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2. 목장보고서
출석: 박영빈, 김정한, 임현호, 이영찬, 정인호, 김진형
장소: 투썸 대치삼성점
<말씀 요약>
2024년 5월 12일 주일설교 녹취록
본문: 열왕기하 10:20-27
제목: 바알을 죽이라
성경이 말하는 바알 죽이라.
어버이 주일이다. MZ세대 결혼이 너무 다르다고 한다. 결혼은 30대에 하고 평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양가 부모의 간섭을 못참고 경제 공동체는 옛말이고 생활비 통장만 만들어서 쓰고 출산계획이 있어도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빨리 이혼하고 다른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반려견이 1500만 마리인데, 반려견은 배반을 안하기 때문에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안낳는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자녀는 우리의 거룩을 위해 낳아야 한다.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에는, 제일 살사는 때여서 시간과 돈이 생기니까 연애했을 때 불타는 연애가 그리워서, 외도를 하고 그때가 이혼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일단 아이를 낳으면 엄마들끼리 만나면 자식 얘기밖에 안한다고 한다. 배우자에 대해서 저 사람 뭘 좋아한다, 제일 싫어하는 내 행동은 뭘까, 관심이 없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결국, 이혼을 많이 성사시킨 변호사도 결론은 배우자를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세상적으로 완벽하게 잘하는 최고의 부부와 부모가 있는데 누굴까요? 아합과 이세벨은 이 모든 것을 잘해서 사마리아 대학을 졸업시키고 권력도 땅도 물려줬다. 그와 더불어 바알숭배를 물려줬다. 그래서 최악의 부모이다. 바알을 마음에 심어줬기 때문에, 물려준 모든 것이 다 똥처럼 되었다. 바알은 똥파리 신이다. 이 세상 모든 신이 똥파리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도 우리 자녀들을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양육해서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한다. 우리안에 있는 바알을 죽여야만 좋은 사명자가 될 수 있다. 내 안에 바알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생각해보겠다.
1. 특별 대우의 예복을 벗어야 합니다.
바알을 섬기는 자를 멸하려는 예후의 계책이 시작됩니다. 바알을 위하여는 예후를 위하여도 되는 것이다. 왕명을 내려서 전국 곳곳에 전령을 보낸다. 제1회 전국 바알교 부흥회 광고가 온 나라에 뿌려진다. 아합 집안이 바알을 제대로 안섬겼기 때문에 다 죽었다는 가짜 뉴스를 살포했다. 바알교가 부흥해야 되니까 바알교인은 필참하고 불참시에는 사형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진 자가 없이 다 이르렀다. 참석률 100%인 바알교 부흥회가 열렸다. 엘리야가 아합왕 시절에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모아 대결하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훨씬 이보다 많아졌겠죠. 그 큰 신당이 가득 찼다는 것이다. 모아놓고 보니까 이스라엘 자칭 바알 숭배자들이 이렇게 많아졌어요. 아합이 이세벨과 불신결혼을 한 결과였어요.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이것이 똥파리 신을 섬기는 바알교의 특징이다. 아하시아는 부모따라 바알을 열심히 섬겼다. 바알의 신당을 비롯해 곳곳에 남아있었다. 예후도 척결했다고 하지만 바알교가 없어지지 않았다. 호세아 선지자때도 바알 숭배가 여전했다. 도대체 바알은 왜이렇게 질긴건가?
성공과 번영의 신, 돈의 신이다. 인간이 제일 바라는게 성공과 돈이다. Gold야말로 우리를 유혹하는 매력이 대단하다. 바알은 죽이고 또 죽였는데도 다시 살아나서 온 땅을 가득 채우도록 계속 부흥한다. 바알이 우리 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냥 바알의 집이다. 이름도 얼마나 친근합니까, 전혀 이질감이 없다. 종교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문화의 일부라고 여겨진다. 잘살기 바라는 욕심이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죄로 생각하기 어렵다. 뭐가 문제냐고 할 것이다. 사실은 성공과 번영과 돈이라는 바알을 우리가 노예로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라나 교회나 죽어져야 하기 때문에,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결국 직장도 해결이 안되고 나라도 문제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다.
신전을 가득채운 바알교인들의 욕심을 예후는 전부 특별대우하는 것이다. 네가 옳다. 학교 잘 가고 직장 잘 가고 예쁜 여자 만나야지. 뭐가 문제야? 하며 특별대우해준다. 잠시 후에 죽일 건데 특별대우해준다. 특별대우 좋아하지 말아요. 예복은 특별한 용도를 위해 특별한 모양으로 만든 특별한 옷이다.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돋보이게 만드는 옷이다. 예복을 내다가 줬으니까 평소에 이 예복을 얼마나 많이 준비해놓고 있었는지, 모자라지 않았다. 보통 때는 바알교 평신도들은 예복을 입지 못햇을 것이다. 제사장쯤 되어야 입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특별한 날 전국 부흥의 날에는 참석자 모두에게 예복을 풀었어요. 모두가 특별한 의복을 입었어요. 외적인 감각을 만족시켜주면 인기를 얻게 되어 있다. 교황 즉위식을 보면 옷에 금을 들고 빨강모자 망토를 입고 즉위식을 한다. 보기만 해도 대단해 보인다. 이게 계책의 기재 예후이다. 군중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이용했다.
(힐송교회 얘기) 창립자도 그다음에 후임 목사도 결국에는 음행문제로 하차했다. 새로운 목사가 1년 만에 왔다고 하는데, 그래서 결국은 음악이 기가 막힌데, 힐러라든가 다 거짓이었다. 각본에 짜서 부흥할 수도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올림픽 스타디움 같은데 모였는데, 그 누구라도 그 환경을 그러니까 그거 얼마나 연예인들이 공연하고 나면 허무하다고 하잖아요. 그 길을 갔는데 이 땅에서 그게 드러난 게 축복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외모를 너무 보고 우리가 나훈아, 임영웅 쇼에 5분 만에 매진이 되는데 힐송의 예배가 똑같은 것이다. 또 다른 특별 예복은 종교개혁이 만인 제사장이라고 가르친다. 모든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부르며 똑같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제사장이 되었다고 믿는다.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질서에 순종하지 못하면 안된다. 인간의 공동체가 완전하지 않아요. 다들 죄인이에요. 다 교만해요. 할 수 없이 질서를 두셔서 때가 될때까지 서로가 훈련되게 하셨어요. 먼저와서 직분을 받아요. 직분을 받았다고 더 거룩하지 않아요. 직분이 있어야 무리를 인도해갈 수 있다. 거기서 네가 뭔데 목자가 되서 나한테 뭐라고 하냐? 이러면 안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서로가 남을 나보다 높이 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복을 입고 특별대우하려는 모임과는 다른것이다. 내가 목자라서 특별대특 받는 것이 아니다. 질서를 위해 나눔을 해야 된다. 믿음은 질서의 훈련이다. 군중은 그 자체로 특별한 별도의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 군중심리라고 한다. 멀정한 개인도 군중속에 들어가면 판단이 흐려진다. 인민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검찰이 되고 판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고 언론인이 되려한다. 그 위에 서서 비난하고 심판하면서 모든 질서를 폭력적으로 해체하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알의 예복을 입은 바알교도들의 심리이다. 악을 그리도 섬기던 바알 선지자 제사장이 충성심 같은거 없고 예후에게 모였다고 한다. 100% 찬성도 이상하고 100% 반대도 이상한 것이다. 자신들에게 예복을 입혀 특별한 존재로 대우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 특별해 지고 싶은 욕구가 채워진다. 혼자있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같아서 우울한데, 예복을 입고 군중속에 들어가니 특별존재가 된 것 같다. 그래서 더 열광하고 소리치면서 더 행동한다. 바알 무리는 늘 열광한다. 이것이 바알의 예복 특별대우의 예복이다. 이런 특별대우의 예복을 입으려고 해서도 안되고 이미 입고 있는 특별대우의 예복이 있다면 벗어야 한다. 특별대우의 예복을 입은줄도 모르고 입고 더 특별한 예복입기를 바라면 내 안의 바알을 죽일수가 없어요. 우리는 이미 가장 특별한 존재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특별대접을 받아들이지 않을때가 많죠. 우리가 주님께 받은 특별대접이 주님의 생명 만큼크다. 바알이 주는 헛된 특별대접을 찾아가는 방황을 멈추시기 바래요.
적용질문: 교회보다 더 거룩히 여기며 위하는 모임이나 대회가 있습니까? 가족 모임, 골프모임, 동문회 학부모 모임 각종 동호회 다단계 모임 등 거기서 특별대접 받기를 구합니까? 내가 당장 벗어버려야 할 바알의 예복은 무엇입니까?
2. 여호와의 종과 함께 생명 걸고 적용해야 합니다.
예후가 바알의 신당에 직접 들어간다. 혼자 들어가지 않고 여호나답과 함께 들어간다. 무슨 의미인가? 바알교 척결이 예후 혼자서 생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생각하면, 바알교 척결은 여호나답의 뜻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바알교도들을 죽인 후에는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아야 하잖아요? 그럴 때는 여호나답의 지지가 너무 필요했어요. 그러니까 예후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잠시 후에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되니까 여호나답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예후는 믿음이 없지만, 머리가 엄청 좋아요, 그래서 정치 천재인 거에요. 믿음이 없으면, 머리라도 좋고, 머리가 안 좋으면, 믿음이 좋아야 한다. 둘 중에 하나는 좋기를 축원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머리가 좋은게 힘들겠어요, 믿음이 좋은게 힘들겠어요? 그러면 머리가 좋은게 쉽겠어요, 믿음이 좋은게 쉽겠어요?
머리가 좋은 것은 이제 좀 어려울 것 같아. 하나님 앞에 구하라. 했을 때 머리가 좋게 하진 않을 것 같아요. 믿음을 구하길 바래요. 결국, 그의 뜻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예후가 바알교도 무리와 대면하는 자리에 여호나답과 함께 들어갑니다. 신당 안에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남으라고 한다.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과 바알을 섬기는 사람은 함께 할 수 없다. 사실은 예후의 계책은 바알 예복 입은 사람만 죽이려는 계책이다. 생각해보면 예후가 너무 훌륭한 사람이고 개혁을 잘하고 있는 사람이다. 믿는 사람이 이 세상 바알을 섬기는 사람하고는 물과 기름 같아서 절대로 함께할 수 없는 것이에요. 환상을 버려요. 이제 예후 계책의 클라이막스다. 드디어, 바알교 부흥회가 시작됩니다. 이것하고 힐송 찬양 너무 오버랩이 되는 것이에요. 올림픽 스타디움 같은 곳. 열광하면서 찬양하고 하는데, 신당에서 번제와 다른 여러 제사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예후는 80명의 호위관을 신당 바깥에 배치한다. 특공대이다. 바알 숭배자들이 신당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놓치면 자기 생명을 내놓으라고 한다. 바알 부흥회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다 죽이라고 한다. 명령대로 군사들이 모든 거기 모인 바알 숭배자들을 죽여서 신당 바깥으로 던집니다. 이세벨을 창밖으로 던졌듯이 영적 자식은 바알 숭배자들도 던져집니다. 신당 안에서 열심으로 바알에게 제사를 올렸다. 온갖 열심으로 돈에게 제사를 올려요, 공부에게 제사를 올려요, 그 결말이 어떻게 됐어요? 칼에 죽은 시체다. 신당이 마치 커다란 괴물같아요. 거기서 그 열심과 정성을 빼먹곤 찌꺼기를 밖으로 뱉어버린다.
이것이 우상숭배와 거짓종교의 기본 구조이다. 숭배자들은 교주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먹잇감일 뿐이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우상을 열심히 섬기지만, 누군가에게 소비되고 마는 것이다. 우상숭배자들을 교주로 섬기는 것은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종말이 가까웠다면 집을 팔아서 교주한테 바치는 것이다. 기복신앙이 똘똘 뭉쳐서 고생을 안하고 뭐가 있는 것 같아서, 교주에게 소비되고 마는 것이다. 잠시 뒤에 버려질 것인데, 죽어도 좋다고 달려가는 것이다.
정치와 문화도 우상숭배처럼 흘러간다. 기술을 발달하고 우리 머리는 커지는데, 잘사는 우리나라가 어리석어 진다. 욕심에 눈이 가려져서 바알의 먹이감이 되지 않으려면 내 안의 바알을 먼저 죽여야 한다. 내 마음에 우상을 섬기는 마음이 살아있으면 우상단지는 다시 생긴다. 그 누구도 바알을 스스로 죽일 수 없다. 예후가 활을 잘 쏴도 혼자 다 바알교도들을 상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자신의 악함과 약함을 혼자 꺾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와의 종들과 함께해야 한다. 예후가 여호나답과 함께하는 것처럼 교회공동체에 들어와서 함께해야 한다. 예후와 여호나답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다. 예후가 밑바닥부터 바알을 섬기던 사람이고 여호나답은 수백년전부터 믿음의 집안 사람이다. 바알교를 척결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동지이다. 인간적으로는 맞는 게 없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하나가 되면 되는 것이다. 구원 때문에 목장이 굴러가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2-3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맞는 게 없어도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하면, 강한 우리들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머리는 나빠도 믿음이 있으면 강한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오늘 여호나답과 함께한 예후가 80명의 호위병에게 바알 섬기는 모두를 죽이라고 한다. 생명걸고 명령을 실행했어요. 믿음의 지체들과 생명을 걸어야 한다. 말씀대로 적용하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해요. 하나님 말씀대로 십자가 지는 순종을 하라는 것이다. 내가 너무 하기 싫고 힘들고 이일을 말씀대로 순종하면 생명을 거는 적용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우리 안의 바알을 나도 모르게 하나씩 없애 주신다. 적용을 할 때, 그렇게 바알이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대로 적용하려고 하기만 해도 성령님이 도우십니다. 십자가 지는 순종을 하면 거기에 따른 열심은 따라온다. 거꾸로 하면 안된다. 열심으로 순종하는 게 아니다. 80명의 순종이 수천명을 상대했다. 우리들교회 맞잖아요. 내가 성경대로 설교하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내 안에 가득한 탐욕과 음란과 시기와 질투를 주님이 하나씩 죽여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바알을 섬기는 자입니까 여호와를 섬기는 종입니까? 내 안의 바알은 무엇입니까? 말씀으로 통하는 영적인 동지가 있습니까? 생명 걸고 적용할 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생명 내놓고 교사 부목자 목자 마을 초원 장로 권사 목사를 하고 있습니까?
3. 그 근원을 불사르고 헐어야 합니다.
바알은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상징하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우상 또한 너무 익숙하고 친근했다. 바알의 우상은 특별한 게 없었다. 그냥 기둥이다. 나무로 된 목상 돌로 된 석상 금속으로 된 동상도 있다. 신전이나 성이나 마을에 모셔두기도 쉬웠다. 만들기도 쉬웠지만 없애기도 사실은 쉬웠다. 바알 숭배자들을 모두 처형이 된 예후는 목상들을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 석상을 헐어버린다. 산산조각낸다. 북한도 김일성 동상이 곳곳에 하나님 대신이 있다. 지금 예후가 부하들 시켜서 바알의 우상을 없애 버리고 있다. 아합 집의 상징이기도 한 바알의 집도 산산조각 무너뜨린다. 다윗의 집이 하나님의 집과 하나였듯이. 아합집과 바알집은 하나였기에 파괴해야 한다. 백성에게 엄청난 시각적 효과를 주었을 것이다. 아합집의 멸망이 뇌리에 박혔을 것이다. 예후는 신당이 무너진 자지를 변소로 만들었다. 가장 더러운 곳으로. 한번 파괴된 신전을 후대에 다시 지을 수 있다. 그런데, 더러워진 터가 된 변소 거기에다가 자기들이 거룩히 모시는 신의 신전을 다시는 건립하기가 어려워진다. 거기가 변소여서. 거기다가 어떻게 바알신전을 세우겠는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하는 것이다. 바알신당이 변소가 된 것이 오늘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예후 때부터 최소한 300년이상 그랬다는 것이다. 재래식 변소는 변소라고 부른다. 우리 엄마가 청소한 곳은 변소.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 그러니까 이제 남자 여자 다 끊어내려면 교양있게는 못 끊어요. 변소를 만들어야 한다, 수치스러워서 두 번 다시 생각하지 못하게. 그때마다 좋아서는 못 끊는다. 수치스럽게 무너젔어요. 아합이 정점이 있을 때 이런 날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는 저절로 낮아지지만 일이 잘 풀릴 때 이기고 또 이길 때는 마음이 높아질 것을 막을 길이 없다. 형통하다가 사건이 생기고 고난이 오는 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힐송교회과 같은 일이 한국에서도 때마다 생긴다. 그것은 그분들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시고 돌아올 시간을 준 것이다. 천국 입성학교 커리큘럼이다. 계속해서 시험을 봐야 한다. 좋은 학점으로 잘 졸업하라고. 인생의 정점인 죽음의 때. 언제까지 계속되냐면, 왜 고난이 찾아오냐고 불평하지 말자. 천국가는 학교이다. 끝까지 잘 다닙시다. 천국 동창회에서 다 만나기를 바래요.
예후 인생에서 쓰임받는 최고의 순간이다. 하나님을 향한 진짜 열심인 여호나답과 동지가 된 덕에 바알의 집을 불사르고 헐었다. 북이스라엘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예후는 더 나가서 개혁을 완수할 수 있었는데, 바알을 없앴으면 금송아지를 없앴어야 한다. 진짜 근원은 내 안에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바깥에 있는 바알은 죽였는데, 내 안에 있는 바알은 죽이지 못했다. 있는 줄도 몰랐기 때문에. 예후는 내 안의 바알을 모른다. 열심으로 머리로 겉의 것은 다 죽여버린다. 그것이 몰라서 못한거다. 예후가 예후는 이렇게 엄청난 개혁을 했는데 선한 왕이 못된다. 그래서 구속사적인 말씀이 필요하다. 이 사람은 세속사적인 왕으로 있다. 내가 하는 일을 비추고 그러나, 내 바깥에 있는 것 아무리 말씀으로 잘 비춰도 내 자신을 보지 못하면 어리석은 자이다. 말씀으로 내 자신을 비춰야 한다. 내 안에 감춰진 죄악을 봐야 한다. 내 안에 가득한 바알을 보지 못하고 바깥에 있는 바울 없애봤자 다시 만든다. 그것을 보려면 땅 파는 수고를 해야한다. 묵은 땅을 귀경하라.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데,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안되는 예후는, 자기 속의 바알을 못 본다. 예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했다는 얘기가 없는데 이렇게 정치를 잘한다.
내 속의 바알을 보는 것, 큐티를 하면서 날마다 선택을 하는 훈련은 엄청난 인격과 영성을 쌓아하는 훈련인 것이다. 반복하면 말씀대로 선택을 하는 훈련은 가장 보화를 쌓는 훈련인 것이다. 이번 주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바알 우상을 찾아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예후가 성령을 받지 못했다. 여러분들 가운데 성령받은 사람 이 말이 다 들려요. 그 한 사람 때문에 청년부가 굴러가는 것이다. 들리지 않는 사람도 예후처럼 많아요. 내 안에 바알이 뭐야? 그러는 것이다. 그래도 붙어만 있으면 수지맞을 줄 믿습니다. 아멘. 붙어만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해서 여호나답과 예후 같은 사람이 공동체 안에서 만나서 평균케 될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바알의 목상처럼 이제는 불사르고 헐어야 할, 나를 유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는 가까이 가기 싫은 변소로 만들기 위해 이번 한 주 어떻게 불사르고 헐어버리겠습니까?
<목장 나눔>
A: 바알이 우리 안의 욕심을 상징한다고 하였는데 나한테는 여전히 내 마음 안에 바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여전히 주식으로 돈을 모으고 하는데 그것이 내 마음 속의 바알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말씀대로 적용하는게 훈련이라 하시기에 여전히 욕심이 있고 잘되지 않아도 말씀보고 적용하며 가려 하고 있다.
B: 음란, 미디어 중독이 내 안의 바알인 것 같다. 중독을 끊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미디어를 계속 보면서 세속적 가치관을 추구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미디어 보는 시간을 조금 줄여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C: 나를 유혹하는 것은 담배인 것 같다. 요즘 전자담배로 바꿔볼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상담을 다니는데 각성음료를 너무 많이 마신다고 토요일만큼은 카페인을 마시지 말아보자고 제안하셨는데 끊어내는 것이 쉽지 않아 힘들다.
D:어떤 주에는 은혜이다가도 요즘은 옛날처럼 세속적으로 돌아가려는 한 주를 보내고 있다. 요즘 큐티도 너무 안되고 해서 생각을 해봤는데 결국엔 목사님 설교말씀처럼 그 끝에는 돈 문제에 대한 걱정과 불안인 것 같다. 잘 붙어가야겠다.
E: 뭐가 내 안의 바알이 무엇인지 답하면 나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인 것 같다. 나는 내가 선물이나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기에 회사에서 내 일을 다했어도 타인의 일을 도아줄 수도 있는데 그게 하기 싫어서 하지 않았다. 이러한 나의 성향이 내 안의 바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제목>
박영빈
1. 물질의 바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2. 남은 부동산 전부 처분되기를
3. 신교제 소망 갖기를
김정한
1. 하나님과 말씀, 공동체를 지금과 같이 지속적으로 사모할 수 있도록
2. 인간관계를 내 뜻대로 통제하려 하는데 그러한 마음을 내려놓고 자유해질 수 있도록
3. 나의 속 얘기를 건강히 풀어내며 부목자의 사명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임현호
1. 걱정 내려놓고 맡기고 갈 수 있도록
2. 5월 22일 신규 딜 심의가 시작되는데 잘 통과될 수 있기를
이영찬
1. 띵크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2. 한 주간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길
정인호
앞길 인도해주시길
김진형
1. 여자친구가 출근 첫 주인데 잘 적응 하기를
2. 누나와 다툼이 있었는데 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