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교 요 약 -
저희 교회의 표어가 하나님과 화평 그리고 사람과 화평입니다. 그래서 가정 , 교회 , 일터에서 화평케 하는 사람 즉 pease maker로 살아가야 함을 늘 강조해 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완전히 반대로 말씀하시는 것 같은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0 : 34 ~ 36절을 보시면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그 어머니와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 우리는 예수님의 별명을 평화의 왕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자신은 화평이 아니라 불화하게 하려고 온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어딘가 좀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제가 직장에 다닐 때 직원 중 어떤 한 사람이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성경을 가지고 와서 방금 읽으셨던 구절을 보여주면서 자기는 이해할 수가 없다고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가정에 평화가 와야지 왜 불화가 온다고 말씀하셨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 땅에 평화를 주시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천사들이 부른 찬송이 누가복음 2 : 13 ~ 14 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 (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 분명히 예수님은 평화를 주시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분열과 분쟁과 불화가 아주 끊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pease maker로 오셨는데 오히려 trouble maker로 오신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군중과 종교지도자들 사이에 분열이 있었던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분열과 분쟁의 핵심내용은 " 예수가 도대체 누구냐 "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예수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 예수가 누구냐 "라는 주제로 싸우거나 다투신 경험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인 요한복음 7 : 43절을 보시면 " 예수로 말미암아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 영어로는 " the peaple were divided because of Jesus " 예수님 때문에 분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분열된 이유는 지난주의 설교본문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러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에게로 오면 누구든지 목마르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시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에 감동을 받기도 했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감동은 커녕 예수님을 조롱하거나 아예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마도 모세가 예언했던 그 선지자인 것 같다고 생각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아마도 그리스도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깐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출신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지역감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쪽 유다지역 사람들이 북쪽 갈릴리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메시야는 반드시 다윗의 자손이어야 하며 남쪽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신상정보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된 지식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오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예수님이 메시야다 아니다를 가지고 분쟁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분쟁은 일반 대중사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도 있었습니다. 대부분 종교 지도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요한복음 7 : 32을 보시면 "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을 보내니 " 그들이 아랫사람을 보내면서 예수님을 살펴보았다가 잡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오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요한복음 7 : 45절을 보시면 "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 그러자 그 아랫사람들의 대답이 요한복음 7 : 4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러 갔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옛날 한국에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깡패출신인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강변에 천막을 치고 부흥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깡패두목이었던 이 분이 자기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 부흥집회를 훼방하려고 온갖 훙기를 다 들고 그 당시 부흥집회로 몰려갔습니다. 그런데 깡패두목이었던 이 분이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그만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이분은 한국에서 유명한 부흥집회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제가 이 분의 부흥집회에 여러차례 참석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체포하여 잡아오라고 아랫사람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예수님 말슴에 감동되어 그냥 빈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한 아랫사람들은 결코 무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비록 종교지도자들의 아랫사람들이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상당한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던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즉 지식인 층에서도 " 예수가 도대체 누구냐 "에 대한 분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에 대한 반응을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수는 모세가 예언했던 그 선지자이거나 메시야일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오히려 군중들 속에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두번째는 예수는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주로 종교지도자들이 여기에 속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긍적적으로 평가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이라고 조롱했으며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고 무시했습니다. 요한복음 7 : 47 ~ 49을 보시면 "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 여기서 미혹되었느냐란 말은 너희도 속아넘어갔느냐란 뜻입니다.
그러나 정말 누가 속은 것입니까?
정말 누가 저주를 받은 것입니까?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종교지도자들이야 말로 마귀에게 속은 것이고 비록 율법을 달달 외우는 성경 전문가들이었지만 생명의 예수님을 믿지 못한 종교지도자들이야말로 저주를 받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 예수가 누구냐 " 라는 질문은 단지 예수님 당시에만 있었던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2000년 동안 계속되어진 질문입니다. 현재 교회안에서의 질문이기도 했고 아직도 교회 밖에서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내가 어떤 대답을 갖고 있으냐에 따라 나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과 관련된 가장 심각했던 질문은 " 예수가 사람이냐 아니냐 아니면 예수가 하나님이냐 " 라고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도 인간의 혈통을 따라 태어났으니 당연히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단지 차이가 있다면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성인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코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잠시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고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예수님은 이미 예수님의 몸에서 탈출해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의 말이 옳은 것 같습니까?
둘 다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이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50%는 하나님이고 나머지 50%는 인간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시며 100%인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가장 큰 신비에 속하는 진리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는 도대체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 : 1을 보시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여기서 말씀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즉 이 구절의 의미는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아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결코 사람은 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예수님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 : 14을 보시면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처럼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 즉 예수님의 원수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이서 1: 7을 보시면 "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그가 비록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할지라도 그는 바로 적그리스도 즉 예수님을 대적하는 원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입고 오심을 믿지 않는 것이 그렇게도 큰 문제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이 거짓말이 되고 결국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맛보기 위해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2 : 9을 보시면 "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 예수님은 결코 죽을 수 없는 생명의 하나님이시지만 죽음을 맛보기 위해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죽음을 친히 맛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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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꼭 예수님만이 인간을 위해서 죽으셔야 했습니까?
천사가 인간을 대신해서 죽으면 안 됩니까?
혹은 인간 중에서 가장 깨끗하고 최고로 흠이 없는 누군가가 대신해서 죽으면 안 되는 것입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인간의 죄를 위해서 대신 죽을만큼 거룩하고 깨끗한 사람은 이 땅에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생명 가치는 단 한 사람의 생명 가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생명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셔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 예수님이 죄인을 대신해서 죽기 위해서는 비록 하나님이지만 사람이 되셔야만 했습니다. 두번째 ,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죄인을 대신해서 죽을 때 죄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이셔야만 했습니다. 세번째 ,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하려면 인류의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값어치를 다 합친 것보다 더 큰 분이 죽으셔야 했기 때문에 그 분은 반드시 하나님이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반드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신 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나와 우리 모든 죄값을 대신 갚으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셔서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외없이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 예수가 누구냐 " 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얻으셨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라는 해답을 갖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분쟁과 분열과 불화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해답을 갖고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비로써 참된 화해와 평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평화를 누리면서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님을 믿는 저희 모두는 이미 화목하게 하는 능력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 능력으로 분열과 분쟁과 불화가 있는 곳에 화해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주님의 참된 제자들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지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오히려 분열과 분쟁과 불화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예수님은 나에게 평화의 왕이 될 수도 있으며 불화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신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요. 구원자 되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깨닫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어디에서나 화평케 하는 자 pease maker로 살아감으로써 평화의 왕되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또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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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 분쟁을 일으켜서 표출된 분쟁의 소재들을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여 하나님의 불로 소멸하시고는 다시는 분쟁이 없이 서로 불쌍히 여기고 돌아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쟁과 다툼이 있을지라도 사람으로 서지 못하고 망하게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 너희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 ( 디모데후서 2 : 14 ) 그러므로 우리는 분쟁의 소재를 마음 속에 품고 있을 것이 아니라 표출시키고 회개하게 하여 하나님의 불로 소멸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쟁의 소재가 없이 깨끗한 양심 하나님을 찾아가는 선한 양심으로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 같은 ( 베드로전서 2 : 11 ) 우리들이 서로 돌아보며 ( 히브리서 10 : 24 ) 불쌍히 여기며 ( 에베소서 4 : 32 ) 하나님의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서로 사랑하며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 ( 로마서 8 : 28 )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서로가 자랑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 크리스챤의 예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