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주께서 원하는 선한 것이 무엇이냐?
미 6 : 6 ~ 8
어떤 자식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것일까?
어릴 때는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며 학생 때는 공부 잘하는 것이다. 대학을 마친 후에는 건강보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열심히 일을 해서 성공하는 것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돈을 벌어서 사회적으로 명망을 얻고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부모는 자녀의 성장에 따라 부모의 기대치가 달라진다. 언제까지 공부만 하고 있는 자녀를 본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며칠 전 , 동아일보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 노부모의 노후를 위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 그 물음에 부모의 노후를 ' 가족 , 정부 ,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 ' 고 생각하는 사람이 ' 자녀가 책임져야 한다 ' 는 사람보다 많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 취업을 하지 못한 성인 자녀의 용돈도 부모가 줘야 한다. ' 는 응답은 71%에 이르었다. 그 기사는 아직도 ' 부모는 자식들의 봉인가 ' 하는 것이었다.
신앙생활은 어떤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을만큼 신앙도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앙 현실은 어떤가? 아직도 어린 아이 상태에 어물러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은 우리 어떤 신앙생활을 원하시고 기뻐하실까? 교회생활을 통해 예배하고 , 기도하고 , 전도하고 , 헌금을 드리는 행위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행위일까? 그것만이 선한 행위일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고의 수단일까? 아니다. I.Q만 좋다고 공부를 잘 하고 ,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가? 한마디로 NO다. 요즘은 3E.Q ( 감정 , 교육 , 경제 ) , S.Q도 높아야 하고 , 앞으로 더 중요한 지수는 G.Q가 높아야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처럼 될 수 있다.
성도의 구원에도 영적지수만 높으면 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본문 8절을 보라 ! " 사람아 ,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 이 말씀은 주께서 정작 선한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선한 일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누가 10장의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율법사에게 말씀하신다. 강도 만난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라고 하셨다. 부자 청년 관원이 영생에 관하여 질문할 때에 예수님은 선한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다. "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 " ( 눅 18 : 22 ) 우리에게 영적 지수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도덕지수 , 사회지수도 중요하며 높아야 하고 두가지 지수와 함께 가야 한다. 예배하고 , 기도하고 ,헌금을 잘 드리면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 교회생활 , 가정생활 , 사회생활 중에 어떤 생활이 중요한가? 신앙생활은 교회 생활만을 말하는가? 아니다. 신앙생활은 모든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생활만큼 가정생활 , 사회생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인식해야 한다. 다만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삼되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 " 사람아 , 주께서 말하는 선한 것이 무엇이냐? "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첫째 , 오직 공의를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것이 무엇인지 외면한 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를 촉구하는 이사야와 동시대 활동했던 미가 선지자에게 세가지를 물었다. ① 일년된 송아지 번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까? ② 엄청난 수양의 기름으로 하나님게 드리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까? ③ 초태생인 맏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조건 하나님께 제사만 드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죄가 사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잘못을 회개하라고 촉구하자 어떤 제사를 드리면 회개가 되겠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물론 하나님 앞에 회개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할 일이다. 무엇이 선한 것이며 , 무엇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인가? 본문 8절 " 네게 구하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
공의는 무엇을 말하는가?
공의란 ( Justice ) 의로운 행위를 말한다. 바리새인들처럼 고르반만 드렸다고 부모공경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교회생활만 잘하면 사회생활을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가? 하나님만 잘 섬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 모든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니다. 공의를 행한다는 것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도록 힘쓰는 것이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은 자들을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에서 공정하게 거래하는 삶을 의미한다. 본장 10 - 11절에 잘못된 삶을 지적하면서 일상생활에서 부정한 거래를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저울추를 속이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한다. 12절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선은 공의를 행하는 삶이다. 공의는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정직하게 살라는 말이다.
어떤 성도가 식당을 운영했다.
식당주인은 정직하게 설렁탕을 만들었다. 예수님을 대접하는 심정으로 설렁탕을 끓여서 손님들을 대접했다. 그래서 최고급 재료를 써서 설렁탕을 만들었다. 중국에서 수입한 재료를 쓰지 않았다. 자기 집에서 먹는 것처럼 직접 손수 말들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직업윤리다. 그런데 하루는 그 집의 설렁탕에 문제가 생겼다. 평상시처럼 소뼈를 푹 고는데 . 열두시간 고니깐 거뭇거뭇한 국물이 섞여 나오더라는 것이다. 소뼈를 고면 흰 국물이 나와야 하는데 , 품질이 떨어지는 뼈를 고면 검은 국물이 나온다고 한다. 문제가 생기자 식당 주인은 뼈를 납품한 정육점에 전화를 걸어서 물었더니 , " 아이고 , 죄송합니다. 다른 집에 갈 것이 그 집으로 갔네요. " 라고 변명을 하더라는 것이다. 식당 주인은 정육점 주인에게 " 우리 오늘 장사 못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거 한 두시간에 되는 음식이 아니지 않습니까? 열 몇시간을 고아야 됩니다. " 라고 항의를 하자 정육점 주인이 " 아이고 , 죄송합니다만 오늘만 커피 프림을 타시지요 ." 설렁탕이나 돼지국밥에 프림을 탄다는 말은 들었지만 , 설마설마했는데 대부분의 식당들이 그렇게 해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모양이다. 그 설렁탕 집 주인도 욕심이 작동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많은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은 단호하게 마음을 먹고 욕심에 끌려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다고 한다. 하루 매상이 얼마인가? 그러나 그 날 하루는 힘들게 뼈를 고은 국물을 버리고 식당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앞에다가 쪽지 하나를 써 붙였다고 한다. < 오늘은 재료가 나빠서 장사하지 않겠습니다. > 그 날 식사를 하러 왔던 사람들이 그 쪽지를 보고 놀랐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재료가 나빠서 장사하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쪽지를 보고 놀란 단골 손님들의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 오늘 나 이상한 이유로 문을 닫는 설렁탕 집 봤다. 재료가 나빠서 장사 안 한다지 뭐야? "
성도여러분 ^^
그 식당에 결국 장사가 잘 됐겠는가 ? 안 됐겠는가? 물어보마나...... 그 후로 그 식당에 손님이 미어터지게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것이 정직이다. 이것이 지혜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 , 이런 정신을 원하신다. 이런 마음이 선한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선한 것이다.
둘째 , 자비를 베푸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 인자를 사랑하며- To love mercy " 자비는 이웃에게 베푸는 선행을 의미한다. 어느 누구든지 사람은 선행의 문제가 나오면, 그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 이 문제를 놓고 씨름하며 살아야 할 운명적인 사람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고의 선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 ( 롬 12 : 10 ) 남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 ( 롬 13 : 8 , 10 ) 이라고 말한다. 자비는 형제와 이웃간의 나누어야 할 변함없는 사랑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 우리는 항상 같이 있고만 싶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져주는 사람이다. 힘든 일을 먼저하는 사람이다. 희망을 전해주고 문제를 줄여주는 사람이다.
' 누구를 위하여 중이 울리나 ' '무기여 잘 있거라 ' '노인과 바다 ' 로 잘 알려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어네스트 훼밍웨이는 미국의 소설가다. 그는 일생 네 번 결혼을 했다. 열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러나 61세의 나이에 심한 우울증을 겪다가 고독을 이기지 못해서 그의 사냥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이란 불행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는 마지막 유언을 이렇게 남겼다. "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져 전류가 흐르지 않는 텅 빈 전구처럼 고독하다 "
오늘날 주변에도 이와 같이 허탈한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글을 남겼지만 그에게는 한가지 메우지 못한 텅 빈 마음이 있었다. 명예로도 물질로도 술로도 마약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이웃을 사랑할 때 채워질 수 있다. 마음이 상하고 허전한가? 양로원이나 고아원에 가서 봉사하라! 그렇게 하면 텅 빈 마음에 새로운 에네지가 채워질 것이다. 어거스틴은 사람은 사랑하는데는 네가지 사랑이 있다고 말했다.① 나보다 위에 있는 분을 사랑하는 것이고 ②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③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④ 내 아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러스킨은 [ 하나님을 둘째로 사랑하는 것은 죄다. ] 라고 했다. 그래서 무엇보다 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이웃도 그만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독일이 낳은 유명한 시인 괴테가 지은 이런 시가 있다.
'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훌륭한 일은 한평생을 헌신하여 바칠 수 있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남을 부러워 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은 할 일이 없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에 사랑을 갖는 것이다. '
밤 하늘은 별이 있기에 아름답다. 초원은 꽃들이 있기에 아름답다. 사람은 어떨 때 가장 아름다운가? 마음 속에 선을 베풀고 하는 사랑이 있을 때다. 그 사랑을 퍼 올려서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포로된 자들을 배려하고 위로해 주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주님은 대신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유는? 바로 어머니 같은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구원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 같은 심정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예배 잘 드리는 사람 , 기도 많이 하는 사람 , 찬송 잘 부르는 사람... 아니다. 주님은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이 무엇인가?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다. 엘림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갈급한 사람에게 생수를 공급해 주는 사람 , 더위에 지친 사람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 , 쉼이 필요한 사람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사람을 원하신다. 세상도 이런 사람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평소에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이다. 내가 사랑받지 못한 것은 내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