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수(2)
작성자명 [나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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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4.10.03
어제 글을 길게 써서 넘 지루하지 않았어요?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이런 저런 생각이 너무 많이 나네요.
아무래도 장편이 될 것 같아요...
저의 중학교 시절은 싸이먼 앤 가펑클과 비틀즈의 음악을 흥얼거리지 않으면 아이들 축에 끼지도 못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를 보며 학교에서 친구들과 흥분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들 중딩시절에도 여전히 왕따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무서운 분위기는 아니었답니다.
고등학교 때는 비지스의 음악에 심취했고 통기타를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분위기라 저역시 고1때부터 통기타를 매고 집에서 열나게 송창식과 윤형주, 양희은의 포크 송들을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영화 대부 는 미성년자 입장 불가였지만 교복입고 당당하게 극장에 갔습니다. 선생님들께서 극장에서 학생들을 잡으셨는데도 말입니다.
잘 놀기도 했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나름대로 장래에 대한 고민도 했지만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는 인생, 그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가서 작가나 교수가 되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저의 인생 최대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공부 안하고 놀기만 하거나 목표의식이 없는 친구들을 한심하게 보거나 마음속으로 많이 무시하고 경멸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나중에 바로 저의 자녀가 될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전공과 원했던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어서 대학시절은 정말 신이 났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저는 조각을 전공했지만 1학년 때는 다른 것에 많은 관심을 쏟기로 결정하고 학보사 기자가 되었습니다.
6개월 수습기간을 마치고 나니 나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데모가 대학가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이 잡혀가고 학교가 휴교되고.. 그럭저럭 기자도 그만두고..
선배의 인도로 이젠 탈춤반에 들어가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각 대학마다 탈춤판이 벌어지면 학생들은 자기 학교와 상관없이 판이 벌어지는 곳마다 모여 들었습니다. 탈춤은 데모대신 나라를 풍자하는시위 활동이었습니다.
어느날, 연세대에서 탈춤판이 벌어지고 난 후 학생들이 모두 모여 학교 근처 식당에 들어가 시국을 걱정하는 발언들을 심각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고 난 후 저는 크리넥스 휴지를 꺼내어 입을 닦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연세대 남학생이 저를 보고 부르조아같이 비싼 휴지로 입을 닦다니! 하면서 고함을 질렀습니다.
이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내가 잘 못 들어온거야...
모두 감정없는 전사같은 얼굴을 하고 너무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도, 탈춤도 어떤 것도 제 마음의 평강과 위안을 줄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맞물려 어머니가 돌아가신 빈자리는 제게 부정적으로만 작용했습니다. 말도 안하고 딱딱하고 무심하고 우울한 사람으로 자꾸 치우쳐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저보고 교회에 한번 나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별 생각 없이 순순히 따라 나갔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마포였는데 반포까지 상당히 먼거리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갔습니다.
홍정길 목사님의 남서울 교회였습니다. 제친구의 오빠 교회였습니다. 저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기도 했는데 말씀이 어떤 때는 잘 들렸다가 어떤 때는 너무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새신자반에 들어가 몇 번 성경교육을 받고 난 후 예수님을 영접하겠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청년부에 들어가 따로 모여서 10단계 성서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성경공부를 하다가 너무 이상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곧잘 하였습니다.
왜 그런데요?...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 복음이 1890년대에 들어왔는데 그전에 사람들은 예수도 모르는데 다 지옥갔어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 속시원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보고 그런 질문은 하지 말고 성경을 읽다보면 저절로 깨닫게 된다고만 했습니다.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학생들은 모두 꼬다 논 보리자루 같고 패기도 없어 보이고 기타들고 여학생들과 찬양부르며 웃기만 하는 남학생들이 나약하고 모잘라 보였습니다. 데모에는 관심도 없고 나라도 걱정하지 않는 이들이 정말 매력없어 보였습니다. 당시 청년부 전도사님은 지금 GBT(성경번역 선교회)의 그 유명한 정민영 선교사였습니다.
교회는 뭔 교회...
다시 학교에 열심히 다니면서 학교생활에 집중했습니다.
4학년이 되면서 과제를 열심히 하며 긴장된 생활을 하는데 어느날 정말 멋진 핸섬 가이가 우리 과에 들어왔습니다. 복학생(군대제대하고 다시 대학에 복귀한)이었습니다. 모든 여학생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는 순간이었습니다.(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