멸망시키려고 했는데.
아달랴는 왜 이처럼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몰라서 회개도 안하고 오히려 왕의 씨를 진멸하는 악을 저지르다가 비참한 죽음을 당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정말 뜨겁게 사모했어요. 어디를 봐도 하나님을 사모했기 때문인데요. 아달랴는 예수 믿는 이 나라에서 다윗과 정반대인 거예요. 자기에게 반기를 든 반역의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성전 안에 들어가요. 그런데 성전의 가득한 즐거움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는 거예요. 오히려 그 즐거움을 반역이라고 소리치는 거예요. 성전과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성전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들과 전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온 속이 평온할 때도 혼자 속이 시끄러워서 괴로워요. 지금 이 순간이라도 회개하면 되는데 요아스를 못 알아봐요. 요아스를 무시하고 있어요. 이것이 슬픔이고 비극입니다. 마지막까지 기회를 줬지만 이 아달랴를 이제는 처형을 해야 되는 거예요. 이럴 때 '잔인하다.' 구속사가 안 들리면 '어떻게 죽이라고 그러지, 제사장이.' 이러면서 그러면 안됩니다. 이게 말씀이 안 들리는 거예요. 무서워서 6년을 잘 순종하지만 7년째에는 아달랴를 반역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큐티하는 사람들의 그 맹점이 구속사를 듣기만 하면 갑자기 내가 아주 그 말씀으로 교양이 있어 보이는 거죠. 그런데 잘못하면 믿음 없이, 구원의 확신 없이 교양 타령하다가 이게 말씀의 칼이 되서 남들을 찌르게 되고 반대로 '우리는 순종해야 돼. 질서에 대한 순종'이러면서, 또 배우자에게 순종, 순종해서 적극적으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을 수 있어요. 이렇게 6년이 지나고 7년만에 여호야다처럼 이런 반역도 할 수 있어야 돼요. 평생 예수 믿으면서 이런 혈전이 없으면 내가 적용을 하나도 안 한다는 뜻이에요. 제가 하늘이 열리고 남편이나 시댁에'네네네네'하다가, 그게 구원 때문에 순종한 거지 내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면 여러분들이 이런 반역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예수를 믿고 나니까 이렇게 큰 소리 쳤어요. '내가 장로 집에 시집을 왔는데 왜 교회를 못 가냐.' 그리고 '이제부터 교회를 가겠다.' 그리고 이제 나한테 뭐라고 그러면 '내가 당신이 교회를 안 가면 이제 나는 이혼이다.' 그러니 뭘 잘못 먹었나. 그러니까 '네네네네'하는 거는 구원 때문에 하는 거. 그래서 나한테 잘못을 했을 때 성경책에다가 '교회를 가겠음.'하고 우리 남편이 이름을 딱 썼어요, 성경책에다가. '빨리 싸인하라.'고 '이거 안 하면 내가 이혼.', 옛날에는 이혼 할까봐 덜덜덜덜 떨다가 '교회 안 가면 이혼이야.' 이게 진정한 반역이에요, 아셨어요? 그러니까 저에게는 이런 적용이, 그래서 남편이 이제 구원됐자나요. 그리고 이 무서운 적용이 큐티 선교회나 교회라고 할 수 있어요. 왜냐면 이거 너무 안 하고 싶은데, 적용 때문에 하는 건데 세속사로 생각하면 제가 교회를 왜 하고 싶겠어요. 큐티 선교회 창립하는 날 본문이 엘리 제사장이 목이 부러져서 죽었대요. 그런데 그거는 이제 어린 사무엘이 등극하니까 '사무엘아, 사무엘아 니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자나요. 말씀 시대가 도립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아무리 개떡같은 본문이 나와도 우리 구속사는 찰떡같이 해석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큐티를 하면서 어떤 본문도 나에게 나쁜 본문은 없어요. 여리고 기생 라합처럼 내가 개혁의 길목을 열겠다고 개척의 변을 놓고 교회를 개척했는데요. 그거는 이제 6년을 숨죽이고 있다가 온 백성이 즐거워한다고 했는데 저한테도 가리 공동체, 호위병 공동체 좀 생긴 것 같은, 말씀의 공감대가 생겨서 개척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남편과 같이 살 때는 할 수 있는 일도 다 남편 뒤에 숨어가지고 '못해요, 우리 남편 때문에 못해요.' 리랬는데 내가 혼자가 되니까 이제 나한테 책임을 물으시자나요. '평신도가 이만하면 됐지, 뭘 더해요.' 할 수 있었지만 그게 여호야다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저한테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그러니까 저한테 이런 사명이 막 용 솟음 치고, 제 간증 한 번 하면 전부 다 예수를 믿고 이혼을 안 하니까 하나님 100% 옳으세요.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볼 때 진정한 반역인 개혁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진정한 반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성전에서 지체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목장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목장에서 지체의 나눔을 듣고 나눔을 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은 진정한 반역이 무엇인지 알고 구원 때문에, 그러니까 맨날 순종한다고 교회 오라고 하나도 못하고, 어떤 얘기도 '우리 시댁은 안돼. 우리 시댁은 돌아가신 그 다음에 교회를 나온다.'든지. 그러니까 이거를 우리가 이제 공동체에서 진정한 반역을 할 수 있도록 적용을 알려주고 서로 할 때 온 성이 평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무서운, 여호야다가 이 아달랴를 죽여야 되는데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예요. 그래서 이제 저 한 사람이 이거 적용을 해서 큐티 선교회를 하고 교회를 개척해서 여러분의 가정이 평온해진 집이 너무 많자나요. 그러니까 여러분 한 사람도 다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세워진 큐티 선교회나 우리들교회는 하고 보니까 저는 이 세상에서 이처럼 좋은 곳이 없는 것 같아요. 교회 올 때마다 설레고, 도피성이고, 안식처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예배 드리는 분은 이렇게 하면서 도피성이 되는 게 아니예요. 이게 너무 설렘인데, 아니 애인을 만나도 이렇게 설레고 만나러 나와야 되자나요. 저는 그냥 이 교회를 하면서 하루도 그런 마음을 안 가진 적이 없어요. '어떻게 자기 교회를 저렇게 자랑을 하나.' 그런데 그런 차원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이 교회를 좋아하는 거는. 얼마나 힘들게 힘들게 적용을 놓고 이리로 왔기 때문에.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 여러분은 순종 자체가 우상입니까? 때가 차매 구원을 위해 반역도 할 수 있나요? 여러분은 예배의 자리가 즐겁고 목장이 기다려집니까? 아니면 늘 목장에서 즐거움에 녹아들지 못하고 반역이로다를 외치고 있습니까?
2.언약을 세워야 합니다.
17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 17절이에요.
여호야다가 처음 한 일은 이제 반역을 해서 개혁으로 세워졌으니 세워질 때도 왕도 백성도 다 하나님과 언약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해야 이 관계가 잘 갑니다.
결혼할 때도 신랑도, 신부도 하나님과 언약하고 이 둘 사이에 하나님이 삼자로 계셔야되는 거예요. 둘만 언약하면 뒤뚱뒤뚱 할 수 밖에 없어요.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삼각형의 안정적인 관계가 됩니다. 부부싸움도 방구석에서 둘이 쳐다보고 절대로 싸우면 안돼요. 정 싸우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산을 보고 싸워요. 그러면 삼각형이 되자나요. 그 증인이 있자나요. 믿음이 없는 사람도 싸우려면 밖에 나가서 산을 보고 싸워요. 우리는 목장이 있자나요, 그렇죠? 제가 예전에 장로님 아들의 재혼을 주례를 했는데, 장로님 아들인데도 재혼하면서 또 안 믿는 색시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결혼하려면 세례를 받아야 된다고. 그런데 제가 그날 강조한 것이 '신랑, 신부가 서로가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가 될 때 부부가 온전해지는 거지. 그런데 실패했는데 이제 또 실패하면 어떻게 하려고 이제 또 안 믿는 사람이랑 하냐.' 그러면서 그 유명한 그 당시 최진실, 조성민이 사랑 고백을 했던 것을 읽어줬어요. 세상에 그렇게 감사장을 쓰고 '내 남편 영원히 사랑해요.'하면서 고백을 했는데, 여러분, 그러니까 사람의 사랑 고백은 사실 믿을 게 못 되는 거예요. 내가 수십 년의 상담의 통계를 알려드린다면 남편이 그렇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바람을 다 피우더라고요.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면 바람은 안 피우대요, 저희 남편. 그러면 여러분은 '나는 바람을 피워도 그 사랑 고백은 한 번 받고 죽겠어.' 참 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드라마를 보니까 남편이 얼마나 쪼잔한지 바람은 안 피우지만 휴지를 사면 '휴지를 왜 사냐.'고 '내가 회사에서 가져올 건데.'그러면서 회사에서 휴지 훔쳐오고, 뭐든지 세일 할 때 사고, 애들도 다 얻어 입히고, 책도, 수련장도 사면 안되고, 또 그런 걸 만날 때마다 주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한테 점심을 사준다고 하면서 패스트 푸드점에 가서 할인 쿠폰을 딱 내밀었더니 점원이 할인은 테이블당 하나만 된다 그러니까 이 남편이 그 친구에게 '나는 옆에 테이블 가서 앉아 있을테니까.' 아주 이 아끼는 거 너무 가상합니다. 이런 사람도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돈이 아까워서 이런 사람은 더 바람 안 피우죠. 그런데 여러분 그런 남편하고 살면 좋겠냐고요. 그러면 여기서 물어보겠어요. 바람 피우는 남편이 좋아요, 쪼잔한 남편이 좋아요? 어떤 남편이 좋아요? 바람 피우는 남편이 좋아요? 손 들어봐. 바람 피우는 남편, 쪼잔한 남편. 그러니까 우리는 인생의 결정을 못하는 거예요, 이렇게. 그런데 요는 다 둘 중 하나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람 피우는 사람들은 기마이가 좋아서 날마다 카드 빚이나 지고 다니고, 그러니까 죄가 많으니까 집에 와서는 날마다 사랑한다고 그러는 거죠. 마음이 좋하요. 그리고 대책이 없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왜 둘 다 갖춘 사람이 없겠어요?' 이러지만 이쪽 이세벨, 아달랴 남편은 돈도 잘 벌고, 화자품, 옷도 다 잘 사줄텐데 그러겠죠. 둘 다 갖췄죠. 그러니까 아달랴는 사단의 괴수자나요. 그런 사람이 예수 안 믿죠. 아달랴는 성전에 안 들어오자나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제 예수를 믿으려면 바람을 피우거나, 카드 빚을 지거나, 한쪽에서는 화장지를 훔쳐오거나 이래야 예수 믿을 확률이 있고, 완벽한 사람은 다 '멀리 멀리 갔더니.'가 되는 거예요. 아달랴는 성전에 절대로 안 들어오는 거예요. 안 들어와요, 자기가 잘났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아달랴를 너무 원하는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인생이 슬퍼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이제 결혼 전에는 언약을 세우고 믿음으로 결혼을 했다면 바람을 피워도 쪼잔해도 감사할 일 밖에 없는 거예요. 제가 이 결혼 얘기를 늘 물어보면서 여러분들하고 늘 나눔을 들어보면, 여러분들은 그렇게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래가지고 뭐만 하면 '난 옛날에 누구를 만났고 함께 어디를 갔고 무슨 노래를 들으면서 누가누가 나를 쫓아왔는데 내가 지금 이러고 산다.' 맨날. 그런데 그런 환상에서 좀 깨어나시라고요. 다 똑같고요. 옛날에 만났던 여자친구, 남자친구도 다 어디가서 지금 우리 남편하고, 우리 여편네하고 다 똑같은 짓을 하고 있을 거란 말이에요. 환상은 깨라고 있는 거예요. 아셨어요? 남편이니까 여편네, 남편네는 좀 이상하고 여편네.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 결혼에서 제일 중요한 건 언약을 세우는 거예요. 지금부터라도 환상을 버리고 예수 믿게 하는 소원만을 가지고 가야합니다. 바람을 피우거나 쪼잔하거나 하나님의 훈련으로 받아야 해요. 가나안 농군 학교는 목욕할 때 남자는 비누칠 3번만 하고, 여자는 4번만 해야 된다고. 새벽은 5시부터 일어나야 되고. 그러니까 너무 그런 힘든 게 훈련이 되면 남을 돕게 되자나요. 제가 힘든 훈련에서 지금 결국 남을 돕자나요. 그러니까 비교는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게 여러분에게 꼭 필요해서. 언약을 세우면 훈련이라는 게 보여요. 그러면 하나님이 '얘, 니가 어떤 남편과 살든지, 아내와 살든지 내가 다 구원해줄게.' 하나님이 약속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럼 그 모든 훈련이 '아, 이게 감사한 거구나. 이 허랑방탕한 남편이, 이 이상한 아내가 나에게 짝이구나 해야지요. 그러니까 언약을 세워야 집안과 나라가 다 세워지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요즘 결혼식을 하면서 주례를 안 세우고 자기들끼리 한다는 거예요. 자기들끼리 고백하고, 아니 믿을 것 없는 죄인들이 무슨 고백을 하고. 그런데 우리들교회 부모들도 자식을 말리지를 못하더라고. 왜 그렇게 말리지 못하는지 여러분들의 삶의 결론이라는 거를 좀 깨달아 보세요. 이렇게 온 백성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언약을 하니까 이제 자기들을 사로잡고 있는 바알을 제거하기 시작을 합니다.
18 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고 그 제단들과 우상들을 철저히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
-> 그렇게 이제 늘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고, 이게 이제 큐티죠. 온 국민이 자발적을 바알의 당을 깨뜨려요. '옷 사 입지 마라. 누구 만나지 마라.'이래서 옷을 안 사 입는 게 아니예요. 성경을 읽고 자발적으로 바알의 당을 훼파하는 거예요. 자발적으로 하는 게 제일 무서운 거죠. 우리가 숨어 있을 수 밖에 없게 하는 무서운 아달랴가 없어진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을 상징해요. 그러면 아달랴가 죽자마자 여호야다가 한 일은 구원받은 우리가 그 다음에 무엇을 힘써야 하는지 보여주는 거예요. 구원받았으면 '이제 마음대로 살라.'가 아닌 거예요. 힘든 어머니, 남편, 아내가 그렇게 없으면 그 다음에 '마음대로 살라.'가 아닌 거예요. 아달랴가 죽은 뒤에 여호야다가 우상을 철폐했듯이 값 없이 구원받은 우리도 우리가 섬기는 모든 우상을 철저히 깨뜨려야 하는 거예요. 누군가가 구원이 됐다면 그 다음에 더 남아있는 우상이 있어요. 돈과 지위와 명예와 권력은 물론 일과 건강, 사랑과 가족까지도 다 바알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구원보다 위에 두는 모든 것이, 하나님 보다 높이 여기는 모든 것이 내가 섬기는 우상이에요. 이 우상을 내 맘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싸움을 우리가 날마다, 매 순간마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겉으로 눈에 보이는 우상을 아무리 철저히 깨뜨려도 내 안에 또아리 틀고 있는 이 기복적인 욕심, 큐티를 해도 이 기복적인 욕심 때문에 안 되는, 아주 기복이 또아리를 틀고 있어요. 그래서 '큐티를 해도 되는 게 없네.' 이게 입에 여러분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이 기복적인 욕심을 죽여야 되는 거예요. 이게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는 거예요. 다 우상을 깨뜨려도 그걸 총괄하는 제사장 맛단, 그런데 맛단이 선물이라는 뜻인 거예요. 아달랴가 왕 노릇하던 6년 동안 주로 했던 일이뭐겠어요. '바알을 믿어야 인생에 선물이 생긴다.'고 가르쳤을 거 아니예요. 이름도 선물인 바알 제사장을 내세워서 말이죠. 선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맛단의 영향력이 굉장했을 거예요. 그래서 온 백성은 바알 신당과 우상을 다 제거한 다음 바알 제사장 맛단을 처형합니다. 우상을 철저히 죽이는 일은 결국 하나님보다 세상 선물을 더 좋아하는 그 욕심을 죽이는데까지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보이는 선물 다 좋아해요. 학력, 스펙, 성공, 건강, 그 보이는 거 큐티해서 그거가 빨리 안 생기면 '큐티해도 되는 거 없네.' 이러는 거예요. 그렇게 제사장 맛단, 아주 보이는 선물을 우리는 몸부림치게 좋아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시댁이나 남편은 선물 문화가 아니예요. 나는 시댁이나 남편이 내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어요. 그것조차 목회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하여튼 이 세상은 선물로 마음을 얻고, 결혼기념일 선물을 안 해줬다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아내도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여러분 아무리 이뻐서 결혼하면 뭐해요, 가치관이 이렇게 다른데. 하여튼 믿음 없으면, 그 다음에 매개체, 하나님이 없고 언약이 없으니까 중재가 안되는 거예요, 중재가. 그러니까 한 번 맞고, 외도하고 이러면 이혼, 이러는 거죠. 이것이 정말 맛단의 영향력이에요. 그런데 이 세상은 다 선물을 주기 위해서 공부하고, 직장 가고, 취직하고, 성공하고, 이게 맛단이 딱 들어와 있는 거예요. 그거 안하면 큰 일나는 것처럼 다 선물에 목숨을 걸어요. 그런데 '큐티를 하니까 우리 집사람이 그렇게 사치했는데 저절로 안 사입더라고요.' 그러니까 말씀을 보면 자기네들이 우상을 깨뜨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도 말씀을 가르치면 자기들의 우상인 방탄, 이런 걸 다 깨뜨리는 거예요. BTS 아시죠? 아무리 더뎌도 말씀을 넣어줘야 해요. 그러니까 큐티 선교회나 우리들교회가 각각 다 말씀을 보니까 '전도해라.', '버려라.' 안해도 온 몸으로 전도하고 그것이 사명이라는 걸 본인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깨달아요. 말씀 있는데 뭘 하라 마라 해요. 내가 살아나니까 다 같이 살자가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구원을 받아보니까 남편을 살려야 되겠는 거예요, 내가 살아나니까. 막 나를 때렸던 남편을 살리는 정도가 아니고 목숨을 걸었자나요. 그렇게 기도하다보니까 이렇게 지경이 넓어졌어요. 여호와의 전을 수직하게 되니까 저절로 전심이 있게 되고, 내 욕심을 드러내 죽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밖에 없어요. 말씀으로 날마다 회개하지 않으면, 언약을 이렇게 날마다 날마다 상기하지 않으면 어느 덧 신당을 쌓아올리고, 또 우상을 세우는 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칼빈도 우리 마음 자체가 우상공장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우상공장 공장장이라 이 말이에요. 그래서 내 안에 가득한 욕심을 죽여야 하는데 이 세상 선물, 보이는 거 이거 좋아하는 욕심을 죽여야 해요. 인생의 목적을 세상 행복이 아닌 거룩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우상을 물리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이 인식을 날마다 해야 하자나요. 그걸 어디서 해요. 특히 큐티를 해야 되는데, 그것도 구속사적 큐티가 이 창조를 이루어가는 것이 맞아요. 그래서 우리는 창조라고 그러면 우리는 큐티합니다. 이런 걸 얘기했자나요. 창조를 알아야 큐티도 제대로 알고, 언약의 하나님을 알고, 그래야 온 성이 평온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이 부목자모임에서 '큐티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 질문의 답을 들었는데, 자 이름은 발표하지 않겠어요. '저는 큐티를 거의 안 하고 있어요. 지금 아이가 셋이다 보니까 지금 당장 눈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 보니까 큐티를 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전혀라는 말이 꽂혔어요. '그리고 내가 교회 열심히 다녀도 크게 변화되는 모습도 없어서 구지 내가 이걸 할 필요가 있나?' 이래서 안 한대요. 또 한 분은 '저는 일주일에 한 번 하는데 목장이 있는 날만 해요. 힘든 목원들이 생각나서요. 평소에는 큐티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여기도 '전혀 안 듭니다.' 이거 부목자 나눔이에요. 또 한 분은 '아내가 큐티를 하기 때문에 저는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아내가 한 것이 내가 한 것이기 때문에.' 또 한 분은 '저는 5년 동안 큐티를 빼먹지 않고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매일 새벽기도만 들어요. 왜냐하면 큐티를 하면 제가 삶이 더 힘들고 제 안에 끊임 없이 고난이 들어오니까 안 해요. 요즘은 큐티를 거의 안 하고 건강 회복 때문에 건강 관련 유튜브만 봅니다.' 아유, 정말. 또 한 분은 '저는 1주일에 한 번 가정예배 드릴 때만 하고요. 나머지는 그냥 읽기만 해요.' 그런데 여기는 소망이 조금 있는데 '아내와 딸 때문에 큐티를 열심히 해야 될 이유가 생겼어요.' 이 고난이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한 분이 이런 나눔을 했어요. '오늘 설교 말씀이 놀라웠던 게 큐티가 나를 창조해나가는 거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말이 많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저는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큐티하고 출근해서도 또 좀 계속 합니다. 아내에게 큐티책을 사주려고 해도 아내가 거부하는데 저는 제 돈으로 큐티책 사서 합니다.' 이게 중요해요. 여러분은 큐티책도 안 사나봐, 아내가 하면 내가 하는 거라니까. '부부끼리는 대화를 하지 않는 거라고 말씀하셔서 아내와 대화는 목장에서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목사님 말씀이 웃기셨지만 맞는 말씀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큐티를 이렇게 하시니까 설교 말씀으로 나눔도 그대로 했자나요. 대부분 큐티를 안 하면 구속사적 설교가 안 들리시고, 보이는 선물이 안 오면 기쁨이 없으셔가지고 '되는 일이 없다.' 이게 기복인 거죠. 아무리 교회를 오고 구속사를 깨달았다고 해도 그 다음서부터 또 기복으로 가요. 하나님은 사로잡힌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고 했는데 그런 게 안 들리는 거예요. 그러나 이런 나눔이라도 부목자모임 나눔에서 솔직히 나눠주시는 것이 우리들교회 특징이고, 좋은 얘기만 하지 않고 안되는 얘기도 이렇게 하시니까 시간이 지나면 목자가 되고 다 달라지더라고요. 제가 한 번 이 나눔을 읊어드렸으니까 앞으로 반드시 바꿔지실 줄 믿습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적용] 어떤 선물이 제일 좋습니까? 어떤 선물에 마음을 쉽게 빼앗깁니까? 하나님이 맺어주신 구원의 언약이 그 선물보다 좋습니까? 못합니까? 내가 깨뜨리기 너무 어려운 우상은 무엇입니까?
3.내 역할에 충성해야 합니다.
18 ...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하고 19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려와 호위병의 문 길을 통하여 왕궁에 이르매 그가 왕의 왕좌에 앉으니 20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더라 21 요아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칠 세였더라
-> 18절부터 21절이에요.
성전에서 시작된 요아스의 대관식이 이제 대미를 장식할 타임이에요. 아달랴에게 빼앗겼던 왕의 자리를 이제 다윗의 후손이 다시 이제 찾아야 해요. 그리고는 여호야다는 혁명 동지인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들과 온 백성을 거느리고 함께 왕을 인도합니다. 이 중차대한 일을 천부장, 대단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그 가리 사람, 이방인, 호위병 얼마나 대단한지 그 아버지 이름이 다 기록됐자나요. 이런 사람이 주의 일을 하는 거예요. 가정마다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아달랴가 있죠. 그 아달랴가 할머니, 할아버지, 남편, 아내, 부모, 자녀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그들을 끌어내리지 못해서 살 수가 없어요.
'내가 저기 앉아야 하는데.'하면서 이러면서 다들 가정을 떠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누군가가 써준 각본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불과 해요. 따지고 보면 그를 미워하는 나도 마찬가지구요. 결국 나나 그나 죄와 사탄이 역사하는대로 그 허수아비에 의해 움직이는 비참한 노예일 뿐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왕좌에 앉아 권세를 휘두르는 아달랴가 있고, 그 권세 아래 괴로워하는 내가 있는 거예요. 똑같은 거예요. 미워하면 똑같은 거예요. 이 지옥 같은 집구석을 회복시킬 길은 예수님이 들어오는 것 밖에 없어요. 예수님이 우리 가정 왕좌에 좌정하셔야 합니다. 내 인생의 왕좌에 예수님을 먼저 모신 우리가 백부장이 되고, 가리 사람이 되고, 호위병이 되고, 온 백성이 되어서 예수님을 우리 가정으로 인도해야 돼요. 그러니까 이제 다른 사람이 무시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찬란하게 올라가자나요. 그럴수록 예수님이 왕노릇 하실 수 있도록 내 역할, 내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나 혼자 되는 것은 없어요. 이 모든 사람, 가리 공동체가 함께 수고합니다. 그랬더니 성 중이 평온해졌어요. 자, 이 집이 얼마나 콩가루 집안이에요. 다 서로 서로 죽고 죽였자나요. 집안으로 치자면 '우리 할머니가 손주들 다 죽였어.' 이게 오픈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사업 차지하려고 어머니가 애들 다 내 쳤어.' 이런 말을 하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콩가루 환경에서도 나에게 예수가 들어가면 그 한 사람 여호야다 때문에 온 성중이 평안해집니다. 여러분이 먼저 말씀 보는 한 사람이 되면 온 집안이 평안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여튼 싸움이 일어나면 아달랴가 깨닫습니까? 죽을 때까지 못 깨달아요. 그런데 아달랴 깨닫기를 원하고 내가 슬퍼하고 살면 안돼요. 여호야다 한 사람이 율법 책을 들고 말씀을 가까이 했더니, 그런데 아달랴 빼고 온 국민, 온 교회가 즐거움을 느껴요.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서 겉으로 보이는 아달랴 말고 나의 아달랴 죽도록 포기하지 못하는 나의 약점 아달랴, 칼로, 말씀의 검으로 죽여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걸 보면 구속사가 안 들리면 '아이고 잔인해라. 제사장이 칼로 죽이라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지금. 안 들리는 사람은 그렇게 들려요. 나의 포기 못하는 나의 약점 아달랴를 죽이는 기쁨으로 모여야 된다는 거예요. 구원 받은 사람의 공동체가 얼마나 기쁜 건지 뼈저리게 느껴야 되는 거예요. 이 역할이 때로는 숨어 있는 역할도 있고, 입 다물고 조용히 하는 역할일 수도 있고, 시키는대로 하는 역할도 있고, '반역이로다.'하는 비난을 들을만큼 맞서 일어나야 하는 역할일 수도 있어요. 때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자기 자리에 서 있는 역할일 수도 있고요. 때로는 환호하고 박수치며 '요아스 만세.' 부르는 역할일 수도 있어요. 우리들교회는 그냥 교회에서 그냥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다가, 또 박수 치고 좋아하고 버라이어티 합니다. 아주 정말 이 여호야다 공동체하고 똑같은 거 같아요. 상황마다 다르게 적용하는 게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쉬워요. 단순해요. 목적이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왕좌에 앉은 요아스는 7살이에요. 구지구지 강조해서 기록해요. 왜죠? 세속사의 관점에서 보면, 아니 예수님이 내 인생의 왕좌, 우리 가정의 왕좌에 좌정하시는 건 너무 보잘것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기복적으로 생각하니 너무 무시가 되는 거예요. '예수 믿으면 성공하고, 승리하고, 다스려야지, 뭐 그리 복잡하게 날마다 THINK하고, 갈등하고,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속상하고 그러냐.' 이건 7살짜리 꼬마가 왕좌에 앉았다고 '저게 무슨 왕노릇하겠냐.'고 '다시 아달랴 데려와라. 외치는 거 하고 똑같습니다. 지금 아합과 아합을 척결한 예후 왕과는 비교가 안되는, 7살 요아스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왕이에요. 그렇습니다. 믿음은 아무 조건 없이 주어지는 거예요. 자기가 요아스는 왕이 되겠다고 한 적도 없어요. 왕이 되기 위해 한 일도 없어요. 성경은 믿음과 행위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성경이 걸어가고 수 없는 인물들을 등장을 시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 온 성이 평온해지기 위해서 7살 요아스를 쓰시고, 98살 여호야다를 쓰시는 거예요. 연약한 자를 통해 온 성이 평온해지는 줄 믿습니다. 즐거움과 평온이 키워드인데요. 즐거움은 오늘 본문에 2번 나오는데요. 열왕기서에 모두 6번 나오는데 오늘 본문을 빼고 나머지 4번은 모두 솔로몬과 관련해서 나오는 거예요. 지금 요아스가 왕위에 오른 이 사건은 그냥 솔로몬의 통치가 복권된 것 같은 대단한 일이고, 다윗의 후손, 왕의 씨, 예수 씨가 회복된 일이라는 거예요. 아주 위기였다는 거예요. 아주 위기에서 끊어질 듯한 이 왕의 씨가 이어졌다는 거예요. 평온하다는 것은 소란과 다툼이 끝났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가 회복된 결과를 말합니다. 사사기에는 이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열왕기서에서는 여기 딱 한 번 나왔어요. 그만큼 유다가 아합의 집 때문에 소란스러웠다가 평온해진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게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 평온한 거예요. 아내의 자리, 남편의 자리, 다 각자 자기 자리에 있는 게 얼마나 쉽지만 어려운지 몰라요.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할 때 평온할 수 있습니다. 며느리하고 동침한 유다가 행위가 완전한 요셉보다 평온해요. 유다는 그 죄로 회개하고 평온하지만, 요셉은 회개할 게 없으니 마지막 말이 자식을 어긋 맡겨 축복한 아버지 야곱을 '기뻐 아니했다.'로 끝나고 있어요. 아달랴 밑에서는 즐거움도 평온도 없습니다. 그런데 7살짜리 꼬마 요아스가 왕좌에 앉으니 즐거움과 평온이 옵니다. 요아스가 대단해서가 아니죠. 왕의 씨이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길이 회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적용질문이에요.
[적용] 우리 가정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가정과 교회에서 주님이 내게 맡기신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 역할에 얼마나 충성하고 있습니까?7살 요아스를 예수씨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부도, 음란, 숱한 중독에서 돌아온 자가 믿음으로 고백하면 아멘으로 영접하시겠습니까?
기도제목
희연
1.엄마 손가락 인대가 속히 회복되도록
2.언니, 형부 비행하는데 보호해 주시도록
3.조카들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하고, 둘째 조카 갑상선이 온전하게 회복되도록
4.신장이식 받은 것에 감사하고, 수치가 잘 유지되어 사명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정아
1.병원가는 적용과 불안한 마음들이 성령의 은혜로 편해질 수 있게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람
1.나의 영육의 성전 돌보기: 엄마 동생 조카 금전 관계 문제 혼자 해결 할 수 없는 것 인정하기
2.조카는 내 죄 보는 천국세팅인 것을 알고 해결 및 관여 금물 (교회 큐페 참석 하도록 중보)
3.사람에게 기대를 끊고, 창조주 여호와께로만 시선 고정하기 (예배 목장 큐티 사수)
4.엄마와 일할때 예스, 노, 땡큐로만 반응만 하고, (공기+ 바람)이 되는 연습하기
크리스틴
1.인터뷰 잘 준비 하고 낮은 마음으로 겸손히 섬길 만한 사랑과 지혜의 마음 주시도록
예선
1.동생이 응급실 갔는데, 사역하는 동안 영육 강건하게 도와 주시고, 올바른 복음에 반응하여 회복 되도록
2.8월 회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외국 프로젝트와 같은 변화가 있는데, 나의 열심의 힘을 빼고, 하루만 살고, 처소를 잘 지키도록
은우
1.코로나 후유증으로 목소리가 안 나오는데 알맞은 치료 받고 영육 회복 위해 경계를 잘 세우도록
2.보내 주신 곳에 언약을 세워 주께 충실하고 진정한 반역 위해 사랑을 덮는 지혜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