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80또래 송인수입니다.
이번에 JOY선교회에서 LInP 1기로 인도 꼴까타에 두주간 사역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온지 두주가 넘어서야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정리도 하며, 돌아보고.. 저의 본연의 삶으로 돌아오는 시간이였습니다.
교회의 형제님, 자매님들의 기도와 후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제가 가서 보고 느끼고 왔지만, 우리들 교회 청년부의 기도로 저는 이 큰 군대를 이끌고 인도를 밟았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후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음을 고백드릴 수 밖에 없네요. 지금부터 여러분들과 인도에서의 사역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으려고요..
출발하기 전엔 여전히 마음 가운데 무거운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문제, 가정의 고난, 그리고 교회에 대한 서운한 마음(지금은 제 죄임을 알고, 잘 정리되었습니다^^).. 출발하기 전 주일까지 채워지지 않는 재정을 두고, 여전히 신뢰하는 마음은 있었으나, 전적인 신뢰가 되지 못해, 불안해 했었음을 고백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제정이 채워지지 않으면 나가지 말라고 하셨었는데, 감사하게도 출발 전날에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 우리 팀 15명 모두가 그렇게 많은 축복을 받고 저희는 인도땅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싱가폴의 Changi 공항을 거쳐 1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우리가 두주간의 사역을 도울 Grace Community Centre가 있는 꼴까타였습니다. 인도의 북동쪽, 웨스트 벵갈주의 꼴까타 시는 인도 수도가 뉴델리로 옮겨지기 전에 정치적, 경제적인 수도역할을 해왔던 큰 도시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꼴까타 국제 공항에 닿는 순간, 전..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포교활동은 금하고 있는, 힌두교 세력이 정치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인도땅에 저희는 관광이라는 명목으로 들어가야 했으며, 우리가 같은 팀이라는 것이 티가 나지 않도록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으며 또한, 저에게 가장 피부로 와 닿는 어려움은 제대로 숨쉬기가 곤란한 공기였습니다.
공항에서 빠져나오자 마자 마주하게된 수많은 인도사람들.. 몇몇 아이들은 저희에게 초콜렛이나 달러를 구걸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전, 과연 2주동안 내가 이 땅에서 버틸 수 있을까, 이 무섭게 생긴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이땅에 왔는데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부족한 생각들이죠?
저희를 마중나와 주신 로수종(Rho Sujoy)목사님과, 진혜경 사모님, 그리고 폴라시와, 쥬엔또..(현지 신학생이자, 사역자들). 이 분들이 저희를 환영해 주셨지만, 공항에서 우리가 묵게될 Guest House까지 가는 40분 정도의 꼴까타 거리를 달리면서, 저희 팀 모두는 아마 침묵하며 기도할 수 밖에 없었죠.. 정말 낯설고도 낯선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차는 거리에 꽉 차있는데, 신호등, 차선이 없는 길을 한번도 쉬지 않고 달리는 위에 보이는 저 버스..문화라지만, 벌써 저희 맘속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하는 판단의 죄들이 꽉 차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이곳입니다. 우리가 두주간 묵게 될 게스트 하우스.
. 다음날 아침 전 일찍 일어나서 바깥풍경을 둘러보았습니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모습이였는데, 여자들이 다들 스카프를 두르고 바쁜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죠.. 인도에선 여자들이 발목이나, 쇄골쪽을 보이면 안되다고 그러네요.. 저렇게 편하게 입는 일상복을 츄리다 라고 부르던데, 항상 스카프와 함께 입는다고 합니다. 스카프를 안하면, 한국에서 웃옷을 벗고 다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합니다..
일어나서 큐티를 합니다. 13일간, 저희는 이곳에서 열세장의 히브리서를 하루에 한장씩 묵상을 했습니다.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그 말씀이 아니였다면, 저희가 제대로 깨어 있을 수 없는 시간이였음을 고백드립니다. 제가 따로 묵상했던 매일성경의 마가복음부분도 저에게 큰 힘과 통찰력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선 하루하루 말씀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식사는 항상 쨈바른 빵조각과 삶은 달걀, 사과, 귤, 바나나.. 그리고 인도 차인
쨔이 라고 부르던 음료였습니다. 아직도 그 쨔이맛을 잊을 수가 없는데 우리의 데자와와 비슷한 그 맛을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인도에서의 첫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별다른 사역이 없이, 꼴까타 시를 둘러보고, 우리가 꼭 둘러봐야 할 몇 군데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먼저 꼴까타 시의 가장 세력이 큰 우상인 깔리의 신전을 둘러보는 것이였고, 마더 테레사가 세운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집, 그리고 겐지스강이였습니다.
깔리라는 신은.. 보라색의 팔이 네개달린 여신이였습니다. 그의 남편은 쓰바. 깔리는 정복의 신으로, 인도에서는 3억개의 우상중 하나지만, 이곳 꼴까타에서 가장 세력이 큰 신이였습니다. 인도인은 종교과 생활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 자체가 종교라고 할 만큼 종교적입니다. 은혜가 없는 이러한 우상들을 섬기기 위해 그들은 그날도 깔리 신전을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피의 제사가 드려지고 있는 이 땅. 우리는 눈빛에 초점을 잃은 듯, 바쁘고 시끄럽게 신전을 채우고 있는 인도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쳐지는 염소는 목을 잘리고, 아직도 그 염소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선합니다. 잘려나간 몸둥이는 여전히 핏물 가운데서 발길질을 하더군요.. 그리고 그 염소는 공공연히 옆에서 가죽이 벗기어 다시 팔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친히 만나주시지 않으셨더라면..
은혜였습니다.
제가 이 무리들 가운데서, 이상한 음악과 함께 이곳에서 신을 벗고 이러고 있지 않음이 바로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로 나는 매일의 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됨을 인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피의 제사를 십자가 위에서 단 한번에 치루셨음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였습니다.
제가 듣고 배워 온 성경의 말씀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 사람들도 알게 해달라고.. 우리는 .. 그곳에서 한사람 한사람의 눈빛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이 더럽고, 추한 죄인인 저도 만나주신 주님께서 이곳의 사람들도 만나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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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리신전 앞 광장의 코너쪽에 있는 마더 테레사 하우스.
이곳은 테레사의 여러 사역지중 한곳인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집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실내 촬영은 할 수가 없었구요.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입니다.
그러나 이곳엔 복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마터 테레사가 구제하는 일을 많이 했고, 그래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인물이었으나, 그가 한일은 좀 더 온전한 몸으로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고..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는 수많은 봉사자들.. 제가 갔을때도 미국에서, 일본에서 온 봉사자들이 그곳에 있었구요.. 벽에 붙은 테레사 수녀가 남긴 말들만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정작 죽어가는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른체 이렇게 누워있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떠한 선교활동 또한 이 안에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은 겐지스강이였습니다.
말로만 들어왔던 겐지스. 과연 이시대에도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을까? 네.. 맞습니다. 상황은 우리가 매체로만 보아 왔던 것처럼 신비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는 광경이였습니다. 힌두의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겐지스강에 씻어 내리는 의식을 해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물이 더럽고, 냄새가 나도, 겐지스는 그들에겐 聖水입니다. 그들의 문화이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너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날 하루, 내가 한국인인것과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에 대해..
감사, 또 감사하는 날이였고..
인도..
인도라는 나라는.. 절대 여행을 갈만한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
선교가 목적이 아니라면 인도의 공기와, 교통.. 사람들은 결코 여행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였다..
이렇게 인도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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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토요일이였습니다.. 꼴까타 시를 둘러보며, 인도의 상황들을 살펴보았죠. 지금 저희는 인도에 단기선교로 와있습니다. 이 사실은 중요합니다. 하루하루, 우리를 위해 기도의 동역자들이 세워져있었고요.. 저희는 공동체로, 하나의 팀으로 인도땅에 왔습니다. 이것은 저희의 사적인 일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깨어있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나눔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오늘 일정은 예배입니다. 은혜공동체, Grace Community Centre에서의 예배를 도와 우리가 준비해온 사역들을 보여주는 시간을 갖도록 되어있습니다. 아침 일찍시작하는 어린이 예배, 어른들과 청년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와, 오후의 청년 예배..
한국교회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목사님이 인도분이심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신학공부를 하시고, 안수를 받으셨기 때문이죠.
아침을 일찍 시작합니다. 어린이 예배가 7시 반에 시작이거든요. 저희는 6시부터 일어나, 큐티와 식사로 영적, 육적 에너지를 공급받은 후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2분거리에 있는 교회로 향합니다.
어린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배시간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교회의 닫혀진 창살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그들의 눈빛이 보이시나요?
어제 봤던 깔리 신전에서의 사람들.. 물론 어린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눈빛과는 다른 정말 맑은 이 눈빛을 보고 인도의 미래를 기대해 보았습니다.. 이 어린 아이들의 이러한 열정이 나에겐 있는가?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이렇게 교회에 모이고 싶어하는 이런 사모와,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나에겐 있었는가..

우리를 신기해 하던 아이들과 금방 친해 질 수 있었고.. 몇마디 배운 인삿말로 아이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너머스까~

저희가 준비해온 워십과 드라마를 보여줬고요..

아이들은 몇곡 안되는 벵갈어 찬양을 온 힘을 다해 찬양했습니다.
찬양이란 저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온 열정을 다해 찬양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말씀을 듣는 아이들.. 정말 똘망똘망하죠? 우리 사모님이세요.. 진혜경사모님..
인도를 정말 사랑하는 분.. 이분이 남기신 명언이 있습니다..
차는 차도로, 사람은 인도로~

하나님..
이들이 인도의 미래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은 더욱 저희를 돌보시지 않습니까..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도 받고요,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집에서도 많이 혼나요..
이 어린영혼들..
어렸을 적 부터 주님을 잘 알아가게 해주세요..
이들이 인도의 미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들이 될 아이들입니다..
나는 주일 아침에 이들에게 배운것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돌아가는 이들에게 한국에서 공수해온 사탕과, 얼굴엔 페이스페인팅을 선물로 줬답니다.








고대 06 신상훈

이화 05 이윤지, 숭실 05박진주
아이들과의 만남 후에 대예배를 드리고,
점심식사후에 청년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청년들에게도 우리가 준비해 온 것들을 보여줬는데.. 사물놀이 빼고는 거의 다 보여줬어요.. 내일부터 섬사역이 시작되는데 이곳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고 해서.. 연습삼아 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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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고 즐거워하는 청년들..^^


전 간증도 했답니다.. 제가 이곳에 와 있는 이유에 대해서 나눴는데.. 나의 환경에서 함께 하셨던 예수님을 나눴죠. 항상 있었던 Up and Down의 신앙생활과, 집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던 이유..
마지막엔... 이런 말을 했어요.
이곳에 와서 청년예배를 드리면서 느꼈습니다.
도전이 많이 됩니다. 여러분 중엔 종교를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바꾸었다는 이유만으로 집에서 쫓겨나신 분도 계시고,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분도 계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환경가운데서도 예수님을 선택한 여러분을 하나님께서도 인도땅을 위해 여러분을 들어 쓰신다는 것을.. 저희는 잠깐 왔다 갑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 여러분이 계셔서 참 든든합니다. 우리가 겉모습을 다르지만, 한 형제, 한 자매라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아마도 천국이 이런 모습일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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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서 계신 분이 목사님 이십니다..^^ 저는 한국말로, 목사님께서 벵갈어로 통역해주셨죠.. 이런 영광이..한국이름이 로수종.. 인도 본명은 로우슈죠이...
너무 푸근하시고 재밌는 목사님.. ^^

청년들과 함께..
이렇게 하루가 또 갑니다.
내일은... 드디어 본격적인 사역인, 섬사역이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 만난 아이들과 ,
청년들을 하나님의 나라에서 모두 다시 볼 수 있길 기도하며..
인도에서의 셋째날이 밝았습니다. 월요일.. 오늘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합니다. 모두가 긴장하며 기다렸던 섬사역. 아직도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다만, 배를 타고 닷새동안을 돌아다니면서 배에서 자고 먹고 해야한다는 사실..
인도의 겐지스강 하류엔 많은 오지같은 섬들이 있습니다. 배를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그곳엔 교회는 물론 없구요, 외국사람 구경하는 일도 드문 곳이랍니다. 순덜번 지역에서 뱃길로 들어가는 이 섬들은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구요..
우리의 주된 사역이 이곳에 가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저희가 하는 것은 아니구요, 저희는 가장 중요한, 사람을 모으는 일을 합니다. 저희가 준비해간 모든 드라마, 워십, 사물놀이, 율동, 어린이 사역등.. 은 모두 사람을 모으는 일에 쓰이기위해서 준비되었던 것입니다.
실은 나중에 깨달은 것인데, 저희가 인도에 가기 전에 어떤 사역들을 준비해야하나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현지 목사님과 의사소통이 어려워서, 막연히 이것저것 준비하게 되었는데, 감사하게도, 우리가 준비해 간 모든 것들이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고 모두 쓰임받고 왔다는 사실이였어요. 사역도 마찬가지지만, 우리팀 한명 한명이 얼마나 귀한 위치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이였는지를.. 하나님께서 공동체로 일하심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사역 얘기로 돌아가서 다시 월요일 아침입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난 우리는 전날 꾸려 놓은 짐을 점검하고, 큐티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곧 배를 타는 곳까지 우릴 태울 버스가 도착하죠. 이 버스.. 비행기보다, 멀미를 더 하게 만들었던.. ^^

함께 사역을 떠나는 사람들은 이러했습니다.
LInP팀 15명과, 목사님, 목사님을 보좌했던 단기선교사 형은자매, 수성교회에서 온 형제 세명(이들은 작년 여름에 이곳으로 사역을 왔었던 팀의 일부인데 이번에 자비로 은혜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왔다가, 우리와 함께 사역을 가게 되어 Staff로 섬기게 된, 진수, 형원,찬호.), 그리고 은혜공동체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는 현지인 형제들, 폴라시, 죠엔또, 쇼미뜨로, 고떰, 멀라이, 공동체에서 개척한 섬에 있는 교회를 담당하고 있는 숀집 전도사님... 우리는 이젠 하나의 가족으로 묶인 것이였어요.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우리처럼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리는 하나의 열정을 갖고 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바로 구령의 열정입니다.
배를타러 가는데 걸리는 시간만 2시간, 중간에 차는 한번 펑크가 났습니다. 역시, 사단의 공격들이라고 느낄 수 있는 일들이 벌어졌지만우리는 그때 찬양을 불렀답니다.

차가 터져 긴급회의가 열리고 있는 목사님과 현지 Staff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찬양하는 LInPer들.. 눈사태가 나, 갖히게 된 죠어들은 눈싸움을 했다는 비유가.. 강하게 떠오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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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한번 갈아탔어요.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순덜번에 도착했습니다.
배를 탑니다. 짐을 싣고, 드디어 출항합니다.
우리는 정확한 목적지가 없었습니다. 배의 선장님과 현지 스텝들이 그날 그날 사역 경로를 정하는 듯 싶었습니다.
닿는 곳 마다 내려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였습니다.
인도의 Mercy Ship이 되어 5일간 저희는 부지런히 다닐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탔던 JOY호를 소개합니다. (신기하게도 키가 있는 배의 앞부분에 선명하게 JOY라는 글씨가 써있었습니다. 오호.. 우리가 올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 나중에 사진에 나오면 설명드릴게요.. )

이렇게 생긴 이 배가 우리가 5일동안 살았던 배입니다. 윗층은 선장실과 각종회의, 큐티,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형제들이 저 위에서 별을 보며 잤구요, 아래층은 부엌과, 짐들을 놓는 공간, 그리고 자매들이 자는 공간이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저 뒤에 보이는 화장실.. 하하.. 위, 아래 다 뚫려 있는 저 공간은 서 있으면, 가슴 아래쪽만 가릴 수 있게 설계, 일을 보고 난 후, 딸려있는 양동이로 강물을 퍼다 붓죠.. 그리고 그 뱃머리에서는 동일한 강물로 설겆이가 이루어 진답니다..
그럼 사역을 살펴보기 전에 배 위에서의 생활을 잠깐 보여드릴게요..

사역 중간 중간, 저희는 찬양을 쉬지 않고 했습니다.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 지 몰라요..
기타반주 양정규(인하03), 신혜민(성균05), 이윤지(이화05).
배 위의 모습.. 기도도 끊이지 않았죠..^^ 아침엔 이곳에서 큐티도 합니다..

하루 세끼를 아주 잘 먹었습니다. 경원05 이정은, 고려 06 신상훈.
걱정했었는데 밥은 너무 맛있었어요.. 특히 자매들이 독특한 향 때문에 가리진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자매들이 더 잘 먹었습니다.
식사담당은 우리 죠엔또 였는데, 음식솜씨가 최고였습니다.

여기가 바로 XXX. 근데 그거 아세요? 저희가 상상하던 것보다 너무 훌륭해서 다들 감탄했었다는거.. 대충 듣기로 저희가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근데 더 깨끗하고, 냄새도 않나고.. ^^ 다만 저렇게 잡지 않고 있다면, 무슨일이 일어날 줄 몰랐죠.. 하여간, 색다른 경험이였습니다.. 촬영협조에, 심재인 간사님.^^

화장실은, 배가 움직일때만 이용한다. 은연중에 생긴 조례같은 것입니다. 저렇게 배가 정박하고 있을 땐, 물이 역류하여, 어떤일이 생길 줄 모르죠.. 물이 워낙 더러워서 뭐 그래도 같겠지만.. 앞에서 설겆이 하고 있는 ^^ 서울05 가혜.

아침에 큐티하고 쉐어링 하는 장면입니다.
물이 마실 물 밖에 없어서 씻기는 고사하고, 양치도 칫솔질에, 가그린으로 행구고..^^ 하하.. 양치도 전 하루에 한번밖에 안했지만..^^ 밥을 먹어야 하는데 손은 어떻게 씻냐고요? 그래서 준비해갔습니다. 물티슈.^^

배 앞모습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는 입구도 보이고, 수성교회 형제 뒤로 보이는 글씨 보이세요? JOY, MASITALA.. 우리를 놀라게 했던 저 이름은 이 배의 수호신격인 우상이였습니다.ㅜㅜ 맙소사.
5일동안 이 좁은 배위에서 지내면서 어찌 조용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도 고백했고, 지금도 떠오르는 것은 정말 다들 귀한 경험들 뿐입니다. 팀원 하나하나, 섬김과, 양보, 순종으로 무장되어 있어서 였는지, 불평, 불만 하나 없었던 우리들만의 크루즈가 되어
마음속 깊이 남아있습니다..
아.. 이젠.. 본격적으로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간단하게 이렇습니다. 배가 강을 둥둥 떠 다니다가 마을의 부두에 닿습니다.
부두라고 해봐야, 어쩔땐 뻘을 지나가야 할때도 있었고요, 그렇게 배가 닿으면, 우리 폴라시와 숀 전도사님께서 그 마을로 먼저 정탐을 들어갑니다. 한번은 저도 따라 가봤는데 가서는 이 마을의 분위기, 상황,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가 준비해온 사역들을 할 수 있는지를 허락을 맡더군요.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쾌히 승락했습니다. 이사람들에겐 하나의 이벤트 일 수도 있기 때문이였겠죠.
우리같은 외국인을 보기도 힘들었겠고.. 그래서 이런 방법이 통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현지인들이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이런 기회를 만들기가 더 어렵다는군요. 관심을 안 갖는 경우가 많아서요.. 그래서 허락이 된 마을에서는 사역을 합니다. 시스템과 장비(그래봐야 발전기, 엠프, 마이크..)들이 먼저 나가고, 우리는 우리가 준비해온 것들에 필요한 소품들과,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줄, 사탕, 은혜공동체에서 준비한 전도지, 볼펜 등을 챙겨서 배에서 내립니다. 보통의 마을은 모두 넓은 공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공터엔 꼭 그 마을의수호신을 모셔두는 신당도 하나씩 있었고요.. 저희는 대부분 그런 신당이 있는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대적기도와 함께.
저희가 준비한 것들을 보여줍니다. 때론 미리부터 사람들이 모여드는 경우가 있고요, 때론 사람들이 잘 몰라서 마을 곳곳을 들어가서 사람들을 불러낸 곳도 있고요, 이런 상황엔 사물놀이가 제대로 쓰였습니다. 소리가 크기때문에 마이크에서 현지 스텝이,
아논도 숑박, 아논도 숑박, 슈보 숑박...(기쁜소식, 기쁜소식~)이라고 외치면서 사람들을 모으는데 큰 역할을 한것이죠. 저는 징을 맡았습니다. 소싯적의 경험을 살려서..^^
순서는 끊이지 않고 계속됩니다. 사람들이 거의 많이 모였어요. 복음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처음에 다들 호기심으로 모였겠죠.
거의 모든 마을마다 아이들을 뺀 어른들만 100명 이상씩 모였던거 같아요..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영혼들이 꼭 이자리에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매번 기도의 응답을 느낄 수가 있어서 감사했어요. 사물놀이에 이어서, 3개의 워십, 3개의 드라마가 각 섬마다
돌아가면서 보여졌고요, 드라마는 무언극, 내용은 폴라시나 목사님께서 벵갈어로 설명해 주었고, 위십에 쓰인 한국 찬양과 영어찬양도벵갈어로 번역되어 설명되었답니다.
그 눈빛들이 기억나요. 정말 하나하나 저희의 움직임에 너무 집중하고 있었어요. 우리의 미소, 몸짓이 그들에겐 언어가 되었다고 봅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았어요, 아니 완벽할 수가 없었죠.. 다연히.. 그럼에도 우리의 이 작은 몸짓과 재능들이 쓰임 받는것에 대해 정말 큰 경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부족하고 한참 부족한 저희들이 그 통로로 쓰였으니까요.
40분 정도의 공연이 끝나고 나면, 메시지가 이어집니다. 목사님은 현지분이시기 때문에, 메시지는 간사님이 하시고, 목사님께서 통역하시는 형태로 그들에게 복음의 핵심, 예수님과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아까 언급했던대로 이들에겐 이것이 더 효과적이였던 것이죠. 각 순서를 맡은 지체들은 정말 최선을 대해 뛰었고요, 다른 지체들은 뒤에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역사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이들에겐 어쩜 생애 한번 일 수 있는 순간이니까요. 눈을 감고 기도할 수가 없었어요, 그들의 관심은 앞에서 메시지를 하는 간사님 뿐만 아니라 앉아있는 우리에게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도 집중하여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메시지 후엔 Calling이 이어집니다.
정말 귀한 순간입니다. 이 순간은 정말 모두들 너무 너무 긴장했을 거에요. 내가 바라보고 기도했던 저 영혼이 혹시 복음에 반응을 할까.
인도의 다신교적인 신앙때문에 이들은 여러 우상을 이미 섬기면서도 예수님 또한 믿어보자라는 식으로 영접에 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는 유일신인 하나님과 그의 아들에 대한 믿음만이, 다른 어떠한 우상도 아닌,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기도하는 법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반응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처음엔 놀랐습니다. 이사람들 어떻게 한번 듣고 이렇게 믿겠다고 나올 수가 있는가..
무릎을 꿇고 영접기도를 따라하던 이들..
기도가 끝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신 할머니..
하나님께서는 정말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일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고 계셨고, 그들이 그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
마을마다 2,30명씩.. 혹은 2, 3명씩.. 한마을도 열매를 거두지 않고 떠난 마을이 없었습니다. 혹 어떤곳에선 극단적인 힌두교인들이 방해를 해서 공연후에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자리를 옮긴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지는 곳곳마다 열매들이 맺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5일동안 17군데의 섬 마을을 다녔습니다.
지금도 한군데 한군데, 마을의 모습이 정말 달랐던 것과, 마을 사람들의 느낌도 달랐던 것. 그리고 두명만이 영접했던 한 마을의 청년 두명이 기억속에 남아있습니다.
사역을 담은 사진들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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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게 특별히 따로 주어진, 페이스 페인팅, 풍선, 사탕.. 어린이 사역이였고요.
어른들중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주소와 이름을 적습니다.
이 마을에 교회가 세워지기 전까지 이들에겐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공부자료가 우편으로 배달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젠 정말 하나님께서 아니시면 이들을 양육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그 말씀을 접하고 하나님을 알아갈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아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인도하지 않으신다면, 그들은 처음 인정한 예수님의 그 믿음에 정체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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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의 섬사역후엔 정말 그리워하던, 꼴까타에 있는 은혜공동체의 아이들을 한번 더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어렵게 느껴졌던 꼴까타 시와 은혜공동체가 어찌나 좋던지.. 주일예배 땐 사역보고, 간증하는 시간을 갖았었죠.
월요일엔 섬사역과 대조적인 육지사역을 하루 나갔습니다. 우리가 하는 것과 방식은 똑같았으나, 육지사역때 힘들었던것은 사람들의 반응이였던 같습니다. 아까 말했던 힌두교인의 방해가 육지사역에서 있었구요, 섬사람들은 참 순하고, 착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죠, 육지의 인도인에 비해서..
사역을 마무리하고는..
화요일은 리트릿을 갖고, 맛있는 곳에 가서 밥도 먹었구요,
수요일은 돌아오는 날, 점심을 또 맛있는 곳에 가서 먹구, 못가본 곳 구경도 하고.. 그리고 밤에 인도를 떠났습니다.
어쩜 십분의 일도 안되는 LInP사역에 대한 보고였습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제가 참 정리하는 은사가 없음을 여실히 깨닫네요.
아직 하고 싶은 말, 품고 있는 말.. 특히 우리 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부족합니다.
제가 보고, 느꼈던 것들에 대한 책임의 의무를 성실히 하겠습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요.
길고 나만 재밌었던 이야기들 들어주신 당신께 부탁이있습니다.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시고요, 인도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고마워요.
우리들교회가 있어서 참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