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고3을 맡고 있는 나화주쌤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사실 홈피에 자주 들어와서 여러분들의 글도 읽으면서 답글을 달아야 하는 부담도 느꼈고 또 여러분에게 의미있는 말씀을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일학교를 마치고 교사회의 때 중고등부 홈피에 각 반별로 선생님께서 먼저 큐티나눔을 올리자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고3 선생님부터...
저녁을 먹고 난 후 마음속에 약간의 부담을 가지고 양재천에 산보를 혼자서 나갔습니다.
아이들과 어떤 말씀을 나눌까? 계시록의 본문을 가지고 약간의 적용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차지가 않았습니다.
1시간을 걸으면서 생각끝에 요즈음 우리담임목사님께서 내인생에 임한 큐티 라는 제목으로 10주간 CTS방송을 하시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나의 삶속에서 만난 예수님을 연재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족하지만 학생의 때를 거치고 중고등부를 거친 자녀를 둔 저의 삶을 학생들에게 오픈하면 나눌 은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6자매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유교와 불교를 숭상하시고 어머니는 점, 굿, 온갖 잡신과 우상숭배를 하셨습니다. 저희집은 매달 제사와 자주 굿판을 벌여 밤새도록 무당이 춤추며 온집을 돌아다니면 귀신을 쫓는다고 바가지에 식칼을 꽂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사 때며, 굿판이 벌어질 때면 아버지께서 7남매에 장손이셨기 때문에 집안의 친척들이 저희집에 항상 들끓었고 저희들의 개인적인 삶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부모님께서 늘 제사 모시느라 우리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바쁘신 일들이 이해되지 않았고 무당의 행동이 우스웠고 이상하게만 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어려도 하나님이 주신 지각이 뛰어났기 때문에 분별되어졌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와는 상관도 없는 집에서 태어났어도 저는 어릴때부터 교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교회에 다니다가 부모님께 들켜 성경책을 찢기고 더이상 교회에 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교회에 가면 남자와 연애하게 되고 품행이 나빠진다고 딸만 있는 저희집 부모님은 철저하게 단속하셨습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때는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보내 주시곤 하셨습니다. 크리스마스때 교회에 가면 선물도 받고 연극도 보았는데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릴때 저희집 벽이 하얀 회벽이었기 때문에 낙서하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부모님께서 막내인 저에게는 무조건 내리사랑을 하셨기 때문에 회벽에 그림을 정말 많이 그렸습니다. 아무리 낙서를 해도 저를 야단치고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회벽에 그림그리다가 이제 집안으로 들어와 종이마다 그림을 그려댔습니다. 42세에 저를 낳으신 어머니는 어린 딸이 그린 그림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고 아버지께서는 제가 그린 그림을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가서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인정과 칭찬으로 저절로 나중에 크면 화가가 되리라는 꿈을 키웠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서울에 사는 큰 언니가 서울에 와서 학교에 가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했습니다.(당시 저는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입시 시험을 치뤘습니다) 그래야 미술대학에 가기가 쉽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부모님의 지나친 사랑과 관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저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무조건 서울로 간다고 떼를 썼습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 위한 저의 강청이 승리를 하여 드디어 서울에 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로부터 독립과 자유는 많은 희생이 따랐습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았고 조금만 잘못해도 저를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큰언니 집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저는 늦잠을 편히 잘 수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조카들에게 본이 되지 않는다며 언니는 일일이 간섭하고 야단을 쳤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는 너무나 다른 사랑이었습니다.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 싶어도 눈치가 보이고, 먹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내멋대로 살다가 모든 것에 제약을 받으니 죽고만 싶었습니다.
방학이 되어 집으로 내려가면 부모님과 언니들은 느린 시간속에 갇힌 사람들처럼 긴장도 없고 의식도 없는 사람들처럼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나의 고민과 슬픔을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한 채 내속으로 내속으로 빠지며 우울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1975년 대학입시를 치루고 나서 시험발표 3일 전, 어머니는 췌장암으로 60세의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절규했지만 겉으로는 표현되지가 않았습니다. 장례기간 내내 저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친척들은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울지도 않고 잠만 잔다고 저를 철없이 보셨습니다. 깊은 잠에서 이제 이 세상에서 나는 혼자다 라면서 끊임없이 외쳤습니다.(내일 계속)